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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23화)
8. 한 번 밉상은 끝까지 밉상(4)
하지만 듀론은 그런 슈푸의 시선을 회피했다. 남을 위해 스스로 위험한 일을 자처할 정도로 듀론은 착한 인간이 못되었다. 거기에 지금은 회의장의 흐름이 완벽하게 카이론 쪽으로 넘어간 상태였기에 작은 실수가 자칫 잘못되면 엄청나게 큰 일로 번질 수가 있었다.
탁.
카이론이 준비해 온 두꺼운 서류 같은 것을 조금은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자신의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것이 제가 준비해 온 증거 자료들입니다. 물론 이 자료에 있는 증인들은 언제든지 부를 수 있습니다.”
“허허허. 그 많은 것이 전부 저 두 사람이 저지른 짓인가? 아니, 그런 것을 어떻게 다 준비했는가?”
“사업상 비밀이라 하고, 일단 이 서류는 저 두 사람 것만은 아닙니다. 일개 양아치 같은 이들인데 이만큼 죄를 저질렀다면 즉결 처형입니다. 이 증거 자료에는 에가밀, 저자와 듀론을 비롯해 영지 내에 쓸.모.없.이 돈만 축내는 이들의 악행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
카이론의 말에 회의장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저곳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쓸모없는 사람이라 칭했습니다.”
안심하라는 듯 말하는 카이론의 행동이었지만 긴장한 그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도주의 위험이 있으니 병사들을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흠, 그건…….”
“마일드 경!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소? 저자는 일개 병사일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의심스럽소. 다른 영지의 첩자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오. 그것이 아니라면 저런 문서는 모두 거짓으로 기재했을 것이 분명하오! 당장 저 녀석부터 잡아들여야 하오. 밖에 있는 병사들은 당장 저 녀석을 포박하여라! 내 영주님께 직접 고하여 저 간악한 자의 정체를 밝히겠다!”
“마, 맞습니다! 당장 저 녀석을 잡아야 합니다!”
에가밀의 눈이 점차 붉게 변했다. 극도로 흥분하여 충혈된 것이라 생각되지만 어수선한 회의장으로 분위기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죽여야 해! 카이론은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해!”
하지만 그런 무관심으로 곧 이변이 일어났다. 단순히 상황이 몰리자 판단력이 약해진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그의 두 팔이 조금씩이긴 하지만 빠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크르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하지만 그런 변화 역시 처음에는 회의장 분위기로 인해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단순히 근육만이 커진 게 아닌 살기 역시 커졌기에 모두의 시선이 에가밀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곧이어 카이론에게 달려드는 에가밀의 옷이 터져 나가자 회의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놀라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의 몸이 저렇게까지 부풀어 오를 수는 없다.
거기에 대체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 아니, 느껴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뭐, 뭐야. 저 검은 기운은!”
“모두 대피해라. 밖에 있는 병사들은 회의장에 있는 이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라!”
회의장 밖에는 소수의 병사가 있었다. 그들이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기가 없는 이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카이론, 피해라!”
“죽어라! 카이로온!”
인간의 목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에가밀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듯 카이론만을 바라보고 달려들었다.
“미친놈!”
카이론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이 준비해 온 서류를 챙기는 꼼꼼함을 보이며 어렵지 않게 달려드는 에가밀을 피했다.
쿵! 콰자작!
카이론 앞을 지키고 있던 가구들이 볼썽사납게 널브러지며 부서졌다. 단순하게 밀어서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에가밀이 밀고 들어오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었는데 만약 카이론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면 최소 어디 한 군데는 부러졌을 위력이다.
“네 녀석! 정체를 밝혀라!”
다시 돌격하려던 에가밀의 앞을 마일드가 막아섰다. 군법 회의였기에 항시 들고다니던 검을 거리낌 없이 들고 온 마일드였기에 대처는 빨랐다.
하지만 에가밀을 향한 마일드의 물음의 잘못된 점을 카이론은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전혀 지금의 상황이 조급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마일드 기사님. 정신이 나간 놈인데 그런 것을 알려 주겠습니까?”
어느새인가 들어온 병사에게 빼앗은 검을 쥔 카이론은 마일드의 옆에 나란히 섰다.
“뭐, 그런 거지 않겠느냐.”
“그래도 좀 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듣는 제가 다 지겹습니다.”
“됐으니 저 녀석을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그것이나 말해라.”
“방법이야 뭐 있겠습니까? 아직 저 녀석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조사한 것으로 볼 때, 이런저런 피해를 입힌 놈입니다. 죽여도 그다지 상관없다 봅니다만…….”
에가밀을 죽인다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카이론의 표정에 마일드가 놀라려 할 때였다.
“그럼 죽여야 합니다!”
카이론에게는 익숙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크게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케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는 그런 말만을 던지고는 에가밀에게 달려들었다.
“저런 미친!”
한참 냉정함을 유지하던 카이론이 놀라며 앞으로 달려 나간 케일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한 오늘 7소대의 근무는 전과 같이 마을을 도는 것이었으며 케일은 어제 휴가를 나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케일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것도 검을 들고 말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려 했지만 곧 케일의 뒤를 쫓는 카이론은 그가 평상복을 입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어라!”
여전히 엉성한 모습으로 마일드와 카이론을 번갈아 바라보던 에가밀에게 달려들던 케일은 갑작스럽게 에가밀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몇 발작만 더 다가가 이 검으로 그어 버리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지자 마치 여태까지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던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였다.
샥.
“컥!”
케일은 자신의 바로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물건을 아주 흐릿하게 보았다. 정확하게 본 것이 아니지만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지나갔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자신의 목을 꽉 조여 오는 고통에 그런 것을 금방 잊어 버리며 방금 전까지 자신이 노리려 했던 에가밀과 눈이 마주쳤다.
“크르릉! 크아!”
이제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잃은 것인지 에가밀은 어느새 다 찢어 버린 상의로 인해 드러난 상체의 근육은 너무 징그러울 정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하지만 케일의 눈에는 그런 것보다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가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는 자신이 흐릿하게 보았던 것을 보게 되었다.
케일이 본 것은 에가밀의 자라난 검은 손톱이었다. 웬만한 성인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길이에 굵기도 상당한 것이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강철과 같아 보였다.
“이 등신 같은 놈아, 갑자기 끼어들어 어쩌겠다는 거냐!”
자기 스스로 피했다고 생각한 케일이었지만 그것은 야무진 꿈이었다는 것을 곧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카이론으로 인해 알았지만 케일이 아직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에가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모습이 변했지만 에가밀 이자가 저주스러운 것은 변함없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아직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저 자식이 몇 년 전에 저의 누님을 범했습니다! 그, 그 일로 인해 누님이! 개자식 죽여 주겠다!”
퍽!
“커헉!”
“야, 이 녀석 데리고 나가라.”
에가밀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이 회의를 준비하며 자료를 살펴본 카이론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케일의 가족 중에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카이론이 자료를 확인해 보았지만 모두 다 본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내용의 책을 계속 읽는 것이 지겹듯이 에가밀이 저지른 죄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랬는데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케일에 관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괜히 능력도 안 되는 녀석이 지금 에가밀에게 달려들었다가는 단숨에 죽어 나갈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 중 한 명에게 케일을 던졌다.
일반 병사인 이상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이들은 없었기에 카이론의 행동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저 녀석의 기운이 상당히 칙칙하구나. 흑마법사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녀석에게 당한 것인가?”
딱 보아도 검은 기운을 모락모락 피워내는 것이 절대 좋아 보이는 기운은 아니었다.
“맛깔 없어 보이게 검은 김이나 모락모락 피워내는 녀석이라 그냥 베어 버리고 싶긴 하다만 알아볼 것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크르르릉.”
카이론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에가밀이 미약하지만 반응을 보였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것이냐?”
갑작스런 케일의 등장으로 잠시 혼란스러웠던 마일드는 카이론의 말을 듣고는 무언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얼굴에는 화색이 떠올랐다.
“무슨 방법이긴요. 단 한 가지밖에 없지 않습니까?”
쿵!
점차 기운이 강해지는 것인지 에가밀이 바닥을 박차는 순간 거대한 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회의장이 넓었기에 그런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캬아아!”
역시 이번에도 에가밀이 노린 것은 카이론이었다. 솔직히 지금 카이론을 향한 원한에 대한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랬기에 그가 판단한 것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노린다는 생각뿐.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볼 때에는 여전히 카이론에 대한 것을 잊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든 아니든 현 상황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전과 같이 무식하게 정면으로 달려드는 에가밀의 행동은 말이다. 그런 에가밀의 공격에 카이론은 혀를 찼다.
인간으로서 이지는 이제 모두 상실한 것 같았기에 살려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생각에 카이론은 산 채로 잡을 수 있다면 그러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숨만 쉬고 말만 할 줄 알면 되겠지. 아니, 저런 상태라면 숨을 안 쉬어도 살 수 있을라나?”
씨익.
카이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이성을 잃은 에가밀이 살짝 몸을 떨 정도의 섬뜩한 미소가.
퍼벅.
일부러 검을 빼어 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두들겨 패는 것에 있어서는 검보다는 검집이 훨씬 나았다.
“고맙게도 사족 보행을 해 주는구나. 인간을 패는 것이 아니라 개를 팬다고 생각하면 되겠으니 말이야. 아니,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뭐가 좋을까? 뭐, 아무튼 인간을 팬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으니 얼마나 좋아. 너의 그런 배려심을 일찍이 보여 주었다면 네 녀석도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야.”
퍽!
입은 쉴 새 없이 놀리긴 하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카이론의 검집은 훤히 비어 있는 에가밀의 옆구리를 시원하게 강타했다.
퍼벅!
그리고 이어지는 연타는 에가밀의 턱이었다. 턱을 맞은 에가밀에게 또 다른 빈틈이 생겼는데 그런 빈틈인 명치를 바로 찌르기 식으로 이어지는 카이론의 움직임은 상당히 깔끔했다.
“캐깽!”
“소리도 개 같아서 좋구나∼”
마일드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외형이나 풍기는 기운으로 볼 때, 에가밀은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몰라도 카이론이 이럴 줄은 몰랐다.
카이론이 자신의 마나 연공법을 익히고 있지만 크게 성취가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그런 자신의 내심과는 달리 의외였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 지금 일어난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까딱하면 카이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간 카이론이 익혀 온 것은 활이나 창 같은 대부분 공격 범위가 넓은 것이 주를 이뤘다.
그런 카이론이 검을 든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생각은 단순히 기우에 불과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한 것이 크나큰 착각이었다.
비록 그것이 검술이라 보기 무리였지만 분명 카이론의 움직임에는 일체의 군더더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검이 아닌 몽둥이를 손에 쥐고 있다고 상상하면 최적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었다.
마일드는 순간 걱정하던 마음이 사라짐을 느꼈다.
당장 눈 앞의 상황만 놓고 봐도 카이론에게 어떠한 위험도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한결 편한 마음으로 카이론의 신들린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에가밀은 그런 평온한 마일로와 달리 이성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카이론에 대한 두려움이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육체의 강화가 이뤄진 상황이었지만 카이론의 구타는 그것마저 무색케 할 정도로 뼛속 깊이 아팠다.
“캐개갱! 캥!”
순간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에가밀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마일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에가밀에게는 뛰어난 회복력조차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느껴질 정도였다.
계속 맞고 회복되다 보니 맞이 않아야 될 매까지 벌고 있는 격이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 마일로의 시선은 에가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진정 눈물 없이 보기 힘든 광경이라 차마 외면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마일로는 평소라면 눈치챘을 법도 한데 카이론이 지금 지쳤을 법도 한 상황에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싸움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미안할 정도로 일방적인 구타, 지금 마일로의 눈을 가득 채운 것은 단지 그 처참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