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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열다.
“야, 난 그만 갈게. 오늘은 너무 늦었다.”
“늦긴. 고작 11시 반밖에 안 됐어. 그리고 너 해외지사 나간 동안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르지? 너 없으니까 아주 심심해서 죽겠더라.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끌어안고 자자. 응?”
“미친놈. 내가 왜 널 껴안고 자냐?”
“왜? 우리 종종 끌어안고 잤다. 잊었냐?”
“그때는 어릴 때니까 그랬지.”
“뭐야, 너 설마 나한테 뭐 느끼는 것 있어? 외국에 오래 나가 있으면 그 뭐냐…… 취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윽!”
“미친놈! 넌 어째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냐.”
“하하하. 그래서 너 지금 나한테 또 반했잖아. 아냐?”
“옜다. 반했다. 됐냐?”
“그래. 됐다. 그러니까 어서 가자. 우리 소율이한테 김치전 지져 달라고 해서 소주 한잔 먹자.”
“소율이?”
“설마, 너 소율이 기억 안 나? 우리 꼬맹이 있잖아. 이제 24살에다 국어 선생이다. 몇 달 전부터 학교 나가.”
“!”
끌려가다시피 하던 그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걸음도 멈춰졌다. 떠들어 대며 걷던 선우가 놀라 돌아볼 때까지 그대로.
“우리 꼬맹이가 24살씩이나 먹었다는 말에 놀란 거야? 아니면 국어 선생이라니까 놀란 거야?”
“……둘 다.”
“야, 강이안! 살짝 기분 안 좋다. 이 자식. 우리 소율이가 한동안 너 때문에 얼만 속앓이를 했는데 그딴 일로 놀래?”
“?”
“아, 아니. 꼴에 소율이가 어릴 때 널 유난히 따랐잖아. 나보다 널 더 좋아했을 정도였고. 날더러 오빠가 왜 내 오빠냐고 따지기까지 했다니까. 아무튼, 녀석이 널 보면 너보다 더 놀라서 기절할 거다. 빨리 와!”
선우가 다시 팔을 잡아끌어 걷고는 있었지만, 소율이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자신도 놀라워했다. 너무 방탕한 생활을 한 탓인지 아니면 생각하는 것조차 미안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까맣게 소율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소율. 선우의 하나뿐인 6살 어린 꼬마 동생이었다. 처음 소율이를 보았을 때 10살이었는데 그에게 첫눈에 반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심하게 들이대며 ‘오빠’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물론 밉지는 않았다. 예쁜 얼굴에 애교까지 장전하고 있어 평소 살갑거나 다정한 콘셉트와는 거리가 먼 선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예뻐라 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날로부터 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쇼킹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 아직은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예전처럼 귀여운 동생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소율이 이름을 무한 반복하면서 손목을 잡고 늘어지는 선우 녀석이 참 야속했다. 여동생이 절친인 자신을 덮치려고 했던 것을 알면 그때도 희희낙락거릴 수 있을지.
“야, 진짜 나 오늘은 가기 싫다. 오랜 비행에 꼴도 엉망이고. 또 아버지가 귀국 첫날부터 외박이라고 야단치실 건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소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의 오랜 짝사랑 대상이었던 남자로서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멋진 남자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자만심이라고 해야 할까? 구겨지고 지친 모습으로 소율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 핑계를 대고 있었다. 물론 핑계만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야! 강산 건설 강산 대표님이 얼마나 쿨한 분인데 야단은…….”
“네가 아는 우리 아버지가 전부는 아냐.”
“뭐, 그렇게 겁나면 내가 아버님께 전화 드리마. 어울리지 않는 버터 향을 없애려면 된장 냄새가 최고라고. 우리 어머니 손맛 가득한 한국 음식 먹여서 아버님 아들이자 내 절친인 강이안으로 바꿔서 곱게 옮겨 놓겠다고.”
“!”
아버지라면 선우의 말에 유난히 약하니 아무래도 서운해하지 않게 잘 말씀드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데다 5년 만의 해후라 약간은 불편할 수도 있었기에.
“너 5년 만이지?”
“응.”
“아이고, 잘하는 짓이다. 아들이란 놈이 5년 동안이나 아버지께 안부 인사도 드리지 않고 살다니. 쯧쯧. 나 같으면 바로 호적에서 드러내 버릴 텐데.”
“…….”
변먕할 거리가 없었다. 사실이었기에. 어머니가 그렇게 가시고 난 후 얼굴을 보긴 처음이라 걱정했던 그로서는 또 선우의 신세를 져 보기로 했다. 미룰 수만 있다면 미루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더구나 선우가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세 한번 질까 했다.
“줘 봐!”
선우는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기를 빼앗더니 냉큼 ‘아버지’라고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바로…….
한동안 그 대단한 변호사의 말솜씨로 부연설명을 한 후 정중한 인사까지 하고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녀석! 넌 형님 없는 시카고에서 어떻게 살았냐?”
“……그러게.”
그때처럼 잔뜩 거들먹대는 선우를 보며 오랜만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지난 5년 동안 그는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선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자식.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징그럽게…….”
와락 안는 선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선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는 적당히 타락하고 적당히 때가 탔는데 변호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선우가 더 순수한 것인지. 처음으로 부러웠다. 아버지가 없어도 선우와 소율 남매는 여전히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방탕한 생활을 보낸 자신과는 같이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순순한 선우가 부러웠다.
“오빠 너! 엄마한테 이른다. 술 마시지 않기로 해놓고 또 술이야? 언제 철들래, 응? 위궤양 환자가 술은 무슨 술이니! 어라? 거기! 오빠 친구? 아니면 사무실 직원? 어쨌든 술 마시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죠? 그건 직무유기예요,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이안 오빠?”
한참 떠들어 대면서 훈계 아닌 훈계를 해대더니 선우 곁에 팔을 붙잡힌 채 선 그를 본 순간 소율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안을 본 것이었다. 반가움과 원망, 그리고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그는 붙잡혀 있던 손을 빼내 소율의 앞으로 내밀었다. 정말 쿨내 진동하는 오빠처럼, 오랜만에 절친의 여동생을 본 오빠 친구처럼.
“오랜만이다, 현소율.”
“그러네. 오랜만이네. 5년 만인가? 아니, 7년 만이구나.”
어쩌면 정중하게 존칭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7년 전처럼 반말투여서 반가웠다. 소율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7년 전이었기에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선우의 집으로는 발걸음을 끊었기에. 덕분에 7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 동생 소율은…….
많이 변해 있었다. 약간 귀여울 정도로 통통하던 몸은 오히려 조금 야위어 보일 정도였고 그때는 적지 않았던 키였는데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키가 또 큰 것인지 187cm인 그의 어깨를 넘어설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그 목소리. 지나치게 섹시하게 변해 있었다. 남자의 말초신경을 건드는 뭔가가 진동하는. 겨우 마른 입술로 대답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 많이 예뻐졌다?”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아니지? 그때도 나 인기 많은 여고생이었어. 오빠 눈에만 안 예뻐 보였을 뿐.”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여전하지? 저 녀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촌철살인의 혀를 가졌다니까. 쟤 반 아이들이 불쌍할 뿐이야. 담탱이가 저렇게 사나워서 어디…… 야, 뭐? 오빠가 없는 말 했냐?”
그녀가 휙 째려보자 선우가 너스레를 떨어댔다.
“그러니 여자가 안 붙지.”
“안 붙는 게 아니라 안 붙이는 거지. 말은 바로 해라.”
“흥, 퍽도! 이안 오빠는 완전 귀국?”
“응? 응.”
두 남매의 시끌벅적한 말싸움에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넋을 놓고 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그녀 때문에 당황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난 또 영원히 안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들어왔네. 오랜만에 보니…… 좋네. 자주 봐. 앞으로는.”
“응? 응.”
“자자, 얼른 들어가자. 오빠. 엄마 주무실 때. 오빠도 들어올 거면 들어와.”
소율이 오빠인 선우의 팔을 잡아 부축하며 그를 향해 말을 던졌다. 기꺼이 허락한다는 듯, 약간의 불편함이 깔려 있는 목소리로.
“아, 아냐. 난 가야지. 그러잖아도 가려고 했어. 네 오빠가 멋대로 끌고 온 거야. 녀석 알잖아. 술 취하면 제멋대로인 것. 그래서…… 그럼…….”
열다.
“야, 난 그만 갈게. 오늘은 너무 늦었다.”
“늦긴. 고작 11시 반밖에 안 됐어. 그리고 너 해외지사 나간 동안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르지? 너 없으니까 아주 심심해서 죽겠더라. 그러니까 오늘은 나랑 끌어안고 자자. 응?”
“미친놈. 내가 왜 널 껴안고 자냐?”
“왜? 우리 종종 끌어안고 잤다. 잊었냐?”
“그때는 어릴 때니까 그랬지.”
“뭐야, 너 설마 나한테 뭐 느끼는 것 있어? 외국에 오래 나가 있으면 그 뭐냐…… 취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윽!”
“미친놈! 넌 어째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냐.”
“하하하. 그래서 너 지금 나한테 또 반했잖아. 아냐?”
“옜다. 반했다. 됐냐?”
“그래. 됐다. 그러니까 어서 가자. 우리 소율이한테 김치전 지져 달라고 해서 소주 한잔 먹자.”
“소율이?”
“설마, 너 소율이 기억 안 나? 우리 꼬맹이 있잖아. 이제 24살에다 국어 선생이다. 몇 달 전부터 학교 나가.”
“!”
끌려가다시피 하던 그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걸음도 멈춰졌다. 떠들어 대며 걷던 선우가 놀라 돌아볼 때까지 그대로.
“우리 꼬맹이가 24살씩이나 먹었다는 말에 놀란 거야? 아니면 국어 선생이라니까 놀란 거야?”
“……둘 다.”
“야, 강이안! 살짝 기분 안 좋다. 이 자식. 우리 소율이가 한동안 너 때문에 얼만 속앓이를 했는데 그딴 일로 놀래?”
“?”
“아, 아니. 꼴에 소율이가 어릴 때 널 유난히 따랐잖아. 나보다 널 더 좋아했을 정도였고. 날더러 오빠가 왜 내 오빠냐고 따지기까지 했다니까. 아무튼, 녀석이 널 보면 너보다 더 놀라서 기절할 거다. 빨리 와!”
선우가 다시 팔을 잡아끌어 걷고는 있었지만, 소율이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자신도 놀라워했다. 너무 방탕한 생활을 한 탓인지 아니면 생각하는 것조차 미안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까맣게 소율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소율. 선우의 하나뿐인 6살 어린 꼬마 동생이었다. 처음 소율이를 보았을 때 10살이었는데 그에게 첫눈에 반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심하게 들이대며 ‘오빠’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물론 밉지는 않았다. 예쁜 얼굴에 애교까지 장전하고 있어 평소 살갑거나 다정한 콘셉트와는 거리가 먼 선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예뻐라 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날로부터 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쇼킹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 아직은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예전처럼 귀여운 동생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소율이 이름을 무한 반복하면서 손목을 잡고 늘어지는 선우 녀석이 참 야속했다. 여동생이 절친인 자신을 덮치려고 했던 것을 알면 그때도 희희낙락거릴 수 있을지.
“야, 진짜 나 오늘은 가기 싫다. 오랜 비행에 꼴도 엉망이고. 또 아버지가 귀국 첫날부터 외박이라고 야단치실 건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소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의 오랜 짝사랑 대상이었던 남자로서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멋진 남자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자만심이라고 해야 할까? 구겨지고 지친 모습으로 소율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 핑계를 대고 있었다. 물론 핑계만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야! 강산 건설 강산 대표님이 얼마나 쿨한 분인데 야단은…….”
“네가 아는 우리 아버지가 전부는 아냐.”
“뭐, 그렇게 겁나면 내가 아버님께 전화 드리마. 어울리지 않는 버터 향을 없애려면 된장 냄새가 최고라고. 우리 어머니 손맛 가득한 한국 음식 먹여서 아버님 아들이자 내 절친인 강이안으로 바꿔서 곱게 옮겨 놓겠다고.”
“!”
아버지라면 선우의 말에 유난히 약하니 아무래도 서운해하지 않게 잘 말씀드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데다 5년 만의 해후라 약간은 불편할 수도 있었기에.
“너 5년 만이지?”
“응.”
“아이고, 잘하는 짓이다. 아들이란 놈이 5년 동안이나 아버지께 안부 인사도 드리지 않고 살다니. 쯧쯧. 나 같으면 바로 호적에서 드러내 버릴 텐데.”
“…….”
변먕할 거리가 없었다. 사실이었기에. 어머니가 그렇게 가시고 난 후 얼굴을 보긴 처음이라 걱정했던 그로서는 또 선우의 신세를 져 보기로 했다. 미룰 수만 있다면 미루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더구나 선우가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세 한번 질까 했다.
“줘 봐!”
선우는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기를 빼앗더니 냉큼 ‘아버지’라고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바로…….
한동안 그 대단한 변호사의 말솜씨로 부연설명을 한 후 정중한 인사까지 하고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녀석! 넌 형님 없는 시카고에서 어떻게 살았냐?”
“……그러게.”
그때처럼 잔뜩 거들먹대는 선우를 보며 오랜만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지난 5년 동안 그는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선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자식.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징그럽게…….”
와락 안는 선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선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는 적당히 타락하고 적당히 때가 탔는데 변호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선우가 더 순수한 것인지. 처음으로 부러웠다. 아버지가 없어도 선우와 소율 남매는 여전히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같고 그래서 더 방탕한 생활을 보낸 자신과는 같이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순순한 선우가 부러웠다.
“오빠 너! 엄마한테 이른다. 술 마시지 않기로 해놓고 또 술이야? 언제 철들래, 응? 위궤양 환자가 술은 무슨 술이니! 어라? 거기! 오빠 친구? 아니면 사무실 직원? 어쨌든 술 마시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죠? 그건 직무유기예요,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이안 오빠?”
한참 떠들어 대면서 훈계 아닌 훈계를 해대더니 선우 곁에 팔을 붙잡힌 채 선 그를 본 순간 소율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안을 본 것이었다. 반가움과 원망, 그리고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그는 붙잡혀 있던 손을 빼내 소율의 앞으로 내밀었다. 정말 쿨내 진동하는 오빠처럼, 오랜만에 절친의 여동생을 본 오빠 친구처럼.
“오랜만이다, 현소율.”
“그러네. 오랜만이네. 5년 만인가? 아니, 7년 만이구나.”
어쩌면 정중하게 존칭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7년 전처럼 반말투여서 반가웠다. 소율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7년 전이었기에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선우의 집으로는 발걸음을 끊었기에. 덕분에 7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 동생 소율은…….
많이 변해 있었다. 약간 귀여울 정도로 통통하던 몸은 오히려 조금 야위어 보일 정도였고 그때는 적지 않았던 키였는데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키가 또 큰 것인지 187cm인 그의 어깨를 넘어설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그 목소리. 지나치게 섹시하게 변해 있었다. 남자의 말초신경을 건드는 뭔가가 진동하는. 겨우 마른 입술로 대답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 많이 예뻐졌다?”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아니지? 그때도 나 인기 많은 여고생이었어. 오빠 눈에만 안 예뻐 보였을 뿐.”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여전하지? 저 녀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촌철살인의 혀를 가졌다니까. 쟤 반 아이들이 불쌍할 뿐이야. 담탱이가 저렇게 사나워서 어디…… 야, 뭐? 오빠가 없는 말 했냐?”
그녀가 휙 째려보자 선우가 너스레를 떨어댔다.
“그러니 여자가 안 붙지.”
“안 붙는 게 아니라 안 붙이는 거지. 말은 바로 해라.”
“흥, 퍽도! 이안 오빠는 완전 귀국?”
“응? 응.”
두 남매의 시끌벅적한 말싸움에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넋을 놓고 있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그녀 때문에 당황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난 또 영원히 안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들어왔네. 오랜만에 보니…… 좋네. 자주 봐. 앞으로는.”
“응? 응.”
“자자, 얼른 들어가자. 오빠. 엄마 주무실 때. 오빠도 들어올 거면 들어와.”
소율이 오빠인 선우의 팔을 잡아 부축하며 그를 향해 말을 던졌다. 기꺼이 허락한다는 듯, 약간의 불편함이 깔려 있는 목소리로.
“아, 아냐. 난 가야지. 그러잖아도 가려고 했어. 네 오빠가 멋대로 끌고 온 거야. 녀석 알잖아. 술 취하면 제멋대로인 것. 그래서……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