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6화
7장 엘프를 구해 주고 퀘스트를 받다(2)


“힘들걸요? 그 사신은 일당백과 학교 친구라는 정보가 있거든요.”
“으음…….”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장이 아까운지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드래곤 님, 다음 지령이 있습니까? 그 사신의 뒤를 미행할까요?”
“아니다. 이만 됐어. 그에 대한 것은 나중에 얘기하지. 수고했다. 받아라.”
척!
드래곤은 암살자 유저에게 묵직한 돈 주머니를 주었다.
“요즘 장사가 잘 되나 보네요.”
암살자 유저가 돈을 품에 넣으면서 말했다.
“어, 엘프나 수인족을 납치해서 귀족들에게 파는 게 돈이 많이 들어오거든.”
“호오, 그렇습니까?”
“난 이 일에 동업자를 두고 싶지는 않다네.”
“쳇!”
“이만 가 봐. 우리 길드의 최고 돈줄을 건드릴 생각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암살자 유저가 나간 후 드래곤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으음, 노예 상인이 되는 것은 싫었는데……. 하지만 어떡하누. 이렇게라도 돈을 벌지 못하면 길드 자금이 부족한데. 나도 당당히 장사를 해 보고 싶다고. 밑천이 어느 정도 생기면 친구 녀석들을 데리고 제대로 된 장사를 해 봐야지.”

데네브는 점점 동쪽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에르메키아 월드의 지형을 이야기하자면, 대륙의 중앙에는 가장 작은 왕국인 시르벤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을 감싸면서 대륙의 절반을 가르는 산맥이 있었으니 그 산맥이 세르피아 산맥이었다.
서쪽에는 시르벤 왕국과 앙숙인 국가인 헬베르 왕국이 있었다. 이 둘의 국경은 거대한 펠리콘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북쪽에는 북쪽의 패자 자바스 제국이 있지만 아직 유저들에게 제대로 탐험되어 있지 않아서 자세한 지형을 알 수가 없었다.
동쪽에는 자바스 제국의 속국인 펠리스 공국이 있으며, 남쪽에는 ‘버려진 사막’이라는 사막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왕국이 있었다.
유저들 중 많은 모험가 계열이 있어서 국가의 이름은 알 수 있었지만, 아직 지형이나 미발견된 던전이 많아서 탐험할 곳은 많았다.
데네브는 시르벤 동쪽의 세르피아 산맥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짹짹.
산새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데네브는 숲 속에서 산림욕을 하며, 3시간이나 걸어가고 있었다.
“아, 날씨 한번 좋구나! 심심한데 하모니카나 불어 볼까?”
데네브는 소매에서 아리시아가 준 하모니카를 꺼내서 불기 시작했다. 곡명은 ‘전설의 숲 엘레나’. 하모니카 소리는 숲과 어우러져서 평화롭게 퍼져 나갔다.
“까아아아악!”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 웬 까아악? 숲과 안 어울리는 소리잖아.”
“이년이! NPC 몬스터 주제에! 시끄러워! 닥치지 않으면 혀를 뽑을 줄 알아!”
데네브가 소리나는 쪽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약 30명쯤 되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 20명은 인간이 아니었다.
“엘프?”
노랑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 길쭉한 귀까지. 바로 데네브가 만나 보고 싶었던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어리거나 젊어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모두 팔과 다리에 족쇄를 차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붉은색으로 엘프라고 써 있었다. 에르메키아 월드에서는 엘프나 드워프, 수인족 같은 이종족은 몬스터형 NPC였다. 참고로 마녀들도 인간이지만, 그들도 몬스터형 NPC로 설정되어 있었다.
“아, X발! X나 시끄럽네. 재갈을 물려! 입 좀 닥치게.”
“알겠어.”
“읍읍!”
인간들 중 갑옷을 입은 유저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른 엘프에게 재갈을 물렸다.
‘어째서 유저들이 엘프들을 납치하는 거지? 설마, 노예?’
노예라는 단어에 데네브는 온갖 상상을 해 보았다. 그것도 ‘그쪽’으로.
‘안 돼! 아름다운 엘프에게 인간이 그런 짓을……. 저들은 유저이면서 죄책감을 못 느끼는 건가?’
데네브는 지팡이를 감아쥐고 싸울 준비를 했다.
“제가 구해 드리죠, 엘프 아가씨들.”
데네브가 숲에서 튀어나오며 말했다.
“어? 누구냐?”
“얼래? 이런 곳에 유저가?”
“젠장, 죽여! 우리가 한 짓을 저놈이 발설하면 안 된다!”
진부한 대사를 읊으며 데네브에게 달려드는 유저들이었다.
“안티 그래비티 실드.”
데네브를 감싸는 반중력의 실드 앞에 공격하던 납치범 유저들은 튕겨 나가 버렸다.
‘별것도 아니잖아.’
유저들이 튕겨 나가자 데네브는 얼른 실드를 해제하고는 제일 가까이 있던 전사 유저의 심장에 지팡이를 찍었다.
퍽!
“헉!”
콸콸콸.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전사 유저. HP가 많은지 로그아웃은 안 당했지만, 과다 출혈로 로그아웃당할 게 뻔했다.
“젠장, 받아라!”
슈슉!
두건을 쓴 다른 유저가 데네브에게 작은 단검을 던졌다. 하지만 단검은 데네브에게 약간의 고통만 줄 뿐 박히지는 않았다.
“아니!”
“그런 어린아이 같은 공격은 소용없습니다.”
데네브가 그 유저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친절하게 그래비티 볼을 몸속에 만들어 줬다.
“그래비티 볼, 그래비티 볼, 그래비티 볼.”
데네브는 납치범 유저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그래비티 볼을 몸 안에 생성시켜 줬다. 그래비티 볼에 당한 유저들은 동글동글한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그 뒤 회색의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으아악!”
“히익! 가…… 가까이 오지 마! 안 그러면…….”
“까악! 제…… 제발.”
마지막으로 남은 납치범 유저가 엘프 여자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왜? 죽이게? 죽이면 넌 황산에 넣어서 녹여 버릴 줄 알아. 내가 한 번만 봐주지. 어때? 살려 줄 테니까 엘프 여자는 두고 그냥 가라.”
오히려 당당하게 납치범에게 큰소리치는 데네브였다.
“저…… 정말?”
“그렇다잖아. 왜 못 믿니?”
“너 같으면 처음 보는 사람을 믿니?”
“그렇군. 뭐, 어쩔 수 없지. 믿으면 복이 온다잖아. 그냥 믿어 봐.”
“진짜지? 너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알았다니까! 난 뒤돌아볼 테니까 어여 그 엘프 여자 풀어 주고 가라.”
데네브는 납치범 유저에게 뒤돌아선 채 말했다.
“좋아, 그럼 난 간다! 나중에 두고 보자!”
“놀고 있네, 저 시끼가.”
납치범 유저는 그렇게 엘프를 풀어 주고 황급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헤에, 상황 종료. 안녕하세요, 아가씨들. 아가씨들을 구하기 위해 정의의 연금술사가 왔습니다! 핫핫핫!”
“읍! 읍!”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찬 엘프들은 데네브를 두려운 눈으로 보았다. 일부는 데네브를 적개심을 가진 눈으로 보았다.
“이런, 미움을 받았군요.”
데네브가 후드를 벗으면서 말했다. 후드를 벗자 외눈 안경을 쓰고 웨이브진 단발머리와 잘생긴 얼굴이 나왔다. 데네브가 맨 얼굴로 자애롭게 웃자 엘프들의 적개심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걱정 마세요, 아가씨들. 인간이 지은 과오를 인간이 청산한 것뿐이니까요. 이제 풀어 드릴께요.”
데네브는 지팡이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족쇄들을 잘라 내고 재갈을 풀어 주었다.
“에휴, 온통 검은색이어서 데스 나이트인 줄 알았다니까.”
“바보, 어둠의 자식이 신의 피조물을 도와주냐?”
“아…….”
재갈과 족쇄가 풀리자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는 엘프 아가씨들.
‘와아, 옥 구슬이 은 쟁반을 타고 굴러 가는 듯한 목소리. 목소리가 정말 곱다. 역시 엘프는 소문만큼 아름답네.’
그녀들의 목소리에 감탄하는 데네브였다.
“그럼 전 가 볼게요.”
“예…… 옛?!”
간다는 데네브의 말에 ‘어째서?’라는 듯이 몹시 놀라는 엘프 아가씨들이었다.
“왜 그러시죠? 엘프도 구경하고 구해 드리기도 했으니 이제 저는 갈 길을 가야죠.”
“저기…… 인간.”
“데네브라고 부르시길.”
“네, 데네브 님. 저희를 구해 주신 건 고마운데, 마을까지 데려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왜요?”
“저희는 숲에서 과실을 채집하다가 잡힌 엘프들입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이대로 마을까지 가기에는 무리예요. 또 그 납치범들이 저희를 추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 마을까지 무사히 돌아가게 도와주세요.”
[퀘스트 ‘엘프의 부탁’이 발동되었습니다.
내용:엘프들을 무사히 인도하여 마을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제한 날짜:X, 보상:?????, 난이도:D (예/아니오)]
“또 물음표가 나왔네. 좋은 거겠지? 그런데 난이도 D짜리라니.”
“네? 뭐라고요?”
“아…… 아뇨. 아가씨들의 부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퀘스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데네브가 퀘스트를 받자, 엘프 아가씨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데 마을은 여기서 어느 정도 거리에 있습니까?”
“여기서 이틀 정도 가면 돼요.”
“좋습니다. 그럼 가죠. 이참에 그냥 엘프들의 마을도 구경해야지! 자아, 갑시다!”
후드를 다시 쓰며 데네브가 앞장섰다.
“아, 그런데…….”
“예?”
데네브가 대표로 말했던 엘프에게 물었다.
“마을은 어느 쪽이죠?”

“뭐어?! 엘프 사냥을 갔던 애들이 다 당했다고?”
“아뇨, 저 혼자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엘프 전사들에게 당한 거야?”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의 길드장 드래곤의 방은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시끄러워졌다.
“아뇨, 지나가던 유저에게 모조리 당했습니다.”
“얌마, 그들 중에 몇 명은 내 친구들이야. 레벨이 60에서 70대라고. 랭킹에서 상위권에 있는 애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당했다고? 그게 말이 되냐? 어떻게 생긴 놈이야? 감히 우리 드래곤 슬레이어 길드를 건드리다니.”
“그게 그냥 흔한 검은색 로브에 검은색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마법사였습니다. 게다가 이상한 마법을 쓰는데요. 실드를 공격하면 오히려 튕겨 나가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면 동료들이 으스러져서 덩어리가 되어 로그아웃당했습니다.”
‘아, 설마…… 그 사신?’
“으윽! 사신이었군.”
“길드장님…….”
“왜?”
“엘프들 도로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으음. 우리의 정예를 그렇게 간단히 쓰러트린 것도 그렇고……. 그 사신을 어떻게 이겨? 엘프들을 어떻게 되찾지? 이번 엘프들 안 들어오면, 다음 달 길드 유지비가 없는데…… 건물 임대료에 드래곤을 찾기 위한 정보 길드의 이번 달 의뢰비. 조금이지만 길드에서 일하는 부하들의 봉급도 줘야 하는데. 게다가 이번에 노조 파업 때문에 봉급을 10% 인상하기로 했는데……. 막막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서 죽을 수도 없고. 으으윽! 그냥 이참에 장사나 해 볼까?”
“노예 장사요?”
“멍청아! 난 솔직히 그런 일 하고 싶지 않아. 아름다운 엘프나 수인족이 구슬프게 울면서 우리에게 잡혀 오는 걸 보면 가슴이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이번 기회에 우리도 당당하게 장사해 보자. 며칠 전에 드워프 마을 하나 발견했지?”
“예, 남쪽의 산맥에서 하나 발견했는데요?”
“그들이 거절했지만, 다시 접촉해 봐야겠다. 우리 길드의 수뇌부들 다 모이라고 해.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야.”
다행히 이번 기회에 갱생하는 드래곤이었다.

“아, 역시 숲의 공기는 좋군요. 맑고 상쾌한데다가 코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운 풀 냄새까지. 엘프들은 좋겠어요. 맨날 이런 데서 사니까요.”
“저기, 거기서 그런 말이 나와요?”
데네브가 앉아서 숲에 대한 찬가를 하는 곳은 바로 오크 무리의 시체 위였다. 실제로는 오크의 피로 인해 아주 역한 냄새가 났다. 방금 전에 습격한 오크 무리를 척살한 것이다.
“그런가요? 그럼 이제 다시 가죠.”
“피 냄새가 싱그럽대…….”
“어머나. 저 엘프, 아니 인간, 미친X 아냐?”
수군수군.
‘윽! 괜히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