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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예. 직원이에요.”
“어째 얼굴이 낯설지가 않아. 혹시 우리 만난 적 있나?”
“저는 오늘 처음 뵙습니다만.”
“흠. 여기 일한 지는 얼마나 됐나?”
“한 달 조금 지났어요.”
“오, 한 달이나! 오래도 버텼구나. 계속 있을 테야?”
“네?”
“여기서 쭉 일할 거냐고?”
“아, 네. 한 달만 더 있을 겁니다. 개학할 때까지요.”
“학생이었구나. 몇 학년?”
“올해 졸업반이 됩니다.”
“흠, 그렇군.”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일부러 이야기를 이어 가는 기분이다. ‘혹시 나를 아나?’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진짜 어디서 만났던 분일까? 정아 역시 할아버지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할아버지를 언젠가 한 번쯤 뵌 것 같아요.”
저절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어디서?”
할아버지가 눈을 치뜨며 반색했다.
“딱히…… 죄송해요. 그냥 막연히요.”
“막연하다고?”
할아버지가 이맛살을 모은다.
“젊은 사람이 애매한 말을 함부로 쓰네.”
딱히 타박할 일도 아닌 성싶은데 할아버지는 골이 나 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정아를 살피더니 곧 찌푸린 얼굴을 편다.
“미안하다. 내가 나쁜 버릇이 있어가지고. 여긴 회사도 아닌데.”
그때 구 여사의 큰소리가 날아든다.
“정아야, 뭐 하고 자빠졌냐! 손님들 몰려올 시간이 금방인데 빨리 움직여야지!”
“예, 사장님!”
“학생 이름이 정아인가?”
“예. 할아버지.”
“할망구 성깔머리 받아 내느라 고생이구나. 어서 가 봐라.”
할아버지의 손짓에 정아는 배시시 웃어 보이고는 묵례를 건넸다.
10년 만에 찾아온 친구라는 데도 구 여사는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그쪽 식탁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나가다가 한마디 툭 던질 뿐이다.
“영감탱아, 손님들 몰려들기 전에 그릇 빨리 비우고 가셔!”
허양모 명예회장은 시계를 힐긋 보고는 식사를 서둘렀다. 50년 지기 구 여사의 말마따나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게 좋을 성싶다.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 덕에 나들이도 번거롭다. 은퇴한 마당에 더는 매스컴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
“성북동은 안 들르실 겁니까?”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홀아비 집에 가서 뭘 하겠나? 속만 상하지. 김 비서도 어서 먹게나.”
“네, 큰회장님. 맛있게 먹는 중입니다.”
회장 직함을 가진 아들이 여럿이다 보니 이렇듯 허영모 명예회장은 큰회장으로 불린다.
“남기지 말게. 이 집 할망구가 음식 남기는 작자들을 죽어라 미워한다네.”
“알겠습니다.”
큰회장의 당부에 김 비서는 냉큼 손아귀에 닭 다리를 쥐고 물어뜯었다. 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정아가 갸웃하더니 다가와서 천진하게 속삭인다.
“천천히 드셔도 괜찮아요. 월요일엔 손님이 많이 밀리진 않아요.”
구 여사의 독촉 때문에 급히 먹는 줄로 아나 보다. 확신이 없으면서 나서서 애매한 답변을 내놓는 직원들을 호되게 질타하면서 회사 경영을 해 왔다. 그런 습관이 은퇴한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정아에게 잠깐 화를 냈다. 그런데도 녀석은 낫낫하게 받아 냈다. 더욱이 천천히 먹으라며 제법 기특한 심성까지 드러낸다. 큰회장은 장난기가 발동해 볼멘소리로 응수했다.
“너네 무서운 사장이 재촉하니 어쩌겠냐?”
“말씀은 저리하셔도 할아버지가 반가우신가 봐요. 실은 내장 서비스는 할아버지가 처음이거든요.”
“그래? 유용한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요, 지금 사장님이 내장 포장하고 계세요. 할아버지한테 드릴 거래요.”
“그보다 정아야, 저기.”
할아버지가 가리킨 손가락을 바라본 정아가 움찔했다. 과연 칼칼한 구 여사의 목청이 터진다.
“이년아! 바쁜데 거긴 왜 얼쩡거려!”
식사를 마친 큰회장은 승용차 몸을 실었다. 한때는 청수그룹의 총수였으나 지금은 명예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다. 안성의 수목원을 향해 운전대를 잡은 김 비서가 포장된 음식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망설였다.
“이리 주게.”
큰회장은 조악한 검은 봉지에 담긴 음식을 건네받았다. 구 여사가 싸 준 내장볶음의 온기가 무릎 위로 전해진다. 그 온기에 아득한 50년 전의 기억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큰회장의 행동거지가 신기한 듯 룸미러로 김 비서가 검은 봉지를 힐끔거린다.
“자넨 닭 내장볶음은 처음이라지?”
“네, 큰회장님. 졸깃하고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래, 맛있지.”
“진작 말씀하셨으면 제가 사다 드렸을 건데요.”
“여기 내장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 진짜야.”
“아, 네.”
50년 동안 같은 가게이고, 같은 주인이고, 같은 맛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적의 힘든 시절에 내장 한 접시가 보약이었다. 먼 기억에 오롯이 잠겨 있던 허 회장은 문득 스치는 의혹 한 가닥을 붙들었다.
“김 비서, 아까 정아라는 아이 말이다. 언제 본 적이 있나?”
“저는 처음입니다.”
“이상해. 처음 본 얼굴인데도 아주 오래전부터 봐 온 아이 같아.”
나이가 석양에 걸리면 소소한 일에도 감흥을 느끼는 것일까?
‘말씀은 저리하셔도 할아버지가 반가우신가 봐요. 내장 서비스도 할아버지가 처음이거든요.’
맑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의 속달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운전에 집중하던 장 여사가 조수석을 힐긋 보며 입을 연다.
“그런데 승미야, 인디밴드는 어떤 부류를 말하는 거니?”
“인디펜던트. 말 그대로 독립적인 밴드니까, 스스로 모든 활동비며 악기값을 해결한다는 그런 뜻이겠죠?”
“제 돈 들여가며 고생한다 그거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장가 간 사람은 뭘로 가족들 먹여 살린대?”
“그러게요. 오빠는 자기 나이를 모르는 것 같아요.”
“스물일곱이면 가정을 가질 생각을 해야지. 군대 갔다 오면 철들 줄 알았다만, 에휴.”
“어머님, 다 왔어요.”
승미가 창밖을 살피더니 케케묵은 3층 건물을 가리킨다.
“저기예요. 저 건물 지하요.”
밤색 페인트가 누더기처럼 일어난 건물의 지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또 한숨이 나온다. 건물과 이질적인 신형 세단을 앞에 세우고 내렸다.
“어머님, 저는 먼저 갈게요. 절대로 제가 알려 줬다고 하심 안 돼요.”
“알았다. 고맙다.”
발랑발랑 손을 휘저으며 동동걸음으로 사라지는 승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장 여사는 또 한숨을 토한다.
‘저리 싹싹한 아이를 왜 마다할까?’
장 여사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건물 지하로 들어섰다. 밴드의 요란한 리듬이 혼탁한 공기와 함께 계단을 타고 오른다. 두툼한 이중문을 열자 귀가 얼얼하다. 차갑고 매캐한 공기에 코가 매웠다. 이렇게 탁한 공기 속에서 아들이 밤을 새웠다는 사실에 장 여사는 피가 끓었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 줄 아량은 싹 가셨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백재웅!”
공간 안에 가두었던 소리가 출구로 빠져나가는 기척에 5인조 밴드의 연주가 주춤했다. 그 틈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익숙한 하이 톤에 재웅은 움찔하여 키보드 연주를 멈추었다.
“어머니.”
재웅이 하얗게 질려 내뱉는 ‘어머니’라는 소리에 동료들의 얼굴도 사색이 되고 만다.
“여기가 바로 요리사관학교라는 곳이니!”
이성을 잃으면 소프라노 목청이 뒤집히는 어머니다.
“이젠 거짓말까지 하니! 네 아버지가 불쌍하지도 않니!”
왕년의 성악가, 장 여사의 하이 톤이 지하 연습실을 연신 매섭게 할퀸다. 방치하면 혈압으로 쓰러질 수도 있었기에 재웅은 어쩔 수 없이 전향적인 자세로 다가갔다.
***
장 여사는 이틀 동안 병실에 누워서 지냈다. 일종의 시위였다. 재웅은 기연미연하면서도 차마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점심에 이어 저녁 식판에도 음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살이 찌는 것보다 굶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장 여사가 곡기를 끊고 있다. 정말로 병세가 악화된 성싶다.
― 술 한잔하자.
아버지, 백 사장의 전화를 받고 재웅은 망설였다.
“엄마가 아프신데.”
― 병원장이 네 엄마 오라버닌데 알아서 잘 봐주겠지.
아버지의 말에는 여유롭고도 묘한 여운이 담겨 있다.
결국 술집에서 부자가 얼굴을 맞댔다.
“음악을 안 하면 죽을 것 같냐?”
백 사장의 질문에 ‘네’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그 정도 열정은 아닌 성싶다. 다만 때가 안 좋았다. 밴드에 합류한 지 1년. 홍대 클럽도 쟁쟁한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었다. 서울 진입을 목표로 수도권에서 인지도를 쌓아 갔다. 마침내 서울 진입에 성공해 작업실을 얻어 연습에 몰두하던 차에 어머니에게 들켰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최상의 행복이라고.”
“그랬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묻잖아. 안 하면 죽을 것 같냐고.”
“죽을 만큼은 아니어도 합주를 하면 행복합니다.”
“네가 한 가지 모르는 게 있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과정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해.”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열심이란 말은 너한테 과하구나. 더구나 거짓말이라니.”
재웅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식품회사의 전문경영인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아버지는 영업의 귀재였다. 사람을 설득하는 재주에 탁월하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너한테 실망했다.”
실망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홍대 앞의 첫 무대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일주일 휴가를 얻었다. 어머니에게는 사내 요리 대회를 앞두고 합숙을 한다는 거짓말을 했다.
“요리사관학교에서 합숙하겠다는 말을 엄마도 나도 믿었다. 넌 아주 큰 죄를 지은 거다. 우린 상처 받았고, 넌 신용이 무너졌어.”
“요리 대회는 참가하겠습니다.”
“관둬라. 평택 매장을 지원한 것도 거기가 너네 밴드 본거지였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넌 자격이 없다. 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다른 조리사들을 모욕하는 짓이다.”
“죄송해요. 하지만 기회를.”
“넌 아웃이다.”
아주 드물게 구제 불능의 직원에게 선고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한다.
“아버지.”
“너는 조리사 자격이 없다. 애당초 넌 마케팅으로 가야 했다. 전공도 경영학이었으니 그게 더 맞겠다.”
“아버지!”
“서울 본사로 들어와서 다시 시작해라.”
“아버지! 군악대 지원 못 하게 하고 취사병으로 가라고 하신 분이 누군데요. 전 요리가 즐겁습니다.”
“즐겁다고? 미치도록 사랑하는 건 음악이고? 어째 너는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고 그 과정은 다 무시하는 거냐. 내 아들이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됐던 거냐?”
재웅은 아버지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붙은 설득의 귀재라는 별명은 얄밉다. 재웅은 자신의 빈곤한 언변을 저주하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막무가내로 피아노 학원으로 보낸 사람은 어머니였고, 대학 때부터 음식점 조리사 알바를 보낸 사람은 아버지셨죠.”
백 사장은 아들의 불편을 모른 척하며 술잔을 비웠다. 재웅도 술잔을 비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공연을 하고 복귀해도 되겠네요.”
“네 엄마는?”
“제길!”
아버지 앞인데도 재웅은 거칠게 탄식했다. 추태를 깨닫고 아버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래서 백 사장의 얼굴에 잠깐 스쳤던 의미심장한 웃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네?”
***
특실 병동에 앉아 초콜릿 푸딩을 먹으며 TV의 발레를 감상하던 장 여사는 노크 소리에 재빨리 그릇을 감추고 누웠다.
“장 여사님, 꾀병은 그만 끝내시죠.”
백 사장의 목소리에 장 여사는 주위를 살피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꾀병이라뇨. 중풍이라도 오면 당신이 평생 보살펴 줄 거요?”
“재웅이는 보냈어요.”
“당신!”
“시장닭집으로 보냈소.”
“시장닭집이요? 설마.”
“한 달을 견디겠답니다.”
“걔가 어떻게 거기 일을 해요?”
“회장님도 석 달을 견디셨소.”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이야기잖아요.”
“아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일단 목표를 정하면 독종이 되는 놈이잖소.”
“걔가 순순히 간댔어요?”
“적극적으로.”
“대체 당신 무얼, 얼마나 양보한 거죠?”
“때가 좋았을 뿐이라오.”
“때는 무슨. 하필이면 엄동설한에.”
“말했잖소. 큰회장님이 시장닭집에 최근에 다녀가셨다고. 마침 거기 빈자리도 하나 있다더군요.”
지금은 은퇴해 안성에서 수목원을 운영하는 큰회장이다.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여 들른 곳이 시장닭집이라는 소식이 백 사장의 정보망에 잡혔다.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큰회장의 후계 수업 전설이 떠올랐다. 백 사장의 대학 후배인 제이그룹의 회장은 바로 그곳에서 큰회장의 시험을 통과했다.
“여보, 당신 말로는 회장님 이후론 그곳에서 견딘 사람이 없다면서요?”
“아는 사람이 극소수니 모르고 있었지요. 임원 아들 하나가 도전을 했다가 한 시간을 못 채웠다 했던가?”
“그런데도 재웅이가 견뎌 낼 거라 믿어요?”
“못 견디면 할 수 없는 거 아니오?”
“뭐라고요?”
장 여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자, 백 사장은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못 견디면 연습실 보증금 빼고 당신 시킨 대로 한대요.”
“견디면요?”
“회장님이 식품 쪽 본인의 지분을 재웅이한테 양도하겠다는 시기가 내년이잖소.”
“맞아요. 한데 재웅이가 그릇이 된 뒤란 단서를 달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릇을 만들어 가야죠.”
“에휴, 다른 방법은 없나요. 하필이면 악명 높은 시장닭집이야.”
아들과의 협상에 만족해하는 표정을 짓는 백 사장과는 달리 장 여사의 구겨진 이맛살은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
탕탕.
도마 소리에 정아는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나 상을 차리겠다는 다짐은 빈번히 늦잠 속에 묻힌다.
아버지, 영식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수산 시장을 다녀온다. 살림채로 붙은 가게에서 작업을 하다가 영식은 살그머니 거실로 들어와 기척을 죽여 아침 준비를 한다. 어느 순간 요란한 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그것이 정아에게는 모닝콜이다. 그래도 방문이 열리지 않으면 영식은 딸의 이름을 부른다.
“정아야.”
갈수록 영식의 목소리에 생기가 없다.
아침상이 차려진 식탁 앞으로 영식의 모습은 없다. 어느새 가게를 통하는 문을 열고 있는 축 처진 뒷모습이 보인다.
“같이 먹어요!”
영식이 돌아본다. 눈빛에도 생기가 없다. 정아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저도 안 먹을래요!”
“먼저 먹었다.”
영식이 개수대를 가리켰다. 과연 밥공기와 수저가 설거지통에 담겨 있다.
“어째서 밥도 같이…….”
“기어이 견디겠다며? 견디려면 먹어라.”
두부를 자르듯이 숭덩 대화를 토막 내고 영식은 문 뒤로 사라졌다. 견뎌 내라고 해서 시장닭집에서 한 달 이상을 악착같이 버텼다. 그런데 막상 적응을 하고 약속한 두 달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영식은 응원은커녕 정아를 피하며 냉담하게 군다. 사흘 전부터는 밥상 앞에서도 마주하지 않는다. 정아의 기억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 식사는 가족과 함께 했던 영식이다.
‘밥심. 견디려면 먹어야지.’
정아는 눈동자에 걸린 물기를 잘금 짜낸 후 어금니를 물고 수저를 들었다. 오늘은 통연어를 손질한 모양이다. 대형 연어는 구이용으로 쓰고자 굵은 비늘을 죄다 긁어낸 뒤 살점만 1인분씩 수십 조각으로 발라낸다. 뼈에 붙은 살은 항상 가족의 몫이다. 그런데 정아가 즐겨 먹은 뒤부터 뼈에 붙은 살이 점점 두툼해 갔다. 물론 영식의 칼질이 둔해져서 생긴 결과물은 아니다. 오메가3가 가장 풍성히 담긴 뱃살과 지느러미 살점이 특히 도톰했다. 계란찜에는 생선 알이 촘촘히 박혀 있다. 새벽에 호키 알도 삶았나 보다. 탕으로 쓰는 길고 커다란 생선 알집은 냉동 상태에서 기계로 미리 절단하거나 삶은 뒤에 도마에 대고 잘라야 한다. 영식은 후자를 선호한다. 삶으면서 알알이 터져 나온 부스러기 알은 손님들의 계란찜에 첨가한다. 정아는 영식을 배려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며 남김없이 먹었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무 조림과 샐러드까지 비우니 식탁의 접시 전부가 바닥을 드러냈다. 영식은 밑반찬을 만들지 않는다. 모두 즉석요리이다. 하여 식사 후에 냉장고에 들어갈 그릇은 없다.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가게에 먼저 들렀다. 영식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겨울나무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더 멀리, 정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먼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성싶다. 다시금 영식의 증상을 확인하고 만다. 아빠는 떠나고 싶어 한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어떤 세상으로. 나 말고 누가 또 아빠를 붙들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얼굴도 모르는 친할머니를 생각하자니 문득 그분에 관해 궁금하다. 영식에게 물어보려고 하다가 망설였다. 언젠가 그랬다.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소식이 끊어져 무덤을 만들지 못했다고.
“아빠, 다녀올게요.”
아픈 기억을 건드릴 수 없어서 궁금증을 삼킨 뒤 애써 쾌하게 인사를 했다. 이쪽으로 돌린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진다. ‘추운데 따습게 입고 가라’는 습관적인 대꾸도 없다.
다시 살림채로 들어가 두꺼운 내복으로 갈아입고 묵직한 코르덴바지를 입었다. 양말을 두 켤레 신었다가 등산 양말 한 족으로 바꿨다. 겪어 보니 그게 더 보온성이 뛰어났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거울을 보았다. 새벽 시장 좌판을 여는 아낙의 모습이다. 치열한 삶의 터널을 지날 때면 체면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그 작은 득도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의 성과를 안겨 주었다. 이제 달력에 남은 숫자는 20이다.
굼벵이 겨울 해가 검붉은 이마를 내밀기 전에 시장닭집으로 들어섰다.
탕탕.
최 씨 아저씨의 도마 소리가 한창이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정아의 쾌한 인사에 최 씨는 늘 대답하지 않는다. 힐긋 보고는 까딱 고개를 숙이는 최 씨의 반응이라도 보려고 작업대 쪽으로 다가갔다.
“백재웅입니다.”
낯선 남자가 최 씨 뒤에 서 있다가 정아를 보고는 불쑥 손을 내민다. 껑충하니 큰 키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이다. 콧등은 이국적으로 솟아 있고 살빛은 탐스럽게도 희다. 외모는 이십 대 중반인데 목소리는 삼십 대처럼 묵직하다.
“예. 직원이에요.”
“어째 얼굴이 낯설지가 않아. 혹시 우리 만난 적 있나?”
“저는 오늘 처음 뵙습니다만.”
“흠. 여기 일한 지는 얼마나 됐나?”
“한 달 조금 지났어요.”
“오, 한 달이나! 오래도 버텼구나. 계속 있을 테야?”
“네?”
“여기서 쭉 일할 거냐고?”
“아, 네. 한 달만 더 있을 겁니다. 개학할 때까지요.”
“학생이었구나. 몇 학년?”
“올해 졸업반이 됩니다.”
“흠, 그렇군.”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일부러 이야기를 이어 가는 기분이다. ‘혹시 나를 아나?’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진짜 어디서 만났던 분일까? 정아 역시 할아버지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할아버지를 언젠가 한 번쯤 뵌 것 같아요.”
저절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어디서?”
할아버지가 눈을 치뜨며 반색했다.
“딱히…… 죄송해요. 그냥 막연히요.”
“막연하다고?”
할아버지가 이맛살을 모은다.
“젊은 사람이 애매한 말을 함부로 쓰네.”
딱히 타박할 일도 아닌 성싶은데 할아버지는 골이 나 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정아를 살피더니 곧 찌푸린 얼굴을 편다.
“미안하다. 내가 나쁜 버릇이 있어가지고. 여긴 회사도 아닌데.”
그때 구 여사의 큰소리가 날아든다.
“정아야, 뭐 하고 자빠졌냐! 손님들 몰려올 시간이 금방인데 빨리 움직여야지!”
“예, 사장님!”
“학생 이름이 정아인가?”
“예. 할아버지.”
“할망구 성깔머리 받아 내느라 고생이구나. 어서 가 봐라.”
할아버지의 손짓에 정아는 배시시 웃어 보이고는 묵례를 건넸다.
10년 만에 찾아온 친구라는 데도 구 여사는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그쪽 식탁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나가다가 한마디 툭 던질 뿐이다.
“영감탱아, 손님들 몰려들기 전에 그릇 빨리 비우고 가셔!”
허양모 명예회장은 시계를 힐긋 보고는 식사를 서둘렀다. 50년 지기 구 여사의 말마따나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게 좋을 성싶다.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 덕에 나들이도 번거롭다. 은퇴한 마당에 더는 매스컴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
“성북동은 안 들르실 겁니까?”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홀아비 집에 가서 뭘 하겠나? 속만 상하지. 김 비서도 어서 먹게나.”
“네, 큰회장님. 맛있게 먹는 중입니다.”
회장 직함을 가진 아들이 여럿이다 보니 이렇듯 허영모 명예회장은 큰회장으로 불린다.
“남기지 말게. 이 집 할망구가 음식 남기는 작자들을 죽어라 미워한다네.”
“알겠습니다.”
큰회장의 당부에 김 비서는 냉큼 손아귀에 닭 다리를 쥐고 물어뜯었다. 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정아가 갸웃하더니 다가와서 천진하게 속삭인다.
“천천히 드셔도 괜찮아요. 월요일엔 손님이 많이 밀리진 않아요.”
구 여사의 독촉 때문에 급히 먹는 줄로 아나 보다. 확신이 없으면서 나서서 애매한 답변을 내놓는 직원들을 호되게 질타하면서 회사 경영을 해 왔다. 그런 습관이 은퇴한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정아에게 잠깐 화를 냈다. 그런데도 녀석은 낫낫하게 받아 냈다. 더욱이 천천히 먹으라며 제법 기특한 심성까지 드러낸다. 큰회장은 장난기가 발동해 볼멘소리로 응수했다.
“너네 무서운 사장이 재촉하니 어쩌겠냐?”
“말씀은 저리하셔도 할아버지가 반가우신가 봐요. 실은 내장 서비스는 할아버지가 처음이거든요.”
“그래? 유용한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요, 지금 사장님이 내장 포장하고 계세요. 할아버지한테 드릴 거래요.”
“그보다 정아야, 저기.”
할아버지가 가리킨 손가락을 바라본 정아가 움찔했다. 과연 칼칼한 구 여사의 목청이 터진다.
“이년아! 바쁜데 거긴 왜 얼쩡거려!”
식사를 마친 큰회장은 승용차 몸을 실었다. 한때는 청수그룹의 총수였으나 지금은 명예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다. 안성의 수목원을 향해 운전대를 잡은 김 비서가 포장된 음식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망설였다.
“이리 주게.”
큰회장은 조악한 검은 봉지에 담긴 음식을 건네받았다. 구 여사가 싸 준 내장볶음의 온기가 무릎 위로 전해진다. 그 온기에 아득한 50년 전의 기억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큰회장의 행동거지가 신기한 듯 룸미러로 김 비서가 검은 봉지를 힐끔거린다.
“자넨 닭 내장볶음은 처음이라지?”
“네, 큰회장님. 졸깃하고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래, 맛있지.”
“진작 말씀하셨으면 제가 사다 드렸을 건데요.”
“여기 내장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 진짜야.”
“아, 네.”
50년 동안 같은 가게이고, 같은 주인이고, 같은 맛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적의 힘든 시절에 내장 한 접시가 보약이었다. 먼 기억에 오롯이 잠겨 있던 허 회장은 문득 스치는 의혹 한 가닥을 붙들었다.
“김 비서, 아까 정아라는 아이 말이다. 언제 본 적이 있나?”
“저는 처음입니다.”
“이상해. 처음 본 얼굴인데도 아주 오래전부터 봐 온 아이 같아.”
나이가 석양에 걸리면 소소한 일에도 감흥을 느끼는 것일까?
‘말씀은 저리하셔도 할아버지가 반가우신가 봐요. 내장 서비스도 할아버지가 처음이거든요.’
맑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의 속달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운전에 집중하던 장 여사가 조수석을 힐긋 보며 입을 연다.
“그런데 승미야, 인디밴드는 어떤 부류를 말하는 거니?”
“인디펜던트. 말 그대로 독립적인 밴드니까, 스스로 모든 활동비며 악기값을 해결한다는 그런 뜻이겠죠?”
“제 돈 들여가며 고생한다 그거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장가 간 사람은 뭘로 가족들 먹여 살린대?”
“그러게요. 오빠는 자기 나이를 모르는 것 같아요.”
“스물일곱이면 가정을 가질 생각을 해야지. 군대 갔다 오면 철들 줄 알았다만, 에휴.”
“어머님, 다 왔어요.”
승미가 창밖을 살피더니 케케묵은 3층 건물을 가리킨다.
“저기예요. 저 건물 지하요.”
밤색 페인트가 누더기처럼 일어난 건물의 지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또 한숨이 나온다. 건물과 이질적인 신형 세단을 앞에 세우고 내렸다.
“어머님, 저는 먼저 갈게요. 절대로 제가 알려 줬다고 하심 안 돼요.”
“알았다. 고맙다.”
발랑발랑 손을 휘저으며 동동걸음으로 사라지는 승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장 여사는 또 한숨을 토한다.
‘저리 싹싹한 아이를 왜 마다할까?’
장 여사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건물 지하로 들어섰다. 밴드의 요란한 리듬이 혼탁한 공기와 함께 계단을 타고 오른다. 두툼한 이중문을 열자 귀가 얼얼하다. 차갑고 매캐한 공기에 코가 매웠다. 이렇게 탁한 공기 속에서 아들이 밤을 새웠다는 사실에 장 여사는 피가 끓었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 줄 아량은 싹 가셨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백재웅!”
공간 안에 가두었던 소리가 출구로 빠져나가는 기척에 5인조 밴드의 연주가 주춤했다. 그 틈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익숙한 하이 톤에 재웅은 움찔하여 키보드 연주를 멈추었다.
“어머니.”
재웅이 하얗게 질려 내뱉는 ‘어머니’라는 소리에 동료들의 얼굴도 사색이 되고 만다.
“여기가 바로 요리사관학교라는 곳이니!”
이성을 잃으면 소프라노 목청이 뒤집히는 어머니다.
“이젠 거짓말까지 하니! 네 아버지가 불쌍하지도 않니!”
왕년의 성악가, 장 여사의 하이 톤이 지하 연습실을 연신 매섭게 할퀸다. 방치하면 혈압으로 쓰러질 수도 있었기에 재웅은 어쩔 수 없이 전향적인 자세로 다가갔다.
***
장 여사는 이틀 동안 병실에 누워서 지냈다. 일종의 시위였다. 재웅은 기연미연하면서도 차마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점심에 이어 저녁 식판에도 음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살이 찌는 것보다 굶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장 여사가 곡기를 끊고 있다. 정말로 병세가 악화된 성싶다.
― 술 한잔하자.
아버지, 백 사장의 전화를 받고 재웅은 망설였다.
“엄마가 아프신데.”
― 병원장이 네 엄마 오라버닌데 알아서 잘 봐주겠지.
아버지의 말에는 여유롭고도 묘한 여운이 담겨 있다.
결국 술집에서 부자가 얼굴을 맞댔다.
“음악을 안 하면 죽을 것 같냐?”
백 사장의 질문에 ‘네’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그 정도 열정은 아닌 성싶다. 다만 때가 안 좋았다. 밴드에 합류한 지 1년. 홍대 클럽도 쟁쟁한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었다. 서울 진입을 목표로 수도권에서 인지도를 쌓아 갔다. 마침내 서울 진입에 성공해 작업실을 얻어 연습에 몰두하던 차에 어머니에게 들켰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최상의 행복이라고.”
“그랬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묻잖아. 안 하면 죽을 것 같냐고.”
“죽을 만큼은 아니어도 합주를 하면 행복합니다.”
“네가 한 가지 모르는 게 있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과정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해.”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열심이란 말은 너한테 과하구나. 더구나 거짓말이라니.”
재웅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식품회사의 전문경영인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아버지는 영업의 귀재였다. 사람을 설득하는 재주에 탁월하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너한테 실망했다.”
실망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홍대 앞의 첫 무대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일주일 휴가를 얻었다. 어머니에게는 사내 요리 대회를 앞두고 합숙을 한다는 거짓말을 했다.
“요리사관학교에서 합숙하겠다는 말을 엄마도 나도 믿었다. 넌 아주 큰 죄를 지은 거다. 우린 상처 받았고, 넌 신용이 무너졌어.”
“요리 대회는 참가하겠습니다.”
“관둬라. 평택 매장을 지원한 것도 거기가 너네 밴드 본거지였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넌 자격이 없다. 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다른 조리사들을 모욕하는 짓이다.”
“죄송해요. 하지만 기회를.”
“넌 아웃이다.”
아주 드물게 구제 불능의 직원에게 선고한다는 말을 아들에게 한다.
“아버지.”
“너는 조리사 자격이 없다. 애당초 넌 마케팅으로 가야 했다. 전공도 경영학이었으니 그게 더 맞겠다.”
“아버지!”
“서울 본사로 들어와서 다시 시작해라.”
“아버지! 군악대 지원 못 하게 하고 취사병으로 가라고 하신 분이 누군데요. 전 요리가 즐겁습니다.”
“즐겁다고? 미치도록 사랑하는 건 음악이고? 어째 너는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고 그 과정은 다 무시하는 거냐. 내 아들이 그 정도 그릇밖에 안 됐던 거냐?”
재웅은 아버지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붙은 설득의 귀재라는 별명은 얄밉다. 재웅은 자신의 빈곤한 언변을 저주하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막무가내로 피아노 학원으로 보낸 사람은 어머니였고, 대학 때부터 음식점 조리사 알바를 보낸 사람은 아버지셨죠.”
백 사장은 아들의 불편을 모른 척하며 술잔을 비웠다. 재웅도 술잔을 비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공연을 하고 복귀해도 되겠네요.”
“네 엄마는?”
“제길!”
아버지 앞인데도 재웅은 거칠게 탄식했다. 추태를 깨닫고 아버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래서 백 사장의 얼굴에 잠깐 스쳤던 의미심장한 웃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네?”
***
특실 병동에 앉아 초콜릿 푸딩을 먹으며 TV의 발레를 감상하던 장 여사는 노크 소리에 재빨리 그릇을 감추고 누웠다.
“장 여사님, 꾀병은 그만 끝내시죠.”
백 사장의 목소리에 장 여사는 주위를 살피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꾀병이라뇨. 중풍이라도 오면 당신이 평생 보살펴 줄 거요?”
“재웅이는 보냈어요.”
“당신!”
“시장닭집으로 보냈소.”
“시장닭집이요? 설마.”
“한 달을 견디겠답니다.”
“걔가 어떻게 거기 일을 해요?”
“회장님도 석 달을 견디셨소.”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이야기잖아요.”
“아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일단 목표를 정하면 독종이 되는 놈이잖소.”
“걔가 순순히 간댔어요?”
“적극적으로.”
“대체 당신 무얼, 얼마나 양보한 거죠?”
“때가 좋았을 뿐이라오.”
“때는 무슨. 하필이면 엄동설한에.”
“말했잖소. 큰회장님이 시장닭집에 최근에 다녀가셨다고. 마침 거기 빈자리도 하나 있다더군요.”
지금은 은퇴해 안성에서 수목원을 운영하는 큰회장이다.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여 들른 곳이 시장닭집이라는 소식이 백 사장의 정보망에 잡혔다.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큰회장의 후계 수업 전설이 떠올랐다. 백 사장의 대학 후배인 제이그룹의 회장은 바로 그곳에서 큰회장의 시험을 통과했다.
“여보, 당신 말로는 회장님 이후론 그곳에서 견딘 사람이 없다면서요?”
“아는 사람이 극소수니 모르고 있었지요. 임원 아들 하나가 도전을 했다가 한 시간을 못 채웠다 했던가?”
“그런데도 재웅이가 견뎌 낼 거라 믿어요?”
“못 견디면 할 수 없는 거 아니오?”
“뭐라고요?”
장 여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자, 백 사장은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못 견디면 연습실 보증금 빼고 당신 시킨 대로 한대요.”
“견디면요?”
“회장님이 식품 쪽 본인의 지분을 재웅이한테 양도하겠다는 시기가 내년이잖소.”
“맞아요. 한데 재웅이가 그릇이 된 뒤란 단서를 달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릇을 만들어 가야죠.”
“에휴, 다른 방법은 없나요. 하필이면 악명 높은 시장닭집이야.”
아들과의 협상에 만족해하는 표정을 짓는 백 사장과는 달리 장 여사의 구겨진 이맛살은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
탕탕.
도마 소리에 정아는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나 상을 차리겠다는 다짐은 빈번히 늦잠 속에 묻힌다.
아버지, 영식은 꼭두새벽에 일어나 수산 시장을 다녀온다. 살림채로 붙은 가게에서 작업을 하다가 영식은 살그머니 거실로 들어와 기척을 죽여 아침 준비를 한다. 어느 순간 요란한 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그것이 정아에게는 모닝콜이다. 그래도 방문이 열리지 않으면 영식은 딸의 이름을 부른다.
“정아야.”
갈수록 영식의 목소리에 생기가 없다.
아침상이 차려진 식탁 앞으로 영식의 모습은 없다. 어느새 가게를 통하는 문을 열고 있는 축 처진 뒷모습이 보인다.
“같이 먹어요!”
영식이 돌아본다. 눈빛에도 생기가 없다. 정아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저도 안 먹을래요!”
“먼저 먹었다.”
영식이 개수대를 가리켰다. 과연 밥공기와 수저가 설거지통에 담겨 있다.
“어째서 밥도 같이…….”
“기어이 견디겠다며? 견디려면 먹어라.”
두부를 자르듯이 숭덩 대화를 토막 내고 영식은 문 뒤로 사라졌다. 견뎌 내라고 해서 시장닭집에서 한 달 이상을 악착같이 버텼다. 그런데 막상 적응을 하고 약속한 두 달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영식은 응원은커녕 정아를 피하며 냉담하게 군다. 사흘 전부터는 밥상 앞에서도 마주하지 않는다. 정아의 기억으로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 식사는 가족과 함께 했던 영식이다.
‘밥심. 견디려면 먹어야지.’
정아는 눈동자에 걸린 물기를 잘금 짜낸 후 어금니를 물고 수저를 들었다. 오늘은 통연어를 손질한 모양이다. 대형 연어는 구이용으로 쓰고자 굵은 비늘을 죄다 긁어낸 뒤 살점만 1인분씩 수십 조각으로 발라낸다. 뼈에 붙은 살은 항상 가족의 몫이다. 그런데 정아가 즐겨 먹은 뒤부터 뼈에 붙은 살이 점점 두툼해 갔다. 물론 영식의 칼질이 둔해져서 생긴 결과물은 아니다. 오메가3가 가장 풍성히 담긴 뱃살과 지느러미 살점이 특히 도톰했다. 계란찜에는 생선 알이 촘촘히 박혀 있다. 새벽에 호키 알도 삶았나 보다. 탕으로 쓰는 길고 커다란 생선 알집은 냉동 상태에서 기계로 미리 절단하거나 삶은 뒤에 도마에 대고 잘라야 한다. 영식은 후자를 선호한다. 삶으면서 알알이 터져 나온 부스러기 알은 손님들의 계란찜에 첨가한다. 정아는 영식을 배려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기며 남김없이 먹었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무 조림과 샐러드까지 비우니 식탁의 접시 전부가 바닥을 드러냈다. 영식은 밑반찬을 만들지 않는다. 모두 즉석요리이다. 하여 식사 후에 냉장고에 들어갈 그릇은 없다.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가게에 먼저 들렀다. 영식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겨울나무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더 멀리, 정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먼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성싶다. 다시금 영식의 증상을 확인하고 만다. 아빠는 떠나고 싶어 한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어떤 세상으로. 나 말고 누가 또 아빠를 붙들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얼굴도 모르는 친할머니를 생각하자니 문득 그분에 관해 궁금하다. 영식에게 물어보려고 하다가 망설였다. 언젠가 그랬다.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소식이 끊어져 무덤을 만들지 못했다고.
“아빠, 다녀올게요.”
아픈 기억을 건드릴 수 없어서 궁금증을 삼킨 뒤 애써 쾌하게 인사를 했다. 이쪽으로 돌린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진다. ‘추운데 따습게 입고 가라’는 습관적인 대꾸도 없다.
다시 살림채로 들어가 두꺼운 내복으로 갈아입고 묵직한 코르덴바지를 입었다. 양말을 두 켤레 신었다가 등산 양말 한 족으로 바꿨다. 겪어 보니 그게 더 보온성이 뛰어났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거울을 보았다. 새벽 시장 좌판을 여는 아낙의 모습이다. 치열한 삶의 터널을 지날 때면 체면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그 작은 득도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의 성과를 안겨 주었다. 이제 달력에 남은 숫자는 20이다.
굼벵이 겨울 해가 검붉은 이마를 내밀기 전에 시장닭집으로 들어섰다.
탕탕.
최 씨 아저씨의 도마 소리가 한창이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정아의 쾌한 인사에 최 씨는 늘 대답하지 않는다. 힐긋 보고는 까딱 고개를 숙이는 최 씨의 반응이라도 보려고 작업대 쪽으로 다가갔다.
“백재웅입니다.”
낯선 남자가 최 씨 뒤에 서 있다가 정아를 보고는 불쑥 손을 내민다. 껑충하니 큰 키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이다. 콧등은 이국적으로 솟아 있고 살빛은 탐스럽게도 희다. 외모는 이십 대 중반인데 목소리는 삼십 대처럼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