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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아주 온수가 콸콸 나오는 게, 딱 좋네, 딱 좋아. 고정윤 여사 데려오면 함빡 빠지시겠어.”
개운한 기분으로 목욕을 끝낸 다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머리를 털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목욕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간단하게 세수 정도만 할 요량으로 욕실에 발을 들였다가 그만 널찍한 욕조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이틀 밤을 의국에서 보낸 후 뜨뜻한 물로 가득 채운 욕조를 상상하는 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었다. 그 결과 한 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여 있던 피로를 싹 풀고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머리를 말리는 중이다.
문득 세찬 날숨을 내뱉으며 콧잔등을 찌푸린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나무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곳에 온 목적을 잠시 망각했다.
거울 속, 울상을 한 얼굴을 잠시 마주 보던 그녀는 마음을 다잡으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반쯤 마른 긴 머리를 대충 걷어 묶은 뒤 욕실 문을 박차고 나온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필요한 장비를 챙겼다. 노트와 펜과 녹음기를 야무지게 챙겨 들고 다짐이라도 하는 듯 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방을 벗어났다.
어두워진 복도를 지나 거실까지 둘러봤지만, 집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인은 재빠르게 주위를 휘둘러보며 스위치를 찾았다.
“어디 갔나?”
벽에 붙은 스위치를 모조리 다 누른 다인은, 이번에는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보내며 필요한 조명을 찾는 데 열중했다.
“해가 졌으면 불을 켜야지. 누가 보면 귀신 나오는 집인 줄 알겠네.”
투덜대는 것도 역시 혼잣말이다. 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미꾸라지처럼 또 어디 가서 숨으셨나…….”
다인은 입을 삐죽이며 발을 놀리다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긴 뭐지?”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가 볼까?”
잠시 망설이던 다인은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 보지, 뭐. 귀신이 나오겠어, 도깨비가 나오겠어. 나와 봤자 싸가지 결핍증 걸린 남자밖에 더 나오겠어?”

창가에 선 윤성은 어느새 컴컴해진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선 어둠이 번지는 속도가 유난히 빠르다. 호수를 겹겹이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 때문이다. 친구와의 통화가 끝난 건 한참 전이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그의 대치점에 서서 중재하느라 바쁜 태영의 애원을 못 들은 체할 깜냥이 못 된다. 화를 참다못한 성민의 으름장에 이제 더 이상은 ‘될 대로 되라’ 큰소리치지도 못 하겠다. 피를 나눈 형제만큼이나 각별한 지후의 최후통첩은 벌써 순순히 받아들인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에는 없었던 미안한 감정마저 들고 있으니 그들의 설득은 반쯤 성공한 건지도 모른다.
꾹 다물린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강윤성 씨! 어디 계세요?”
윤성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섰다. 꽤 골치 아프게 생긴 여자 하나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었다.
‘망할 놈의 앰뷸런스.’
윤성은 낮은 탄식을 내뱉으며 문간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주방에 다다를 때까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해진 윤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방 입구로 들어섰다.
“어! 어디 숨어 있었어요, 한참 찾았네.”
그녀의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윤성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숨어 있어?’
어이가 없다.
‘내 집에서 내가 왜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곧장 뒤따른 의문이다. 하지만 반박은 속으로만 해야 했다.
“골탕 먹일 궁리 그만하고 얼른 인터뷰 시작하죠. 저도 사무가 바쁜 몸이고, 그쪽도 불청객이 눌러앉아 있는 거 싫어하는 눈치니까.”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말은 마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녹음기 소리 같았다. 그는 어금니를 꽉 다문 채 그녀를 불렀다.
“이봐요.”
식탁으로 가 자리를 잡은 그녀는 손바닥으로 식탁을 탁탁 두들기며 되레 그를 불렀다.
“뭐 해요. 여기 앉아요. 버스도 10시까지밖에 없다면서요. 나 빨리 내쫓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상대방의 심기가 어떻든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제 할 말만 쏟아 냈다.
그의 입에선 세찬 날숨이 뿜어져 나왔다. 어이가 없어 터뜨리는 실소다. 일면식도 없었던 그녀는 그에게 완벽하게 낯선 사람이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성질대로라면 싸우자고 덤벼도 시원찮을 판국이다. 하지만 그녀와 그 사이엔 너무 많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 각별한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참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성질을 꾹꾹 눌렀다.
마지막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지나가는 그의 뒤통수를 그녀는 밉살스럽게 흘겨봤다.
‘세상 근심 자기 혼자 다 짊어지고 있나.’
속으로 비아냥대며 입을 삐죽이던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 까먹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조리대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저 남자는 갖은 종류의 심적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다. 다인의 눈꼬리가 눈에 띄게 늘어졌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2년 차씩이나 된 전공의가 환자에게 비아냥대기나 했다는 사실이 꼭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진 탓이다.
다시 식탁으로 다가온 그는 양손 가득 들고 온 밀폐 용기들을 툭툭, 성의 없게 내려놓았다. 생뚱맞은 물건의 등장에 다인은 눈을 치켜뜨고 그를 쳐다봤다.
“저녁 먹고 합시다. 의사도 밥은 먹을 거 아닙니까.”
그가 돌아서며 내놓은 제안에 다인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려 동의를 표했다. 네 시간 전 구내식당에서 먹었던 돼지고기볶음은 벌써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다인은 분주히 손을 놀려 밀폐 용기의 뚜껑을 벗겨 냈다.
식탁엔 분명 두 사람이 앉아 있지만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반가운 밥과의 조우에 다인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쌀을 주셔서 감사하고, 고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그녀의 독창적인 감사 기도는 속으로만 읊조려야 하는 기도다. 입은 밥과 반찬을 씹어 대느라 바쁘니 기도를 올리는 수고로움까지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맞은편에 앉은 윤성의 시선은 다인의 젓가락을 따라다니기 바빴다. 무심한 체하려 해도 사방팔방 바쁘게 돌아다니는 젓가락이 신경 쓰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원래 레지던트들은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쁜가.’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이 측은지심마저 들게 했다. 날카롭던 눈빛도 조금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부지런히 밥숟가락을 놀리던 그녀가 내뱉는 탄식에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으아!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이거 누가 만든 거예요? 이 사람 미쳤나 봐, 무슨 음식을 이렇게 잘해! 구내식당으로 스카우트해야겠어.”

부른 배를 두들기며 거실로 나온 다인은 단정한 자세로 소파에 걸터앉았다. 이제 의사의 역할을 해야 하니 옷매무새도 다듬어 본다. 식탁에선 아무래도 체통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찜찜하지만, 별수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슬슬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눈을 또록또록하게 떴다. 때마침 그가 나타나자 다인은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기다려요. 쌀, 보리, 콩 좀 데려다 놔야 하니까.”
무뚝뚝한 말소리와 휙 지나쳐 가는 행동 덕분에 미소가 무색해졌다.
‘귀농한 것도 아니면서 웬 쌀, 보리, 콩.’
이번에도 속엣말에 그친 비아냥이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비아냥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야말로 불청객을 바라보는,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치기엔 아직 그녀의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늘어진 입꼬리와 비슷하게 눈꼬리도 늘어진다.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쌀, 보리, 콩을 데려다 놔?’
생명체가 아닌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이라도 가진 건가 싶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거 아냐?’
다인은 챙겨 온 노트를 뒤적거려 원하는 페이지를 찾아냈다. 지난 1년간 그가 여러 의사로부터 받았던 진단명이 적힌 페이지이다.

선택적 함구증, 우울 장애, 사회 공포증, 간헐적 폭발성 장애…….

치료가 필요한 병증과 이미 치료가 끝난 병증을 하나하나 짚어 가던 손가락이 방금 지나친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
자칫하면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심각한 병증이다. 이미 치료가 끝났다고 적혀 있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충동 조절 장애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재발하기도 한다.
“이렇게나 심각했었나?”
다인의 얼굴이 걱정으로 일그러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으로 인해 야기된 병증이 너무 많다. 직접적인 연관성은 희박해 보이는 사회 공포증까지 포함된 것을 보니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던 사람인가 보다.
‘연예인이라 그런가.’
그네들끼리의 시쳇말로 우울증은 ‘연예인 직업병’이라고 일컫는다는 말을, 언젠가 지후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다인은 문득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예인이라서 정신적 상처에 대한 자연 치유력이 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함묵증이라는 병명 뒤에 숨어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어두운 구석으로만 숨어들던 어떤 소녀처럼,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사람 또 왜 안 들어와.”
얌전히 앉아 기다린 지가 벌써 10분도 더 지난 것 같다. 곡식을 옮겨 놓으러 간 것치고는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있다. 다인은 발딱 일어서서 창문 너머를 내다봤다. 컴컴한 정원은 고요하기만 하다. 인기척은커녕 바람 한 점도 불지 않았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든 다인은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이 씨, 암튼 기다리게 하는 데는 일가견 있어. 이 싸가지 결핍증!”
괜히 쿵쿵거리며 소파로 돌아와 달랑 올라앉았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구.”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사전 면담 기록을 쟁취해야만 했다. 다인은 팔짱을 끼고 눈에 힘을 주며 의지를 다졌다.

*


현관 바닥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윤성은 움찔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던 여자의 목소리가 사라진 별장은 적막하기만 하다. 원래의 고요함과 평화를 되찾은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잠깐일지라도 이런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에 윤성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거실은 비어 있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방에도 여자는 없었다.
‘어디 갔지?’
혼잣말로 묻던 그는 이내 답을 찾아냈다.
‘방에 있겠지.’
그가 직접 안내해 주고, 그녀가 대단히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바로 그 방에 있을 것이다. 부끄럼도 없이 아니, 되레 당당하게 ‘나 여기 세 좀 들면 안 될까요?’ 하고 외치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방을 나선 그는 긴 소파 끝에 삐져나온 개구리를 발견하고는 ‘헛!’ 숨을 삼키며 멈춰 서야만 했다. 걸음을 서둘러 소파 앞으로 다가간 그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가 궁금해하던 여자는 푹신한 쿠션들에 푹 파묻혀 숙면 중이시다.
“이런 양말은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야.”
조금 전 그를 놀라게 했던 양말에 대고 괜한 화풀이를 해 본다. 고작 개구리 그림이 그려진 양말 때문에 심장이 벌렁댈 만큼 놀란 자신이 한심스러워 한숨도 절로 나왔다.
한숨의 끝은 실소다. 잔뜩 찌푸려진 얼굴은 그대로 둔 채 입으로만 날숨을 뱉어 내는, 그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웃음이다. 그녀를 깨워 방으로 보낼지, 그냥 둬도 될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한숨 소리를 한차례 더 내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그는 널브러진 그녀의 몸에 조심스레 담요를 덮었다. 최대한 조용한 움직임으로 담요 덮기를 끝낸 그는 문득 콧방귀를 뀌었다.
‘깨거나 말거나.’
고달픈 레지던트에게 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그가 알 바 아니다. 입을 삐죽거리며 밉살스럽게 눈이나 흘겨 대는 레지던트의 고단함 따위는 더더욱 알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담요를 조금 더 끌어 올려 쿠션 사이로 빠끔 드러난 얼굴까지 덮어 버리고 나서야 발을 옮겼다. 이제 좀 만족스럽다.

*


부산스러운 인기척에 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 뭐야. 꼭두새벽부터.’
투덜대며 몸을 돌리는데 뭔가 낯설다. 의국 침대가 이렇게 푹신할 리는 없었다. 그녀의 방이라고 착각하기엔 배경이 너무 다르다. 꿈지럭꿈지럭 몸을 일으킨 다인은 소맷자락을 끌어당겨 입가를 닦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때, 무표정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 쪽으로는 눈길도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현관으로 향하는 남자의 손엔 시리얼 그릇이 들려 있었다. 다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아침밥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내 건 여기 주고 가요. 뭘 밖에까지.”
현관에 다다라 신발을 신던 윤성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 소리야?’
금방 자다 깬 얼굴로 뭘 내놓으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꼬대라도 하는 건가 싶어 다시 물으려는데 현관 밖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을성 없는 녀석들이 벌써 현관 앞까지 들이닥친 모양이다. 윤성은 곧장 몸을 돌려 현관문을 열었다.
묻는 듯한 얼굴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그가 휙 돌아서 나가 버리자 그녀는 세찬 콧김을 내뿜었다.
“내가 투명인간이야? 어쩜 저렇게 못됐어!”
닫힌 현관문을 향해 외치던 다인은 혀를 차며 소파에서 내려섰다. 아무래도 세수를 하고 마당까지 나가야 아침을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보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발을 옮기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모든 행동을 멈추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들고 있던 그릇은 세 개였다. 분명 양손에 하나씩, 그리고 양손 사이에 하나를 끼고 등으로 현관문을 밀고 나갔다.
‘누가 왔나?’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직접 나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인은 서둘러 움직였다.

그가 나오자마자 개들은 겅중겅중 뛰어오르며 법석을 떨었다.
“이리 와. 문간에 앉아서 밥 먹을래?”
골든 레트리버가 긴 털을 휘날리며 가장 먼저 달려왔다. 뒤를 따르는 녀석은 삽살개다. 두 마리는 주인이 늘 밥그릇을 내려놓는 자리에 먼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밥그릇을 놔준 윤성은 마지막 한 놈을 찾았다. 검은 녀석은 아직 현관문에 코를 박고 킁킁대고 있었다.
“콩!”
윤성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킁킁대던 녀석은 문 아래의 틈으로 주둥이를 밀어 넣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콩, 이리 와.”
경찰견으로 사육되기도 하는 도베르만답게, 집 안을 휘젓고 다닌 낯선 사람의 낌새를 알아챈 모양이다.
“콩, 지금 안 오면 밥 없다.”
윤성은 마지막 제안을 했다. 콩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제안이다. 하지만 콩은 현관 앞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