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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발화
우리는 낡은 에어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고르지 못한 지면에 바퀴가 닿아 차가 덜컹거렸다. 트렁크에는 옷과 책 그리고 집기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차 때문에 마구잡이로 실린 집기들이 덜컹거렸다.
“할머니 집에 가면 말 잘 듣고 말썽 부리지 말고.”
아버지는 운전하며 그 말만을 중얼거렸다. 그가 중얼거린 말 중에는 우리를 걱정하는 말은 없었다. 내 쌍둥이 동생 경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장난감 로봇을 만지작거렸다.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떼쟁이 경이가 오늘은 보채지 않았다. 알고 있는 거겠지. 우리가 버려진다는 걸. 버려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사랑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우리는 여러 번 박스에 담긴 애완견처럼 버려지고 주워졌다, 마치 물건처럼. 젊은 나이에 우리를 낳은 부모님은 대책도, 책임감도 없었다. 그들은 툭하면 갈라선다며 싸웠고 그 싸움 끝에 결국 어머니는 짐을 싸서 나갔다.
그날도 그랬다. 정신없이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집으로 온 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어머니는 여행을 간다며 우리 손에 오만 원씩 쥐여 주었다. 철없는 나와 경이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장난감 레이저 건을 사고 문어발을 질겅질겅 씹으며 온 골목을 누볐다.
높게 솟은 건물들이 잘 보이는 그곳은 헤븐이라고 불리는 달동네였다. 병에 걸려 죽어 가고 버림받은 노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헤븐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가슴을 잡고 웃을 일이다. 어쩌면 그곳이 헤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동네에 살았을 때가 내 생애서 제일 행복했던 때니까.
그렇게 온 동네를 누비고 돌아온 우리를 맞아 주는 건 어둠뿐이었다. 코를 자극하는 된장찌개 냄새와 어머니의 잔소리가 우릴 맞아 줘야 하는데……. 우린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린 버려졌다.
도망간 어머니와 아버지는 근본적으로 똑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 역시 계속되는 사업 실패에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자 할머니에게 우리를 버리러 가는 중이다. 성에가 낀 창밖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환경오염이 심해 로봇나무를 심는 도심과 달리 눈보라 치는 밖에는 큰 자연나무가 서 있었다. 그곳은 낯설지만 익숙한 곳이기도 했다. 명절 때나 한번씩 내려오던 할머니 댁이다.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재야.”
“응.”
“알았지?”
“언제 데리러 오는데?”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 나갔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니었기에 그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라이트가 비추는 까만 길을 물끄러미 보았다. 에어카가 멈춰 서자 경이가 울먹거렸다. 아버지는 그런 경이를 본체만체하고는 에어카에서 내려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대문 앞에 우리의 짐이 쌓인다. 낡은 책상, 가방, 신발, 옷가지들. 마지막 짐을 대문 앞에 놓는 순간 아버지와의 시간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버지 가면 초인종 눌러. 이거 할머니께 전해 드리고.”
“응.”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아버지는 그대로 에어카를 몰고 사라졌다. 멀어지는 에어카 꼬리를 보며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망설임 없이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누리끼리한 오만 원짜리 열 장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짧은 문장이 내 현실을 깨닫게 했다. 진짜 버려졌다는걸.
“형아. 우리 버림받은 거지.”
“응. 이제 아무나 잡고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라가면 안 돼. 약한 모습 보여서도 안 되고.”
“약한 모습이 뭐야? 축 처져 있는 거? 엄마 보고 싶다, 형.”
울먹거리는 경이 때문에 차마 울 수조차 없었다. 형이었으니까.
늦은 밤부터 내린 눈이 금세 짐 위로 쌓였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추위에 발발 떠는 동생을 위해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종이 울려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까만 적막이 내려앉은 할머니의 집을 내려다보다 짐을 뒤적거려 두꺼운 외투를 경이 어깨에 걸쳐 주었다. 주황빛 가로등 아래 언 코를 가진 경이가 내 허리를 안아 왔다.
“형, 엄마 보고 싶어.”
“나도. 경아, 그래도 할머니 앞에서는 어머니 이야기 하면 안 돼. 알았지?”
“왜?”
“할머니가 싫어하시니까. 네가 어머니 보고 싶다고 하면 쫓아낼 거야. 할머니가 쫓아내면 우리는 갈 곳이 없어.”
할머니는 어머니를 싫어했다. 명절에 가지 않으려 떼를 쓰는 어머니를 보며 혀를 차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아들을 망친 못된 년. 배은망덕한 년. 돈 잡아먹는 어린년. 그것이 친가에서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할머니는 매서운 눈을 하곤 어머니를 보았고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했다.
“응, 응.”
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착해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경이가 작게 칭얼거렸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을 나이에 버려지고 주워지기를 반복한 너와 내가 가여웠다. 잠귀 어두운 할머니는 새벽에 울려 퍼진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 따듯한 체온을 가진 경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가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잠이 들었다.
***
“이게 뭐야? 기찬이 자식들 아니여? 애비는 어따 두고 니들끼리 있는 것이여?”
귀를 째는 소리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다. 도끼눈을 한 할머니가 눈에 비쳤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몸을 데워 주고 있던 외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동냥아치 같은 모습은 뭐시여? 그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할머니의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건강하셨죠?”
“안녕이고 나발이고. 왜 니들만 여 있냐니까?”
“그게…… 그게…….”
차마 말할 수 없어 말없이 아버지가 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곱지 않은 눈으로 빤히 하얀 봉투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거친 손길로 봉투를 채 갔다. 편지 내용을 확인한 할머니는 하얀 종이를 던졌다.
“내 이것들이 기어코 사고 칠 줄 알았지. 고아원에다 버릴 것이지, 밤에 집 앞에다 어린 것들을 놓고 가?”
할머니는 분개했다. 고함에 잠이 깬 경이는 또 울먹거렸다.
“지 애미를 똑 닮아서는. 뚝 그치지 못하나.”
“흐흑-”
경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높아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목소리도 커졌다. 우는 경이의 입을 손으로 막자 할머니의 말소리만이 좁은 골목에 울렸다.
“지 새끼 잘 맡아 달라는 놈이 꼴랑 오십만 원을 주고 가? 오십만 원? 으이구, 속 터져.”
경이의 훌쩍임이 내 손에 묻어났다. 지능이 낮은 경이도 상처받고 아파할 줄 안다. 예쁜 것만 보고, 예쁜 소리를 듣고, 향기로운 냄새를 맡아야 할 경이의 가슴에 멍울이 지고 있었다. 나는 울먹임이 묻어나는 경이의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울지 마. 약해져선 안 된다고 했잖아.”
낮게 속삭이자 경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 왔다.
“아버지 올 때까지만 참자. 알았지?”
“웅-”
매섭게 몰아치는 할머니를 보며 경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울지 마, 조금만 참자. 내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경이의 울음이 점차 줄어들었다. 숨을 헐떡일 때까지 욕을 내뱉던 할머니는 이내 마당으로 들어가셨다. 품에 경이를 안은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대문 밖에서 발만을 동동 굴렸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대문이 들어오라는 뜻인지 아니면 돌아가라는 말인지 몰라 눈만을 굴렸다. 할머니에게 버려지면 경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라고는 지나가면서 뉴스에서 본 고아원밖에 없었다. 온갖 호화로운 시설에 사람들이 매료되었지만, 그곳에는 이면이 존재했다. 말이 고아원이지 그곳은 군인과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경매로 팔려 나가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제국 학교에 다니며 꾸준히 체력 훈련을 받은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경이에겐 혹독한 곳일 테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이는 내 옷자락을 잡고 훌쩍거렸다.
“울지 마라니까.”
“형아, 엄마 보고 싶어.”
“어머니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가 할머니한테 쫓겨나.”
“또 버려지는 거야? 응?”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진 경이가 내게 물었다. 또 버려지는 거냐고.
“그래.”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경이를 보니 마음이 아파 왔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걸까. 우울했다. 우리가 가여웠다.
“니들 안 들어오고 뭐하노?”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셨던 할머니는 이내 내 손을 끌어당겼다. 마당을 지나. 낡은 현관을 지나 들어온 곳은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낯선 환경에 현관 앞에 서서 발발 떨고 있자, 쯧 혀를 찬 할머님은 빗자루를 들고 오셨다. 맞는다, 생각이 든 순간 눈이 질끈 감겼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이에게서도 히익-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아프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상황에 천천히 눈을 떴다. 빗자루를 든 할머니는 묵묵히 우리 바짓자락에 묻은 눈을 털어 냈다.
“니들에겐 죄가 없다. 죄가 있다믄 부모를 잘못 만난 기라.”
죄가 없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 탓을 했었다.
‘다 너희 때문이야. 너희만 아니었으면 이 집에 시집오지 않았어. 내 청춘도 네 아빠나 너희들에게 바치지 않았을 거야.’
맹렬하게 쏘아 대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매를 들곤 했다. 가녀린 여자가 때리면 뭐가 아프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때 우리는 어린아이였다. 매를 맞아서 몸이 아플 때면 동생과 옹기종기 다락방에 숨어들어 서로의 몸을 문대었다.
‘형, 우리는 뭘 잘못한 거야?’
‘모르겠어.’
우리는 다락방에 숨어들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곰곰이 생각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의 죄라고 생각했었다.
“니들이 뭔 죄라고 니들에게 화를 내나 싶다가도 니들 보면 네 애미 애비가 떠올라 화딱지가 나. 다 니 업이라 생각하고 살아라.”
할머니의 말대로 우리는 죄가 없었다. 죄 대신 업이 있단다. 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깨에 놓인 작은 짐이라고 생각했다.
“사내시끼가 왜 우나? 울면 꼬추 떨어지는 거 모르나? 뚝 그치라.”
눈물이 났다. 서러워서.
“뚝 그치래두”
그날 나는 서러움을 알아 버렸다. 그 서러움조차 마음대로 꺼내지 못해 이를 악물고 닭똥 같은 눈물만을 방울방울 흘렸다. 볼을 타고 흐른 것은 분명 서러움이었다.
***
곧 시작되는 새학기를 맞아 양장점에서 교복을 맞추기 위해 할머니와 읍내에 갔다. 본디 나는 제6 제국학교에 다녔었기 때문에 타 학교에 가려면 새로운 교복을 맞춰야만 했다.
약간 헐렁이는 촌스런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이 교복을 입기까지 내게 위기가 몇 번 찾아왔었다. 평소 철없는 아버지를 곱지 않게 보던 큰아버지는 우리를 고아원에 보내라며 할머니를 설득했다.
‘엄니 나이가 몇인데 이것들을 본다요. 그냥 좋은데 보냅시다. 요즘 세상이 변해서 제국에서 잘 먹이고 가르치고
한답니다. 걱정 말고 보내요. 제가 수소문해서 좋은 곳 몇 개 골라 왔어요.’
큰아버지는 효자였지만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큰아버지에게 어머니였지만, 우리는 철없는 동생이 싸질러 놓은 짐덩어리였다. 큰아버지가 내민 종이에는 서래제국고아원과, 희망제국고아원이 쓰여 있었다. 할머니는 종이를 보지 않고 집어던졌다.
‘그런 헛소리 할 그면 오지 말그라. 이것도 다 내 업이다. 업이란 업고 가는 거지, 내팽개치는 게 아니여!’
불같은 성격의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호통을 쳤다.
‘아따! 어머님! 병난다니까요! 수입도 없으면서 우째 야들을 키운다요. 그냥 보냅시다! 요즘 의료비도 장난 아닌데 어머님 병나면 집안 쓰러지십니다. 더구나 쌍둥이 동생이란 것이 지능이 낮아 지능향상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면서요.’
‘민구댁네 전답 준 거 돌려받아서 농사짓고 밥 벌어 먹으면 되고 아프면 죽으면 된다. 저것들 클 때까지 설마 고장이 날까.’
‘요즘, 알약 하나로 배고픔이 해결되는 세상인데 그딴 농사로 어찌 먹고 산다요. 엄니 참 깝깝하요.’
‘사람은 밥 묵고 살아. 걱정 마라. 높으신 내들은 밥 묵고 살기다.’
고자세로 나오는 할머니를 설득하려던 큰아버지는 결국 할머니가 파리채를 들자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다. 할머니 성격은 불같았고 한 번 화가 나면 풀어지기 전까지는 말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 같은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큰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를 고아원에 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지키지 않던 우리를 할머니는 지켜 냈다.
“나도 빨리 크고 싶다.”
경이 중얼거렸다. 경은 지능이 낮아 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체력 미달, 지능 미달 늘 미달 판정을 받은 경이는 학교 입학이 불가능했다.
“나도 여기다가 윤경 이렇게 이름표 붙이고 학교가고 싶어.”
“어서 경이가 학교 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무럭무럭 커. 몸도 마음도 지식도.”
“웅. 커서 엄마 찾으러 갈 거야. 아빠도!”
경이 웅얼거렸다. 그런 말을 하지 말래도 경은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경이를 품에 안았다.
“엄마랑 손잡고 학교 가고 싶어.”
어머니 손을 잡은 아이들이 유리문 너머로 종종 보였다. 그 뒤를 로봇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따라갔다. 그 모습이 부러운지 경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고 싶어.”
“경아, 이모한테 전화해서 경이가 어머니 보고 싶어 하니까 빨리 오라고 할까?”
사실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른스럽게 굴어도 아직 속은 아이라 나를 품어 줄 어머니가 필요했다.
“웅!”
“그래. 그러자.”
주머니에 손을 넣자 백 원짜리 두 개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할머니 화투 돈이다. 주위를 살살 둘러보다 양장점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계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경이 바깥 구경 좀 시켜 주고 올게요.”
“그려. 싸복싸복 다녀와라.”
“네.”
경의 손을 끌었다. 경인 여전히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녀오겠습니다, 속삭인 경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경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오면서 위치를 봐 두었기에 어렵지 않게 공중전화를 찾아냈다. 이젠 폐물이 된 공중전화 박스에 선 우리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몇 있었다. 백 원짜리 두 개를 구멍에 맞춰 넣고 지역번호를 누른 다음 익숙한 번호들을 내리 눌렀다. 신호가 가고 난 후 상대편이 전화를 받자 공중전화 어딘가에 걸려 있던 백 원짜리가 동전통으로 떨어졌다.
“여보세요?”
“승호야.”
내 동갑내기 이종사촌인 승호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경은 수화기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나는 자꾸만 붙어오는 경의 머리를 검지로 밀어냈다. 그러자 경은 입술을 뚝 내밀었다.
-누구세요?
“나야, 재. 윤재.”
-아-
사촌은 반갑지 않다는 듯 짧은 탄식을 뱉었다.
-왜 전화했어?
“어머니 소식을 아나 해서. 경이가 어머니를 많이 보고 싶어 하거든.”
-미안한데 윤재야. 이런 전화는 안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이제 너희 가족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성화야. 지 엄마도 싫다고 내팽개치고 간 걸 보면 안 봐도 훤하다고. 그리고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서 돈을 빌려 가서 이모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고 아빠고 학을 떼.
달칵 동전 하나가 더 떨어진다. 숫자판을 쳐다보니 잔돈 육십 원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빌려 간 돈이 얼만데.”
-2천. 지금은 좀 그러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아니면 메일링을 하든가. 알았지?
액수가 컸다. 뭐하려고 그 돈을 빌린 걸까. 입술 사이로 한숨이 배어 나왔다.
“알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경이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형아, 뭐래? 나 보러 엄마 온다고 하지? 엄마도 나 보고 싶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지? 응? 응?”
철없이 묻는 경이를 보자니 가슴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경에게 화를 내 봐야 내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지금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기다리지 말래. 어머니가 못 간다고 울지도 말고, 보고 싶어 하지도 말고 잘 먹고 잘살래. 지독한 여자야, 그 여자가. 이제는 어머니가 보고 싶단 말 하지 마.”
이렇게 동생을 윽박지르기 싫었다. 그런데도 못된 말들이 튀어 나간 건 내가 힘들어서다. 아직 나도 어린데 이 어린 것 때문에 어른 노릇하는 내가 웃겨서. 경이는 작은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정말? 내가 보기 싫대?”
“그래, 그러니까…….”
경은 우는 대신 가슴을 탕탕 쳤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탕탕. 그 애의 가슴에서 텅텅 빈 고철 소리가 나 귀가 아팠다.
“형아, 거짓말이지? 그렇지?”
“거짓말 아니야.”
거짓말이냐고 묻는 경이와 끝까지 심술을 부리는 나. 경이는 한참 동안 가슴을 탕탕 쳤고 못된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형 나빠!”
사리분간 못하는 경인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동생이 향한 곳은 에어도로. 에어카가 다니는 에어도로는 사람이 다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폴리스의 처벌이 있을뿐더러 100% 뛰어든 사람의 과실이었다. 사람은 오직 보도와 육교를 이용해야 했다.
바보!
나는 사색이 되어 달리는 경일 잡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약간 헐렁한 교복이 거치적거렸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시골길이라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다행히도 경이는 차에 부딪히지 않았다. 그저 에어도로 중앙에 그어진 노란 줄을 밟고 서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 에어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속 300KM로 움직이는 살인무기가 언제 어디서 돌진해 올지 몰랐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중앙에 주저앉아 훌쩍이는 경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죽으려고 작정했어? 응?”
경이의 한쪽 어깨를 붙들고 화를 냈다. 순간 오른쪽에서 엄청난 바람이 불어오더니 에어카 한 대가 지나갔다. 화가 나 뜨거워졌던 머리가 소름으로 식어 내린다.
“죽는 게 뭐야? 미미처럼 코 자는 게 죽는 거야?”
미미는 고양이었다. 어렸을 때 달동네를 뒤지고 돌아다니다 주운. 박스 속에 미야옹- 미야옹- 우는 고양이. 그 모습이 꼭 우리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데리고 왔던 새끼 고양이었다. 밥을 줘도 먹지 않고 박스 속에서 울던 고양이는 결국 얼마 가지 못해 죽고 말았다.
‘형, 미미가 움직이지 않아. 왜 그래?’
‘자는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는 거야. 우리 좋은 꿈 꿀 수 있도록 흙 이불 덮어 주자.’
‘고양이는 잘 때 흙 이불 덮고자?’
‘응.’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경이였지만 그때만큼은 믿기지 않았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경이는 빳빳하게 굳은 고양이를 손가락을 꾹꾹 찔러 보다 울상을 지었다.
‘형아, 따듯한 흙에 묻어 주자. 미미가 너무 차가워.’
‘그래.’
경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한 나는 한가운데를 앉아 손으로 흙을 퍼내 그 안에 고양이를 묻어 주었었다. 경이는 그때부터 죽음을 인지했다.
“코 자면 나도 미미처럼 엄마 볼 수 있어? 응?”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엄마를 볼 수 있는데?”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 돼.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그때 우리 살던 동네에서 보이던 뾰족한 건물들 알지? 최소한 그곳에 살아야 돼. 그러면 찾지 않아도 찾아오거든.”
참으로 냉정한 말이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계급의 선은 분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우리는 하층으로 구분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돈 아주 많이 벌면 되는 거지.”
“그래.”
불가능한 것을 중얼거리며 경은 눈물을 머금은 채 해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현실이 머릿속에 박히게 된다. 그들이 교육을 통해 세뇌하고 있는 건 지독한 계급주의였다. 아무리 똑똑해도 출신이 낮으면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 그것이 딱 너희 자리라고 그들은 말한다.
“형, 내가 돈 많이 벌게. 그래서 엄마도 찾아오고 아빠도 찾아오고 나 똑똑해지는 약 많이 먹어서 학교도 가고 그러자.”
경이 속삭였다. 나는 그런 경일 어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세상 때가 덜 묻은 채로 있는 게 경이에게 어울렸으니까. 그러자 경이는 어머니를 닮아 예쁜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띠었다. 에어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탓에 바람에 머리가 흩날려 엉망진창이지만, 참으로 예뻤다. 그래, 나는 이 미소를 사랑했다. 어머니를 닮은 미소를 바라보며 경이를 품에 안았다.
나와 체격이 비슷한 경이를 업고 에어도로를 건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에어카들을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했다. 계속 에어로드 중앙에 서 있을 수 없기에 나는 경이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바짝 잡고 그대로 뛰었다.
“형, 형아. 차.”
퍽퍽- 경이가 등을 두드리며 목을 잡아당겼다. 그 반동으로 무게가 쏠리며 뒤로 몸이 기울여졌다. 귀가 아플 정도로 비명을 지르며 목을 꽉 안아 오는 경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경이의 몸을 감싼 채 한 바퀴 굴렀다. 팔뚝이 쓰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피부가 쓸린 거 같았다.
“괜찮-”
저 멀리서 차가 달려왔다. 여기 에어로드였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되었다.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경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빠아아아앙-
수 초 사이에 많은 방법이 떠올랐지만 내가 취한 행동은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다. 경이를 끌어안는 것. 그래, 어쩌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나만 죽고 경이만 사는 것. 죽으려면 우리는 함께 죽어야 했다.
빠아아아아아아앙-
귀가 먹먹했다. 클랙슨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데도 몸에 어떤 충격도 가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머리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리자 에어카가 뒤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어서 꺼지라는 듯이.
“형아, 무서워.”
아름다운 선체를 가진 에어카는 분명 높으신 어르신들이 타는 차였다. 번호판 대신 제국군 마크가 달려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못해 트집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즉결 처분으로 사살될 수 있다. 방금까지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주제에 나는 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무서워.”
#1:발화
우리는 낡은 에어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고르지 못한 지면에 바퀴가 닿아 차가 덜컹거렸다. 트렁크에는 옷과 책 그리고 집기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차 때문에 마구잡이로 실린 집기들이 덜컹거렸다.
“할머니 집에 가면 말 잘 듣고 말썽 부리지 말고.”
아버지는 운전하며 그 말만을 중얼거렸다. 그가 중얼거린 말 중에는 우리를 걱정하는 말은 없었다. 내 쌍둥이 동생 경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장난감 로봇을 만지작거렸다. 남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떼쟁이 경이가 오늘은 보채지 않았다. 알고 있는 거겠지. 우리가 버려진다는 걸. 버려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사랑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우리는 여러 번 박스에 담긴 애완견처럼 버려지고 주워졌다, 마치 물건처럼. 젊은 나이에 우리를 낳은 부모님은 대책도, 책임감도 없었다. 그들은 툭하면 갈라선다며 싸웠고 그 싸움 끝에 결국 어머니는 짐을 싸서 나갔다.
그날도 그랬다. 정신없이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집으로 온 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어머니는 여행을 간다며 우리 손에 오만 원씩 쥐여 주었다. 철없는 나와 경이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장난감 레이저 건을 사고 문어발을 질겅질겅 씹으며 온 골목을 누볐다.
높게 솟은 건물들이 잘 보이는 그곳은 헤븐이라고 불리는 달동네였다. 병에 걸려 죽어 가고 버림받은 노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헤븐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가슴을 잡고 웃을 일이다. 어쩌면 그곳이 헤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동네에 살았을 때가 내 생애서 제일 행복했던 때니까.
그렇게 온 동네를 누비고 돌아온 우리를 맞아 주는 건 어둠뿐이었다. 코를 자극하는 된장찌개 냄새와 어머니의 잔소리가 우릴 맞아 줘야 하는데……. 우린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린 버려졌다.
도망간 어머니와 아버지는 근본적으로 똑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 역시 계속되는 사업 실패에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자 할머니에게 우리를 버리러 가는 중이다. 성에가 낀 창밖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환경오염이 심해 로봇나무를 심는 도심과 달리 눈보라 치는 밖에는 큰 자연나무가 서 있었다. 그곳은 낯설지만 익숙한 곳이기도 했다. 명절 때나 한번씩 내려오던 할머니 댁이다.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재야.”
“응.”
“알았지?”
“언제 데리러 오는데?”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 나갔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니었기에 그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라이트가 비추는 까만 길을 물끄러미 보았다. 에어카가 멈춰 서자 경이가 울먹거렸다. 아버지는 그런 경이를 본체만체하고는 에어카에서 내려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대문 앞에 우리의 짐이 쌓인다. 낡은 책상, 가방, 신발, 옷가지들. 마지막 짐을 대문 앞에 놓는 순간 아버지와의 시간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버지 가면 초인종 눌러. 이거 할머니께 전해 드리고.”
“응.”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아버지는 그대로 에어카를 몰고 사라졌다. 멀어지는 에어카 꼬리를 보며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망설임 없이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누리끼리한 오만 원짜리 열 장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짧은 문장이 내 현실을 깨닫게 했다. 진짜 버려졌다는걸.
“형아. 우리 버림받은 거지.”
“응. 이제 아무나 잡고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라가면 안 돼. 약한 모습 보여서도 안 되고.”
“약한 모습이 뭐야? 축 처져 있는 거? 엄마 보고 싶다, 형.”
울먹거리는 경이 때문에 차마 울 수조차 없었다. 형이었으니까.
늦은 밤부터 내린 눈이 금세 짐 위로 쌓였다. 여러 번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추위에 발발 떠는 동생을 위해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종이 울려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까만 적막이 내려앉은 할머니의 집을 내려다보다 짐을 뒤적거려 두꺼운 외투를 경이 어깨에 걸쳐 주었다. 주황빛 가로등 아래 언 코를 가진 경이가 내 허리를 안아 왔다.
“형, 엄마 보고 싶어.”
“나도. 경아, 그래도 할머니 앞에서는 어머니 이야기 하면 안 돼. 알았지?”
“왜?”
“할머니가 싫어하시니까. 네가 어머니 보고 싶다고 하면 쫓아낼 거야. 할머니가 쫓아내면 우리는 갈 곳이 없어.”
할머니는 어머니를 싫어했다. 명절에 가지 않으려 떼를 쓰는 어머니를 보며 혀를 차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아들을 망친 못된 년. 배은망덕한 년. 돈 잡아먹는 어린년. 그것이 친가에서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할머니는 매서운 눈을 하곤 어머니를 보았고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곤 했다.
“응, 응.”
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착해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경이가 작게 칭얼거렸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을 나이에 버려지고 주워지기를 반복한 너와 내가 가여웠다. 잠귀 어두운 할머니는 새벽에 울려 퍼진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 따듯한 체온을 가진 경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가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잠이 들었다.
***
“이게 뭐야? 기찬이 자식들 아니여? 애비는 어따 두고 니들끼리 있는 것이여?”
귀를 째는 소리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다. 도끼눈을 한 할머니가 눈에 비쳤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자 몸을 데워 주고 있던 외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동냥아치 같은 모습은 뭐시여? 그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할머니의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건강하셨죠?”
“안녕이고 나발이고. 왜 니들만 여 있냐니까?”
“그게…… 그게…….”
차마 말할 수 없어 말없이 아버지가 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곱지 않은 눈으로 빤히 하얀 봉투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거친 손길로 봉투를 채 갔다. 편지 내용을 확인한 할머니는 하얀 종이를 던졌다.
“내 이것들이 기어코 사고 칠 줄 알았지. 고아원에다 버릴 것이지, 밤에 집 앞에다 어린 것들을 놓고 가?”
할머니는 분개했다. 고함에 잠이 깬 경이는 또 울먹거렸다.
“지 애미를 똑 닮아서는. 뚝 그치지 못하나.”
“흐흑-”
경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높아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목소리도 커졌다. 우는 경이의 입을 손으로 막자 할머니의 말소리만이 좁은 골목에 울렸다.
“지 새끼 잘 맡아 달라는 놈이 꼴랑 오십만 원을 주고 가? 오십만 원? 으이구, 속 터져.”
경이의 훌쩍임이 내 손에 묻어났다. 지능이 낮은 경이도 상처받고 아파할 줄 안다. 예쁜 것만 보고, 예쁜 소리를 듣고, 향기로운 냄새를 맡아야 할 경이의 가슴에 멍울이 지고 있었다. 나는 울먹임이 묻어나는 경이의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울지 마. 약해져선 안 된다고 했잖아.”
낮게 속삭이자 경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 왔다.
“아버지 올 때까지만 참자. 알았지?”
“웅-”
매섭게 몰아치는 할머니를 보며 경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울지 마, 조금만 참자. 내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경이의 울음이 점차 줄어들었다. 숨을 헐떡일 때까지 욕을 내뱉던 할머니는 이내 마당으로 들어가셨다. 품에 경이를 안은 나는 어찌할 바 모르고 대문 밖에서 발만을 동동 굴렸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대문이 들어오라는 뜻인지 아니면 돌아가라는 말인지 몰라 눈만을 굴렸다. 할머니에게 버려지면 경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라고는 지나가면서 뉴스에서 본 고아원밖에 없었다. 온갖 호화로운 시설에 사람들이 매료되었지만, 그곳에는 이면이 존재했다. 말이 고아원이지 그곳은 군인과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경매로 팔려 나가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제국 학교에 다니며 꾸준히 체력 훈련을 받은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경이에겐 혹독한 곳일 테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이는 내 옷자락을 잡고 훌쩍거렸다.
“울지 마라니까.”
“형아, 엄마 보고 싶어.”
“어머니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가 할머니한테 쫓겨나.”
“또 버려지는 거야? 응?”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진 경이가 내게 물었다. 또 버려지는 거냐고.
“그래.”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경이를 보니 마음이 아파 왔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걸까. 우울했다. 우리가 가여웠다.
“니들 안 들어오고 뭐하노?”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셨던 할머니는 이내 내 손을 끌어당겼다. 마당을 지나. 낡은 현관을 지나 들어온 곳은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낯선 환경에 현관 앞에 서서 발발 떨고 있자, 쯧 혀를 찬 할머님은 빗자루를 들고 오셨다. 맞는다, 생각이 든 순간 눈이 질끈 감겼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이에게서도 히익-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아프지 않았다. 예상과 다른 상황에 천천히 눈을 떴다. 빗자루를 든 할머니는 묵묵히 우리 바짓자락에 묻은 눈을 털어 냈다.
“니들에겐 죄가 없다. 죄가 있다믄 부모를 잘못 만난 기라.”
죄가 없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 탓을 했었다.
‘다 너희 때문이야. 너희만 아니었으면 이 집에 시집오지 않았어. 내 청춘도 네 아빠나 너희들에게 바치지 않았을 거야.’
맹렬하게 쏘아 대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매를 들곤 했다. 가녀린 여자가 때리면 뭐가 아프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때 우리는 어린아이였다. 매를 맞아서 몸이 아플 때면 동생과 옹기종기 다락방에 숨어들어 서로의 몸을 문대었다.
‘형, 우리는 뭘 잘못한 거야?’
‘모르겠어.’
우리는 다락방에 숨어들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곰곰이 생각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의 죄라고 생각했었다.
“니들이 뭔 죄라고 니들에게 화를 내나 싶다가도 니들 보면 네 애미 애비가 떠올라 화딱지가 나. 다 니 업이라 생각하고 살아라.”
할머니의 말대로 우리는 죄가 없었다. 죄 대신 업이 있단다. 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깨에 놓인 작은 짐이라고 생각했다.
“사내시끼가 왜 우나? 울면 꼬추 떨어지는 거 모르나? 뚝 그치라.”
눈물이 났다. 서러워서.
“뚝 그치래두”
그날 나는 서러움을 알아 버렸다. 그 서러움조차 마음대로 꺼내지 못해 이를 악물고 닭똥 같은 눈물만을 방울방울 흘렸다. 볼을 타고 흐른 것은 분명 서러움이었다.
***
곧 시작되는 새학기를 맞아 양장점에서 교복을 맞추기 위해 할머니와 읍내에 갔다. 본디 나는 제6 제국학교에 다녔었기 때문에 타 학교에 가려면 새로운 교복을 맞춰야만 했다.
약간 헐렁이는 촌스런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이 교복을 입기까지 내게 위기가 몇 번 찾아왔었다. 평소 철없는 아버지를 곱지 않게 보던 큰아버지는 우리를 고아원에 보내라며 할머니를 설득했다.
‘엄니 나이가 몇인데 이것들을 본다요. 그냥 좋은데 보냅시다. 요즘 세상이 변해서 제국에서 잘 먹이고 가르치고
한답니다. 걱정 말고 보내요. 제가 수소문해서 좋은 곳 몇 개 골라 왔어요.’
큰아버지는 효자였지만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큰아버지에게 어머니였지만, 우리는 철없는 동생이 싸질러 놓은 짐덩어리였다. 큰아버지가 내민 종이에는 서래제국고아원과, 희망제국고아원이 쓰여 있었다. 할머니는 종이를 보지 않고 집어던졌다.
‘그런 헛소리 할 그면 오지 말그라. 이것도 다 내 업이다. 업이란 업고 가는 거지, 내팽개치는 게 아니여!’
불같은 성격의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호통을 쳤다.
‘아따! 어머님! 병난다니까요! 수입도 없으면서 우째 야들을 키운다요. 그냥 보냅시다! 요즘 의료비도 장난 아닌데 어머님 병나면 집안 쓰러지십니다. 더구나 쌍둥이 동생이란 것이 지능이 낮아 지능향상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면서요.’
‘민구댁네 전답 준 거 돌려받아서 농사짓고 밥 벌어 먹으면 되고 아프면 죽으면 된다. 저것들 클 때까지 설마 고장이 날까.’
‘요즘, 알약 하나로 배고픔이 해결되는 세상인데 그딴 농사로 어찌 먹고 산다요. 엄니 참 깝깝하요.’
‘사람은 밥 묵고 살아. 걱정 마라. 높으신 내들은 밥 묵고 살기다.’
고자세로 나오는 할머니를 설득하려던 큰아버지는 결국 할머니가 파리채를 들자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갔다. 할머니 성격은 불같았고 한 번 화가 나면 풀어지기 전까지는 말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 같은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큰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를 고아원에 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지키지 않던 우리를 할머니는 지켜 냈다.
“나도 빨리 크고 싶다.”
경이 중얼거렸다. 경은 지능이 낮아 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체력 미달, 지능 미달 늘 미달 판정을 받은 경이는 학교 입학이 불가능했다.
“나도 여기다가 윤경 이렇게 이름표 붙이고 학교가고 싶어.”
“어서 경이가 학교 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무럭무럭 커. 몸도 마음도 지식도.”
“웅. 커서 엄마 찾으러 갈 거야. 아빠도!”
경이 웅얼거렸다. 그런 말을 하지 말래도 경은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경이를 품에 안았다.
“엄마랑 손잡고 학교 가고 싶어.”
어머니 손을 잡은 아이들이 유리문 너머로 종종 보였다. 그 뒤를 로봇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따라갔다. 그 모습이 부러운지 경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고 싶어.”
“경아, 이모한테 전화해서 경이가 어머니 보고 싶어 하니까 빨리 오라고 할까?”
사실 나도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른스럽게 굴어도 아직 속은 아이라 나를 품어 줄 어머니가 필요했다.
“웅!”
“그래. 그러자.”
주머니에 손을 넣자 백 원짜리 두 개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할머니 화투 돈이다. 주위를 살살 둘러보다 양장점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누고 계신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경이 바깥 구경 좀 시켜 주고 올게요.”
“그려. 싸복싸복 다녀와라.”
“네.”
경의 손을 끌었다. 경인 여전히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녀오겠습니다, 속삭인 경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경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오면서 위치를 봐 두었기에 어렵지 않게 공중전화를 찾아냈다. 이젠 폐물이 된 공중전화 박스에 선 우리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몇 있었다. 백 원짜리 두 개를 구멍에 맞춰 넣고 지역번호를 누른 다음 익숙한 번호들을 내리 눌렀다. 신호가 가고 난 후 상대편이 전화를 받자 공중전화 어딘가에 걸려 있던 백 원짜리가 동전통으로 떨어졌다.
“여보세요?”
“승호야.”
내 동갑내기 이종사촌인 승호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경은 수화기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나는 자꾸만 붙어오는 경의 머리를 검지로 밀어냈다. 그러자 경은 입술을 뚝 내밀었다.
-누구세요?
“나야, 재. 윤재.”
-아-
사촌은 반갑지 않다는 듯 짧은 탄식을 뱉었다.
-왜 전화했어?
“어머니 소식을 아나 해서. 경이가 어머니를 많이 보고 싶어 하거든.”
-미안한데 윤재야. 이런 전화는 안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이제 너희 가족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성화야. 지 엄마도 싫다고 내팽개치고 간 걸 보면 안 봐도 훤하다고. 그리고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서 돈을 빌려 가서 이모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고 아빠고 학을 떼.
달칵 동전 하나가 더 떨어진다. 숫자판을 쳐다보니 잔돈 육십 원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빌려 간 돈이 얼만데.”
-2천. 지금은 좀 그러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아니면 메일링을 하든가. 알았지?
액수가 컸다. 뭐하려고 그 돈을 빌린 걸까. 입술 사이로 한숨이 배어 나왔다.
“알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경이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형아, 뭐래? 나 보러 엄마 온다고 하지? 엄마도 나 보고 싶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지? 응? 응?”
철없이 묻는 경이를 보자니 가슴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경에게 화를 내 봐야 내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지금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기다리지 말래. 어머니가 못 간다고 울지도 말고, 보고 싶어 하지도 말고 잘 먹고 잘살래. 지독한 여자야, 그 여자가. 이제는 어머니가 보고 싶단 말 하지 마.”
이렇게 동생을 윽박지르기 싫었다. 그런데도 못된 말들이 튀어 나간 건 내가 힘들어서다. 아직 나도 어린데 이 어린 것 때문에 어른 노릇하는 내가 웃겨서. 경이는 작은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정말? 내가 보기 싫대?”
“그래, 그러니까…….”
경은 우는 대신 가슴을 탕탕 쳤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탕탕. 그 애의 가슴에서 텅텅 빈 고철 소리가 나 귀가 아팠다.
“형아, 거짓말이지? 그렇지?”
“거짓말 아니야.”
거짓말이냐고 묻는 경이와 끝까지 심술을 부리는 나. 경이는 한참 동안 가슴을 탕탕 쳤고 못된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형 나빠!”
사리분간 못하는 경인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동생이 향한 곳은 에어도로. 에어카가 다니는 에어도로는 사람이 다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폴리스의 처벌이 있을뿐더러 100% 뛰어든 사람의 과실이었다. 사람은 오직 보도와 육교를 이용해야 했다.
바보!
나는 사색이 되어 달리는 경일 잡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약간 헐렁한 교복이 거치적거렸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시골길이라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다행히도 경이는 차에 부딪히지 않았다. 그저 에어도로 중앙에 그어진 노란 줄을 밟고 서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 에어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속 300KM로 움직이는 살인무기가 언제 어디서 돌진해 올지 몰랐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중앙에 주저앉아 훌쩍이는 경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죽으려고 작정했어? 응?”
경이의 한쪽 어깨를 붙들고 화를 냈다. 순간 오른쪽에서 엄청난 바람이 불어오더니 에어카 한 대가 지나갔다. 화가 나 뜨거워졌던 머리가 소름으로 식어 내린다.
“죽는 게 뭐야? 미미처럼 코 자는 게 죽는 거야?”
미미는 고양이었다. 어렸을 때 달동네를 뒤지고 돌아다니다 주운. 박스 속에 미야옹- 미야옹- 우는 고양이. 그 모습이 꼭 우리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데리고 왔던 새끼 고양이었다. 밥을 줘도 먹지 않고 박스 속에서 울던 고양이는 결국 얼마 가지 못해 죽고 말았다.
‘형, 미미가 움직이지 않아. 왜 그래?’
‘자는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는 거야. 우리 좋은 꿈 꿀 수 있도록 흙 이불 덮어 주자.’
‘고양이는 잘 때 흙 이불 덮고자?’
‘응.’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 경이였지만 그때만큼은 믿기지 않았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경이는 빳빳하게 굳은 고양이를 손가락을 꾹꾹 찔러 보다 울상을 지었다.
‘형아, 따듯한 흙에 묻어 주자. 미미가 너무 차가워.’
‘그래.’
경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한 나는 한가운데를 앉아 손으로 흙을 퍼내 그 안에 고양이를 묻어 주었었다. 경이는 그때부터 죽음을 인지했다.
“코 자면 나도 미미처럼 엄마 볼 수 있어? 응?”
“아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엄마를 볼 수 있는데?”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 돼.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그때 우리 살던 동네에서 보이던 뾰족한 건물들 알지? 최소한 그곳에 살아야 돼. 그러면 찾지 않아도 찾아오거든.”
참으로 냉정한 말이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계급의 선은 분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우리는 하층으로 구분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돈 아주 많이 벌면 되는 거지.”
“그래.”
불가능한 것을 중얼거리며 경은 눈물을 머금은 채 해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현실이 머릿속에 박히게 된다. 그들이 교육을 통해 세뇌하고 있는 건 지독한 계급주의였다. 아무리 똑똑해도 출신이 낮으면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 그것이 딱 너희 자리라고 그들은 말한다.
“형, 내가 돈 많이 벌게. 그래서 엄마도 찾아오고 아빠도 찾아오고 나 똑똑해지는 약 많이 먹어서 학교도 가고 그러자.”
경이 속삭였다. 나는 그런 경일 어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세상 때가 덜 묻은 채로 있는 게 경이에게 어울렸으니까. 그러자 경이는 어머니를 닮아 예쁜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띠었다. 에어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탓에 바람에 머리가 흩날려 엉망진창이지만, 참으로 예뻤다. 그래, 나는 이 미소를 사랑했다. 어머니를 닮은 미소를 바라보며 경이를 품에 안았다.
나와 체격이 비슷한 경이를 업고 에어도로를 건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에어카들을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했다. 계속 에어로드 중앙에 서 있을 수 없기에 나는 경이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바짝 잡고 그대로 뛰었다.
“형, 형아. 차.”
퍽퍽- 경이가 등을 두드리며 목을 잡아당겼다. 그 반동으로 무게가 쏠리며 뒤로 몸이 기울여졌다. 귀가 아플 정도로 비명을 지르며 목을 꽉 안아 오는 경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경이의 몸을 감싼 채 한 바퀴 굴렀다. 팔뚝이 쓰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피부가 쓸린 거 같았다.
“괜찮-”
저 멀리서 차가 달려왔다. 여기 에어로드였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되었다.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경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빠아아아앙-
수 초 사이에 많은 방법이 떠올랐지만 내가 취한 행동은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다. 경이를 끌어안는 것. 그래, 어쩌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나만 죽고 경이만 사는 것. 죽으려면 우리는 함께 죽어야 했다.
빠아아아아아아앙-
귀가 먹먹했다. 클랙슨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데도 몸에 어떤 충격도 가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머리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리자 에어카가 뒤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어서 꺼지라는 듯이.
“형아, 무서워.”
아름다운 선체를 가진 에어카는 분명 높으신 어르신들이 타는 차였다. 번호판 대신 제국군 마크가 달려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못해 트집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즉결 처분으로 사살될 수 있다. 방금까지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주제에 나는 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