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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25화)
8. 한 번 밉상은 끝까지 밉상(6)
하지만 그런 것을 가만히 지켜 볼 카이론이 아니었다.
콕.
“크캬아!”
“어디서 꼬나 보고 지랄이야!”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변해 버린 모습이 상당히 징그러워 망설일 법도 하였지만 카이론은 자신을 노려보는 두 붉은 눈을 손가락으로 콕 찍어 버렸다.
“마일드 기사님.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시간적인 측면이 많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빨리 왕궁에 알리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는 영지들로 소문을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소문?”
“예. 소문이요. 이번 일이 어떻게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영지에 좋지 않은 쪽으로 커진다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향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뭐 그렇게 안 될 확률이 높긴 하지만 사전에 준비해 놓는 것은 나쁘지 않겠죠. 죽더라도 그냥 죽는 게 아닌 다른 이들에게 최대한 원수들의 정보를 주는 것.”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곳은 확실히 권력이 깡패인 곳이다.
“아마 왕궁에 연락을 한 다음에는 성기사가 와서 영지를 들쑤시겠지만 뭐 어떻게 합니까. 힘없는 게 죄죠. 그리고 딱히 꿀리는 것이 있다면 확실하게 처리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카이론의 말을 이해는 하지만 생각해 보니 앞으로 일어날 일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집을 생판 모르는 이들이 와서 설친다는 생각은 절대로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이거 영지민들에게 사전에 경고해 두는 것이 좋겠군.”
“헐.”
“왜 그러느냐?”
카이론의 반응에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마일드를 향해 카이론은 욕먹을 말을 내뱉었다.
“너무 옳은 말을 해서 말입니다.”
“끙.”
상당히 뒤늦은 생각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느끼는 마일드였다.
그런 마일드와는 다르게 카이론은 어느새 기절해 버려 더 이상은 재생 능력의 힘을 받지 않는 에가밀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끝까지 밉상이구나. 빌어먹을!’
귀찮은 일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라이크 가드 1권(25화)
8. 한 번 밉상은 끝까지 밉상(6)
포로무 왕국의 안정의 정원이라 불리는 왕성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취급되는 국왕 전용의 정원에서는 국왕이 길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채 눈앞에 차려진 작고 새하얀 찻잔을 들었다.
나이가 든 뒤로는 술보다는 이런 차 종류가 상당히 끌리게 된 국왕 폰자하일 5세는 항시 국무를 본 뒤 이렇게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며 홀로 사색에 잠기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왠지 국왕의 젊었을 적을 보는 것 같은 약 40대 중반의 중년인과 함께 차를 즐기고 있었다.
“형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평범한 중년은 아니었다. 나이가 많은 국왕이 훨씬 더 어린 중년인에게 형님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만으로 절대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호칭을 국왕은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이 안정의 정원은 자신만의 공간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포로무 국왕이 형님이라 칭하는 유일한 인물. 그는 마법에 미친 사람으로 알려진 포로무 왕국의 7서클 궁정 마법사인 파미로였다.
왕족의 성을 포기하고, 일개 마법사가 되어 대륙에 몇 없는 7서클에 오른 뛰어난 인물이다. 지금의 젊은 모습도 검사나 마법사로서 그 능력이 인간임을 넘어서게 되는 순간 겪는 바디 체인지 덕분이었다.
실질적으로는 폰자하일 5세보다 몇 년 앞서 세상에 태어난 인물이었다.
“확실히 조금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하구나.”
비슷한 생김새와 비슷한 음성으로 서로 비슷하게 보일 때에는 가끔 대리 역할을 해 준 적이 있는 파미로는 국왕이기 이전에 자신의 동생인 폰자하일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 신성 제국에서 움직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신성 제국이 움직여 우리 왕국의 꼬투리를 잡는다면 문제가 되긴 하겠지. 거기에 너에게 올라온 보고를 나도 들었다. 절단면에서 촉수 같은 것이 튀어나와 베어졌던 팔이 다시 붙었다는 등의 말을 말이다.”
“예. 그랬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몬스터 중에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는 것은 역시!”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거기에 더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그것은 아마 데드 스웜에 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데드 스웜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주 작은 마계의 벌레다. 너무 작아 사람의 시각으로는 구별이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이나 몬스터 등 생명이 있는 것에 기생하며 뇌를 좀먹는 녀석이다.”
“그렇다면 상당히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럴 수가 있고, 아니라면 아닐 수가 있단다. 내가 책에서 본 것으로는 마계에서는 나름 번식력을 자랑하지만 이 지상계에서는 단 하나의 알밖에 낳지 못한다고 하더구나.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올라오는 것을 확인해 보고 확실하다면 그것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긴 하다만…….”
“하지만 다른 자들 역시 그런 데드 스웜에게 좀 먹혔다면 문제가 되겠군요.”
“그래, 인간의 뇌를 좀먹으며 살아가는 것이 상당히 질긴 녀석이다. 거기에 쉽게 발견되지 않아. 극도로 흥분하지 않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사람의 뇌를 파먹을 뿐이지. 물론 뇌를 파 먹힌 사람들은 조금씩 판단 능력이 약해지게 되며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알고 있단다. 그런 변화가 미비했기에 가족들조차 못알아 본다고 하더구나. 그러다 결국 그대로 죽는 일이 발생하지. 하지만 만일 극도로 흥분하게 된다면 모논 영지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변화를 일으킨다고 알고 있다.”
어찌 들으면 그다지 위험한 생명체는 아니었다.
“그렇군요. 평민들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럭저럭 괜찮긴 하겠지만 높은 귀족들에게 기생하면 조금 문제가 커질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 네 말 대로다. 잘 발견되지 않고, 조금씩 변하기에 사람들은 알고도 그대로 당할 법한 일이지. 거기에 마법으로는 찾아 낼 수가 없단다. 순수하게 신성력으로만 찾아 낼 수가 있단다. 이번에 발견된 것이 과거부터 살아남은 것이라면 그럭저럭 괜찮긴 하겠다만…….”
파미로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무슨 문제라도?”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생각을 해 보면 상당히 큰 문제가 될 수가 있단다. 만약 누군가가 데드 스웜을 소환했다면? 그렇다면 누가 소환을 했을 것 같으냐?”
“흑마법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이 세상에 그런 짓을 할 자들은 어둠 속에 묻힌 그 지저분한 녀석들뿐이겠지.”
흑마법사에 대한 말을 하는 파미로의 표정은 조금 전과 같이 너그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과연 그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마도의 길을 추구한다는 백마법사와는 정반대 되는 흑마법사는 마도의 길을 걷는 파미로를 떠나 왕국, 아니, 대륙에 있어서도 적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선왕이자 파미로의 아버지인 폰자하일 4세를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이들이기도 했다.
단지 몇 사람이 계획하고 움직였다는 것만으로도 한 나라의 국왕이 스스로 자결을 택하게 만든 이들!
더럽고, 역겹고, 음침하며, 존재 그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마법사라는 칭호를 같이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싫은 존재들이 흑마법사였다.
그것은 현 국왕인 폰자하일 5세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파미로만큼은 아니었다.
아니, 어찌 보면 파미로가 저렇게 흑마법사에 대해 증오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신성 제국에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군요.”
“그래, 너무 거절하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욱 나을 거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흑마법사를 색출해 낼 수 있다면 훗날 감당하기 힘든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어 더욱 좋겠지.”
“역시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폰자하일 역시 파미로와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다른 왕국의 병력을 들이는 것은 탐탁지 않은 일이지만 그들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먼저 나서지 않더라도 정보를 얻는다면 신성 제국에서 먼저 조사단을 파견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슬쩍 신성 제국에 정보를 흘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조금 고생스럽겠지만 그렇게 하거라. 나는 우선 데드 스웜에 먹힌 자에 대해 조사하도록 할 테니 말이야.”
“언제나 고맙습니다, 형님.”
“허허, 아니다. 나야말로 너에게 미안하구나. 너에게 그런 자리를 떠넘겨서 말이야.”
어릴 적부터 국무를 돌보는 것보다는 마법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파미로는 결국 자신의 고집대로 마법사가 되었다.
물론 형제간의 싸움없이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파미로는 동생에게 짐을 떠 넘긴 것 같아 늘 미안했다.
“그럼 슬슬 일을 시작하도록 하자꾸나.”
“예. 형님 그럼 좋은 결과를 얻어내길 빌겠습니다.”
“너도 무사히 신성 제국과의 일을 마무리 짓거라.”
한 왕국의 거대한 두 기둥임을 떠나 형제인 두 사람은 작별 인사를 하고 서로가 맡은 임무를 위해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
모논 영지는 다시 밝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가밀을 비롯해 듀론 등, 아마벨가 거리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을 카이론은 모두 영주에게 고해 바쳤다.
결과는 뻔했다.
아무리 영지에 필요한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뻔히 죄지은 것을 보았는데 가만히 넘어갈 영주가 아니었다.
덤으로 카이론에게는 근신 처분이 내려졌다.
조금 더 심한 벌이 내려질 법 했음에도 근신으로 끝난 것은 마일드의 도움 덕이었다.
물론 마일드가 원하는 처벌은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영지에 더욱 도움되는 방향으로 카이론을 이용하려 했지만 그것은 이뤄지지 못했다.
카이론,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다.
결국 마일로는 카이론과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론은 그 대가로 아마벨가 거리의 정보를 이용해 쓸 만한 이들을 찾아주었다.
결국 결론적으로 보면 카이론만 때 아닌 휴가를 받은 꼴이 되었다.
“리아야∼ 손 씻고 오렴. 저녁 먹어야지.”
주방에서는 뒤뜰이 보이기에 카이론은 동물 농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리아를 불렀다. 그런 카이론의 말을 들은 아리아는 크게 대답을 하고는 곧 집으로 들어왔다.
물론 손을 씻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우아우!”
“그래, 많이 먹으렴.”
잘먹겠다고 말을 하는 아리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준 카이론은 아리아를 챙기며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계세요?”
“응?”
손님이 찾아와도 이상할 것은 없는 카이론이었다.
평소 인맥 넓은이라는 것은 영지 내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는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남에게 호감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카이론이었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누구… 에?”
손님을 맞이하려던 카이론은 여인과 함께 서 있는 인물로 인해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결혼하냐?”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카이론이 아는 사람. 케일은 카이론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절대로 혼자서는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어머? 요녀석!”
갑작스럽게 소리친 케일의 머리를 여성이 가볍게 쥐어박았다. 그런 여인의 행동이 상당히 불만스러운 케일은 평소의 어리바리한 표정은 보이지 않고, 볼을 살짝 불렸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 목숨을 구해 주셨다고 들어서……. 요녀석이 말을 안 하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야 찾아왔습니다. 아, 저는 에이린이라고 해요.”
케일과는 다른 갈색의 머리칼이 아닌 밝은 금발에 푸른 두 눈이 인상적인 미녀였다. 케일과는 전혀 다름 생김새로 인해 카이론이 결혼하냐고 물은 것이다.
그 누가 보더라도 남매라고는 절대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카이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 동생?”
“예. 얘가 말하지 않던가요?”
“아,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인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죽었… 아,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케일이 그렇게 행동을 해서…….”
“그런가요?”
에이린이 흘기듯 케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카이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괴물로 변한 에가밀에게 자신의 목숨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보았는데, 그럴 정도의 자신감이라면 분명 에이린이 말로는 표현 못할 심각한 일을 당했을 것이라는 게 카이론의 생각이었다.
그런 시선을 받은 케일은 결국 평소와 같이 고개를 푹 숙였다.
“케일이 조금 곱게 자란 편이라서요. 그때, 에가밀이라는 자에게 제가 위험했던 순간에 케일은 놀라서 그만 실신했는데 저는 그다지 위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이 소리치는 바람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요녀석은 그걸 오해해서…….”
“하.하.하.”
“누, 누나!”
“그럼 그때는 왜 그렇게?”
“그때 제가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고 했음에도 그런 상황까지 간 것이 싫었다고하네요.”
케일의 표정은 카이론의 웃는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부터 점차 굳어졌다.
평소 상당히 엉성해 고참의 마음을 예상하여 움직이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아니, 카이론이 머릿속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너 진짜 뒤진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