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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러나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낡은 책상과 빈 의자뿐이었다. 무심히 돌아서는 순간, 아버지와 자주 가던 술 창고가 떠올랐다. 가끔 이곳을 찾으면 아버지는 남몰래 서경을 창고로 데려가서 안주로 쓰고 남은 과일과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고는 했다.
문을 닫고 나온 서경이 건물 뒤편에 있는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술 창고로 쓰이는 회색 컨테이너 박스는 큰길을 접한 본관 건물과는 달리 사방이 어둡고 고요했다. 발밑에 밟히는 요란한 자갈 소리가 어린 서경의 긴장감을 부추겼다. 창고의 문손잡이를 돌리니 누군가 걸어 잠갔는지,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빠…… 아빠…….”
아버지를 불러 보았지만, 창고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서경의 귀에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창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쿵쿵 뛰는 제 심장 소리를 들으며, 창고 문틈에 귀를 가져다 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간헐적인 신음이 어딘가 귀에 익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서경이 혹시라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있을까 하여 컨테이너 주위를 빙 돌았다.
다행히 창고 뒤편에는 조그만 창문이 있었다. 창고 안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서경이 밖의 불빛에 의지하여 시선을 집중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플라스틱 상자 사이로, 언뜻 불명확한 형체가 보였다.
뒷골목을 지나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섬광처럼 불을 뿜었다. 순간, 어둠을 더듬어 가던 서경의 눈에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들어왔다. 한 짝은 바닥에, 다른 한 짝은 잔뜩 웅크린 채 공처럼 몸을 말고 있는 아버지의 발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아빠! 아빠! 어엉…… 아빠.”
어린 서경의 울부짖음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서경의 외침에도 아버지는 간헐적인 신음만 흘릴 뿐 대답이 없었다. 창고 옆에 쌓인 벽돌을 집어 들어 창을 내리쳤지만, 굵은 철장이 꼼짝할 리 없었다.
그때였다. 수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클럽 앞을 서성이던 두 남자가 서경이 있는 창고로 걸어왔다. 다가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서경의 눈에 익었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주선해 준, 지영의 삼촌 규철이었다. 규철에게 달려간 서경이 그의 양복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저씨! 아저씨! 저 안에 우리 아빠가 있어요! 제발 아빠 좀 꺼내 주세요!”
“서경아. 웬일로 여기까지 왔어.”
“아저씨! 저러다 우리 아빠 죽어요. 제발 좀 꺼내 주세요!”
당황한 규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리고 있자, 지켜보던 다른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마에 흉터가 있는 그는 몹시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꼬맹아! 우리에게 애원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네 아버지가 겁도 없이 그 큰돈을 꿀꺽하는 바람에 클럽도 홀딱 뒤집혔거든. 이 자식도 네 아버지 때문에 상당히 곤란한 처지야.”
“일단은 집에 돌아가 있어. 네가 이러고 있어 봐야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설마 산목숨 어찌 되겠니.”
달래는 말 속에 심각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려워진 서경이 흐느껴 울었다. 지금 돌아가면 당장에라도 아버지가 죽을 것만 같았다.
“아저씨. 아빠는 서준이 병원비 때문에 그 돈을 훔쳤을 거예요! 제가 이다음에 커서 다 갚을게요. 네?”
“그래, 알아. 지금 서울에서 회장님이 내려온다니, 일단은 기다려 보자. 내가 전후 사정을 잘 말씀드려 볼게.”
“어이구. 오지랖은! 네 목숨이나 걱정해라. 이 병신자식아!”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침을 탁 뱉으며 소리쳤다.
제 아비가 당장에라도 죽을 듯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서경이 끝끝내 가지 않고 버티자, 달래기를 포기한 규철과 그의 동료가 제 할 일을 하러 간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밤이 깊어지자, 약간 수그러들었다. 창고 문 앞에 앉아 한참을 울먹이던 서경이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다. 시간이 지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쏟아질 듯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며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선잠에서 깨어난 서경이 눈을 비비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말쑥한 차림의 풍채 좋은 중년 남자가 서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네댓 명의 남자가 그를 따르고 있었지만, 서경의 눈에는 오직 그 중년 남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사를 쥐고 있는 단 한 사람, 규철이 말했던 나이트클럽의 회장이 그 남자라는 사실을 어린 서경은 직감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아이인가? 저자의 딸아이라는 게?”
“네. 맞습니다.”
그를 따르던 무리 가운데에서 규철이 불쑥 튀어나오며 대답했다. 서경이 자는 동안 그간의 사정을 세세히 전달한 모양인지, 허리를 잔뜩 굽힌 규철은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이를 들여보내게.”
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열쇠를 든 누군가가 급히 창고 문을 열었다. 때를 놓칠세라 서경이 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는 고통마저 잊은 듯이 아버지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찢긴 옷가지와 피 범벅된 얼굴을 확인한 서경은 덜컥 겁이 났다. 참으려 했지만, 잇새로 울음이 새어 나왔다.
“이자를 데리고 나가게.”
몇몇 남자가 다가와서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일으켰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는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서경이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서 그의 바지 자락을 움켜잡았다.
“아저씨!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 돈은 제가 커서 몇 배로 갚을게요.”
서경이 막무가내로 매달리자, 뒤에 선 젊은 남자가 서경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중년 남자의 손짓에 젊은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중년 남자의 묵직한 손이 서경의 자그마한 몸을 일으켰다.
“얘야. 그런 말은 믿지 않는단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거든.”
시선을 맞추려는 듯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눈물로 범벅된 서경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혹한 눈빛이었다. 순간, 서경의 작은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자, 이제 네 아버지의 빚을 어떻게 갚을 테냐. 구체적으로 말이다.”
남자가 물었다. 서경이 흐르는 눈물을 후다닥 훔쳐 내었다. 어둡고 음습한 눈동자가 말했다. 자신은 눈물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남자는 12세의 어린 소녀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어른 대 어른으로서 거래를 청하고 있었다.
서경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으로 아버지가 사라질 것이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서경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저씨가 원하시는 걸 제가 드릴게요.”
서경의 대답에 남자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도 말이냐?”
“네. 대신에 우리 아빠는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그건 제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당돌한 대답에 창고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윽고 굵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창고 안을 크게 울렸다. 소름 끼칠 만큼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지만, 서경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버지는 살아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어린 서경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해도 최 회장은 늘 어려운 사람이었다. 운전하던 임 실장이 룸미러를 통해서 뒷좌석에 앉은 최 회장을 바라보았다.
즐거운 상상이라도 하는지, 창밖을 주시하는 최 회장의 입가가 한쪽으로 삐딱하게 올라가 있었다. 오른쪽 관자놀이부터 입가 끝까지 길게 이어진 상흔은 그가 얼마나 거친 삶을 살아왔는지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깊은 표식을 남겼다.
‘광덕회’라는 폭력 조직을 이끄는 최 회장은 ‘어둠의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별호를 갖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광덕회는 한국에서는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다 할 만큼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폭력 조직에 어울리지 않게 체계적이고 치밀한 네트워크를 자랑했다. 또한, 그가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자금은 정확한 추측이 어렵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규모여서 내로라하는 정·재계의 인사들도 그에게 굽실거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한 최 회장이 초라한 지방 나이트클럽까지 직접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임 실장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상벌에 엄격한 그가 거느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혼자 짐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들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보잘것없는 어린아이와 거래라니, 어쩐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회장님. 어린 계집아이를 거두어 어디에 쓰시려고요?”
임 실장의 물음에 최 회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자네, 그거 아는가? 나는 개 중에서도 진돗개를 으뜸으로 쳐 주거든. 녀석들은 한번 주인이라고 여기면 배신이라는 걸 몰라.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은 새끼 때부터 거두지 않으며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거둘 거 같으면, 어미젖을 떼기도 전에 새끼를 데려온다네.”
잠시 말이 없던 최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이의 눈빛이 마음에 들어. 한사코 제 아비를 지키려는 모습이 말이야. 제법 영민하고 강단이 있는 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면 결코 배신할 눈이 아니었어. 계집아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나이가 어리니 잘 거두어 키우면 시혁이를 주인처럼 섬기고 도울 걸세. 제 안위 따위 걱정하지 않고 말이야.”
최 회장의 말에 임 실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최 회장은 본디 그런 사내였다. 한 치도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계산된 치밀함, 사소한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판단력은 그 대상이 일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최 회장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새삼 이해될 것도 같다.
임 실장은 제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혈육과 생이별하고 자신도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갈 아이의 삶을 상상하니 어쩐지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그맘때 아이들이 겪을 소소한 행복들을 저당 잡힌 채, 아이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최 회장의 성북동 자택을 떠올리니 더욱 기분이 가라앉았다. 임 실장이 떠오르는 기억을 지우려는 듯이 운전대를 세게 움켜잡았다.
*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추스른 아버지는 규철에게 그간의 소식을 전해 듣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을 잊었다. 며칠 후, 최 회장이 보낸 승용차에 몸을 싣는 서경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꼭 한 번 안아 주었을 뿐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서경은 목까지 차오른 울음을 꾹꾹 눌러 삼켜야 했다. 어린 서경을 안쓰럽게 여긴 기사가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며 음료수며 이것저것 사서 손에 들려 주었지만, 서경은 멀거니 바라만 볼 뿐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얘야. 그만 일어나야지. 회장님께서 기다리실 테니 어서 들어가자.”
흔드는 기척에 서경이 눈을 떴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위어 가는 검붉은 해가 기와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차에서 내린 서경이 우뚝 솟은 높은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낯선 풍경에 숨이 탁 막혔다. 당장에라도 뒷걸음쳐서 달아나고 싶지만, 아버지의 슬픈 눈을 떠올리려 애썼다.
서경이 앞서 걸어가는 기사의 뒤를 따라 몇 개의 돌계단을 올랐다. 잘 가꾸어진 동양식 정원과 고풍스러운 계량 한옥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디귿 자 모양의 본채 뒤로는 별채로 보이는 작은 건물 두어 채가 더 보였다.
서경이 들어오라는 기사의 손짓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서 있던 단정한 차림새의 중년의 여자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회장님께 인사하고, 시장할 테니 저녁부터 들자꾸나.”
여자를 따라 원목으로 꾸민 널따란 거실을 지났다. 좁은 복도 끝, 창호지를 붙인 커다란 미닫이문 앞에 다다르자, 여자가 가만히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아이가 도착했으니 들여보내겠습니다.”
서경이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거실만큼이나 크고 널찍한 서재가 보였다.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서재에는 빽빽하게 책이 꽂혀 있었다.
정원이 훤히 보이는 창 앞에서 등지고 앉아 있던 최 회장이 몸을 돌렸다. 바라보는 눈동자가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갑기 그지없었다.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서 서경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책장에 기대어 책을 읽는 남자아이의 옆모습이 보였다. 서경은 마치 유령을 본 것 같았다. 어떤 기척에도 움직임이 없는 아이의 존재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혁아. 인사해라. 이제부터 우리와 한 식구가 될 아이다.”
최 회장의 말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칠흑같이 검은 동공. 소년이지만, 소년답지 않은 눈빛에 서경이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커다란 방이 크기를 좁히며 다가들었다. 속이 울렁대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갑자기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낯선 집도, 낯선 사람들도. 속을 알 수 없는 최 회장도. 그리고 차가운 눈빛을 가진 시혁이라는 아이도…….
어린 서경이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사흘을 앓다가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그해 여름, 시혁을 만났던 숨 막히도록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이었다.
2
“한서경!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프로 파일이 담긴 서류철을 던지며 진오가 소리쳤다. 내팽개친 파일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가 팽팽한 공기를 갈랐다. 그러나 서류를 받아 든 서경은 아무런 대꾸조차 없었다.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쏘아보던 진오가 매고 있던 넥타이를 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가 빠져나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빌딩과는 달리,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야경은 지나치게 활기차 보였다.
강남 테헤란로의 한복판, 푸른색 통유리로 된 빌딩은 얼마 전에 다인컴퍼니가 새롭게 인수한 빌딩이었다. 총 16층인 건물은 12층까지는 임대를 주고 13층부터는 다인컴퍼니가 사용하고 있었다.
회사 대표인 시혁과 몇몇 측근이 사용하는 꼭대기 층 사무실은 테라스를 포함한 펜트하우스 형태로 꾸며져 있었다. 서경의 사무실 유리 벽 뒤로 시혁이 사용하는 널따란 사무실이 보였다. 텅 비어 적막한 공간은 주인의 부재를 알릴 뿐이었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진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너의 이런 방식.”
“잘 알잖아.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나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낡은 책상과 빈 의자뿐이었다. 무심히 돌아서는 순간, 아버지와 자주 가던 술 창고가 떠올랐다. 가끔 이곳을 찾으면 아버지는 남몰래 서경을 창고로 데려가서 안주로 쓰고 남은 과일과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고는 했다.
문을 닫고 나온 서경이 건물 뒤편에 있는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술 창고로 쓰이는 회색 컨테이너 박스는 큰길을 접한 본관 건물과는 달리 사방이 어둡고 고요했다. 발밑에 밟히는 요란한 자갈 소리가 어린 서경의 긴장감을 부추겼다. 창고의 문손잡이를 돌리니 누군가 걸어 잠갔는지,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빠…… 아빠…….”
아버지를 불러 보았지만, 창고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서경의 귀에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창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쿵쿵 뛰는 제 심장 소리를 들으며, 창고 문틈에 귀를 가져다 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간헐적인 신음이 어딘가 귀에 익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서경이 혹시라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 있을까 하여 컨테이너 주위를 빙 돌았다.
다행히 창고 뒤편에는 조그만 창문이 있었다. 창고 안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서경이 밖의 불빛에 의지하여 시선을 집중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플라스틱 상자 사이로, 언뜻 불명확한 형체가 보였다.
뒷골목을 지나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섬광처럼 불을 뿜었다. 순간, 어둠을 더듬어 가던 서경의 눈에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들어왔다. 한 짝은 바닥에, 다른 한 짝은 잔뜩 웅크린 채 공처럼 몸을 말고 있는 아버지의 발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아빠! 아빠! 어엉…… 아빠.”
어린 서경의 울부짖음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서경의 외침에도 아버지는 간헐적인 신음만 흘릴 뿐 대답이 없었다. 창고 옆에 쌓인 벽돌을 집어 들어 창을 내리쳤지만, 굵은 철장이 꼼짝할 리 없었다.
그때였다. 수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클럽 앞을 서성이던 두 남자가 서경이 있는 창고로 걸어왔다. 다가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서경의 눈에 익었다. 아버지의 일자리를 주선해 준, 지영의 삼촌 규철이었다. 규철에게 달려간 서경이 그의 양복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저씨! 아저씨! 저 안에 우리 아빠가 있어요! 제발 아빠 좀 꺼내 주세요!”
“서경아. 웬일로 여기까지 왔어.”
“아저씨! 저러다 우리 아빠 죽어요. 제발 좀 꺼내 주세요!”
당황한 규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리고 있자, 지켜보던 다른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마에 흉터가 있는 그는 몹시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꼬맹아! 우리에게 애원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네 아버지가 겁도 없이 그 큰돈을 꿀꺽하는 바람에 클럽도 홀딱 뒤집혔거든. 이 자식도 네 아버지 때문에 상당히 곤란한 처지야.”
“일단은 집에 돌아가 있어. 네가 이러고 있어 봐야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설마 산목숨 어찌 되겠니.”
달래는 말 속에 심각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려워진 서경이 흐느껴 울었다. 지금 돌아가면 당장에라도 아버지가 죽을 것만 같았다.
“아저씨. 아빠는 서준이 병원비 때문에 그 돈을 훔쳤을 거예요! 제가 이다음에 커서 다 갚을게요. 네?”
“그래, 알아. 지금 서울에서 회장님이 내려온다니, 일단은 기다려 보자. 내가 전후 사정을 잘 말씀드려 볼게.”
“어이구. 오지랖은! 네 목숨이나 걱정해라. 이 병신자식아!”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침을 탁 뱉으며 소리쳤다.
제 아비가 당장에라도 죽을 듯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서경이 끝끝내 가지 않고 버티자, 달래기를 포기한 규철과 그의 동료가 제 할 일을 하러 간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밤이 깊어지자, 약간 수그러들었다. 창고 문 앞에 앉아 한참을 울먹이던 서경이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다. 시간이 지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쏟아질 듯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며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선잠에서 깨어난 서경이 눈을 비비며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말쑥한 차림의 풍채 좋은 중년 남자가 서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네댓 명의 남자가 그를 따르고 있었지만, 서경의 눈에는 오직 그 중년 남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사를 쥐고 있는 단 한 사람, 규철이 말했던 나이트클럽의 회장이 그 남자라는 사실을 어린 서경은 직감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아이인가? 저자의 딸아이라는 게?”
“네. 맞습니다.”
그를 따르던 무리 가운데에서 규철이 불쑥 튀어나오며 대답했다. 서경이 자는 동안 그간의 사정을 세세히 전달한 모양인지, 허리를 잔뜩 굽힌 규철은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이를 들여보내게.”
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열쇠를 든 누군가가 급히 창고 문을 열었다. 때를 놓칠세라 서경이 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는 고통마저 잊은 듯이 아버지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찢긴 옷가지와 피 범벅된 얼굴을 확인한 서경은 덜컥 겁이 났다. 참으려 했지만, 잇새로 울음이 새어 나왔다.
“이자를 데리고 나가게.”
몇몇 남자가 다가와서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일으켰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는 젖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서경이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가서 그의 바지 자락을 움켜잡았다.
“아저씨!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 돈은 제가 커서 몇 배로 갚을게요.”
서경이 막무가내로 매달리자, 뒤에 선 젊은 남자가 서경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중년 남자의 손짓에 젊은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중년 남자의 묵직한 손이 서경의 자그마한 몸을 일으켰다.
“얘야. 그런 말은 믿지 않는단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거든.”
시선을 맞추려는 듯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눈물로 범벅된 서경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혹한 눈빛이었다. 순간, 서경의 작은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자, 이제 네 아버지의 빚을 어떻게 갚을 테냐. 구체적으로 말이다.”
남자가 물었다. 서경이 흐르는 눈물을 후다닥 훔쳐 내었다. 어둡고 음습한 눈동자가 말했다. 자신은 눈물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남자는 12세의 어린 소녀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어른 대 어른으로서 거래를 청하고 있었다.
서경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으로 아버지가 사라질 것이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서경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저씨가 원하시는 걸 제가 드릴게요.”
서경의 대답에 남자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도 말이냐?”
“네. 대신에 우리 아빠는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그건 제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당돌한 대답에 창고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윽고 굵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창고 안을 크게 울렸다. 소름 끼칠 만큼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지만, 서경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버지는 살아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어린 서경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해도 최 회장은 늘 어려운 사람이었다. 운전하던 임 실장이 룸미러를 통해서 뒷좌석에 앉은 최 회장을 바라보았다.
즐거운 상상이라도 하는지, 창밖을 주시하는 최 회장의 입가가 한쪽으로 삐딱하게 올라가 있었다. 오른쪽 관자놀이부터 입가 끝까지 길게 이어진 상흔은 그가 얼마나 거친 삶을 살아왔는지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깊은 표식을 남겼다.
‘광덕회’라는 폭력 조직을 이끄는 최 회장은 ‘어둠의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별호를 갖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광덕회는 한국에서는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다 할 만큼 거대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폭력 조직에 어울리지 않게 체계적이고 치밀한 네트워크를 자랑했다. 또한, 그가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자금은 정확한 추측이 어렵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규모여서 내로라하는 정·재계의 인사들도 그에게 굽실거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한 최 회장이 초라한 지방 나이트클럽까지 직접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임 실장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상벌에 엄격한 그가 거느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혼자 짐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들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보잘것없는 어린아이와 거래라니, 어쩐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회장님. 어린 계집아이를 거두어 어디에 쓰시려고요?”
임 실장의 물음에 최 회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자네, 그거 아는가? 나는 개 중에서도 진돗개를 으뜸으로 쳐 주거든. 녀석들은 한번 주인이라고 여기면 배신이라는 걸 몰라.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은 새끼 때부터 거두지 않으며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거둘 거 같으면, 어미젖을 떼기도 전에 새끼를 데려온다네.”
잠시 말이 없던 최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이의 눈빛이 마음에 들어. 한사코 제 아비를 지키려는 모습이 말이야. 제법 영민하고 강단이 있는 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면 결코 배신할 눈이 아니었어. 계집아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나이가 어리니 잘 거두어 키우면 시혁이를 주인처럼 섬기고 도울 걸세. 제 안위 따위 걱정하지 않고 말이야.”
최 회장의 말에 임 실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최 회장은 본디 그런 사내였다. 한 치도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계산된 치밀함, 사소한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판단력은 그 대상이 일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최 회장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새삼 이해될 것도 같다.
임 실장은 제 아비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혈육과 생이별하고 자신도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갈 아이의 삶을 상상하니 어쩐지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그맘때 아이들이 겪을 소소한 행복들을 저당 잡힌 채, 아이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최 회장의 성북동 자택을 떠올리니 더욱 기분이 가라앉았다. 임 실장이 떠오르는 기억을 지우려는 듯이 운전대를 세게 움켜잡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겨우 추스른 아버지는 규철에게 그간의 소식을 전해 듣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을 잊었다. 며칠 후, 최 회장이 보낸 승용차에 몸을 싣는 서경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꼭 한 번 안아 주었을 뿐이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서경은 목까지 차오른 울음을 꾹꾹 눌러 삼켜야 했다. 어린 서경을 안쓰럽게 여긴 기사가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며 음료수며 이것저것 사서 손에 들려 주었지만, 서경은 멀거니 바라만 볼 뿐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얘야. 그만 일어나야지. 회장님께서 기다리실 테니 어서 들어가자.”
흔드는 기척에 서경이 눈을 떴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위어 가는 검붉은 해가 기와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차에서 내린 서경이 우뚝 솟은 높은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낯선 풍경에 숨이 탁 막혔다. 당장에라도 뒷걸음쳐서 달아나고 싶지만, 아버지의 슬픈 눈을 떠올리려 애썼다.
서경이 앞서 걸어가는 기사의 뒤를 따라 몇 개의 돌계단을 올랐다. 잘 가꾸어진 동양식 정원과 고풍스러운 계량 한옥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디귿 자 모양의 본채 뒤로는 별채로 보이는 작은 건물 두어 채가 더 보였다.
서경이 들어오라는 기사의 손짓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서 있던 단정한 차림새의 중년의 여자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회장님께 인사하고, 시장할 테니 저녁부터 들자꾸나.”
여자를 따라 원목으로 꾸민 널따란 거실을 지났다. 좁은 복도 끝, 창호지를 붙인 커다란 미닫이문 앞에 다다르자, 여자가 가만히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아이가 도착했으니 들여보내겠습니다.”
서경이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거실만큼이나 크고 널찍한 서재가 보였다.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서재에는 빽빽하게 책이 꽂혀 있었다.
정원이 훤히 보이는 창 앞에서 등지고 앉아 있던 최 회장이 몸을 돌렸다. 바라보는 눈동자가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갑기 그지없었다.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서 서경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책장에 기대어 책을 읽는 남자아이의 옆모습이 보였다. 서경은 마치 유령을 본 것 같았다. 어떤 기척에도 움직임이 없는 아이의 존재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혁아. 인사해라. 이제부터 우리와 한 식구가 될 아이다.”
최 회장의 말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칠흑같이 검은 동공. 소년이지만, 소년답지 않은 눈빛에 서경이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커다란 방이 크기를 좁히며 다가들었다. 속이 울렁대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갑자기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낯선 집도, 낯선 사람들도. 속을 알 수 없는 최 회장도. 그리고 차가운 눈빛을 가진 시혁이라는 아이도…….
어린 서경이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사흘을 앓다가 겨우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그해 여름, 시혁을 만났던 숨 막히도록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이었다.
2
“한서경!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프로 파일이 담긴 서류철을 던지며 진오가 소리쳤다. 내팽개친 파일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가 팽팽한 공기를 갈랐다. 그러나 서류를 받아 든 서경은 아무런 대꾸조차 없었다.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쏘아보던 진오가 매고 있던 넥타이를 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가 빠져나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빌딩과는 달리,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야경은 지나치게 활기차 보였다.
강남 테헤란로의 한복판, 푸른색 통유리로 된 빌딩은 얼마 전에 다인컴퍼니가 새롭게 인수한 빌딩이었다. 총 16층인 건물은 12층까지는 임대를 주고 13층부터는 다인컴퍼니가 사용하고 있었다.
회사 대표인 시혁과 몇몇 측근이 사용하는 꼭대기 층 사무실은 테라스를 포함한 펜트하우스 형태로 꾸며져 있었다. 서경의 사무실 유리 벽 뒤로 시혁이 사용하는 널따란 사무실이 보였다. 텅 비어 적막한 공간은 주인의 부재를 알릴 뿐이었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진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너의 이런 방식.”
“잘 알잖아.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