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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학자 1권(25화)
Chapter 07.(3)


조수들이 무슨 일로 독을 마신 건지 잔뜩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울리히는 해명하는 대신 그들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렉티오 교수를 만나야겠다! 나를 부축해서 그의 연구실로 이동해 주게!”
“알겠습니다! 학자님.”
조수들의 도움으로 울리히는 곧 렉티오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실험에 열중하고 있다가 울리히와 눈이 마주친 렉티오 교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울리히 님! 몹시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요.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시급히 부탁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편안하게 말씀해 보세요! 경청하겠습니다.”
울리히는 이번에도 황자의 비밀 작전이라는 핑계를 대었다. 다행히 순진한 구석이 있는 렉티오 교수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울리히가 인튜이션―리프를 통해 만든 몇 가지 해독제 조합법을 듣고 몹시 감탄한 듯 말했다.
“해독제 조합법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그럴듯하군요! 약물 성분 비율을 조절하며 실험을 거듭한다면 곧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만든 건지 궁금하군요!”
울리히는 자칫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조합법을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대신 쓸데없이 낭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사실은 중요 인물이 중독되어 있어서 오늘 안에 해독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서둘러 오셨군요. 에칼드(Ekard) 해독제라면 저도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렉티오 교수는 해독제 제조를 도울 조수를 몇 명 불러들였다. 단 두 사람만으로 해독제를 만들어 내기엔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수들 중에는 윈스턴이란 이름으로 위장 잠입한 미하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하엘은 뇌전 학파의 생존자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렉티오 교수의 실험 조수로 위장 잠입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미하엘은 비밀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렉티오 교수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다소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렉티오 교수는 성실하고 유능한 그를 신임하여 실험 조교에 임명했다.
렉티오 교수는 미하엘을 따로 불러 단단히 일러두었다.
“자네가 조수들 입단속을 좀 해 주게.”
“알겠습니다! 교수님.”
미하엘은 시원스럽게 대답한 것과는 달리 속으로 잔뜩 불평하고 있었다.
‘어째 수상쩍은 냄새가 잔뜩 풍기는군! 가급적 이런 일에는 얽혀 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협조하는 수밖에 건가?’
미하엘은 위장 잠입한 상황이었기에 조사를 받을 만한 일에 연루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렉티오 교수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성실히 돕는 척하면서 신중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여하튼 울리히는 그의 정체에 대해 꿈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혹시 그의 정체를 의심했어도 지금은 조사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울리히는 렉티오 교수의 도움을 받아 조합법과 비율을 달리하여 해독제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든 해독제는 실험용 쥐를 통해 임상 실험을 거쳤다.
“찌익―!”
해독제를 들이킨 쥐들은 대부분 짧은 비명만 남기고 즉사해 버렸다. 조합이 잘못되어 극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쥐들이 먹고 죽지 않은 해독제는 몸집이 좀 더 큰 다른 동물들에게 투입되었다.
실험을 반복하는 동안 시간은 줄기차게 흘러갔다.
“으으…….”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울리히는 렉티오 교수가 이를 수상쩍게 여길까 봐 통증을 억지로 참아 냈다.
‘벌써 6시간이나 지난 건가?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 정도…….’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지만 실험 과정을 앞당길 방법은 없었다. 지금도 최대한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연구실 입구 쪽에서 갑자기 요란스런 충돌음이 발생했다.
콰앙! 쾅!
느닷없는 굉음에 흠칫 놀란 교수는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엇?! 갑자기 뭐지?”
반면 울리히는 뭔가 마음속으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
‘해독제를 만들려는 걸 첩자들이 결국 알아차린 건가?’
하긴 요란하게 움직였으니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워낙 사정이 급해―당장 죽을 판이라―감시의 눈길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여하튼 아직 해독제를 완성하지도 못했는데 이렇듯 밀어닥치다니 정말 큰일이었다.
콰아앙―!
한차례 강렬한 굉음과 함께 철문이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문을 부수고 나타난 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울리히는 그의 눈빛을 보고 직감적으로 얼마 전 거처를 찾아온 침입자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침입자는 곧바로 울리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실험실 안에는 수많은 실험 조수들이 있었고, 또한 시야를 가리는 각종 실험 기구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험실 내부가 넓어 봤자 얼마나 넓겠는가?
침입자가 그를 찾아내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울리히는 다급한 마음에 임상 실험을 거친 해독제가 든 병들을 집어 들고 탁자 밑으로 몸을 숨겼다.
“거기 누구냐?”
그런데 때마침 복도를 지나던 순찰병들이 침입자를 발견했다.
침입자는 대답 대신 순찰병들을 향해 소맷자락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날렸다.
쉐에엑― 파악!
“크억!”
급소에 치명상을 입은 순찰병들은 단번에 숨이 끊어지며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평범한 순찰병들로는 암살에 특화된 침입자를 감당하기 역부족인 것이다.
순찰병들을 순식간에 제거한 침입자는 실험실 안으로 성큼 발을 들이며 거치적거리는 실험 조수들을 향해 가차 없이 단검을 날렸다.
쉐에에엑― 파악!
“크아악!”
탁자 밑에 몸을 잔뜩 웅크린 울리히는 두려움에 떨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완성된 해독제일까? 아니, 전부 실패한 것은 아닐까?’
다급히 집어 든 병은 모두 3개!
해독하려면 이것들 중 하나를 마셔야 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강력한 적을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또한 달리 해독제를 만들어 볼 시간도 없을 것 같았다.
‘젠장! 운에 맡겨 봐야지, 뭐!’
울리히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두 번이나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뭐든 시도해 봐야만 했다.
파악―!
“크아악!”
죽어 가며 내지른 실험 조수들의 비명이 그를 재촉하는 듯했다.
덥석!
고심하던 울리히는 해독제 하나를 골라 움켜쥐었다.
‘이번에도 하늘이 나를 버리시지 않기를!’
결국 그는 병 안에 든 해독제를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약효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이제는 정말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별다른 수가 없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울리히는 서둘러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어 룬―스톤이 들어 있는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고 룬―스톤을 움켜쥐는 순간! 침입자가 날린 단검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지듯 날아왔다.
쉐에엑―!
‘아…… 안 돼!’
온몸의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놀란 울리히는 룬―스톤에 저장된 마력을 뽑아냈다.
번쩍!
섬광과 함께 번개 다발이 나선 형태로 소용돌이쳤다.
순간 번개 다발 한가운데에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며 단검을 쑤욱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번개의 소용돌이가 힘차게 뻗어 나갔다.
콰아앙―!
고막을 터뜨릴 듯 거대한 폭발음이 일어났다. 놀란 탓에 룬―스톤에 저장된 마력을 거의 한꺼번에 방출했기 때문이다.
파직― 파지지직!
“크아악!”
침입자 역시 엉겁결에 번개의 소용돌이에 명중당하고 말했다.
단순히 마도학자라고 생각했던 울리히가 느닷없이 뇌전 마법을 펼쳐 반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처 방비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명중했다! 이 기회에 끝장을 내 버려야 해.’
언제까지 운이 좋으리란 법은 없기에 기회를 잡았을 때 확실히 끝을 내 둬야 했다.
울리히는 룬―스톤의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번개를 강화시켰다. 또한 그것만으로 안심되지 않아서 다른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어 룬―스톤을 하나 더 움켜쥐었다.
“기대해도 좋아. 완전 짜릿할 거다!”
울리히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양손에 하나씩 거머쥔 룬―스톤을 통해 동시에 마력을 한껏 방출했다.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악!”
번개의 힘이 강해지자 침입자의 비명 소리가 더욱 커졌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타들어 가고, 입고 있는 옷에도 화르륵 불이 붙었다.
피부가 검게 타들어 가며, 지방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기포가 올라오는 참혹한 모습에 울리히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또한 살이 타들어 가는 역한 냄새가 연구실 안에 온통 진동을 했다.
하지만 침입자는 그 지경이 되어서도 신기하게 쓰러지지 않고 악착같이 버텼다.
의아해하던 울리히는 돌연 깨달았다.
‘이 녀석! 포스 유저구나!’
포스 유저(Force User)는 포스의 힘으로 마력에 저항할 수 있다.
단검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포스를 이용한 단검술을 익혀 둔 모양이었다.
순간 룬―스톤 하나의 마력이 갑작스럽게 바닥나며 번개의 위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잔뜩 흥분한 탓에 마력이 벌써 바닥난 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엇?’
아차 하며 잠시 당황하는 순간, 침입자가 바닥을 박차며 황급히 몸을 굴렸다.
울리히가 자주 연습한 회전 방식은 구현 속도가 빠르지만 일직선으로만 공격할 수 있는 단점이 있었다.
즉, 금속판으로 된 탁자 뒤에 숨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다.
마그누스가 개발한 챠지드 바디(Charged Body) 방식을 이용하면 숨어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최소한 3분 이상의 발현 시간이 걸렸다.
치열한 공방 속에서는 1초도 길다.
순간 탁자 뒤에 숨은 침입자가 이를 부드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젠장! 죽여 버리겠어!”
쉐에엑―!
침입자는 내다보지도 않고 단검을 날렸다.
하지만 방향이 정확했기 때문에 울리히는 기겁하며 번개 다발을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순간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어 날아오는 단검을 꿀꺽(?) 삼켜 버렸다.
쉐에엑―! 쉐에엑―!
침입자가 추가로 단검들을 던졌지만 자기장의 흡입력에 모조리 빨려들어 버렸다.
‘신기한 흡입력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 있으면 단검을 이용한 공격을 무용지물이다!’
상황이 유리해졌다는 판단에 울리히는 차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룬―스톤 하나를 써 버렸지만, 아직 다섯 개의 룬―스톤이 남아 있어서 마력은 충분했다.
이제 걱정해야 할 부분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적을 확실히 제거하는 문제였다.
번개의 나선 회전으로 미지의 힘(자기력)을 발생시킨 것은 울리히에겐 소중한 연구 성과이자 자신을 지킬 유일한 무기였다.
만약 침입자가 살아남아 이 신기한 현상에 대해 발설하게 된다면 자신만의 숨겨진 무기를 잃게 되는 것이다.
울리히는 마음을 독하게 먹으며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숨통을 끊어 버리겠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침입자가 갑자기 실험실 문을 향해 힘껏 달려 나갔다.
울리히는 서둘러 그자를 향해 번개 마법을 발현했다.
번쩍!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함께 번개 다발이 침입자의 등을 노리고 세차게 방출되었다.
그런데 침입자는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근처의 탁자 아래로 민첩하게 몸을 날리며 울리히를 형해 단검을 날렸다.
쉐에엑―!
아직 다양한 실전 경험이 없었던 울리히는 궁지에 내몰린 상황에서 이처럼 악착같이 반격을 시도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푸욱!
단검이 울리히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크악!”
끔직한 고통 때문에 절로 입이 벌어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소용돌이치던 번개가 힘없이 흩어져 버렸다.
침입자는 그 틈을 노려 재빨리 단검들을 한꺼번에 던졌다.
쉐에엑―! 쉐에엑―!
위기를 느낀 울리히는 이를 악물며 뇌전 마법을 다시 발현했다.
번쩍!
섬광과 함께 번개 다발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이번에도 번개 회오리 안쪽에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되며 단검들을 쑤욱 삼켜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침입자가 숨겨 둔 한 수가 있었다.
단검 하나는 자기장을 피해 길게 호를 그리며 울리히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푸욱!
“크억!”
운 좋게도 심장에 명중하지 않은 것은 자기장의 여파에 단검의 궤도가 살짝 흔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 부근을 관통한 것만 해도 충분히 치명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끔찍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한계상황에 내몰린 울리히는 곧바로 인튜이션―리프 상태에 돌입해 버렸다.
지이이잉―!
바로 그 순간 침입자가 울리히를 향해 단검을 날렸다.
쉐에엑―!
단검들이 저마다 다른 복잡한 궤도를 그리며 그를 향해 날아왔다.


『마도학자』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