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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걸까? 힘겹게 눈을 뜨고 바라본 주변은 다행히도 아직 클럽의 Room 안이었다. 그리 긴 시간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친구와 남자는 시안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이 녀석 어차피 고아라 사라져도 찾을 가족도 없어요. 학교엔 대충 우리가 둘러대면 될 거고.’
‘그럼 니들만 믿는다.’
‘글세, 걱정 말고 값이나 잘 챙겨 줘요. 봐서 알겠지만 얼굴이나 몸이 진짜 끝내주잖아요.’
‘그래. 그건 인정. 진짜 죽여주는 녀석으로 물어 왔구만.’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이야기도, 흐릿한 시야도, 맑지 않은 정신도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이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마도 친구 녀석들 중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가 물어본 질문일 것이다.
‘알게 뭐야. 저 정도 미인이니, 아마도 어디로 끌려가서 평생 몸이나 팔게 되겠지.’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한다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물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살고 싶다. 아니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게 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나를 좀 도와줘. 제발…….
필사의 힘으로 몸을 일으킨 시안이 Room을 뛰쳐나왔다. 그들은 아마도 그녀가 마신 술에 수면제를 넣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몸은 무겁고 눈꺼풀은 자꾸 감겨 왔지만, 시안은 어떻게든 도망쳐야만 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이 상황에서 자신을 좀 구해 달라고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뛰어나온 시안은 뒤를 따라오는 이들에게서 멀어지려 비틀거리는 다리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아……. 제발…….’
쿵! 털썩!
복도의 모퉁이를 돌던 시안의 몸이 마침 그곳에 서 있던 한 남자와 부딪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괜찮으냐 물어보며 시안을 일으키는 남자의 팔을 잡은 그녀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약 기운에, 그리고 눈물 때문에 자신을 부축하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지만, 그가 누구건 간에 지금은 이 남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무슨 일입니까?’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더 이상 도망칠 기운도, 약 기운에 버티고 서 있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시안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남자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장면과 장소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매캐한 담배 연기도 없었고, 클럽의 소란스러운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몸이 무거웠지만 그저 직감적으로 위험에서 벗어났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
곁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시안을 바라보고 있던 이는 지금의 총매니저였다. 잠시 상황을 가늠할 수 없었던 시안은 그가 클럽에서 자신과 부딪쳤던 남자인가를 생각하느라 입술을 다물었다.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앞에 있는 남자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 더 키가 크고 조금 더 나이가 어린 그런 남자였던 것 같다.
‘폐를 끼친 것 같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총매니저가 건네는 물 잔을 받아 목을 축인 시안이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의 남자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 그녀가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시안의 몸은 여전히 제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았다.
‘약 기운이 퍼져 몸이 맘처럼 움직여지질 않을 거다.’
‘수면제가 원래 이렇게 오래가나요?’
‘수면제가 아니다.’
‘네? 수면제가 아니면…….’
‘지금 네 몸에 퍼져 있는 약은 교육을 위해 투여한 약이다.’
교육이라니, 이 남자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아직 약에 취해 그의 말을 잘못 듣고 있는 것일까? 시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 속에 있는 것이 괴로웠다.
클럽에 들어간 순간부터 자신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그 세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그것은 그녀가 원치 않았던 일이다. 그렇기에 비록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곳을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도와주신 것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제가 좀 괜찮아지면 반드시 보답을……’
‘감사하다는 인사는 필요 없다. 물론 보답도.’
‘하지만…….’
멀찍이 서 있던 그가 시안에게로 한 발짝 다가섰다. 사무적인 목소리와 차갑게 내려다보는 시선에 시안의 몸이 얼어 버린 듯 굳어졌다.
‘너를 도와준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우리는 그자들한테서 너를 샀다.’
멈췄던 심장이, 아니 계속 뛰고 있었지만 조금은 진정을 찾았던 심장이 다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대체 누가 나를…….’
‘우린 그런 거까지 알 바 없다. 그들이 너를 우리에게 팔았고, 너는 단지 이곳의 상품일 뿐이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 나가려는 그의 팔을 시안이 힘껏 잡아 세웠다. 여전히 이곳은 자신이 모르는 세계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것은 꿈이 분명했다. 그것도 지독하고 끔찍한 악몽. 그래. 이런 일이 절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었다.
뚝뚝 눈물을 떨구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안의 팔을 밀어 내며 냉정하게 돌아선 총매니저가 그곳을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50억 원이다. 우리가 너의 몸값으로 지불한 금액. 이곳을 나가고 싶다면 열심히 일해라. 순이익 50억 원을 달성하면, 그땐 너를 내보내 주마.’
‘그런…….’
‘지금부터 그 50억 원을 벌기 위해 익혀야 할 것들을 교육하러 너의 선배가 들어올 거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익혀라.’
그 뒤로 한 달, 끔찍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피와 정액으로 얼룩진 시트를 갈고, 눈물에 젖은 베개를 바꿨다. 밥을 먹거나 몸을 씻거나,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곤 자신을 담당하는 남자와 몸을 섞어야 했다.
울며 매달리기도 하고, 죽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일 년같이 보름을 보내고 나니, 모든 것이 다 허무해졌다. 고아라는 사실에 기죽지 않기 위해 밝은 척했던 학창 시절도, 고아 주제에 남들과 똑같이 살아 보겠다고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에 들어간 것도 전부 무엇을 위해 그랬던 걸까?
결국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상태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래, 이제는 될 대로 되어 버려라 단념하고 나니, 차라리 모든 게 쉬워졌다.
교육을 끝내고, 손님을 접대하고 때때로 원하는 손님과 잠자리를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하는 세상을 향한 원망도 결국엔 다 부질없는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하루는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다만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을 뿐.
즐겁지 않은 인생이 뭐 어때서? 괴롭지만 않으면 생각 따위 아무러면 어때.
죽지도 살지도 않은 몸과 정신으로 돈을 벌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갚기 위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50억 원을 벌거나,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나를 지명하는 손님이 없어지거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병이 든다면 그땐 이곳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도 자신이 행복이라는 걸 바라고 있다면 그때 다시 살려고 노력해 보자 생각했다.
다만, 행복을 찾아도. 그때에 내가 숨을 쉬고 있다고 해도…….
이런 몸으론, 이런 과거를 안은 채로는 진정한 사랑을 바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 버린 지금도 가끔은 그 현실이 뼈저리게 슬플 때가 있었다.

‘414호’라고 적혀 있는 문 앞에 서서 시안은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전혀 그립지도 아련하지도 않은 추억이었다. 아니, 이런 걸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그녀는 이곳에 처음 오던 그날보다 더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자신을 교육했던 선배는 나이가 들어 은퇴를 했지만, 시안은 이곳에서 그 선배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순간이 무엇보다 큰 고통이었다. 얼굴을 볼 때나, 어쩌다 대화를 나누거나 살이 맞닿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역시도 원해서 교육을 자처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총매니저의 말대로 당시의 에이스가 신입을 교육하는 것은 전통과도 같았고, 그는 단지 그때 가장 잘 팔리는 직원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
나중엔 미안했다는 말로 사과를 하긴 했지만, 시안은 그 뒤에도 오래도록 그를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미안하다는 말이나, 잊으라는 말로 치유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이 그것에만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저 나 자신을 놔 버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고통을, 자신이 겪었던 것과 같은 끔찍한 기억을 누군가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이 방에서. 오늘 밤, 그리고 쭉 한 달을. 한 사람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고, 그녀의 기억에 영원히 잊히지 않는 악몽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피하거나 도망칠 수 있는 방법 따위 없다. 그때에 자신도 그랬으니까. 지금 이 방에 있는 그녀에게도 그런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그녀의 교육 담당이 자신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시안이 교육하게 된 그녀는 A·bad·don에서 판단하기에 남성 고객들보단 여성 고객들의 취향을 더 만족시킬 만한 상품으로 분류된 모양이었다. 경험이 없다면 남자보단 여자가 덜 수치스러울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다. 어쩌면 같은 여자이기에 더 수치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짧게 심호흡을 한 시안이 천천히 도어록을 향해 카드키를 가져갔다.

* * *

“정말로 잠이 든 것인지, 아니면 자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상관없다. 나는 지금 너를 안을 테니까.”
가까워진 숨결과 귓가에 닿을 듯한 목소리는 차갑게 귓전을 울렸다. 더 이상 자는 척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유리가 천천히 눈을 뜨곤 자신의 위에 덮칠 듯 엎드려 있는 이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두렵다. 지금 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가진 그의 눈을 마주 보는 것이.
“너도 약 기운이 있을 때 적당히 즐기면서 배우는 게 즐거울 테지. 다음부턴 그나마 약 기운에도 의지할 수 없을 테니까.”
억지로 피하고 있던 시선이 헌의 손에 의해 정면으로 돌려졌다. 눈을 감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찰나였다. 떡하니 마주 보게 된 그의 눈빛은 목소리보다도 더 차가워서 유리의 온몸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고 말았다. ‘지금 너를 안을 테니까.’라고 말했던 목소리는 오히려 눈빛에 비하면 매우 다정한 것이었을지도.
몸에 말려 있던 시트가 단숨에 걷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군가 벗겨서 말끔하게 씻겨 놓은 알몸이 헌의 아래에 휑하게 드러났다. 억지로 삼켜진 알 수 없는 알약은 시간이 지나며 유리의 몸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트 안에 꽁꽁 숨겨 두었던 열기가 그의 앞에 고스란히 보이고 말았다.
유리는 알 수 없었다. 제 몸이 왜 이렇게도 뜨거워져 버린 것인지.
“부탁이에요. 집에 보내 주세요.”
“돌아갈 집이 있나?”
몸을 가리고 돌아누우려는 유리의 양팔을 잡아 옆으로 벌려 누르며 헌이 유리의 유두를 물었다. 입술로 깊게 빨아들였다 놓은 그녀의 분홍빛 돌기가 단 한 번의 자극에 딱딱하게 솟아올랐다. 타액을 진득하게 바른 입술이 또 한 번 유두를 물었다. 이번엔 더욱 진득하게 입술로 비벼 대다 그의 혀가 집요하게 끝을 자극해 왔다.
“으읏……. 하아……. 그만!”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지 물었다.”
물고 있던 유두를 놓고 천천히 입술을 올려 쇄골과 목덜미를 핥아 대던 헌이 위로 젖혀진 유리의 턱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네 가족은 너를 이곳에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빚을 갚았겠지. 네 아비는 남은 돈으로 다시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할 거다. 그리고 또 빚더미에 올라앉겠지.”
“…….”
“그런데 네가 돌아가면 어떨까? 네 아비는 또 널 걸고 돈을 빌릴 거다. 그리고 네 어미는 너를 데리러 온 사채업자들에게 순순히 너를 내어 줄 거다. 한 번 그랬으니, 두 번은 더 쉬울 테지.”
“그만……!”
애써 부정하고 있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던 사실을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몸이라는 말을, 이제는 여기서 나간다 해도 돌아갈 집도, 기다리는 가족도 없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말을 이 남자는 너무 태연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인정해라. 돌아갈 집도, 기다리고 반겨 줄 가족도 없다는 걸.”
턱에서 목덜미로 그리고 움츠린 어깨 끝에 입술을 맞추고 다시 귓가로 올라온 헌의 입술이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이 남자,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꼭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니야. 아니야!”
유리의 귓바퀴를 따라 혀를 내어 핥아 내던 헌이 아니라고 울먹이는 유리의 목소리에 낮은 웃음을 뱉어 냈다. 재미있거나 즐거워서 내뱉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을 담지 않은 비웃음. 버린 가족이라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지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자신을 이 남자는 진심으로 비웃고 싶은 거다.
“다행이군. 단념도 포기도 빠른 녀석은 재미없으니까.”
겹쳐져 있던 몸을 떼어 내며 상체를 일으킨 헌이 유리의 손목을 잡고 있던 팔을 풀고는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쥐었다. 반사적으로 튕겨 오르는 허리와 함께 유리의 입에서 ‘아악!’ 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처음의 반응은 언제나 신선하다. 순결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는 듯 눈물을 흘리는 갈색의 눈동자. 그 눈이 언제까지 투명할 수 있을까. 이토록 거부하는 몸부림이 언제까지일까. 집에 보내 달라며 매달려 우는 이 꼬맹이는 과연 언제쯤 허황된 희망을 버리게 될까.
약 기운에 취한 유리의 몸부림은 헌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못했다. 오히려 살고 싶어 하는 갈망은 지독히도 자극적이어서 적당히 하려던 헌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그만하라는 말과는 다르게 헌의 손과 입술이 닿는 곳마다 뜨거운 열기를 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반응은 비단 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무 살, 알 건 다 아는 나이라지만, 그저 제 엄마를 위해 아르바이트나 하며 살아온 꼬맹이에겐 이마저도 생경한 자극임이 분명했다.
“아앗! 하악……. 흣…….”
헌의 손이 바싹 오므리고 있는 유리의 허벅지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그녀의 다리 사이는 그 아래의 시트가 축축해질 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흐읍……. 제발……. 그만해 주세요.”
“허리를 움직여.”
헌의 손가락이 유리의 안으로 불쑥 침범했다. 헌의 팔목을 두 손으로 잡고 어떻게든 떼어 보려 안간힘을 쓰던 유리가 헌의 목소리에 강하게 고개를 저어 댔다.
“움직여.”
“……못해요.”
할 수 있는 건 단지 울고 소리 지르며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것뿐, 그의 손길에 반응하며 그를 만족시키려는 행위 따위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잔인하고 차가운 남자는 그녀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하지 못한다 말하는 유리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괴로워서 아니, 쾌락을 얻고 싶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싶어질 거다.”
이상했다. 자신은 이렇게도 금세 불타 없어질 듯 온몸이 뜨거운데 자신을 애무하고 있는 이 남자의 체온은 미지근하기만 했다. 그는 처음 차가웠던 손과 입술에서 그저 조금 체온이 올랐을 뿐이었다.
이 남자, 지독하게도 냉정한 남자구나.
“하앗……. 하아……. 그런 거 내가 할 리가…….”
귀를 떠나 목덜미와 쇄골로 그리고 가슴으로 이어져 내려온 입술이 헌의 타액이 묻어 번들거리는 유리의 유두 위에 멈췄다. 하아 하고 뱉어진 헌의 숨결이 유리의 가슴 위를 훑고 지나갔다. 그렇게 여러 번, 그의 입술에서 간지러운 숨결이 새어 나왔다.
언제부턴가 유리는 차라리 닿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닿을지, 어떻게 닿을지 또 어떻게 제 가슴을 물고 얄궂게 입술과 혀를 움직일지 생각하고 기다리는 일은 그 입술이 제멋대로 그것을 물고 있을 때보다 더 심한 자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