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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부부
1화
#프롤로그
말을 마친 의사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식을 들은 환자나 두 사람 다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이 뇌와 가슴을 강타해 어질어질한 김 여사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삭이고 또 삭였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치마의 천을 쥐어뜯고 힘을 줘가면서 심장을 조여 오는 통증을 참으려 애써 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까……내 내가 악 악성 뇌 뇌종양 말 말기라는 게……혹시 오진……?”
잦은 두통과 구토에 그저 속이 안 좋다 생각했었는데, 악성 뇌종양 말기라니. 두 눈을 부릅뜨고 의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만약 오진이라면 몸이 부서지고 찢기는 한이 있어도 재검사를 받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검사 결과를 살펴봤지만 오진이 아닙니다.”
“휴…….”
가슴이 에이고 쓰려 자글자글 끓어 넘쳤고 눈시울마저 뜨끈뜨끈해진 김 여사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일어나 분통을 터뜨리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니 의사의 손이라도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결과가 바뀐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죽는 시늉이라도 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성이 이미 포기하고 나섰다.
‘왜 하필 나냐고? 80세까지 사는 세상에 난 왜 환갑도 넘기지 못하냐고, 왜. 난 가온이 행복해 하는 것도 아직 봐야 하고, 가온이 낳아올 손주도 한 번 안아보지 못했는데 왜 내가 그런 지랄 맞은 병에 걸린 거냐고. 왜 내가?’
감정을 추스르려 애를 쓰면 쓸수록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덜덜덜 떨렸다. 도대체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그녀를 무너뜨릴 수 없다 믿었던 자만이 실수였다. 가시 같은 날카로운 진실이 그녀의 심장을 헤집고 갈라놔 너무 고통스럽다 못해 따가웠다.
“수술은……?”
“여사님의 경우, 종양의 형태나 크기, 위치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는데다가 연세도 많으시고 수술의 범위가 넓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누르고 애써 담담한 척 물었다. 현실을 받아들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이용해야만 했다. 이렇게 내 인생에 떨어진 폭탄을 가만히 앉아 맞아줄 순 없었다.
“뭐라 위로의…….”
“위로의 말 필요 없으니까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말해줘요.”
“저, 그게…….”
“나도 내 인생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해줘요.”
말하는 내내 갈기갈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격렬해지려는 감정을 달랬다. 의사의 힘든 상황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가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누굴 챙긴단 말인가. 곤혹스러운 시선을 던지던 의사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우물쭈물하는 것에 매서운 시선을 던졌다.
“네, 그런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사님의 경우 방사선 치료나 항암치료를 받으시면 최대한 3개월 정도의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치료를 거부하시게 되면 1개월도 버티시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소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말이네요?”
쩍쩍 말라 버린 입안으로 뻑뻑한 침을 삼키며 뻣뻣하게 굳은 등을 폈다.
“네.”
“의사 양반, 내 인생의 마지막 부탁을 하고 싶은데 도와주겠나?”
김여사의 꼿꼿한 시선이 의사의 눈을 집요하게 사로잡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의사가 제 역할 해줘야 그녀 인생의 마지막 숙제를 완벽하게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질질 짜며 그녀에게 남은 짧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었다.
*
“어서 전화해.”
“그래도 언니…….”
“내가 해?”
김여사는 오랜 세월 언니 동생으로 살아온 숙진에게 전화기를 내밀며 닦달했다. 큰 눈 가득 호수처럼 넘치는 눈물을 담고 그녀를 보는 숙진의 시선을 냉정하게 피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짧은 생이 주어졌으니 한시가 급했다.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그녀는 울 틈조차 없었다. 육체의 고통이 아닌 더 깊숙이 들어앉은 통증의 근원을 찾아 밑동까지 싹 도려낼 생각이라 바빴다.
“아니야, 내가 할게.”
숙진은 김 여사의 핸드폰을 들고 저장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신호음이 길어지면 질수록 그녀의 심장 박동소리가 더 크고 더 빠르게 뛰어댔다. 세상이 무너지는 이 소식을 어떻게 말을 하지? 긴 한숨과 짧은 한숨을 번갈아 쉬던 숙진은 신호음이 끝나고 기다렸던 조카의 목소리에 온몸을 경직시켰다.
“엄마, 왜?”
“가온아?”
“어? 이모네? 왜?”
“그게 있잖아……흑.”
가온의 발랄한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숙진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꺽꺽거렸다. 옆을 슬쩍 보자 김 여사가 아예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등이 얼마나 쓸쓸하고 아파 보이는지 입술이 떨리고 몸이 떨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언니가……언니가…….”
“엄마가 왜? 무슨 일인데?”
“있잖아…….”
“누구 속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 서론 빼고 본론만 말해. 어서.”
핸드폰 수화기로 가온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생김새나 성격마저 똑 닮은 두 모녀가 아파하는 걸 어떻게 볼지 눈앞이 깜깜했다. 인생마저 똑같은 딸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용하려는 언니를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언니가…… 악성…… 뇌종양…… 말기래.”
“……!”
“가온아?”
숙진은 두 사람 사이에 찾아온 침묵에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온이 어떤 상태일지 상상이 갔다. 그녀도 김 여사의 소식을 들었을 때 숨이 멎을 만큼 놀라고 하얗게 질리지 않았던가. 가온의 침묵을 느낀 김 여사가 다시 등을 돌려 앉는 게 보였다. 언니의 두 눈에 가득 담긴 습기를 보자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진짜? 진짜 우리 엄마가 뇌종양 말기야?”
“그래, 나도 믿을 수 없지만 검사 결과가 나왔어.”
“말기까지 갈 정도면 많이 아팠다는 건데, 왜 병원에 가지 않았데? 응?”
“처음엔 두통이라 약만 먹었었는데 구토까지 하니까 이상해서 검사를 받았던 거지.”
“혼자 씩씩한 척은 다하면서 왜 우리 엄마는 머리에 그런 병을 키웠데? 아, 진짜 미치겠다.”
“가온아…….”
가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숙진은 화를 내는 조카를 조용히 불렀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부정하고 싶고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당사자 보다 더 아플까? 그녀는 언니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해낼 생각이었다.
“수술은?”
“늦어서 안 된데.”
“엄마 바꿔 봐.”
“엄마? 사실은 가온야, 엄마가 좀 이상해.”
숙진의 시선에 김 여사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왜? 아프데?”
“아픈 것도 아픈 건데 기억에 문제가 좀 생겼어.”
“기억이라니?”
“선우 서방 언제 오냐고 자꾸 물어.”
그녀의 대답에 또 한 번의 침묵이 찾아왔다. 가온이 남편과 이혼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으니 좀 의아스럽기도 할 것이다. 가온의 이혼은 당사자만의 아픔이 아닌 모두의 슬픔으로 다가온 일이었다. 그런 일을 끄집어 냈으니 가온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선우민 씨를 왜?”
“네가 이혼한 걸 잊어 먹은 것 같아.”
“휴……알았어. 내일 집으로 내려갈 테니까 그때 얘기해.”
“언니, 으흐흐흑.”
전화를 끊은 숙진은 김 여사를 덥석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언니의 이 따뜻한 온기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꾸역꾸역 차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한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언니를 부르고 또 불렀다.
“언니……, 언니……, 언니……. 세상에, 우리 언니가…… 왜…… 하필 그런 병에…… 걸린 거냐고, 왜……응? 법…… 없이도 살 우리…… 언니가…… 왜……?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떻게……? 우리 가온이…… 불쌍해서…… 어떻게…… 응……? 언…… 으흐흑흑…… 니…… 흐흑…….”
1화
#프롤로그
말을 마친 의사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식을 들은 환자나 두 사람 다 말을 잇지 못했다. 충격이 뇌와 가슴을 강타해 어질어질한 김 여사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삭이고 또 삭였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치마의 천을 쥐어뜯고 힘을 줘가면서 심장을 조여 오는 통증을 참으려 애써 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까……내 내가 악 악성 뇌 뇌종양 말 말기라는 게……혹시 오진……?”
잦은 두통과 구토에 그저 속이 안 좋다 생각했었는데, 악성 뇌종양 말기라니. 두 눈을 부릅뜨고 의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만약 오진이라면 몸이 부서지고 찢기는 한이 있어도 재검사를 받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검사 결과를 살펴봤지만 오진이 아닙니다.”
“휴…….”
가슴이 에이고 쓰려 자글자글 끓어 넘쳤고 눈시울마저 뜨끈뜨끈해진 김 여사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일어나 분통을 터뜨리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니 의사의 손이라도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결과가 바뀐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죽는 시늉이라도 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성이 이미 포기하고 나섰다.
‘왜 하필 나냐고? 80세까지 사는 세상에 난 왜 환갑도 넘기지 못하냐고, 왜. 난 가온이 행복해 하는 것도 아직 봐야 하고, 가온이 낳아올 손주도 한 번 안아보지 못했는데 왜 내가 그런 지랄 맞은 병에 걸린 거냐고. 왜 내가?’
감정을 추스르려 애를 쓰면 쓸수록 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덜덜덜 떨렸다. 도대체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그녀를 무너뜨릴 수 없다 믿었던 자만이 실수였다. 가시 같은 날카로운 진실이 그녀의 심장을 헤집고 갈라놔 너무 고통스럽다 못해 따가웠다.
“수술은……?”
“여사님의 경우, 종양의 형태나 크기, 위치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는데다가 연세도 많으시고 수술의 범위가 넓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누르고 애써 담담한 척 물었다. 현실을 받아들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이용해야만 했다. 이렇게 내 인생에 떨어진 폭탄을 가만히 앉아 맞아줄 순 없었다.
“뭐라 위로의…….”
“위로의 말 필요 없으니까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말해줘요.”
“저, 그게…….”
“나도 내 인생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해줘요.”
말하는 내내 갈기갈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격렬해지려는 감정을 달랬다. 의사의 힘든 상황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가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누굴 챙긴단 말인가. 곤혹스러운 시선을 던지던 의사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우물쭈물하는 것에 매서운 시선을 던졌다.
“네, 그런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사님의 경우 방사선 치료나 항암치료를 받으시면 최대한 3개월 정도의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치료를 거부하시게 되면 1개월도 버티시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소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말이네요?”
쩍쩍 말라 버린 입안으로 뻑뻑한 침을 삼키며 뻣뻣하게 굳은 등을 폈다.
“네.”
“의사 양반, 내 인생의 마지막 부탁을 하고 싶은데 도와주겠나?”
김여사의 꼿꼿한 시선이 의사의 눈을 집요하게 사로잡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의사가 제 역할 해줘야 그녀 인생의 마지막 숙제를 완벽하게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질질 짜며 그녀에게 남은 짧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었다.
“어서 전화해.”
“그래도 언니…….”
“내가 해?”
김여사는 오랜 세월 언니 동생으로 살아온 숙진에게 전화기를 내밀며 닦달했다. 큰 눈 가득 호수처럼 넘치는 눈물을 담고 그녀를 보는 숙진의 시선을 냉정하게 피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짧은 생이 주어졌으니 한시가 급했다.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그녀는 울 틈조차 없었다. 육체의 고통이 아닌 더 깊숙이 들어앉은 통증의 근원을 찾아 밑동까지 싹 도려낼 생각이라 바빴다.
“아니야, 내가 할게.”
숙진은 김 여사의 핸드폰을 들고 저장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신호음이 길어지면 질수록 그녀의 심장 박동소리가 더 크고 더 빠르게 뛰어댔다. 세상이 무너지는 이 소식을 어떻게 말을 하지? 긴 한숨과 짧은 한숨을 번갈아 쉬던 숙진은 신호음이 끝나고 기다렸던 조카의 목소리에 온몸을 경직시켰다.
“엄마, 왜?”
“가온아?”
“어? 이모네? 왜?”
“그게 있잖아……흑.”
가온의 발랄한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숙진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꺽꺽거렸다. 옆을 슬쩍 보자 김 여사가 아예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등이 얼마나 쓸쓸하고 아파 보이는지 입술이 떨리고 몸이 떨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언니가……언니가…….”
“엄마가 왜? 무슨 일인데?”
“있잖아…….”
“누구 속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 서론 빼고 본론만 말해. 어서.”
핸드폰 수화기로 가온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생김새나 성격마저 똑 닮은 두 모녀가 아파하는 걸 어떻게 볼지 눈앞이 깜깜했다. 인생마저 똑같은 딸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용하려는 언니를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언니가…… 악성…… 뇌종양…… 말기래.”
“……!”
“가온아?”
숙진은 두 사람 사이에 찾아온 침묵에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온이 어떤 상태일지 상상이 갔다. 그녀도 김 여사의 소식을 들었을 때 숨이 멎을 만큼 놀라고 하얗게 질리지 않았던가. 가온의 침묵을 느낀 김 여사가 다시 등을 돌려 앉는 게 보였다. 언니의 두 눈에 가득 담긴 습기를 보자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진짜? 진짜 우리 엄마가 뇌종양 말기야?”
“그래, 나도 믿을 수 없지만 검사 결과가 나왔어.”
“말기까지 갈 정도면 많이 아팠다는 건데, 왜 병원에 가지 않았데? 응?”
“처음엔 두통이라 약만 먹었었는데 구토까지 하니까 이상해서 검사를 받았던 거지.”
“혼자 씩씩한 척은 다하면서 왜 우리 엄마는 머리에 그런 병을 키웠데? 아, 진짜 미치겠다.”
“가온아…….”
가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숙진은 화를 내는 조카를 조용히 불렀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부정하고 싶고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당사자 보다 더 아플까? 그녀는 언니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해낼 생각이었다.
“수술은?”
“늦어서 안 된데.”
“엄마 바꿔 봐.”
“엄마? 사실은 가온야, 엄마가 좀 이상해.”
숙진의 시선에 김 여사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왜? 아프데?”
“아픈 것도 아픈 건데 기억에 문제가 좀 생겼어.”
“기억이라니?”
“선우 서방 언제 오냐고 자꾸 물어.”
그녀의 대답에 또 한 번의 침묵이 찾아왔다. 가온이 남편과 이혼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으니 좀 의아스럽기도 할 것이다. 가온의 이혼은 당사자만의 아픔이 아닌 모두의 슬픔으로 다가온 일이었다. 그런 일을 끄집어 냈으니 가온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선우민 씨를 왜?”
“네가 이혼한 걸 잊어 먹은 것 같아.”
“휴……알았어. 내일 집으로 내려갈 테니까 그때 얘기해.”
“언니, 으흐흐흑.”
전화를 끊은 숙진은 김 여사를 덥석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언니의 이 따뜻한 온기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꾸역꾸역 차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한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언니를 부르고 또 불렀다.
“언니……, 언니……, 언니……. 세상에, 우리 언니가…… 왜…… 하필 그런 병에…… 걸린 거냐고, 왜……응? 법…… 없이도 살 우리…… 언니가…… 왜……?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떻게……? 우리 가온이…… 불쌍해서…… 어떻게…… 응……? 언…… 으흐흑흑…… 니…… 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