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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10. 무투사Ⅰ(4)
잠시 뒤 운영 측에서 죽은 무투사의 시신을 치웠다. 그러자 격투장 한가운데로 운영 측 사회자가 나섰다.
“여러분, 기쁜 소식입니다. 크락수스에게 도전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와아아아!”
크락수스의 경기를 더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격투장 주위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상대는 바로 라이거입니다.”
“라이거! 라이거!”
그러자 주위 관객들이 일제히 라이거를 연창하기 시작했다.
도전자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그 도전자가 얼마나 처참하게 크락수스에게 죽을지에 대한 호기심뿐이었다.
“이봐. 어서 걸어.”
그 사이 도박 중개인들이 열광하는 관중들을 지나다니며 돈을 걷기 시작했다.
“어이. 돈 걸지 않을 거면 길이라도 비켜.”
대부분의 관객들이 크락수스에게 돈을 걸었다. 크락수스가 일방적으로 이길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그때 울프만이 300골드를 몽땅 라이거에게 걸었다.
브란트는 관객의 연호 속에 격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깥에서 철제 휀스 문을 잠갔다.
철컹!
격투장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던 크락수스는 브란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브란트를 향한 확실한 도발 행위였다.
‘죽고 싶나 보군.’
바로 그 순간 크락수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투구 속 브란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조용히 격투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그의 시선은 배당금이 적힌 쪽을 향했다.
게시 판자에 적힌 금액은 크락수스가 3,250골드고 브란트는 고작 320골드였다. 거의 10배나 차이가 났다.
브란트는 울프만이 300골드를 몽땅 다 자신에게 걸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격투장 중앙에 도착한 브란트는 크락수스와 마주보고 섰다.
브란트는 수중에 나무 방패와 검을 들고 있었고 크락수스는 왼손에는 쇠방망이를, 오른손에는 양날 도끼를 들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자, 그럼 시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간단히 운영 측의 심판이 격투장 밖에서 소리를 치는 것으로 경기는 시작되었다.
브란트는 크락수스의 무기를 먼저 살폈다. 그가 들고 있는 쇠방망이와 양날 도끼에는 일체 피가 묻어 있지 않았다.
브란트가 처음 본 크락수스 역시 격투장을 돌아다닐 때 맨손이었다. 거기다가 크락수스가 죽은 앞 경기의 남자 시신의 몸에서도 무기에 의한 타격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팔다리 관절이 꺾였고, 치명적인 공격은 목이 돌아간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크락수스가 무기로 싸우기보다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부류의 상대라는 소리였다.
확실히 크락수스에 비해 브란트는 왜소해 보였다. 크락수스가 휘두르는 쇠방망이 한 방이면 검과 함께 브란트가 철제 휀스에 처박힐 것처럼 말이다.
브란트는 일단 격투장 주위를 크게 돌았다. 그러자 크락수스가 왼손에 들린 쇠방망이를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에 들린 양날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브란트의 공격은 쇠방망이로 막고 브란트가 근거리로 접근하면 즉시 양날 도끼로 내려찍겠다는 의도였다.
역시 크락수스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크락수스는 생각보다 훨씬 신중한 인물이었다.
브란트가 그보다 덩치도 작고 전적도 거의 없는 신출내기 선수였다. 그러니 방심을 할 만도 하겠건만 크락수스는 차분히 브란트를 탐색했다.
“크락수스, 뭐하는 거야! 어서 그놈의 머리를 쪼개 버리라고!”
경기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본성을 드러냈다. 그런 관객의 자극에 크락수스도 점차 살기등등해졌다.
브란트는 조급하게 크락수스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자 크락수스는 브란트가 별거 없는 놈이라는 판단을 내린 듯 보였다.
“크흐흐흐흐, 뒈져라!”
크락수스는 오른손에 쥔 양날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퍽!
브란트는 뒤로 물러나며 크락수스의 도끼 공격을 피했다. 도끼는 브란트가 서 있던 곳 발치에 박혔다. 이때 크락수스는 왼손에 든 쇠방망이로 수비 자세를 취했다. 혹시 브란트가 반격이라도 가할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그러나 브란트가 그의 도끼 공격에 겁을 집어 먹고 뒤로 물러나자 이제 쇠방망이는 수비가 아닌 공격에 사용하기로 결정 내렸다.
격투장 바닥에 박힌 양날 도끼를 뽑아 들며 크락수스는 다시 브란트를 향해 다가갔다.
브란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격투장 바깥의 관객들이 브란트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라이거, 뭐하는 거냐! 어서 싸워라!”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고!”
“도망치지 말고 어서 크락수스에게 뒈져!”
브란트는 심한 말까지 들어가면서 크락수스와 계속 거리를 두었다. 브란트는 지금 크락수스를 죽일지 말지에 대해서 다시 고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죽일 생각이었는데 직접 이렇게 마주 대하고 보니 크락수스는 제법 재능이 있어 보였다. 브란트는 그를 거둬 수하로 삼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크락수스는 브란트가 계속 거리를 두며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슬슬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앞 번 녀석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피하다가 결국 크락수스의 쇠방망이에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 크락수스의 손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번 역시 귀찮게 쇠방망이와 양날 도끼를 무작정 휘둘러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자세를 고쳐 잡으며 쇠방망이와 양날 도끼를 각각 바꿔 쥐었다.
싸우는 중 상대가 보는 앞에서 자세를 고쳐 잡거나 무기를 바꿔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크락수스는 처음과 달리 이미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 방심을 그냥 놓칠 브란트가 아니었다.
퍽!
크락수스가 양손의 무기를 채 고쳐 쥐기도 전에 크락수스의 육중한 덩치가 휘청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브란트의 나무 방패가 브란트의 얼굴을 가격해 버린 것이다. 그 후 브란트는 다시 크락수스와 거리를 벌렸다.
브란트의 일격은 크락수스의 뇌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 주었다.
“크으으으!”
코와 입으로 낭자하게 피를 흘리며 크락수스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몸을 비틀거리던 크락수스는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한 번 받은 충격은 쉽게 수습이 되지 않았다.
눈앞의 브란트가 두 명으로 보였고 격투장 바닥이 울렁거렸다.
크락수스는 사력을 다해 브란트를 향해 달려가며 마구잡이로 쇠방망이나 도끼를 휘둘렀다. 운 좋게 브란트가 맞아 쓰러져 준다면 고맙겠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락수스의 염원일 뿐이었다. 브란트는 옆으로 여유 있게 피한 후 소리쳤다.
“여기다!”
브란트의 목소리에 몸을 돌리던 크락수스가 다시 빈틈을 보였다. 브란트는 다시 바짝 크락수스에게 접근해서 나무 방패로 이번에는 가슴을 후려쳤다.
퍽!
“커억!”
크락수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게거품을 내놓으며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리에 이어 가슴의 충격으로 크락수스는 잠시 심장이 멈췄다. 그런 크락수스의 가슴 부위를 브란트가 가볍게 걷어찼다.
퍽!
크락수스는 벌러덩 뒤로 넘어지면서 다시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그는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다.
소드 마스터 정도 되면 상대의 인체 기능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브란트는 간단하게 크락수스의 급소 두 곳을 가격해서 크락수스를 제압했다.
“맙, 맙소사. 크락수스가……!”
“말도 안 돼. 어떻게 크락수스가 나무 방패에 골랑 두 대 맞고 저렇게 뻗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거 승부 조작 아니야?”
관객들이 흥분하자 즉시 운영 측에서 치료술사를 데리고 격투장에 들어가서 크락수스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크락수스는 머리와 가슴의 급소를 맞고 기절한 상태가 맞습니다.”
치료술사의 선언에 관객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들은 피를 원했는데 브란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크락수스를 이겨 버렸던 것이다.
운영 측에서 들것을 들고 와서 크락수스를 싣고 격투장 밖으로 나갔다. 관중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웅성거렸지만 이미 승패는 결정 난 다음이었다.
브란트도 다시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얼마 후 선수 대기실에 입이 귀에 걸린 울프만이 나타났다.
“얼마나 벌었나?”
브란트의 물음에 울프만이 자세히 대답했다.
“300골드에 네가 승리했을 때 승리 수당 20골드 합쳐서 320골드 몽땅 다 걸어서 이곳 수수료를 제외하고 3,200골드 벌었다.”
브란트는 대충 이런 식으로 나머지 두 번 만 더 싸우면 1만 골드는 충분히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라는 것이 뜻대로만 되던가?
광산 속 광장의 여러 곳의 격투장들이 하나 둘씩 시합을 중단하더니 얼마 후 광장 한가운데 위치한 주위 격투장보다 3배는 넓은 격투장으로 관객들이 갑자기 모여들었다.
브란트는 그냥 운영 측 사람을 따라 중앙 격투장에 대기 중이었다. 운영 측 사회자가 격투장 한가운데로 나갔다.
“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계셨던 이벤트 경기가 있겠습니다. 바로 인간 대 몬스터 간의 싸움입니다. 배팅은 둘입니다. 무투사가 이기느냐? 아니면 몬스터가 이기느냐?”
“싸울 무투사부터 보여라.”
“그래. 물건을 봐야 배팅을 하지.”
“물론 지금 보여드리겠습니다. 무투사들 입장.”
브란트는 운영 측 사람이 등을 떠밀어서 중앙 격투장으로 걸어 나갔다. 격투장 안에는 브란트와 같이 떠밀려 들어온 무투사는 모두 10명이었다. 그때 중앙 격투장의 중앙으로 휀스가 쳐졌다.
10명의 무투사들은 자연스럽게 왼편에 모였다. 관객들은 무투사들의 상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 그럼 몬스터들입니다.”
이동식 철제 감옥에 갇힌 오크들이 중앙 격투장 오른편 안으로 들여보내졌다.
“취에엑.”
오크들은 주위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고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때 격투장 안으로 무기가 던져졌다. 열 마리의 오크들은 일제히 그 무기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그들 맞은편에 서 있는 10명의 무투사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배팅은 주로 무투사 쪽으로 몰렸다. 오크들과 무투사의 수가 10대 10으로 같다면 무장을 잘 갖춘 무투사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사회자가 말했다.
“오크들은 벌써 사흘이나 굶주린 상태입니다.”
사회자의 말을 듣고 일부 관객들이 몬스터 쪽으로 돈을 걸었다. 굶주린 오크는 웬만한 기사들과 맞먹을 정도로 난폭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마음을 돌려 먹은 것이다. 그때 이동식 철제 감옥이 하나 더 나타났다.
“헉! 저건 트롤!”
이동식 철제 감옥 안에서 트롤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롤은 평균 신장이 2미터인 오크에 비해 키가 1미터가 더 크고 덩치도 거의 2배나 되었다.
“오오! 꿀꺽!”
그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크들은 트롤을 보고 한쪽 구석으로 슬그머니 이동했다. 야생에서 오크는 트롤의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트롤들은 조금 전 식사를 했기 때문에 오크들을 보고도 덤비지는 않았다.
“또 트롤 두 마리까지 상대해야 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몬스터가 이긴다는 쪽으로 우르르 달려가 배팅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배팅 결과가 나왔다. 무투사가 이긴다는 쪽은 3,750골드였고 몬스터가 이긴다는 쪽은 11,520골드였다. 몬스터가 이긴다는 쪽이 3배가 넘었다.
“자, 그럼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칸막이를 치워라!”
사회자가 시작을 알리자 중앙 격투장 중앙에 쳐져 있던 칸막이 휀스가 치워졌다. 그러자 왼편의 10명의 무투사와 오른편의 10마리 오크와 2마리 트롤이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트롤들은 배가 불렀기 때문에 무투사를 보고 경계는 했지만 그 이외 별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사흘을 내리 굶은 오크들은 무투사들을 보고 입에서 침을 주르르 흘렸다.
“취이익!”
오크 10마리가 각자 무기를 들고 무투사들을 향해 움직였다. 사람이나 몬스터나 굶어 죽나 싸우다 죽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오크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무투사들을 먹잇감으로 여기고 접근하는 것을 보고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래, 어서 죽여라! 죽여!”
“이 새끼들아! 뭐하는 거야! 어서 물어뜯어!”
몬스터에게 돈을 건 관객들이 오크들을 향해 마구 욕을 해댔다.
접근해 오는 오크를 보고 10명의 무투사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가 각기 무기를 들고 오크를 마중 나갔다.
일단 수에서 무투사와 오크는 같았다. 때문에 한 사람당 한 마리의 오크를 상대하면 됐다.
무투사들은 그런 것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자신이 맡을 오크를 선별했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곧 잡아먹을 듯 덤비는 오크를 향해 무투사들은 자신이 상대할 오크를 향해 무기를 겨누며 오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리페어』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