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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공간은 사람들이 산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공허하고 스산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도, 나무도, 도로도 없는 텅 빈 곳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모르는 이들이 보면 공간에 대한 의심이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둠으로만 가득 차 시작점과 끝을 알 수 없는 이곳에 그나마 작은 불빛이 곳곳에 비춰지고 있었다.
너무나 작은 불빛이어서일까. 온전히 힘을 쏟아 내지 못하는 빛은 그 노력이 안타깝게도 음산한 분위기마저 형성하고 있었다. 이따금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초점 잃은 동공을 한 채 어두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한 걸음씩 걷고만 있었다. 분명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발자국이 남을 만한 땅조차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을 내딛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듯해도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안에서 터덜터덜 하염없이 걸어가던 한 남자도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와 큰 키였지만 어둠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는 그조차도 인식할 수 없었다.
걸어가던 그는 주변의 공기가 변했음을 감지하였다. 남자의 눈이 매섭게 변하더니 잠시 멈춰 서서 왼쪽 손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손목에는 시계나 팔찌와 같은 장신구가 없었다.
특이하게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맨살.
잠시 기다리자 그의 손목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유심히 자신의 손목을 살피던 남자는 빛 사이로 무언가를 읽었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대장?”
남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새롭게 나타난 남자는 검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 오래 기다렸지?”
검은 모자의 남자가 자신을 ‘대장’이라 부른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는 남자의 안쪽 손목이 빛나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가져가 그 부위를 꾹 눌렀다.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365’라는 숫자가 적혔다.
“드디어 네 차례야. 오늘부터 최대 1년, 혹은 최소 오늘 몇 시간 안이 될 수도 있어. 네가 맡게 된 인간의 영혼을 회수해 오면 돼.”
“내가 회수해 와야 하는 영혼은 누군데?”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은 대장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다급하게 물었다.
“하여간. 야, 772번. 너 성격 급한 건 알겠는데, 나랑 호흡 맞춰. 안 그랬다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대장의 말에도 772번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심드렁하게 대장을 마주한 772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심기를 건드린 듯 대장은 한숨을 있는 힘껏 내뱉었다.
“어휴, 어째서 내가 네 담당 대장이 된 건가 싶다.”
대장은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을 향해 혀를 차며 말하였다. 그가 이내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하얀 종이가 펄럭이며 나타나자 772번이 손을 들어 올려 종이를 잡았다.
“앞으로 네가 쫓아다녀야 되는 인간이야. 이름은 유보영, 나이는 25살. 오늘 그 인간의 생일을 기점으로 이름이 저승 명부에 적혔어. 사인은 당연히 돌연사.”
종이에는 ‘유보영’이라는 이름과 그녀의 나이, 그리고 사진이 부착되어 있었다. 772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접어 가장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그대로 안쪽 손목으로 종이를 가져다 대자 종이는 거짓말처럼 몸 안으로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제 곧 인간계로 갈 거야. 가기 전에 주의 사항 듣고 가. 첫째, 너는 아직 저승사자 후보생이야. 네게 주어진 이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해야 저승사자가 될 수 있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라지지.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으면서, 없던 영혼처럼.”
“잘 아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가 사라지는 것뿐 아니라…….”
“악귀.”
자신의 말을 끊는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의 태도에 대장은 눈을 찌푸렸다.
“내 말 끊지 말고 들어.”
“안 그래도 대장이 매일같이 날 정신 교육시켜서 지금 무슨 말을 할지 다 알아.”
대장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772번은 아무 감정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장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매일같이 그랬으니 너도 이제 지겹겠지. 하지만 명심해. 실패해선 안 돼.”
“알아. 내가 봤잖아. 714번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
기억하고 싶지 않은 번호가 772번의 입에서 나왔다. 대장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772번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었다.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장을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그러니까 나도 실패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라지는 걸 봤는데, 내가 실패할 것 같아?”
어휴, 저거 자존심은 세 가지고.
대장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른손을 쫙 펴 손바닥 쪽을 위로 오게 하더니 입가에 가져가 그대로 훅, 바람을 불었다. 대장의 입에서 나온 작은 바람은 어둠속에서 큰 바람이 되어 직사각형의 문을 만들었다.
대장이 눈짓으로 문을 가리키자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은 그 앞에 섰다. 긴장한 대장과는 달리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먼저 가서 확인하고 항상 그 애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알지?”
“알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보내 주지?”
“걱정돼서 그래. 마지막으로 이건 꼭 말해야겠으니 들어. 인간계에 가서는 인간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서는 절대 안 돼. 특히 너, 인간화 시도도 하지 마. 넌 아직 불완전한 상태라서 어설프게 인간화했다간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어.”
772번은 더 이상 대장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그를 노려보았다. 매서운 눈빛에 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였다. 이따금 보이는 772번의 날카로운 모습 때문에 그가 자신보다 높은 직위의 저승사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도대체 내가 왜 저 자식 담당인거야.
대장은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신호를 보냈다. 문 앞에 선 772번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인간계의 모습이 그려지더니 어느새 사진으로 보았던 유보영이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확인했어?”
“응.”
“좋아. 그럼 네 담당이니까 너부터 출발해. 나도 곧 따라갈 거니까.”
대장의 신호에 맞춰 772번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셋, 둘, 하나.
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어둠뿐이었던 공간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환한 빛이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린 대장과는 달리 772번은 차분하게 한 발을 내딛었다.
“인간계에서 봐, 대장.”
한쪽 입꼬리를 올린 772번은 묘한 표정을 짓고는 문을 통과하여 빛 속으로 사라졌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공기가 달라진 것을 감지한 772번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가 있던 곳처럼 어둠이 가득한 공간이 아니었다. 저승에서 느껴보지 못한 다른 맛의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해가 내리 쬐는 날씨였고, 초록빛 나무가 무성했다. 도로엔 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고, 어린 꼬마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떠한 형체도 쉽게 인지할 수 없는 묵직한 어둠이 깔린 저승과 완벽히 대조되는 공간, 인간 세계였다.
772번은 자신의 손을 펼쳐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난간을 만지려고 했지만 손은 그대로 난간을 통과했다.
그는 조금 허탈한 듯 웃었다.
“아무렴 저승사잔데, 이걸 잡는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있나.”
언제 웃었냐는 듯,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셨다.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채.
여름이었지만 검은색 긴팔 옷을 입은 그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저승사자 후보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그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은 주위를 살피다 왼쪽 손목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365’라는 숫자가 새겨진 자신의 손목에 입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자신이 찾아야 할 유보영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가 있는 곳이 선명해지자마자 눈을 떴다.
“500미터, 카페 앞.”
낮은 음성을 내뱉고 그는 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772번은 앞서 걸어가며 통화 중인 여자를 발견하였다. 그대로 여자의 몸을 통과해 앞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앞으로 쫓아다니며 돌연사를 하게 되는 순간에 빠져나온 영혼을 바로 회수해야 할 인간. 유보영이 그의 눈앞에 서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772번이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그가 보일 리 없는 보영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재잘거리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보영이라.”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772번은 다시 그녀의 몸을 통과하여 한 걸음씩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다 새삼 보영의 키가 자신의 가슴 부근까지 오지 않는 걸 깨달았다.
“작네.”
772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심드렁한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멀어져 가는 보영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죽기엔 아까운 나인데.”
그가 받은 정보에 의하면 보영은 25살의 여자였다.
“그래도 어쩌겠어. 운명이 그렇다는데.”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772번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인 건가?”
그가 다시 보영의 뒤를 밟았다. 길면 1년, 짧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운명인 돌연사에 해당하는 그녀를 앞으로 쫓아다녀야 하는 772번이었다.
“잘 부탁해, 유보영.”
잘 부탁한다는 말과는 달리 심드렁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나는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이야.”
무덤덤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던 말은 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고 나서야 이어졌다.
“저승에서 왔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회수하기 위해서.
프롤로그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공간은 사람들이 산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공허하고 스산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도, 나무도, 도로도 없는 텅 빈 곳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 모르는 이들이 보면 공간에 대한 의심이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둠으로만 가득 차 시작점과 끝을 알 수 없는 이곳에 그나마 작은 불빛이 곳곳에 비춰지고 있었다.
너무나 작은 불빛이어서일까. 온전히 힘을 쏟아 내지 못하는 빛은 그 노력이 안타깝게도 음산한 분위기마저 형성하고 있었다. 이따금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초점 잃은 동공을 한 채 어두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한 걸음씩 걷고만 있었다. 분명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발자국이 남을 만한 땅조차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을 내딛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듯해도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안에서 터덜터덜 하염없이 걸어가던 한 남자도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와 큰 키였지만 어둠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는 그조차도 인식할 수 없었다.
걸어가던 그는 주변의 공기가 변했음을 감지하였다. 남자의 눈이 매섭게 변하더니 잠시 멈춰 서서 왼쪽 손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손목에는 시계나 팔찌와 같은 장신구가 없었다.
특이하게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맨살.
잠시 기다리자 그의 손목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유심히 자신의 손목을 살피던 남자는 빛 사이로 무언가를 읽었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대장?”
남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새롭게 나타난 남자는 검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 오래 기다렸지?”
검은 모자의 남자가 자신을 ‘대장’이라 부른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는 남자의 안쪽 손목이 빛나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가져가 그 부위를 꾹 눌렀다.
어느새 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365’라는 숫자가 적혔다.
“드디어 네 차례야. 오늘부터 최대 1년, 혹은 최소 오늘 몇 시간 안이 될 수도 있어. 네가 맡게 된 인간의 영혼을 회수해 오면 돼.”
“내가 회수해 와야 하는 영혼은 누군데?”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은 대장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다급하게 물었다.
“하여간. 야, 772번. 너 성격 급한 건 알겠는데, 나랑 호흡 맞춰. 안 그랬다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대장의 말에도 772번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심드렁하게 대장을 마주한 772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심기를 건드린 듯 대장은 한숨을 있는 힘껏 내뱉었다.
“어휴, 어째서 내가 네 담당 대장이 된 건가 싶다.”
대장은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을 향해 혀를 차며 말하였다. 그가 이내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하얀 종이가 펄럭이며 나타나자 772번이 손을 들어 올려 종이를 잡았다.
“앞으로 네가 쫓아다녀야 되는 인간이야. 이름은 유보영, 나이는 25살. 오늘 그 인간의 생일을 기점으로 이름이 저승 명부에 적혔어. 사인은 당연히 돌연사.”
종이에는 ‘유보영’이라는 이름과 그녀의 나이, 그리고 사진이 부착되어 있었다. 772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접어 가장 작은 크기로 만들었다. 그대로 안쪽 손목으로 종이를 가져다 대자 종이는 거짓말처럼 몸 안으로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제 곧 인간계로 갈 거야. 가기 전에 주의 사항 듣고 가. 첫째, 너는 아직 저승사자 후보생이야. 네게 주어진 이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해야 저승사자가 될 수 있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라지지.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으면서, 없던 영혼처럼.”
“잘 아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가 사라지는 것뿐 아니라…….”
“악귀.”
자신의 말을 끊는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의 태도에 대장은 눈을 찌푸렸다.
“내 말 끊지 말고 들어.”
“안 그래도 대장이 매일같이 날 정신 교육시켜서 지금 무슨 말을 할지 다 알아.”
대장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772번은 아무 감정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장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매일같이 그랬으니 너도 이제 지겹겠지. 하지만 명심해. 실패해선 안 돼.”
“알아. 내가 봤잖아. 714번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
기억하고 싶지 않은 번호가 772번의 입에서 나왔다. 대장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772번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었다.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장을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그러니까 나도 실패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고통스럽게 사라지는 걸 봤는데, 내가 실패할 것 같아?”
어휴, 저거 자존심은 세 가지고.
대장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른손을 쫙 펴 손바닥 쪽을 위로 오게 하더니 입가에 가져가 그대로 훅, 바람을 불었다. 대장의 입에서 나온 작은 바람은 어둠속에서 큰 바람이 되어 직사각형의 문을 만들었다.
대장이 눈짓으로 문을 가리키자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은 그 앞에 섰다. 긴장한 대장과는 달리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먼저 가서 확인하고 항상 그 애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알지?”
“알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보내 주지?”
“걱정돼서 그래. 마지막으로 이건 꼭 말해야겠으니 들어. 인간계에 가서는 인간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서는 절대 안 돼. 특히 너, 인간화 시도도 하지 마. 넌 아직 불완전한 상태라서 어설프게 인간화했다간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어.”
772번은 더 이상 대장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그를 노려보았다. 매서운 눈빛에 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였다. 이따금 보이는 772번의 날카로운 모습 때문에 그가 자신보다 높은 직위의 저승사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도대체 내가 왜 저 자식 담당인거야.
대장은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신호를 보냈다. 문 앞에 선 772번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인간계의 모습이 그려지더니 어느새 사진으로 보았던 유보영이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확인했어?”
“응.”
“좋아. 그럼 네 담당이니까 너부터 출발해. 나도 곧 따라갈 거니까.”
대장의 신호에 맞춰 772번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셋, 둘, 하나.
딱,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어둠뿐이었던 공간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환한 빛이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린 대장과는 달리 772번은 차분하게 한 발을 내딛었다.
“인간계에서 봐, 대장.”
한쪽 입꼬리를 올린 772번은 묘한 표정을 짓고는 문을 통과하여 빛 속으로 사라졌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공기가 달라진 것을 감지한 772번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가 있던 곳처럼 어둠이 가득한 공간이 아니었다. 저승에서 느껴보지 못한 다른 맛의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해가 내리 쬐는 날씨였고, 초록빛 나무가 무성했다. 도로엔 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고, 어린 꼬마 아이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떠한 형체도 쉽게 인지할 수 없는 묵직한 어둠이 깔린 저승과 완벽히 대조되는 공간, 인간 세계였다.
772번은 자신의 손을 펼쳐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난간을 만지려고 했지만 손은 그대로 난간을 통과했다.
그는 조금 허탈한 듯 웃었다.
“아무렴 저승사잔데, 이걸 잡는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있나.”
언제 웃었냐는 듯,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셨다.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채.
여름이었지만 검은색 긴팔 옷을 입은 그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저승사자 후보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그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은 주위를 살피다 왼쪽 손목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365’라는 숫자가 새겨진 자신의 손목에 입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자신이 찾아야 할 유보영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가 있는 곳이 선명해지자마자 눈을 떴다.
“500미터, 카페 앞.”
낮은 음성을 내뱉고 그는 거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772번은 앞서 걸어가며 통화 중인 여자를 발견하였다. 그대로 여자의 몸을 통과해 앞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앞으로 쫓아다니며 돌연사를 하게 되는 순간에 빠져나온 영혼을 바로 회수해야 할 인간. 유보영이 그의 눈앞에 서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772번이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그가 보일 리 없는 보영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재잘거리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보영이라.”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772번은 다시 그녀의 몸을 통과하여 한 걸음씩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다 새삼 보영의 키가 자신의 가슴 부근까지 오지 않는 걸 깨달았다.
“작네.”
772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심드렁한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멀어져 가는 보영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죽기엔 아까운 나인데.”
그가 받은 정보에 의하면 보영은 25살의 여자였다.
“그래도 어쩌겠어. 운명이 그렇다는데.”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772번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인 건가?”
그가 다시 보영의 뒤를 밟았다. 길면 1년, 짧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운명인 돌연사에 해당하는 그녀를 앞으로 쫓아다녀야 하는 772번이었다.
“잘 부탁해, 유보영.”
잘 부탁한다는 말과는 달리 심드렁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나는 저승사자 후보생 772번이야.”
무덤덤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던 말은 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고 나서야 이어졌다.
“저승에서 왔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회수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