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9화



“껄껄! 비록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하나 그깟 무공이야 내가 가르치면 그뿐. 나 동악사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과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굳히지 않는 신념을 가진 자네야말로 진정 내 동생으로 어울리지 않는가? 단순히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포기하기엔 너무도 아깝구나. 암, 아깝고말고! 안 그런가, 동생?”
“……?”
“고, 곡주님?”
“아저씨!”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아무리 동악사의 성정이 괴팍하다 못해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리도 제 맘대로 일지는 몰랐던 백가량은 자신의 처지도 잊고 놀라 그를 불렀다.
한편 주지약은 동악사의 말에 누구보다도 기쁜 표정이 되어 유원영을 돌아보았다.
동악사가 누구이던가? 악선이라 하면 검을 찬 무인치고 누구나가 인정하는 강자 중의 강자였다. 그의 의제(義弟)가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원 무인 모두가 부러워할 것인데 동악사는 의제로 삼는 것도 부족해 무공까지 가르쳐 준다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가진 다섯 가지 절공(絶功)은 하나만 익힌다 해도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알려질 정도로 최상승의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만으로도 기연이라 할 수 있었으니 자연 주지약은 기뻐하며 유원영을 보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유원영은 지금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입을 열어 장내에 자리한 모두를 당황이란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싫습니다.”
“……!”
쿵!
묵직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고집스런 눈빛만큼이나 매몰찬 유원영의 거절에 충격을 받은 동악사는 행여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귀를 후벼 파며 물었다.
“지금, 뭐라 했나?”
“싫다 하였습니다.”
“허……. 설마 그 싫다는 것이 내 동생이 되기 싫다는……. 뭐 그런 뜻은 아니겠지?”
“그 뜻이 맞습니다.”
“허허……. 아니, 대체 왜? 이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자네의 형이 될 수 없단 말인가?”
동악사가 마치 어린아이 투정 부리듯 새된 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흥분이 가미된 그의 질문에 유원영은 시종일관 차분한 음성으로 오히려 반문했다.
“의형제란 무엇입니까?”
“허, 지금 날 시험하려 드는 겐가? 그야 당연히 마음과 마음이 맞아 평생 서로를 아끼며 보살펴 주는 의(義)로 맺어진 형제가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의형제를 맺기 위해선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이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 제 마음은 당신과는 맞지 않으니 의형제의 연 또한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보게, 아우. 난 자네가 마음에 드네. 헌데 대체 자네는 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가?”
동악사는 입가엔 친근한 미소를 그린 채 최대한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조금 전과는 반대 입장이 된 동악사는 유원영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의 마음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본시 그깟 의형제야 맺어도 그만 안 맺어도 그만인 동악사였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는 유원영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오기가 일었다. 싫다는 놈 붙잡고 꼭 시켜야만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던 동악사로선 유원영만큼은 동생으로 삼겠단 오기가 생긴 것이다. 그 오기가 이리 봄 처녀마냥 나긋나긋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울리지 않는 사내의 미소에 소름이 끼친 것이다.
그 미소를 정면으로 마주한 유원영만큼은 시종일관 침착한 눈빛으로 동악사를 지그시 바라보며 닫혀 있던 말문을 열어 답을 주었다.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란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잘못을 하고도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잘못이라 하셨습니다.”
“지금 그 말은 내가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 뜻인가?”
“…….”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겐가?”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더욱더 잘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
유원영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도, 이곳에 있을 이유도 없었던 유원영이 어리둥절해하는 주지약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렸다.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동악사는 일순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은 숨죽여 두 사내를 지켜보던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백무극만이 지금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주지약을 바라보며 유원영의 손에 의해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잡고자 했다.
그러나…….
“크윽!”
백무극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동악사에게 당했던 팔꿈치에서 인 고통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지며 다시 한 번 주저앉혔다. 아찔한 통증에 식은땀마저 흘리던 백무극은 엎어진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사라지려 하는 주지약과 유원영을 향해 소리쳤다.
“멈춰! 멈추란 말이다!”

“……!”
아무도 막지 않았다.
오직 원망과 안타까움에 찬 사내의 외침만이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그 외침을 뒤로한 채 복잡한 눈빛이 되어 공터를 벗어나 숲을 가로지르던 주지약이 문득 걸음을 멈추며 유원영에게 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
“이대로 떠나도 괜찮나요?”
“무엇이 말이냐?”
“아저씨는 그를 살리려 했잖아요.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
주지약이 말한 그란 백가량을 말함이다.
처음에 유원영은 그를 살리고자 동악사의 행동을 막았다. 하지만 이리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고 떠나는 유원영을 이해할 수 없었던지 주지약이 걸음을 멈춘 채 묻는다. 그녀의 질문에 유원영은 웃으며 답해 주었다.
“그가 걱정되느냐? 그가 혼자가 될까 봐서?”
“……!”
그란 백무극을 말함이다.
실제로 주지약은 백가량이 아닌 백무극이 걱정되어 지금의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안타까운 백무극의 외침을 듣고 이대로 떠나기엔 영 마음에 걸렸던 주지약은 행여나 동악사의 손에 그의 부친마저 죽어 백무극이 혼자 남을까 걱정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던져진 유원영의 물음에 주지약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의 뜻을 전했다.
“맞아요. 만약 아저씨가 악선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기분이 좋아진 그는 결코 백 오빠의 아버질 죽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 사라진다면 동악사는 틀림없이 화를 내며 화풀이로 백 오빠의 아버질 죽일지도 몰라요.”
“꼭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단다.”
“……?”
“설사 내가 그 노인을 살리고자 그의 제의를 수락하여 원치 않는 의형제의 연을 맺었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그 노인을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요? 더 이상 죽일 이유가 없는데 어째서 그가 백 오빠의 아버질 죽인단 말인가요?”
“글쎄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나 역시 단지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니 네게 명확한 설명을 해 줄 수 없구나.”
“……?”
느낌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유원영의 대답에 주지약은 혹시 그가 이상한 약을 먹고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 참…….’
유원영은 둥근 눈망울 가득 수심에 찬 그녀의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좀 더 명확한 해명을 원하는 그녀의 시선에 곤란한 심정이 된 유원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동악사의 제의를 수락하든 수락하지 않든 그가 백가량을 죽일 것이란 느낌이.
또 그 느낌이 기이하게도 확신으로 바뀌어 마음속에 자리했기에 유원영은 순간 머리를 굴려 백가량을 구해 낼 방법으로 이리 주지약과 함께 공터를 벗어난 것이다.
언젠가 장 의원에게 말한 대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결코 손해도 보지 않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단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 노인은 무사할 테니 말이다.”
“…….”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아저씨라구요!’
주지약은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유원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차마 마음속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주지약은 어쩔 수 없이 미소로서 화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한 사내와 한 소녀가 사라진 자리.
휑한 기운이 감도는 공터 안으론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 침묵의 원인이 된 동악사는 입술을 씰룩이며 유원영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마음속에 가득 찬 분기를 참지 못하겠는지 한 발을 들어 대지를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쾅!
“흥! 감히 나 동악사의 동생이 되길 거절해? 그래, 관둬라 관둬……가 아니지. 이대로 내가 그놈의 말 한마디에 뜻을 물린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그놈에게 지는 것이 아닌가? 나 동악사가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진다? 허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암, 있을 수 없는 일이고말고! 내 이놈을 어떻게 해서라도 내 동생으로 삼고 말리라!”
투지(鬪志)를 불태운다.
이대로 유원영의 뜻대로 포기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던 동악사가 투지를 불태우며 이미 사라진 유원영을 쫓고자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를 쫓기 위해 신법을 펼치려던 동악사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휙 몸을 돌려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백가량을 노려보았다.
“훗! 깜박 잊을 뻔했군.”
“……?”
살기가 감돌고 있다.
잠시 사라졌던 살기가 차가운 눈 안 가득 차오른 채 백가량을 노려보았다.
백가량은 그만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것을 느끼며 더듬더듬 입을 열어야만 했다.
“소, 소인은 곡주님의 의제되실 분께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중간이야 어찌되었든 곡주님께선 그를 의제로 삼고자 마음먹으셨으니 소인의 약이 그분께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해 소인을 죽이려 하십니까?”
“…….”
옳은 말이다.
처음 백가량을 죽이려 했던 이유는 유원영에게 먹인 약이 아무런 해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유원영을 의제로 삼으려는 상황에선 백가량의 말대로 그것은 죄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악사는 차디찬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손에 든 흑선(黑扇)을 촤아악 소리와 함께 활짝 펼쳐 들었다.
“그가 내 의제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상관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네놈을 죽일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
“설마 내가 몰랐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네놈이 내 제자들을 해한 것은 생각지 않고, 단순히 네 가족을 죽인 내 잘못만을 탓하며 그 신단인지 뭔지를 저 아들놈에게 먹여 날 해하려 마음먹었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오늘날까지 살려 둔 것은 곡을 떠난 네놈을 일부러 찾기 귀찮아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 이리 만났으니 언젠가는 내 등에 칼을 꽂으려 들 너를 죽여 두는 편이 나 또한 편하고, 너 또한 저승에서나마 가족을 만날 수 있어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펼쳐 든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웃으며 나온 동악사의 말이었다.
백가량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의 말대로 언젠가는 동악사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죽이고자 마음먹었던 백가량이었다. 그러나 복수는 고사하고 당장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하자 백가량은 동악사에 대한 원한은 어느새 사라진 채 살고자 하는 욕구만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무, 무슨 소리십니까? 소인이 어찌 곡주님을 해할 마음을 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해십니다. 당치도 않은 오해십니다!”
“오해? 후후, 후하하하!”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백가량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허공을 향해 대소를 터뜨리고 만다.
한참을 껄껄대며 웃어 대던 동악사는 갑작스레 웃음을 멈추며 수중의 섭선을 이용해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가량의 목줄기를 베어 들어갔다.
“……!”
촤아아!
빠르다.
활짝 펼쳐진 부채가 가로로 눕혀진 채 날카로운 검과 같은 모습으로 한 줄기 섬광(閃光)이 되어 목을 베어 들어온다. 찰나지간에 펼쳐진 섬전(閃電) 같은 동악사의 한 수에 어찌 막아 볼 틈조차 없었던 백가량은 그저 무기력하게 두 눈을 내리감아야만 했다.
“…….”
아무런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이란 것이 이리도 편안했던가 안도하며 백가량이 감았던 눈을 뜬다.
순간 그의 눈에 비쳐 든 것은 목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아닌 목줄기 바로 앞에서 멈춰진 흑선을 든 채 안면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악사의 모습이었다.
“이런 젠장!”
“……!”
백가량의 의아한 시선과 마주친 동악사가 불현듯 소리치며 섭선을 걷어들인다. 펼쳐 든 섭선을 다시금 접었다 싶은 순간 동악사는 몸을 회전시킴과 동시에 주저 없이 좌장을 내질러 백가량의 단전을 쳐올렸다.
쾅!
“컥!”
단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에 단말마 비명과 함께 백가량의 몸이 허공 위로 떠오른 것은 순간이었다. 너무도 무기력한 모습을 한 채 허공 위로 떠오른 백가량은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 분수와 더불어 형편없이 대지 위로 나뒹굴어야만 했다.
“아버지!”
어째서 이리 가슴이 아파 오는지 알 수 없다.
그토록 증오했던 아비이건만 그 아비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채 일어날 줄 모르자 백무극은 본능적으로 소리쳐 부르며 그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그러나 여전히 팔꿈치의 통증이 전신을 마비시키니 백무극은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백가량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제길! 왜 하필이면?’
쓰러진 백가량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몸을 돌린 동악사의 생각이다.
무엇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불만스런 눈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는 동악사의 머릿속으론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그 얼굴이 순간적으로 백가량을 죽이려던 손을 멈추게 하고 대신 그의 단전만을 파괴하게 만들었음이니 동악사는 마음속 가득 투덜거림이 일 수밖에 없었다.
‘뭐, 내 잘못을 알고도 고치려 들지 않아? 그런 나와는 마음이 맞지 않아 동생이 될 수 없다고? 흥! 흥! 개 같은 소리! 그럼 내가 그놈을 동생 삼기 위해서는 내 잘못을 고쳐야 한단 소리가 아닌가?’
비록 말은 모른다 했지만 유원영이 지적했던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너무도 쉽게 산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신의 잔혹한 마음을 지적한 것이리라.
‘이런 빌어먹을!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 한 난 영원히 그놈의 형이 될 수도 없으니 결국 내가 그놈에게 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질 수 없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암, 질 수 없지. 질 수 없고말고! 어떻게 해서든 그놈을 동생으로 맞아들이기 위해선 저놈을 살려 둬야 하는 것이 옳지만…….’
영 불만이다.
목적이 있어 살려 둔다지만 어찌 사람의 마음이 그리 쉽게 바뀔 수 있겠는가?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혼절한 백가량의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었으나 애써 그것을 참아 내며 대신 애꿎은 두 남녀를 질책했다.
“이놈들아, 뭘 멍청히 보고만 서 있는 게야? 당장 저 두 놈을 사천곡 지하뇌옥(地下牢獄)으로 끌고 가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게 만들지 않고!”
“……!”
“……!”
느닷없는 동악사의 호통에 시종일관 방관자가 되어 말없이 눈앞의 사태를 지켜보던 적과 흑의 두 괴인은 곤란한 눈빛이 되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본시 하인 신분이었던 두 남녀는 주인인 동악사를 곁에서 보필하고자 그를 따라 강호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아직 여정이 남은 동악사가 백가량과 백무극을 데리고 사천곡으로 돌아가라 명하니 적과 흑의 두 남녀는 곤란한 눈빛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멍하니 있다가 지랄 맞은 성격의 동악사에게 불벼락을 맞을지 모른단 사실을 떠올린 두 남녀는 이내 백무극과 백가량을 향해 다가들었다.
그런 그들을 보지도 않은 채 대지를 박찬 동악사는 이내 한 사내를 찾아 숲 안을 빠르게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 *

팟!
“이놈아, 당장 그 걸음을 멈추어라!”
“……?”
“……!”
막 이름 모를 숲을 벗어나 초원 위로 발을 내딛던 유원영과 주지약이었다. 그런 그들의 뒤로 심통스런 사내의 외침이 들려온다 싶은 순간, 어느새 그들을 훌쩍 뛰어넘어 녹빛 풀밭 위로 내려섰다. 그리고 동악사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유원영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언필신(言必信)하여 행필과(行必果)라는 말을 아느냐?”
“……!”
느닷없는 동악사의 등장에 놀라기도 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물어 오는 그의 말에 유원영은 불현듯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유원영이 미소 띤 얼굴로 답을 준다.
“알고 있습니다. 말은 실천이 따라야 하고 행동은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맞다! 난 네놈을 동생으로 삼겠다 말을 하였고, 또 동생으로 삼기 위해 네놈이 지적한 잘못을 고치는 실천에 옮겼으니 네놈은 내 행동에 대한 성과를 이제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
한 가지 숙제를 풀고 칭찬받길 원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절로 에헴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자랑스레 가슴을 편 채 언제 심통을 부렸냐는 듯 웃으며 자신의 행동을 칭찬해 달라 기대하고 선 동악사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유원영은 그만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싫지만은 않구나.’
처음처럼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눈앞에 비쳐지는 동악사의 모습이 바로 그의 전부임을 알아챈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변덕스런 마음도, 아무거리낌 없이 잔혹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마음도, 그 마음 모든 것이 철부지 어린아이와도 같다는 것을.
유원영은 입가의 미소를 짙게 한 채 부드러운 눈길로 동악사를 바라보았다.
“어떠한 성과를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