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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북 드림 시스템을 얻은 지도 벌써 5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조금 서늘했던 날씨도 여름을 생각할 정도로 제법 훈훈해졌다.
선우는 약 한 달 동안 두 가지 일을 열정적으로 했다. 하나는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술 공연이었다.
“이번에도 부탁해.”
“예, 걱정 마세요.”
선우는 이 마술 공연으로 부수입을 짭짤하게 올렸다. 마법을 썼다는 걸 밝혀질 게 분명한 공간이동 마술은 일절 하지 않고 얼리기 마술만 죽어라 했는데도 한 달 아르바이트비 이상을 벌었다. 그러나 그 마술 공연조차 오래 할 생각 없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니까.
“선우야, 공연 좀 더 늘려줘라. 응?”
“죄송합니다.”
선우는 그의 거듭된 부탁에도 주에 2회만 정확히 공연했다. 그 공연도 곧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 최현우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사정이다.
그 둘을 하는 시간 외에는 책 읽기와 운동에만 신경 썼다. 수련에 총력을 기울였다.
“헉… 헉… 헉…….”
꾸준히 시간을 투자한 덕분에 신체 능력치가 많이 올랐다. 약 5주 만에 각 부분의 신체 능력치를 1에서 2 정도를 올리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사용자 정보!’

〈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

1, 이름(Name) : 이선우
2, 나이(Age) : 20세
…….
6, 종합 능력치( Comprehensive Ability )

[근력 : 18]
[내구 : 15]
[민첩 : 16]
[체력 : 21]
[마력 : 10]
[행운 : 07]

신체 능력치가 오르면서 일의 효율이 증가했다. 증가된 효율은 조금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창출해 냈다.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아서 좋네.’
높아진 체력 덕분에 자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책 읽고 상상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선우는 읽고 있던 한 권의 책을 완전히 덮었다. 문 밖을 물끄러미 봤다.
‘가긴 가야 하는데…….’
선우는 한 달 동안 약 200권 책을 읽었다. 하지만 아직 소설 속 세상에 다녀오지 못했다. 이게 모두 다 라라 때문이었다. 라라가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웃으면서 갔다 왔을 것이다.

“소설 속 세상에서 죽으면 어떻게 돼?”
[현실에서도 죽을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제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면 집적 확인해 보십시오. 이승과 작별하시면 아주 조금은 안타까워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것 말고도 편의점 일을 1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뺄 수 없어서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휴가를 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오늘 우연히도 기회가 왔다. 그 기회는 아까 나영희 사장과 함께 찾아왔다.
“선우야.”
“예, 사장님.”
“미안한데 3주 정도 쉬어야겠다.”
“예?”
“내일부터 건물 내부 공사를 한데. 그게 약 3주정도 걸린대.”
선우가 아르바이트 다니는 편의점은 낡은 주상복합건물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내부 진입로가 막히면 꼼짝없이 영업을 할 수 없는 1층 가장자리다. 덕분에 리모델링하면서 3주 동안 쉬게 되었다. 정말 본의 아니게 쉬게 된 거다.
선우는 나영희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속으론 이게 웬 떡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겉으론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나영희 사장은 선우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쉬면 네 생계가 곤란해질 테니까 10일 정도 급여를 보너스로 줄게.”
“예? 10일이나요? 정말요?”
“그래, 대신 3주 후에 이상 없이 출근해야 해. 다른 아르바이트로 옮길 생각하지 말고.”
나영희 사장은 선우에게 유급 휴가를 주었다. 생계에 문제가 생길 선우의 사정을 생각해 3주 중에 무려 절반에 가까운 10일을 유급 휴가로 준 것이다.
역시 취미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람다웠다. 금수저 특유의 배포와 화끈함이 느껴진다. 선우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예, 고맙습니다, 사장님.”
찬양의 눈을 하고 나영희 사장을 계속 봤다. 나영희 사장은 스무 살인 선우의 이런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뻘줌하게 웃다가 퇴근했다.
“나 간다. 3주 후에 보자.”

선우는 나영희 사장이 간 이후에도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했다. 소설 속 세상에 가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며 근무 시간을 보냈다.
10시간의 길고 긴 시간이 지났다. 곧 교대 시간이 되었다. 다음 교대 근무자는 여전히 그녀였다. 흔하디흔한 흔녀.
“오셨어요, 누나?”
선우는 그녀에게 인수인계했다. 사실 인수인계할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래.”
선우는 3주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곤 편의점에서 걸어 나왔다. 집 방향으로 서서히 걷다 불현듯 공중전화 앞으로 갔다.
“공연 못 나간다고 미리 연락해야지.”
곧 그만둔다 하긴 했지만 언제부터 그만두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말 안 한 상태에서 무단으로 안 나가는 건, 인력사무소 때, 그 한 번이면 족했다. 공중전화로 최현우 마술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현우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현우 형, 접니다. 선우.”
“어, 선우야.”
“저 앞으로 마술공연 못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
“개인적인 일입니다.”
“요새 너 찾는 전화만 엄청 온다. 너도 같이 오냐고 묻는 전화가 반 이상이야.”
“… 죄송합니다.”
“그럼, 딱 한 공연만 더 해주라. 더는 공연해 달라 말하지 않을게. 워낙 페이가 쎄서 그래.”
최현우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언제인데요?”
“9일 후야. 기업 행사고, 힐튼 호텔에서 해.”
9일 후면 계산상 한 번 갔다 와서 쉬는 타이밍이었다. 날을 잡아도 어떻게 이리 절묘하게 잡았는지… 선우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 공연까지만, 하죠. 대신 얼리기 마술만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만 해줘. 페이도 두 배로 쳐줄게.”
“그럼 9일 후에 뵙죠.”
통화를 끝내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온 선우는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마트나 갈까?”

선우는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인근 마트로 갔다. 얼떨결에 3주라는 무대가 준비되었지만 얼떨결이라 그런지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소설 속 세상에 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 것 같았다.
선우는 마트로 가 장을 봤다. 소설 속 세상으로 갈 생각에 은연중 유통기한이 긴, 잘 상하지 않는 음식들만 골라 담았다.
선우는 장 본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리하자.’
선우는 구매한 물품들을 잘 정리했다. 마치 죽기 직전 인생을 정리하는 노인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물건을 차곡차곡 넣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아공간도 가득 채웠다. 마트에서 산 식품들 거의 대부분이 아공간에 들어갔다.
정리를 모두 마친 선우는 방을 살폈다. 가스를 잠갔는지, 창문을 잠갔는지 확인했다.
‘이상 없지?’
선우는 7일간의 외유 준비를 모두 끝냈다. 이제 마음의 준비만 끝내면 된다.
선우는 방 안 중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가자. 그래, 가자.”
아직도 많이 무서웠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 소설 속 세상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어떻게 안 무서워할 수 있겠나? 거기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을 수도 있다는데. 그런데도 선우는 결심했다. 소설 속 세상에 가기로. 그래야 보상을 받는다. 그래야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다.
선우가 결심하자 라라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소설 속 세상에 가길 원하십니까?]
“어, 무섭고 여전히 두렵지만.”
[그럼, 먼저 갈 세상을 선택해 주십시오. 퓨전입니까, 무협입니까?]
앞서 언급했듯 선우는 약 한 달 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무협 100권을 읽었고, 퓨전 소설 100권을 읽었다. 선우는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갈지 고민했다.
“하… 어디로 먼저 갈까?”
둘 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솔직히 어디가 낫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선우는 고민 끝에 결정했다. 100권을 먼저 읽었던 무협 세상에 가기로.
“무협으로 갈게.”
선우가 무협을 선택하자 곧장 라라가 말했다.
[무협으로 결정하셨습니다. 사용자님은 이제 곧 무협 소설 속 세상에서 1주일을 보내셔야 합니다. 다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실 차례입니다. 선택과 무작위 중 어떤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처음 판타지 세계를 갔을 때처럼 선택과 무작위라는 선택지가 나왔다. 질문에 대답을 기대할 수 없었던 그때완 처지가 완전히 다르기에 곧장 물었다.
“선택과 무작위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나온 이유가 뭐야?”
[본 시스템은 사용자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정신, 특이 인자 등이 성장하길 바라지만 사용자를 강제로 성장시키진 않습니다. 두 가지의 선택지를 드린 이유는 그런 자유의지 반영입니다. 사용자님을 배려한 것입니다.]
“그래?”
[예, 물론! 보상이 다르긴 합니다. 특정 소설을 선택해서 가는 경우보다 랜덤으로 가는 것이 난이도가 월등히 높은 만큼 보상도 다르게 주어집니다. 선택해서 가는 경우 최대 A등급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무작위로 가는 경우 최대 S등급의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택과 무작위, 두 가지의 차이는 결국 난이도 차이와 보상의 차이였다. 무작위가 난이도가 더 높은 만큼 더 좋은 보상은 주는 것이다.
선우는 1주일을 생고생하고 저급의 보상을 받고픈 생각 전혀 없었다. 선택과 무작위의 난이도 차이도 별로 날 것 같지도 않았다.
선우는 빠르게 선택했다.
“이번에도 무작위로 할게”
선우가 무작위로 하겠다고 말한 순간, 전에 이미 한 번 봤던 것이 똑같이 반복 재생되었다. 100권의 책이 나타났다가 화투패처럼 섞여지고, 99권의 책이 순차적으로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소설의 제목은 ‘남궁세가’였다. 그중에서도 4권 부분이었다.

***


“이현상 대통령이 부인 김은혜 여사와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출국하였습니다. 이현상 대통령은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1박2일 일정으로 참석한 뒤 인도의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인도 순방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현상 대통령이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와 안보리 핵 비확산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에 치러지는 유엔총회에서는 기후변화대응, 핵무기감축, 신종인풀렌자 등이 주요현안으로 논의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현상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최다(160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UN총회가 약 3시간동안 매우 이례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비공개 UN회의의 주제 및 그 내용에 대해선 전혀 전해진 봐 없으며 이 회의 참석한 정부요인 및 참석자들은 모두 입을 다문 상태입니다.”

***


160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UN회의가 뉴욕 유엔 본부 국제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다.
국제회의장 안에는 이슬람 전통 의상인 깐두라를 입은 정상도 보이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 정상도 보인다.
적대관계로 만난 때마다 으르렁거리던 정상들도 나란히 앉아 있다. 악의 축 소리를 들은 국가의 정상도 있다.
그들은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부채꼴 모양의 회의장, 그 중심에 위치한 단상이다.
그 단상 위에는 버락 오버마 미국 대통령이 서 있다. 그 뒤편에 앉아 있던 세 사람 중 한 명인 UN 총회 의장이 선언했다.
“버락 오버마 미국 대통령의 기조연설이 있겠습니다.”
이번 회의 기조연설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맡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매우 침울한 어조로 기조연설을 시작했다.
“UN에게 가입한 193국을 대표하여 UN총회의 기조연설의 특권을 주신데 대해 세계 각국의 대표자 여러분과 세계의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입니다.”
짝짝짝!
“할 말이 많은 관계로 서론 없이 바로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과학 문명 연합과 이능력 연합으로부터 약 1주일 전, 통보를 받았습니다. 백일 내로 인류의 거취를 결정하라는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인류의 거취를 결정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리 인류의 자유의지를 지키기 위해 중립 행성 선언을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우리 인류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유의지 수호를 위해 준비하고 대비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방적 통보를 받은 지금, 우리 인류에겐 매우 한정된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약 455일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평화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455일 동안 지금까지 했던 준비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류의 자유의지 수호라는 대명제를 위해서는 시간을 허투루 써선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산더미만큼 쌓여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도 모자랄 시간에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큰 과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바입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비정한 제안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잠시 숨을 돌렸다. 정상들을 쭈욱 둘러본 다음 기조연설을 계속했다.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유엔 총회에서, 그것도 세계 평화 수호에 최전방에 서 있다고 자부하는 미국 대통령인 제가 이 단어를 언급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자유의지 수호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눈물을 머금고 해야 할 듯합니다. 소수의 불가피한 희생에 대해.”
버락 오버마 미국 대통령은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세계의 경찰국, 미국 대통령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비정하고 또 비참했다.
160개국 정상들은 침통한 얼굴로 오바마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모두 들었다. 그리고 그 기조연설이 끝난 순간 토의를 시작했다.
회의 내내 고성이 오고갔다.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통곡소리도 들려온다. 이게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이었다. 회의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현상 대통령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