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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누구신지.”
작업 장갑을 끼고 물 앞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이곳의 신입치고는 지나치게 귀공자 냄새가 난다.
“신입, 백재웅입니다.”
여전히 그는 장갑을 벗은 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주저주저하다가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유정아라고 해요.”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재웅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유정아 씬 손이 퍽 따듯하네요.”
외모와는 달리 능청스럽다.
“그쪽 손이 얼어서 그런 거겠죠.”
정아는 얼굴을 붉히고 손을 빼냈다. 최 씨는 새 식구를 소개하는 수고에도 인색하다. 그래서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정아는 데면데면하게 일했다. 그리고 이름을 겨우 익힐 때쯤에 신입은 못 견디고 사라졌다.
‘이 남자는 며칠이나 견딜까?’
외모로 미루어 보자면 하루도 어려울 성싶다.
재웅은 장갑을 끼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정아는 닭 내장 박스를 끓어 당기고 있었다. 웃음이 나온다. 그녀의 손이 따듯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자의 튼 손에 놀란 것인지, 터서 까슬까슬한 촉감에 당황했는지도 모르겠다. 촌스러운 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타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성냥팔이 소녀’였다. 그래서 따듯한 손이 의외였다. 튼 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첫 느낌처럼 어리지도 않았으며 말씨가 분명하고 강단도 있어 보였다. 재웅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갸웃했다. 뒤늦게 손바닥에 퍼지는 묘한 간지러움 때문이었다.
“닭 씻어야지?”
최 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채근했다.
“넵, 대장님!”
‘대장’이라는 말에 최 씨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린다. 얼마나 일찍 나와서 일을 했는지 백여 마리의 생닭이 배가 갈리고 목과 다리와 날개 끝이 잘린 채 쌓여 있다. 세척에 앞서 잔털을 제거해야 했다.
십여 마리를 손질하자 벌써 손이 시리다. 장화 속의 발바닥도 얼음장을 딛고 있는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온풍기에 손을 녹이다가 정아를 바라보았다. 가냘픈 몸을 잔뜩 오그린 채 내장을 손질하고 있다. 남루한 빨간 털모자에는 누런 기름이 배어 있다. 다시금 성냥팔이 소녀가 보인다. 성냥팔이 소녀가 두 손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 성냥이 필요할 것 같다.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던 정아는 등으로 닿는 온기에 놀라 돌아보았다. 재웅이 온풍기를 가져왔다.
“성냥이 필요할 것 같아서.”
“네? 아! 그냥 가져가세요.”
재웅은 이미 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정아는 고개를 실긋거렸다.
‘성냥이 필요해?’
햇살이 쪽창을 핥는데도 살바람 탓에 성에꽃은 지지 않는다. 문바람뿐이 아니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칼바람이 주방 곳곳을 할퀸다.
구 여사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재웅을 본체만체하며 생닭을 살피던 구 여사의 얼굴이 구겨진다.
“이걸 봐. 털이 안 뽑혔잖냐!”
재웅이 기마 자세로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젊은 사람 눈이 어째 동태눈깔이야. 늙은이도 보는 털을 왜 지나쳐. 이건 삶아도 실지렁이처럼 꿈틀댄다고!”
첫날에는 그나마 관대한 구 여사다. 더 심한 말은 하지 않고 구 여사는 돌아섰다. 정아 곁을 지나다가 다시금 이맛살을 구긴다.
“이년이! 난로는 왜 이리 세게 틀어 놓고 자빠졌다냐. 내장은 금방 상한다고 누누이 말했건만.”
손수 온도를 줄이고는 나간다. 재웅이 가져다 놓은 뒤 미처 온도를 확인하지 못했다. 투덜거리는 재웅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야 원. 마귀할멈이 따로 없네.”
어쩌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주인의 구박일 것이라고 재웅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바뀌고 만다. 비록 취사실에서 대부분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았던 전방의 군 복무를 기억하면서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닭을 세척하면서 뼛속 깊이 파고드는 냉기에 질려 버렸다. 이 동네 수돗물은 어찌 된 게 쓸수록 더 차갑다. 배를 가른 닭 속의 선지를 손가락으로 긁어내면서 고무호스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고스란히 손등으로 받아 내야 했다. 장화를 신은 발도 차가운 물기운에 저릿저릿 아리다. 이러다 동상에 걸릴 것만 같다.
“전근대적인 주방 같으니!”
손등의 냉기를 더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최 씨는 무심하게 세척한 닭을 토막 내고 있었다. 정아가 이쪽을 바라보다가 눈길이 마주치자 일어난다. 이내 무심히 본채로 들어가 버린다.
‘전근대적인 개인주의 같으니!’
동료들도 신입에게 무심한 것 같아서 화가 난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울화를 다스리면서 재웅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정아가 주전자를 들고 다가온다.
“손 내미세요.”
“잠깐! 그거 펄펄 끓는 물이잖아요!”
“안 뜨거워요.”
주저주저하다가 그녀의 말을 믿기로 하고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수증기를 내뿜는 물이 의외로 뜨겁지 않다.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이는 딱 그 정도의 온기였다.
“이렇게 끓는 물을 살짝 부으면서 하심 견딜 만할 거예요.”
“고마워요. 그나마 박애주의가 살아 있었군요.”
“네?”
“정아 씨가 박애주의자라 그겁니다.”
그녀가 풋 웃었다. 성냥팔이 소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운 웃음이다. 그녀가 대야의 누런 닭기름 덩어리를 한 줌 쥐더니 재웅에게 건넨다.
“이걸 장갑에 문지르세요.”
내키지 않았지만 얼결에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위로 다시금 뜨거운 물을 부어 준다.
“기름을 묻히면 보온력이 강화되거든요.”
“이딴 거 안 해도 견딜 만합니다.”
짠하다고 말하는 듯싶은 그녀의 눈길이 싫어서 재웅은 애써 어깨를 폈다.
“모자나 목도리를 하시지 그래요?”
“됐어요. 내가 많이 강골이거든요.”
재웅은 콧방귀를 뀌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람의 체온은 귀나 목으로 빠져나가잖아요.”
“아, 괜찮다니까!”
재웅이 짜증을 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전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재웅은 장화에도 뜨거운 물을 조금 뿌렸다. 신속한 보온 효과로는 최고였다.
11시가 되었다. 점심 장사에 쓸 생닭 손질을 마치고 저녁 장사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곳 일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생닭이 들어오면 배를 가르고 다리와 목을 쳐내는 일이 1단계이고, 2단계는 잔털 제거와 세척이다. 난해하고 힘든 3단계의 토막 작업은 최 씨의 몫이다. 나머지 둘이 재웅의 몫이었다. 점심거리는 새벽에 나온 최 씨가 1단계도 맡지만 저녁 장사거리는 재웅이 해야 한다. 군대에서 칼질을 충분히 익혔다. 여느 닭과는 달리 껍질이 질기고 뼈가 단단해 애를 먹었지만 재웅은 이내 적응했다. 그런데 또 추위가 발목을 잡는다. 묵직한 도마질로 저린 팔은 감당하겠는데 무릎에서 올라와 옆구리까지 파고드는 냉기는 참기 힘들었다. 귓불마저 냉기로 따갑다. 정아에게 갖다 준 온풍기 앞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싶다는 바람을 잠재운다.
‘차라리 장렬하게 동사하고 말지.’
벽에 걸린 목도리와 털모자를 바라보았다. 기름때에 절어 있어 보인다. 재웅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전근대적인 주방 같으니!’
다리께로 온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정아가 전깃줄을 한껏 당겨 온풍기를 가져온 것이다. 그녀가 방긋 웃고는 말한다.
“성냥이 필요한 사람은 그쪽일 것 같아서요.”
상가의 불빛이 어둠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초저녁인데도 시장닭집은 손님이 가득 찼다. 패잔병처럼 절뚝거리며 시장닭집을 나오는 재웅의 정면으로 전조등 불빛이 다가온다. 재웅은 종종걸음으로 소형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히터 세게 틀어 봐!”
재웅이 언 손을 비비대며 소리쳤다. 운전석의 형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네 꼴이 어째 시베리아 수용소 갖다 온 사람 같다.”
“정답이다. 자진 노역 마치고 나오는 중이다.”
“그 정도로 힘든 일이냐?”
“그보단 자존심 상해서 죽을 뻔했다. 불랙이글의 강골 백재웅이 성냥팔이 소녀한테 동정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냐.”
‘불랙이글’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형석의 표정에 난해함이 걸린다.
“성냥팔이 소녀라니?”
“그런 게 있어. 오디션은 잘 치렀냐?”
“응. 다음 주부터 고정 출연하기로 했어. 근데 초저녁 출연이야.”
“그러겠지. 우리 처지에 메인 타임은 무리지. 참! 지훈이도 직장 다니잖아?”
“걔는 영업부 외근이잖니. 휴가도 내고 시간을 조절한대.”
“부럽구나.”
“재웅이 넌 정말 두 달 동안 합류 못 하냐?”
“소리 맞춰 볼 시간도 없는데 내 욕심만 부리면 민폐지. 그나마 내가 키보드라 다행이다.”
“그런 소리 마라. 네 잘생긴 얼굴이 안 보이면 여성 팬들이 떠날까 봐 우린 노심초사다.”
“여성 팬? 재미없다. 그딴 소린.”
“자식, 호강에 겨운.”
형석이 응수하다가 스스로 말을 끊는다. 여자를 피곤한 존재로 여기는 재웅의 성깔머리를 인정하겠다는 투였다.
“암튼 두 달 동안은 나 빼고 잘해 봐라.”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계속 부모와 싸우느니 두 달을 참고 평생을 당당하게 즐기는 게 낫지 않은가. 부모가 찬성해도 그랬다. 인디밴드를 이어 가는 데에 있어서 어느덧 나이가 불편해졌다. 스쿨밴드도, 직장인 밴드도 아니어서 더욱 애매하다.
“형석아, 지금 어디 가고 있냐?”
익숙한 풍경의 차창을 바라보고 재웅이 갸웃하며 물었다.
“우리 집 가는 거냐?”
“응.”
“우리 집에 데려다주려고 온 거였어?”
“네가 궁금하기도 해서. 더욱이 연습실 때문에 네 차를 희생했잖니.”
신분을 감추고 평사원으로 당당하게 입사해 우수 사원 표창과 함께 조리실 대리 직급을 달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추겨 재웅에게 비싼 새 차를 뽑아 주었다.
‘네놈이 한사코 먼 데서 일을 하니 주말에라도 안전하게 집에 들르라고 비싼 차를 사 줬다. 한데 차를 팔아서 이딴 지하실을 얻어? 당장 여기 해약하고 차 찾아와!’
연습실을 습격한 어머니 덕분에 차를 판 일을 멤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재웅아, 아까부터 참고 있었거든.”
줄곧 코를 킁킁대던 형석이 기어이 한마디 한다.
“너한테 지독한 냄새가 나.”
“무슨 냄새?”
“생선 썩는 냄새 같은 거.”
재웅은 자신의 옷에 코를 묻었다. 과연 역한 냄새가 배어 있다. 생선보다는 열대 과일 두리안의 냄새를 닮았다.
“아, 닭 비린내야. 그리 심하진 않은데?”
“아니. 지독해. 옷도 더럽고.”
공간의 악취는 공간에 익숙한 순간 못 느끼는 법이다. 벌써 익숙해진 걸까?
“불쌍해 보이냐?”
“많이.”
“성냥팔이 소녀보다 더하냐?”
“응. 성냥팔이 소녀는 직업이라도 있잖아. 네 꼬락서닌 노숙자 같다.”
재웅은 손바닥을 폈다. 닭기름이 배어 미끈거리는 손은 그래도 튼 손은 아니다. 정아의 까슬까슬한 손의 촉감이 느껴진다. 문득 그녀의 체온이 질기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성냥이 필요한 사람은 그쪽일 것 같아서요.’
그녀의 말이 뇌리에 스치자 재웅은 불퉁거렸다.
‘쳇, 손이 다 튼 성냥팔이 소녀 주제에 말이야.’
***
밤사이 눈이 쌓였다.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정아의 시선에 눈을 치우는 최 씨와 재웅이 잡힌다.
“아저씨, 저도 같이 해요.”
“다 치웠잖아요.”
재웅이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저도 좀 빨리 와서 거들걸. 죄송해요.”
“뭘요. 대장님이 다 하신걸.”
고작 한 빗자루 거들었다는 재웅이다. 하지만 얼굴은 퍼런 소름이 돋으며 얼어 있다. 추위에 약한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나흘째 털모자를 거부하고 복장도 비실용적이다. 작업복 밖으로 걸쳐 입은 고급스러운 오버코트도 최악이다. 물론 일을 할 적엔 벗겠지만 벽에 걸어만 두어도 누런 기름때와 시큼한 닭 비린내가 확실히 배어든다고 보장할 수 있다. 정말이지 체면이 피곤의 씨앗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남자다. 정아 자신의 신입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풋 웃음이 나온다.
“원래 눈 쓸기도 우리 몫입니까?”
재웅이 최 씨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최 씨가 말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재웅이 정아를 빤히 본다. 설명하라는 투였다.
“남자는 두 분뿐인 데다가 일찍 나오시니 그리된 것 같아요.”
“마귀할멈의 믿음보다는 젠틀맨의 비애 쪽이 더 낫겠군요.”
허세로 고생하는 이 남자는 따지고 이름 붙이기가 취미인가 싶다.
재웅의 젠틀맨 품격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어 시간을 떨면서 일을 하더니 재채기를 시작했다. 생닭을 세척하는 몸짓도 둔하다. 차가운 물을 두려워하는 바가 명백히 보인다. 정아는 본채의 주방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한 주전자 가득 받았다.
“이년아, 내장 삶으려고 끓여 놓은 걸 다 가져가면 어떡하냐!”
구 여사의 꾸지람을 뒤로하고 주전자를 들고 재웅에게 갖다 주었다.
“필요하면 내가 가져다 쓸 텐데.”
그의 허세 앞에 주전자를 놓고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멀리서 힐긋 보니, 황급히 손으로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그가 보인다. 장화에 물을 뿌리는 것을 보다가 언뜻 드러나는 맨살을 보았다.
‘철이 없는 건지.’
그는 여전히 내복을 입지 않고 나왔다. 주전자를 안고 있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재빨리 주전자를 내려놓고 으쓱 어깨를 편다. 하지만 이내 요란한 재채기로 허세가 망가지고 만다. 갑자기 험한 얼굴이 되는 그의 얼굴이 무서워 정아는 똥집으로 시선을 붙였다. 왜 성난 얼굴을 할까?
본채로 들어가 구 여사의 눈치를 보면서 생강차를 세 잔 탔다. 재웅은 잔을 사양한다.
“동정 안 해도 되거든요.”
재웅의 심사가 비틀려 보인다. 허세를 빼고는 좋은 성격이라는 선입견이 단박에 깨진다. 정아는 휙 돌아섰다. 그는 시종 이를 악물고 일을 한다. 최 씨도, 정아도 더는 참견을 안 했다. 털모자와 목도리를 쓰라는 참견도 할 수 없었다. 다만 회전 중인 온풍기를 재웅이 독차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자 애썼다. 시린 손이 굽는다. 이럴 때는 도리어 온몸을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낫다.
보조 주방에는 가스와 화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본채 주방에서 내장과 알을 삶아 내 보조 주방에서 식힌다. 김치도 이곳에 보관한다. 급속냉각기나 김치냉장고로도 유용한 보조 주방의 온도이다. 구 여사가 삶은 내장 한 바구니를 굽은 등으로 들고 온다. 입구에 내려놓고 나가려다가 정아를 본다.
“오늘 춥냐?”
“견딜 만해요.”
“그래. 요새 서울 날씨는 겨울도 아니다. 옛날엔 지붕도 반쪽아리여서 엄동설한에 함박눈 맞으면서 일했다.”
정아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구 여사는 웃으며 나갔다. 정아는 한 가지 더 적응했다고 여기며 뿌듯한 웃음을 삼켰다. 뒤통수가 따가워 쳐다보니, 재웅이 노려보고 있다. 아까부터 차가웠던 그의 눈길이 억울하다. 그래서 눈빛으로 따졌다.
“‥…?”
“원래 노예근성입니까?”
“뭐라고요?”
“유정아 씬 본디 노예근성에 절어 있었냐고요?”
“말씀이 좀 그러네요.”
“사장님이 춥냐고 묻잖아요? 안 추워요? 오늘 날씨가 안 춥냐고요!”
“견딜 만은 하잖아요.”
“봐요? 여기 얼음. 이건 새벽에 온 생닭에 있던 얼음입니다. 대여섯 시간 동안 녹지도 않고 이렇게 바닥에 달라붙어 있잖아요. 어제 갖다 둔 김치도 얼어 있잖아요! 정말 이 안이 안 추워요?”
“그쪽은 춥겠죠.”
정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가 이맛살을 모으다가 재채기를 한다. 그리고 그사이에도 기어이 내뱉는다.
“정아 씨, 착각하지 말아요. 지금 내가 춥다고 그런 줄 알아… 에취! 아니, 견딜 만해서 여자 손이 다 터 가지고 있어? 정아 씨가 전쟁터 군인이야? 얼어 터진 얼굴에 닭기름이나 발라가며 일하는 게 자랑인 줄 알아?”
그의 울화에 문득 혼란스러운 감정이 돋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정아의 조용한 대응에 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하고 싶은 말? 좋아요. 애당초 왜 춥다고, 난로를 하나 더 놓아 달라고 말하지 않았죠? 허접한 주방에 외풍이라도 막아 달라는 요구는 했나요? 아마 괜찮다고 했을걸. 노예근성 소유자는 그게 아무리 작은 권리여도 귀찮아하거든. 에이, 취!”
그의 추궁은 전혀 멋이 없다. 지엄한 권위로의 도전도 망했다. 계속된 재채기로 가련해진 얼굴만 남았다. 정아는 고개를 부르르 흔들고는 조용한 말씨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저씬 더 추운 새벽에도 잘 견디세요.”
“그건.”
최 씨를 돌아보던 재웅은 머뭇거리다가 묻는다.
“대장님은 안 추워요? 3년이나 되셨다면서요? 어째서.”
재웅의 말꼬리에 기운이 빠지고 만다. 의외로 최 씨의 무거운 입이 열린다.
“여름보단 나아. 여름엔 닭이 상하니 조금도 쉴 시간이 없지.”
맞는 말이다. 여름에는 해만 뜨면 생닭의 신선도가 떨어질까 무서워 구 여사는 수시로 독촉한다. 덕분에 팔이나 어깨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들었다.
‘여름보단 낫다고? 지금이 가장 나쁜 시기가 아니라고?’
무거운 최 씨의 입이 열리는 순간 재웅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믿었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견디지 못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극한 상황에 닥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성냥팔이 소녀보다 더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짬밥이 있어도 그렇다. 자신보다 더 잘 견디는 그녀가 얄밉고, 급기야 그녀의 행동거지에 화가 났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동정을 받는 처지라니.
‘인간 백재웅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학창 시절부터 리더의 몫은 항상 재웅이었다.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아니어도 재웅은 사람들을 이끄는 일에 오롯한 성취감을 누렸다. 피아노도 기왕 배운 것이니 파고들어 가 청소년 콩쿠르까지 입상했다. 군대에서도 열외들까지 끌어안고 매사에 앞장섰다. 직장에서도 조리실장의 통제 아래 있으면서도 자신이 메뉴를 이끌고 상도 받았다. 밴드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에게 리더십이 위기를 맞이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속도 모르고 그녀가 다가와 얄밉도록 담담한 말씨를 건넨다.
“정말로 감기 들겠어요. 모자하고 목도리 하세요.”
온풍기까지 끌고 와 있다.
“가져가요!”
버럭 쏘아붙였다.
“전 지금 저리 들어갈 거예요.”
정아가 본채 주방을 가리켰다. 이곳 일을 마친 그녀는 초저녁 퇴근까지 그곳에 일한다. 과하게 화를 냈던 일이 머쓱하여 재웅은 말머리를 돌렸다.
“대체 정아 씬 정식 직책이 뭡니까?”
“두루치기요.”
“두루치기?”
“이것저것 두루두루 일을 하는 직원을 두루치기라고 한대요.”
싱긋 웃어 준다. 독한 여자가 은근히 성격은 좋다는 생각이 스친다. 첫인상보다는 점점 나이도 묵직해 보인다. 차분한 행동거지 탓이다. 재웅은 고개를 갸웃한다. 어쩐지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지성도 느껴진다.
‘어떤 여자지?’
칼질을 시작하다가 재웅은 벽에 걸린 털모자를 바라보았다. 모자는 두고 목도리만 집었다. 목에 걸었다가 코에 둘렀다. 산패된 기름에서 나는 특유의 무거운 악취가 코를 찌른다. 거울을 보니 성냥팔이 소년 같다. 신경질적으로 벗어 버리고 옷깃을 세웠다. 힐긋 보니 최 씨는 토막 일에 여념이 없다. 조금도 옴츠리지 않는 자세에서 경건함마저 엿보인다. 어쩌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닭을 토막 내고 있을 위인 같다.
“누구신지.”
작업 장갑을 끼고 물 앞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이곳의 신입치고는 지나치게 귀공자 냄새가 난다.
“신입, 백재웅입니다.”
여전히 그는 장갑을 벗은 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주저주저하다가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유정아라고 해요.”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재웅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유정아 씬 손이 퍽 따듯하네요.”
외모와는 달리 능청스럽다.
“그쪽 손이 얼어서 그런 거겠죠.”
정아는 얼굴을 붉히고 손을 빼냈다. 최 씨는 새 식구를 소개하는 수고에도 인색하다. 그래서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정아는 데면데면하게 일했다. 그리고 이름을 겨우 익힐 때쯤에 신입은 못 견디고 사라졌다.
‘이 남자는 며칠이나 견딜까?’
외모로 미루어 보자면 하루도 어려울 성싶다.
재웅은 장갑을 끼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정아는 닭 내장 박스를 끓어 당기고 있었다. 웃음이 나온다. 그녀의 손이 따듯하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여자의 튼 손에 놀란 것인지, 터서 까슬까슬한 촉감에 당황했는지도 모르겠다. 촌스러운 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타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성냥팔이 소녀’였다. 그래서 따듯한 손이 의외였다. 튼 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첫 느낌처럼 어리지도 않았으며 말씨가 분명하고 강단도 있어 보였다. 재웅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갸웃했다. 뒤늦게 손바닥에 퍼지는 묘한 간지러움 때문이었다.
“닭 씻어야지?”
최 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채근했다.
“넵, 대장님!”
‘대장’이라는 말에 최 씨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린다. 얼마나 일찍 나와서 일을 했는지 백여 마리의 생닭이 배가 갈리고 목과 다리와 날개 끝이 잘린 채 쌓여 있다. 세척에 앞서 잔털을 제거해야 했다.
십여 마리를 손질하자 벌써 손이 시리다. 장화 속의 발바닥도 얼음장을 딛고 있는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온풍기에 손을 녹이다가 정아를 바라보았다. 가냘픈 몸을 잔뜩 오그린 채 내장을 손질하고 있다. 남루한 빨간 털모자에는 누런 기름이 배어 있다. 다시금 성냥팔이 소녀가 보인다. 성냥팔이 소녀가 두 손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 성냥이 필요할 것 같다.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던 정아는 등으로 닿는 온기에 놀라 돌아보았다. 재웅이 온풍기를 가져왔다.
“성냥이 필요할 것 같아서.”
“네? 아! 그냥 가져가세요.”
재웅은 이미 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정아는 고개를 실긋거렸다.
‘성냥이 필요해?’
햇살이 쪽창을 핥는데도 살바람 탓에 성에꽃은 지지 않는다. 문바람뿐이 아니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칼바람이 주방 곳곳을 할퀸다.
구 여사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재웅을 본체만체하며 생닭을 살피던 구 여사의 얼굴이 구겨진다.
“이걸 봐. 털이 안 뽑혔잖냐!”
재웅이 기마 자세로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젊은 사람 눈이 어째 동태눈깔이야. 늙은이도 보는 털을 왜 지나쳐. 이건 삶아도 실지렁이처럼 꿈틀댄다고!”
첫날에는 그나마 관대한 구 여사다. 더 심한 말은 하지 않고 구 여사는 돌아섰다. 정아 곁을 지나다가 다시금 이맛살을 구긴다.
“이년이! 난로는 왜 이리 세게 틀어 놓고 자빠졌다냐. 내장은 금방 상한다고 누누이 말했건만.”
손수 온도를 줄이고는 나간다. 재웅이 가져다 놓은 뒤 미처 온도를 확인하지 못했다. 투덜거리는 재웅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야 원. 마귀할멈이 따로 없네.”
어쩌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주인의 구박일 것이라고 재웅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바뀌고 만다. 비록 취사실에서 대부분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았던 전방의 군 복무를 기억하면서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닭을 세척하면서 뼛속 깊이 파고드는 냉기에 질려 버렸다. 이 동네 수돗물은 어찌 된 게 쓸수록 더 차갑다. 배를 가른 닭 속의 선지를 손가락으로 긁어내면서 고무호스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고스란히 손등으로 받아 내야 했다. 장화를 신은 발도 차가운 물기운에 저릿저릿 아리다. 이러다 동상에 걸릴 것만 같다.
“전근대적인 주방 같으니!”
손등의 냉기를 더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최 씨는 무심하게 세척한 닭을 토막 내고 있었다. 정아가 이쪽을 바라보다가 눈길이 마주치자 일어난다. 이내 무심히 본채로 들어가 버린다.
‘전근대적인 개인주의 같으니!’
동료들도 신입에게 무심한 것 같아서 화가 난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울화를 다스리면서 재웅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정아가 주전자를 들고 다가온다.
“손 내미세요.”
“잠깐! 그거 펄펄 끓는 물이잖아요!”
“안 뜨거워요.”
주저주저하다가 그녀의 말을 믿기로 하고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수증기를 내뿜는 물이 의외로 뜨겁지 않다.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이는 딱 그 정도의 온기였다.
“이렇게 끓는 물을 살짝 부으면서 하심 견딜 만할 거예요.”
“고마워요. 그나마 박애주의가 살아 있었군요.”
“네?”
“정아 씨가 박애주의자라 그겁니다.”
그녀가 풋 웃었다. 성냥팔이 소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운 웃음이다. 그녀가 대야의 누런 닭기름 덩어리를 한 줌 쥐더니 재웅에게 건넨다.
“이걸 장갑에 문지르세요.”
내키지 않았지만 얼결에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위로 다시금 뜨거운 물을 부어 준다.
“기름을 묻히면 보온력이 강화되거든요.”
“이딴 거 안 해도 견딜 만합니다.”
짠하다고 말하는 듯싶은 그녀의 눈길이 싫어서 재웅은 애써 어깨를 폈다.
“모자나 목도리를 하시지 그래요?”
“됐어요. 내가 많이 강골이거든요.”
재웅은 콧방귀를 뀌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람의 체온은 귀나 목으로 빠져나가잖아요.”
“아, 괜찮다니까!”
재웅이 짜증을 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전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재웅은 장화에도 뜨거운 물을 조금 뿌렸다. 신속한 보온 효과로는 최고였다.
11시가 되었다. 점심 장사에 쓸 생닭 손질을 마치고 저녁 장사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곳 일은 크게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생닭이 들어오면 배를 가르고 다리와 목을 쳐내는 일이 1단계이고, 2단계는 잔털 제거와 세척이다. 난해하고 힘든 3단계의 토막 작업은 최 씨의 몫이다. 나머지 둘이 재웅의 몫이었다. 점심거리는 새벽에 나온 최 씨가 1단계도 맡지만 저녁 장사거리는 재웅이 해야 한다. 군대에서 칼질을 충분히 익혔다. 여느 닭과는 달리 껍질이 질기고 뼈가 단단해 애를 먹었지만 재웅은 이내 적응했다. 그런데 또 추위가 발목을 잡는다. 묵직한 도마질로 저린 팔은 감당하겠는데 무릎에서 올라와 옆구리까지 파고드는 냉기는 참기 힘들었다. 귓불마저 냉기로 따갑다. 정아에게 갖다 준 온풍기 앞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싶다는 바람을 잠재운다.
‘차라리 장렬하게 동사하고 말지.’
벽에 걸린 목도리와 털모자를 바라보았다. 기름때에 절어 있어 보인다. 재웅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전근대적인 주방 같으니!’
다리께로 온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정아가 전깃줄을 한껏 당겨 온풍기를 가져온 것이다. 그녀가 방긋 웃고는 말한다.
“성냥이 필요한 사람은 그쪽일 것 같아서요.”
상가의 불빛이 어둠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초저녁인데도 시장닭집은 손님이 가득 찼다. 패잔병처럼 절뚝거리며 시장닭집을 나오는 재웅의 정면으로 전조등 불빛이 다가온다. 재웅은 종종걸음으로 소형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히터 세게 틀어 봐!”
재웅이 언 손을 비비대며 소리쳤다. 운전석의 형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네 꼴이 어째 시베리아 수용소 갖다 온 사람 같다.”
“정답이다. 자진 노역 마치고 나오는 중이다.”
“그 정도로 힘든 일이냐?”
“그보단 자존심 상해서 죽을 뻔했다. 불랙이글의 강골 백재웅이 성냥팔이 소녀한테 동정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냐.”
‘불랙이글’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형석의 표정에 난해함이 걸린다.
“성냥팔이 소녀라니?”
“그런 게 있어. 오디션은 잘 치렀냐?”
“응. 다음 주부터 고정 출연하기로 했어. 근데 초저녁 출연이야.”
“그러겠지. 우리 처지에 메인 타임은 무리지. 참! 지훈이도 직장 다니잖아?”
“걔는 영업부 외근이잖니. 휴가도 내고 시간을 조절한대.”
“부럽구나.”
“재웅이 넌 정말 두 달 동안 합류 못 하냐?”
“소리 맞춰 볼 시간도 없는데 내 욕심만 부리면 민폐지. 그나마 내가 키보드라 다행이다.”
“그런 소리 마라. 네 잘생긴 얼굴이 안 보이면 여성 팬들이 떠날까 봐 우린 노심초사다.”
“여성 팬? 재미없다. 그딴 소린.”
“자식, 호강에 겨운.”
형석이 응수하다가 스스로 말을 끊는다. 여자를 피곤한 존재로 여기는 재웅의 성깔머리를 인정하겠다는 투였다.
“암튼 두 달 동안은 나 빼고 잘해 봐라.”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계속 부모와 싸우느니 두 달을 참고 평생을 당당하게 즐기는 게 낫지 않은가. 부모가 찬성해도 그랬다. 인디밴드를 이어 가는 데에 있어서 어느덧 나이가 불편해졌다. 스쿨밴드도, 직장인 밴드도 아니어서 더욱 애매하다.
“형석아, 지금 어디 가고 있냐?”
익숙한 풍경의 차창을 바라보고 재웅이 갸웃하며 물었다.
“우리 집 가는 거냐?”
“응.”
“우리 집에 데려다주려고 온 거였어?”
“네가 궁금하기도 해서. 더욱이 연습실 때문에 네 차를 희생했잖니.”
신분을 감추고 평사원으로 당당하게 입사해 우수 사원 표창과 함께 조리실 대리 직급을 달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추겨 재웅에게 비싼 새 차를 뽑아 주었다.
‘네놈이 한사코 먼 데서 일을 하니 주말에라도 안전하게 집에 들르라고 비싼 차를 사 줬다. 한데 차를 팔아서 이딴 지하실을 얻어? 당장 여기 해약하고 차 찾아와!’
연습실을 습격한 어머니 덕분에 차를 판 일을 멤버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재웅아, 아까부터 참고 있었거든.”
줄곧 코를 킁킁대던 형석이 기어이 한마디 한다.
“너한테 지독한 냄새가 나.”
“무슨 냄새?”
“생선 썩는 냄새 같은 거.”
재웅은 자신의 옷에 코를 묻었다. 과연 역한 냄새가 배어 있다. 생선보다는 열대 과일 두리안의 냄새를 닮았다.
“아, 닭 비린내야. 그리 심하진 않은데?”
“아니. 지독해. 옷도 더럽고.”
공간의 악취는 공간에 익숙한 순간 못 느끼는 법이다. 벌써 익숙해진 걸까?
“불쌍해 보이냐?”
“많이.”
“성냥팔이 소녀보다 더하냐?”
“응. 성냥팔이 소녀는 직업이라도 있잖아. 네 꼬락서닌 노숙자 같다.”
재웅은 손바닥을 폈다. 닭기름이 배어 미끈거리는 손은 그래도 튼 손은 아니다. 정아의 까슬까슬한 손의 촉감이 느껴진다. 문득 그녀의 체온이 질기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성냥이 필요한 사람은 그쪽일 것 같아서요.’
그녀의 말이 뇌리에 스치자 재웅은 불퉁거렸다.
‘쳇, 손이 다 튼 성냥팔이 소녀 주제에 말이야.’
***
밤사이 눈이 쌓였다.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정아의 시선에 눈을 치우는 최 씨와 재웅이 잡힌다.
“아저씨, 저도 같이 해요.”
“다 치웠잖아요.”
재웅이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저도 좀 빨리 와서 거들걸. 죄송해요.”
“뭘요. 대장님이 다 하신걸.”
고작 한 빗자루 거들었다는 재웅이다. 하지만 얼굴은 퍼런 소름이 돋으며 얼어 있다. 추위에 약한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나흘째 털모자를 거부하고 복장도 비실용적이다. 작업복 밖으로 걸쳐 입은 고급스러운 오버코트도 최악이다. 물론 일을 할 적엔 벗겠지만 벽에 걸어만 두어도 누런 기름때와 시큼한 닭 비린내가 확실히 배어든다고 보장할 수 있다. 정말이지 체면이 피곤의 씨앗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남자다. 정아 자신의 신입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풋 웃음이 나온다.
“원래 눈 쓸기도 우리 몫입니까?”
재웅이 최 씨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최 씨가 말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재웅이 정아를 빤히 본다. 설명하라는 투였다.
“남자는 두 분뿐인 데다가 일찍 나오시니 그리된 것 같아요.”
“마귀할멈의 믿음보다는 젠틀맨의 비애 쪽이 더 낫겠군요.”
허세로 고생하는 이 남자는 따지고 이름 붙이기가 취미인가 싶다.
재웅의 젠틀맨 품격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어 시간을 떨면서 일을 하더니 재채기를 시작했다. 생닭을 세척하는 몸짓도 둔하다. 차가운 물을 두려워하는 바가 명백히 보인다. 정아는 본채의 주방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한 주전자 가득 받았다.
“이년아, 내장 삶으려고 끓여 놓은 걸 다 가져가면 어떡하냐!”
구 여사의 꾸지람을 뒤로하고 주전자를 들고 재웅에게 갖다 주었다.
“필요하면 내가 가져다 쓸 텐데.”
그의 허세 앞에 주전자를 놓고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멀리서 힐긋 보니, 황급히 손으로 뜨거운 물을 들이붓는 그가 보인다. 장화에 물을 뿌리는 것을 보다가 언뜻 드러나는 맨살을 보았다.
‘철이 없는 건지.’
그는 여전히 내복을 입지 않고 나왔다. 주전자를 안고 있는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재빨리 주전자를 내려놓고 으쓱 어깨를 편다. 하지만 이내 요란한 재채기로 허세가 망가지고 만다. 갑자기 험한 얼굴이 되는 그의 얼굴이 무서워 정아는 똥집으로 시선을 붙였다. 왜 성난 얼굴을 할까?
본채로 들어가 구 여사의 눈치를 보면서 생강차를 세 잔 탔다. 재웅은 잔을 사양한다.
“동정 안 해도 되거든요.”
재웅의 심사가 비틀려 보인다. 허세를 빼고는 좋은 성격이라는 선입견이 단박에 깨진다. 정아는 휙 돌아섰다. 그는 시종 이를 악물고 일을 한다. 최 씨도, 정아도 더는 참견을 안 했다. 털모자와 목도리를 쓰라는 참견도 할 수 없었다. 다만 회전 중인 온풍기를 재웅이 독차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자 애썼다. 시린 손이 굽는다. 이럴 때는 도리어 온몸을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낫다.
보조 주방에는 가스와 화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본채 주방에서 내장과 알을 삶아 내 보조 주방에서 식힌다. 김치도 이곳에 보관한다. 급속냉각기나 김치냉장고로도 유용한 보조 주방의 온도이다. 구 여사가 삶은 내장 한 바구니를 굽은 등으로 들고 온다. 입구에 내려놓고 나가려다가 정아를 본다.
“오늘 춥냐?”
“견딜 만해요.”
“그래. 요새 서울 날씨는 겨울도 아니다. 옛날엔 지붕도 반쪽아리여서 엄동설한에 함박눈 맞으면서 일했다.”
정아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구 여사는 웃으며 나갔다. 정아는 한 가지 더 적응했다고 여기며 뿌듯한 웃음을 삼켰다. 뒤통수가 따가워 쳐다보니, 재웅이 노려보고 있다. 아까부터 차가웠던 그의 눈길이 억울하다. 그래서 눈빛으로 따졌다.
“‥…?”
“원래 노예근성입니까?”
“뭐라고요?”
“유정아 씬 본디 노예근성에 절어 있었냐고요?”
“말씀이 좀 그러네요.”
“사장님이 춥냐고 묻잖아요? 안 추워요? 오늘 날씨가 안 춥냐고요!”
“견딜 만은 하잖아요.”
“봐요? 여기 얼음. 이건 새벽에 온 생닭에 있던 얼음입니다. 대여섯 시간 동안 녹지도 않고 이렇게 바닥에 달라붙어 있잖아요. 어제 갖다 둔 김치도 얼어 있잖아요! 정말 이 안이 안 추워요?”
“그쪽은 춥겠죠.”
정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가 이맛살을 모으다가 재채기를 한다. 그리고 그사이에도 기어이 내뱉는다.
“정아 씨, 착각하지 말아요. 지금 내가 춥다고 그런 줄 알아… 에취! 아니, 견딜 만해서 여자 손이 다 터 가지고 있어? 정아 씨가 전쟁터 군인이야? 얼어 터진 얼굴에 닭기름이나 발라가며 일하는 게 자랑인 줄 알아?”
그의 울화에 문득 혼란스러운 감정이 돋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정아의 조용한 대응에 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하고 싶은 말? 좋아요. 애당초 왜 춥다고, 난로를 하나 더 놓아 달라고 말하지 않았죠? 허접한 주방에 외풍이라도 막아 달라는 요구는 했나요? 아마 괜찮다고 했을걸. 노예근성 소유자는 그게 아무리 작은 권리여도 귀찮아하거든. 에이, 취!”
그의 추궁은 전혀 멋이 없다. 지엄한 권위로의 도전도 망했다. 계속된 재채기로 가련해진 얼굴만 남았다. 정아는 고개를 부르르 흔들고는 조용한 말씨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저씬 더 추운 새벽에도 잘 견디세요.”
“그건.”
최 씨를 돌아보던 재웅은 머뭇거리다가 묻는다.
“대장님은 안 추워요? 3년이나 되셨다면서요? 어째서.”
재웅의 말꼬리에 기운이 빠지고 만다. 의외로 최 씨의 무거운 입이 열린다.
“여름보단 나아. 여름엔 닭이 상하니 조금도 쉴 시간이 없지.”
맞는 말이다. 여름에는 해만 뜨면 생닭의 신선도가 떨어질까 무서워 구 여사는 수시로 독촉한다. 덕분에 팔이나 어깨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들었다.
‘여름보단 낫다고? 지금이 가장 나쁜 시기가 아니라고?’
무거운 최 씨의 입이 열리는 순간 재웅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믿었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견디지 못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극한 상황에 닥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성냥팔이 소녀보다 더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짬밥이 있어도 그렇다. 자신보다 더 잘 견디는 그녀가 얄밉고, 급기야 그녀의 행동거지에 화가 났다. 성냥팔이 소녀에게 동정을 받는 처지라니.
‘인간 백재웅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학창 시절부터 리더의 몫은 항상 재웅이었다. 어머니의 치맛바람이 아니어도 재웅은 사람들을 이끄는 일에 오롯한 성취감을 누렸다. 피아노도 기왕 배운 것이니 파고들어 가 청소년 콩쿠르까지 입상했다. 군대에서도 열외들까지 끌어안고 매사에 앞장섰다. 직장에서도 조리실장의 통제 아래 있으면서도 자신이 메뉴를 이끌고 상도 받았다. 밴드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에게 리더십이 위기를 맞이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속도 모르고 그녀가 다가와 얄밉도록 담담한 말씨를 건넨다.
“정말로 감기 들겠어요. 모자하고 목도리 하세요.”
온풍기까지 끌고 와 있다.
“가져가요!”
버럭 쏘아붙였다.
“전 지금 저리 들어갈 거예요.”
정아가 본채 주방을 가리켰다. 이곳 일을 마친 그녀는 초저녁 퇴근까지 그곳에 일한다. 과하게 화를 냈던 일이 머쓱하여 재웅은 말머리를 돌렸다.
“대체 정아 씬 정식 직책이 뭡니까?”
“두루치기요.”
“두루치기?”
“이것저것 두루두루 일을 하는 직원을 두루치기라고 한대요.”
싱긋 웃어 준다. 독한 여자가 은근히 성격은 좋다는 생각이 스친다. 첫인상보다는 점점 나이도 묵직해 보인다. 차분한 행동거지 탓이다. 재웅은 고개를 갸웃한다. 어쩐지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지성도 느껴진다.
‘어떤 여자지?’
칼질을 시작하다가 재웅은 벽에 걸린 털모자를 바라보았다. 모자는 두고 목도리만 집었다. 목에 걸었다가 코에 둘렀다. 산패된 기름에서 나는 특유의 무거운 악취가 코를 찌른다. 거울을 보니 성냥팔이 소년 같다. 신경질적으로 벗어 버리고 옷깃을 세웠다. 힐긋 보니 최 씨는 토막 일에 여념이 없다. 조금도 옴츠리지 않는 자세에서 경건함마저 엿보인다. 어쩌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닭을 토막 내고 있을 위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