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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안아도 돼?”
“…….”
“안 될까?”
“불꽃놀이 봐야 하잖아.”
“불꽃놀이는 내 방에서도 잘 보여.”
근식의 손을 잡고 그의 방을 향해 걸어가며 하윤은 잠시나마 이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겹겹이 일어났던 불행의 순간들은 어쩌면 그녀를 그에게로 데려다 놓으려는 운명의 계략이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방문이 열리고 푸른 조명이 깔린 침실로 한 걸음을 내딛기 직전 하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식의 손을 잡고 이 방에 들어서는 것과 손을 뿌리치고 이 집을 뛰쳐나가는 것 중 내일 아침 그녀가 정말로 후회하게 될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그 질문에 답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걸 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가 내린 결정이다.
순수했던 열 살의 꼬맹이들은 이제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서로를 강렬하게 원하는 남자와 여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등 뒤로 딸깍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이 완벽한 밀실이 되는 순간, 망설이던 마음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하윤을 침대에 앉힌 근식이 그녀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의 상의를 위로 잡아당겼다. 헐렁한 옷이 너무 쉽게 벗겨져 버리자, 하윤은 당황한 듯 휑하게 드러난 가슴을 교차시킨 두 팔로 가렸다.
“전에도 느낀 건데…….”
아래로 내려온 근식의 커다란 손바닥이 교차된 팔에 미처 다 가려지지 못한 가슴 윗부분을 쓰다듬었다.
“네 가슴, 몸에 비해 크고 예뻐.”
근식의 노골적인 말에 하윤은 귀까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가 붉어진 얼굴을 들고 근식을 향해 눈을 흘겼다.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해? 사람 부끄럽게…….”
어색하게 웃는 하윤을 향해 불쑥 고개를 숙인 근식이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에 놀란 하윤이 어깨를 움츠리자, 피식 비웃는 듯한 근식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면 곤란한데?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방에 들어온 뒤부터 근식은 묘하게 분위기가 바뀐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줄곧 다정하고 착한 동창생이었다면, 이제는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있는 한 마리의 야수 같은 느낌이 짙게 풍겨 왔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 감추고 있던 근식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하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일 아침, 온전히 두 다리로 걸어서 이 방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겁먹은 표정 짓지 마. 그럼 더 괴롭히고 싶어진단 말이야.”
펑! 피융! 펑펑!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힘겹게 눈을 떠 까만 하늘을 가득 비추던 창밖을 바라봤다. 빨갛고 파란 불빛들이 하늘로 솟구치다, 이내 높은 곳에서 펑 하고 터지며 예쁜 꽃 모양을 만들고 사라졌다.
“불꽃……. 예쁘다, 근식아…….”
하윤이 아득해진 목소리로 근식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말에 힐끔 고개를 돌려 창밖을 한 번 바라보던 근식은 이내 다시 하윤의 얼굴로 시선을 옮겨 놓았다.
“내 눈엔 네가 더 예뻐.”
귓가에서 속삭이는 근식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윤의 머릿속에선 펑펑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까만 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수많은 별똥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늘 위의 불꽃이 터지듯 하윤의 몸속 깊은 곳에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 같아서 하윤은 제 몸을 제대로 추스를 수조차 없었다.
“으읏! 아…… 근식아! 으응!”
근식은 제 어깨에 매달려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하윤을 강하게 끌어안은 채 그녀의 안으로 페니스를 빠르게 밀어 넣었다. 그 역시 절정에 다다라 가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짝 조이는 하윤의 내벽을 느끼며 근식은 그녀의 안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가장 깊은 곳까지 단숨에 제 것을 밀어 넣은 그가 일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으스러질 듯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윤의 안으로 뜨거운 욕망을 흘려보낸 근식은 파정 후에도 오래도록 그녀를 안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절정이 지나가자 하윤의 몸속에서 일어났던 불꽃도, 축제의 불꽃도 모두 끝이 나 있었다.
#제1장 안녕, 오랜만이야
잠에서 깨자마자 하윤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음?’
낯선 감촉, 낯선 향기, 낯선 체온 그리고 낯선 통증까지. 그녀의 몸을 감싼 모든 것이 여느 때의 아침과 달리 낯설기만 했다.
특히나 왼쪽 귀로 분명하게 들려오는 일정한 숨소리와 목덜미에 닿았다 어깨로 번지는 간지러운 숨결이 그녀가 지금 심상치 않은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눈을 떠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까지의 정황만으로도 하윤은 이곳이 자신의 방이 절대로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해도 생각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의 필름은 동료 선생님들과 동네 술집에서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던 장면을 마지막으로 끊겨 버렸다.
용기를 내어 눈을 뜬 하윤이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잠든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여자 선생님 중 한 명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녀의 동공을 가득 채운 얼굴은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하윤은 남자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느린 움직임에도 그녀의 허리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의 뻐근한 통증을 전해 왔다.
입술을 깨물고 겨우 터지는 신음을 참아 내며 침대를 빠져나온 하윤은 위아래 속옷만 입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곤 또 한 번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설마’ 하는 마음을 먹기 무섭게 현실은 ‘역시’라는 대답을 내어 주고 있었다.
‘돌았구나? 정하윤! 돌아도 아주 제대로 돌았어!’
하윤의 시선이 자신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들춰진 이불 틈으로 남자의 상체가 휑하니 드러났다. 넓은 어깨와 다부진 가슴 근육의 곳곳엔 키스마크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붉은 흔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날까지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대범함에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남자의 몸에 저토록 진한 키스마크를 남기기까지 하다니.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하고 단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그녀의 행실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윤은 주섬주섬 바닥에 널려 있는 옷가지를 주워 입었다. 남자와 달리 하윤의 몸에는 키스마크가 남겨져 있지는 않았다. 다만 골반과 허벅지 안쪽에 선명하게 멍든 자국이 키스마크와는 또 다른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옷을 챙겨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 묶은 하윤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남자의 집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남자는 깊게 잠에 빠진 듯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하윤은 자신이 하룻밤을 보낸 곳이 그녀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라는 걸 깨달았다.
“절대로 다시 마주치지 맙시다! 제발! 제발!”
하윤은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온 하윤은 가방에서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꺼내 충전기에 꽂았다. 잠시 후, 전원을 켜자마자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선생님들의 부재중 전화 알림과 메시지가 밀려들어 왔다.
[정 선생 어디 갔어?]
[정 선생님, 문자 확인하는 대로 전화 주세요.]
[하윤 쌤! 아무 일 없는 거지?]
전달된 메시지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하윤이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이윤희 선생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하윤 쌤! 어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어디야? 아무 일 없는 거지?
“이 쌤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
― 그걸 말이라고! 지금 어딘데?
“집이야.”
집이라는 하윤의 대답에 윤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 하아. 진짜 다행이다. 난 또 어제 그 남자랑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프롤로그
“안아도 돼?”
“…….”
“안 될까?”
“불꽃놀이 봐야 하잖아.”
“불꽃놀이는 내 방에서도 잘 보여.”
근식의 손을 잡고 그의 방을 향해 걸어가며 하윤은 잠시나마 이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겹겹이 일어났던 불행의 순간들은 어쩌면 그녀를 그에게로 데려다 놓으려는 운명의 계략이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방문이 열리고 푸른 조명이 깔린 침실로 한 걸음을 내딛기 직전 하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식의 손을 잡고 이 방에 들어서는 것과 손을 뿌리치고 이 집을 뛰쳐나가는 것 중 내일 아침 그녀가 정말로 후회하게 될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그 질문에 답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걸 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가 내린 결정이다.
순수했던 열 살의 꼬맹이들은 이제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서로를 강렬하게 원하는 남자와 여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등 뒤로 딸깍하고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공간이 완벽한 밀실이 되는 순간, 망설이던 마음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하윤을 침대에 앉힌 근식이 그녀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의 상의를 위로 잡아당겼다. 헐렁한 옷이 너무 쉽게 벗겨져 버리자, 하윤은 당황한 듯 휑하게 드러난 가슴을 교차시킨 두 팔로 가렸다.
“전에도 느낀 건데…….”
아래로 내려온 근식의 커다란 손바닥이 교차된 팔에 미처 다 가려지지 못한 가슴 윗부분을 쓰다듬었다.
“네 가슴, 몸에 비해 크고 예뻐.”
근식의 노골적인 말에 하윤은 귀까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가 붉어진 얼굴을 들고 근식을 향해 눈을 흘겼다.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해? 사람 부끄럽게…….”
어색하게 웃는 하윤을 향해 불쑥 고개를 숙인 근식이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에 놀란 하윤이 어깨를 움츠리자, 피식 비웃는 듯한 근식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면 곤란한데?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방에 들어온 뒤부터 근식은 묘하게 분위기가 바뀐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줄곧 다정하고 착한 동창생이었다면, 이제는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있는 한 마리의 야수 같은 느낌이 짙게 풍겨 왔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까지 감추고 있던 근식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하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일 아침, 온전히 두 다리로 걸어서 이 방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겁먹은 표정 짓지 마. 그럼 더 괴롭히고 싶어진단 말이야.”
펑! 피융! 펑펑!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힘겹게 눈을 떠 까만 하늘을 가득 비추던 창밖을 바라봤다. 빨갛고 파란 불빛들이 하늘로 솟구치다, 이내 높은 곳에서 펑 하고 터지며 예쁜 꽃 모양을 만들고 사라졌다.
“불꽃……. 예쁘다, 근식아…….”
하윤이 아득해진 목소리로 근식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말에 힐끔 고개를 돌려 창밖을 한 번 바라보던 근식은 이내 다시 하윤의 얼굴로 시선을 옮겨 놓았다.
“내 눈엔 네가 더 예뻐.”
귓가에서 속삭이는 근식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윤의 머릿속에선 펑펑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까만 밤하늘을 수놓았던 불꽃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수많은 별똥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늘 위의 불꽃이 터지듯 하윤의 몸속 깊은 곳에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 같아서 하윤은 제 몸을 제대로 추스를 수조차 없었다.
“으읏! 아…… 근식아! 으응!”
근식은 제 어깨에 매달려 끊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하윤을 강하게 끌어안은 채 그녀의 안으로 페니스를 빠르게 밀어 넣었다. 그 역시 절정에 다다라 가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짝 조이는 하윤의 내벽을 느끼며 근식은 그녀의 안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가장 깊은 곳까지 단숨에 제 것을 밀어 넣은 그가 일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으스러질 듯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윤의 안으로 뜨거운 욕망을 흘려보낸 근식은 파정 후에도 오래도록 그녀를 안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절정이 지나가자 하윤의 몸속에서 일어났던 불꽃도, 축제의 불꽃도 모두 끝이 나 있었다.
#제1장 안녕, 오랜만이야
잠에서 깨자마자 하윤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음?’
낯선 감촉, 낯선 향기, 낯선 체온 그리고 낯선 통증까지. 그녀의 몸을 감싼 모든 것이 여느 때의 아침과 달리 낯설기만 했다.
특히나 왼쪽 귀로 분명하게 들려오는 일정한 숨소리와 목덜미에 닿았다 어깨로 번지는 간지러운 숨결이 그녀가 지금 심상치 않은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눈을 떠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까지의 정황만으로도 하윤은 이곳이 자신의 방이 절대로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해도 생각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의 필름은 동료 선생님들과 동네 술집에서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던 장면을 마지막으로 끊겨 버렸다.
용기를 내어 눈을 뜬 하윤이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잠든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여자 선생님 중 한 명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녀의 동공을 가득 채운 얼굴은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하윤은 남자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느린 움직임에도 그녀의 허리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의 뻐근한 통증을 전해 왔다.
입술을 깨물고 겨우 터지는 신음을 참아 내며 침대를 빠져나온 하윤은 위아래 속옷만 입은 자신의 몸을 확인하곤 또 한 번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설마’ 하는 마음을 먹기 무섭게 현실은 ‘역시’라는 대답을 내어 주고 있었다.
‘돌았구나? 정하윤! 돌아도 아주 제대로 돌았어!’
하윤의 시선이 자신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들춰진 이불 틈으로 남자의 상체가 휑하니 드러났다. 넓은 어깨와 다부진 가슴 근육의 곳곳엔 키스마크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붉은 흔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날까지 모르고 살았던 자신의 대범함에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남자의 몸에 저토록 진한 키스마크를 남기기까지 하다니.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하고 단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그녀의 행실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윤은 주섬주섬 바닥에 널려 있는 옷가지를 주워 입었다. 남자와 달리 하윤의 몸에는 키스마크가 남겨져 있지는 않았다. 다만 골반과 허벅지 안쪽에 선명하게 멍든 자국이 키스마크와는 또 다른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옷을 챙겨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 묶은 하윤은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남자의 집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남자는 깊게 잠에 빠진 듯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하윤은 자신이 하룻밤을 보낸 곳이 그녀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라는 걸 깨달았다.
“절대로 다시 마주치지 맙시다! 제발! 제발!”
하윤은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온 하윤은 가방에서 전원이 꺼진 핸드폰을 꺼내 충전기에 꽂았다. 잠시 후, 전원을 켜자마자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선생님들의 부재중 전화 알림과 메시지가 밀려들어 왔다.
[정 선생 어디 갔어?]
[정 선생님, 문자 확인하는 대로 전화 주세요.]
[하윤 쌤! 아무 일 없는 거지?]
전달된 메시지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하윤이 가장 가깝게 지내고 있는 이윤희 선생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하윤 쌤! 어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어디야? 아무 일 없는 거지?
“이 쌤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
― 그걸 말이라고! 지금 어딘데?
“집이야.”
집이라는 하윤의 대답에 윤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 하아. 진짜 다행이다. 난 또 어제 그 남자랑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