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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속성으로 세수를 끝내고 옷까지 갈아입은 다인은 후다닥 현관으로 뛰어갔다. 아직 6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인데도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아침밥까지 꼬박꼬박 챙겨 주는 집주인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방문객에 대한 궁금증, 아니, 기대감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외박을 했으니 다정한 형부인 지후가 ‘짠’ 하고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언니의 닦달이든, 어른들의 심부름이든, 이유야 뭐든 간에 말이다.
신발을 꿰어 신은 그녀는 호기롭게 현관문을 밀어젖혔다.
“어?”
하지만 문은 열리다가 도로 닫혀 버린다. 다인은 다시 힘껏 문을 밀었다. 주먹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큼 벌어진 틈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상쾌한 숲 냄새와 물 냄새가 섞인 향긋한 내음이다. 평소라면 기분 좋게 심호흡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사정이 못 된다. 뭔가가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게 분명하다.
“왜 안 열려. 이봐요, 장난치지 말고 열어 줘요!”
문 앞에 있을 것 같은 그에게 다인은 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께름칙한 소리에 몸서리를 치는 그녀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뭐야, 변태 같은 소리 내지 마요! 소름 돋잖아.”
다인은 있는 힘껏 문을 밀고는 더 넓어진 문틈으로 운동화 신은 발을 턱, 내밀었다. 그 순간 무겁던 문이 홱 젖혀지고 그녀는…….
“아악! 뭐야, 뭐야, 뭐야! 너 뭐야!”
문 앞에 버티고 있던 콩은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신발 냄새를 맡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문이 열리고 신발의 주인이 등장함과 동시에 콩은 반갑게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발의 주인은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쁘다. 콩은 신나게 따라 뛰었다.
“아으― 저리 가, 오지 마. 나한테 오지 마, 저리 가!”
넓은 마당을 내달리던 다인은 때마침 시야에 들어온 벤치로 뛰어오르며 통사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고 덩치 큰 개는 그녀의 운동화에 침을 흘렸다.
다인의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 갔다. 허리에 다다를 만큼 키가 큰 개가 덤비는 것만으로도 혼이 쏙 빠질 지경인데, 며칠 전 새로 산 운동화를 침 범벅으로 만들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아오, 미쳐 버리겠네, 정말. 좀 떨어지라구! 저리 가! 안 들리니? 저, 리, 가!”
부탁 조에 이어 한 음절씩 끊어 강조하는 그녀의 말소리에 개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다 이내 운동화에 코를 박고는 킁킁대기 시작했다. 으르렁대기도 하고 킁킁대기도 하며 운동화를 향한 애정을 맘껏 발산하고 있는 개에게 다인은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그렇게 갖고 싶니?”
그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소리를 냈다. 다인은 화들짝 놀라 일어서며 운동화가 반쯤 걸쳐진 발을 흔들어 댔다. 흠뻑 젖어 버린 신발에 손을 댈 수는 없으니, 발을 털어서라도 운동화를 벗어 주려는 심산이다.
이내 벗겨진 신발이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개는 미련 없이 그녀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 씨, 진짜…….”
진귀한 뼈다귀라도 되는 것처럼 앞발로 운동화를 꼭 붙잡고 핥아 대는 녀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힐끔, 그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모든 광경을 다 지켜본 듯한 시선이, 아니, 시선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누런 개 두 마리가 주인과 함께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 앞에는 아까 윤성이 들고 나갔던 시리얼 그릇도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침밥일 줄 알고 설렜던 시리얼이 개밥일 줄이야! 그녀는 괜히 창피해 으름장을 놓는 시늉을 했다.
“웃지 마요!”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뭐야’를 연발할 때부터 지켜보고 있던 윤성은 느닷없는 불똥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웃지 말라니? 내가 언제 웃었나?’
그는 웃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쪽 입꼬리만 삐딱하게 추켜올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거울 앞에 서서 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으려 할 때마다 경련을 일으키는 뺨만 허무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콩의 선전에 덩달아 신이 난 두 녀석이 웃었다면 모를까, 그에게는 당치 않은 소리다. 괜히 그에게 화풀이한 모양이라고 혼자 단정 지으며 윤성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다른 신발 있어요?”
“나 어젯밤에 서울 가려고 했었거든요.”
윤성의 눈썹이 또 꿈틀댔다. 그녀의 동문서답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게 하룻밤 재워 주고 먹여 준 그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언짢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의 얼굴을 쳐다본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꼴랑 서울에서 청평까지 반나절 있겠다고 오면서 신발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연히 없지.”
윤성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늘어졌다. 괜한 생각으로 오해를 부풀릴 뻔했다. 촌구석에 처박힌 지 겨우 11개월 됐을 뿐인데, 나쁜 습관이 너무 많이 생겨 버렸다. 이런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둬야 하나 싶다.
“신발, 찾아볼게요.”
벤치에서 현관까지 깨금발로 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그녀는 반짝, 고개를 들고 돌아봤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그녀를 지나쳐 현관으로 간 그는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즈 있어요? 나 235 신는데.”
“여기가 신발 가게예요?”
어이없는 질문에 일일이 응수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할 정도다.
‘저 여잔 대체 머리 놔두고 어디로 생각을 하는 거야.’
얼굴 가운데에 박힌 작은 코안에 뇌가 들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들다 만 것 같은 작은 코를 지나쳐 올라가자 이쪽을 흘깃거리고 있는 눈동자가 보인다. 몹시 얄밉다는 듯, 입술까지 실룩이며 흘겨보고 있다. 그녀의 눈총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다가간 윤성은 손에 든 슬리퍼를 내밀었다.
“이거밖에 없어요?”
“신발 가게 아니라고요. 신어 봐요.”
윤성은 볼멘소리를 하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슬리퍼를 걸쳐 주었다. 다인은 언제 입이 튀어나왔었냐는 듯, 그새 킬킬거리며 발을 흔들어 댔다.
“헐렁헐렁―한데요.”
아이 같은 장난질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윤성은 참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더는 짜증을 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우선 신고 내려와요. 창고에 어머니 신던 거 있을지도 모르니까 찾아볼게요.”
나머지 한 짝을 갈아 신고 벤치에서 풀쩍 뛰어내린 그녀는 즐거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럼 내가 커피 만들어 줄게요. 신발 빌려주는 대신.”

*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개들은 밥을 먹다 말고 합창을 시작했다.
어머니의 오래된 장화를 찾아 나오던 윤성은 마당 한쪽 편으로 가 자리를 잡은 차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차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세 마리의 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달려갔다.
“쌀, 보리, 콩! 너희가 쟤보다 낫다, 야.”
환대해 주는 개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 주며 태영은 가시 박힌 말을 툭 던졌다. 그의 의도대로 창고 앞에 서 있는 동생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출장 준비 안 해?”
“아예 싣고 왔지.”
태영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답하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와서 보니 얼굴이 좀 꺼칠한 것도 같다.
“밥은 먹었어?”
“아니.”
“칼 같은 녀석이 어쩐 일로 밥을 굶고 있냐.”
단박에 튀어나온 윤성의 대답에 태영은 눈을 치켜떴다. 이곳으로 온 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동생은 칼같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게 없어. 어제 다 먹어서.”
심드렁한 대꾸에 태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흘에 한 번씩 오는 왕 비서가 윤성의 양에 딱 맞게 냉장고를 채워 둔다. 지금껏 쭉 그래 왔다. 남아서 버린다고 비서가 투덜댄 적은 있어도, 모자란다고 동생이 투덜댄 적은 없었다.
고정된 형의 시선에 괜스레 불편해진 윤성은 고개를 돌렸다.
“오늘 선재 오는 날이야.”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중얼대는 동생에게 태영은 새로운 정보를 줬다.
“알아. 내일도 올 거야.”
“왜?”
윤성의 얼굴이 홱 돌아오자 태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나 공항 가고 나면 차 가져가야지.”
벤치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 형을 따라가며 윤성은 의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형은 차 안 타고 걸어가게?”
“아니, 너 있잖아.”
벤치에 엉덩이를 걸치며 태영은 웃음과 대답 소리를 동시에 냈다. 동생을 기사로 부려 먹으려는 심산은 아니다. 가끔 한 번씩이라도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해 억지 핑계를 만들어 붙일 때마다 윤성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윤성은 대꾸를 하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소리는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커피 머신 완전 좋아. 우리 집 건 오래돼서 맹맹한 커피만 나오는데…….”
두 남자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팔꿈치로 현관문을 밀고 나오는 사람은 다인이다. 양손엔 머그잔을 들고,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새색시 걸음을 걷고 있다. 헐렁한 슬리퍼 덕분에 걸음걸이가 더욱 조심스럽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입은 계속 말을 쏟아 내고 있다.
“고 여사를 꼬여서 빨리 바꿔야지, 원.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무슨 낙으로 사냐고요.”
“누구야?”
“어, 누구세요?”
놀란 것이 분명한 목소리로 묻는 소리는 태영의 것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보다는 반가움이 더 많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다인의 것이었다.
“앰…….”
형에게 대답해 주려 입을 여는 순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야! 얼마나 흘린 거야, 아까워라.”
걸어오는 동안 출렁이다 쏟아질 정도면 커피를 얼마나 꽉꽉 채워 온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여자다. 윤성은 성큼성큼 다가가 다인의 손등을 살폈다.
“델 만큼 뜨겁진 않았어요. 신발 찾았어요? 신발부터 갈아 신어야겠어. 이거 지 혼자 막 빙빙 돌아요.”
신발을 묻는 다인에게 윤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지만 대답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다인이 보라는 듯이 한 발을 들어 까닥까닥 흔들다가 킬킬대더니 곧장 다른 얘기를 지껄여 댔기 때문이다.
“아 참, 이거 받아 봐요. 손 좀 씻고 커피 한 잔 더 만들어 올게요.”
윤성은 얼결에 머그잔을 넘겨받았다. 까치발을 들고 윤성의 어깨너머를 보려던 다인은 이내 체념하고 휙, 몸을 기울여 태영을 쳐다본다. 이유를 퍼뜩 눈치채지 못해 가만 보고 있던 윤성은 다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돌아오자 그제야 ‘아’ 낮게 탄식했다.
“우리 형이에요.”
즉각 대답해 주는 윤성에게 생긋 웃어 보인 다인은 아까처럼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금방 나올게요.”
다인의 머리가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움찔움찔, 긴장하고 있던 태영도 까닥, 묵례로 답했다. 태영의 고갯짓을 확인하자마자 다인은 종종거리며 현관으로 연결된 계단을 뛰어올랐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동생에게서 머그잔 하나를 받아 가며 태영은 속삭이듯 물었다.
“여자 친구야?”
윤성의 눈썹이 홱, 치켜지자 태영은 ‘어이쿠!’ 장난스러운 투로 엄살을 떨며 뒤로 물러나는 시늉을 했다.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도끼눈까지.”
“앰뷸런스야. 지후가 보낸다고 했던.”
동생의 대답이 흘러나왔지만, 태영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다. 구급차를 물은 게 아니라, 동생 혼자 있는 별장에서 밤을 보내고 모닝커피를 만들어 나온 ‘여자’가 누군지 물은 거였다. 엉뚱한 쪽으로 화제를 돌리려는 어쭙잖은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실소와 커피 한 모금을 동시에 머금고 먼 산을 바라보던 태영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지후의 최후통첩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앰뷸런스’라는 것이 차가 아닌 사람이었다는 것은 지금 막 깨달았다.
“앰뷸런스?”
“사전 면담이라나 뭐라나.”
“아!”
태영의 입에서 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동생의 절친한 친구인 지후를 아들로 둔 김영지 박사의 작품인가 보다. 지후의 엄마인 영지와 그들 형제의 엄마 윤희는 아들들이 친구를 맺기 이전에 주치의와 환자로 먼저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럼 지후가 보낸 게 아니라 이모가 보내신 거네?”
“뭐, 그럴지도.”
순순히 대꾸하는 동생의 시선은 호수에만 꽂혀 있다. 한 번쯤 이쪽을 쳐다봐 줘도 좋으련만. 시선을 마주치고 있을 땐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저는 모르겠지만 공허하던 눈동자에 웃음기가 출렁이는 순간을 종종 포착하기도 했었다. 지금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으면 조바심이 났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슬퍼하는지, 즐거워하는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아무런 힌트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태영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홀짝였다.
몇 개월 전이었다면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프로이트 박사가 왔다고 해도 결코 이 별장 안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굳게 닫혀 있던 빗장이 조금 느슨해진 것일까. 지후의 야심 찬 시도가 반쯤 먹혀든 것 같으니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봐도 되는 건가. 이 생각, 저 생각, 두서없이 떠올려 보던 태영은 혼자 해결하기를 체념하고 동생에게 물었다.
“마음은 정했어?”
윤성의 시선이 돌아와 조용히 꽂혔다.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다. 형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다. 무심한 듯, 대답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한 눈빛이다.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걸까. 아니, 어떤 대답을 해야 결정하기가 수월해질까.
한동안 형을 바라보던 윤성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모두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걸맞은 행동을 그가 취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면서 말로는 그에게 결정하라고들 한다. 이쯤 되니 결정권이 그에게 있기나 한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건 결론은 똑같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벌써 수백 번째다.
“그런 건 오래 끌수록 더 복잡해지는 거야. 그냥 눈 딱 감고 내일 나랑 같이 나가자. 이모가 사람까지 보낸 마당인데, 더 버티면 조만간 이모가 직접 오실지도 몰라.”
기다리다 지친 형이 쏟아 내는 말들이, 불현듯 들었던 의심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마치 성을 함락시키는 것처럼, 1차 시도에 실패하면 2차 시도, 그리고 또 실패하면 3차 시도. 아마 성공할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그 시도들에 벌써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삶의 이유라고 자부하기도 했던 음악이, 각자의 삶을 영위하느라 바쁘던 부모님의 그늘이, 가볍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철없이 떠들던 친구가 갑작스레 그리워졌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왜 이렇게 심각해요? 두 분 싸웠어요?”
다인이 다가오며 묻는 소리에 태영이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