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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호협 1권(25화)
제七장 금동(禁洞)에 들어간 독고무흔(2)
독고무흔도 전설의 마검 수라마검에 대해 들었다.
수만 명의 피를 머금은 무시무시한 공포가 서린 신병이기. 무림 역사 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검이다. 만혈마검이란 애칭을 가진 수라마검에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무슨 쇠로 만들어졌기에 이토록 단단하고, 예리하단 말인가?
“수라마검이야! 아버님께서 이런 보검을 봉인하다니!”
생각해 보니 간단했다. 과거, 천마신교를 천지괴협과 힘을 합쳐 멸하지 않았던가. 그때 회수했던 것이 분명했다.
검을 힘들게 뽑았다.
쭈욱!
눕혀 있던 칼집에 수라마검을 넣었다. 옷이 많이 찢어지고, 엷은 상처까지 입었다. 검에서 뿜어지는 살기는 무공을 쓰지 않고도 살아서 숨 쉬는 것 같다. 칼집의 위력도 대단했다. 툭툭 치자, 나무나 바위들이 부서지고 잘라졌다. 대단한 위력이다.
그런데…….
이 검을 두고 천지괴협과 아버지가 서로 다투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이렇게까지 무서운 예기를 뿜는 검이라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다퉜을 텐데.
“대단한 의리야. 이런 병기를 손에 넣고도 다투지 않다니.”
그런 의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지만. 내공을 더 강하게 품자 옷이 더는 잘려지지 않았다. 정말 매서운 예기였다. 신병이기의 우두머리답게 위용은 장대했다. 작은 상자에는 무공의 비급서가 들어 있었다.
흡공대법(吸功大法)과 혈원신공(血元神功)의 비급.
독고무흔은 천마신교의 최고 절세비급을 갖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아버지와 천지괴협이 협공해서야 물리칠 수 있었다던 천마신교의 마지막 교주 흑천마군 백천기. 틀림없이 그의 무공일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여기에 이런 비급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비급을 읽었다. 과연 속성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흡공대법은 흡자결, 흡인결의 우두머리로 흡천대마기(吸闡大摩氣)의 경지에 오르면 가히 무적의 고수나 진배없었다.
모든 장권무예와 병기무예를 상대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왜 가지 말라고 했는지 알았다. 이런 무공을 익혀 급성장을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버지도 결국 날 견제했던 거야. 하긴 내가 스승이라도 제자에게 너무나 깊은 무공을 단숨에 전수하진 않겠지.”
바위를 건드린 것이 흠이긴 했지만, 어차피 아버지가 여기까지 직접 들어와 확인하지 않는 이상엔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혈원신공의 비급을 살폈다.
‘이 비급은 내 체질에는 맞지 않군.’
과감하게 버렸다. 급성장도 좋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소화가 되지 않으면 반드시 주화입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흡공대법과 천조신공을 중심으로 아버지가 준 비급을 터득하면 이제 무적의 고수가 될 수 있었다. 손에는 무림최고의 신병이기가 들려 있지 않은가.
“오!”
이게 어찌된 행운일까. 눈앞에는 아버지가 그 잡종에게 주었던 영단보희 한 알이 있었다. 게다가 독고검법(獨孤劍法)과 천조신공(天祚神功), 무영권(無影拳), 무영회수반(無影回收伴)의 비급까지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는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영단보희를 먹었다.
처저저적!
피부의 껍질이 벗겨지고, 근육이 샘솟았다. 단청보처럼 오랜 고련이 아님에도 한 번에 환골탈태를 하고 있었다. 삼 년 이상은 정진해야 되는 것을 한순간에 끌어 올렸다. 내공이 순청극기에 달하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무려 이백사십 년에 달하는 공력을 한꺼번에 성취했다.
“하하. 얼간이 단청보는 결국 이것을 먹고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이렇게 달라졌구나. 으하하하!”
음흉하고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회심의 암수까지 죽 쓰게 만든 단청보. 기회를 보아 확실하게 짓밟아 버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비급은 품에다가 숨기고, 수라마검을 들었다. 야광주를 이용해 석실의 용두석을 내렸다. 살금살금 금동을 나왔다. 진병까지 고스란히 피했다. 오랫동안 유심히 살피지 않았다면,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금동에 있는 모든 물건을 완벽하게 얻은 것이다.
“하하! 천하무림은 결국 나의 수라마검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며, 그 얼간이 단청보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산천에 메아리가 치도록 말했다. 속이 아주 시원해졌다. 이렇게 깊은 청량감을 만끽하기는 처음이다. 금동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로 나왔다. 모든 것을 처음 들어왔던 그대로 두었다.
일순간.
자신의 눈앞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다. 그도 순간 스쳤다. 단청보에게 암수를 걸려다가 미수로 그친 일이 떠올랐다.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했을 것이고, 독고검성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여 급히 달려온 것이다.
독고검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문을 열었다.
“무흔아, 그게 무엇이냐?”
서둘러 수라마검을 뒤로 감췄다. 이백사십 년의 내공을 성취하고, 순청극기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아버지는 천하제일의 고수로 일대무학의 무신경지에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말을 더듬는 것이냐? 혹여 금동을 들어갔다 나온 것이냐?”
“그, 그게… 소자는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네 이놈! 거짓말 마라. 뒤에 숨긴 것이 수라마검인 것이 훤히 다 보인다. 네가 이런 식으로 끝내 내 뒤통수를 칠 줄이야. 청보 그 아이를 짓밟고, 천하무적이 되어 군림하고 싶어 그랬지?”
이렇게 된 이상 무엇을 더 숨기겠는가.
“예. 아버님께서 제게 절세무학을 전수하지 않으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놈! 내가 너같이 사악하고 교활한 놈을 양자로 들였다니 후회가 막급하구나! 네놈이 청보에게 암수를 걸려다가 마침 청보가 의심하여 실패했다는 그 말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독고무흔의 예상이 맞았다. 단청보가 분명 그 이야기를 안 했을 리 만무했다. 암수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자기의 행동이 의심스럽고 이상하다는 것은 말했을 것이다.
“소자의 손에는 수라마검이 있고, 영단보희를 먹어 이백사십 년의 공력을 성취했습니다.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쯧쯧. 네놈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느냐? 어째서 바보라고 여겼던 놈에게 네 속내가 들키고 그놈보다도 뒤쳐진지 아느냐?”
“그것은 소자가 알 바가 아니죠.”
“참을성이 없기 때문이다. 길게 보는 안목은 부족하고, 인내심도 없고! 원하는 성취를 거뒀다고 날 이길 것 같으냐? 청보에게 듣고선 네놈이 금동에 들어갈 것이라 예감하고 왔다. 하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까?”
침을 꿀떡 삼켰다. 최악의 상황이다. 그는 수라마검을 뽑아 들었다. 아버지를 향해 검을 겨눈 것이다. 그러면서 품에는 연막과 독침도 함께 준비했다. 새외의 살수들과 몰래 교류하며 터득했다.
피식 웃으며 독고검성은 평범한 목검을 꺼내 들었다.
“네놈이 뿌듯해하는 그 성취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확실히 깨닫게 해 주마!”
아버지가 장검도 아니고 목검을 빼 들었다. 독고무흔은 순청극기의 공력을 목검으로 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더욱이 수라마검을 갖고 있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라 여겼다.
“허세가 대단하십니다.”
독고귀륜검(獨孤鬼輪劍).
수라마검으로 원을 그리며, 살기를 잔뜩 머금었다. 매서운 살기는 나무와 바윗돌을 사정없이 잘라냈다.
처저적.
수라마검은 수레바퀴 돌듯이 수십 가닥의 검기를 일으켰다. 검강의 수준이다.
검신은 일검(一劍)을 고스란히 내질렀다. 수라마검의 원 한가운데로 목검이 찌르고 들었다.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무조건 수라마검으로 후려치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다.
드르륵.
검신은 수라마검의 검신을 틀어서 매섭게 젖히고, 그 힘에 탄력을 가했다. 자신이 펼치는 모든 힘은 적이 되어 되돌아 쳤다. 어찌 이런 황당한 상황이…….
찌이이익.
옷이 찢어지고 일격에 두들겨 맞아 열 걸음을 나가떨어졌다. 혈기가 솟구치고 한 모금의 피가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아, 아버님…….”
“네놈이 수라마검을 얻고, 순청극기의 공력을 얻었다고! 한순간에 천하무적이 될 줄 알았느냐?”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이미 맞은 일격으로 정면으로 대결할 자신을 잃었다. 품에 숨겨 두었던 연막을 꺼내 재빨리 터뜨렸다.
치히히융!
안개처럼 뿌연 김이 사방에 퍼뜨려지고,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가려 놓았다. 검신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 틈에 두 개, 세 개를 연달아서 터뜨렸다. 다섯 개의 독침도 아버지에게 날렸다.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수라마검을 도약체로 삼아 달아났다.
픽픽!
독고무흔이 날린 독침은 귓전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휘두른 목검에 그대로 박혔다. 잠시 후 안개는 걷히고,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시선을 가리고, 독침까지 날리니 잡을 수가 없었다. 쫓으려고 주변을 샅샅이 뒤적였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무림에 외유를 하겠다며 나가더니만 결국엔 연막과 독침을 날리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하하하!”
참으로 허무했다. 목검은 시커멓게 탔다. 독고무흔이 날린 독침은 화골산을 탄 것이다. 그놈의 목적은 어차피 달아나는 것이니, 성취로 보아 잡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연막에 독침까지 쓰며 도망치는 자는 설령 하류배라고 해도 잡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결국은…….”
“따라왔구만.”
천지괴협 장학선은 걱정되었다. 해서 무당, 소림, 공동, 개방, 남해파의 수장들과 함께 달려왔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한 발 늦었다. 아직도 뿌연 연기가 가시지 않았다.
“대단한 연막이야. 틀림없이 백무탄(白霧彈)이로군.”
“잘 보았네. 아무리 무신지경의 고수라도 잠시의 시간 동안은 한 치 앞도 못 보게 만드는 최고의 연막탄이지. 목검을 보게나.”
“이건 화골산을 탄 독침?”
“그렇다네. 저놈이 무림에 외유하겠다고 나가고선 어디서 저따위 수법이나 배워 써먹을 줄 누가 알았겠나. 하하! 지난 세월이 참으로 서글프이.”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 눈물과 함께 몸을 가누지 못했다. 장학선이 오른쪽 팔로 부축했다.
“자네들은 무림 전체에 독고무흔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게. 그놈은 아비를 배신하고, 마공비급과 마물을 훔쳐 달아났으니! 무림에 큰 해악이 될 것이야. 서둘러 조처하게.”
“존명!”
장학선은 정파의 지존이나 다름이 없었다.
며칠 후, 소식을 듣고 흑월신교의 교주와 독산장파의 장문인도 찾아왔다. 극심한 충격에 사로잡힌 검신은 만사에 의욕이 없었다. 정을 쏟아 어떻게든 바르게 잡으려고 했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어디서 사악한 암수까지 배우고 다녔단 말인가.
“백무탄과 화골독침은 중원무림에선 잘 안 쓰는 것인데… 만 장문이 말해 보게.”
“대선배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새외무림의 일류살수들이 쓰는 도구로 무신지경의 고수라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새외무림에서 이런 도구를 쓰는 살수들이라면 누군가?”
“새외 서쪽의 살수들입니다. 그쪽은 중원과의 교역 중심지인데다, 치열하게 상권을 다투는 곳이라 청부 살인이 흔하니까요.”
“독고무흔이 무림을 돌아다니며 어느 순간 그것들과 접촉했다는 이야기로군. 일류살수들은 정보 수집에 능하니 그놈이 품은 불만의 근원을 알았을 것이고.”
독산장파의 장문인 만유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무림의 정, 사파는 그 일로 독고무흔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독고무흔도 미련하지 않으니, 자신에게 체포령이 내려질 것이 분명하므로 새외로 달아났을 것은 분명했다. 일은 참으로 공교롭게 됐다. 그를 잡으러 갔던 고수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결국 무림의 공적이 되어, 척살령이 내려지게 됐다.
무림의 명사들이 떠난 후 검신은 심하게 늙었다.
“며칠 사이에 부쩍 늙었어.”
“나이는 못 속이는 법이라네. 무흔이 그놈에게 걸었던 모든 기대가 무너졌으니, 우리의 대결은 자네가 이겼네. 그놈의 자질은 보았으되 심성을 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우이. 하지만! 나에게도 희망이 생겼어.”
“청보를 말함인가?”
“그렇다네. 어차피 중원무림엔 명사도 많고, 훌륭한 적전수제자들도 있어. 그놈이 활보하기 어렵겠지. 청보 그녀석이 대단해. 무흔이가 암수를 쓰려는 것을 알고 경계해서 기선을 제압한 것 말이야. 청보를 죽이려면 암수가 확실히 먹힐 상황을 만들거나 무공이 월등하게 우위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미수에 그친 것이지.”
“그놈은 참을성이 부족해.”
“다음엔 그렇진 않을게야. 확실히 데였으니 그놈도 깨닫는 바가 있겠지. 덕분에 정으로 흔들 순 없지만 걸림돌을 만들어준 셈이 아닌가.”
장학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신은 장학선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자네 제자의 반을 내가 갖고 싶네만… 그것은 내 욕심인 것 같으이. 무림과는 상관없이 청보는 나와 자네의 희망이야. 원래부터 자질이 없는데다, 지병을 달고 살아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제약이 많겠지. 어떤가? 우리가 한 일이 년 전력을 다해 청보의 경혈을 뚫고, 내공으로 동풍을 완치시켜서 지금의 일대종사들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 말이네.”
“좋아. 결국 자네 아들놈이 차 버린 복을 청보가 받는구만.”
“지금으로도 청보는 일대종사들과 겨뤄도 백 초식 안에는 패하지 않을 거네. 하나 그들과는 부딪치지 않는 게 좋겠어. 오랫동안 바보로 알아온 사람이 뜬금없이 자네 제자랍시고 광풍을 몰아치면, 모난 돌이 정 맞으니까.”
“자네 말이 맞아. 해서 무흔에 대한 일은 정사의 종사들에게 맡기고, 향후 무림의 대권도 그들에게 일임한 것이야. 나는 청보가 내 후계자가 되어, 새로운 명성을 쌓아 일가를 세우기 바라네. 그때쯤 되면 영봉장과 남해파도 생각이 달라지겠지.”
두 사람의 얼굴은 환해졌다. 검신은 양자를 잃었지만, 희망을 얻었다. 바로 단청보였다. 독고무흔에게서 무너진 기대는 단청보에게 향했다.
‘촤아아아.’
거센 물소리가 용솟음치는 심해연.
단청보는 백 초식을 능수능란하게 견뎌냈다. 사부님은 독고무흔의 일로 풍릉곡으로 갔고, 자신은 이곳에서 수련을 계속했다.
문제는.
“독고 형은 결국 패도를 위해 힘을 선택했는데, 나는 내가 쌓은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일까.”
확고하게 세운 신념이 없었다. 검신 할아버지의 말처럼 고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바다를 보며, 휘두르는 칼날은 가슴을 시원하게 뚫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칼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의가 서지 않은 셈이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