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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1장 돼지 사냥(2)
서류에 사인을 받은 아저씨들은 ‘안녕히 계세요’라고 한 후 가 버렸다.
“어디 한번…….”
현이는 캡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캡슐 안에서 헬멧을 쓰고 게임을 실행했다.
[홍채 인식, 신체검사 완료. 아이디가 없습니다. 새로 만드시겠습니까?]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아이디를 말씀해 주십시오.]
“나폴레옹.”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한니발.”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뭐야, 이것도 쓰는 사람이 있어?”
[등록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아뇨!”
그렇게 30분이나 지나갔다.
“칼의 노래!”
“아돌프 히틀러!”
“인생은 대충대충!”
“너 왜 이러니?”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원스턴 처칠!”
“식객!”
“수학의 정석!”
“아리스토텔레스!”
“나 영물이야!”
“보드카!”
“형아는 매우 슬프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아악! 짜증나! 언놈이 벌써 등록한 거야?”
[등록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아니오.”
‘뭘로 하지?’
문득 현이는 별자리의 이름이 떠올랐다.
“데네브!”
[등록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오오오, 드디어! 예!”
[에르메키아 월드에 처음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릭터는 현실 그대로 사용됩니다. 선택 사항으로 머리 색깔, 모양, 길이나, 눈동자의 색깔, 피부색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앞에 거울이 나오더니 완벽하게 재현한 현이의 얼굴이 나왔다.
“음, 눈동자를 붉은색, 밝게 해 줘. 그거면 돼.”
[캐릭터가 설정되었습니다. 전직은 레벨 10이 되면 전직소에 가셔서 전직을 할 수 있습니다. 전직소에 있는 직업은 마법사, 전사, 궁수, 도적입니다. 성직자는 마을의 신전에서 하실 수 있으며 히든 클래스나 기타 다른 직업들은 그 직업을 가진 NPC(Non Player Character)에게서 전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게임 중에 죽으시면 하루 동안 접속이 불가능함과 동시에 게임 머니와 아이템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되도록 게임 머니와 비싼 아이템은 게임상의 개인 금고에 넣어 두시고, 죽으시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럼 에르메키아 월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사방이 갑자기 밝아지자 데네브는 눈을 감았다.
어느덧 데네브는 중세풍의 마을 한복판에 있었다. 마을은 중세풍의 마을과 같았고 하늘은 푸르고 맑았으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아아…… 대단해! 여기가 바로 가상현실이라니! 진짜 같아!”
“저 사람, 미쳤나?”
“냅 둬, 게임 처음하나 보지. 너도 맨 처음에는 구르기도 하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잖아.”
“허걱! 아직도 그걸 기억하다니…….”
감격한 데네브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리치고 말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수군거리거나 일부는 측은하게 자신도 그랬다는 듯 쳐다보았다.
“…….”
창피해진 데네브는 그 자리에서 도망 나왔다.
“우선 내 상태를 볼까? 캐릭터 창!”
[이름:데네브
호칭:무
직업:무
국가:무
레벨1(0.000%)
공격력:20, 회피력:10
방어력:15, 정신력:10
마법 방어력:0
마법력:10
상태:정상
특징:무, 공복도:100%
캐릭터 옵션:무
명성:0]
“역시 낮구나. 아니, 당연한 거지. 이번엔 아이템 창!”
데네브 앞에 창이 나왔다. 창 안에는 보리 빵 5개와 단검이 있었다.
데네브는 단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손에 무언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잡지책에서 읽어 봤지만 진짜 신기하네…….”
데네브는 단검을 쑥 꺼냈다.
“어디 보자……. 이제 사냥해야겠지? 근데 여기가 어딘지…….”
데네브는 무작정 길을 돌아다니다가 잡화점이라는 간판을 단 상점이 보이자 그곳으로 들어갔다.
따랑!
문을 열자 작은 방울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머리에 초록색으로 존이라고 떠 있는 NPC가 나왔다. 몬스터나 NPC는 각자 머리 위에 글자가 나타나 있는데 몬스터는 붉은색, NPC는 초록색으로 되어 있었다.
“아, 저기 지도 좀 살까 하는데요.”
“지도는 2실링입니다.”
“예?”
“2실링입니다.”
“저, 실링이 뭐죠?”
“아, 이곳의 화폐 단위를 모르시는군요. 실링은 화폐 단위로서, 골드와 실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실링은 최소 화폐 단위로 은화로 되어 있습니다. 골드는 금화로 된 화폐 단위로 100실링에 1골드입니다. 손님의 아이템 창 아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NPC도 레벨이나 아이템 창 등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저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데네브는 아이템 창을 열어 보았다. 아이템 창 아래에 기다란 네모 칸에 2G, 0S가 쓰여 있었다. 데네브는 2G 쪽으로 아까처럼 손을 뻗어 동전 한 개를 꺼냈다.
“여기 1골드요.”
“감사합니다. 손님, 더 사실 건 없나요?”
“음, 나침반이랑 식기류 세트, 낚싯대도 주세요. 돌아다니다 보면 노숙할지도 모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다 합쳐서 80실링입니다.”
존은 데네브에게 20실링을 건네주었다. 데네브는 돈을 받아 아이템 창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데네브는 상점을 나와 곧장 지도를 펴 보았다. 지도에는 마을과 근처의 사냥터가 나왔다.
지도 위에는 ‘시르벤 왕국(마을 벨레시아)’라고 쓰여 있었다. 지도의 안내문에는 유저를 중심으로 하여 유저가 움직이면 지도의 지형도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단, 처음 발견하는 마을이나 던전은 자신이 표기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으로 던전이나 마을을 발견한 유저의 경우 던전에서는 캐릭터가 삭제될 때까지 경험치가 두 배이고 마을에서는 물건을 50% 싸게 살 수 있었다.
“이런, 젠장! 귀찮게시리……. 이런 것까지 있을 줄이야. 그래도 파격적인데? 경험치 두 배에 물건을 살 때 반값이라니…….”
데네브는 지도를 따라 마을 입구를 나섰다. 입구 앞으로는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커다란 동산이 있었다. 그곳에는 토끼, 사슴, 멧돼지, 닭, 오리, 꿩들이 있었고, 수많은 유저들이 단검을 가지고 그것들을 잡고 있었다.
“스킬 뭐 없나? 스킬 창!”
[전직을 하실 때까지는 스킬 창이 없습니다.]
“뭐야, 시시하게…….”
“이보게, 젊은이.”
“네?”
데네브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허리가 너무 구부러져서 키가 120cm밖에 안 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고목 지팡이에 의지한 채 코에는 검버섯까지 나 있고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할아버지 NPC였다. 머리에는 초록색으로 론이라고 쓰여 있었다.
“자네…… 저기서 사냥할 거지?”
“아…… 예, 예.”
“그러면 내 부탁 좀 들어주게. 일주일 뒤에 나의 사랑스러운 손녀인 알렌시아의 생일에 생일잔치를 해야 된다네. 근데 이 늙은이의 몸이 이렇고 아들놈과 며느리는 농사일을 하느라 사냥할 시간이 없거든……. 우리 손녀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데, 가서 멧돼지 1마리 좀 잡아 줄 수 없겠나? 내가 후하게 보상해 주겠네.”
[벨레시아 마을, 장수 할아버지 론의 퀘스트가 나왔습니다.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내용:멧돼지 고기 1개
제한 날짜:D-7, 보상:?????, 난이도:C (예/아니오)]
“예.”
[퀘스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고맙네, 그럼 부탁하네.”
“안녕히 가세요.”
“허허, 예의가 바르군. 여태까지 다른 놈들은 반말을 했었는데 말이야. 후레자식들 같으니라고. 아, 참고로 우리 손녀는 다른 사람보다 이가 조금 약하다네.”
[론과의 친밀도가 높아졌습니다.]
론이라는 할아버지는 마을로 도로 들어가 버렸다.
“근데 멧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할아버지를 찾지? 게다가 난이도가 C급이라니, 초보자에게 불가능한 거 아냐?”
퀘스트의 난이도는 S, A, B, C, D, E급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초보자의 마을에서 C급의 난이도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퀘스트를 해 봐야 E급인데, 두 단계나 높은 C급이 나왔다. C급이면 이제 겨우 랭킹 상위권에 든 사람들이나 하는 것인데, 초보자에게 처음부터 C급이 나와서 여러 가지로 곤란해졌다.
“말도 말아요. 멧돼지는 혼자 잡을 수 없어서 파티로 잡거든요. 그런데 멧돼지 고기를 아무리 줘도 ‘이런 고기는 우리 손녀에게 먹일 수 없다’라며 면상에 던져 버리더라고요. 씨X! 생각만해도 열 받네. NPC만 아니더라도 확 PK하는 건데.”
“고기를 잘 나눠 줘도 다 거절해요. 운동량 많은 다리 살이나 맛 좋은 갈빗살을 줘도 거절해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아휴, C급이라서 좋아했었는데.”
“멧돼지를 잡으려다가 여러 번 죽었지요. 10명이 파티를 했었는데, 3일 동안 고생해서 겨우 잡았거든요. 그런데 그놈의 영감탱이가 ‘어떻게 이딴 고기를 가지고 오느냐’고 해서 문전박대당했다니까요. 지금은 형에게 부탁해서 멧돼지를 잡아요. 형이 전직해서 멧돼지를 잡기 쉽거든요. 고기 부위를 나누는 게 고역인데, 아직까지도 성공 못했어요. 이제 하루 남았어요. 에휴…….”
사냥하는 사람들에게 대략 물어보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돼지에게서 가장 맛있는 부위가 어디지?”
데네브는 동산을 돌아다니면서 멧돼지들을 구경했다. 게임상의 동물들은 유저가 직접 공격하지 않는 한 유저를 공격하지 않는다.
“멧돼지, 멧돼지, 멧돼지.”
머리 위에 있는 붉은색 글자를 데네브는 계속 읽어 갔다.
“그러고 보니 옛 생각이 나네.”
10년 전, 현이는 부모님을 따라 전라북도 논산의 어느 마을에 있는 아버지 친구 분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아저씨는 오랜만에 친구가 왔다면서 돼지고기를 먹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트럭을 운전하고, 친구 분이 짐칸에 타고서는 어디로 가시려고 했다.
그때 현이도 따라서 짐칸에 들어갔는데 트럭이 출발하자 아저씨는 꾸러미에서 망원경이 달린 총을 꺼내셨다.
“이거 웬 총이에요?”
“응, 이 아저씨가 멧돼지 잡으려고.”
“와아, 대단해요! 총 쏴 보셨어요?”
“당연히 쏴 봤지. 총알 보여 줄까?”
그러면서 노란 총알을 보여 주셨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사냥용 산탄총이 아니라 실탄이었다.
“밀수업자에 밀렵꾼이 틀림없어. 그 뒤로 그분 소식을 못 들었으니까.”
아무튼 한 시간 동안 산속에서 돌아다니다가 지치신 아저씨는 그냥 아버지에게 뭐라 말하고는 차 안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트럭을 다시 운전해서 간 곳은 돼지 농장. 거기서 여러 돼지들을 보았다. 엄청나게 뚱뚱한 어미 돼지, 귀여운 새끼 돼지, 그냥 보통 돼지 등등 많은 돼지를 봤었다. 냄새가 고약했지만…….
아무튼 아저씨는 돼지 한 마리를 고르시고, 그걸 철창에 옮겨서 트럭 뒤에다 실었다. 현이도 짐칸에 같이 탄 게 화근이었다. 아저씨가 돌아갈 때는 조수석에 타시는 걸 보고 눈치 챘어야 하는 건데…….
“으악, 냄새! 똥이다!”
돼지가 실려 가면서 똥이며 오줌을 1분당 한 번씩 싸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현이가 있는 뒤쪽으로 흘러내려 왔다. 결국 현이는 트럭에 매달려서 아저씨네 집으로 가야 했다. 아저씨네 집에 도착한 후 곧장 돼지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을의 이웃 형이 물을 뿌려서 오물을 닦아 내고 아저씨는 수돗가에서 칼을 갈았다.
1장 돼지 사냥(2)
서류에 사인을 받은 아저씨들은 ‘안녕히 계세요’라고 한 후 가 버렸다.
“어디 한번…….”
현이는 캡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캡슐 안에서 헬멧을 쓰고 게임을 실행했다.
[홍채 인식, 신체검사 완료. 아이디가 없습니다. 새로 만드시겠습니까?]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아이디를 말씀해 주십시오.]
“나폴레옹.”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한니발.”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뭐야, 이것도 쓰는 사람이 있어?”
[등록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아뇨!”
그렇게 30분이나 지나갔다.
“칼의 노래!”
“아돌프 히틀러!”
“인생은 대충대충!”
“너 왜 이러니?”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원스턴 처칠!”
“식객!”
“수학의 정석!”
“아리스토텔레스!”
“나 영물이야!”
“보드카!”
“형아는 매우 슬프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이미 등록된 아이디입니다.]
“아악! 짜증나! 언놈이 벌써 등록한 거야?”
[등록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아니오.”
‘뭘로 하지?’
문득 현이는 별자리의 이름이 떠올랐다.
“데네브!”
[등록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오오오, 드디어! 예!”
[에르메키아 월드에 처음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릭터는 현실 그대로 사용됩니다. 선택 사항으로 머리 색깔, 모양, 길이나, 눈동자의 색깔, 피부색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앞에 거울이 나오더니 완벽하게 재현한 현이의 얼굴이 나왔다.
“음, 눈동자를 붉은색, 밝게 해 줘. 그거면 돼.”
[캐릭터가 설정되었습니다. 전직은 레벨 10이 되면 전직소에 가셔서 전직을 할 수 있습니다. 전직소에 있는 직업은 마법사, 전사, 궁수, 도적입니다. 성직자는 마을의 신전에서 하실 수 있으며 히든 클래스나 기타 다른 직업들은 그 직업을 가진 NPC(Non Player Character)에게서 전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게임 중에 죽으시면 하루 동안 접속이 불가능함과 동시에 게임 머니와 아이템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되도록 게임 머니와 비싼 아이템은 게임상의 개인 금고에 넣어 두시고, 죽으시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럼 에르메키아 월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사방이 갑자기 밝아지자 데네브는 눈을 감았다.
어느덧 데네브는 중세풍의 마을 한복판에 있었다. 마을은 중세풍의 마을과 같았고 하늘은 푸르고 맑았으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아아…… 대단해! 여기가 바로 가상현실이라니! 진짜 같아!”
“저 사람, 미쳤나?”
“냅 둬, 게임 처음하나 보지. 너도 맨 처음에는 구르기도 하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잖아.”
“허걱! 아직도 그걸 기억하다니…….”
감격한 데네브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리치고 말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수군거리거나 일부는 측은하게 자신도 그랬다는 듯 쳐다보았다.
“…….”
창피해진 데네브는 그 자리에서 도망 나왔다.
“우선 내 상태를 볼까? 캐릭터 창!”
[이름:데네브
호칭:무
직업:무
국가:무
레벨1(0.000%)
공격력:20, 회피력:10
방어력:15, 정신력:10
마법 방어력:0
마법력:10
상태:정상
특징:무, 공복도:100%
캐릭터 옵션:무
명성:0]
“역시 낮구나. 아니, 당연한 거지. 이번엔 아이템 창!”
데네브 앞에 창이 나왔다. 창 안에는 보리 빵 5개와 단검이 있었다.
데네브는 단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손에 무언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잡지책에서 읽어 봤지만 진짜 신기하네…….”
데네브는 단검을 쑥 꺼냈다.
“어디 보자……. 이제 사냥해야겠지? 근데 여기가 어딘지…….”
데네브는 무작정 길을 돌아다니다가 잡화점이라는 간판을 단 상점이 보이자 그곳으로 들어갔다.
따랑!
문을 열자 작은 방울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머리에 초록색으로 존이라고 떠 있는 NPC가 나왔다. 몬스터나 NPC는 각자 머리 위에 글자가 나타나 있는데 몬스터는 붉은색, NPC는 초록색으로 되어 있었다.
“아, 저기 지도 좀 살까 하는데요.”
“지도는 2실링입니다.”
“예?”
“2실링입니다.”
“저, 실링이 뭐죠?”
“아, 이곳의 화폐 단위를 모르시는군요. 실링은 화폐 단위로서, 골드와 실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실링은 최소 화폐 단위로 은화로 되어 있습니다. 골드는 금화로 된 화폐 단위로 100실링에 1골드입니다. 손님의 아이템 창 아래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NPC도 레벨이나 아이템 창 등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저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데네브는 아이템 창을 열어 보았다. 아이템 창 아래에 기다란 네모 칸에 2G, 0S가 쓰여 있었다. 데네브는 2G 쪽으로 아까처럼 손을 뻗어 동전 한 개를 꺼냈다.
“여기 1골드요.”
“감사합니다. 손님, 더 사실 건 없나요?”
“음, 나침반이랑 식기류 세트, 낚싯대도 주세요. 돌아다니다 보면 노숙할지도 모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다 합쳐서 80실링입니다.”
존은 데네브에게 20실링을 건네주었다. 데네브는 돈을 받아 아이템 창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데네브는 상점을 나와 곧장 지도를 펴 보았다. 지도에는 마을과 근처의 사냥터가 나왔다.
지도 위에는 ‘시르벤 왕국(마을 벨레시아)’라고 쓰여 있었다. 지도의 안내문에는 유저를 중심으로 하여 유저가 움직이면 지도의 지형도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단, 처음 발견하는 마을이나 던전은 자신이 표기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으로 던전이나 마을을 발견한 유저의 경우 던전에서는 캐릭터가 삭제될 때까지 경험치가 두 배이고 마을에서는 물건을 50% 싸게 살 수 있었다.
“이런, 젠장! 귀찮게시리……. 이런 것까지 있을 줄이야. 그래도 파격적인데? 경험치 두 배에 물건을 살 때 반값이라니…….”
데네브는 지도를 따라 마을 입구를 나섰다. 입구 앞으로는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커다란 동산이 있었다. 그곳에는 토끼, 사슴, 멧돼지, 닭, 오리, 꿩들이 있었고, 수많은 유저들이 단검을 가지고 그것들을 잡고 있었다.
“스킬 뭐 없나? 스킬 창!”
[전직을 하실 때까지는 스킬 창이 없습니다.]
“뭐야, 시시하게…….”
“이보게, 젊은이.”
“네?”
데네브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허리가 너무 구부러져서 키가 120cm밖에 안 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고목 지팡이에 의지한 채 코에는 검버섯까지 나 있고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할아버지 NPC였다. 머리에는 초록색으로 론이라고 쓰여 있었다.
“자네…… 저기서 사냥할 거지?”
“아…… 예, 예.”
“그러면 내 부탁 좀 들어주게. 일주일 뒤에 나의 사랑스러운 손녀인 알렌시아의 생일에 생일잔치를 해야 된다네. 근데 이 늙은이의 몸이 이렇고 아들놈과 며느리는 농사일을 하느라 사냥할 시간이 없거든……. 우리 손녀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데, 가서 멧돼지 1마리 좀 잡아 줄 수 없겠나? 내가 후하게 보상해 주겠네.”
[벨레시아 마을, 장수 할아버지 론의 퀘스트가 나왔습니다.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내용:멧돼지 고기 1개
제한 날짜:D-7, 보상:?????, 난이도:C (예/아니오)]
“예.”
[퀘스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고맙네, 그럼 부탁하네.”
“안녕히 가세요.”
“허허, 예의가 바르군. 여태까지 다른 놈들은 반말을 했었는데 말이야. 후레자식들 같으니라고. 아, 참고로 우리 손녀는 다른 사람보다 이가 조금 약하다네.”
[론과의 친밀도가 높아졌습니다.]
론이라는 할아버지는 마을로 도로 들어가 버렸다.
“근데 멧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할아버지를 찾지? 게다가 난이도가 C급이라니, 초보자에게 불가능한 거 아냐?”
퀘스트의 난이도는 S, A, B, C, D, E급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초보자의 마을에서 C급의 난이도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퀘스트를 해 봐야 E급인데, 두 단계나 높은 C급이 나왔다. C급이면 이제 겨우 랭킹 상위권에 든 사람들이나 하는 것인데, 초보자에게 처음부터 C급이 나와서 여러 가지로 곤란해졌다.
“말도 말아요. 멧돼지는 혼자 잡을 수 없어서 파티로 잡거든요. 그런데 멧돼지 고기를 아무리 줘도 ‘이런 고기는 우리 손녀에게 먹일 수 없다’라며 면상에 던져 버리더라고요. 씨X! 생각만해도 열 받네. NPC만 아니더라도 확 PK하는 건데.”
“고기를 잘 나눠 줘도 다 거절해요. 운동량 많은 다리 살이나 맛 좋은 갈빗살을 줘도 거절해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아휴, C급이라서 좋아했었는데.”
“멧돼지를 잡으려다가 여러 번 죽었지요. 10명이 파티를 했었는데, 3일 동안 고생해서 겨우 잡았거든요. 그런데 그놈의 영감탱이가 ‘어떻게 이딴 고기를 가지고 오느냐’고 해서 문전박대당했다니까요. 지금은 형에게 부탁해서 멧돼지를 잡아요. 형이 전직해서 멧돼지를 잡기 쉽거든요. 고기 부위를 나누는 게 고역인데, 아직까지도 성공 못했어요. 이제 하루 남았어요. 에휴…….”
사냥하는 사람들에게 대략 물어보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돼지에게서 가장 맛있는 부위가 어디지?”
데네브는 동산을 돌아다니면서 멧돼지들을 구경했다. 게임상의 동물들은 유저가 직접 공격하지 않는 한 유저를 공격하지 않는다.
“멧돼지, 멧돼지, 멧돼지.”
머리 위에 있는 붉은색 글자를 데네브는 계속 읽어 갔다.
“그러고 보니 옛 생각이 나네.”
10년 전, 현이는 부모님을 따라 전라북도 논산의 어느 마을에 있는 아버지 친구 분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아저씨는 오랜만에 친구가 왔다면서 돼지고기를 먹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트럭을 운전하고, 친구 분이 짐칸에 타고서는 어디로 가시려고 했다.
그때 현이도 따라서 짐칸에 들어갔는데 트럭이 출발하자 아저씨는 꾸러미에서 망원경이 달린 총을 꺼내셨다.
“이거 웬 총이에요?”
“응, 이 아저씨가 멧돼지 잡으려고.”
“와아, 대단해요! 총 쏴 보셨어요?”
“당연히 쏴 봤지. 총알 보여 줄까?”
그러면서 노란 총알을 보여 주셨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사냥용 산탄총이 아니라 실탄이었다.
“밀수업자에 밀렵꾼이 틀림없어. 그 뒤로 그분 소식을 못 들었으니까.”
아무튼 한 시간 동안 산속에서 돌아다니다가 지치신 아저씨는 그냥 아버지에게 뭐라 말하고는 차 안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트럭을 다시 운전해서 간 곳은 돼지 농장. 거기서 여러 돼지들을 보았다. 엄청나게 뚱뚱한 어미 돼지, 귀여운 새끼 돼지, 그냥 보통 돼지 등등 많은 돼지를 봤었다. 냄새가 고약했지만…….
아무튼 아저씨는 돼지 한 마리를 고르시고, 그걸 철창에 옮겨서 트럭 뒤에다 실었다. 현이도 짐칸에 같이 탄 게 화근이었다. 아저씨가 돌아갈 때는 조수석에 타시는 걸 보고 눈치 챘어야 하는 건데…….
“으악, 냄새! 똥이다!”
돼지가 실려 가면서 똥이며 오줌을 1분당 한 번씩 싸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현이가 있는 뒤쪽으로 흘러내려 왔다. 결국 현이는 트럭에 매달려서 아저씨네 집으로 가야 했다. 아저씨네 집에 도착한 후 곧장 돼지는 앞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을의 이웃 형이 물을 뿌려서 오물을 닦아 내고 아저씨는 수돗가에서 칼을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