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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24화)
8. 한 번 밉상은 끝까지 밉상(5)


카이론은 마나 연공법을 제대로 수련하고 있지 않음에도 확실히 몸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일드가 보기에 그다지 마나의 양이 늘어나 보이지 않았기에 발전이 없다 생각할 뿐이지 지금의 카이론은 상당히 발전한 상태였다.
현재 카이론의 몸속에 마나가 많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마나 연공법을 행하던 카이론이 조금 묘한 느낌을 받은 것으로 인함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막힘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를 호흡을 통해 마나를 모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따져 사실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호흡을 통한 마나의 유동량이 많을 뿐, 사실상 마나는 전신에 걸쳐 유입된다. 단지 호흡이 아닌 신체를 통한 마나의 유입량은 그 양이 미약해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다들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마나의 양만을 느꼈고, 카이론은 이와 달리 몸 전체에 고루 흡수되는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양이 미약하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카이론의 상태를 누구 하나 가르쳐 줄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이론은 남들과 달리 호흡뿐 아니라 몸 전체를 걸쳐 유입되는 마나에 대해서도 신경썼다.
그러던 중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행하는 것의 안정성 확인을 위해 일부러 몇 번이나 마나를 쌓지 않고 유입에만 신경 쓰던 중 그것을 우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몸의 특정 부위에서 마나의 유입이 느려지거나 혹은 중단되는 현상이었다.
마치 잘 흐르고 있는 흐름 안에 갑자기 생겨난 벽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묘하게 카이론의 신경을 건드렸다.
마나의 유입에 크게 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무시하기에는 알 수 없는 찜찜함이 존재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흐름을 막아선 벽을 부셔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딱히 위화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카이론은 흐름을 막아선 벽을 뚫고 부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마나의 유입과 방출이었다.
딱히 마일드에게 받은 마나 연공법에는 마나를 움직이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대륙 그 어떤 연공법을 찾더라도 몸에 쌓은 마나를 쉽사리 움직이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마나 연공법 자체가 단순히 몸속에 빠르게 마나를 쌓는 것이다.
마일드의 마나 연공법 역시 같았는데 마나를 막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도 카이론이 마나를 쌓지 않은 것은 만약 마나를 쌓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아주 소심한 생각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마나를 쌓지는 않았다.
몸속에 마나를 쌓아 놓는다면 그것이 가장 큰 자극이 되어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마나를 빼고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으로 인해 시작된 실험이었다.
‘몇 개의 막힌 곳은 뚫어 놓았는데… 이게 아마 혈도겠지?’
막힌 곳도 각 위치가 상당히 많았고, 위치에 따라 존재하는 것은 각자 그 단단함이 틀렸다. 그래서 카이론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막힘이 있는 곳을 하나의 신체 그림을 그려 표기해 놓았다.
그 수는 현재까지는 약 40개가 조금 넘는 숫자였다.
분명 다른 곳에도 있기는 하겠지만 팔, 다리, 심장, 그리고 머리 쪽에 있는 것만 발견할 수 있었다.
심장 쪽은 거의 다 뚫긴 뚫었지만 아직 막힌 곳이 많았고, 팔과 다리 쪽에는 확실하게 뚫어 놓은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 곳들도 상당히 도움이 되긴 하였지만 카이론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시력과 청력을 비롯한 오감이 뛰어나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아주 날아다니며 에가밀을 향해 검집 채로 두들겨 패고 있음에도 쉽게 지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소심함으로 뭉친 가슴으로 인해 카이론은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지 다른 이들이 모를 뿐이고, 당사자도 모를 뿐.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좋은 타격감이야.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드는 인간, 아니, 강아지라 그런가?”
“크르르, 크릉.”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연신 자신의 몸을 두들기는 카이론으로 인해 에가밀의 눈에는 공포감이 가득해졌다.
자신의 목이나 심장 등을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막으면 막는 대로 때렸다.
카이론이 전신을 노리기 때문에 막아도 막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피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런 것도 불가능했다. 근육이 상당히 불어나는 대신 움직임이 상당히 둔해진 상태였다.
물론 부풀어 오른 근육으로 인해 전에는 불가능했던 전혀 다른 신체 능력을 갖긴 했지만 카이론에 비할 바는 못되었다.
뿌각.
“캬아앙!”
“경쾌한 소리구나.”
뼈를 부러트릴 때마다 미소를 짓는 카이론의 행동에 마일드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해도 진짜로 독한 놈이었다.
자신을 노린 이를 일말의 자비도 없이 처벌하는 카이론의 행동은 독하다는 말 정도로는 부족했다.
잔인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캬갸갸갸!”
결국 에가밀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도주를 생각했다. 어차피 목 같은 곳이 베이지 않는 이상은 죽을 걱정이 없었기에 한 번 더 맞을 각오로 카이론에게 돌진했다.
“어쭈?”
돌연 에가밀의 움직임이 바뀌자 카이론이 조금 옆으로 물러섰는데 에가밀은 그런 때를 놓치지 않고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하지만 카이론의 뒤에는 마일드가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에가밀의 돌격에 마일드가 당황하긴 하였지만 상급 익스퍼트의 실력이 어디로 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스걱.
털푸덕.
“캬우!”
마일드의 검은 카이론과는 다르게 검집에서 뽑혀 나온 마일드의 검은 에가밀의 한 쪽 팔을 몸에서 떼어 냈다.
한순간에 에가밀은 그런 검의 궤도를 보지도 못하고 한 팔을 잃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팔은 마치 살아 있는 것같이 펄떡거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고, 잘린 팔의 절단면에서는 검은 촉수가 나오더니 서로 엉켜들기 시작했다.
마치 주변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떨어진 팔에 생명이라도 있는 것같이.
에가밀은 그런 자신의 떨어진 팔을 향해 잘려 나간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에가밀의 잘려진 팔에서 촉수가 뻗어 나오더니 펄떡이고 있는 팔의 촉수와 얽히고는 빠르게 끌어왔다.
순수한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끌려오기 무섭게 에가밀의 굵어진 팔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방금 전보다 더 굵고, 더 검어진 피부색으로 변했지만 완벽하게 움직였다. 또한 카이론에게 당한 구타로 인해서인지 잃었던 정신까지 찾은 에가밀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생각이 없던 조금 전보다 아마 상대하기가 힘들어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힘들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에가밀이 저런 모습을 자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몸에 적응이 힘들 것이 분명했다.
“어이∼ 설마 도망가지는 않겠지? 회의장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았으니 청소는 하고 가야 할 거 아니야.”
“개자식! 모두, 모두 네 녀석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에가밀이었지만 카이론의 빈정거리는 말에 다시 머리가 멍해지며 살심이 치밀어 올랐다.
아직 완벽하게 자신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거 참, 개새끼한테 개새끼 소리를 듣다니……. 난 나름 착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안 그렇습니까?”
“딱히 동감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이제 정말로 저것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어쩌긴 어쩝니까, 딱 봐도 좋지 않은 방법으로 저렇게 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신전에 넘기거나 아니면 마탑에 넘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 그전에 왕국에 먼저 보고해야 국왕님이 저희 영지를 나쁘게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 그렇겠구나.”
마일드의 표정은 상당히 떨떠름했다. 자신이 물어본 것은 에가밀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카이론은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은 없는지 사로잡은 다음에 어찌할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내,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다 네 녀석 때문이다! 도망가야 해. 죽여! 저 녀석을 당장 죽여!”
두 가지의 목소리가 에가밀에게서 흘러나왔다.
“이런 미치기 전에 기절시켜 놔야 하나라도 정보를 더 들을 것 같은데. 마일드 기사님, Go!”
“알았다.”
가끔 카이론이 처음 듣는 언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기에 마일드는 어려움 없이 알아듣고는 달려 나갔다.
카이론은 이제부터는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솔직히 방금 전에 싸운 것 역시 자신이 실험한 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 차 싸운 것이었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띄는 것은 사양이었다. 또한 이 대륙에서는 힘이 곧 법이었다.
괜한 곳에 얽메이게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사양인 카이론이었다.
마일드가 근접하기 직전까지도 에가밀은 정신적으로 혼란을 격고 있었다. 그러나 미약하지만 자신에게 느껴지는 살기에 반응해 일단은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릉.”
다시 전투가 시작되자 결국은 정체성을 잃어 버린 에가밀은 두 팔을 땅에 대고는 으르렁거렸다.
“야, 거기 너! 그래 너 말야, 새꺄! 자식이 귓구멍 창으로 뚫어 주리?”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병사 중 한 명이 카이론의 부름에 바로 대답을 못하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자신을 손가락질했다.
나름 빠르게 알아차린 것이지만 그런 행동 역시 늦었다고 카이론의 야박한 구박이 이어졌다. 왠지 병사는 눈앞에 괴물로 변한 에가밀보다는 카이론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가서 불 좀 구해 와라. 뭐해, 자식아? 멍청이 있지 말고 구해 오라고! 마일드 기사님 다치면 모두 네 탓이다.”
“예. 아, 알겠습니다.”
책임을 전가하는 카이론의 행동에 병사는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몇몇 병사는 그런 병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에가밀이 자신들을 노리지 않았지만 언제 자신들이 목표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제발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마일드가 괴물로 변해 버린 에가밀을 처리하길 빌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에가밀은 마일드에게 쉽사리 당하지 않았다. 에가밀의 움직임이 점차 정교해졌고, 빨라지고 있었다.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무언가처럼.
“마일드 기사님, 시험해 볼 것이 있으니 신체 중 일부를 잘라서 이쪽으로 차 주십쇼. 가능하다면 다리 부분을 원하는 바입니다.”
점차 빨라지는 에가밀로 인해 생각했던 것보다는 고전하고 있는 마일드는 카이론의 부탁에 기가 찼다.
그러나 하기는 해야 했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마일드는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단숨에 에가밀을 베어 버려도 괜찮은 일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과 같이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마일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카이론의 말만을 머릿속에 박아 둔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사단장님,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에가밀의 사건이 밖으로 퍼져 나간 것인지 횃불과 함께 적은 수의 병사들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많이 들어오면 서로가 방해가 될 것임을 판단한 적절한 조치였다.
병사들의 등장에 마일드는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의 앞에서 카이론이 무언가를 빠르게 지시하는 것이 보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활을 쏘아라!”
슈슈슈슉.
십여 발이 넘는 화살이 에가밀을 향해 쏘아졌다. 마일드가 마지막으로 에가밀을 밀어냄으로 균형이 흐트러진 상태였기에 화살을 피해내지 못했다.
“크캬캬캬캬!”
이제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몸에 십여 발이 넘는 화살이 박혔음에도 에가밀은, 아니, 에가밀이었던 괴물은 크게 웃어댔다. 그러나 그런 웃음도 아주 잠시였다.
스걱.
마일드가 검에 오러를 불어 넣은 상태로 카이론의 주문대로 방심한 에가밀의 왼쪽 허벅지 부분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그리고는 베어진 다리를 카이론에게 차 주었다.
“재생력은 정말로 괴물 급이군.”
오러가 단순히 날카로움만을 더해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순수한 마나가 사람의 몸을 베는 순간 마나는 일종의 독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같은 크기로 베였다 하더라도 단순히 검에 베인 것과 오러로 인해 베인 것은 그것이 치유되는 것에 있어 시간의 차이가 상당했다.
하지만 카이론의 눈앞에 뚝 떨어진 에가밀의 다리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촉수가 튀어나오더니 에가밀 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옛다. 이거나 먹어라.”
치지지지직.
꿈틀거리며 다시 자신의 위치로 찾아가려는 다리를 가만히 지켜볼 카이론이 아니었다. 미리 준비해 둔 횃불로 촉수가 꿈틀거리는 부분을 지졌다.
“윽!”
카이론은 불로 지지기가 무섭게 곧 코를 부여잡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악취가 풍겼다. 냄새는 실로 지독했다. 단순히 썩는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냄새는 곧 회의장에 퍼지며 다른 병사들 역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니, 괴물은 에가밀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이미 잘려 버린 다리였음에도 불에 지져지자 본체 역시 상당히 괴로워했다.
“크캬아아아!”
쓰러진 상태로 잘린 부분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끔찍했다. 동시에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에가밀의 다리 부분도 지져지고 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을 보고 있었기에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싸우는 와중에도 조금씩 모습이 변했는지 지금에 와서는 인간으로서의 에가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바짝 선 머리칼과 붉은 두 눈, 거기에 뾰족해진 귀를 비롯해 이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길고 날카로워 진 누런 이빨. 마지막으로 검게 변한 피부.
“악마로 변하려 했던 건가?”
“받아라.”
이번에 날아온 것은 에가밀의 팔이었다. 그 뒤로도 남아 있는 팔과 다리가 카이론에게 날아왔다.
카이론은 그것들을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지지게 하고는 자신은 본체인 에가밀에게로 다가갔다.
에가밀의 잘려 나간 부위에서 여전히 촉수가 튀어나왔다.
단순히 튀어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느리긴 하지만 촉수가 자라나며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계속 지져야겠네. 아프겠지만 쫌만 참아라.”
다시 한 번 코가 썩을 것 같은 냄새와 동시에 듣기 거북한 괴성이 회의장에 크게 울렸다.
“크캬캬, 캬캬컁. 캬아아아!”
처음에는 웃는 것 같더니 결국에는 고통을 호소하며 이제 신체 중 두 팔과 다리가 사라진 괴상망측한 괴물이 되어 버린 에가밀은 붉은 두 눈으로 카이론을 무섭게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