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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는 차라리 호승이 알아내지 못해 영원히 묻어버렸으면 하는 바보 같은 생각, 또 다른 하나는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민수연에 대해 다 알고 싶은 그의 뜨거운 생각.
‘나를 그리 하고 잘 살았어?’
7년의 세월동안 그가 빈틈이 있을 때마다 파고들곤 하던 그녀란 존재만으로 그는 지금 너무 피곤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세월 동안 그를 분노케 한, 그를 달리게 한 그녀를 그의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를 버리고 얼마나 잘 살았는지 그의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를 생각하자마자 그의 머리가 반란을 일으키기라고 하듯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그의 심장을 때렸다. 오랜 세월은 그에게 절대 약이 될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그때 그대로 피가 터져 굳어 있었다.
그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이놈의 심장의 열병은 그만해도 되련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분명 7년 전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에도 그의 피 흘리는 심장은 그대로였다. 떼어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떼어내지 못한다면 그의 분노를 터트려 버릴 생각이었다.
감정을 조절하려는 강현의 목울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고통스러워 쩍쩍 갈라지는 그의 심장을 붙이든 완전히 도려내든 해야만 했다.
1. 준비된 그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아침에 호텔로 찾아온 호승과 아침식사를 한 강현은 정확한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건물 앞에 서서 위로 올려다 본 강현은 예전과 다른 느낌에 회사를 훑어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드디어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아마 아버지나 새어머니는 그가 이 자리까지 오지 못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저 미국으로 쫓아버리고 싶었을 테지. 하지만 그의 몸에도 사업을 펼치던 외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강제로 시작한 공부이지만 끝을 보는 성격인 그는 진짜 끝을 볼 생각이었다.
경영에 관심이 없던 그를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수연이 그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는 살아남았다.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 안에 있는 이상 싸움은 불가피하다.
예전엔 그저 싸우기 싫어 그가 먼저 피했다면 이젠 그에게 시비를 붙이지도 만들어줄 것이다. 그들에게 아주 강한 상대가 되어줄 생각이었고, 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미술을 전공하던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건 결국 그들이었고, 이미 그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게 된 이상 그는 그 값을 톡톡히 받아낼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든 그는 더 많은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원래부터 그의 것이었던 것들을 하나씩 회수해 올 것이다.
“오늘 12층 회의실에서 부장급 이상 회의가 있다고 했지?”
“네.”
강현은 건물의 회전문을 들어서며 호승에게 오늘 스케줄을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이사님. 회장님이 회사에 출근하시는 대로 회장실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회의실에서 회의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저흰 회장실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죠.”
강현은 안내데스크 앞에 줄은 선 직원들을 보며 짧게 지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그가 가고자 하는 회의실 층의 버튼을 눌렀다.
벌써부터 그를 제외시키겠다고? 그럴 순 없지.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하자 강현은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오랜 세월 준비한 탓일까, 이를 간 탓일까, 긴장조차 되지 않은 강현은 무서우리만치 덤덤하니 호승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호승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는 첫 전쟁터에 들어섰다.
“이게 누구야……!”
서늘한 회의 공간이 시야에 들어나면서 강현은 새어머니 형제들의 적개심어린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류철민에게 보고를 받아 그의 도착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가?
많은 부장급 이상의 직원들이 그의 등장에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헉헉댔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임원들은 아버지에게 놀란 시선을 던지기에 급급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미래기업 총괄업무 이사를 맡은 우강현입니다.”
강현은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그를 경계 어린,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을 여유 있는 얼굴로 마주했다. 이 회사를 끌어갈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주며 내부로 들어가 회의실 내부를 살폈다.
멀찌감치 달려진 조명 아래의 홀은 작은 호텔의 로비처럼, 지나간 60년대의 라운지처럼, 낮은 소파가 자리를 채웠다. 소파가 레고 블록처럼 조합되어 있어 극장식 스타일로 꾸며 있었다. 그 소파에 직원들이 앉아 있었고 상석에는 단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학교 강의실처럼 단차를 두어 단상에 올라가면 직원들의 얼굴이 다 보일 정도였다.
딱딱한 회사에 맞지 않게 굉장히 개방적인 인테리어라 조금 의외였다. 마치 예술가들을 위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 솔솔 풍겼다. 회의라는 따분한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에게 향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형, 언제 왔어?”
“……!”
전혀 생뚱맞은 존재가 튀어나오자 강현의 덤덤하던 표정에 약간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배다른 동생인 우강수의 웃는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강현은 강수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잔뜩 말라붙은 건조한 미소를 던졌다.
우강수라는 존재, 아니 저 우강수를 낳은 전해선이란 여자 때문에 그는 결국 어머니를 잃었다. 그 오랜 세월 아버지에게 딴 여자가 있었다는 것도 충격일 텐데, 그와 두 살 차이가 나는 아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어머니가 그를 혼자 두고 가신 날은 참 구슬프게 눈이 오던 날이라 그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리 가셨는지.
소년기 때 어머니를 잃고 나서 수연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늘 혼자였었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될 운명인지 수연마저 그를 버렸다. 그는 결국에 또 혼자가 되었고, 세상은 어차피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너무 아프게 배웠다.
강현은 어머니와 수연 생각에 가슴이 허허로워 입안의 살이 물릴 정도로 이를 꽉 물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우강수가 앉아 있는 곳으로, 아버지와 거리를 가까이 좁혔다.
강현은 아버지의 시선을 강하게 느꼈지만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우 강수의 어깨에 한 손을 얹어 꽉 눌렀다. 강수가 움찔거리며 그에게로 향한 웃음을 서서히 지우는 것을 보자 만족스러웠다. 손등이 하얗게 바래질 만큼 그가 힘을 주자 강수도 몸에 힘을 주어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힘 싸움을 유지한 채 강현이 먼저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우강수 대리, 여기가 회사인 만큼 공과 사는 구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 이사님.”
“그런데 영업과 대리가 부장급 이상의 회의에 나온 이유가 있습니까? 회장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회사의 룰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강현은 그의 딱딱한 태도에 강수가 곤혹스러운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훗, 그렇게 새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살았을 테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우강수를 보며 강현은 씁쓸히 비웃었다.
강현은 강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리 넓고 커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두 뼘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세월은 어쩔 수 없다더니, 바로 아버지를 두고 한 말인가 싶었다. 세월을 맞으며 변한 건 그 혼자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7년 전 그를 강제로 미국으로 쫓아 보내던 그 냉혹한 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흰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센 머리와 얼굴 곳곳에 고랑처럼 타진 주름들이 아버지가 연세를 드셨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월에 굴복한 아버지를 보는 것이 기분 좋지 않아야 하지만 그는 아버지란 사람을 용서할 수도 용서할 마음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의 인생이 너무 아프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통이 너무나 컸다.
한국을 떠나던 날, 수연이에게, 아버지에게 완전히 버려졌지만 간혹 파고드는 외로움은 그조차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감정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떤 기대가 없으면 포기할 것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우강수 대리는 사무실로 돌아가십시오.”
그의 말은 일어나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아버지에게 그 어떤 지원의 말이 없자 강수도 어쩔 수 없었는지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 옆에 앉아 위치를 다졌을 테지, 하지만 후계자의 자리가 회장의 아들이라고 다 된 줄 안다면 큰 코 다칠 것이다.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는 차라리 호승이 알아내지 못해 영원히 묻어버렸으면 하는 바보 같은 생각, 또 다른 하나는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민수연에 대해 다 알고 싶은 그의 뜨거운 생각.
‘나를 그리 하고 잘 살았어?’
7년의 세월동안 그가 빈틈이 있을 때마다 파고들곤 하던 그녀란 존재만으로 그는 지금 너무 피곤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세월 동안 그를 분노케 한, 그를 달리게 한 그녀를 그의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를 버리고 얼마나 잘 살았는지 그의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를 생각하자마자 그의 머리가 반란을 일으키기라고 하듯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그의 심장을 때렸다. 오랜 세월은 그에게 절대 약이 될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그때 그대로 피가 터져 굳어 있었다.
그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이놈의 심장의 열병은 그만해도 되련만, 뜻대로 되질 않았다. 분명 7년 전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음에도 그의 피 흘리는 심장은 그대로였다. 떼어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떼어내지 못한다면 그의 분노를 터트려 버릴 생각이었다.
감정을 조절하려는 강현의 목울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고통스러워 쩍쩍 갈라지는 그의 심장을 붙이든 완전히 도려내든 해야만 했다.
1. 준비된 그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아침에 호텔로 찾아온 호승과 아침식사를 한 강현은 정확한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건물 앞에 서서 위로 올려다 본 강현은 예전과 다른 느낌에 회사를 훑어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드디어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아마 아버지나 새어머니는 그가 이 자리까지 오지 못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저 미국으로 쫓아버리고 싶었을 테지. 하지만 그의 몸에도 사업을 펼치던 외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강제로 시작한 공부이지만 끝을 보는 성격인 그는 진짜 끝을 볼 생각이었다.
경영에 관심이 없던 그를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수연이 그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는 살아남았다.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이 안에 있는 이상 싸움은 불가피하다.
예전엔 그저 싸우기 싫어 그가 먼저 피했다면 이젠 그에게 시비를 붙이지도 만들어줄 것이다. 그들에게 아주 강한 상대가 되어줄 생각이었고, 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미술을 전공하던 그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건 결국 그들이었고, 이미 그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게 된 이상 그는 그 값을 톡톡히 받아낼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든 그는 더 많은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원래부터 그의 것이었던 것들을 하나씩 회수해 올 것이다.
“오늘 12층 회의실에서 부장급 이상 회의가 있다고 했지?”
“네.”
강현은 건물의 회전문을 들어서며 호승에게 오늘 스케줄을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이사님. 회장님이 회사에 출근하시는 대로 회장실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회의실에서 회의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저흰 회장실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죠.”
강현은 안내데스크 앞에 줄은 선 직원들을 보며 짧게 지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그가 가고자 하는 회의실 층의 버튼을 눌렀다.
벌써부터 그를 제외시키겠다고? 그럴 순 없지.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하자 강현은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오랜 세월 준비한 탓일까, 이를 간 탓일까, 긴장조차 되지 않은 강현은 무서우리만치 덤덤하니 호승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호승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는 첫 전쟁터에 들어섰다.
“이게 누구야……!”
서늘한 회의 공간이 시야에 들어나면서 강현은 새어머니 형제들의 적개심어린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류철민에게 보고를 받아 그의 도착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가?
많은 부장급 이상의 직원들이 그의 등장에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헉헉댔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임원들은 아버지에게 놀란 시선을 던지기에 급급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미래기업 총괄업무 이사를 맡은 우강현입니다.”
강현은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그를 경계 어린,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을 여유 있는 얼굴로 마주했다. 이 회사를 끌어갈 사람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주며 내부로 들어가 회의실 내부를 살폈다.
멀찌감치 달려진 조명 아래의 홀은 작은 호텔의 로비처럼, 지나간 60년대의 라운지처럼, 낮은 소파가 자리를 채웠다. 소파가 레고 블록처럼 조합되어 있어 극장식 스타일로 꾸며 있었다. 그 소파에 직원들이 앉아 있었고 상석에는 단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학교 강의실처럼 단차를 두어 단상에 올라가면 직원들의 얼굴이 다 보일 정도였다.
딱딱한 회사에 맞지 않게 굉장히 개방적인 인테리어라 조금 의외였다. 마치 예술가들을 위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 솔솔 풍겼다. 회의라는 따분한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에게 향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형, 언제 왔어?”
“……!”
전혀 생뚱맞은 존재가 튀어나오자 강현의 덤덤하던 표정에 약간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배다른 동생인 우강수의 웃는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강현은 강수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잔뜩 말라붙은 건조한 미소를 던졌다.
우강수라는 존재, 아니 저 우강수를 낳은 전해선이란 여자 때문에 그는 결국 어머니를 잃었다. 그 오랜 세월 아버지에게 딴 여자가 있었다는 것도 충격일 텐데, 그와 두 살 차이가 나는 아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어머니가 그를 혼자 두고 가신 날은 참 구슬프게 눈이 오던 날이라 그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혼자 어떻게 살라고 그리 가셨는지.
소년기 때 어머니를 잃고 나서 수연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늘 혼자였었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될 운명인지 수연마저 그를 버렸다. 그는 결국에 또 혼자가 되었고, 세상은 어차피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너무 아프게 배웠다.
강현은 어머니와 수연 생각에 가슴이 허허로워 입안의 살이 물릴 정도로 이를 꽉 물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우강수가 앉아 있는 곳으로, 아버지와 거리를 가까이 좁혔다.
강현은 아버지의 시선을 강하게 느꼈지만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우 강수의 어깨에 한 손을 얹어 꽉 눌렀다. 강수가 움찔거리며 그에게로 향한 웃음을 서서히 지우는 것을 보자 만족스러웠다. 손등이 하얗게 바래질 만큼 그가 힘을 주자 강수도 몸에 힘을 주어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서로의 힘 싸움을 유지한 채 강현이 먼저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우강수 대리, 여기가 회사인 만큼 공과 사는 구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 이사님.”
“그런데 영업과 대리가 부장급 이상의 회의에 나온 이유가 있습니까? 회장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회사의 룰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강현은 그의 딱딱한 태도에 강수가 곤혹스러운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훗, 그렇게 새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살았을 테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우강수를 보며 강현은 씁쓸히 비웃었다.
강현은 강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리 넓고 커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두 뼘도 되지 않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세월은 어쩔 수 없다더니, 바로 아버지를 두고 한 말인가 싶었다. 세월을 맞으며 변한 건 그 혼자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7년 전 그를 강제로 미국으로 쫓아 보내던 그 냉혹한 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흰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센 머리와 얼굴 곳곳에 고랑처럼 타진 주름들이 아버지가 연세를 드셨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월에 굴복한 아버지를 보는 것이 기분 좋지 않아야 하지만 그는 아버지란 사람을 용서할 수도 용서할 마음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의 인생이 너무 아프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통이 너무나 컸다.
한국을 떠나던 날, 수연이에게, 아버지에게 완전히 버려졌지만 간혹 파고드는 외로움은 그조차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감정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떤 기대가 없으면 포기할 것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우강수 대리는 사무실로 돌아가십시오.”
그의 말은 일어나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아버지에게 그 어떤 지원의 말이 없자 강수도 어쩔 수 없었는지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 옆에 앉아 위치를 다졌을 테지, 하지만 후계자의 자리가 회장의 아들이라고 다 된 줄 안다면 큰 코 다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