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계약하시겠습니까?
1화
프롤로그
식사를 준비 중인 유나의 손이 분주했다. 남자의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소리 내며 움직일 때마다 유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빨리 국에 넣을 채소도 썰고 밑반찬도 해 놔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는다. 자꾸만 고개 돌려 흘깃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재진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됐다.
그 남자 얼굴을 어떻게 보지? 아니 무엇보다, 아침에 그가 던지고 간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철컥.
채소를 썰며 끙끙거리던 유나는 문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을 바짝 굳혔다. 말도 안 돼. 그가 벌써 퇴근했나? 퇴근 시간까지는 30분도 넘게 남았는데.
“김유나 씨.”
남자 특유의 낮고 허스키한 저음이 들려왔다. 유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인데 벌써부터 심장이 방망이질을 친다.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여전히 시선은 도마에 고정한 채 재료 손질에 집중하고 있는 척했다.
“아……. 오늘 일찍 오셨네요. 아직 음식이 다 안 됐는데 어쩌죠.”
“괜찮습니다. 일부러 일찍 온 겁니다.”
유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담긴 물음을 읽었는지 넥타이를 풀어내던 남자가 담백하게 답한다.
“김유나 씨 대답, 빨리 듣고 싶어서요.”
멍한 얼굴로 재진을 바라보던 유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급히 고개를 다시 도마 위로 떨구며 유나는 애꿎은 입술만 괴롭혔다.
그걸 대체 왜 빨리 듣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언제나 자신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재료를 손질하는 둥 마는 둥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등 뒤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목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왜 그렇게 긴장하십니까.”
이 남자의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듯도 했고, 아예 온몸의 힘을 빼놓는 것도 같았다. 머리 위에서 울린 목소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목 뒤로는 잔털이 쭈뼛하고 서는데 반대로 다리는 힘이 풀렸다.
“기, 긴장 안 했어요.”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데 스스로 들어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긴장한 모습이다. 그를 마주하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 해도 자꾸만 그를 의식하게 된다. 유나는 그저 남자가 빨리 그의 방으로 사라져 주기를 바랐건만 재진은 그녀와의 거리를 성큼 좁혔다.
등 뒤로 그의 몸이 바싹 붙어 왔다. 단단한 남자의 상체가 옷 위로도 선명히 느껴져 심장이 널뛰기하듯 쿵쾅거렸다. 도마 위에 어정쩡하게 올리고 있던 유나의 팔을 재진이 가볍게 거머쥐듯 잡으니 싱크대를 앞에 두고 그에게 갇힌 셈이 돼 버렸다. 옴짝달싹 못하게 몸이 붙어 있는 탓에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구석에 몰린 유나의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대형 사고는 어제로 족했기에 유나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요리해야 하는데…….”
“좀 이따 하셔도 됩니다.”
“배고프실 텐, 흐읏.”
예고도 없이 입술이 목덜미 위로 내려앉듯 꾹 눌려졌다. 유나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하얀 목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걸 본 재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유나는 받은 자극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피하듯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리니 이번엔 입술이 귓불을 건드린다. 축축하게 닿는 뜨거움이 귓바퀴를 따라 살살 움직이자 어제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위로 펼쳐졌다. 숨이 가빠지고, 몸에 열기가 올랐다.
“지금은 다른 게 먹고 싶네요.”
“하으…… 잠깐…….”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음담패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유나는 본인의 귀를 의심할 뿐이었다. 그녀가 잠깐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팔목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이 에이프런 안으로 들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유나는 무릎 위로 올라가 살짝 짧다는 느낌을 주는 하얀 원피스 위에 분홍 에이프런을 걸친 채였다. 재진은 능숙한 손길로 하얀 원피스의 등 쪽 지퍼를 내렸다.
“……도재진 씨!”
“더위도 많이 타면서 왜 이렇게 껴입었습니까.”
미치겠다. 그가 허리 끝까지 이어져 있던 지퍼를 내리니 원피스가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어깨와 팔뚝에 애매하게 걸쳐진 옷이 불편했다. 앞에서 본다면 그냥 옷이 조금 흘러내린 것뿐이겠지만 뒤에서는 등이 훤하고 속옷이 다 보일 거다. 이건 옷을 벗은 것도, 안 벗은 것도 아니다. 날 수치스럽게 해서 죽이려는 속셈일까?
유나는 문득 그가 제 등 뒤에 있단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눈이라도 마주 봐야 하는 자세였다면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부끄러워 터져 버렸을 거다. 유나는 더듬더듬 팔을 뒤로 뻗어 헐렁하게 걸쳐진 제 옷을 끌어내리고 있는 재진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안, 돼요…….”
“뭐가 안 됩니까.”
“……지금 하시는 거요.”
“제가 지금 뭘 하고 있죠?”
유나는 울먹였다. 이 남자 정말 못됐다. 남자는 전혀 장난하는 것 같지 않은 말투로 말장난을 했다. 그가 저런 식으로 말할 때면 유나는 정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샌가 빨라진 호흡 때문에 말이 뚝뚝 끊어져 나왔다.
“옷, 벗기시면 안 돼요. 추워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요…….”
사실 안쓰러운 거짓말이었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유나의 체질상, 암만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들 이 정도 온도로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남자가 정말 자신을 홀딱 벗길 것만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재진은 유나의 거짓말을 간파한 듯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다가 은근한 음성으로 그녀를 회유했다.
“다 벗기진 않을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안 벗기면 안 벗기는 거지, 다 벗기진 않겠다는 건 무슨 뜻이지?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기도 전, 남자의 행동이 빨랐다.
“앗!”
그의 커다란 손이 치맛자락을 헤치고 들어오더니 매끄러운 허벅지를 쓸어 올린다.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꾼 손은 이번엔 통통한 허벅지 뒤쪽 살을 쓰다듬다 한 움큼 잡아 쥐었다. 으응……. 신음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가 만지면 항상 이런 식이다. 아무렇지 않던 감각은 날카롭게 변했고, 작은 터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나가 앓듯 소리 내며 다리를 꼬자 남자가 뒤로 붙어 귓불을 물었다.
잘근잘근. 씹혀지고 있다. 남자에게 산 채로 먹히고 있는 기분이다. 점점 위험해지는 분위기에 유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하읏, 흣…… 하지, 마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남자가 좀 더 힘을 줘 허벅지 뒤쪽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살이 그의 손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쓸렸다. 덕분에 유나의 하얀 피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 기분이 너무…… 이상해…….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끈적하고 야릇한 감각에 애써 신음을 참아 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입술을 꾹 다물어도 자꾸만 잇새로 숨기지 못한 소리가 흘러 나갔다. 유나 스스로가 들어도 색정적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내는 소리란 말이야?
“흥분되십니까.”
그가 상체를 붙여 귀에 작게 속살거렸다. 턱까지 소름이 돋아난다. 유나는 겨우 힘을 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럼 지금 내는 소리는 뭐죠?”
“이건, 으응, 흐…… 아무것도…….”
유나는 끙끙거리며 다리를 계속 꼬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욕망하는 게 분명한 아래쪽이 끝도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가 주무르고 있는 부위가 허벅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하필. 유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른 곳이라 한들 뭐가 달랐을까. 그가 주는 쾌락은 부위를 가리지 않고 유나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재진은 계속 부정하는 유나를 심문하듯 치맛자락 아래서 움직이던 손의 위치를 좀 더 안쪽으로 옮겼다.
“아읏!”
유나는 결국 비명처럼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재진이 검지 하나로 그녀 속옷 위 질구 쪽을 가볍게 문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준 자극에 이미 젖어 있던 속옷은 축축해서 손가락에 애액이 그대로 묻어났다.
유나는 쾌감과 부끄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재진은 뒤에서 그런 그녀를 관찰하며 손가락에 힘을 줬다. 작게 원을 그리듯 움직이다 속옷 위로 그녀의 움푹 갈라진 틈을 자극한다. 파인 그곳을 훑으며 세게 문지르니 유나가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여기는 벌써 다 젖었는데, 계속 거짓말할 겁니까.”
아래를 괴롭히는 손가락도, 내뱉는 말도 하나같이 못된 남자다. 그래도 밀어 내질 못하니 어쩌면 이상한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
유나는 거의 앞으로 무너지다시피 한 자세로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조금만 긴장의 끈을 놓으면 어젯밤처럼 또다시 그에게 매달려 엉엉 울며 재촉할 것 같았다. 재진은 말없이 참기만 하는 유나의 태도가 불만족스러운지 아까의 벗기다 만 유니폼을 다시금 잡아 내렸다.
“아!”
안 그래도 지퍼가 내려간 원피스는 그녀의 팔과 골반에 겨우겨우 걸쳐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천천히 팔에서부터 옷을 끌러 내리기 시작했다. 재진이 에이프런 안의 원피스만을 벗겨 내리자 옷가지는 손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1화
프롤로그
식사를 준비 중인 유나의 손이 분주했다. 남자의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이 소리 내며 움직일 때마다 유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빨리 국에 넣을 채소도 썰고 밑반찬도 해 놔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는다. 자꾸만 고개 돌려 흘깃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재진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됐다.
그 남자 얼굴을 어떻게 보지? 아니 무엇보다, 아침에 그가 던지고 간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철컥.
채소를 썰며 끙끙거리던 유나는 문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을 바짝 굳혔다. 말도 안 돼. 그가 벌써 퇴근했나? 퇴근 시간까지는 30분도 넘게 남았는데.
“김유나 씨.”
남자 특유의 낮고 허스키한 저음이 들려왔다. 유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인데 벌써부터 심장이 방망이질을 친다.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여전히 시선은 도마에 고정한 채 재료 손질에 집중하고 있는 척했다.
“아……. 오늘 일찍 오셨네요. 아직 음식이 다 안 됐는데 어쩌죠.”
“괜찮습니다. 일부러 일찍 온 겁니다.”
유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담긴 물음을 읽었는지 넥타이를 풀어내던 남자가 담백하게 답한다.
“김유나 씨 대답, 빨리 듣고 싶어서요.”
멍한 얼굴로 재진을 바라보던 유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급히 고개를 다시 도마 위로 떨구며 유나는 애꿎은 입술만 괴롭혔다.
그걸 대체 왜 빨리 듣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남자는 언제나 자신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재료를 손질하는 둥 마는 둥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등 뒤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목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왜 그렇게 긴장하십니까.”
이 남자의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듯도 했고, 아예 온몸의 힘을 빼놓는 것도 같았다. 머리 위에서 울린 목소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목 뒤로는 잔털이 쭈뼛하고 서는데 반대로 다리는 힘이 풀렸다.
“기, 긴장 안 했어요.”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데 스스로 들어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긴장한 모습이다. 그를 마주하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 해도 자꾸만 그를 의식하게 된다. 유나는 그저 남자가 빨리 그의 방으로 사라져 주기를 바랐건만 재진은 그녀와의 거리를 성큼 좁혔다.
등 뒤로 그의 몸이 바싹 붙어 왔다. 단단한 남자의 상체가 옷 위로도 선명히 느껴져 심장이 널뛰기하듯 쿵쾅거렸다. 도마 위에 어정쩡하게 올리고 있던 유나의 팔을 재진이 가볍게 거머쥐듯 잡으니 싱크대를 앞에 두고 그에게 갇힌 셈이 돼 버렸다. 옴짝달싹 못하게 몸이 붙어 있는 탓에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구석에 몰린 유나의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대형 사고는 어제로 족했기에 유나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요리해야 하는데…….”
“좀 이따 하셔도 됩니다.”
“배고프실 텐, 흐읏.”
예고도 없이 입술이 목덜미 위로 내려앉듯 꾹 눌려졌다. 유나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하얀 목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걸 본 재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유나는 받은 자극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피하듯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리니 이번엔 입술이 귓불을 건드린다. 축축하게 닿는 뜨거움이 귓바퀴를 따라 살살 움직이자 어제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위로 펼쳐졌다. 숨이 가빠지고, 몸에 열기가 올랐다.
“지금은 다른 게 먹고 싶네요.”
“하으…… 잠깐…….”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음담패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유나는 본인의 귀를 의심할 뿐이었다. 그녀가 잠깐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팔목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이 에이프런 안으로 들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유나는 무릎 위로 올라가 살짝 짧다는 느낌을 주는 하얀 원피스 위에 분홍 에이프런을 걸친 채였다. 재진은 능숙한 손길로 하얀 원피스의 등 쪽 지퍼를 내렸다.
“……도재진 씨!”
“더위도 많이 타면서 왜 이렇게 껴입었습니까.”
미치겠다. 그가 허리 끝까지 이어져 있던 지퍼를 내리니 원피스가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어깨와 팔뚝에 애매하게 걸쳐진 옷이 불편했다. 앞에서 본다면 그냥 옷이 조금 흘러내린 것뿐이겠지만 뒤에서는 등이 훤하고 속옷이 다 보일 거다. 이건 옷을 벗은 것도, 안 벗은 것도 아니다. 날 수치스럽게 해서 죽이려는 속셈일까?
유나는 문득 그가 제 등 뒤에 있단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눈이라도 마주 봐야 하는 자세였다면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부끄러워 터져 버렸을 거다. 유나는 더듬더듬 팔을 뒤로 뻗어 헐렁하게 걸쳐진 제 옷을 끌어내리고 있는 재진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안, 돼요…….”
“뭐가 안 됩니까.”
“……지금 하시는 거요.”
“제가 지금 뭘 하고 있죠?”
유나는 울먹였다. 이 남자 정말 못됐다. 남자는 전혀 장난하는 것 같지 않은 말투로 말장난을 했다. 그가 저런 식으로 말할 때면 유나는 정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샌가 빨라진 호흡 때문에 말이 뚝뚝 끊어져 나왔다.
“옷, 벗기시면 안 돼요. 추워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해요…….”
사실 안쓰러운 거짓말이었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유나의 체질상, 암만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들 이 정도 온도로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변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남자가 정말 자신을 홀딱 벗길 것만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재진은 유나의 거짓말을 간파한 듯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다가 은근한 음성으로 그녀를 회유했다.
“다 벗기진 않을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안 벗기면 안 벗기는 거지, 다 벗기진 않겠다는 건 무슨 뜻이지?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기도 전, 남자의 행동이 빨랐다.
“앗!”
그의 커다란 손이 치맛자락을 헤치고 들어오더니 매끄러운 허벅지를 쓸어 올린다.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꾼 손은 이번엔 통통한 허벅지 뒤쪽 살을 쓰다듬다 한 움큼 잡아 쥐었다. 으응……. 신음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가 만지면 항상 이런 식이다. 아무렇지 않던 감각은 날카롭게 변했고, 작은 터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나가 앓듯 소리 내며 다리를 꼬자 남자가 뒤로 붙어 귓불을 물었다.
잘근잘근. 씹혀지고 있다. 남자에게 산 채로 먹히고 있는 기분이다. 점점 위험해지는 분위기에 유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하읏, 흣…… 하지, 마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남자가 좀 더 힘을 줘 허벅지 뒤쪽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살이 그의 손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쓸렸다. 덕분에 유나의 하얀 피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 기분이 너무…… 이상해…….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끈적하고 야릇한 감각에 애써 신음을 참아 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입술을 꾹 다물어도 자꾸만 잇새로 숨기지 못한 소리가 흘러 나갔다. 유나 스스로가 들어도 색정적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내는 소리란 말이야?
“흥분되십니까.”
그가 상체를 붙여 귀에 작게 속살거렸다. 턱까지 소름이 돋아난다. 유나는 겨우 힘을 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럼 지금 내는 소리는 뭐죠?”
“이건, 으응, 흐…… 아무것도…….”
유나는 끙끙거리며 다리를 계속 꼬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욕망하는 게 분명한 아래쪽이 끝도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가 주무르고 있는 부위가 허벅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하필. 유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른 곳이라 한들 뭐가 달랐을까. 그가 주는 쾌락은 부위를 가리지 않고 유나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재진은 계속 부정하는 유나를 심문하듯 치맛자락 아래서 움직이던 손의 위치를 좀 더 안쪽으로 옮겼다.
“아읏!”
유나는 결국 비명처럼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재진이 검지 하나로 그녀 속옷 위 질구 쪽을 가볍게 문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준 자극에 이미 젖어 있던 속옷은 축축해서 손가락에 애액이 그대로 묻어났다.
유나는 쾌감과 부끄러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재진은 뒤에서 그런 그녀를 관찰하며 손가락에 힘을 줬다. 작게 원을 그리듯 움직이다 속옷 위로 그녀의 움푹 갈라진 틈을 자극한다. 파인 그곳을 훑으며 세게 문지르니 유나가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여기는 벌써 다 젖었는데, 계속 거짓말할 겁니까.”
아래를 괴롭히는 손가락도, 내뱉는 말도 하나같이 못된 남자다. 그래도 밀어 내질 못하니 어쩌면 이상한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
유나는 거의 앞으로 무너지다시피 한 자세로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조금만 긴장의 끈을 놓으면 어젯밤처럼 또다시 그에게 매달려 엉엉 울며 재촉할 것 같았다. 재진은 말없이 참기만 하는 유나의 태도가 불만족스러운지 아까의 벗기다 만 유니폼을 다시금 잡아 내렸다.
“아!”
안 그래도 지퍼가 내려간 원피스는 그녀의 팔과 골반에 겨우겨우 걸쳐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천천히 팔에서부터 옷을 끌러 내리기 시작했다. 재진이 에이프런 안의 원피스만을 벗겨 내리자 옷가지는 손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