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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 여기서 뭐해?”
사무실 문 앞에 서서 깜짝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나와 내 앞에 떨어진 휴대 전화, 그리고 어깨 뒤로 서 있는 사업 기획 팀 최 팀장. 하이에나 같은 그가 혹여나 휴대 전화에 뜬 글자를 보지는 않았겠지?
“안녕하세요, 팀장님. 졸려서 잠깐 숨 좀 고르고 들어가는 길이에요. 월요병이 무섭네요! 그나저나 지난번 회의 때 잠깐 언급하셨던 신사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위에서 컨펌났어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 그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내가 요즘 골치야! 본부장님한테 허구한 날 불려 간다니까. 내가 벌써 사업 기획서만 몇 번이나 고쳤는지 몰라. 신입 사원이 된 기분이다.”
거짓말. 말은 정확히 해야지. 본인이 고친 게 아니라 밑에 있는 직원들이 고친 것이겠지. 그것도 훈계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당신의 신경질을 꾸역꾸역 견뎌 가면서.
“아, 힘드시겠어요!”
5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터득한 ‘호호 실실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하기 권법’을 제대로 부려 가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들긴! 내 수고 알아주는 건, 역시 싹싹한 김 대리뿐이네! 어휴, 박 대리가 우리 김 대리 반만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자식은 매일 혼자 초상집 조문객이야!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성과도 없고! 에이, 쯧쯧쯧.”
최 팀장은 생선 내장이라도 씹은 것처럼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쯧쯧거렸다. 그가 박 대리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우리 회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와이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야근을 하지 않는 이상 빨리 집에 들어가서 육아를 돕는 훌륭한 남편인 박 대리가 최 팀장은 그저 싫은 것이다.
“에이, 나는 새끼 복도 더럽게 없지. 이 짬밥에 담배도 혼자 피고 말이야.”
그는 짜증스럽게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어 보였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한참 더 나를 붙잡고 투덜거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디뎌 넣는 그의 행보가 반가웠다.
“참, 김 대리! 어디 괜찮은 헤드헌터 있으면 소개해 줘! 답답한 박 대리가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나도 대비를 해 둬야지!”
제기랄, 하이에나 같은 최 팀장. 내 휴대 전화 액정에 적힌 ‘헤드헌터’라는 글씨를 정확히 본 게 틀림없었다. 나이스하게 대화를 잘 넘겼다고 생각한 건 고작 직장생활 5년차밖에 되지 않은 ‘대리 나부랭이’의 착각이었다. 나보다 훨씬 수가 높은 늙은 하이에나는 속으로 얼마나 나의 꼼수를 비웃고 있었을까. 순간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직장 생활의 고수가 될 수 있을까? 나름대로의 권법과 술수를 터득하여 회사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봤자 번번이 맞대하는 건 ‘아직도 멀었다’라는 여섯 글자.
회사는 정글이다. 너무 자주 들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이 느껴지는 그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정글 속에서 우리는 매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늘 달리지 않으면 내일은 사냥꾼에게 잡혀 버리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으려면 달려야 했다. 그게 이 정글의 법칙인 것이다.
정글이고 방글이고 간에 일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내 손에 들린 전화기.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막 울림이 끊겨 버린 전화였다.
그에게서 진짜로 전화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인사치례로 명함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전화를 다시 걸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도 좋을까? 전화를 다시 걸자니 용기가 안 나고, 그냥 무시하자니 하루 종일 신경 쓰일 것 같았다. 휴대 전화를 들고 되도 않는 고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김 대리님, 안녕하세요!”
누군가 하고 돌아봤더니, 조금 전에 봤던 장은석 대리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뉴 페이스들은 기본적으로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5년차 대리답게 반갑게 웃으며 화답했다.
“장은석 대리님이라고 하셨죠?”
“네. 언제 커피 한잔 같이 하시죠. 아무래도 자주 마주칠 텐데, 친하게 지내는 게 좋잖아요.”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하게 지내게 될지, 어떨지는 뚜껑을 열어 봐야 하는 법이다. 특히 개발자와 기획자와의 관계는 그렇다. 기획자는 해 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입장, 개발자는 해 줘야만 하는 입장. 그렇기에 기획자는 해 달라고 으르렁거리고, 개발자는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고 으르렁거린다. 따라서 둘 사이의 관계는 둘 중의 하나였다.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사이거나, 극한 전쟁의 상황 속에서 피어나오는 전우애를 몸소 느낄 동료사이거나.
“그나저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이 사람, 아직 안 갔나? 아까 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옆에 있었다.
“아, 아니요. 고민은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괜히 휴대 전화를 등 뒤로 숨겼다.
“제가 직업은 개발자인데, 취미는 사람 마음 읽기거든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있지만, 일단 오늘은 초면이니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장 대리는 눈썹까지 씰룩이며 마치 뭐 대단한 양보라도 하는 양 이야기했다.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나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그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어이없는 건, 그 행동에 또 장단 맞춰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동전 하나 빌려 드릴까요? 앞면이 나오면 YES, 뒷면이 나오면 NO! 고민 해결에는 이것만 한 게 없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어 건넸다.
“이건 특별히 김 대리님한테만 주는 동전이에요. 보통 동전이 아니거든요. 1984년에 만들어진 동전. 바로 제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행운의 동전이죠! 그럼, 부디 행운이 있기를!”
그렇게 그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손바닥 위에 1984년이 찍힌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남기고. 1984년, 그럼 쥐띠. 나와 동갑이다. 아니, 지금 내가 행운의 동전 타령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시금 정신을 차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던 그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혹시 이하진, 그 사람에게서 또 전화가 온 것일까? 화들짝 놀라 확인하니 메일 도착 알림이었다. 회사 메일 계정을 휴대 전화와 연동해 둔 탓에, 메일이 도착하면 이렇게 요란하게 휴대 전화가 울렸다.
금일 5시 30분, 신규 웹 서비스 기획과 관련하여 긴급회의 요청.
5시 30분에 회의를 잡았다는 건, 대놓고 야근하라는 소리.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그쪽도 대리, 실무자였다. 그래. 별수 없었겠지. 한낱 대리 나부랭이가 무슨 힘이 있겠다고. 일정에 쫓기고, 업무에 쫓기고, 팀장 잔소리에 쫓기면 ‘상대방에게 욕먹을 각오하고’ 5시 30분에 회의 요청하는 거지, 뭐. 짜증은 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대리 마음은 대리가 이해해 줘야지 어쩌겠나 싶기도 했고.
일단 이하진에게 연락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 지금은 회의를 준비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휴대 전화를 오른손에 꽉 쥐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행운의 동전인지 뭔지 하는 1984년이 찍힌 100원짜리 그 동전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사원증이 들어 있는 회사 목걸이 뒤에 꾸역꾸역 넣었다. 다음에 만나면 전해 줘야지.
낯선 캐릭터 하나가 100원짜리 동전 하나와 함께 등장했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주 낯선 캐릭터. 그는 나와 같이 1984년, 갑자년. 조지오웰의 그 소설의 제목과 같은 그 해에 태어났고, 2002년 월드컵 4강 열풍 때 안타깝게도 고3이라는 고비를 건너고, 2017년에 가까스로 이곳, 내가 또라이 주식회사라고 지칭하는 이곳에 정착했다.
직업은 개발자이고, 취미는 사람 마음읽기. 그 낯선 존재는 아주 묘한 재주를 하나 가지고 있는 듯했다. 바로 나를 피식 웃게 만드는 그런 재주. 그 웃음이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재미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낯설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피식 하고 웃고 있었다. 1984년산 100원짜리 동전을 바라보면서.
* * *
“저렇게 살고 싶을까?”
아침부터 김은희의 지랄에 온몸이 흠뻑 젖고 나니, 기운이 다 빠졌다. 책상 앞에 쓰러져 누운 내게 신 대리가 말한다.
“저렇게 살고 싶어서 살겠니? 저렇게 생겨 먹었으니, 저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
맞는 말이다. 사람은 생겨먹은 대로 사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괜히 책상 앞에 놓인 작은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싱그러웠던 열정은 사그라지고, 누렇게 변해 버린 모습. 그런 자신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수식어는 단 하나, 바로 ‘월급의 노예’
월급.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미쳤니? 갑자기 왜 웃어?”
신 대리가 옆에서 묻는다.
“내일이 25일이잖아. 월급날!”
월급날. 한 달 내내 야근을 하고, 온갖 수모를 겪더라도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
정시 출근해서 야근하기, 잘못한 거 없어도 눈치 보기, 성질 죽이고 굽실거리기, 만원 지하철에 끼여서 출퇴근하기를 한 달 동안 반복한 대가로 내 수중에 들어오는 7자리의 숫자. 그것은 내 한 달의 노고를 위로하는 비타민이자 근로자를 춤추게 하는 원동력!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우리는 고래가 아니라 근로자이기에 우리를 춤추게 하는 것은 오직 통장에 파랗게 찍히는 그 숫자뿐이다.
물론 그리 큰 숫자가 찍히는 것은 아니었다. 첫 월급을 받았던 그날, 내 두 눈을 의심했고, 의심이 사실임을 깨달았을 때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몸값이 똥값이구나!”
신문기사에서 보던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다르다는 사실을. 덕분에 직장 생활 5년 차이지만 아직까지 명품하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고속 터미널 지하상가뿐. 그래도 특별히 아쉬운 것은 없었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과 스케일은 모두 다를 테니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본부장님하고 팀장들 저녁 미팅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하니까 다들 일 마무리 잘하고, 내일 보자고!”
퇴근 시간이 되려면 20분이 남았지만, 그녀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녁 미팅은 개뿔. 그냥 자기들끼리 술자리 벌이는 걸 고상하게 포장한 거지. 어이가 없지만 우린 그저 네네, 하고 만다. 뭔들 어떻겠는가. 내일이면 월급이 들어오는데.
오늘은 눈치 볼 팀장도 없기에 나는 6시에 칼 같이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등 뒤에서 누가 인사를 하길래 고개를 돌려 대충 넘어가려는데, 장 대리였다. 그는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김 대리님, 칼퇴하시네요? 저도 오늘은 칼퇴하는데!”
순간 100원짜리 동전이 생각났다.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사원증 뒤에 꽂힌 걸 빼내고자 했다. 하지만 워낙 들어갈 때부터 빡빡했던 것인지라 빼내는 데에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얼굴에 힘을 빡 줘 가면서 간신히 빼내는가 싶은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하필이면 1984년도산 행운의 동전이 포물선을 그리며 틈 사이로 쏙 하고 떨어져 버렸다.
“악! 어떡해!”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분명 소중한 동전이라고 했는데, 이걸 어쩐담. 관리실에 가서 말씀을 드려야 하나? 내가 난감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1의 변화도 없었다. 마치 식품대에 진열된 곤약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뭐하고 있나 하는 그런 눈빛.
“미안해요. 방금 저 사이로 들어간 게 아까 주신 행운의 동전이에요. 관리실에 말해서 찾아보던지 할게요. 미안해요.”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사과했다. 그러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거 여기 또 있어요.”
그러면서 가방 앞주머니에서 다른 동전들을 꺼내 보였다. 대충 세어 봐도 열 개는 넘었다. 뭐지? 그때는 분명 1984년도 산 동전이 행운의 동전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제 와서 저 수많은 동전이 다 행운의 동전이라니?
“행운을 빌면서 던질 수 있으면 다 행운의 동전인거죠. 이 동전을 던짐으로써 고민에 대한 선택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고, 동전은 고민을 대신 짊어지어 주는 것이니. 앞면과 뒷면이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동전이 다 행운의 동전인거죠! 필요하면 하나 더 줄까요?”
어이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단순할 수가 있지?
“아니요. 사양할게요.”
그러자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 하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1층 버튼을 누른다.
“잠깐만요! 같이 가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 대리가 열림 버튼을 누르자, 윤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오늘도 샤랄라한 옷차림의 딱 여대생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소곳하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장 대리에게 건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바깥공기가 느껴진다. 하루의 피곤을 싹 풀어주는 퇴근길 밤공기!
“이것이 바로 퇴근의 맛이거든!”
나는 기지개까지 켜 가며 이 순간의 달콤함을 한껏 느꼈다.
“진짜 맛은, 퇴근 하고 술 한잔 아닌가요? 우리 언제 한 번 마실까요?”
장 대리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술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대충 알겠다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인지.
“시간 괜찮으면 오늘 어때요?”
장 대리가 물었다. 술은 좋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사람이랑 술을 마시는 것은 불편했다. 일단 오늘은 적당히 거절해야겠다 싶은 찰나, 회사 건물 앞 도로에 세워진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얼핏 봐도 비싸 보이는 슈트 차림의 남자. 훤칠하게 큰 키 때문인지, 떡 벌어진 어깨 때문인지 마치 패션 잡지에 나오는 화보 속의 모델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 사람이다. 이하진,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김주아 대리님!”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양 옆에 서 있던 윤아와 장 대리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 느껴졌다. 말을 안 해도 그들이 묻고자 하는 말을 알 것 같았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살 것만 같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고 있냐는 것이겠지. 그것도 회사 앞에 차까지 주차해 놓고 기다리기까지 하면서. 게다가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있던 수다스러운 정민 씨가 보았으니, 다음날 난리가 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아,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사무실 문 앞에 서서 깜짝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나와 내 앞에 떨어진 휴대 전화, 그리고 어깨 뒤로 서 있는 사업 기획 팀 최 팀장. 하이에나 같은 그가 혹여나 휴대 전화에 뜬 글자를 보지는 않았겠지?
“안녕하세요, 팀장님. 졸려서 잠깐 숨 좀 고르고 들어가는 길이에요. 월요병이 무섭네요! 그나저나 지난번 회의 때 잠깐 언급하셨던 신사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위에서 컨펌났어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 그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내가 요즘 골치야! 본부장님한테 허구한 날 불려 간다니까. 내가 벌써 사업 기획서만 몇 번이나 고쳤는지 몰라. 신입 사원이 된 기분이다.”
거짓말. 말은 정확히 해야지. 본인이 고친 게 아니라 밑에 있는 직원들이 고친 것이겠지. 그것도 훈계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당신의 신경질을 꾸역꾸역 견뎌 가면서.
“아, 힘드시겠어요!”
5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터득한 ‘호호 실실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하기 권법’을 제대로 부려 가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들긴! 내 수고 알아주는 건, 역시 싹싹한 김 대리뿐이네! 어휴, 박 대리가 우리 김 대리 반만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자식은 매일 혼자 초상집 조문객이야! 말도 없고, 표정도 없고, 성과도 없고! 에이, 쯧쯧쯧.”
최 팀장은 생선 내장이라도 씹은 것처럼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쯧쯧거렸다. 그가 박 대리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우리 회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와이프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야근을 하지 않는 이상 빨리 집에 들어가서 육아를 돕는 훌륭한 남편인 박 대리가 최 팀장은 그저 싫은 것이다.
“에이, 나는 새끼 복도 더럽게 없지. 이 짬밥에 담배도 혼자 피고 말이야.”
그는 짜증스럽게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어 보였다.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한참 더 나를 붙잡고 투덜거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디뎌 넣는 그의 행보가 반가웠다.
“참, 김 대리! 어디 괜찮은 헤드헌터 있으면 소개해 줘! 답답한 박 대리가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나도 대비를 해 둬야지!”
제기랄, 하이에나 같은 최 팀장. 내 휴대 전화 액정에 적힌 ‘헤드헌터’라는 글씨를 정확히 본 게 틀림없었다. 나이스하게 대화를 잘 넘겼다고 생각한 건 고작 직장생활 5년차밖에 되지 않은 ‘대리 나부랭이’의 착각이었다. 나보다 훨씬 수가 높은 늙은 하이에나는 속으로 얼마나 나의 꼼수를 비웃고 있었을까. 순간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직장 생활의 고수가 될 수 있을까? 나름대로의 권법과 술수를 터득하여 회사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봤자 번번이 맞대하는 건 ‘아직도 멀었다’라는 여섯 글자.
회사는 정글이다. 너무 자주 들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이 느껴지는 그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정글 속에서 우리는 매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달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오늘 달리지 않으면 내일은 사냥꾼에게 잡혀 버리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으려면 달려야 했다. 그게 이 정글의 법칙인 것이다.
정글이고 방글이고 간에 일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내 손에 들린 전화기.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막 울림이 끊겨 버린 전화였다.
그에게서 진짜로 전화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인사치례로 명함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전화를 다시 걸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도 좋을까? 전화를 다시 걸자니 용기가 안 나고, 그냥 무시하자니 하루 종일 신경 쓰일 것 같았다. 휴대 전화를 들고 되도 않는 고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김 대리님, 안녕하세요!”
누군가 하고 돌아봤더니, 조금 전에 봤던 장은석 대리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뉴 페이스들은 기본적으로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는 5년차 대리답게 반갑게 웃으며 화답했다.
“장은석 대리님이라고 하셨죠?”
“네. 언제 커피 한잔 같이 하시죠. 아무래도 자주 마주칠 텐데, 친하게 지내는 게 좋잖아요.”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하게 지내게 될지, 어떨지는 뚜껑을 열어 봐야 하는 법이다. 특히 개발자와 기획자와의 관계는 그렇다. 기획자는 해 달라고 설득해야 하는 입장, 개발자는 해 줘야만 하는 입장. 그렇기에 기획자는 해 달라고 으르렁거리고, 개발자는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고 으르렁거린다. 따라서 둘 사이의 관계는 둘 중의 하나였다.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는 사이거나, 극한 전쟁의 상황 속에서 피어나오는 전우애를 몸소 느낄 동료사이거나.
“그나저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이 사람, 아직 안 갔나? 아까 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옆에 있었다.
“아, 아니요. 고민은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괜히 휴대 전화를 등 뒤로 숨겼다.
“제가 직업은 개발자인데, 취미는 사람 마음 읽기거든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있지만, 일단 오늘은 초면이니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장 대리는 눈썹까지 씰룩이며 마치 뭐 대단한 양보라도 하는 양 이야기했다.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나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그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어이없는 건, 그 행동에 또 장단 맞춰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동전 하나 빌려 드릴까요? 앞면이 나오면 YES, 뒷면이 나오면 NO! 고민 해결에는 이것만 한 게 없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어 건넸다.
“이건 특별히 김 대리님한테만 주는 동전이에요. 보통 동전이 아니거든요. 1984년에 만들어진 동전. 바로 제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행운의 동전이죠! 그럼, 부디 행운이 있기를!”
그렇게 그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손바닥 위에 1984년이 찍힌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남기고. 1984년, 그럼 쥐띠. 나와 동갑이다. 아니, 지금 내가 행운의 동전 타령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시금 정신을 차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던 그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혹시 이하진, 그 사람에게서 또 전화가 온 것일까? 화들짝 놀라 확인하니 메일 도착 알림이었다. 회사 메일 계정을 휴대 전화와 연동해 둔 탓에, 메일이 도착하면 이렇게 요란하게 휴대 전화가 울렸다.
금일 5시 30분, 신규 웹 서비스 기획과 관련하여 긴급회의 요청.
5시 30분에 회의를 잡았다는 건, 대놓고 야근하라는 소리.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그쪽도 대리, 실무자였다. 그래. 별수 없었겠지. 한낱 대리 나부랭이가 무슨 힘이 있겠다고. 일정에 쫓기고, 업무에 쫓기고, 팀장 잔소리에 쫓기면 ‘상대방에게 욕먹을 각오하고’ 5시 30분에 회의 요청하는 거지, 뭐. 짜증은 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대리 마음은 대리가 이해해 줘야지 어쩌겠나 싶기도 했고.
일단 이하진에게 연락은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 지금은 회의를 준비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휴대 전화를 오른손에 꽉 쥐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행운의 동전인지 뭔지 하는 1984년이 찍힌 100원짜리 그 동전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사원증이 들어 있는 회사 목걸이 뒤에 꾸역꾸역 넣었다. 다음에 만나면 전해 줘야지.
낯선 캐릭터 하나가 100원짜리 동전 하나와 함께 등장했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주 낯선 캐릭터. 그는 나와 같이 1984년, 갑자년. 조지오웰의 그 소설의 제목과 같은 그 해에 태어났고, 2002년 월드컵 4강 열풍 때 안타깝게도 고3이라는 고비를 건너고, 2017년에 가까스로 이곳, 내가 또라이 주식회사라고 지칭하는 이곳에 정착했다.
직업은 개발자이고, 취미는 사람 마음읽기. 그 낯선 존재는 아주 묘한 재주를 하나 가지고 있는 듯했다. 바로 나를 피식 웃게 만드는 그런 재주. 그 웃음이 어이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재미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낯설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피식 하고 웃고 있었다. 1984년산 100원짜리 동전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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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살고 싶을까?”
아침부터 김은희의 지랄에 온몸이 흠뻑 젖고 나니, 기운이 다 빠졌다. 책상 앞에 쓰러져 누운 내게 신 대리가 말한다.
“저렇게 살고 싶어서 살겠니? 저렇게 생겨 먹었으니, 저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
맞는 말이다. 사람은 생겨먹은 대로 사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괜히 책상 앞에 놓인 작은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싱그러웠던 열정은 사그라지고, 누렇게 변해 버린 모습. 그런 자신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수식어는 단 하나, 바로 ‘월급의 노예’
월급.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미쳤니? 갑자기 왜 웃어?”
신 대리가 옆에서 묻는다.
“내일이 25일이잖아. 월급날!”
월급날. 한 달 내내 야근을 하고, 온갖 수모를 겪더라도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
정시 출근해서 야근하기, 잘못한 거 없어도 눈치 보기, 성질 죽이고 굽실거리기, 만원 지하철에 끼여서 출퇴근하기를 한 달 동안 반복한 대가로 내 수중에 들어오는 7자리의 숫자. 그것은 내 한 달의 노고를 위로하는 비타민이자 근로자를 춤추게 하는 원동력!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우리는 고래가 아니라 근로자이기에 우리를 춤추게 하는 것은 오직 통장에 파랗게 찍히는 그 숫자뿐이다.
물론 그리 큰 숫자가 찍히는 것은 아니었다. 첫 월급을 받았던 그날, 내 두 눈을 의심했고, 의심이 사실임을 깨달았을 때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몸값이 똥값이구나!”
신문기사에서 보던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다르다는 사실을. 덕분에 직장 생활 5년 차이지만 아직까지 명품하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고속 터미널 지하상가뿐. 그래도 특별히 아쉬운 것은 없었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과 스케일은 모두 다를 테니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본부장님하고 팀장들 저녁 미팅이 있어서 조금 일찍 퇴근하니까 다들 일 마무리 잘하고, 내일 보자고!”
퇴근 시간이 되려면 20분이 남았지만, 그녀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녁 미팅은 개뿔. 그냥 자기들끼리 술자리 벌이는 걸 고상하게 포장한 거지. 어이가 없지만 우린 그저 네네, 하고 만다. 뭔들 어떻겠는가. 내일이면 월급이 들어오는데.
오늘은 눈치 볼 팀장도 없기에 나는 6시에 칼 같이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등 뒤에서 누가 인사를 하길래 고개를 돌려 대충 넘어가려는데, 장 대리였다. 그는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김 대리님, 칼퇴하시네요? 저도 오늘은 칼퇴하는데!”
순간 100원짜리 동전이 생각났다.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사원증 뒤에 꽂힌 걸 빼내고자 했다. 하지만 워낙 들어갈 때부터 빡빡했던 것인지라 빼내는 데에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얼굴에 힘을 빡 줘 가면서 간신히 빼내는가 싶은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하필이면 1984년도산 행운의 동전이 포물선을 그리며 틈 사이로 쏙 하고 떨어져 버렸다.
“악! 어떡해!”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분명 소중한 동전이라고 했는데, 이걸 어쩐담. 관리실에 가서 말씀을 드려야 하나? 내가 난감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1의 변화도 없었다. 마치 식품대에 진열된 곤약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뭐하고 있나 하는 그런 눈빛.
“미안해요. 방금 저 사이로 들어간 게 아까 주신 행운의 동전이에요. 관리실에 말해서 찾아보던지 할게요. 미안해요.”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사과했다. 그러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거 여기 또 있어요.”
그러면서 가방 앞주머니에서 다른 동전들을 꺼내 보였다. 대충 세어 봐도 열 개는 넘었다. 뭐지? 그때는 분명 1984년도 산 동전이 행운의 동전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제 와서 저 수많은 동전이 다 행운의 동전이라니?
“행운을 빌면서 던질 수 있으면 다 행운의 동전인거죠. 이 동전을 던짐으로써 고민에 대한 선택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고, 동전은 고민을 대신 짊어지어 주는 것이니. 앞면과 뒷면이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동전이 다 행운의 동전인거죠! 필요하면 하나 더 줄까요?”
어이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단순할 수가 있지?
“아니요. 사양할게요.”
그러자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 하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1층 버튼을 누른다.
“잠깐만요! 같이 가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 대리가 열림 버튼을 누르자, 윤아의 얼굴이 나타났다. 오늘도 샤랄라한 옷차림의 딱 여대생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다소곳하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장 대리에게 건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바깥공기가 느껴진다. 하루의 피곤을 싹 풀어주는 퇴근길 밤공기!
“이것이 바로 퇴근의 맛이거든!”
나는 기지개까지 켜 가며 이 순간의 달콤함을 한껏 느꼈다.
“진짜 맛은, 퇴근 하고 술 한잔 아닌가요? 우리 언제 한 번 마실까요?”
장 대리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술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대충 알겠다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인지.
“시간 괜찮으면 오늘 어때요?”
장 대리가 물었다. 술은 좋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사람이랑 술을 마시는 것은 불편했다. 일단 오늘은 적당히 거절해야겠다 싶은 찰나, 회사 건물 앞 도로에 세워진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얼핏 봐도 비싸 보이는 슈트 차림의 남자. 훤칠하게 큰 키 때문인지, 떡 벌어진 어깨 때문인지 마치 패션 잡지에 나오는 화보 속의 모델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 사람이다. 이하진,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김주아 대리님!”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양 옆에 서 있던 윤아와 장 대리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 느껴졌다. 말을 안 해도 그들이 묻고자 하는 말을 알 것 같았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살 것만 같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고 있냐는 것이겠지. 그것도 회사 앞에 차까지 주차해 놓고 기다리기까지 하면서. 게다가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있던 수다스러운 정민 씨가 보았으니, 다음날 난리가 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아, 벌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