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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이것은 또라이 주식회사에서 생존의 임무를 부여받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김 대리의 생존 및 연애기를 다룬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당신은 격하게 공감할 수도,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흔들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전자에 속한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 잠시나마 위로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후자에 속한다면, 조심스럽게 추측컨대 당신은 또라이 주식회사 존재하는 수많은 또라이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왜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보다 더 정확한 법칙,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어느 집단이나 또라이의 수는 정해져 있다. 만약 당신이 속한 집단에 또라이가 없다면, 당신이 바로 그 또라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또라이가 아니길 바라며, 나 김주아 대리는 본격적으로 나의 생존 및 연애기를 이곳에 써 내려가고자 한다.





1. 바야흐로 또라이 전성시대





“아휴! 지금 이걸 기안이라고 올린 거야?”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월요일 아침부터 사무실에 퍼졌다. 그녀의 이름은 김은희. 기획 팀 팀장이다. 일주일을 활기차게 시작하고 팠던 팀원들은 파티션 위로 서로를 향해 짧게 눈빛을 교환하고는 잽싸게 모니터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월요일 아침부터 왜 저러는 거야?>
<모르지. 저 또라이.>
<주말에 남자 친구랑 싸운 거 아닐까요?>
<어쩌면 헤어졌을지도 모르지.>
<남자 친구가 있긴 있는 거예요?>
<세상에 또라이는 많아. 저런 또라이에게도 욕정을 품는 남자가 어딘가에는 존재하겠지.>

경직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는 팀원들, 그들의 타자 소리가 점차 빨라진다. 그들의 입은 꾹 닫혀 있지만, 팀장만 빠진 팀 단체 채팅방에서 그들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바람은 단 하나, 월요일 아침부터 팀장의 지랄병의 희생자가 부디 자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대리! 내 자리로 와 봐!”
제기랄, 하필이면 나다. 아침에 탄 커피도 아직 다 못 마셨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사수, 신민영 대리가 잠깐 내게 눈빛을 보낸다. 많은 말이 함축된 눈빛. 나는 패잔병처럼 고개를 숙이고, 너털너털 그녀에게 다가간다. 열 걸음도 못되어 나는 어느새 ‘김은희’라고 적힌 네임텍이 붙어있는 팀장의 파티션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나는 황금보다 화사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마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표정. 너의 지랄은 지랄이 아니고, 오직 나의 실수로 인해 이 파탄이 난 것이고, 나는 그 실수조차 실수로 알아채지 못할 만큼 네 앞에서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그런 표정과 목소리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무실의 흰 형광등은 등 뒤로 비굴한 그림자를 만들어 냈고, 그 위로 팀원들이 보내는 따가운 동정의 시선이 먼지처럼 쌓여만 갔다.
“너 직장 생활 지금 몇 년차니?”
그녀의 손에는 지난 금요일에 내가 올린 기안의 출력본이 들려 있었다. 하얀 A4용지 가운데로 빨간 사인펜이 보기 좋게 X자를 휘갈기고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경미하게 속이 쓰려 왔다. 하지만 나는 웃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또라이 한 명이 더 떨어진다 하더라도 화사한 미소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직장 생활 5년을 통해 획득한 개인기이자 직업병이었다.
팀장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내 얼굴을 쏘아본다. 그리고 천하 역적을 눈앞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그 날숨을 타고, 모닝 마우스 스멜이 아메리카노와 만났을 때 만들어 내는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나를 습격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웃을 수 있다. 왜냐면 나는 김 대리니까.
그것보다 오늘 아침부터 그녀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궁금했다. 몇 번의 검토를 마치고 올린 기안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녀는 월요일 아침부터 나를 부른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와 오류가 있기에, 그녀는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내 직장 생활 연차까지 들먹거리는 것일까? 부디 팀장이 스스로 입을 열어 주기를 바라며 조금 전 콧구멍을 습격했던 그녀의 새똥만큼 쪼끄만 입술을 바라보았다.
“김 대리, 정신 똑바로 못 차리니? 이거 굴림체잖아!”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굴림체가 뭐가 어쨌다는 거지? 모진 곳 없고, 이래저래 두루두루 쓰이는 굴림체가 뭐가 어쨌기에 지금 저 여자는 이 난리를 피우는 거냐고. 이메일이든, 한글과 컴퓨터든, 오피스든, 전자 결제 시스템이든, 어느 프로그램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우리의 굴림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침부터 욕을 먹어야 하는 거지?
“맑은 고딕으로 고쳐서 다시 올려! 가 봐!”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처럼 그녀는 멋지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굴림체’로 가득한 기안을 내게 툭 건네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또라이”
팀장이 닫고 나간 그 문을 바라보며 그제야 천하에 빌어먹을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자리로 돌아온 내 주변으로 팀원들이 다가왔다.
“야, 잊어. 저 또라이가 아침부터 그냥 트집이 잡고 싶었던 거야.”
“맞아요. 굴림체가 뭐가 어때서! 그리고 아까 난리 칠 때 제가 찾아봤는데, 팀장님도 굴림체로 기안 올렸던데요?”
“그래, 김 대리. 자기가 참아. 김은희가 괜히 국쌍희야? 팀장이 괜히 또라이 소리 듣는 거 아니잖아."
국쌍희, 그것은 바로 국민 쌍년 김은희의 준말. 팀장을 지칭하는 우리만의 은어다.
"맞아요. 저는 예전에 스테이플러 대각선으로 박았다고 욕먹은 적도 있어요.”
"저는 메일 보낼 때, 참조에 국쌍희 주소 제일 앞에 안 넣었다고 혼난 적도 있다구요!"
함께 매일 국쌍희의 고문 아닌 고문에 시달리는 팀원들은 본인들의 고문 담을 쏟아 놓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주위에서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 그들의 위로를 들으며, 조용히 첫 번째 서랍을 열어 꺼냈다. 나의 5년 지기 친구, 갤포스를 말이다. 그 혼탁한 액체를 월요일 아침부터 쭉 들이키며 생각했다. 아, 이제 겨우 월요일이다. 제기랄.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오자.”
옆자리에 앉은 사수, 신민영 대리가 말을 건넸다. 대답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는가, 회사원 중에 커피 타임을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게다가 굴림체의 충격과 월요일이 주는 묵직함에 머리가 너무 아팠다. 물걸레를 짊어진 것처럼, 무거운 어깨와 관자놀이에 수면 마취액을 꽂아 둔 것처럼 어지러운 머리. 생각 같아서는 카페인 음료를 원샷하고 싶지만 월요일부터 악마의 음료를 몸 안에 들이부을 수는 없기에 가볍게 한 잔만 하기로 했다.
탕비실은 이미 만원이었다. 모두들 믹스 커피 봉지가 꽂힌 종이컵을 들고 정수기 앞에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하품소리. 기지개 펴는 소리, 우두둑 우두둑 관절이 자라를 찾아가는 소리.
탕비실이라고 쓰고는 있지만, 직장인 종합 재활 센터라고 읽는 것이 차라리 맞겠다.
나와 신 대리는 탕비실 대신 1층 로비에 있는 커피숍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샷 추가해서요.”
나의 주문은 언제나 한결같다.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 카페인은 진할수록 좋다.
“샷 추가한 카페 모카 톨 사이즈, 휘핑크림 가득 올려서 주세요. 초콜릿 드리즐도 듬뿍 뿌려서요. 아! 가나슈 조각 케이크도 하나 추가할게요.”
나는 놀란 눈으로 나의 사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당’을 다 흡입해 버릴 기세였다.
“피곤해. 주말에 쉬지도 못했어.”
신 대리의 입에서 나온 것은 목소리가 반, 하품이 반.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뭘 했기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일단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이제 겨우 한 모금 들이켰을 뿐인데, 약간의 각성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이 갈색 액체에 조련된 피로사회에 사는 바쁜 현대인이다.
“밀린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댁 가족 모임에 갔다가 주중에 먹을 밑반찬 만들고,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친정 엄마한테 들려서 김치 받아 오고…….”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머리까지 지끈거리려 했다. 그녀는 연신 하품을 내뱉으면서도 가나슈 케이크 한 조각을 어느새 다 먹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산처럼 쌓여 있던 휘핑크림도 거의 사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복부에 시선이 갔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신 대리는 부쩍 살이 붙었다. 6개월 전만해도 그녀는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앉아도 똥배하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날씬했는데, 지금은 한눈에 보기에도 한 사이즈 큰 옷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6개월, 16부작 미니시리즈가 고작 한번 바뀔 정도의 그 시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살이 찐 것일까?
“결혼해 봐. 쉴 틈이 없어.”
6개월 전, 그녀는 결혼식을 올렸다.
“피곤해. 만사가 피곤해. 집안일도 피곤하고, 회사 일도 피곤해. 신혼집은 또 왜 이렇게 먼 거야. 아침에 한 시간 반, 저녁에 한 시간 반. 하루에 세 시간을 만원 버스에서 찡겨 있어야 해.”
나는 잠자코 커피를 마시며 사수가 소개하는 자신의 피곤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맞벌이 부부가 아침 먹을 시간이 어디 있니? 먹는 거라고는 회사에서 먹는 점심 한 끼가 다야. 그런데 희한하지? 내가 먹는 음식이라곤 그 한 끼뿐인데, 이렇게 살이 찐다? 정말 희한하지?”
그녀는 400kcal가 훌쩍 넘는 카페 모카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마시며 말했다. 그렇다. 그건 음식이 아니다. 피곤에 쪄 들었을 때 먹는 고칼로리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처방약인 것이다. 하루에 몇 봉이고 타 먹는 믹스 커피, 서랍 속에 가득한 초콜릿 바와 쿠키,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사탕과 캐러멜, 그리고 지금 먹는 휘핑크림이 가득한 카페모카는 원초적인 단맛으로 피로를 느끼게 하는 감각을 마비시킴으로써 피로가 해소된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마약인 셈이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앉아 저마다 손 안에 든 마약을 들이키고 있었다. 광대뼈 부근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석류처럼 빨갛게 충혈된 눈, 파운데이션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칙칙해진 피부, 잘 다려진 와이셔츠 아래의 뭉친 어깨, 잠깐 하품하는 틈에 보이는 하얗게 백태가 낀 혀. 피곤에 절은 그들은 모두 지금 이곳에서 마약을 투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 일어나자. 자리 오래 비웠다고 김은희가 또 지랄할라.”
신 대리는 컵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마약까지 입안에 탈탈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일어났다.
우리가 카페를 나설 때, 한 무리가 들어왔다. 명찰을 보지 않아도,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느낄 수 있다. 풍겨지는 피곤의 아우라가 차원이 다른 사람들. 바로 개발 팀 사람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발 팀 유현오 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들어온다. 지금까지의 피로와는 차원이 다른, 블랙홀처럼 강력한 피로를. 적어도 삼일은 날밤을 샌 것 같은 그런 깊은 피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곤한 직업, 개발자. 그들 앞에서 나의 월요병은 번데기 앞의 주름일 뿐이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나는 유 팀장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그때 처음 보는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사원증은 우리 회사의 것이 맞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게다가 이 무리와는 다르게 얼굴에 피곤 한 방울이 묻어있지 않다. 지금 막 개그콘서트라도 보고 나온 것처럼 얼굴에 장난과 웃음이 가득하다.
나는 재빨리 사원증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장은석 대리

“인사해. 이쪽은 장은석 대리. 이번에 경력직으로 새로 입사한 우리 팀의 뉴 페이스. 이쪽은 김주아 대리랑 신민영 대리. 앞으로 장 대리가 자주 마주칠 사람들이야. 기획 팀이거든. 아마 김 대리랑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될 거야. 그래도 두 사람 다 일 하나는 깔끔하게 하는 스타일이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돼.”
유 팀장이 장 대리와 우리를 서로에게 소개시켰다. 가볍게 묵례를 주고받으며 나는 그의 이름과 직책을 한 번 더 곱씹었다. 가볍게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려고 하는데, 신 대리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발광하는 액정 한가운데 ‘국민쌍년 김은희’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제기랄, 왜 잠잠하나 싶었다. 우리는 장 대리와의 인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향해 움직였다.
전화를 건 사람의 성격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쌍희가 전화를 걸어왔을 땐, 언제나 벨소리가 아주 지랄 맞았다.
“고작 30분 비웠다, 이 년아!”
나는 개처럼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짧게 으르렁거렸다. 신 대리는 조용히 하라며 내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전화를 받았다.
“네, 팀장님! 네! 네네! 아, 네네! 네! 네!”
정중한 목소리로 ‘네’라는 단어만 8번 복창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네네 치킨 광고라도 찍는 줄 알았을 것이다.
“김은희가 뭐래요?”
“그냥 또 또라이 같은 소리.”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신기한 건 카페를 벗어나는 순간 또다시 깊은 피로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이런 상태로 어떻게 일을 할까 싶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또 꾸역꾸역 일을 한다는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더 신기한 건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이런 상태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이 돌아가고, 대한민국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근로자의 위대함일까, 피로사회의 모순일까. 아니다. 둘 다 아니다. 그저 어느 피곤한 근로자의 헛소리일 뿐이다.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것, 그건 바로 지금은 바야흐로 또라이 전성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또라이들로 가득한 이곳, 또라이 주식회사에서 생존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 *

사무실에 막 들어가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대수롭지 않게 액정에 뜬 글자를 확인한 순간, 걸음을 멈추고야 말았다.

헤드헌터 이하진

휴대 전화의 커다란 화면을 한가득 매운, 그의 이름. 나는 잠시 망설였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