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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크 가드 1권(21화)
8. 한 번 밉상은 끝까지 밉상(2)
솔직히 카이론 역시 잘 모르고 있다. 아무리 이것저것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국법에까지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에 있던 드물게 들었던 법을 떠올려 그냥 이야기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일드는 그런 것을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결국 바쁜 마일드와는 다르게 카이론은 과연 에가밀이 자신에게 어떤 공격을 해 올지 궁금해졌다. 나름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놓고 하는 것이니 제법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물론 지금 이 공격은 에가밀이 준비한 것 중 작은 공격이라 생각을 하곤 있었지만 쓸데없는 것부터 심리전을 걸 정도로 에가밀의 머리가 뛰어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카이론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게도 에가밀은 카이론의 대답에 표정을 구기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아? 설마 이걸로 무언가 된다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겠지? 정말로 이렇게 끝나게 된다면 그때 아주 이빨을 제대로 부러트릴 걸 그랬네. 재미있지도 않은데 발음이 새는 거라도 들었으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쉽게 표정이 읽히는 에가밀의 행동에 카이론은 제발 아니길 바라며 전에 조금 더 손을 봐 주지 못한 것에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혼자 너무 쓸데없이 준비한 것 같다.’
카이론은 잠시 자신으로 인해 이리저리 고생했을 아마벨가 거리의 사람들에게 속으로 작게 사과를 한 뒤 이제는 표정을 바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에가밀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마일드가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려 주니 에가밀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며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닐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단순한 에가밀의 모습에 카이론은 어이없어 했다.
‘귀찮으니 빨리 끝내던지 해야지 원.’
“딱히 증거가 없다면 다음으로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흠, 에가밀 증거나 증인이 있나?”
열심히 국법이 적혀 있는 책을 뒤적거리던 마일드는 카이론의 지적에 스리슬쩍 이번 사건을 넘어가려 했다.
군법 회의를 진행시키는 작은 책자와는 다르게 국법이 적혀 있는 책은 도저히 한 손에 잡히지 못할 정도로 두꺼웠으니 대충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분명 저 녀석의 만행을 본 병사들이 있을 것입니다.”
“쯧, 기본이 안 되어 있군. 기사님이 눈앞에 있는데 증거나 증인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려 하다니. 소대장들이 요즘 배가 불렀나 보네.”
“헉!”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에가밀로서는 카이론의 나름 혼잣말을 듣고 나서야 슬쩍 마일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마일드는 그런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군법 회의에 대해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카이론이 관련되어 있어 이렇게 직접 나선 마일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후회스러웠다. 걱정되어 와 본 것과는 다르게 오히려 저 성의 없고, 딱 보아도 귀찮아 보이는 표정을 보니 오히려 ‘저 녀석은 조금, 아니, 상당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에가밀은 증거나 증인은 없는 것인가?”
카이론으로 인해 생긴 작은 짜증이 괜한 에가밀에게로 향하자 에가밀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지레짐작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그냥 없던 것으로…….”
“회의를 멋대로 주무르려 하는구만.”
‘빌어먹을 놈!’
카이론의 말을 들은 에가밀은 속으로 카이론을 수천 갈래로 찢어 버렸다. 그러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솔직히 지금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얼마 전에 찾아갔던 듀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와서 힘 있는 말을 해 주어야 했다. 그래야 증거 따위가 없어도 카이론을 단번에 몰아붙일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에가밀의 기대와는 다르게 듀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자신이 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얼굴도 비추지 않는 듀론과 카이론을 싸잡아 씹어 먹고 있던 에가밀은 곧 자신을 구원해 주는 목소리에 표정이 급 밝아졌다.
“크흠, 미안하오. 내가 조금 늦었소.”
“듀, 듀론 님 오셨습니까?”
에가밀은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듀론의 등장을 반겼다. 듀론은 그런 에가밀의 반응에 살짝 손을 들어 응해 주고는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에 큰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계속 하십시오. 마일드 경.”
듀론의 건방진 말투에 마일드의 표정이 슬쩍 찡그려졌다.
마일드는 기사였다. 기사란 말은 완벽한 귀족은 아니지만 준귀족으로서 일반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직위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마일드에 비해 듀론은 아무런 작위가 없었다. 단지 이런 시골 영지에서 조금 뛰어난 셈 계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대우를 받고 있을 뿐인 자였다.
“그럼 계속하여 군법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에가밀, 달리 카이론의 죄에 대해 고할 것이 있다면 다 말해 보도록.”
주변에 있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털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기사로서 장소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은 지켰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귀찮다.
짜증 난다.
딱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단지 듀론이란 단 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예! 그럼 이제 저 간악한 자의 죄를 모두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카이론이란 자는 다른 행실도 많이 좋지 않지만 그의 가장 큰 죄는 돈을 받고 공적을 팔아넘긴 행동입니다!”
지금은 에가밀에게는 여신의 강림과도 같은 듀론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자신감이 충만한 것을 넘어 버린 것이다. 그랬기에 평소에는 뒤에서밖에 욕하지 못할 회의장에 있는 여러 인물들을 모두 쓰윽 둘러보았다.
지금 회의장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카이론을 신고했다라는 소문을 들은 카이론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적인 면에서 자신이 불리하긴 하지만 자신에게는 듀론이 있었기에 괜찮았다. 거기에 지금과 같이 회의를 크게 연 것은 듀론이 행한 일이었다.
영지 내에서 보면 일개 병사들을 놓고 하는 회의였기에 작게 하여도 되긴 하지만 듀론이 조금 힘을 사용하여 넓은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카이론의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에는 듀론이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이번 기회에 그런 그들을 싸잡아 수를 줄일 생각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이미 에가밀이 무슨 죄명으로 카이론을 군법 회의에 불러들인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행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만약 죄명을 몰랐다면 이렇게 넓은 장소에서 군법 회의를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단하게 카이론만을 노리는 것으로 끝냈을 것이다.
“카이론, 이번 건에 대해 해명할 말은 있는가?”
“그것 역시 증거 불충분입니다.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묵비권?”
“아, 증거가 불충분하기에 말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랬다는 증거도 없이 말로만 밀어붙이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히려 저의 명예를 훼손시킨 이유로 이번 군법 회의가 끝나면 저 사람을 고발할까 생각 중입니다.”
카이론은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에가밀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런 카이론의 시선에 에가밀은 움찔거리며 듀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듀론은 그런 에가밀의 시선에 살짝 표정을 구겼다. 정말로 대책 없는 인간이었다. 무언가 증거나 증인을 만들어 놓지도 않고 저런 행동을 하는 에가밀은 말이다.
이번 일이 진정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면 무시하고도 남을 듀론이었다.
“크흠, 마일드 경. 내 몇몇 증인들이 있는데 그들을 불러도 되겠소?”
듀론의 말에 마일드는 카이론과 잠깐 눈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듀론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자신은 공정하게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있다면 불러 보시오.”
“마일드 기사님. 그런 것은 형식적이긴 하지만 저에게도 동의를 구한 다음에 행하는 것입니다.”
자신 역시 잘 모르지만 마일드가 모른다는 점으로 인해 카이론은 조금 장난스럽게 나섰다.
“그, 그런가? 그럼 증인을 불러도 되겠는가?”
“예. 저는 괜찮습니다.”
“알겠다. 증인을 불러보도록.”
이런 상황에도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은 카이론의 말투에 마일드는 카이론을 슬쩍 노려보고는 증인을 불러들였다.
곧이어 두 명의 인물이 조심스럽게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모두 눈 밑이 조금 어두운 상태이며 주변에 있는 이들의 눈치를 많이 살폈다.
그러던 중 카이론과 눈을 마주하자 고개를 들지 못하고는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자네들 역시 빛의 신인 하오리아 님의 이름 아래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할 수 있는가.”
“예. 저 슈푸는 빛의 신인 하오리아 님의 이름 아래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빛의 신인 하오리아 님의 이름 아래 포몬 역시 진실만을 말할 것을 다짐합니다.”
두 사람 역시 에가밀이 했던 가슴에 손을 대고는 둥근 원 모양을 그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끝마칠 때까지 잠시 기다린 마일드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자네들이 증인이라 하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보도록.”
“예. 저 슈푸부터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슈푸라 자신을 소개한 자는 깍지 않은 수염과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힐끔 카이론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과거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카이론은 잊어야 할 때였다. 지금 당장 이번 일을 잘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아마 자신은 노름에서 잃은 돈을 갚지 못해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자신뿐만이 아닌 바로 이 옆에 있는 포몬도 마찬가지였다. 사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약과 놀음에 취해 살게 된 뒤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양심조차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기회가 생기면 자신의 쾌락을 위한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고, 약한 자를 공경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돈을 뜯어냈다.
하지만 그런 행동으로도 한계가 있었는데 때마침 카이론의 과거에 대한 일을 잘만 증언해 준다면 확실한 보장을 해 준다는 듀론을 만나게 되어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그때는 정말로 둘도 없는 행운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쏟아지는 시선은 상당히 거북했다. 애써 스스로 자신을 위안했다.
‘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과 비슷하게 카이론에게 도움을 받았던 자들이 혐오스럽다는 눈빛은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개자식들! 네 녀석들은 많이 갖고 있기에 그런 눈을 하는 거잖아! 네 녀석들도 나와 같은 처지면 그따위 눈빛은 하지도 못한다고! 빌어먹을!’
그러나 그것은 속으로만 외치는 패배자의 한심한 행동일 뿐이었다. 아니, 겉으로 드러내어 말을 한다 하더라도 슈푸와 포몬은 아마 더 심한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두 사람 역시 지금 회의장에 참석해 있는 이들과 비슷한 계급에 올라 있던 이들이었다. 스스로가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해 지금과 같은 상황에까지 떨어진 것인데 그들이 누군가를 탓할 자격이나 있을까?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군에서 일하던 자였습니다. 딱히 뛰어난 점은 없었지만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기치 못하게 악마의 손길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슈푸는 마일드와는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마일드의 눈을 보면 자신이 거짓을 말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것 같았다.
“제가 빛의 신인 하오리아 님의 종임은 변함없지만 완벽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의 모든 원흉은 저기에 서 있는 카이론으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저자는 저에게 접근해 근무 중 잡아 온 범죄자를 제가 잡은 것으로 해 주는 대신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포상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스스로가 보고를 했다면 그다지 많은 포상을 받지는 못했을 것으로 인해 그런 생각을 한 것일 겁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슈푸와 같은 목적으로 카이론, 저자가 접근했습니다. 저희들의 직위가 소대장이라는 점으로 인해 일반 병사들보다는 많은 포상이 나왔고, 만약 휴가 같은 것을 받게 된다면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더 많은 돈을 뜯어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저희들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서도 저희와 같은 일을 당한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포문이 나서서 슈푸를 지원해 주었다.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에가밀의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카이론을 바라보았다.
듀론은 잠깐 카이론을 바라보고는 마일드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듀론보다 카이론이 먼저 움직였다.
“참나, 어이를 수프에 말아 먹었냐?”
“…….”
“…….”
회의장에 모인 이들은 입이 떡 벌어진 상태로 카이론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 증인으로 들어온 둘을 빼고는 이 회의장에서 카이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저런 태도라니!
“진짜 김 빠지고, 맥 빠지고, 정신이 빠져나가려 한다. 에가밀… 너 진짜 그렇게 딱하고 멍청해서 어떻게 해 먹을래? 아니, 이 증인들을 준비한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 아, 거기 오크 네 녀석이지. 오크라고 한 거에 발끈할 필요는 없어. 초록 돼지니까 오크지 뭐겠냐?”
“네,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 듀론이다. 듀론이란 말이다!”
갑작스러운 카이론의 돌발 행동에 입을 다물지 못한 이들과는 다르게 듀론은 바로 반응했다. 직접 지목하여 말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일로 인해서였다.
그것은 바로 무시.
남들이 알고 있는 듀론은 돈에 미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뇌물을 좋아한다고 생각을 하고들 있지만 사실상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뇌물보다 듀론이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뇌물을 받을 때, 상대방이 자신에게 보이는 행동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