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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녀의 아이 보는 것쯤이야 하고 했던 당당한 장담은 집으로 들어와서 20분도 안 돼서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얼마 동안 잘 노는 듯하더니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고 그녀의 선생님이란 직업은 쌍둥이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텔레비전 채널을 찾아 아이들의 대통령이라는 뽀로로도 틀어 줘 봤지만 뽀통령은 잠시의 평화밖에 주지 못했다. 참다 참다 상아의 인내심이 바닥이 보일 즈음 그녀는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워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유모차에 탈 때만 해도 칭얼거리던 아이들이 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들어서자 잠잠해졌다. 유모차를 끌고 한 바퀴 돌고는 벤치에 앉자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좀 기분이 풀리셨어요?”
이란성 쌍둥이라서 생김새는 안 닮았지만 같은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웃는 모습이 꼭 닮았다.
“히히히.”
“그래, 너네 웃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
상아는 밤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챙겨 온 담요를 둘러 주고는 유모차를 앞뒤로 흔들흔들했다.
밤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아래에서 그녀는 꽃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에서 애정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런데…… 슬슬 졸음이 밀려오는지 쌍둥이가 눈을 감을락 말락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조용히 자신을 알은체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아 씨?”
상아가 뒤를 돌아보자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기원이 외삼촌이 서 있었다.

진혁은 오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오늘 맡게 된 사건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었다. 부부가 헤어지면서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매일매일 보고 있지만 오늘은 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바로 누나의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나 쐬고 가자 싶어 공원으로 발을 돌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유모차에 탄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는 그녀가 너무 예뻐 보였다. 저 여자라면 혹시 모르겠다. 그의 이 마음을 보여 줄 수 있을지도.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잠잠하던 마음이 걸음에 맞춰 뛰고 있었다. 그녀가 뒤돌아서 자신을 보고, 그 눈이 오로지 자신만을 향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었다.
“쉿.”
상아가 겨우 재워 놓은 쌍둥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하라고 엄한 눈으로 진혁에게 경고를 날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발을 들어 고양이 발걸음으로 그녀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상아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설마, 상아 씨? 상아 씨에게 숨겨 놓은 자식이 있다고 해도 전 상관없습니다!”
이 무슨 아침 막장 드라마 같은 소리인가. 상아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진혁의 옆구리를 팔로 쳤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얘기했지만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들어 있었다.
“아니,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하하, 장난입니다. 선이 씨 얘들인가 봐요.”
“네, 오늘 잠시 제가 봐 주고 있어요. 퇴근하시나 봐요?”
“네, 오늘 바로 집으로 안 가고 공원에 들르길 잘했는데요. 상아 씨도 만나고요.”
상아는 아이들이 깰까 봐 아무런 대답 없이 잠들어 가는 아이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혁은 그런 상아만 계속 바라봤다. 두 사람의 조용한 분위기에 바람 소리만 들렸다. 진혁은 아무런 대화 없이 그녀와 나란히 앉아만 있는데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과 유모차에 탄 아이들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한 가족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아는 쌍둥이가 완전히 잠든 것을 보고는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혁도 따라 일어났다.
상아가 아이들이 덮고 있는 담요를 한 번 더 잘 덮어 주고는 그를 향해 조용히 인사했다.
“그럼 저는 이만…….”
상아의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말을 가로챘다.
“밤이고 하니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아, 요즘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가 성행한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 쌍둥이들을 에스코트하는 영광을 드리지요.”
유모차를 끌고 두 사람은 천천히 상아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 앞에 다다랐을 때 낯익은 차가 보였다. 병원에 다녀온 현재와 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모차에 탄 아이들을 보고 선이 달려왔다. 엄마는 엄마인지 아픈 와중에도 아이가 먼저인가 보다.
“린이, 빈이 안 보챘어?”
“왜 안 보챘겠어, 그래서 지금 공원 한 바퀴 돌고 왔잖아.”
“미안해, 힘들었지?”
“아니야, 근데 몸은 괜찮아?”
아직도 열이 올라 빨간 얼굴을 하고서는 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어 보였다.
“어. 이제 괜찮아. 고마워.”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옆에 분은?”
선이 뒤로 바짝 다가온 현재가 선이의 어깨를 감싸고는 상아에게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옆에 서 있던 진혁이 먼저 현재를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최진혁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현재입니다.”
악수를 하는 두 손에 서로의 힘을 가늠하기라도 하는지 꾹 힘을 주고는 둘은 탐색전을 마치고 물러섰다. 그리고 현재는 앞의 남자를 유심히 쳐다봤다.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는 현재에게 그만하라는 듯이 선이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그제야 현재는 눈에 힘을 풀었다. 선이 진혁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우리 상아, 잘 부탁드려요.”
“네, 걱정 마십시오.”
“뭐야? 나를 왜 부탁해, 나는 나 혼자서도 잘해요.”
갑자기 서로 상아 떠맡기기라도 하는 분위기에 상아는 볼멘소리를 냈다. 상아의 투정 아닌 투정에 세 사람은 빙그레 웃음 짓고 말았다.
현재가 언제 식사라도 같이 하자며 진혁에게 권했고 둘은 어느새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고 있었다. 자는 쌍둥이들을 조심히 차에 태우고는 현재와 선이 사라졌다. 현재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상아는 오피스텔로 올라가기 전에 진혁에게 인사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럼.”
재빠르게 인사하고 입구로 상아가 들어가려는 순간, 진혁이 상아의 팔을 잡았다. 팔이 잡혀 몸이 돌려진 순간 진혁이 여태껏 잘 참아 왔던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저기, 이번에는 식사 한 번 말고 데이트 어때요?”
“네, 네?!”
갑작스럽게 잡아 오는 손에 놀란 상아가 데이트라는 말에 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망설이고 있는 그녀의 귀로 그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딱 세 번만요. 세 번만 만나 봐요, 우리. 그러고 나서도 제가 맘에 안 드신다면 제가 깨끗이 상아 씨를 포기할게요.”
“…….”
상아의 침묵에 진혁의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이번에도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학교고 집이고 계속 찾아와서 애걸할 겁니다.”
상아는 그가 이 말을 얼마나 고심하고 뱉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부러 자신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가볍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세 번만 만나 보는 건데.
그녀의 고개가 또다시 허락으로 끄덕인다.
“까짓것 그래요.”
상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 기다리고 있던 그는 그녀의 허락에 그때서야 멈췄던 숨을 쉴 수 있었다.

6.


진혁은 토요일이지만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와 첫 번째 데이트를 약속한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처리해야 할 소장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불려 나와 있어 기분이 좋질 않다. 하지만 무턱대고 짜증을 낼 수도 없는 게 김 부장님도 자신 때문에 일찍부터 나와 일을 처리하고 계셨다.
“죄송합니다. 주말에까지 나와서 일하시게 하고.”
“아닙니다. 이게 무슨 일 축에나 듭니까?”
김 부장님과 함께해 온 시간이 워낙 오래되다 보니 손발이 척척 잘 맞았다. 주말에 출근해서도 싫은 티는 하나도 내지 않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는 그 덕분에 진혁이 한시름 놓았다.
“김 부장님! 최대한 빨리 마치고 퇴근합시다.”
지금부터 데이트 시간에 맞춰 가려면 일을 처리하는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
사무실 안은 침묵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대충 일이 다 끝나 갈 즈음에 진혁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보통 커플이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으러 간다거나 드라이브를 가는 게 정석인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는 세 번밖에 되질 않는데 그런 기본적이고 정석 같은 데이트는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밥 한 번 먹으면서 겪어 본 그녀는 정말 특별했다. 데이트 약속을 잡고 나서 계속해서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도 해 보고 고수님들께 질문도 해 봤지만 이렇다 할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은 누구나 하는 데이트 영화나 보러 가야겠다 생각하고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영화를 예매했다. 진혁은 자신의 센스 없음에 다시 절망을 맛봤다.
소장 작성을 다 마친 김 부장이 고민하고 있는 진혁을 향해 물어 왔다.
“최 변호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게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봤던 문제들을 외우고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쉬웠다. 답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연애라는 문제에는 그녀라는 변수까지 더하니 답이 없었다.
물어 오는 김 부장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의 딸이 번뜩 떠올랐다.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지, 아마. 매주 남자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아빠를 본체만체한다고 서운해했던 것 같은데.
“김 부장님, 따님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하셨죠?”
남자 친구를 만든 딸이 주말마다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집이 썰렁해져서 김 부장은 맘이 더 쓸쓸해지곤 했는데 갑자기 진혁이 딸에 대해 물어 오니 의아했다.
“네? 네. 요즘도 어찌나 데이트한다고 바쁜지.”
“그럼 따님은 데이트하면 보통 어디로 갑니까?”
“글쎄요. 뭐, 영화도 보는 것 같고, 교외로 차 타고 바람 쐬러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저번 주에는 파주에 갔다 온 것 같던데.”
“파주요?”
“네, 파주가 볼 것도 많고 데이트 장소로 괜찮은가 보더라고요.”
“그래요?”
“네, 딸이 갔다 와서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김 부장의 말을 듣고 진혁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교외로 나가는 것이 더 센스 있어 보였다.
데이트의 목적지를 변경한 그는 세부 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모든 일에 있어 준비가 기본인 그가 상아와의 첫 식사 후에 더 철두철미해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데이트의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해야 했고, 그에 따른 해결책도 마련해야 했다. 가는 길을 가장 먼저 체크하고 유명한 곳들을 메모하고 마지막으로 네티즌들이 추천하는 맛집까지 머리에 입력하고 나서야 진혁이 사무실을 나섰다.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김 부장님도 마무리만 하시고 퇴근하십시오.”

한편 정식으로 하는 데이트가 처음인 상아는 어제 밤잠을 설쳐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걸려 온 전화에 그녀가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떴다.
“여, 여보세요?”
“상아야? 너 오늘 첫 데이트라 하지 않았어? 아직도 자고 있는 거야?”
상아는 그날 진혁과의 세 번의 데이트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가장 먼저 친구에게 알렸다. 빨리 자기처럼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선이 눈에는 진혁이라는 남자가 괜찮아 보이는지 행동 개시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전화하기!
상아는 선이의 독촉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어.”
― 얼른 일어나서 씻고 옷 갈아입어. 혹시 추리닝 입으려 한 건 아니지?
“추리닝 입으려 했는데. 왜 전에 네 남편이 출장 갔다 사다 준 추리닝. 그거 완전 예쁘잖아. 외출복으로도 손색이 없어.”
결혼 전 선이를 잡는 데 일등 공신이었던 상아에게 현재는 가끔 이렇게 추리닝을 선물하곤 했다.
이번에 미국 출장 갔던 현재가 사 온 추리닝은 헐리웃 스타 제시카 얼바가 입어 더 유명해진 옷이었다. 검정색 추리닝 세트에 큐빅으로 수가 놓아져 있어 추리닝 주제에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달렸다.
그래서 상아는 함부로 꺼내 입지 못하고 옷장에 추리닝을 고이 모셔만 놓았다. 첫 데이트라고 큰마음 먹고 입고 나가려고 했는데…… 반대편 수화기에서 결사반대 외침이 들려왔다.
― 안 돼, 그건 예의가 아니지. 치마가 싫으면 하다못해 청바지라도 입고 가. 알겠지?
“네네, 알겠습니다.”
― 알았어, 그리고 너 피부 좋은 건 아는데 얼굴에 비비크림이라도 발라. 알겠지? 전화 끊는다. 얼른 준비해.
폭풍 잔소리가 한바탕 쓸고 지나가자 상아는 정신을 차렸다. 약속 시간이 두 시간도 안 남은 걸 안 그녀는 재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하지만 옷을 고르는데 뭘 입어야 될지 몰라서 옷장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뭘 입어야 하나? 출근할 때 입는 옷들은 너무 불편할 것 같고 추리닝은 입으면 안 된다고 하지.”
그래서 꺼내 든 옷은 아이들 현장학습 갈 때 입었던 체크 남방이었다. 시곗바늘이 약속 시간을 향해 점점 더 다가가자 다른 옷차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남방에 몸을 끼어 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상아가 나간 방 침대에는 아침부터 전쟁을 치른 수많은 옷들이 널려 있고 어질러져 있었다.

사무실에서 나온 진혁이 상아를 데리러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그가 차에 내려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에서 그녀가 나오고 있었다. 하얀 스키니 진에 빨간 체크 남방을 입고는 손에 카디건을 들고 나오는 그녀는 대학생처럼 생기 있고 발랄해 보였다. 진혁이 한걸음에 달려가 상아를 반겼다.
“잘 지냈어요?”
“네, 진혁 씨는요?”
“저는 잘 못 지냈습니다.”
“네?”
상아가 놀라 쳐다보자 진혁이 한 눈을 찡끗하며 능글거렸다.
“상아 씨 생각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
이 남자는 예고도 없이 불쑥 자신의 마음을 두드린다. 상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진혁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눈 속에, 머릿속에, 그리고 맘속에 담았다.
진혁이 차 문을 열어 주자 상아가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 아직도 얼굴이 붉어져 있는 상아의 안전벨트까지 점잖게 매어 주고는 그가 자신의 마음처럼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한동안 정신이 나가 있던 그녀는 차가 얼마쯤 달리자 돌아온 정신을 붙잡고 말했다.
“우리 어디 가요?”
“파주요. 혹시 파주 가 봤어요?”
귀찮아서 집 밖으로도 잘 안 나가는 상아는 아는 분이 돌아가셨다든가 하는 아주 큰일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파주 역시 가 본 적이 없다. 상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파주는 아직.”
“거기가 그렇게 구경할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다네요.”
계속 도로를 달려 도착한 첫 번째 데이트 코스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임진각이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임진각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평화누리공원에 다다르자 평화를 기원하는 커다랗고 기다란 많은 조형물들이 위치해 있었다.
입구부터 인사하고 있는 커다란 동상이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상아가 동상 앞에 서서 정중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동상에게 인사하는 그녀를 보는데 또다시 웃음이 나온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날이 없다. 자신의 몸집만 한 동그란 조형물을 둘러보던 상아는 진혁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부탁했다.
“나 사진 쫌 찍어 줘요.”
“네? 네.”
“예쁘게 찍어 줘야 해요.”
카메라를 향해 상아가 한쪽 팔을 허리에 척 얹고 다른 손을 흔들었다.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조형물 앞에 서서 그녀를 찍는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손이 분주했다. 마치 사진사가 된 것처럼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는 상아를 열심히 찍고 있던 진혁은 자신의 폰을 꺼내 몰래 그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