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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본능 1화
열다.
“최 선생님.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선생님들과 인사 나누러 교장실로 빨리 오시래요.”
“예.”
“그런데 들으셨어요? 정말 죽이는 남자 선생님이 한 분 오셨대요. 아이돌 뺨친다는데 우리도 얼른 가요.”
“예에. 그래요.”
썩 반갑잖은데 엄청 친한 척하는 한 선생의 독촉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신학기면 늘 있는 일인 데다 죽이는 남자 선생이라고 해 봤자 한 달만 같이 지내다 보면 숨 막히는 존재가 될 텐데. 뭐가 그렇게 별스런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교장의 눈 밖에 나서 좋은 것은 없으니 서두르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요즘 그녀는 매사가 짜증스러웠다. 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찬혁과의 결혼 날짜를 잡겠다고 들뜬 아버지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누가 옆에서 건드리기만 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더구나 대학 입학부터 정신없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가며 달리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29살씩이나 먹은 중학교 국어 교사가 되어 있어 더 짜증스러웠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고 짜증스럽기만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봄을 타는 노처녀처럼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비딱했다.
“선생님은 올해에도 1학년 담임이세요?”
“예? 예.”
“어머나 좋으시겠네요. 파릇파릇하고 귀엽고.”
“글쎄요. 요즘 중학교 1학년이 파릇파릇하고 귀엽진 않죠.”
“그래요? 난 담임 한 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인데.”
“…….”
“교과가 음악이라서 그런지 자꾸만 담임을 안 맡기네요.”
얄미웠다. 담임이 얼마나 머리 아프고 힘든데. 한 번도 안 맡아봐서 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는 한 선생의 말은 그녀 같은 국어 교사에게는 아주 배가 불러서 헛소리나 하는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더구나 요즘 1학년들은 그녀 때와 달라서 아주 극성스럽고 순진무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후유. 글쎄요. 전 왠지 한 선생님이 절 약 올리려고 하는 말처럼 들리네요. 담임을 맡고 싶으면 교장 선생님께 제가 말씀드려 볼게요. 저 대신 우리 반이라도…….”
“아뇨! 감사하지만 그럴 수는 없죠.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을 믿고 맡기신 건데.”
정말 맡기려면 어쩌나 걱정되는 얼굴로 얼른 말을 돌리는 한 선생을 보며 그녀는 미운털만 박힐 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말 정 안 가는 캐릭터였다. 가진 것이라곤 돈뿐인 부모덕에 학교는 심심해서 나온다고 자신의 입으로 떠들 정도로 개념이라곤 없는데, 또 얼굴은 관리 덕분인지 어리고 싱싱해 보여서 그녀와 동갑임에도 4~5살은 더 어리게 보이고 차도 외제차에 몸에 두르고 있는 것도 모두 고가의 명품뿐이니.
그녀가 그런 세속적인 것에 크게 연연해 하는 스타일이 아니긴 해도 마뜩잖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눈치 없이 속을 뒤집어 놓을 때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머, 어머. 저기 봐요. 정말 아이돌 같다니까요.”
“예에.”
“반응이 왜 이래요? 안 봤죠? 최 선생님 정말 재미없게 사는 건 알지만 한순간만이라도 좀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면 안 돼요? 꼭 내일모레 죽을 사람처럼 느껴진다니까요.”
그녀의 무감동한 목소리에 짐짓 화가 난 것인지 한 선생이 잔뜩 비아냥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새로 온 선생님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들고 간 서류만 넘겼다. 신학기부터 무슨 행사가 그렇게 많은지. 특히 교내, 교외 글짓기, 논술 대회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새로운 선생님들에게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 특히 남자 선생 따위는 그녀에게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아이돌 뺨치게 잘생겼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자, 새로 오신 선생님들께서 일어나셔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하세요.”
그녀의 귀에 익숙한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곧 지루한 자기소개가 이어질 것이다. 늘 그래 온 것처럼. 덕분에 그녀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대회 일정에 대해 꼼꼼히 체크할 수 있었다.
“어머, 어머.”
곁에 앉은 한 선생의 자지러질 것 같은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고개조차 들지 않았을 텐데 워낙 끙끙 앓는 소리에 호기심이 발동했고 반사적으로 눈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난 긴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
“!”
처음으로 그녀는 숨이 넘어가게 잘생긴 남자를 보았다. 평소 연예인에게 관심이라곤 없던 그녀였기에 당황해서 한 선생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착각인지 모르지만,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한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남자의 시선 방향이 그녀와 한 선생을 향한 것처럼 보였다. 가뜩이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시선까지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뜩 움츠렸다. 올봄에는 루머를 조심하라고 했던가? 연초에 본 사주풀이가 갑자기 떠올랐다.
“전 1학년 수학을 담당할 윤나무라고 합니다. 이름만큼이나 우직하고 듬직한 동료가 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윤나무. 이름이 익숙했다. 익숙한 그 이름이 주는 불편한 감정 때문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한때를 소환하는 이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하필이면 새로 발령받아 온 잘생긴 남자 선생의 이름이 나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거슬렸다. 남자도, 남자의 이름도.
다행히 그녀의 기억 속 이름의 소유자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기억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목소리마저 우직해서 연관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남자의 자기소개에 그녀는 햇살 좋은 봄날의 오후를 즐기는 사람처럼 나른해진 얼굴을 하고 앉아 과거로의 여행 중이었을 뿐이었다.
“정말 이름까지 멋있죠?”
“…….”
교장실을 빠져나오면서 윤 선생을 힐끔 돌아본 한 선생이 속삭였다. 이름까지 멋있다. 그렇긴 했다. 그녀의 눈에도 멋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수려한 외모는 둘째 치고 수학 선생이 아니라 체육 선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몸에 그럴듯해 보이는 옷으로 꽤 멋을 낸 모습이 아무래도 한동안 학교가 떠들썩할 것 같았다.
미혼의 여교사들과 여학생들까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잦아들 것 같은 열병이 예상되어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경험상 너무나 잘생긴 선생은 늘 루머와 함께였다. 그러다 몇몇은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나거나 그만두거나 했다. 애들을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좋은 선생으로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며 그녀는 한 선생의 수다를 흘려들었다.
“식사 안 하세요?”
“예?”
“식사하러 가자고요.”
“아, 전 오늘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윤 선생님이나 얼른 가세요.”
“힘들어 보이는데 식사까지 안 하시면…….”
“괜찮아요. 식사하러 가세요.”
불편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늘 있는 위염이라 상관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가 그녀의 바람을 무시하고 말을 건네서. 더구나 다른 여자 선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달갑지 않음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표정에 살짝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상처라도 받은 것인지 꽤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하고 돌아서는 그 때문에 대단한 잘못이라도 한 것 같아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식사하러 가시려고요? 예. 같이 가세요.”
자리를 피하려던 그녀는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그 때문에 당황해서 냅다 팔을 뿌리쳤다. 아주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납게.
“놔요.”
“아, 죄송해요. 전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전 늘 신학기 때면 입맛이 없으니까요.”
미안해서 최대한 날을 세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미 잔뜩 날 선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지지는 않아서 그의 처지에서 보면 여전히 퉁명스럽게 들렸다. 서운함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하고 잔뜩 주눅이 든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그에게 사과해야 하나 망설여질 정도였다.
“그러지 말고 윤 선생님, 우리랑 같이 가요. 원래 최 선생님은 식사 잘 안 하세요. 신학기 때면 워낙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우리랑 달리 담임을 맡아서 애들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요. 얼른요.”
“……예.”
적당한 타이밍에 나서 준 한 선생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들이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그제야 긴장을 풀며 창가로 걸어갔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이틀 내내 그의 시선이 자꾸 자신에게로 향해서 불편했는데 결국 사고가 생기고 말았다. 느닷없는 관심은 그녀를 불편하게 했고 덕분에 괜히 날카롭게 굴었다. 단단히 상처받은 얼굴의 그를 떠올리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잘된 일이었다.
이래저래 그의 관심을 거절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다. 5월 21일. 아버지가 어제 찬혁의 부모와 만나 잡아 온 그녀의 결혼식 날짜였다. 곧 결혼해야 하는 그녀에게 그의 관심이란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이었다.
열다.
“최 선생님.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선생님들과 인사 나누러 교장실로 빨리 오시래요.”
“예.”
“그런데 들으셨어요? 정말 죽이는 남자 선생님이 한 분 오셨대요. 아이돌 뺨친다는데 우리도 얼른 가요.”
“예에. 그래요.”
썩 반갑잖은데 엄청 친한 척하는 한 선생의 독촉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신학기면 늘 있는 일인 데다 죽이는 남자 선생이라고 해 봤자 한 달만 같이 지내다 보면 숨 막히는 존재가 될 텐데. 뭐가 그렇게 별스런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교장의 눈 밖에 나서 좋은 것은 없으니 서두르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요즘 그녀는 매사가 짜증스러웠다. 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찬혁과의 결혼 날짜를 잡겠다고 들뜬 아버지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누가 옆에서 건드리기만 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더구나 대학 입학부터 정신없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가며 달리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29살씩이나 먹은 중학교 국어 교사가 되어 있어 더 짜증스러웠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고 짜증스럽기만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봄을 타는 노처녀처럼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비딱했다.
“선생님은 올해에도 1학년 담임이세요?”
“예? 예.”
“어머나 좋으시겠네요. 파릇파릇하고 귀엽고.”
“글쎄요. 요즘 중학교 1학년이 파릇파릇하고 귀엽진 않죠.”
“그래요? 난 담임 한 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인데.”
“…….”
“교과가 음악이라서 그런지 자꾸만 담임을 안 맡기네요.”
얄미웠다. 담임이 얼마나 머리 아프고 힘든데. 한 번도 안 맡아봐서 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는 한 선생의 말은 그녀 같은 국어 교사에게는 아주 배가 불러서 헛소리나 하는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더구나 요즘 1학년들은 그녀 때와 달라서 아주 극성스럽고 순진무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후유. 글쎄요. 전 왠지 한 선생님이 절 약 올리려고 하는 말처럼 들리네요. 담임을 맡고 싶으면 교장 선생님께 제가 말씀드려 볼게요. 저 대신 우리 반이라도…….”
“아뇨! 감사하지만 그럴 수는 없죠.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을 믿고 맡기신 건데.”
정말 맡기려면 어쩌나 걱정되는 얼굴로 얼른 말을 돌리는 한 선생을 보며 그녀는 미운털만 박힐 말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말 정 안 가는 캐릭터였다. 가진 것이라곤 돈뿐인 부모덕에 학교는 심심해서 나온다고 자신의 입으로 떠들 정도로 개념이라곤 없는데, 또 얼굴은 관리 덕분인지 어리고 싱싱해 보여서 그녀와 동갑임에도 4~5살은 더 어리게 보이고 차도 외제차에 몸에 두르고 있는 것도 모두 고가의 명품뿐이니.
그녀가 그런 세속적인 것에 크게 연연해 하는 스타일이 아니긴 해도 마뜩잖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눈치 없이 속을 뒤집어 놓을 때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머, 어머. 저기 봐요. 정말 아이돌 같다니까요.”
“예에.”
“반응이 왜 이래요? 안 봤죠? 최 선생님 정말 재미없게 사는 건 알지만 한순간만이라도 좀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면 안 돼요? 꼭 내일모레 죽을 사람처럼 느껴진다니까요.”
그녀의 무감동한 목소리에 짐짓 화가 난 것인지 한 선생이 잔뜩 비아냥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새로 온 선생님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들고 간 서류만 넘겼다. 신학기부터 무슨 행사가 그렇게 많은지. 특히 교내, 교외 글짓기, 논술 대회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새로운 선생님들에게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 특히 남자 선생 따위는 그녀에게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아이돌 뺨치게 잘생겼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자, 새로 오신 선생님들께서 일어나셔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하세요.”
그녀의 귀에 익숙한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곧 지루한 자기소개가 이어질 것이다. 늘 그래 온 것처럼. 덕분에 그녀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대회 일정에 대해 꼼꼼히 체크할 수 있었다.
“어머, 어머.”
곁에 앉은 한 선생의 자지러질 것 같은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고개조차 들지 않았을 텐데 워낙 끙끙 앓는 소리에 호기심이 발동했고 반사적으로 눈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난 긴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
“!”
처음으로 그녀는 숨이 넘어가게 잘생긴 남자를 보았다. 평소 연예인에게 관심이라곤 없던 그녀였기에 당황해서 한 선생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착각인지 모르지만,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해 있었다. 한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남자의 시선 방향이 그녀와 한 선생을 향한 것처럼 보였다. 가뜩이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시선까지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뜩 움츠렸다. 올봄에는 루머를 조심하라고 했던가? 연초에 본 사주풀이가 갑자기 떠올랐다.
“전 1학년 수학을 담당할 윤나무라고 합니다. 이름만큼이나 우직하고 듬직한 동료가 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윤나무. 이름이 익숙했다. 익숙한 그 이름이 주는 불편한 감정 때문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한때를 소환하는 이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하필이면 새로 발령받아 온 잘생긴 남자 선생의 이름이 나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거슬렸다. 남자도, 남자의 이름도.
다행히 그녀의 기억 속 이름의 소유자와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기억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목소리마저 우직해서 연관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남자의 자기소개에 그녀는 햇살 좋은 봄날의 오후를 즐기는 사람처럼 나른해진 얼굴을 하고 앉아 과거로의 여행 중이었을 뿐이었다.
“정말 이름까지 멋있죠?”
“…….”
교장실을 빠져나오면서 윤 선생을 힐끔 돌아본 한 선생이 속삭였다. 이름까지 멋있다. 그렇긴 했다. 그녀의 눈에도 멋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수려한 외모는 둘째 치고 수학 선생이 아니라 체육 선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몸에 그럴듯해 보이는 옷으로 꽤 멋을 낸 모습이 아무래도 한동안 학교가 떠들썩할 것 같았다.
미혼의 여교사들과 여학생들까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잦아들 것 같은 열병이 예상되어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경험상 너무나 잘생긴 선생은 늘 루머와 함께였다. 그러다 몇몇은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나거나 그만두거나 했다. 애들을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좋은 선생으로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며 그녀는 한 선생의 수다를 흘려들었다.
“식사 안 하세요?”
“예?”
“식사하러 가자고요.”
“아, 전 오늘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윤 선생님이나 얼른 가세요.”
“힘들어 보이는데 식사까지 안 하시면…….”
“괜찮아요. 식사하러 가세요.”
불편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늘 있는 위염이라 상관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가 그녀의 바람을 무시하고 말을 건네서. 더구나 다른 여자 선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달갑지 않음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표정에 살짝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상처라도 받은 것인지 꽤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하고 돌아서는 그 때문에 대단한 잘못이라도 한 것 같아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식사하러 가시려고요? 예. 같이 가세요.”
자리를 피하려던 그녀는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그 때문에 당황해서 냅다 팔을 뿌리쳤다. 아주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납게.
“놔요.”
“아, 죄송해요. 전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전 늘 신학기 때면 입맛이 없으니까요.”
미안해서 최대한 날을 세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미 잔뜩 날 선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지지는 않아서 그의 처지에서 보면 여전히 퉁명스럽게 들렸다. 서운함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하고 잔뜩 주눅이 든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그에게 사과해야 하나 망설여질 정도였다.
“그러지 말고 윤 선생님, 우리랑 같이 가요. 원래 최 선생님은 식사 잘 안 하세요. 신학기 때면 워낙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우리랑 달리 담임을 맡아서 애들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요. 얼른요.”
“……예.”
적당한 타이밍에 나서 준 한 선생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들이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그제야 긴장을 풀며 창가로 걸어갔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이틀 내내 그의 시선이 자꾸 자신에게로 향해서 불편했는데 결국 사고가 생기고 말았다. 느닷없는 관심은 그녀를 불편하게 했고 덕분에 괜히 날카롭게 굴었다. 단단히 상처받은 얼굴의 그를 떠올리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잘된 일이었다.
이래저래 그의 관심을 거절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다. 5월 21일. 아버지가 어제 찬혁의 부모와 만나 잡아 온 그녀의 결혼식 날짜였다. 곧 결혼해야 하는 그녀에게 그의 관심이란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