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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5화 시박마차(嘶搏馬車)(2)
덜컹, 덜컹.
포장마차 바퀴가 스프링필드 거리를 요란하게 굴러갔다.
점심때가 가까워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포장마차로 집중됐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짜기라도 한 듯 공포로 바뀌었다.
“이얏! 내 공이야!”
어린아이들이 공을 차며 정신없이 포장마차 앞으로 달려왔다.
끼이익.
발등에서 엇나간 공이 포장마차의 바퀴를 멈췄다.
공을 찬 남자아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
“헤헤, 누나 죄송합…… 으아앙!”
남자아이가 공을 가져갈 생각도 않은 채 울며 도망쳤다.
시박은 말없이 포장마차를 끌었다. 뒤에 있던 아이들도 놀라 도망쳤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이들 울음소리로 번져 갔다.
“끄응. 시박이 오빠, 무슨 일이야?”
뒤에서 포장마차를 끌던 아미가 궁금한 듯 물었다.
“역시 난 애들이 싫어…….”
시박이 혼자 중얼거렸다.
시박은 피곤할 때면 유독 눈 밑이 검어졌다.
지금은 괜히 여자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 차사 특유의 갓까지 쓴 상태다. 장사를 하겠다는 독한 마음까지 먹었느니 풍기는 분위기가 가히 현역 때의 저승차사로 돌아간 듯했다.
어린아이들이 울며 도망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오빠,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저 꼬맹이도 날 무서워했으면 좋겠는데.”
시박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며 포장마차를 오른쪽 방향으로 꺾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점상들이 모여 있는 시장통이 보였다.
“저기가 좋겠군.”
시박이 가장 목이 좋아 보이는 곳에 포장마차를 세웠다.
노점상 주인들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앞서 장사를 시작하겠단 양해도 없이 다짜고짜 포장마차를 가져오다니. 명백히 거리의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더불어 자리 잡은 곳도 노점상들이 가장 탐내는 자리다. 건달들에게 내는 자릿세만 해도 두 배인 곳이라 그저 침만 꼴딱꼴딱 삼키던 명당이었다.
“한마디 해야겠…… 으힉?”
꼬치집 주인 맥스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지레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시박이의 구겨진 얼굴을 본 것이 문제였다.
시박이 장사 준비를 하다 맥스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저승 가고 싶어?”
“죄, 죄송합니다!”
맥스와 친하게 지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시박이었다. 시박이네 포장마차는 역시나 이곳에서도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에는 난생처음 보는 정령들 때문이었다.
시박이의 손에 잡히고 나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게 된 노움과 운디네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그들이 아미와 장사 준비를 하니 오죽하겠는가.
“이보게, 맥스. 자네가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덩치로 밀어붙여, 이것아. 사람들 관심이 다 저쪽에 쏠렸잖어!”
마른안주와 잔술을 파는 벤과 빵을 파는 헬렌이 맥스를 떠밀었다. 맥스는 다시 한 번 시박의 얼굴을 바라봤다.
“…….”
“우리가 괜히 반장시켜 준 줄 알어? 이런 거 해결하라고 한 거잖아!”
헬렌이 밀가루 묻은 얼굴로 맥스를 닦달했다.
맥스는 다시 한 번 갓을 쓴 시박이를 바라봤다.
‘어디서 한가락 했던 놈이 분명하다.’
함부로 덤볐다가는 무슨 개망신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요새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손이라도 다쳤다간 오늘 장사 다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맛도 없을 텐데 놔둬 봅시다. 헬렌 아주머니.”
“흥, 이러다 발발이 놈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난 모르는 척할 거야.”
발발이란 말에 맥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도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발발이에게 당했던 고초가 생각난 것이다.
‘그냥 내가 먼저 얘기하는 게 나으려나?’
말하기에는 이미 자리까지 잡은 시박 일행이었다.
“시박 오빠, 빨리 요리 만들 준비해야지!”
아미의 부름에 시박이는 구시렁거리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맥스는 못 들을 걸 들었는지 쯧쯧 혀를 찼다.
‘말세군. 어린애가 벌써부터 욕을 하고 말이야.’
시박은 앞서 손질한 멧돼지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갈비 부위에 있던 것들을 뗀 것이라 제법 근육과 지방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호오, 어디서 멧돼지 고기를 구해 왔군.’
맥스가 적색의 고기 빛깔만 보고 용케 멧돼지 고기란 걸 알아봤다.
‘하지만 잡내를 제거하지 못했어.’
탁탁! 탁탁탁!
‘저, 저런!’
시박이 분풀이하듯 고기에 칼질을 가했다.
고루 익으라고 내는 칼집이 아닌 국거리용을 만들 때나 쓰는 솜씨였다. 그러고는 마늘을 빻듯 형체도 못 알아보게 다지기를 했다.
‘에잉,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몰라도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놈이었군. 엄한 재료만 축내고 있어.’
시박은 고기를 곱게 다지기를 끝냈다.
그리고 맥스의 생각과는 달리 항아리에 가져왔던 멧돼지 고기 전부를 앞서처럼 다졌다.
할 일 없이 근처를 알짱거리던 노움도 덩달아 칼을 잡았다.
꾀를 부리려 치면 시박은 망설임 없이 노움에게 칼을 휘둘렀다.
‘가관이야, 가관. 차라리 내게 저 고기를 팔지! 멧돼지 고기를 꼬치로 만들면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텐데.’
시박이 다진 멧돼지 고기를 커다란 대접에 담았다.
노움은 홍차빛이 감도는 양념을 그 위에 부었다. 달달한 냄새가 맥스의 코끝을 자극했다.
시박은 떡 반죽을 주무르듯 고기를 주물렀다.
어느새 점심때가 다다랐다.
‘이크,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저것들 때문에 준비를 하나도 못했어.’
맥스가 시박이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꼬치용 닭고기에 막대기를 꽂아 넣었다.
“흐음.”
시박은 노움의 등짝에 양념 묻은 손을 닦았다.
장사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제는 굽기만 하면 완성되는 요리였다.
“이 정도면 떡갈비 맛이 나겠지.”
“홀홀!”
노움도 기대가 되는지 뜬금없이 단지 하나를 들고 알짱거렸다. 시박이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막대기 준비 다 끝냈어!”
“막대기?!”
맥스의 외침이었다.
워낙 크게 말해 아미와 시박 둘 모두 맥스를 쳐다봤다.
“뭐야.”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진짜 저승 가고 싶어?”
“…….”
맥스는 속으로 시박이에게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다.
저승이란 말이 뭔지 몰랐지만 물어보면 정말 그리로 가게 될 것 같았다.
‘저것들이 설마 꼬치 장사를 하려는 건가? 노점상 협회 반장인 내가 꼬치 장사를 하는데?’
설마가 사람 잡듯 시박이는 양념에 재운 멧돼지 고기를 주먹만 하게 하나하나 뭉쳤다. 아미는 꼬치용 막대기를 그 속에 끼워 넣었다.
“우와, 저것 봐. 물의 정령 운디네 아냐?”
점심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운디네 앞에 모여들었다.
맥스를 비롯해 노점상 주인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으, 으악! 남자가 뱀을, 아니 살라만다를 꺼냈다!”
“위험해! 어제 봤던 것처럼 눈깔이 돌아가 있어!”
시박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람들은 동시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시박은 단지 속에 들어 있던 살라만다를 속이 비치는 화로에 넣었다. 살라만다가 화가 난 듯 몸에서 불길을 뿜어냈다.
화르륵!
“우와!”
시박이 쓰고 있던 갓의 철대가 살라만다의 불길에 쪼그라들었다.
시박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대체 뭐 하려고 하는 거지?”
처음 보는 광경에 노점상 주인들도 음식을 팔다 말고 맥스 곁으로 모였다. 맥스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요리는 서커스가 아니다. 저게 팔리면 내 손에 장을 지지렷다!’
“홀홀!”
노움이 맥스의 속마음을 비웃듯이 웃음을 흘렸다.
지게 작대기를 들고 온 시박은 살라만다를 향해 사정없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앙?”
살라만다가 복날 개새끼마냥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박이는 아미가 석쇠를 가져올 동안 불쏘시개 뒤집듯 살라만다를 한참 괴롭혔다.
“오빠, 시범 보여 줘!”
“들었지? 뱀, 불 뿜어봐라.”
살라만다가 기에 질린 듯 성냥개비만 한 불을 보였다.
성질 안 좋기로 소문난 불의 정령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그건 약으로 설정한다. 뭔 말인지 알겠지?”
“사악, 삭!”
살라만다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항변했다.
딴에는 그냥 한 말이었지만 정령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미가 옆에 있었다.
“우웅. 오빠, 얘가 차라리 날 죽여라 하는데?”
그 말을 끝으로 살라만다는 약, 중간, 그리고 강이란 말을 배우며 불 조절을 하게 되었다.
시박은 떡갈비 하나를 중간 불에 구웠다.
떡갈비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시켰다.
“킁킁.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그러게. 만드는 과정은 괴상한데 냄새는 사람 미치게 하는데?”
겉이 노릇하게 익자 시박은 석쇠에서 떡갈비를 꺼냈다.
당당하게 막대기까지 꽂혀 있는 떡갈비 꼬치가 완성된 것이다.
“제대로 익었군.”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떡갈비 꼬치로 집중됐다.
노움이 접시와 가위를 들고 떡갈비를 여덟 조각으로 잘랐다.
“흐음.”
시박의 시선이 사람들에게 향했다.
모두의 눈이 자신이 만든 떡갈비에 가 있는 게 제법 마음에 드는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잇몸까지 보이며 웃었다.
‘일단 맛이나 보여 주자. 그래야 입소문이 퍼지겠지.’
시박이 접시를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떡갈비가 포장마차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침 넘어가는 소리를 만들었다.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기회.”
시박이 자신감 있게 말하니 저승차사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한층 강해졌다. 사람들이 기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영문을 모르는 시박은 접시를 내민 손이 부끄러워졌다.
‘이것들이 제법 비싸게 구는데?’
길거리 음식이라 무시한다 생각한 시박은 괜스레 오기가 났다.
억지로라도 먹이려 한 발짝 다가섰다. 사람들이 당황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한번 해 보자 이거군.’
시박과 사람들 사이에 전쟁터에서 적군을 만난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청년 하나가 시박에게 조심스레 접근했다. 시박은 떡갈비 하나를 집어 청년에게 내밀었다.
떡갈비가 사슬낫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시박은 슬며시 짜증이 났다.
손수 먹여 주겠다는데 왜 다리는 떨고 있는 것인가.
“잘, 잘못했어요.”
청년은 곧 호흡이 끊길 것처럼 입을 뻥끗거렸다.
순간 시박의 머릿속에 익숙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혼백을 잡으러 갈 때 자신을 본 대다수의 반응들이었다.
청년이 보여 주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하긴 갓까지 썼으니 무서울 법하지.’
상황을 알아차린 시박은 얼굴에 인상을 풀었다.
피곤하거나 짜증이 나면 자신의 눈 밑이 더욱 검어지는 걸 알고 있었다.
시박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부르르 떨리는 미소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시박이 떡갈비를 내미니 청년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으아악!”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불난리라도 난 것처럼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맥스는 닭꼬치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입을 벌렸다.
‘재, 재앙 덩어리다. 저놈은 필시 노점상을 망하게 하려고 온 것이 분명해.’
맥스는 다시 한 번 텅 비어 버린 시장통을 봤다.
정말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점상 장사인데, 점심이란 대목을 망쳐 버린 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발발이를 부르자고, 맥스!”
헬렌의 말에 맥스가 고민에 빠졌다.
시박이 곁에 아미가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경험상 발발이는 어린애도 봐주지 않았다.
“조금만 더 나둬 봅시다. 어차피 발발이 패거리가 순찰 돌 때도 됐으니까.”
5화 시박마차(嘶搏馬車)(2)
덜컹, 덜컹.
포장마차 바퀴가 스프링필드 거리를 요란하게 굴러갔다.
점심때가 가까워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포장마차로 집중됐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짜기라도 한 듯 공포로 바뀌었다.
“이얏! 내 공이야!”
어린아이들이 공을 차며 정신없이 포장마차 앞으로 달려왔다.
끼이익.
발등에서 엇나간 공이 포장마차의 바퀴를 멈췄다.
공을 찬 남자아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
“헤헤, 누나 죄송합…… 으아앙!”
남자아이가 공을 가져갈 생각도 않은 채 울며 도망쳤다.
시박은 말없이 포장마차를 끌었다. 뒤에 있던 아이들도 놀라 도망쳤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이들 울음소리로 번져 갔다.
“끄응. 시박이 오빠, 무슨 일이야?”
뒤에서 포장마차를 끌던 아미가 궁금한 듯 물었다.
“역시 난 애들이 싫어…….”
시박이 혼자 중얼거렸다.
시박은 피곤할 때면 유독 눈 밑이 검어졌다.
지금은 괜히 여자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 차사 특유의 갓까지 쓴 상태다. 장사를 하겠다는 독한 마음까지 먹었느니 풍기는 분위기가 가히 현역 때의 저승차사로 돌아간 듯했다.
어린아이들이 울며 도망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오빠,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저 꼬맹이도 날 무서워했으면 좋겠는데.”
시박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며 포장마차를 오른쪽 방향으로 꺾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점상들이 모여 있는 시장통이 보였다.
“저기가 좋겠군.”
시박이 가장 목이 좋아 보이는 곳에 포장마차를 세웠다.
노점상 주인들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앞서 장사를 시작하겠단 양해도 없이 다짜고짜 포장마차를 가져오다니. 명백히 거리의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더불어 자리 잡은 곳도 노점상들이 가장 탐내는 자리다. 건달들에게 내는 자릿세만 해도 두 배인 곳이라 그저 침만 꼴딱꼴딱 삼키던 명당이었다.
“한마디 해야겠…… 으힉?”
꼬치집 주인 맥스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지레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시박이의 구겨진 얼굴을 본 것이 문제였다.
시박이 장사 준비를 하다 맥스와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저승 가고 싶어?”
“죄, 죄송합니다!”
맥스와 친하게 지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시박이었다. 시박이네 포장마차는 역시나 이곳에서도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이번에는 난생처음 보는 정령들 때문이었다.
시박이의 손에 잡히고 나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게 된 노움과 운디네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그들이 아미와 장사 준비를 하니 오죽하겠는가.
“이보게, 맥스. 자네가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덩치로 밀어붙여, 이것아. 사람들 관심이 다 저쪽에 쏠렸잖어!”
마른안주와 잔술을 파는 벤과 빵을 파는 헬렌이 맥스를 떠밀었다. 맥스는 다시 한 번 시박의 얼굴을 바라봤다.
“…….”
“우리가 괜히 반장시켜 준 줄 알어? 이런 거 해결하라고 한 거잖아!”
헬렌이 밀가루 묻은 얼굴로 맥스를 닦달했다.
맥스는 다시 한 번 갓을 쓴 시박이를 바라봤다.
‘어디서 한가락 했던 놈이 분명하다.’
함부로 덤볐다가는 무슨 개망신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요새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손이라도 다쳤다간 오늘 장사 다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맛도 없을 텐데 놔둬 봅시다. 헬렌 아주머니.”
“흥, 이러다 발발이 놈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난 모르는 척할 거야.”
발발이란 말에 맥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도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발발이에게 당했던 고초가 생각난 것이다.
‘그냥 내가 먼저 얘기하는 게 나으려나?’
말하기에는 이미 자리까지 잡은 시박 일행이었다.
“시박 오빠, 빨리 요리 만들 준비해야지!”
아미의 부름에 시박이는 구시렁거리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맥스는 못 들을 걸 들었는지 쯧쯧 혀를 찼다.
‘말세군. 어린애가 벌써부터 욕을 하고 말이야.’
시박은 앞서 손질한 멧돼지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갈비 부위에 있던 것들을 뗀 것이라 제법 근육과 지방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호오, 어디서 멧돼지 고기를 구해 왔군.’
맥스가 적색의 고기 빛깔만 보고 용케 멧돼지 고기란 걸 알아봤다.
‘하지만 잡내를 제거하지 못했어.’
탁탁! 탁탁탁!
‘저, 저런!’
시박이 분풀이하듯 고기에 칼질을 가했다.
고루 익으라고 내는 칼집이 아닌 국거리용을 만들 때나 쓰는 솜씨였다. 그러고는 마늘을 빻듯 형체도 못 알아보게 다지기를 했다.
‘에잉,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몰라도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놈이었군. 엄한 재료만 축내고 있어.’
시박은 고기를 곱게 다지기를 끝냈다.
그리고 맥스의 생각과는 달리 항아리에 가져왔던 멧돼지 고기 전부를 앞서처럼 다졌다.
할 일 없이 근처를 알짱거리던 노움도 덩달아 칼을 잡았다.
꾀를 부리려 치면 시박은 망설임 없이 노움에게 칼을 휘둘렀다.
‘가관이야, 가관. 차라리 내게 저 고기를 팔지! 멧돼지 고기를 꼬치로 만들면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텐데.’
시박이 다진 멧돼지 고기를 커다란 대접에 담았다.
노움은 홍차빛이 감도는 양념을 그 위에 부었다. 달달한 냄새가 맥스의 코끝을 자극했다.
시박은 떡 반죽을 주무르듯 고기를 주물렀다.
어느새 점심때가 다다랐다.
‘이크,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저것들 때문에 준비를 하나도 못했어.’
맥스가 시박이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꼬치용 닭고기에 막대기를 꽂아 넣었다.
“흐음.”
시박은 노움의 등짝에 양념 묻은 손을 닦았다.
장사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제는 굽기만 하면 완성되는 요리였다.
“이 정도면 떡갈비 맛이 나겠지.”
“홀홀!”
노움도 기대가 되는지 뜬금없이 단지 하나를 들고 알짱거렸다. 시박이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막대기 준비 다 끝냈어!”
“막대기?!”
맥스의 외침이었다.
워낙 크게 말해 아미와 시박 둘 모두 맥스를 쳐다봤다.
“뭐야.”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진짜 저승 가고 싶어?”
“…….”
맥스는 속으로 시박이에게 고래고래 욕을 퍼부었다.
저승이란 말이 뭔지 몰랐지만 물어보면 정말 그리로 가게 될 것 같았다.
‘저것들이 설마 꼬치 장사를 하려는 건가? 노점상 협회 반장인 내가 꼬치 장사를 하는데?’
설마가 사람 잡듯 시박이는 양념에 재운 멧돼지 고기를 주먹만 하게 하나하나 뭉쳤다. 아미는 꼬치용 막대기를 그 속에 끼워 넣었다.
“우와, 저것 봐. 물의 정령 운디네 아냐?”
점심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운디네 앞에 모여들었다.
맥스를 비롯해 노점상 주인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으, 으악! 남자가 뱀을, 아니 살라만다를 꺼냈다!”
“위험해! 어제 봤던 것처럼 눈깔이 돌아가 있어!”
시박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람들은 동시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시박은 단지 속에 들어 있던 살라만다를 속이 비치는 화로에 넣었다. 살라만다가 화가 난 듯 몸에서 불길을 뿜어냈다.
화르륵!
“우와!”
시박이 쓰고 있던 갓의 철대가 살라만다의 불길에 쪼그라들었다.
시박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대체 뭐 하려고 하는 거지?”
처음 보는 광경에 노점상 주인들도 음식을 팔다 말고 맥스 곁으로 모였다. 맥스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요리는 서커스가 아니다. 저게 팔리면 내 손에 장을 지지렷다!’
“홀홀!”
노움이 맥스의 속마음을 비웃듯이 웃음을 흘렸다.
지게 작대기를 들고 온 시박은 살라만다를 향해 사정없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앙?”
살라만다가 복날 개새끼마냥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박이는 아미가 석쇠를 가져올 동안 불쏘시개 뒤집듯 살라만다를 한참 괴롭혔다.
“오빠, 시범 보여 줘!”
“들었지? 뱀, 불 뿜어봐라.”
살라만다가 기에 질린 듯 성냥개비만 한 불을 보였다.
성질 안 좋기로 소문난 불의 정령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그건 약으로 설정한다. 뭔 말인지 알겠지?”
“사악, 삭!”
살라만다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항변했다.
딴에는 그냥 한 말이었지만 정령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아미가 옆에 있었다.
“우웅. 오빠, 얘가 차라리 날 죽여라 하는데?”
그 말을 끝으로 살라만다는 약, 중간, 그리고 강이란 말을 배우며 불 조절을 하게 되었다.
시박은 떡갈비 하나를 중간 불에 구웠다.
떡갈비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시켰다.
“킁킁.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그러게. 만드는 과정은 괴상한데 냄새는 사람 미치게 하는데?”
겉이 노릇하게 익자 시박은 석쇠에서 떡갈비를 꺼냈다.
당당하게 막대기까지 꽂혀 있는 떡갈비 꼬치가 완성된 것이다.
“제대로 익었군.”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떡갈비 꼬치로 집중됐다.
노움이 접시와 가위를 들고 떡갈비를 여덟 조각으로 잘랐다.
“흐음.”
시박의 시선이 사람들에게 향했다.
모두의 눈이 자신이 만든 떡갈비에 가 있는 게 제법 마음에 드는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잇몸까지 보이며 웃었다.
‘일단 맛이나 보여 주자. 그래야 입소문이 퍼지겠지.’
시박이 접시를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떡갈비가 포장마차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침 넘어가는 소리를 만들었다.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기회.”
시박이 자신감 있게 말하니 저승차사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한층 강해졌다. 사람들이 기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영문을 모르는 시박은 접시를 내민 손이 부끄러워졌다.
‘이것들이 제법 비싸게 구는데?’
길거리 음식이라 무시한다 생각한 시박은 괜스레 오기가 났다.
억지로라도 먹이려 한 발짝 다가섰다. 사람들이 당황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한번 해 보자 이거군.’
시박과 사람들 사이에 전쟁터에서 적군을 만난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청년 하나가 시박에게 조심스레 접근했다. 시박은 떡갈비 하나를 집어 청년에게 내밀었다.
떡갈비가 사슬낫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시박은 슬며시 짜증이 났다.
손수 먹여 주겠다는데 왜 다리는 떨고 있는 것인가.
“잘, 잘못했어요.”
청년은 곧 호흡이 끊길 것처럼 입을 뻥끗거렸다.
순간 시박의 머릿속에 익숙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혼백을 잡으러 갈 때 자신을 본 대다수의 반응들이었다.
청년이 보여 주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하긴 갓까지 썼으니 무서울 법하지.’
상황을 알아차린 시박은 얼굴에 인상을 풀었다.
피곤하거나 짜증이 나면 자신의 눈 밑이 더욱 검어지는 걸 알고 있었다.
시박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부르르 떨리는 미소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시박이 떡갈비를 내미니 청년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으아악!”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불난리라도 난 것처럼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맥스는 닭꼬치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입을 벌렸다.
‘재, 재앙 덩어리다. 저놈은 필시 노점상을 망하게 하려고 온 것이 분명해.’
맥스는 다시 한 번 텅 비어 버린 시장통을 봤다.
정말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점상 장사인데, 점심이란 대목을 망쳐 버린 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발발이를 부르자고, 맥스!”
헬렌의 말에 맥스가 고민에 빠졌다.
시박이 곁에 아미가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자신의 경험상 발발이는 어린애도 봐주지 않았다.
“조금만 더 나둬 봅시다. 어차피 발발이 패거리가 순찰 돌 때도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