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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
마도학자 1권(1화)
프롤로그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최초의 마법은 세르코데프메(Selcodepme)의 4원소설을 바탕으로 파생되었다.
불(Fire), 물(Water), 바람(Air), 땅(Earth)!
이렇듯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은 4가지 원소를 바탕으로 생성되었다. 즉, 4대 속성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출발점이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마법이 돌연 출현했다.
바로 번개(Lightning) 원소마법이었다.
그때까지 4원소설을 굳건히 믿고 있던 기존의 마법 학파들은 새로운 원소의 존재를 전면 부정했다. 단지 불과 바람의 속성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번개가 발생했을 뿐이라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기존의 마도학자들은 불과 바람을 뒤섞어 번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시연해 보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그저 싸구려 속임수에 불과했다.
번개 마법사가 혼자서 뇌전(Thunderbolt)을 만들어 낸 것과는 달리, 불 마법사와 바람 마법사가 동시에 마법을 펼쳐 번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 사람이 단 하나의 속성만 익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번개 마법사가 혼자서 뇌전을 펼쳐 낸 것은 번개 속성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싸구려 시연에 만족했다.
기존의 마법 학파들이 오래된 권위와 강대한 세력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을 쌓아 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을 지지하는 것이 더 이익인가?’ 하는 문제였다.
또한 번개 마법사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번개가 기존의 원소들에 비해 제어하기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사실 마법사들에게 마력 제어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다.
마법을 펼친 본인 역시 죽게 된다면, 마법의 위력이 아무리 강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런데 번개(Lightning) 속성은 다른 원소들에 비해 흩어지는 성질이 강한 편이었다.
마력 제어에 성공하여 번개 마법을 익힌 번개 마법사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거기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번개 속성은 마력이 커질수록 제어가 힘들어져 5서클을 넘기기 힘들다.
이처럼 배우기가 무척 까다롭고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에 걸맞은 존경이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런 처지였으니 뇌전 학회는 좀처럼 번영을 누리지 못했다.
기존의 마법 학파들은 뇌전 학회가 곧 자연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또한 번개 마법사들 역시 자신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뇌전 학회는 예산 부족으로 운영이 중단되었으며, 구심점을 잃어버린 번개 마법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돌연 등장했다!
훗날 천재 마도학자로 불리게 된 마그누스가 번개 마법의 마력 제어를 획기적으로 높일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당시 젊고 천진난만한 성격이었던 마그누스는 뇌전 학파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기존의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뇌전 속성 마력 제어에 성공한 것을 비밀로 해 오다가, 수도에서 열린 마도 학회에서 이를 처음으로 시연해 보였다.
마그누스가 기대한 그대로, 시연을 직접 본 마도학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작 4서클의 마력으로 다른 계파들의 7서클 마법을 파괴해 버렸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으랴?
너무나 놀란 나머지 놀라움은 곧 두려움이 되었다!
그들은 마그누스가 고안해 낸 기술이 널리 퍼진다면 머지않아 기존의 마법 학파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뇌전 학파만 남을 것이라 우려했다. 혹은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기존 학파들의 세력이 예전보다 약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들은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현재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마그누스뿐이었다. 즉, 마그누스를 신속히 제거하기만 한다면 곧 일어날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수계(Water) 마법 학파인 아퀘리에스였다.
아퀘리에스가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속성상 수계 마법이 번개 마법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불이 물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각 속성 간에 상극이 존재했다.
아퀘리에스 학파의 마법사들은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바람(Air) 학파의 학자들을 포섭해 마그누스를 기습했다.
비록 마그누스의 뇌전 마법이 탁월하다고는 해도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뇌전 마법은 방어가 취약한 약점이 있어서 다수를 상대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마그누스는 죽었다.
또한 그들의 음모에 의해 대륙 각지의 번개 마법사들 역시 빠짐없이 제거되었다.
불과 땅의 학파들은 이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해하거나 적극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마그누스의 위협적인 마법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뇌전 학파는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그 후로 30여 년이 지났다.
Chapter 01.(1)
습기가 한곳에 모이자 천장에 물방울이 맺혔다.
물방울은 미동도 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사내의 이마 위에 부딪혔다.
토옥!
자극에 반응하듯 피부 안쪽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크아악!”
움직임이 점점 더 격렬해지더니, 무언가 검붉은 액체가 혈관과 피부를 찢고 튀어나왔다.
쫘아악!
상처를 통해 피와 뇌수가 와락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
비명 소리가 뚝 끊기며 결국 사내의 심장이 덜컥 멎어 버렸다.
그때 실험실의 견고한 유리벽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이번에도 역시 실패인 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자는 다소 마른 체형의 젊은 사내였다.
사내의 피부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듯 다소 창백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차가운 은색빛이 감도는 녹색이었다.
키가 꽤 큰 편에 속했지만, 셔츠가 헐렁거릴 정도로 마른 체형이라 체구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이름은 울리히 디 쥐세페(Ulrich di Gwiseppe)!
비밀 실험실의 연구원들 중 하나이자 젊은 마도학자였다.
원래부터 울리히란 사내가 실험체의 끔찍한 최후를 보고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을 만큼 냉혈한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도 끔찍하도록 혐오스런 광경에 곧바로 토해 버렸다.
명령에 꼼짝없이 따랐을 뿐이었는데도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한동안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실험체가 받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밤새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
연구원으로 지낸 5년 동안 이곳에 완벽히 적응하며 성격이 상당히 변해 버렸다.
무엇보다 울리히 역시 실험체가 된 사내를 한가롭게 동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극도의 기밀을 요구하는 이 실험이 완료되는 순간, 자신 역시 이들과 함께 제거될 운명이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어쩌다 내가 이런 신세가 되어 버렸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게 다 자신의 우월한 천재성(?) 때문이었다.
울리히는 흔히 말하는 영재였다.
그것도 천재 중에 천재라 고작 열 살 때 아카데미를 조기 졸업하고, 마도학자이자 교수가 되었다. 또한 그가 마도 학회에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번번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조금만 자중할 걸 그랬나? 아냐! 바보(?) 흉내 내는 게 어디 쉽나? 뭐.’
울리히의 눈에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어리석고 아둔해 보였다.
아주 단순한 이론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들 때문에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되도록 쉽게 서술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
새로운 마법 이론을 창안해 내는 것보다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작업이 더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울리히는 타고난 천재성 때문에 화를 당하게 되었다.
아퀘리에스 학파의 장로들은 왕실의 왕족들을 설득하여 일급 기밀을 요하는 비밀 연구를 하고 있었다.
비밀 연구에는 천재적인 학자들이 많이 필요했다.
마침 울리히는 천재 마도학자인데다, 귀족이긴 해도 그리 힘 있는 세도가의 자제는 아니었다. 즉, 납치해서 비밀 연구에 투입해도 그다지 뒤탈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울리히는 이곳에 감금된 채 비밀 연구에만 매진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바로 뇌전 학파의 마도학자였던 마그누스의 마법을 복원하려는 연구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 뇌전 학파의 씨를 말리려 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마그누스의 마법을 복원하려 하다니!’
아퀘리에스 마법 학파와 왕실의 왕족들이 합작하여 마그누스의 마법을 복원하려 하였다.
대륙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암흑제국, 테넨로베프의 침략 위협 때문이었다.
언제 제국이 침략 전쟁을 걸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성이 보이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된 것이다.
물론 반인륜적이며 반인도적인 이 연구는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아퀘리에스 학파의 장로들은, 천재 마도학자인 울리히야말로 뇌전 마법을 복원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나름 마도학의 천재라 불리는 울리히 역시 천재 중에 천재인 마그누스의 마법을 단기간 안에 복원해 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주어진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단서로 주어진 것이 고작 오직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뿐!
연구일지는 처음부터 누구에게 보여 줄 목적으로 기록한 아니었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더욱이 연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거나 아예 기록을 빼먹은 날짜도 많았다.
마법 연구에 대한 기록을 따로 모은다면, 채 한 페이지 분량도 안 되었다.
생각할수록 두통이 이는지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울리히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내가 아무리 천재 중에 천재라도 낙서(?) 비슷한 수준의 기록만 가지고 마그누스의 마법을 복원할 수는 없는 일이지.”
게다가 마법 연구를 먼저 시작한 마법사들은 방향성을 잘못 잡았다.
번개 속성에 대한 마법 제어를 높이기 위해 혈관 속에 철 성분을 주입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아퀘리에스 학파의 해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울리히는 그들에게 그 사실을 굳이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무례한 납치범(?) 집단에게 이익이 될 만한 일은 조금도 할 생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혹여 실험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즉시 제거될 운명이라는 걸 진작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단서가 될 만한 걸 찾긴 했지만 저들에게 알려 줄 이유는 없지!’
꾸준히 마그누스의 연구일지를 분석하던 울리히는 최근 교묘하게 숨겨진 단어를 몇 개 발견했다.
문맥이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을 따로 추려 낸 뒤, 일정한 키워드(이를테면 자주 강조된 단어)를 따라 재배열해 보다가 간신히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아직 단어가 부족해 문장을 완성하진 못했다.
이처럼 교묘하게 숨겨 둔 것으로 보아, 문장이 완성되면 강력한 힌트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힌트가 주어지기 전에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울리히는 마그누스에게 같은 천재로서(?)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천재로서 자긍심이 높은 그는 ‘마그누스가 해냈다면 자신 역시 못 해낼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울리히는 마그누스가 27세 때 뇌전 마법에 대한 새로운 논문을 학회에 발표한 것처럼, 자신 역시 27세가 되기 전에 그와 같은 마법을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야심(?)을 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울리히는 이 칙칙한 지하 연구소에서 죽게 될지 모른다는 것보다 마그누스의 천재성에 패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