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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흥미였던 것 같았다. 단순한 변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강현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었다.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으니까. 늘 똑같은 상황에 지루해졌던 참이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강현은 그 정도 마음밖에 없었다. 때문에 너무나 쉽게 여자에게 다가갔다. 본인이 먼저 여자에게 다가간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나랑 갈 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보면 천박하게 들릴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짤막한 대시였다. 하지만 상대가 강현이었기에 그 어떤 남자들보다 매력적이었다. 스스로는 그것을 알지도, 알 필요도 느끼지 못했지만. 누군가를 꼬셔 본 적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사람을 홀릴 줄 아는 강현이었기에 통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현을 보고 사람들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이유는 그런 강현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처음 강현이 이곳에 왔었을 때부터 강현을 봐 왔던 가게 직원들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강현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강현의 대시를 받은 행운의 여인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여자는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무관심한 말투로 강현에게 물었다.
“내가 가자고 하면, 갈 건가요?”
그건 또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강현이 놀랍다는 듯 흥미로운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여자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대답이군.”
“칭찬으로 들을게요.”
강현이 여자의 팔을 잡아당기자 여자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강현이 이끄는 대로 강현의 품에 들어왔다. 강현의 말에 지지 않고 맞받아치며 말이다. 그 말에 강현이 정말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본인이 얼마 만에 웃어 보는 건지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강현이 기분 좋은 얼굴로 여자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 여자는 강현을 거부하지 않았다.
무감각한 표정으로 그를 거부하지 않는 여자의 모습에 강현은 정말로 기분 좋게 웃어 보이며 다시 한 번 여자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 * *


“……하아. 하. 잠, 잠깐만.”
“나중에.”
“그, 그만…… 흐읍…….”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현관 벽에 몸을 붙이고 한쪽 허벅지를 다리 사이에 끼워 넣은 채 무자비한 키스를 강행해 오는 강현으로 인해 여자가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강현은 막무가내였다.
여자가 숨이 막히다고까지 말했지만, 강현은 키스를 좀 느리게 할 뿐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여자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으려고 하자 그제야 강현이 키스를 멈추고는 한쪽 허벅지로 여자가 넘어지지 않게 지탱한 후, 여자를 안아 들었다. 좀 전의 키스는 그게 목적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이어진 무자비하고 농도 높은 키스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여자가 그것을 생각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강현이 자신을 들어 올리자 쉽게 강현의 목에 팔을 둘러 강현을 끌어안았다. 떨어지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강현도 순간 그리 느꼈던 듯 잠시 멈칫거리다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여자를 침실로 데려갔다. 강현이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자 여자가 그제야 처음으로 당황한 듯한 얼굴로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듯 강현이 기분 좋게 웃어 보이자 여자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강현이 그런 여자를 보며 다시 진하게 입을 맞추었으니까.
강현은 키스로 여자의 정신을 빼놓는 사이,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어느새 여자의 셔츠 단추를 풀고 브래지어 후크를 풀고 있었다. 브래지어 후크가 풀리자 속박되어 있던 가슴이 풀려나는 느낌에 여자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으나 그래 봤자 이미 늦은 후였다.
“……잠. 하아! 앗! 응.”
“소리 내. 소리 내도 나 말고 들을 사람 없어.”
누가 그게 문제라 입을 막고 있는가. 그저 본능적인 행동이었고, 강현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짓궂게도 그리 말했다. 그러면서도 양손으로 여자의 가슴을 잡고 입으로 여자의 가슴을 괴롭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아. 아. 그, 그만!”
여자의 입에서 애원까지 튀어나왔지만 강현은 가차 없었다. 이윽고 여자가 쾌락에 지배당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반항할 힘 하나 없이 침대에 축 늘어져 있자 강현이 여자를 괴롭히던 것을 멈추고는 상체를 들어 올렸다.
강현이 행위를 멈추자 여자가 힘이 쭉 빠진 듯 침대에 늘어져 있으면서도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그렇게 멀쩡한 정신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여자를 내려다보며 강현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뭔가 불길함을 느낀 여자가 서둘러 강현의 행동을 멈추려고 했으나 한발 늦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적중했다. 강현이 여자가 상체를 들어 올리려 하자, 타이밍 좋게 여자의 다리를 들어 올렸으니까.
“……!”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고개가 꺾이고, 등이 세게 휘어졌다. 강현의 손이 여자의 은밀한 곳을 거침없이 헤집자 상체를 들어 올리려던 여자의 행동은 무산되고 말았다. 정신없이 은밀한 곳을 헤집는 강현의 손에 대응하기 바빴으니까.
예상보다 강한 반응이었으나 무뚝뚝하고 견고하던 여자가 이렇게까지 흐트러지니 강현은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여자의 안에 넣었을 때였다.
“……!”
“……아!!”
아무것도 모르고 거침없이 자신의 것을 치켜 올리고 나서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현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그리고 자신의 배려 없던 행동도 마음에 걸렸다.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욕망에 충실했던 행위였다. 쉽게 받아들이고, 쉽게 했던 행위였기에 거침이 없었고,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라도 처녀였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안기로 결정하고, 그녀가 수락한 이상 어차피 할 것이었지만 조금 더 배려 있게 안았을 것이다. 이렇게 욕망에만 충실하게가 아니라.
그렇게 여자의 안에 자신의 것을 넣은 채로 강현은 상황에 맞지 않게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하고 있는데, 여자가 고통과 쾌락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태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팔을 뻗어 강현을 끌어안았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강현이 어찌할 줄 모르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강현을 끌어안은 채 있는 힘을 끌어 모아 강현을 향해 속삭였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너.”
“멈추지 말아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강현이 굳어 있던 몸을 풀며 여자를 끌어안기에는. 여자를 끌어안은 강현이 여자의 목에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몇 번이나, 답지 않게 자신의 자국이 남기를 바라며. 그렇게 몇 번을.
그리고 그 뒤로는 망설이지 않았다. 더없이 부드럽고 따스하게, 거칠고 욕망이 가득한 것은 그대로였지만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는 애정이 가득한, 그런 섹스였다.
난폭한 움직임에도 키스는 다정했고, 눈빛은 따스했다. 서로 그것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눈치채지 못한 채 서로를 탐닉했지만 서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아. 앗! 아!!”
“……하아.”
절정에 다다르고, 황홀했던 시간이 막을 내리는 것을 느끼며 여자가 정신을 잃기 직전, 강현이 여자를 깨우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군.”
“……그런 게 필요한가요?”
확실한 거절. 그러면서도 그 말의 의미를 강현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원나잇이었다. 단 하룻밤. 즐기는 것은 오로지 섹스.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이 순간 처음 맛보는 즐거움에 취해 그것을 잊고 있었다.
강현은 더 이상 여자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대신 여자의 위로 쓰러지며 당연스럽게 여자를 끌어안을 뿐. 여자도 그 무엇 하나 알려 주려 하지 않았지만 강현을 거부하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지만 서로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만남부터가 이상한 것이었으니.
여자를 끌어안고 여자의 머리에 얼굴을 묻으며 강현은 눈을 감았다. 코끝에 스며 들어오는 향긋한 향기와 온몸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 지금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강현이 잠이 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 *


강현이 눈을 떴을 때는 옆에서 느껴지던 따스한 체온도, 팔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존재감도 없었다. 옆이 허전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상대가 옆에 누워 있으면 불쾌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것이 기분이 나빴다.
인상을 쓰며 상체를 일으키자 휑한 호텔 안과 싸한 분위기에 강현은 짜증이 난 듯 험악한 얼굴을 했다. 그것이 무척이나 싫은 듯했다.
기분 나쁘다는 티를 역력히 드러내며 욕실로 들어가는데 아직 수증기가 남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그것에 기분이 좋아지자 어젯밤 일이 정말로 현실로 다가왔다. 씻고 나온 강현은 대충 물기를 제거하고 서둘러 가운을 걸친 후, 재빠르게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걷었다. 이불을 걷자, 새하얀 시트에 붉은 혈흔이 분명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비로소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로 처음이었어.”
이상하게 그것에 나른한 만족감을 느꼈다. 입가에는 부드럽게 미소가 지어졌고 말이다. 침대에서 시선을 돌린 강현은 침대 밑에 있는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하나둘씩 벗어 놓았던 옷들을 챙겨 입자 이제는 정말로 처음 들어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누군가 자고 간 흔적이 역력한 침대뿐.
그것에 다시 기분이 상해 조금 인상을 쓰며 호텔을 나가려 발걸음을 돌리는데 발에 뭐가 걸렸다.
“……?”
그 느낌에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자 발밑에 카드가 있었다. 이 호텔에 있을 리 없는, 자신의 것이 아닌 카드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그녀의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평소라면 무심하게 지나갔을 텐데도 불구하고 상체를 숙여 카드를 집어 들어 그것을 확인했다.
카드를 확인하자 정말로 그것이 그녀의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하게 그녀의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난생처음 겪어 보는 기이한 인연이었다. 마치 신데렐라 같았다. 비록 그 신데렐라가 21세기의 사람이었고, 그 신데렐라가 놓고 간 것은 유리구두가 아닌, 한 장의 카드였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가 두고 간 카드는 그녀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국대학교 의학과 11학번 정하나

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강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