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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되묻고 있어도 그의 심장은 욕심으로 크게 부풀었다. 여자의 경험 유무에 대해 따져본 적이 없는데 그녀의 대답이 기분이 좋은 건 뭔지. 아직 그녀와 어떠한 관계도 아닌데 이 밑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욕심은 뭐란 말인가. 그도 한심한 남자들 중에 한 명인 모양이었다.
“이 나이에 경험이…… 없으면 비정상인 건가요?”
“아니, 그건 당신의 선택인데 누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그래요. 누가 상관할 일은 아니죠. 그런데 내가 하기…… 싫어 안 한 건 아니에요. 그저 하고 싶은 상대가 없었을 뿐이죠. 아무 남자에게 덥석 안기는 건 짐승…… 같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정말 궁금해요.”
“뭐가?”
그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흔들리는 눈동자에 목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를 믿는 듯한 까만 눈동자와 작은 콧마루가 그를 괴롭혔다. 그녀의 눈빛이 그를 사로잡아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슴이 갈등으로 대혼란에 빠졌다. 전신으로 짜릿한 소름이 끼쳐오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내게 가르쳐…… 줄래요?”
“난 술 취한 여자하곤 섹스 안 해.”
“내가 하고…… 싶다는데도요?”
“나중에 후회할 일 하지 마.”
“그래요? 그럼 다른 남자를…… 한번 찾아보죠 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당신하곤 상관없는 일인데 왜 그러죠?”
“글쎄, 난 당신과 생각이 다른데?”
준오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짜 다른 남자에게 갈 것처럼 행동하자 다급히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바닥 어딘가에 발이 걸렸는지 그의 무릎에 떨어졌고 그 순간 그는 간간히 내뱉던 호흡마저도 힘들었다. 그녀의 말려 올라간 정장 치마 아래로 스타킹에 감싸인 허연 다리가 그의 하체를 꼭 눌렀다. 밀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손이 그의 목을 감자 이내 스르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잡았다.
다른 남자라니, 절대 아니 될 말이었다. 그의 관심을 끈 여자를 딴 남자에게 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의 욕심어린 손길이 그녀의 허리를 꽉 죄자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전류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럼…… 내게 가르쳐 줄…… 거죠?”
“정말 괜찮겠어?”
“네?”
“각오가 되어 있냐고?”
그의 눈이 그녀를 태울 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흐릿하지만 말간 눈동자도 그의 욕구를 식히진 못했다. 그녀는 술에 취했다고 수십 번 되씹어 보아도 그의 이성은 이미 깡그리 날아간 상태였다. 야한 자세로 포개어져 있는 그들에게 사람들의 눈빛들이 쏟아졌다.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 그는 호텔 바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가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이었나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그의 가슴에서 자라났다.
“큭큭큭, 왜 이렇게 인상을 쓰고 있어요?”
“나중에 후회할 텐데?”
그는 지금 한 마리의 굶주린 야수였다. 그녀만 허락을 한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몽땅 빨아들이고 먹어치울 준비가 되어 있는 그였다. 그래도 이 겁 없는 여자는 그의 인내심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었다. 뭘 알고 이러는 것인지.
“그래도 좋다면 어쩔…… 건데요?”
“으…….”
준오는 그녀의 도발적인 눈빛에 할 말을 잃다가 갑작스럽게 덮쳐온 입술에 숨을 들이켰다. 그녀를 말릴 틈은 없었다. 그녀의 양손에 얼굴을 잡혀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녀를 말리려던 양손은 이미 그녀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상태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이 여자 경험이 없다더니 정말이었나 보다. 키스가 완전 초보 수준이었다. 무조건 밀어붙이는 통에 입술만 아플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주도권을 빼앗아 와야 할 모양이었다.
“아야.”
“쉬이.”
결국엔 그녀의 입술을 물었더니 화난 얼굴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원망어린 눈빛이 그를 쏘아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이를 세워 그녀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부드러운 케이크를 맛보듯 살짝 물었다가 놓으며 혀로 굴렸다. 고개든 그의 시선에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보였다. 그녀가 눈 감은 것을 보자 그의 눈썹 끝이 길게 휘어졌다. 콧속으로, 또 얼굴 위로 그녀의 솔직한 숨결들이 품어져 나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힘차게 헤엄쳐 들어갔다. 칼날 같아도 부드러운 그의 혀가 그녀의 혀를 이리저리 찔러보고 요리조리 밀쳐대며 빨아들였다. 물 만난 듯 그녀의 입 안을 꽉 채우고 천장과 잇몸을 빈틈없이 핥았다.
“하악…… 하악…… 숨…… 좀…….”
“안 돼. 먼저 건드린 건 당신이야.”
“숨은 ……좀…… 쉬……어야죠.”
“조그만 더 맛보고 나서.”
고개를 뒤로 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채며 도망간 혀를 잡으러 출동했다. 잠깐의 숨이라도 쉬려고 헉헉대는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채 까칠한 혀의 돌기를 혀끝으로 비볐다. 그녀의 목 아래에서 신음이 터져 나와 그의 입으로 전달되었다. 그래도 숨을 쉬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그녀의 혀를 잡아챈 그는 자신의 입 안으로 끌고 왔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혀뿌리까지 잘근잘근 씹어 들어갔다. 그녀의 몸이 그에게로 기울어지며 굴곡 있는 몸매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녀의 혀에서 건너온 달디단 침이 그의 입 안으로 넘어 들어왔다. 연결된 입술 사이로 서로의 침이 섞여들며 들어오자 그의 목울대가 몇 번을 쿨렁거려야 했다. 두 개의 작은 강이 만나 하나의 큰 강이 되었다.
그녀가 채 삼키지 못한 타액들이 입술 밖으로 흘러내리려 하자 그의 입술이 다급히 받아 마셨다. 고개를 든 그는 말캉한 혀로 그녀의 입술을 핥아 올리며 반응을 기다렸다. 움찔하기는 해도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더 큰 원을 그리며 핥아 올렸다. 그의 혀와 그녀의 입술이 닿아 발생하는 마찰소리가 너무 은밀했다. 드디어 그녀의 눈이 열리며 탁해진 눈동자가 보였다. 여기 더 있다간 더한 것을 시도할까 무서워 떠나야할 것 같았다.
“후회해도 좋다고 한 말 진심이야?”
“…….”
“말로 대답해.”
준오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술에 취해 이성이 마비된 건 알지만 허락은 제대로 받고 싶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보낼 순 없었다.
“네.”
“다시 묻진 않을 거야.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그는 그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의 결정을 철회할까 두려워 차마 한 번 더 물어보지 못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를 쳐다보는 순진한 그녀의 눈이 보였다.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을 떼어내고 그의 다리 위에서 일으켜 세웠다.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보며 흐트러진 옷을 매만져 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차원에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아래층에 있는 호텔로 바로 내려갔다. 그동안에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의 뜨거운 육체가 그의 몸에 바짝 밀착되어지자 잠자던 감각이 일깨워져 입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고의가 아닌 그녀의 유혹에 그는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다가올 쾌락과 다급한 욕망에 대한 고통이 그를 괴롭혀댔다. 몸속에서 지펴지는 불꽃이 불타올라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 뜨거워졌다.
“어? 여긴?”
“룸이야.”
그녀의 어깨를 안아 복도를 걸어가던 중 술이 조금 깬 듯한 그녀의 말소리에 룸 앞에 멈춰 섰다.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짧게 설명했다.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거칠어지는 호흡을 참아냈다. 짐승이 아닌 이상 그녀가 지금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보내줄 참이었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여기서 멈출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닌 다시 가질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애착이었다.
“아직도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네, 그래요.”
“솔직히 말할까? 당신이 안 된다고 했어도 보내주지 못했을 거야.”
그는 그녀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뭐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침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술엔 취했어도 분명 두려움을 가진 눈인데도 용기를 내는 그녀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물론 그녀가 간다고 했어도 그가 보내주진 않았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지고 싶은 여자인데 쉬이 보내주겠는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의 여자로 만들 것이다.
“그럼 왜 물었어요?”
“나도 몰라.”
“치, 당신 선수군요.”
“아닐 걸? 난 선수를 하기에 여자를 너무 믿지 않아.”
준오는 그녀의 손을 잡아 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에게 손을 잡힌 채 주춤주춤 따라 들어오는 그녀를 문에 밀쳤다. 확 풀어진 목소리의 그녀가 던진 농담에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야.”
“되도록 부드럽게 하겠지만 자신은 없어.”
문에 부딪혀 아픔을 호소하는 그녀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녀의 입술 위를 살짝 쓸었다가 얼굴을 들고 표정을 보았다. 나쁘진 않는지 그녀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눈을 꿈뻑거렸다. 그가 씨익 웃고는 그녀의 입술을 확 덮쳤다. 그의 부드러운 혀가 만들어내는 타액들이 철렁거리며 그녀의 침에 섞여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의 손은 바쁘게 그녀의 재킷을 벗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