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으라랏차!”
부―웅! 터엉!
풍압에 밀리고 다음으로 무지막지한 힘에 밀린 말 탄 홍마군 무인이 말과 함께 넘어졌다.
너무 순식간이라 반격의 몸놀림도 취하지 못하고 일어서려던 그의 목과 어깨 사이에 대부가 떨어졌다.
콰직!
대부는 가슴을 가르고 배꼽 근처까지 내려와서야 멈췄다.
퍽!
아직 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 적을 걷어차 대부를 온전히 회수한 조훤이 눈알을 굴리며 다음 적을 찾아 나섰다.
말을 달리던 붉은 적들 상당수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한 구십삼반 동료들의 활약으로 홍마군 무인들이 먼저 제거된 덕분이다. 그로 인해 전장 가득하던 흙먼지도 상당히 옅어졌다.
턱!
조훤의 등에 누군가가 빠르게 붙었다.
“훅, 훅, 어때?”
거친 숨소리 뒤로 잘 아는 목소리가 들린다.
“몰라. 다들 살아 있나?”
조훤이 물었다. 그와 등을 맞댄 남자는 맹포.
“찾아봤는데 주촌, 그놈만 빼곤 나머진 아직 멀쩡하더군.”
“망할 새끼. 그렇게 뒤지지 말자고 했건만.”
“좀 센 놈 넷을 동시에 상대하다 당한 모양이야.”
“켁!”
맹포에게 달려들던 귀신 하나가 그의 맥도에 의해 사선으로 베어져 넘어간다.
슈웃! 챵!
조훤은 옆에서 들어온 곡도를 걷어내고 몸을 회전해 맹포와 자리를 바꾸었다.
맹포의 맥도가 또 다시 적의 목젖을 끊는다.
팅, 티팅.
“어딜!”
대부로 두 명의 홍마군 무인들이 찔러오는 창을 막던 조훤이 소리쳤다.
부우웅!
조훤이 대부를 가로로 크게 휘둘러 적들을 위협했다. 동시에 조훤의 등 뒤에 있던 맹포가 허공으로 휘리릭 도약해 적들의 뒤로 내려앉는다.
스걱, 스걱.
맹포는 빠르고 정확하게 두 명의 척추를 절단했다. 몸을 통째로 잘라낼 필요도 없고 조금 깊이, 조금 더 강하게 맥도를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피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적들을 두고 맹포가 먼저 사라졌다.
다그닥, 다그닥.
“또야? 에레이!”
아직도 남은 홍마군 놈들을 보며 조훤이 혀를 찬다.

터벅, 터벅.
말과 사람이 뒤엉켜 죽어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 사이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내미는 ‘적’의 얼굴도 보인다.
다리가 잘린 채, 땅을 기어가는 하씨 일족의 방계는 얼마 못가 숨이 끊어졌다.
몇 마리 말들이 주인을 잃고 무작정 달리며 주변 무인들을 치고 나간다. 그 먼지들 뒤로 적과 아군이 또 병기를 부딪쳤다.
열 명 정도 되는 구황단 무인들이 필사적으로 돌산을 오른다. 그들의 머리 위로 무지갯빛 암기가 비 오듯 쏟아졌다. 비명과 함께 네 명이 굴러 떨어진다.
퓻! 슈웃!
아래쪽에서 적운단이 화살을 날렸다. 돌산 위에서 암기를 던지던 귀비(鬼婢)들의 이마에 딱! 딱! 소리를 내며 화살이 파고들었다. 덕분에 암기의 비가 잠시 멈춘다.
돌산 정상 근처까지 다가갔던 구황단 무인 한 명이 품에서 자기병을 하나 꺼내어 위쪽으로 힘껏 던졌다. 귀비들이 잔뜩 모여 있는 머리 위까지 날아갔을 무렵, 적운단 궁시 고수가 쏜 화살이 자기병을 박살낸다.
“끼야야야약!”
깨진 병에서 쏟아진 검은 액체가 귀비들의 몸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그녀들의 살이 타들어갔다.
그간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구황단이기에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쓰는 데에 꺼림이 없다. 지금처럼 독을 쓰는 비겁함 정도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비명 속에 남은 구황단 무인들이 돌산의 정상에 빠르게 진입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녹아버린 귀비들이 울부짖었다. 구황단 무인들은 가차 없이 그녀들의 목을 날려 버린다.
삐익! 삐이익!
호각이 울렸다. 돌산을 점령했다는 신호다.
또한 조금 멀리서 홍마군 주력의 진입을 막고 있는 구십삼반과 소수의 구황단 무인들에게 퇴각을 지시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열 배의 적과 싸우던 구십삼반에게 호각소리는 구원에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앞 다투어 부서진 바위가 널린 지역으로 후퇴한 뒤, 곧바로 아군으로 합류한다.
홍마군 무인들이 말을 달려 공격을 시도했다.
슈우욱! 콰앙!
사람 키만 한 화살이 날아와 맨 앞에 있던 홍마군 무인의 머리통을 분해시켜 버렸다.
“윽!”
적운단이 돌산 위에서 대형 쇠뇌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수십 발의 화살들이 홍마군들에게로 쏘아졌다. 그제야 홍마군 무인들은 돌산이 점령당했음을 알고 서둘러 말을 돌린다.
“아직 멀었어, 이 새끼들아!”
조훤이 그의 대부를 휙휙 돌린 뒤 그대로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대부가 뒤쪽에서 달리던 홍마군 무인의 허리통을 양단하고 말의 모가지마저 끊는다.
돌산이 하가 쪽에 넘어가자 그 아래에서 분투하던 귀굴 무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비록 자신들의 수가 더 많지만 개개인의 무공도, 집단전의 경험도 하가에 비하면 자다 깬 어린아이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더 잘 안다.
전의를 상실한 귀굴 무인들을 향해 복수에 불타는 하가 무인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푹. 푹.
쓰걱.
“끄르륵.”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병기가 생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창을 든 하가 무인들이 수도 없이 널린 적들의 심장과 머리에 창을 한 번씩 꽂아 넣는다.
어차피 부상자를 거둘 여력은 안 된다. 또 그들을 용서할 마음도 없다. 가장 편한 방법은 그냥 목숨을 거두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자비로운 용서일 지도.
“사, 살려…….”
퍽!
피와 뇌수가 사람 머리 높이까지 튀었다.
자신의 말에 깔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던 젊은 홍마군 무인은 누군가가 내려친 철추에 머리가 박살났다.
전장은 삼백 명의 시신으로 꽉 찼다. 대부분 귀굴과 홍마군 무인들이었지만 하가 측도 삼십이 넘는 무인을 잃었다.
그동안의 개싸움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 이제 이 황산 원정단은 처음 들어왔을 때의 절반으로 줄었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싸움을 겪어온 것이다.
자연히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수밖에.
터벅, 터벅.
구십삼반의 정팔은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뚝… 뚝…….
그는 눈을 허옇게 뜨고 혀를 빼문 채 덜렁거리는 머리통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수급들을 들고 있는 한 사내도.
정팔이 사내를 보며 씨익 웃었다.
공천록. 그가 뒤늦게 전장에 나타났다. 그것도 누군지 알 수 없는 네 명의 머리를 들고서.
“고생 했다. 사신(死神).”
“다들 그거 불길해서 싫다던데 어째 자주 부르십니다?”
공천록이 수급들을 휙 던지면서 웃는다.
정팔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힘들었지만, 이 중요한 거점을 점령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공천록이 뒤에서 적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척살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이제는 진짜 사신이로군. 하씨 본가 놈들이 지껄이는 것처럼 불길한 의미 말고. 안 그런가?”
정팔의 말에 다른 동료들이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친다.

열흘.
하용보의 군단이 황산에 머문 날 수다.
그는 황산을 피바다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일단 지켰다. 귀굴과 홍마군 무인들을 합쳐 이천이 넘는 자들을 돌산에 갈아버린 것이다.
이들의 무력은 인간이 흘린 피가 골짜기에 흐르고 흘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관(?)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 하용보가 장담하기로, 귀존을 잡는 데 닷새면 충분하다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 약속을 위해 엄청난 강행군을 해야 했고 적운단과 구황단, 그리고 각지에서 모인 용병들은 하용보를 믿고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팔, 다리가 날아가는 것은 예사였고 그들의 목숨은 오로지 타인의 손에 좌지우지되어왔다.
육백이 넘어와서 이백만이 남았다. 절반에서 한참 못 미치는 ‘숫자’가 이들에게 남은 명예였다. 이백 명 중에 몸이 성한 무인들은 겨우 백여 명. 적운단 궁수대 일부와 구황단에서도 수송을 담당했던 자들이 대부분이다.
작은 부상으로도 죽어나가는 무인들이 속출했다. 또한 부상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전장에 투입되기 불가능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그저 칼 받이 외에 쓸모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 말고도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하용보의 눈 아래 그늘이 지고, 이마에 주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좋지 않습니다.”
하진양의 음성은 어느 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
평소와 달리 하용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준비해 온 약재가 바닥이 났습니다. 여기저기 널린 약초를 뜯어 쓰는 것도 한계입니다. 다친 녀석들의 상처가 썩어 들어가고 있어요. 당장 오늘을 넘기기도 힘든 무인들이 열을 헤아립니다.”
차근차근 보고하는 하진양의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왼쪽 눈 아래에 박혔던 암기 때문에 한동안 오른쪽 눈만 내놓고 싸워야 할 판이다. 게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잃었고 폐를 다쳐 전투에 나가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부상자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신뢰 하나로 여기까지 온 자들이에요. 이대로 두고 본다면 남은 무인들의 사기도 땅을 파고 들어갈 겁니다.”
하진양은 하용보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고하는 것일 뿐.
방 안에 켜진 몇 개의 초는 어디선가 들어오는 미풍에 조금씩 흔들렸다. 묵묵히 의자에 앉아 하진양의 말을 듣기만 하는 하용보의 뒤로 그림자가 같이 흔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움직이는 다른 세 개의 그림자. 곽능파와 목여충, 하 노인의 것이었다.
“너무 얕본 거 아녜요? 셋째 공자님 장인을.”
곽능파의 말에 목여충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큼, 큼. 셋째 공자께서 어찌 적을 얕보았겠소. 다만 상대가 예상 외로 강했을 뿐이외다.”
하 노인이 하용보를 위해 대신 변명했다.
“쓰읍.”
곽능파가 깨진 자기 그릇에 놓고 피우는 연기를 크게 들이마신다.
“아! 그것 좀 안하면 안 되나?”
그간의 침묵을 깨고 튀어나온 하용보의 말에 곽능파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역시, 아직 기운이 넘치시네요. 보기 좋습니다그려.”
“젠장!”
하용보가 성질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놈의 시간! 시간만 충분했다면… 빌어먹을.”
하용보가 옳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하가장에서 보내온 귀환 명령이 아니었다면 황산 정벌은 긴 시간을 두고 이루어졌을 것이다. 더 많은 무인들을 모았을 테고 훈련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을 터. 또한 지금처럼 부대를 나누어 여러 거점을 동시에 공략하는 다소 무모한 작전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무인들이 불필요하게 희생되기도 하였다.
“그나마 자네들이 있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정말 놀랍게도 잘해주었지.”
곽능파가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뒤, 고개를 숙였다. 그의 옆구리에도 크게 베인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난 싸움들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짐작이 간다.
목여충도 어깨와 허벅다리에 피가 밴 천을 감은 상태였고 하 노인 또한 얼굴과 팔에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우리가 한계라면 저쪽도 마찬가지야. 싸울 수 있는 무인들 백중에 팔십을 잃었지 않은가. 이제 쓸 만한 자들로 오백이 다야. 붙어볼 만하지. 안 그래요? 칠숙.”
“셋째 공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 노인은 언제나 하용보의 편이다.
“또 문제는… 제대로 된 식량입니다. 조만간 파묻었던 동료의 시체라도 썰어 먹어야 하겠죠.”
하진양이 잔뜩 힘 빠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오 일만에 준비해온 식량이 다 소모되었고 그간 적들을 물리치고 얻은 몇 줌의 쌀과 죽은 말고기로 여기까지 왔다. 황산의 귀신들은 자신들의 적에게 줄 그 어떠한 전리품도 남겨놓지 않았다.
으드득.
하용보는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자신이 귀굴에 대해 모르는 점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적어도 황산 전체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다. 서산의 사위로서 황산 구석구석을 다녀보았고 그들의 전력 또한 머릿속에 담아 두었었다. 이번 원정도 그래서 밀어붙인 것이었다.
본가에서 장주의 금인까지 찍어가면서 귀환을 명령했지만 칠주야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그 사이에 황산을 완전히 손에 넣고 귀존의 목을 구해 바친다면 사면받는 것 정도는 우스운 일이다.
한데 분명 뭔가 있다. 귀굴의 저항도, 홍마군 잔당의 발악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애초에 장인의 성격까지 고려했던 원정이었다. 하용보 자신에 대한 서산의 지독한 원망이라면 초반부에 이미 친위 무장 세력을 모조리 끌고 와 결전을 벌였을 터. 하지만 서산은 그러지 않았다. 귀하디귀한 아들딸(?)들 태반이 도륙되어도 끝끝내 나서지 않는다. 예전에 하용보를 감시하다 못해 귀굴 오십살을 보내 암살하려고까지 했던 자가 아니던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공천록 어디 갔어?”
그러고 보니 그가 보이지 않는다.

휘이잉∼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이라도 불어오는 바람은 모두 다르다. 따라서 그 소리 또한 같지 않다.
바람은 스치고 지나온 모든 존재의 흔적을 머금고 있다. 그 존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소리의 성질도 달라진다.
그리고 공천록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존재를 머릿속에 그릴 수도 있다.
그는 걸었다. 바람이, 바람에 섞인 존재의 흔적이 자신을 오라 손짓하는 그곳을 향해.
주둔지를 떠나 얼마나 걸어왔을까. 공천록의 눈앞에 둥근 바위들 사이로 얕은 물이 흐르는 지형이 나타났다.
마침 삭월(朔月)인지라 미약한 별빛만이 밤을 비추었다.
공천록은 보았다. 어둠 속에 있는 더 깊은 어둠을. 졸졸 흐르는 개울 위로 솟은 큼지막한 바윗돌.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그림자를.
터벅, 터벅. 척.
공천록이 그림자와 거리를 두고 마주하며 섰다. 그렇게 한동안 양쪽 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조금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드러났다.
칠흑의 무복(巫服). 세 뿔의 귀면. 그는 바로 홍면귀 서산을 호위하던 자였다.
“주인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군. 네놈이 올 거라는 거.”
“귀신 그 자체인 노인이니 이 정도 내다보는 것쯤이야 안 쉽겠소?”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공천록은 여유 있게 말로써 응대한다.
귀면은 은근히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꼈다. 그냥 공천록의 말을 듣고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쉬익!
공천록의 뺨을 스치고 날카로운 물체가 지나갔다. 가느다란 상처에 핏방울이 알알이 맺힌다.
허공에서 회전하던 십(十)자 형 암기는 크게 원을 그리며 다시 귀면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주인께서 너희에게 전하라 하신 게 있다. 물론 나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귀면이 기름 먹인 봉투를 꺼냈다. 초를 녹여 귀인(鬼印)을 찍어 봉한 것으로 보아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서찰이 있는 듯했다.
휙―
그가 봉투를 던졌다. 봉투는 멀리 날아가 돌 틈에 툭 꽂힌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게야.”
공천록은 표정 없는 얼굴로 귀면을 바라보았다.
“귀존께서 널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하씨의 개에 불과한 네놈을. 그렇다는 말은 곧 네가 그리 범상한 놈은 아니라는 뜻이셨겠지. 당장 엄청난 위협이 될 수는 없겠으나 이대로 둔다면 얼마든지 크게 자랄 수도 있을 터. 네놈이 그저 햇병아리일 때 싹을 잘라 버릴 것이다.”
귀면은 주인의 뜻에 반해 공천록을 죽이겠다고 말한다.
“네 목과 함께 봉서를 하용보 그 개자식에게 전해주면 된다. 귀존께선 전해주라 하셨을 뿐, 다른 말씀은 일절 없으셨으니.”
철컹! 철컹!
귀면이 소매 아래로 예의 그 철구자를 늘어뜨렸다.
“저승에 가서 후회해라.”
공천록이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입을 툭툭 친 뒤 주먹을 쥐었다가 쫙 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귀면은 공천록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곧, 분노를 터트렸다.
“말이 많다고? 이런 미친놈!”
팟!
귀면이 바위를 박차고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