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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22화)
8. 한 번 밉상은 끝까지 밉상(3)
한없이 비굴해지고, 자신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 믿으며, 끝없이 자신을 높게 띄워 주는 그 순간의 희열을 느끼는 듀론이었다.
그랬기에 그와 반대되는 자신을 완전히 깔보는 듯한 카이론의 행동에 바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주둥이 닥쳐라! 앙? 이것들 진짜 돌대가리들 아니야! 군법 회의한다고 내가 꼼짝 못할 것들을 준비해 온 줄 알았더니만 몇 년 전에 있었을 것이라는 증인, 증거도 없는 하극상 이야기를 꺼내 놓지를 않나. 그것으로 부족해 내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질 않나.”
“사실이지 않느냐! 내 다 알고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소대장이 된 이들이 네 녀석과 한통속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기에 모인 대부분이 말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자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심한 벌을 당할 것이오! 크흠!”
카이론의 말에 에가밀이 발끈해 나섰다. 빠른 에가밀의 행동으로 인해 듀론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뒤에서 연심 콧김만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런 에가밀의 말에 카이론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크러트렸다.
“야, 이 등신아! 네 무능력함을 탓해라.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내 편이라면 네 녀석 스스로 그따위 말을 해도 되냐? 살인멸구라는 말을 아냐? 모두 죽여서 증거를 없애 버리는 수가 있다고, 거기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말은 들어는 봤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네 녀석을 범죄자로 지목하면 네 녀석은 끝이야. 아놔, 진짜 이걸로 끝이냐? 이걸로 끝이야? 더 준비한 거 없어?”
“…….”
“…….”
“거기에 말이야. 내가 아는 한 국법에 조금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있던데? 수하의 공은 곧 그 수장의 공이라고 말이야. 뭐, 내가 먹여 살린 이들이 내 직접적인 수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내가 원한 것도 있고, 모두를 위한 것도 있어서 그런 일을 한 거야. 생각을 해 봐라. 너나 저기 오크 같은 녀석들이 승승장구해 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오른다고 생각해 봐. 이 모논 영지가 어떻게 돌아갈 것 같으냐? 생각을 해라, 생각을 자식아. 나는 다 영지를 위해 한 거야. 물론 내가 무보수로 일한 것은 아니지. 하지만 생각해 봐. 만약 내가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상관들에게 공을 넘겼다 쳐 봐. 그럼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히 나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겠다는 것이 머릿속에 남아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뻔하다고, 차라리 자신의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일찍이 받아 놓는 것이 훨씬 좋을 거라고. 알겠냐?”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카이론이었지만 그런 것보다는 카이론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입을 얼마나 잘못 놀린 것인지 알게 된 에가밀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들!
‘크, 큰일이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꿰뚫을 것 같은 시선에 에가밀은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구원자를 서둘러 찾았다.
“듀, 듀론 님.”
“님이라, 님이라는 호칭을 왜 듀론에게 붙이지? 그가 우리들의 상관이라도 되는가? 그리고 내가 볼 때, 그다지 저 사람과 너 따위가 이어져 있을 일은 없어 보이는데? 저 돼지는 단순히 영지의 재정 관리를 위해 고용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오히려 죄를 지으면 더욱 큰 벌을 받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인물이지. 아 뭐, 저 오크에게 목숨을 구원이라도 받았다면 그런 것을 사용해도 괜찮긴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님이라 칭하는 것은 무언가 뒤가 구린 게 있다는 말일 텐데.”
카이론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다른 이들의 이름 뒤에 님이라 칭하는 것이 딱히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카이론의 입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런 말이 나오자 대부분의 이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에가밀을 바라보았다.
듀론 역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어찌할지 몰라 했다. 그런 두 사람보다 더 상황이 심각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증인으로 참관한 슈푸와 포몬이었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더 떨어질 곳이 남아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이들은 없었다.
“흠흠, 그럼 이쯤에서 그만하고, 제가 반론을 해도 되겠습니까? 판관장님.”
“허, 허락하겠다.”
이중인격자.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라 모든 이들은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건방진 말투를 바꾼 카이론의 행동에 듀론과 에가밀은 입을 열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하였지만 마일드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회의를 진행시켰다.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는 것인데 방금 전까지 사용한 말과는 전혀 다른 예의와 기품이 묻어나는 말투에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없었다.
이것이 과연 회의인지 한 사람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인지.
그나마 군법 회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처음보다는 냉정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마일드였기에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당황하고 카이론의 말에 응한 것이다.
기사인 마일드로 보자면 실로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이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사람들은 일단 이 회의장에는 없었다.
아마 세상 밖에 있는 이들이라도 이와 같은 말을 단순히 전해 듣는 것으로만 본다면 절대로 저렇게 빠르게 안정감을 찾았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어쩌면 그전에 뿔난 망아지 같은 카이론의 행동에 검을 뽑지 않았다며 손가락질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선 저는 저 두 증인을 제가 저질렀다는 비리에 대한 증인으로 삼는 것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조금 전 자네는 허락하지 않았나.”
마일드의 말에 듀론의 표정이 조금은 묘하게 변하였다. 마일드의 말을 자신 마음대로 해석해 들어보면 지금은 카이론의 편이 아닌 자신들을 옹호해 주는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듀론만의 착각이었다. 마일드는 순전히 자신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우선 저는 증인으로 누가 들어올지 몰랐고, 그런 사실을 모른 저는 승인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증인으로서의 가치보다는 범죄자로서의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됩니다.”
“범죄자?”
카이론의 말에 슈푸와 포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실 최근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부터 시작해 사람들의 뒤를 쳐 피해를 입히고는 금품을 강탈해 가는 일에 저 두 사람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거짓입니다!”
“절대 사실일 리가 없습니다!”
카이론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심각하게 반응했다. 오히려 그런 점으로 인해 회의장에 있는 이들은 두 사람이 수상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저런 행동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들 갖고 있다. 그러나 직접 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보인 것은 여태까지 태연하게 있던 카이론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카이론에게 받은 것이 있는 이들이라 슈푸와 포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론은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르게도 흥분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게 다야?’라는 상당히 시건방진 표정을 지으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음에도 과연 그게 사실이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 카이론에 비해 저 두 사람이 보인 행동은 전혀 달랐다. 아니라고 극구 소리치고 있지만 전혀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았다.
“정 그렇게 못 믿겠다면 저 역시 증인을 요청하겠습니다. 아니, 증인까지 갈 필요도 없겠군요. 거기 슈푸 씨.”
“왜, 왜 그러시오.”
슈푸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반응했다. 과거에도 그랬다. 저 미소가 두려웠다. 물론 그때에는 카이론이 어떤 장난으로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에 대해서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자신은 카이론에게 있어 단순한 적일 뿐이었다. 그를 몰아넣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했던 적.
“왼쪽 팔뚝에 난 상처, 어디서 생긴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카이론의 말에 슈푸는 저도 모르게 왼쪽 팔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지금 자신 팔에 상처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아 맞췄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상처는 얼마 전에 한 사람을 습격하여 금품을 탈취하던 중 생긴 상처였다. 그때, 분명 얼굴도 가린 상태였고, 다른 이들에게 팔이 다쳤다는 말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자신과 기껏해야 술 취한 취객만이 알고 있을 일이었는데 카이론이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수, 술에 취해 입은 상처요.”
“그럼 이번에는 언제 다치신 것인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며, 며칠 전이오.”
“정확한 날을 말씀해 주셔야지요. 그래야 회의가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술에 취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 않았소. 거기에 이따위 상처가 어찌 증거가 된단 말이오.”
“아주∼ 잘되지 않겠습니까. 그 팔의 상처를 낸 사람은 당신이 자신을 습격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볼 것이니 말입니다.”
카이론의 말에 슈푸는 더 이상 떠질 수 없을 정도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증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판관장님.”
“슈푸, 잘못한 것이 없다면 증인을 불러도 되겠는가?”
위엄 있는 마일드의 목소리에 슈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십쇼.”
카이론의 말이 밖에까지 들린 것인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머리 위부분만 머리카락이 실종된 통통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한 명 들어왔다.
그는 카이론의 옆까지 오는 내내 이곳저곳에 인사를 하며, 회의장에 있는 이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자네는 누구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영지 내에서 작은 보석상을 하고 있는 한슨이라 합니다.”
“한슨이라…….”
젊은 병사나 청년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고백을 성공시키려면 반드시 한슨을 한 번은 찾아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모논 영지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몇몇은 한슨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거 매번 여신님의 이름을 대는 것도 곤욕이군.’
“자네 역시 빛의 신인 하오리아 님의 이름 앞에 진실만을 말할 것을 다짐할 수 있는가?”
“예. 여신님의 이름 앞에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알겠네. 그럼 자네가 증인으로 온 이유를 말해 보게나.”
“흠흠. 실은 제가 삼 일 전 큰 거래가 잘되어서 한잔하려 했습니다. 근데 제가 술을 마시다 보면 주체를 못하는 술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딱히 그때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제가 길을 잘못 왔다고 느꼈습니다.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어서 비틀거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저를 습격했습니다.”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였다. 가끔씩 자신이 그날 행했던 행동까지 취해 가면서 설명하는 한슨의 행동에 사람들은 슈푸나 포몬이 이야기할 때보다 집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틀거려 머리를 맞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빗나가 어깨에 맞기는 했지만 바로 기절하지 않고 저를 기습한 사람과 조금 투닥거림이 있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제대로 한 번 싸웠을 것이지만 그날은 술에도 취해 있었고, 나이도 먹다 보니……. 헤헤헤. 아, 아무튼 저는 싸우던 중 안되겠다 싶어서 상대방의 팔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한슨 씨, 너무 말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아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튼 저를 습격한 범인의 팔에는 제 이 튼튼한 이로 확실하게 자국을 찍어 놨습니다요.”
자신의 이를 딱딱거리며 자신감을 나타내는 한슨의 증언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슈푸의 팔로 향했다. 그들의 눈은 어서 옷을 올려 보라는 시선이었다. 슈푸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급격하게 당황해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으로 듀론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