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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월드 1권
월드, 리셋



리셋월드 1권(1화)
작가 서문


오랜만입니다. 성태민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군요. 책으로 만나 뵙는 건 근 2년 6개월 만인 것 같습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군요. 군대라는 건 잃는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은 곳인 것 같습니다.
리셋 월드는(제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그러하듯) 이런저런 생각 중에 ‘어? 이렇게 되면 어떨까?’ 하고 번뜩 떠올라 구상하게 된 작품입니다.
판타지에서의 리셋.
무협에서의 리셋.
그리고 게임에서의…… 리셋? = 초기화!
라는 식의 연결이었죠.
굳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제 나름의 세계관과 생각을 더했죠.
주인공인 종현(아레스)은 갑부집 아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아도 아니고, 부양해야 할 식구가 있다거나 산더미 같은 빚이 있어서 아이템을 팔아 연명해야 하는 처지도 아닙니다.
오히려 소위 말하는 ‘현질(현금으로 게임상의 돈을 사는 행위)’ 유저들을 한심하게 또는 고깝게 여기는 평범한 대한민국 대표 폐인 유저이죠. 외모가 뛰어나긴 하지만 여성스럽게 생긴 것을 콤플렉스로 여겨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자기 말로는 ‘아주 가끔 욱 할 뿐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대륙 3광(狂) 중 일인. 매드 메이지로 불리게 되지만요.
또 아레스(종현)는 히든 클래스도 아니고, 전설의 무기나 최강의 가디언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대마법사를 꿈꾸는 노멀 클래스 마법사입니다. 다만 뛰어난 컨트롤로, 자신보다 레벨 높은 이를 꼬꾸러뜨리는 걸 예삿일로 알고 수틀리면 단신으로 대형 길드와 맞장 뜨기를 주저하지 않는 담대함이 그를 남들보다 특별해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입니다.
히든 클래스가 나오는 소설은 재미있습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신선하죠.
제가 생각하기에 [히든 클래스]라는 건 [특화된 직업]인 것 같습니다. 베이스가 되는 직업에서 어느 부분을 특별히 강조해 만들어진 무기와 스킬을 지닌 또 다른 직업 말입니다. 당연히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갭은 더 커졌겠죠. 장점이 너무 커 보여서 단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만요.
컨트롤을 이용해 그 약점마저 이겨 낼 수 있다면 능히 [최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절대]나 [무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는 아주 많은 히든 클래스가 등장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대충 세어도 50종류가 넘는군요.
이미 여타의 게임 소설에서 등장했던 클래스도 있겠지만 전혀 새로운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나같이 흥미롭고 강력해서 따로 떼어 주인공 삼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사실 실제로 그래 볼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레스의 활약 이외에 이들의 등장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으실 겁니다.
즐거움, 즐거움, 즐거움. 좋은 이야기꾼이 되고픈 제 유일한 목표이자 소망입니다. 미스 코리아처럼 일일이 감사의 말을 전하는 건 건너뛰도록 하죠.
오늘 하루,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리셋 월드, 시작합니다.



서장 매드 메이지(Mad Mage)


콰과과광―!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과 함께 희뿌연 모래 먼지가 공간을 장악했다.
“큭, 대단하군. 앱솔루트 배리어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그 폭발의 중심에서 반투명한 원형의 막을 형성한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모래 먼지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가려진 시야 어디에서 또 한 번의 강력한 공격이 퍼부어질지 몰라 긴장을 놓지 않던 사내는 먼지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필사적으로 상대의 흔적을 쫓았다.
톡톡.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닛?”
콰앙!
“커헉!”
그러곤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거대한 화염이 그를 집어삼켰다.
“아저씨, 나 찾았수?”
쓰러진 사내의 뒤편으로 해맑게 미소 짓는 청년이 나타났다. 양손에는 예의 그 붉은 화염을 가득 피워 올리고서.
“큭, 마법사가…… 어떻게…….”
씨익.
“할 말은 그것뿐?”
대꾸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청년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사내 쪽으로 천천히 불꽃을 밀어냈다.
“매드 메이지…… 이 정도일 줄이야…….”
콰과과광!
신음과도 같은 사내의 목소리는 곧 폭음에 묻혀 사라졌다.
“매드 메이지라니, 이 몸은 대마법사가 되실 몸이라고.”
아레스.
매드 메이지라 불리는 전체 랭킹 195위의 노멀 클래스 마법사.
그것이 대마법사를 꿈꾸는 청년의 프로필이었다.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어느 지저분한 자취방. 벌써 해는 중천이건만 한가로이 배를 긁으며 곯아떨어진 청년이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으흐, 거긴 좀…….”
띠이―
딸깍.
무슨 꿈을 꾸는 건지 몸까지 배배 꼬아 대고 있을 때 머리맡에서 한참이나 몸살을 하던 전화기가 자동응답기로 바뀌더니 불을 뿜었다.
―야! 최종현! 너 아직까지 자고 있지? 그치? 맞지? 다 알아. 빨리 안 튀어나왓!
“으으, 밤새 고된 결전을 치르느라 피곤해 죽겠는데 아침부터 웬 난리야.”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찢어지는 고함에 종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부스스 일어났다. 버텨 봐야 미희의 잔소리가 더해 갈 뿐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없던 난청이 생길 지경이니까.
―너…….
딸깍.
“아아, 일어났어. 일어났다고.”
―에휴, 내 이럴 줄 알았어. 너 지금 몇 시인 줄 알기나 해?
“음…… 1시 13분?”
미희의 잔소리에 곁눈질로 시계를 확인한 종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 그럼 오늘이 무슨 날인 줄은?
“오늘? 금요일이니까…… 더 월드로 밤새는 날?”
―야!
“알았어, 알았어. 금요일이니까 2시에 수업이 있겠네. 송기돈 교수의 현대외교론이던가? 에이, 하루 제치지 뭐. 그 교수 어차피 출석도 안 부르잖아. 적당히 대출 좀 해 줘. 나중에 맛있는 거 사 줄게.”
송기돈 교수라면 강의실 좌석이 그려진 종이에 이름을 적어 제출하는 것으로 출석을 대신하기에 빠진다 해도 빈 좌석에 누가 이름만 적어 주면 땡이었다. 교수 자체가 ‘들을 사람만 들어라’라는 식이라 실제 좌석과 종이의 빈자리가 일치하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덕분에 이 수업을 제치고 더 월드에 접속한 것도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너…….
새삼스레 뭘 그러냐는 듯한 종현의 반응에 수화기 너머 미희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정말 모르고 있는 거야?
“에?”
―바보야! 그 수업, 오늘이 시험이잖아! 기! 말! 고! 사!
“에에?”
―중간고사도 안 보고 넘어간 덕분에 시험 범위부터가 어마어마하다고!
“에에에?”
―뭐가 에에에야? 당장 튀어나왓!
“히이익!”
미희의 충격 발언에 정신 데미지를 받을 새도 없이 종현은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학교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1. 월드, 리셋(1)


“헥헥헥!”
부리나케 달려 도착한 지금 시간은 1시 30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덕에 빨리 도착한 편이긴 하지만 시험 시간까지는 겨우 30분이 남았을 뿐이다. 오늘이 시험인 것도 이제야 알았으니 공부 따위 했을 리 만무하고. 원래가 시험공부를 하루 전에 시작하는 타입이라.
끙, 할 수 없지. 그래도 30분이나마…….
“망했다.”
최후의 보루. 미희를 어르고 달래고 구걸해 가며 복사해 놓은 노트 필기를…… 놓고 왔다.
젠장,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교재도 없이 교수 혼자 열강하는 수업이라 온갖 비굴한 짓을 다 해 가며 얻어 낸 필기인데.
“정말 미치겠구먼.”
“머리 쥐어짜는 건 시험 시작한 다음에나 하고 시간 있을 때 한 자라도 더 보시지?”
툭.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가뜩이나 산발이 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한심하다는 듯한 하이 톤의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약간의 종이 뭉치와 함께.
“응? 미희?”
“미희∼? 구세주의 이름을 너무 막 부르는 거 아니야?”
“그, 그건?”
시무룩하게 뒤를 돌아보자 뒤통수를 가격한 종이 뭉치를 들고 팔짱을 낀 미희의 모습이 보였다. 매우 거만한 표정과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 적힌 A4 용지도.
“게임 중독자를 F에서 구해 줄 요약본 님이시지. 어때, 시험 끝나고 네가 풀코스로 쏘는 거지? 나도 이거 정리하는 데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고.”
“응응. 할게.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역시 넌 나의 구세주, 나의 희망이야. 땡큐, 땡큐. 뽀뽀라도 해 줄까? 츄츄츄∼!”
“징그러. 저리 가. 그럼 약속한 거다?”
“물론이지.”
내 머리를 가볍게 찍어 누르며 장난을 저지시킨 미희는 팔랑팔랑 요약본을 흔들며 날 가지고 놀더니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 자기가 공부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쳇, 줄 거면 곱게 줄 것이지.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30분 안에 다 외운다. 외워 줄 테다!
“자, 모두 필기구를 제외한 노트나 프린트 물 덮으세요.”
암기에 불타오른 지 30분. 야속한 조교는 2시가 되자마자 1분의 여지도 없이 시험을 시작했다. 어찌어찌 한 번씩은 봤지만……. 쩝!
“어때, 좀 적었어?”
“……크아아악! 망할 놈의 교수, 어떻게 시험 범위 전부가 문제일 수 있는 거냐고!”
젠장. 이 교수, 수업할 때 아주 열변을 토하더니 시험 문제로 범위 전부를 출제했다. 총 네 문제에 걸쳐, 수업한 내용을 모두 알아야만 다 쓸 수 있는 그런 문제들을.
덕분에 나를 비롯한 학생들 대부분의 표정은 패배자의 그것이었다. 물론 미희는 빼고.
“헤에, F는 면할 수 있겠어?”
“뭐 어느 정도 쓰기는 했지만. 다른 애들 상태를 보니 B 정도는 맞을 수 있을지도…….”
교수 혼자만 열변을 토하는 수업인지라 미희를 포함한 몇몇의 ‘특이한’ 애들을 빼면 노트 필기 자체를 한 사람이 없던 터라, 시험 전 강의실 풍경은 마치 종교 행사장을 연상케 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단전호흡에 명상을 하는 사람까지. 상태가 그러하니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미희가 짚어 준 핵심 포인트를 몇 자라도 적은 내 점수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는 예상이다. 제발, 그러길 빈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지?”
“응? 무슨 약…….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미희가 눈에 쌍심지를 켜는군. 쩝!
“헤헤. 잘 생각했어. 어차피 오늘은 더 월드도 못할 텐데 하루쯤 이 누님과 바람 쐬는 것도 좋잖아? 넌 정말 게임 중독이라니까. 그러다 병난다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응? 너 그러다 병난다고.”
“아니, 그 전에.”
“게임 중독이라고…….”
“아니, 그거 말고. 더 월드를 못한다니?”
“너 몰랐어?”
갑작스레 언성이 높아진 내 반응에 움찔거린 미희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홈페이지에 공지 올라왔잖아. 오늘은 접속 불가라고.”
이런! 내가 잠든 사이에 올라온 건가?
“뭣 때문에?”
“글쎄. 이유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던걸.”
“호오, 그렇다면…….”
“그렇다면?”
“패치인 건가? 그것도 꽤나 대규모의?”
지금까지 더 월드의 패치는 게임 진행 중에 이루어졌지만 대륙을 늘린다던가 하는 대규모의 패치라면 서버를 닫고 패치를 진행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서버 백업이나 점검도 늘 플레이 중에 알아서 진행돼 왔고,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