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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본인이 이렇게까지 데려다주고 싶다는데. 어차피 가는 길이고. 정초부터 혼자서 짐 떠메고 힘들게 터미널까지 가며 낑낑대고 싶지 않았다. 매연 마시면서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퉁퉁 부은 다리와 삭신이 쑤시고 아파 죽겠다.
준서의 은색 차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편하게 집 앞에서 탈 수 있고, 시간도 느긋하게 쓸 수 있는 자가용이.
결국 채윤은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사실은 차를 놓쳤어요.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저 혼자 얼굴이 시뻘게졌다. 치욕스럽기까지 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래도 안락함에 대한 욕망이 더 커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곧 전화벨이 울렸다.
― 채윤 씨, 어딥니까? 역이에요?
“아뇨, 집이에요. 늦잠을 자서요.”
그러자 긴박하게 들려왔던 준서의 목소리가 웃는 듯한 작은 바람 소리로 바뀌었다. 안도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숨소리.
― ……그랬습니까? 어제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저 한 시간 좀 넘게 걸립니다. 쉬고 계시면 도착해서 전화드릴게요.
“네. 죄송해요.”
채윤은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가 곧 후회했다. 찔리는 데가 많기는 했지만, 그에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사과하는 건 비굴해 보일 것이다. 고맙다고 하면 됐는데.
수화기 너머로 또 한 번 작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 어차피 저는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금방 갈게요.
끊긴 휴대폰을 바라보며 채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가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자기를 거절한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친하게 잘 지내자는 뜻일까? 그와 평범한 이성 친구가 될 수도 있을까? 사랑이 우정으로 변하기도 한다는 주장은 들어 봤지만, 그런 애매한 사이가 괜찮은 걸까.
사랑. 채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다정한 말 몇 마디 들었다고 너무 앞서 나간 생각을 했다.
“괜히 오라고 했나.”
하지만 양가에서 작당했으니 모여서 식사 한 끼 정도는 하게 될 테고, 지금 그를 피해 봤자 그때 또 어색하게 얼굴을 봐야 할 게 아닌가.
채윤은 부질없는 고민을 털어 내고 일어났다. 냉장고에 있던 딸기를 씻어서 차가운 사이다와 함께 갈았다. 찬 음료를 벌컥벌컥 목으로 넘기니 정신이 좀 맑아졌다. 방이 너무 더워 잠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바람은 시려도 아침부터 햇빛이 쨍쨍했다.
다시 날이 맑아졌다. 모쪼록 길이 너무 막히지만 않았으면.

“어제 실어 둘 걸 그랬죠?”
준서가 트렁크에 쇼핑백들을 실으며 웃었다. 그는 조수석 문을 열어 주고 나서 운전석으로 향했다. 채윤은 시시콜콜한 일까지 도움받기가 민망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남자가 될 사람도 아닌데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필요는 없겠지 해서.
차 내부는 얼마나 깔끔하게 관리를 하는지 시트 위에 뒹구는 물건 하나 없이 새 차처럼 깨끗했다. 카 오디오에서는 운전 중에 괜찮을지 걱정스러운 자장가 같은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준서는 운전석에 앉더니 채윤이 안전벨트를 매고 앉아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의욕 넘쳐 보였던 그의 눈빛이 시들시들해졌다. 무슨 일 때문인지 그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핸들을 돌리며 도로로 나아갔다.
“길이 막히지는 않았나 봐요?”
“예. 다행히.”
그는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왔다. 채윤은 혹시 그가 무리해서 빨리 온 건 아닐까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뒀다. 극성스러운 성격을 발휘할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위험하게 빨리 달려온 거 아니냐.’, ‘운전은 항상 조심히 해라.’ 그런 잔소리라면 남자 친구에게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준서는 긴장한 기색으로 말이 없었고 채윤도 할 말이 없었다. ‘아침 드셨어요?’ 같은 단순한 인사치레를 할 타이밍도 놓쳤다. 어제는 그리 잘 떠들었는데. 마지막인 듯 헤어져 놓고 차를 얻어 타겠다고 옳다구나 그를 불러낸 탓에 민망함도 컸다.
저야 그렇다 치고, 왜 준서까지 어색해졌을까. 전화로는 상냥했어도 역시 좀 염치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운전할 때 건드리는 거 싫어하는 타입인가.
채윤은 조용해진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을 쳐다보지 않을 때의 얼굴, 웃고 있지 않은 그의 얼굴은 뜻밖에도 상당히 차갑게 보여서 말을 걸기 어려웠다.
“채윤 씨.”
“네?”
채윤은 너무 힐끔거렸나 후회하며 대답했다.
“아무 느낌도 안 듭니까?”
염치 말인가? 채윤은 조심스럽게 그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혼잡한 도로 안에서, 자동차도 두 사람처럼 제자리에 옴짝달싹 못하고 멈췄다. 그러는 동안에 신호가 두 번째 대기 신호로 바뀌었다.
대뜸 준서가 채윤의 좌석에다 손을 짚었다. 채윤은 움찔하면서도 태연한 척 그를 쳐다보았다.
그에게서 느껴졌던 은은한 향기가 한층 짙어졌다.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기. 이것이 남자 냄새인가? 그건 보통 달콤하다기보다는 쿰쿰하다고 하지 않나? 혹시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굶주려서 자꾸 이 남자에게 과민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채윤이 눈을 껌뻑이고 있는 동안 준서가 숨 닿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뭐가요?”
채윤은 튀어나올 듯 부릅뜬 눈으로 준서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개미 같은 목소리로, 그러나 최대한 담담하게.
준서는 신중하게 채윤의 반응을 살피다가 제자리로 몸을 돌렸다.
“사기였나 봐요.”
“뭐가요?”
“유혹하는 향수라고 동생이 뿌려 줬는데.”
채윤은 황당해서 준서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이 남자 몇 살이랬지. 이렇게 어이가 없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준서는 다 들리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핸들에 한쪽 팔을 걸치고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겼다.
“하긴, 저도 그런 게 진짜 있을까 싶었습니다. 좋은 대학 나오고 농담도 안 하는 애가 진지하게 말하니까 깜빡 속았네요.”
이게 겸연쩍게 배시시 웃고 넘어가도 될 일인가. 채윤은 황당한 얼굴로 준서를 쳐다보았다. 향수도 자신도 아닌, 바로 이 남자가 문제다. 어제 차여 놓고 천연덕스럽게 ‘유혹’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이 남자가.
유혹하는 향수 좋아하시네.
“결혼과 유혹은 별개다, 뭐 그런 건가요?”
채윤은 가볍게 흘려 넘기는 투로 응수했다.
“아닙니다. 별개 아닌데요.”
“준서 씨, 결혼 안 한다는 제 말을 이해했다면서요. 저는 준서 씨가 제 뜻을 이해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편하게 대하고 있는 거예요.”
굳이 그에게 이 말을 또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압니다.”
준서는 또 안다고만 대답하고 말문을 닫았다. 어제는 자기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먼저 사과하고 해명했으면서. 대체 무슨 생각일까.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은근슬쩍 되도 않는 장난을 치고.
신호가 바뀌고 차가 출발했다. 채윤은 심란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다가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룸미러를 힐끔 쳐다봤다.
세상에서 제일 서럽고 억울한 사람 같은 얼굴이 보였다. 그의 삐친 표정이 볼만했다. 조금 더 건드리면 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채윤은 그만 헛웃음이 터질 거 같아 나오지도 않는 기침을 했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당황한 듯 움직였다. 제 기분이 상했다고 어필할 거면 우물쭈물 똥강아지처럼 눈치를 보질 말아야지.
문득 승혜 언니의 남편이 생각났다. 형부는 식이 조절로 고생 중이었다. ‘여보, 나 꿀떡 하나만 먹으면 안 돼요? 하나만. 안 돼요?’ 빈말로라도 미남이란 말을 듣지 못하는 그 험상궂은 아저씨가, 한참 연하인 부인의 눈치를 보며 서글픈 눈을 하곤 했었다.
만약 준서가 이 얼굴로 그런다면, 자신은 승혜처럼 야멸차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채윤은 애먼 상상에 표정 관리가 어려워져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았다.
“……채윤 씨, 화났습니까?”
“네? 아뇨.”
저 좋을 대로인 상상은 여기까지.
채윤은 스스로의 마음에 제동을 걸며 멀리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빛은 따사롭고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자장가는 졸음을 몰고 왔다.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정체는 여전했지만, 길이 넓어지고 풍경이 한결 시원해졌다. 숲과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매일같이 비좁은 사무실과 집만 왕복하는 요즘. 가끔은 혼자 드라이브라도 하고 싶어 차를 살 생각도 해 봤지만, 도무지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운전도 체질에 안 맞았다.
차를 사 봤자 한 달에 한 번이나 타게 될까? 은퇴하고 시골에 내려가게 되면 그때나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채윤은 공연히 마음이 허전해져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 잘못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준서가 사과했다.
“제가 나빴습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채윤은 그가 뭘 잘못했다는 건지 한참 생각하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유혹’ 어쩌고를 떠올렸다.
“제가 좀 들떴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불쾌하실 수 있죠. 생각해 보니 정말 별로였네요.”
“됐어요. 마음에 담아 두진 않았어요.”
이 남자에게 꿀떡을 줘서는 안 돼. 채윤은 필요 이상으로 상냥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저 미워하지 마요, 채윤 씨.”
수줍은 듯 미소 짓는 그의 뺨에 얕게 볼우물이 팼다. 아무리 경험 없고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젠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가 뭘 바꿀 수 있을까. 채윤이 그를 거절했다는 사실이 곧 준서의 집에 알려질 거다. 결혼을 서두르고 있는 모양이니 또 다른 혼처를 찾을 테고, 아마도 준서는 금방 다른 사람을 만나 채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처럼…….
“아침은 드셨어요?”
채윤이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뜬금없이 꺼냈다. 아무튼 어색할 때는 날씨 얘기 아니면 밥 얘기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아뇨. 못 먹었습니다.”
준서가 냉큼 대답했다.
“저 휴게소 우동 좋아하는데 들러도 됩니까?”
지금까지 메뉴를 고민하기라도 했나? 채윤은 자신을 데리러 오느라 끼니를 놓쳤을 그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어, 입가를 느슨하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휴게소에 이르러 준서는 환하게 되살아난 얼굴로 핸들을 돌렸다.

“사실은 저 엄청 배고팠습니다.”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린 준서가 기지개를 켰다. 길게 쭉 뻗은 그의 몸이 채윤의 눈을 부시게 했던 햇빛을 다 가렸다. 우동 면발 몇 가닥으로 그 몸뚱이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곰에게 빙어 한 마리라고 할까?
낮은 신발을 신은 채윤은 그의 옆에서 커다란 어깨와 등짝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 아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제대로 된 걸 사 먹고 출발했어야죠.”
“괜찮습니다. 이따가 집에 가서 밥 많이 먹어야 하니까요.”
식당 안도 도로만큼이나 혼잡했다. 채윤은 준서와 바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어디 가서 주문해 본 적도 없는 우동을 시켰다.
바삭바삭한 튀김과 유부를 듬뿍 올린 우동이 나오자 채윤은 뜨거운 국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칼칼하고 기름진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며 몸을 따뜻하게 데웠다.
“맛있네요.”
의외로.
“예.”
준서는 기쁜 듯이 넙죽 대답했다. 그리고 뜨거운 면을 후후 불어 가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면발이 그의 입 속으로 후루룩 후루룩 빨려 들어갔다. 천천히 한 가닥씩 면을 세며 먹고 있던 채윤이 준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입천장 다 까지겠네. 눈이 마주치자 준서는 우물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제 입가를 쓱 닦아 보기도 하고.
“아, 미안해요. 준서 씨가 하도 맛있게 드셔서요.”
그는 입 속에 든 것 때문에 뭐라고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살짝 반대쪽으로 돌렸다. 크지도 않은 입 안에다 얼마나 밀어 넣었는지 부드러워 보이는 볼살이 빵빵했다.
“천천히 드세요. 안 뺏어 먹을게요.”
“예.”
준서가 나직이 대답하고 얌전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채윤은 가족들과 수목원에 놀러 갔던 때를 떠올렸다. 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다. 아몬드를 꺼내서 옆에 놓아 주자 다람쥐는 속껍질을 열심히 까서 입 속에 욱여넣고 눈치를 보고, 다시 아몬드를 입에 넣고 눈치를 보기를 반복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인간인데. 게다가 굳이 짐승에 비유하자면 토끼나 다람쥐가 아닌 북극곰 정도. 채윤은 잠깐 방심하면 몰아치는 몹쓸 상상을 밀어 버리며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식당을 나온 준서는 걸음걸이가 한결 상쾌해졌다.
“아, 맛있었다.”
그가 바람에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시원스럽게 쓸어 넘기며 차 문을 열었다. 뜨거운 걸 먹고 추위에 노출돼 발그스레해진 볼에 자꾸 눈이 갔다. 아침에 채윤을 데리러 왔을 때만 해도 남성지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던 남자였는데. 그땐 한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는데. 환하게 웃는 얼굴은 역시 좀 무방비하다고 할까. 살살 한번 쓰다듬어봐도 될 것 같다고 착각하게 하는 표정이었다.
우동 하나 먹고도 참 행복해 보인다. 채윤은 은행 총장 손자쯤 되면 휴게소 우동이 뭔지도 모를 줄 알았다. 어쩌다 저 나이까지 이렇게 해맑게 자랐는지, 참 신기한 사람이다.
“아까는 제가 시끄럽게 먹어서 쳐다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준서가 차 안에 있던 사탕 뚜껑을 열며 말했다. 채윤이 먼저 사탕을 꺼내며 웃었다.
“별로 안 시끄러웠어요.”
“제가 뜨거운 걸 잘 못 먹어서요. 큰 소리로 불다가 어른들한테 많이 혼났거든요. 되게 더럽게 먹는다고.”
“별로 안 더러웠어요, 준서 씨.”
채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별로’를 은근하게 강조하면서.
“그렇게까지는요.”
준서는 표정이 굳었다가, 저를 보고 샐샐 웃는 채윤 때문에 배시시 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채윤은 그게 우스워서 또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웃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마음이 어찌나 오락가락 갈대 같은지. 만약 준서가 상대의 심리를 꿰고 행동할 줄 아는 남자라면 자신은 얼마나 쉬운 먹이인가. 그에게 진심으로 유혹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훌륭하게 성공한 셈이다.
그의 삐친 입술, 우물우물 밥 먹는 단정치 못한 뺨, 동그래졌다가 가늘어지는 길쭉한 눈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 따위가 너무도 쉽게 채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었다.
채윤은 그에게로 향하려는 눈길을 애써 창밖에 두었지만,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혹시, 채윤 씨는 어떤 식으로 화냅니까?”
차는 강원도로 들어섰다.
“글쎄요. 상황에 따라 다를 거 같네요.”
“그렇군요…….”
집에 다 와 가자 뭔가 근심거리라도 떠오른 듯 준서가 작게 한숨지었다.
계속 만날 사이도 아닌데 화낼 일이 있을까. 그의 얼굴을 보고 화나 낼 수 있을까. 채윤은 상견례든 모임이든 나가지 말고 오늘로 끝내기로 결심했다. 겨우 두 번 보고 이만큼 끌릴 정도라면 쓸데없이 자리를 같이하는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