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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1권
1화
프롤로그
섬에서 가장 커다란 고택의 정원에 스멀스멀 땅거미가 기어 다닌다. 고기잡이 선주의 집안으로 군림하다가 가세가 기울어 지금은 작은 양식장을 꾸려 나가고 있는 정 사장의 집이다.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중늙은이의 호통 소리에 늦가을 정원에서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오른다.
“이놈!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봐라!”
방 안에는 이십 대 중반의 남녀가 여자의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보라니까!”
성난 파도의 기세로 정 사장이 젊은 남자를 채근했다.
“내 눈 똑바로 마주하고 말해 봐!”
기세에 제압당해 있던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맞습니다. 제가 아이 아빱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딸의 표정을 차마 살피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당신, 잠깐 나가 있어.”
남편의 말에 그녀는 선선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이 아비라 했겠다. 그게 네놈이 내 딸, 화영이와 결혼해야 할 이유라 그거지?”
조용하지만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정 사장의 말투였다. 하지만 젊은 남자는 이를 악물고 기세에 맞섰다.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겁니다.”
“이 새끼가! 뻔뻔하게 사랑 타령이네. 처녀 배부르게 만드는 짓거리가 사랑이란 게냐!”
“죄송합니다. 평생 아끼면서 속죄하겠습니다.”
“이 새끼가 숙맥인 줄 알았더니 말은 청산유수네.”
애써 분을 삭이면서 정 사장은 눈길을 돌려 딸을 주시한다. 화영은 시종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모든 일을 타인의 손에 던져 주고 눈을 감아 버리는 그런 모습이다. 정 사장은 딸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남자에게 눈길을 돌리고 만다.
“영식이 너, 이리 와라.”
“네?”
“가까이 오라고.”
영식은 무릎걸음으로 정 사장에게 바투 다가갔다.
“좀 맞자.”
정 사장이 주먹을 쥐었다. 영식은 순종하겠다는 양 목을 뺀다. 마치 목을 쳐도 좋다는 투다. 화영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인다.
퍽, 퍽!
60년 남짓 바닷물에 단련된 정 사장의 주먹이 영식의 얼굴을 때렸다.
“네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찾아와? 내 진즉에 경고했었지!”
십여 년 전의 경고였지만 영식은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광대뼈가 시리고 코피가 쏟아졌다. 화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정 사장의 주먹질은 계속된다.
“오냐! 결혼해라! 애가 생겼는데 결혼해야지!”
정 사장은 급기야 울부짖었다. 장판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가 화영의 눈에 보였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정 사장을 본다.
“그만해요.”
화영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조용했지만 눈은 젖어 있었다. 그런 딸의 눈길을 정 사장은 피한다. 화영은 핸드백을 열었다. 영식에게 티슈를 건네주고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영식은 코피를 막고는 여전히 목을 늘어뜨린 자세를 고집했다. 정 사장은 다시 주먹질을 하려다가 체념한다.
“아프냐?”
정 사장이 물었다. 영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프냐고 물었다.”
“겨, 견딜 만합니다.”
“그래. 아파도 견디고, 힘들어도 견뎌라. 기왕 결혼한 거 아파도 견디고 힘들어도 견디란 말이다. 못 견디겠으면 지금 말해라. 나중에 헛소리하면 정말 죽여 버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 결혼해라. 대신에 다시는 이 섬에 오지 마라.”
“네?”
“못 알아먹겠냐! 죽기 전엔 돌아오지 말라는 말이다. 너희끼리 작당한 일이니 죽을 때까지 너희끼리 살라는 말이다!”
영식은 곤혹스러운 기색으로 화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건성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정 사장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날 잡으면 연락해라. 식장은 참석하마. 다른 건 기대 접거라. 혼수 따위도 없다.”
영식과 화영이 정원으로 나왔다. 화영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아이구, 영식아. 이걸 어쩐다니.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세수라도 하고 가지.”
“집에 가서 하겠습니다.”
“네가 이해해라. 사업이니 뭐니 다 안 풀리고 남은 건 벼슬한 집 후손 체면밖에 없으니 저리 역정을 내시는 게야.”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구! 네가 죄송한 게 뭐가 있냐.”
화영의 어머니는 영식의 볼을 양손으로 만지며 뜨겁고 깊은 눈길을 보낸다. 그 눈길을 마주한 영식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만다. 그때 안방으로부터 정 사장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 들어오고 뭐 해!”
화영은 이미 등을 보인 채 대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화영의 어머니는 한달음에 딸에게 다가가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화영은 이를 악문 채 침묵을 고집했고, 어머니는 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영식과 화영이 돌아간 뒤 정 사장은 아내와 마주 앉았다.
“참말로 영식이 애가 맞을까요?”
“영식이 지 입으로 맞다잖은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영식이가 그랬다니까 도통…….”
“어허! 지 입으로 맞다잖아! 지가 아비라잖아!”
정 사장의 울화가 터져 나오는 그 시간, 섬마을 한쪽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 축구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을 향해 또 하나의 골을 집어넣었다.
이듬해 봄날에 영식과 화영은 딸아이를 얻었다. 아이의 이름은 유정아라고 지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유년 시절을 보낸 그들은 여전히 라디오를 가까이했다. 영식은 유능한 조리사로 성장하며 조금씩 저축을 했다. 수원의 변두리에 작은 식당을 낸 뒤로는 종일 FM 방송을 들으며 일했다. 그들이 익히 목소리를 알고 있는 박원웅, 이종환, 박인희 등이 소개했던 음악을 딸에게 들려주었고, 최용희, 이금희, 신은경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을 딸과 공유했다. 어느 날, 딸과 같은 이름의 아나운서가 라디오 방송을 맡았다. 영식은 아내를 향해 정이 듬뿍 담긴 얼굴로 말했다.
“우리 정아하고 이름이 같다. 정아도 우리를 닮아 음악을 좋아하겠지?”
결혼한 뒤 말수가 줄어 있던 화영은 모처럼 방긋 웃고는 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응. 안 그래도 닮아 가는 것 같네.”
정아를 키우면서 화영은 잃었던 웃음을 온전히 되찾은 성싶었다. 하지만 정아가 유치원을 들어갈 무렵부터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방긋방긋 웃던 여자가 돌연 아이를 바라볼수록 웅숭깊은 슬픔에 빠져들곤 했다.
“우리 공주님, 갈수록 아빠를 닮아 가네. 아빨 많이 사랑하나 보다.”
“조용히 좀 해!”
핏줄의 돈독한 끈을 확인하려 드는 영식의 살가운 태도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화영은 식당의 유리창에 뺨을 붙이고 넋 없이 먼 산을 바라보는 일이 늘었고,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서히 건강을 잃어 갔다. 영식은 식당 뒤로 살림집을 붙여 이사를 한 뒤 아내를 쉬게 했다. 하루는 달력에 담긴 바다와 섬을 바라보면서 여자는 소리 죽여 울었다. 고향을 다녀오자는,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영식은 삼켰다. 고향 섬은 그들에게 여전히 금기어였다.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영식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다. 영식이 퇴원을 한 뒤부터 화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유도 말해 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영식은 전문 조리사를 채용해 시간을 쪼갠 뒤 아내 곁을 지켰다. 건강이 조금만 호전되면 그토록 아내가 원하는 세계 여행을 함께 나설 터였다.
총명하게 자란 딸이 대학 생활을 무난히 엮어 가던 어느 날, 병실의 여자는 영식을 가까이 불렀다. 병실 창으로 담겼던 푸른 잎이 무성했던 은사시나무는 어느새 잎을 거의 털어 내고 있었다.
“난 옛날부터 직감이 남달랐잖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깡마른 여자는 차분한 말씨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다.
“정아 아빠,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영식은 대답 대신에 여자의 손을 잡았다.
“또, 우리 정아를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마워.”
영식은 입을 열지 못했다. 환자 앞에서 흔들리고 싶지 않아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갔는지 멀리 은사시나무가 관성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관성의 법칙이 영식의 마음까지 파문을 몰고 온다. 중심이 올곧지 못해 작은 바람에도 쉬 흔들리는 그 속성수가 새삼 야속하다. 만약 커다란 정원이 생긴다면 은사시나무는 심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해 본다.
영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서서히 몸을 돌려 아내와 눈길을 섞었다. 아내의 눈길이 연민의 정으로 그득하다. 영식은 그런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두려움을 주는 눈빛이어서 사뭇 싫었다.
“정아를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아내가 되풀이 말했다. 영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이지만 대답을 했다.
“당연하지. 내 이쁜 새낀데.”
아내의 창백한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다 알고 있어.”
“무슨 소리야?”
영식은 움찔하며 그녀의 낮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바짝 갖다 댔다.
“난 정아 얼굴에 그 사람 얼굴이 보여도 안 믿으려고 애썼어.”
바로 이런 말이었다. 영식이 두려워했던 말은.
“제발…… 그만 말하고 쉬어.”
영식의 애원에도 아내는 야속하게도 힘겹게 말을 잇는다.
“당신 혈액형은 B형이잖아. 나한텐 A형이라고 했었지? 풋, 감쪽같이 속고 싶었는데.”
영식은 말없이 O형 아내의 축축해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의사한테도 이미 들은 말도 있었다. 영식은 마침내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 알았는데?”
“당신 교통사고 당할 적에 수혈했잖아. 덕분에 간호사 앞에서 신랑 혈액형도 모르는 바보가 됐지 뭐야.”
“그래도 정아는 내 자식이 맞아. 우리 부부 딸이야.”
영식의 나지막한 호소에 화영은 애달픈 눈길을 보낸다. 역시 연민의 눈길은 달갑지 않다.
“정아 아빠, 당신은 참 좋은 아빠야. 근데 동생이 생기는 건 왜 한사코 반대했어?”
“당신 몸이 안 좋았잖아.”
“겁이 났던 거지? 차별할까 봐.”
“글쎄…….”
“정아 아빠 인생도 참 기구하다.”
“무슨 소리. 어릴 적 당신이 있어서 힘든 시절을 건널 수 있었잖아. 당신은 내 인생의 은인이야.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만 결혼하고 싶다.”
“정아 아빤 나한테 할 말 없어?”
말머리를 바꾸는 화영이 영식은 밉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다시 태어나면 나도, 하고 말해 주면 좋으련만. 영식은 이내 도리질을 했다. 계산에 어둡고 가식이 전혀 없는 순박함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 영식을 따돌릴 때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곁에 머물러 주었던 여자다. 그리고 투명한 영혼 탓에 오해와 상처도 더 많이 감내해야 했던 여자다. 그녀의 투명함을 닮고 싶다. 오래된 비밀을 꺼내고 만다.
“편지 말이다. 그 사람이 편지 보냈었어.”
“편지라면…… 설마 그 사람이?”
“일본에서.”
“그, 그랬어?”
큰 고백을 듣는 여자의 반응은 너무도 작았다.
“미안하다. 전하지 못했어.”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봉인이 풀린 비밀 앞에서 화영은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먼 기억을 더듬는 표정이다.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다. 그 사람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이 내리고 간 뿌리는 깊었다. 한참 뒤에 눈을 뜬 화영이 영식을 본다.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득히 담긴 눈길이다.
“정아 아빠, 미안해. 난, 난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어. 노력해도 안 됐어. 그게 정말 미안해.”
여자는 흐느꼈다. 영식은 맥이 탁 풀렸다. 행복했다는 말을 그녀는 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니. 끝까지 멍청한 투명함 같으니.
영식은 그녀로부터 눈길을 돌렸다. 병실 창을 통해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사람, 한번 보고 싶지 않아?”
목소리가 떨렸다. 화영의 표정이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쓸데없는 일이야. 다만.”
화영은 곁눈질로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지 정아가 서 있었다. 화영은 턱짓으로 딸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 애한텐 기회를 줬으면 해.”
한 달 후에 화영은 세상을 떠났다.
‘이젠 고향에 갈 수 있겠지?’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시장닭집
탕탕.
묵직한 도마 소리가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진다. 얼기설기 빌딩이 들어선 시장 안으로 유독 납작하게 엎드린 낡은 상가로부터 새어 나오는 소리다. ‘시장닭집’이라는 조악한 간판이 50년 세월의 이가 빠진 기와를 숨기고 있었고, 조악하게 지은 보조 주방이 뒤뜰 터를 채우고 있었다.
이웃한 빌딩 안에서 중년의 두 남자가 털 잠바의 옷깃을 세우며 함박눈이 흩날리는 거리로 나왔다.
“요즘도 이딴 허접한 닭집을 찾는 손님이 있을까?”
“모르는 소리. 평일에도 줄 서야 먹어.”
“그럴 리가.”
“도마 소리 안 들려? 종일 안 끊겨. 날마다 수백 마리씩 토막 내나 봐.”
“한데 왜 여기서 토막을 내지?”
“가만. 듣고 보니 이상하네. 닭을 직접 잡는 집도 아닌데 왜 여기서 토막을 내지? 노계는 뭔가 특별한가?”
뒤따르며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던 정아는 부탄가스를 안은 채 시장닭집 안으로 들어갔다. 땟물을 덕지덕지 달고 있는 작업복으로 내려앉은 눈송이를 털어 낸 뒤 부탄가스 영수증을 구 여사에게 건넸다.
“야, 이년아! 너 이거 어서 샀어?”
구 여사가 팔순의 나이답지 않게 암팡지게 정아를 몰아세웠다.
“옆에 편의점에서요.”
“미친년! 아무리 살림을 안 해 본 학생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째 같은 물건을 사도 젤 비싸게 팔아먹는 도적놈 가게에서 사냐!”
가까운 할인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백 원을 아끼려고 먼 곳을 다녀왔으면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고 날벼락을 맞았을 것이다. 다행히 한 달 이상을 겪으면서 이런 상황을 속히 벗어나는 요령을 체득하고 있다. 변명하지 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
“죄송해요, 사장님.”
“어찌 된 게 요새 대학생들은 머리가 죄 닭대가리야. 가서 똥집이나 빨리 끝내라.”
정아는 조붓한 뒷마당으로 나왔다. 외양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허름한 목제 건물이 잠깐 내렸던 눈을 고스란히 얹고 있다. 건물에 온기가 빈약한 덕분이다. 그곳은 보조 주방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냉수처럼 싱거운 온기가 닭 비린내와 함께 떠돈다. 실내인데도 잔인한 외풍 탓에 온도는 길거리 수준이다. 직원들은 이곳을 ‘유배지’라고 부른다. 그 유배지에서 마흔 살의 최 씨는 여전히 과묵한 입과 흔들림 없는 몸짓으로 질긴 닭을 토막 내고 있다. 주방에 하나밖에 없는 온풍기는 꺼져 있었다.
“왜 안 켜고 하세요?”
정아가 온풍기 전원을 켜고 최 씨에게 방향을 맞추었다. 최 씨가 힐금 보더니 온풍기 방향을 정아 쪽으로 돌려 버린다.
“닭 상한다.”
“엄동설한에 별걱정 다하십니다.”
최 씨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칼질만 한다. 정아는 토치램프에 새 부탄가스를 끼웠다. 새벽에 입고된 생닭에는 여느 때보다 잔털이 많았다. 거친 털은 과도를 이용해 뽑지만 하얀 잔털은 토치램프로 태운다. 최 씨를 보조하는 젊은 남자가 이 일을 했는데 며칠 전에 그만두었다. 사흘을 못 견디고 나간 직원을 한 달 사이에 세 명을 보았던 탓에 놀라지 않았다. 덕분에 최 씨의 일이 늘었다. 정아는 아직 토막을 안 낸 생닭 박스를 끌어당겼다.
“뭐 하니?”
잔털을 태우는 정아에게 최 씨가 칼질을 멈추고 묻는다.
“털 태워요. 저도 잘해요. 껍질 익기 전에 냉큼, 이런 식으로 하는 거 맞잖아요?”
“네 일이나 해.”
“아저씨.”
“똥집이 많잖니.”
“아!”
정아는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구 여사의 아까 말이 생각나서였다. 어제도 닭 세척을 돕다가 똥집(근위) 손질이 늦어져 구 여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내장이나 많이 오지. 똥집만 풍년이네요.”
내장과 똥집을 손질해 삶는 일이 정아의 오전 일과였다. 가위질만 하면 되는 내장 손질과는 달리 똥집은 겉의 기름과 안의 오물을 꼬박꼬박 솎아 내야 했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더욱이 겨울에는 손가락이 시려 일이 더디다.
겨우 오전에 일을 마치고 본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닭 손질 직원으로 들어왔지만 하는 일은 실상 두루치기였다. 여전히 아버지의 의도를 모르겠다. 어째서 여기가 조리사의 관문일까?
점심 준비를 하고자 초절임 깍두기를 용기에 담고 있는데, 홀에서 구 여사의 칼칼한 목청이 터진다.
“지랄한다. 영감탱이가 노망을 했구나!”
시선을 던지니 앉은뱅이 탁자 옆으로 구 여사의 굽은 등이 보인다.
“미련한 할망구야, 늙어서 성깔 안 고치면 제삿밥도 곱게 못 받아먹는 법이여.”
손님과 싸우는가 했는데 아니다. 상대는 머리가 허옇게 센 할아버지였다.
“보아하니 요새도 종업원이 날마다 눈물 짜며 보따리 싸겠구나.”
“개시 손님부터 싸가지가 없네. 오지랖 집어치우고 주문이나 하셔, 영감탱아.”
“허허, 그래도 10년 만에 찾아온 친군데 좀 곱게 대하지 않고.”
“지랄하네. 10년 동안 까먹고 있다가 실업자 되니 낯짝 내민 주제에.”
“실업자? 하하, 맞는 말이야. 실업자가 맞아. 아무도 안 해 주는 말을 할망구가 해 주니 실감 나군, 그래.”
“냉큼 주문이나 해! 야, 손님 오셨는데 뭐 하고 있냐!”
구 여사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주방 안으로는 여러 아주머니가 있었지만 구 여사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정아였기에 재빨리 찬그릇을 챙겼다. 노신사 곁에는 카키색 슈트 차림의 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백숙이라도 우리 닭은 억센데 영감탱이 이빨로 감당하겠어?”
“암. 좋은 세상에 살잖아. 수전노 할망구도 치과에다 돈 좀 써 봐.”
“노망하면 오지랖도 늘어나나? 암튼 이빨 빠져서 배상하라고 생떼나 부리지 마셔.”
구 여사가 주방으로 돌아갔고, 정아는 밑반찬을 상에 깔았다. 두 사람의 행동거지가 애정 넉넉한 부부 싸움 같아서 정아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표정을 들킨 것일까? 할아버지가 찬찬히 이쪽을 살피는 기색이다. 얼결에 눈길이 마주쳤다. 순간 정아는 웃음을 지웠다. 구 여사 앞에서 천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권위를 품고 있는 노장의 풍모뿐이다. 더욱이 눈 오는 날의 노인에게 안 어울릴 것 같던 갈색 가죽 잠바도 열정적인 노익장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성싶다. 아버지도 이렇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스친다.
구 여사가 재빨리 내장을 볶아 한 접시를 담아 준다. 서비스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시장닭집의 규칙을 깨는 일이다.
정아가 내장 볶음을 내가자, 할아버지가 반색한다.
“할망구가 아직 치매는 아닌가 보네. 내 입맛을 용케 기억하고 있어.”
단박에 젓가락을 가져간다. 동행한 중년 남자는 공손히 지켜보는 몸짓으로 일관한다. 빤히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길을 다시금 느꼈다.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가 묻는다.
“여기 일하는 아인가?”
장난기가 사라진 조용하고도 위엄이 담긴 목소리다.
1화
프롤로그
섬에서 가장 커다란 고택의 정원에 스멀스멀 땅거미가 기어 다닌다. 고기잡이 선주의 집안으로 군림하다가 가세가 기울어 지금은 작은 양식장을 꾸려 나가고 있는 정 사장의 집이다.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중늙은이의 호통 소리에 늦가을 정원에서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오른다.
“이놈!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봐라!”
방 안에는 이십 대 중반의 남녀가 여자의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보라니까!”
성난 파도의 기세로 정 사장이 젊은 남자를 채근했다.
“내 눈 똑바로 마주하고 말해 봐!”
기세에 제압당해 있던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맞습니다. 제가 아이 아빱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딸의 표정을 차마 살피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당신, 잠깐 나가 있어.”
남편의 말에 그녀는 선선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이 아비라 했겠다. 그게 네놈이 내 딸, 화영이와 결혼해야 할 이유라 그거지?”
조용하지만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정 사장의 말투였다. 하지만 젊은 남자는 이를 악물고 기세에 맞섰다.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겁니다.”
“이 새끼가! 뻔뻔하게 사랑 타령이네. 처녀 배부르게 만드는 짓거리가 사랑이란 게냐!”
“죄송합니다. 평생 아끼면서 속죄하겠습니다.”
“이 새끼가 숙맥인 줄 알았더니 말은 청산유수네.”
애써 분을 삭이면서 정 사장은 눈길을 돌려 딸을 주시한다. 화영은 시종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모든 일을 타인의 손에 던져 주고 눈을 감아 버리는 그런 모습이다. 정 사장은 딸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남자에게 눈길을 돌리고 만다.
“영식이 너, 이리 와라.”
“네?”
“가까이 오라고.”
영식은 무릎걸음으로 정 사장에게 바투 다가갔다.
“좀 맞자.”
정 사장이 주먹을 쥐었다. 영식은 순종하겠다는 양 목을 뺀다. 마치 목을 쳐도 좋다는 투다. 화영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인다.
퍽, 퍽!
60년 남짓 바닷물에 단련된 정 사장의 주먹이 영식의 얼굴을 때렸다.
“네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찾아와? 내 진즉에 경고했었지!”
십여 년 전의 경고였지만 영식은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광대뼈가 시리고 코피가 쏟아졌다. 화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정 사장의 주먹질은 계속된다.
“오냐! 결혼해라! 애가 생겼는데 결혼해야지!”
정 사장은 급기야 울부짖었다. 장판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가 화영의 눈에 보였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정 사장을 본다.
“그만해요.”
화영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조용했지만 눈은 젖어 있었다. 그런 딸의 눈길을 정 사장은 피한다. 화영은 핸드백을 열었다. 영식에게 티슈를 건네주고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영식은 코피를 막고는 여전히 목을 늘어뜨린 자세를 고집했다. 정 사장은 다시 주먹질을 하려다가 체념한다.
“아프냐?”
정 사장이 물었다. 영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프냐고 물었다.”
“겨, 견딜 만합니다.”
“그래. 아파도 견디고, 힘들어도 견뎌라. 기왕 결혼한 거 아파도 견디고 힘들어도 견디란 말이다. 못 견디겠으면 지금 말해라. 나중에 헛소리하면 정말 죽여 버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빠른 시일 내 결혼해라. 대신에 다시는 이 섬에 오지 마라.”
“네?”
“못 알아먹겠냐! 죽기 전엔 돌아오지 말라는 말이다. 너희끼리 작당한 일이니 죽을 때까지 너희끼리 살라는 말이다!”
영식은 곤혹스러운 기색으로 화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건성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정 사장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날 잡으면 연락해라. 식장은 참석하마. 다른 건 기대 접거라. 혼수 따위도 없다.”
영식과 화영이 정원으로 나왔다. 화영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아이구, 영식아. 이걸 어쩐다니.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세수라도 하고 가지.”
“집에 가서 하겠습니다.”
“네가 이해해라. 사업이니 뭐니 다 안 풀리고 남은 건 벼슬한 집 후손 체면밖에 없으니 저리 역정을 내시는 게야.”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구! 네가 죄송한 게 뭐가 있냐.”
화영의 어머니는 영식의 볼을 양손으로 만지며 뜨겁고 깊은 눈길을 보낸다. 그 눈길을 마주한 영식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만다. 그때 안방으로부터 정 사장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 들어오고 뭐 해!”
화영은 이미 등을 보인 채 대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화영의 어머니는 한달음에 딸에게 다가가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화영은 이를 악문 채 침묵을 고집했고, 어머니는 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영식과 화영이 돌아간 뒤 정 사장은 아내와 마주 앉았다.
“참말로 영식이 애가 맞을까요?”
“영식이 지 입으로 맞다잖은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영식이가 그랬다니까 도통…….”
“어허! 지 입으로 맞다잖아! 지가 아비라잖아!”
정 사장의 울화가 터져 나오는 그 시간, 섬마을 한쪽에서는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 축구가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을 향해 또 하나의 골을 집어넣었다.
이듬해 봄날에 영식과 화영은 딸아이를 얻었다. 아이의 이름은 유정아라고 지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유년 시절을 보낸 그들은 여전히 라디오를 가까이했다. 영식은 유능한 조리사로 성장하며 조금씩 저축을 했다. 수원의 변두리에 작은 식당을 낸 뒤로는 종일 FM 방송을 들으며 일했다. 그들이 익히 목소리를 알고 있는 박원웅, 이종환, 박인희 등이 소개했던 음악을 딸에게 들려주었고, 최용희, 이금희, 신은경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을 딸과 공유했다. 어느 날, 딸과 같은 이름의 아나운서가 라디오 방송을 맡았다. 영식은 아내를 향해 정이 듬뿍 담긴 얼굴로 말했다.
“우리 정아하고 이름이 같다. 정아도 우리를 닮아 음악을 좋아하겠지?”
결혼한 뒤 말수가 줄어 있던 화영은 모처럼 방긋 웃고는 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응. 안 그래도 닮아 가는 것 같네.”
정아를 키우면서 화영은 잃었던 웃음을 온전히 되찾은 성싶었다. 하지만 정아가 유치원을 들어갈 무렵부터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방긋방긋 웃던 여자가 돌연 아이를 바라볼수록 웅숭깊은 슬픔에 빠져들곤 했다.
“우리 공주님, 갈수록 아빠를 닮아 가네. 아빨 많이 사랑하나 보다.”
“조용히 좀 해!”
핏줄의 돈독한 끈을 확인하려 드는 영식의 살가운 태도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화영은 식당의 유리창에 뺨을 붙이고 넋 없이 먼 산을 바라보는 일이 늘었고,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서히 건강을 잃어 갔다. 영식은 식당 뒤로 살림집을 붙여 이사를 한 뒤 아내를 쉬게 했다. 하루는 달력에 담긴 바다와 섬을 바라보면서 여자는 소리 죽여 울었다. 고향을 다녀오자는,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영식은 삼켰다. 고향 섬은 그들에게 여전히 금기어였다.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영식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다. 영식이 퇴원을 한 뒤부터 화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유도 말해 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영식은 전문 조리사를 채용해 시간을 쪼갠 뒤 아내 곁을 지켰다. 건강이 조금만 호전되면 그토록 아내가 원하는 세계 여행을 함께 나설 터였다.
총명하게 자란 딸이 대학 생활을 무난히 엮어 가던 어느 날, 병실의 여자는 영식을 가까이 불렀다. 병실 창으로 담겼던 푸른 잎이 무성했던 은사시나무는 어느새 잎을 거의 털어 내고 있었다.
“난 옛날부터 직감이 남달랐잖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깡마른 여자는 차분한 말씨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다.
“정아 아빠,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영식은 대답 대신에 여자의 손을 잡았다.
“또, 우리 정아를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마워.”
영식은 입을 열지 못했다. 환자 앞에서 흔들리고 싶지 않아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갔는지 멀리 은사시나무가 관성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관성의 법칙이 영식의 마음까지 파문을 몰고 온다. 중심이 올곧지 못해 작은 바람에도 쉬 흔들리는 그 속성수가 새삼 야속하다. 만약 커다란 정원이 생긴다면 은사시나무는 심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해 본다.
영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서서히 몸을 돌려 아내와 눈길을 섞었다. 아내의 눈길이 연민의 정으로 그득하다. 영식은 그런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두려움을 주는 눈빛이어서 사뭇 싫었다.
“정아를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아내가 되풀이 말했다. 영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이지만 대답을 했다.
“당연하지. 내 이쁜 새낀데.”
아내의 창백한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다 알고 있어.”
“무슨 소리야?”
영식은 움찔하며 그녀의 낮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바짝 갖다 댔다.
“난 정아 얼굴에 그 사람 얼굴이 보여도 안 믿으려고 애썼어.”
바로 이런 말이었다. 영식이 두려워했던 말은.
“제발…… 그만 말하고 쉬어.”
영식의 애원에도 아내는 야속하게도 힘겹게 말을 잇는다.
“당신 혈액형은 B형이잖아. 나한텐 A형이라고 했었지? 풋, 감쪽같이 속고 싶었는데.”
영식은 말없이 O형 아내의 축축해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의사한테도 이미 들은 말도 있었다. 영식은 마침내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 알았는데?”
“당신 교통사고 당할 적에 수혈했잖아. 덕분에 간호사 앞에서 신랑 혈액형도 모르는 바보가 됐지 뭐야.”
“그래도 정아는 내 자식이 맞아. 우리 부부 딸이야.”
영식의 나지막한 호소에 화영은 애달픈 눈길을 보낸다. 역시 연민의 눈길은 달갑지 않다.
“정아 아빠, 당신은 참 좋은 아빠야. 근데 동생이 생기는 건 왜 한사코 반대했어?”
“당신 몸이 안 좋았잖아.”
“겁이 났던 거지? 차별할까 봐.”
“글쎄…….”
“정아 아빠 인생도 참 기구하다.”
“무슨 소리. 어릴 적 당신이 있어서 힘든 시절을 건널 수 있었잖아. 당신은 내 인생의 은인이야.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만 결혼하고 싶다.”
“정아 아빤 나한테 할 말 없어?”
말머리를 바꾸는 화영이 영식은 밉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다시 태어나면 나도, 하고 말해 주면 좋으련만. 영식은 이내 도리질을 했다. 계산에 어둡고 가식이 전혀 없는 순박함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 영식을 따돌릴 때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곁에 머물러 주었던 여자다. 그리고 투명한 영혼 탓에 오해와 상처도 더 많이 감내해야 했던 여자다. 그녀의 투명함을 닮고 싶다. 오래된 비밀을 꺼내고 만다.
“편지 말이다. 그 사람이 편지 보냈었어.”
“편지라면…… 설마 그 사람이?”
“일본에서.”
“그, 그랬어?”
큰 고백을 듣는 여자의 반응은 너무도 작았다.
“미안하다. 전하지 못했어.”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봉인이 풀린 비밀 앞에서 화영은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는다. 먼 기억을 더듬는 표정이다.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다. 그 사람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이 내리고 간 뿌리는 깊었다. 한참 뒤에 눈을 뜬 화영이 영식을 본다.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득히 담긴 눈길이다.
“정아 아빠, 미안해. 난, 난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어. 노력해도 안 됐어. 그게 정말 미안해.”
여자는 흐느꼈다. 영식은 맥이 탁 풀렸다. 행복했다는 말을 그녀는 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니. 끝까지 멍청한 투명함 같으니.
영식은 그녀로부터 눈길을 돌렸다. 병실 창을 통해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사람, 한번 보고 싶지 않아?”
목소리가 떨렸다. 화영의 표정이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쓸데없는 일이야. 다만.”
화영은 곁눈질로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언제 왔는지 정아가 서 있었다. 화영은 턱짓으로 딸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 애한텐 기회를 줬으면 해.”
한 달 후에 화영은 세상을 떠났다.
‘이젠 고향에 갈 수 있겠지?’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시장닭집
탕탕.
묵직한 도마 소리가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진다. 얼기설기 빌딩이 들어선 시장 안으로 유독 납작하게 엎드린 낡은 상가로부터 새어 나오는 소리다. ‘시장닭집’이라는 조악한 간판이 50년 세월의 이가 빠진 기와를 숨기고 있었고, 조악하게 지은 보조 주방이 뒤뜰 터를 채우고 있었다.
이웃한 빌딩 안에서 중년의 두 남자가 털 잠바의 옷깃을 세우며 함박눈이 흩날리는 거리로 나왔다.
“요즘도 이딴 허접한 닭집을 찾는 손님이 있을까?”
“모르는 소리. 평일에도 줄 서야 먹어.”
“그럴 리가.”
“도마 소리 안 들려? 종일 안 끊겨. 날마다 수백 마리씩 토막 내나 봐.”
“한데 왜 여기서 토막을 내지?”
“가만. 듣고 보니 이상하네. 닭을 직접 잡는 집도 아닌데 왜 여기서 토막을 내지? 노계는 뭔가 특별한가?”
뒤따르며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던 정아는 부탄가스를 안은 채 시장닭집 안으로 들어갔다. 땟물을 덕지덕지 달고 있는 작업복으로 내려앉은 눈송이를 털어 낸 뒤 부탄가스 영수증을 구 여사에게 건넸다.
“야, 이년아! 너 이거 어서 샀어?”
구 여사가 팔순의 나이답지 않게 암팡지게 정아를 몰아세웠다.
“옆에 편의점에서요.”
“미친년! 아무리 살림을 안 해 본 학생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째 같은 물건을 사도 젤 비싸게 팔아먹는 도적놈 가게에서 사냐!”
가까운 할인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백 원을 아끼려고 먼 곳을 다녀왔으면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고 날벼락을 맞았을 것이다. 다행히 한 달 이상을 겪으면서 이런 상황을 속히 벗어나는 요령을 체득하고 있다. 변명하지 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
“죄송해요, 사장님.”
“어찌 된 게 요새 대학생들은 머리가 죄 닭대가리야. 가서 똥집이나 빨리 끝내라.”
정아는 조붓한 뒷마당으로 나왔다. 외양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허름한 목제 건물이 잠깐 내렸던 눈을 고스란히 얹고 있다. 건물에 온기가 빈약한 덕분이다. 그곳은 보조 주방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냉수처럼 싱거운 온기가 닭 비린내와 함께 떠돈다. 실내인데도 잔인한 외풍 탓에 온도는 길거리 수준이다. 직원들은 이곳을 ‘유배지’라고 부른다. 그 유배지에서 마흔 살의 최 씨는 여전히 과묵한 입과 흔들림 없는 몸짓으로 질긴 닭을 토막 내고 있다. 주방에 하나밖에 없는 온풍기는 꺼져 있었다.
“왜 안 켜고 하세요?”
정아가 온풍기 전원을 켜고 최 씨에게 방향을 맞추었다. 최 씨가 힐금 보더니 온풍기 방향을 정아 쪽으로 돌려 버린다.
“닭 상한다.”
“엄동설한에 별걱정 다하십니다.”
최 씨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칼질만 한다. 정아는 토치램프에 새 부탄가스를 끼웠다. 새벽에 입고된 생닭에는 여느 때보다 잔털이 많았다. 거친 털은 과도를 이용해 뽑지만 하얀 잔털은 토치램프로 태운다. 최 씨를 보조하는 젊은 남자가 이 일을 했는데 며칠 전에 그만두었다. 사흘을 못 견디고 나간 직원을 한 달 사이에 세 명을 보았던 탓에 놀라지 않았다. 덕분에 최 씨의 일이 늘었다. 정아는 아직 토막을 안 낸 생닭 박스를 끌어당겼다.
“뭐 하니?”
잔털을 태우는 정아에게 최 씨가 칼질을 멈추고 묻는다.
“털 태워요. 저도 잘해요. 껍질 익기 전에 냉큼, 이런 식으로 하는 거 맞잖아요?”
“네 일이나 해.”
“아저씨.”
“똥집이 많잖니.”
“아!”
정아는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구 여사의 아까 말이 생각나서였다. 어제도 닭 세척을 돕다가 똥집(근위) 손질이 늦어져 구 여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내장이나 많이 오지. 똥집만 풍년이네요.”
내장과 똥집을 손질해 삶는 일이 정아의 오전 일과였다. 가위질만 하면 되는 내장 손질과는 달리 똥집은 겉의 기름과 안의 오물을 꼬박꼬박 솎아 내야 했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더욱이 겨울에는 손가락이 시려 일이 더디다.
겨우 오전에 일을 마치고 본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닭 손질 직원으로 들어왔지만 하는 일은 실상 두루치기였다. 여전히 아버지의 의도를 모르겠다. 어째서 여기가 조리사의 관문일까?
점심 준비를 하고자 초절임 깍두기를 용기에 담고 있는데, 홀에서 구 여사의 칼칼한 목청이 터진다.
“지랄한다. 영감탱이가 노망을 했구나!”
시선을 던지니 앉은뱅이 탁자 옆으로 구 여사의 굽은 등이 보인다.
“미련한 할망구야, 늙어서 성깔 안 고치면 제삿밥도 곱게 못 받아먹는 법이여.”
손님과 싸우는가 했는데 아니다. 상대는 머리가 허옇게 센 할아버지였다.
“보아하니 요새도 종업원이 날마다 눈물 짜며 보따리 싸겠구나.”
“개시 손님부터 싸가지가 없네. 오지랖 집어치우고 주문이나 하셔, 영감탱아.”
“허허, 그래도 10년 만에 찾아온 친군데 좀 곱게 대하지 않고.”
“지랄하네. 10년 동안 까먹고 있다가 실업자 되니 낯짝 내민 주제에.”
“실업자? 하하, 맞는 말이야. 실업자가 맞아. 아무도 안 해 주는 말을 할망구가 해 주니 실감 나군, 그래.”
“냉큼 주문이나 해! 야, 손님 오셨는데 뭐 하고 있냐!”
구 여사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주방 안으로는 여러 아주머니가 있었지만 구 여사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정아였기에 재빨리 찬그릇을 챙겼다. 노신사 곁에는 카키색 슈트 차림의 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백숙이라도 우리 닭은 억센데 영감탱이 이빨로 감당하겠어?”
“암. 좋은 세상에 살잖아. 수전노 할망구도 치과에다 돈 좀 써 봐.”
“노망하면 오지랖도 늘어나나? 암튼 이빨 빠져서 배상하라고 생떼나 부리지 마셔.”
구 여사가 주방으로 돌아갔고, 정아는 밑반찬을 상에 깔았다. 두 사람의 행동거지가 애정 넉넉한 부부 싸움 같아서 정아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표정을 들킨 것일까? 할아버지가 찬찬히 이쪽을 살피는 기색이다. 얼결에 눈길이 마주쳤다. 순간 정아는 웃음을 지웠다. 구 여사 앞에서 천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권위를 품고 있는 노장의 풍모뿐이다. 더욱이 눈 오는 날의 노인에게 안 어울릴 것 같던 갈색 가죽 잠바도 열정적인 노익장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성싶다. 아버지도 이렇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스친다.
구 여사가 재빨리 내장을 볶아 한 접시를 담아 준다. 서비스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시장닭집의 규칙을 깨는 일이다.
정아가 내장 볶음을 내가자, 할아버지가 반색한다.
“할망구가 아직 치매는 아닌가 보네. 내 입맛을 용케 기억하고 있어.”
단박에 젓가락을 가져간다. 동행한 중년 남자는 공손히 지켜보는 몸짓으로 일관한다. 빤히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길을 다시금 느꼈다.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가 묻는다.
“여기 일하는 아인가?”
장난기가 사라진 조용하고도 위엄이 담긴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