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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7화 적과의 동침(2)
피잉― 피잉―
누가 보면 자객과 대상이 뒤바뀐 것으로 착각할 광경이었다.
계속되는 돌팔매에 짜증이 났는지 자객 쪽에서도 돌멩이가 날아왔다.
피잉― 피잉―
시박이 여유 있게 돌멩이를 피하며 아미가 있는 집 쪽을 신경 썼다. 화롯불을 피워도 쉽게 보이지 않을 거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박은 돌멩이 차기를 그만뒀다.
그에 반응하듯 자객도 더 이상 돌멩이를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위는 매화 향으로 가득했다.
어젯밤 시박이 매화나무로 착각했던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네놈이 김시박이냐?”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음성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부른 것이 대견했다.
“어허. 버르장머리 없는 아해구나. 필시 어르신 대할 때는 모습부터 보여야 하거늘. 싹수가 있는 놈인 듯하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주마.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시박의 하대에 자객은 당황했다.
생긴 것과 달리 무슨 놈의 말투가 저리 노티 난단 말인가.
긴장감 없는 목소리는 산보를 하다 마주친 행인과 말하는 듯했다.
“하하. 그래, 그래. 젊은 게 좋긴 좋은 거야.”
수풀 속에서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발이의 관심을 피해 세간의 소문을 막으려는 빈센트였다.
“근데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아가야?”
빈센트의 나이 올해로 일흔이었다.
상대를 아가라 칭하기 충분한 인생이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시박은 자신을 아가라 부르는 빈센트를 흥미롭게 쳐다봤다.
“재미난 놈이군.”
시박의 눈길이 빈센트의 몸 구석구석에 닿았다.
능력이 변했다 한들 저승차사 특유의 안목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다.
‘반로환동은 아닌 것 같은데…… 육체가 영혼에 비해 너무나 젊다. 꼭 반로환동의 이득만 누리고 있는 형태야.’
빈센트의 육체를 살핀 시박이 가진 생각이었다.
‘흑발에 검은 눈동자라…… 확실히 평범한 놈은 아니다. 정령사라 들었는데 움직임은 어쌔신 이상이고.’
시박의 모습을 살핀 빈센트가 한 생각이었다.
‘그래, 세월이 빗겨 나갔다고 해야 말이 되겠어. 초절정 동안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시간에서 탈출한 도망자라 해야 하나.’
‘검까지 갖고 있는 거 보면 정령사라는 소문은 뜬소문이었어. 어쌔신이라…… 검 생김새도 희한하군. 언뜻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마주 보기를 계속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상대란 이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날 해하려는 연유가 뭐냐?”
시박의 말에 빈센트가 움찔거렸다.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너무 크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돈 몇 푼 쥐어 주며 타이르려 했는데…….’
빈센트가 시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쭈, 한숨?”
“잠깐 진정하고 우선 내 말부터 들어…….”
“아주 그냥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이 김시박을 죽이려고 해?”
“…….”
시박이는 월영검에 손을 가져갔다.
마법검이라 생각한 빈센트가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허 참. 자객이란 놈이 뒷심이 있어야지 이거 원 발기불능 환자도 아니고.”
빈센트의 소심한 모습에 시박이 월영검에서 손을 뗐다.
빈센트가 얼굴이 붉어져 소리쳤다.
“이, 이놈! 누가 발기불능 환자야! 그리고 치사하게 마법검을 들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뒷심, 앞심을 따지고 지랄이야, 지랄이!”
“마법검?”
“어디서 시치미냐! 그리고 뭐 자객? 감히 누가 자객 같은 고귀한 똥통에 처박힐 직업이라는 거냐!”
시박이 다시 월영검에 손을 가져갔다.
빈센트는 정확히 아까보다 세 발짝 더 뒷걸음질 쳤다.
‘저런 배때기 쑤셔 창자로 목 졸라 죽일 놈을 봤나! 에잉, 도대체가 이 시골 촌구석에 아티팩트를 가진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빈센트는 처음 영지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숲 속이었다.
스프링필드를 코앞에 두고 길을 잃은 빈센트는 한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유난히 짙은 파란색 머리칼을 가진 아이였다.
워낙 서럽게 울고 있어 말이라도 걸어 볼 생각으로 다가갔다.
두어 번 머리를 쓰다듬고 따듯한 말 한 마디를 건넸다.
그렇게 아이의 울음이 멈출 때쯤 빈센트는 자신의 옆구리가 허전해지는 걸 느꼈다.
돈주머니가 사라졌다.
빈센트는 패닉에 빠져 버렸고 뒤늦게나마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고전적인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파란 머리 아이는 전력을 다해 줄행랑치고 있었다.
빈센트는 피식 웃으며 뜀박질했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히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돌멩이를 발로 걷어차 맞춰 봤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무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우습게도 파란 머리 아이는 그렇게 종적을 감췄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빈센트였다.
‘분명 무슨 술수를 부린 게 틀림없어. 신발에 걸린 헤이스트 마법도 그렇고. 잠깐, 그리고 보니 이놈들 혹시 같은 패거리 아니야?’
빈센트가 정신을 팔고 있자 시박이는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빈센트의 그림자에서 흙더미가 솟구쳤다.
노움이었다. 노움은 그대로 빈센트의 다리를 붙들며 넘어트렸다.
공청석유를 복용하기 전에는 없던 괴력이었다.
“어이쿠!”
시박이 때를 놓치지 않고 빈센트에게 달려들었다.
빈센트가 당황하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엎어진 상태로 할 수 있는 건 흙더미를 먹는 것뿐이었다.
퍼억.
“으헉!”
허리를 밟힌 빈센트가 단말마의 비명을 냈다.
시박은 만족스런 얼굴로 노움을 쳐다봤다.
가장 말썽이 많은 놈이긴 해도 어찌 된 게 자신과 가장 마음이 잘 맞았다.
“짜식, 방금 건 쓸 만했다.”
“호올!”
시박은 개구리 죽듯 널브러진 빈센트를 바라봤다.
“이제야 대화가 되겠군.”
“이이, 노인 공경에 대한 의식은 털끝만치도 없는 놈!”
빈센트의 발악에 시박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다는 걸 백 번 설명해 줘도 믿어 줄 리 없는 상황이다. 굳이 설명할 생각도 없는 시박이었지만.
“목숨 노리러 온 놈한테 노인 공경하는 정신 나간 놈도 있냐?”
“아, 글쎄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니까!”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하지.”
노움이 시박에게 금동아줄을 받아 빈센트의 몸을 꽁꽁 묶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반항이 있었지만 크게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내 그동안 대륙 곳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토록 재수 옴 붙은 곳은 처음이다. 꼬맹이한테 소매치기를 당해 거지꼴이 되지를 않나 웬 깜장 보자기 같은 자식한테 농락을 당하질 않나!”
시박이 혀끝을 찼다.
“쯧쯧. 명색이 자객이란 놈이 얼라한테 소매치기나 당하고. 말로만 듣던 애송이란 게 바로 네놈이었구나.”
노움이 시박의 장단에 맞춰 빈센트의 뒤통수를 툭툭 건드렸다.
빈센트는 생전 처음 겪는 굴욕에 말을 잃었다.
‘이놈들이 말로 해서는 안 될 놈들이군. 행동으로 보아 세상에 득보다 실이 될 거야.’
빈센트는 은퇴 후 대륙을 여행하며 어중간한 사건, 사고에는 휘말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중에서는 폭언과 오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누가 자신을 제압하고 뒤통수를 건드렸단 말인가.
한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그런다 생각하니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후후.”
“응? 이게 갑자기 미쳤나. 왜 실실 아랫니를 보여?”
시박이는 태연스레 품속에서 떡갈비를 꺼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빈센트의 팔근육이 거짓말처럼 부풀어 올랐다. 금동아줄이 팽팽해지며 기이한 신음성을 냈다.
노움이 당황하며 발이 꼬여 넘어졌다.
“너희들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빈센트가 일어나 양팔을 펼쳤다. 아니, 정확히는 펼치려 했다.
밧줄이 끊어질 줄로만 알았는데 금동아줄은 빈센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멀쩡했다.
“이익! 이게 왜 안 끊어지는 거야!”
“……아주 용을 쓰는구만.”
“뭐, 인마? 너 잠깐만 기다려. 이거 끊어 놓고 아주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테니까! 이익! 이이익!”
빈센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웬만해서는 포기할 법도 한데 분노가 금동아줄로 향했는지 안간힘을 썼다.
“그거 안 끊어진다.”
“익익! 밧줄이 안 끊어진다고?!”
“그래.”
“엘프, 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 하네!”
시박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동아줄을 힘으로 끊으려는 놈은 또 처음 보네.”
빈센트의 낑낑거림은 한동안 숲 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기운이 빠졌는지 빈센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노움이 시박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는지 빈센트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아, 그래! 이번 기회에 궁금증이나 풀어야겠다.”
시박은 나무 막대기를 주워 빈센트의 볼을 쿡쿡 찔렀다.
“내가 사실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됐다. 그래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으니 충실하게 답해 주길 바란다, 꼬마야.”
“…….”
기운이 빠져 꼬마라는 말에 대꾸도 않는 빈센트였다.
“먼저 엘프라는 게 뭐냐?”
“……지금 나 갖고 장난치는 거지?”
“아냐, 아냐.”
“차라리 말똥이 뭔지 물어봐라. 네 발 달린 말이 싸는 똥이 말똥인지 아니면 똥 냄새 풍기는 말을 하는 게 말똥인…….”
빈센트는 칠십 평생 나무 막대기가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몸이 제압당한 상태에서 맞은 것이라 그런지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현재는 이곳 오엔트 제국에서만 볼 수 있으며 수도나 도시 같은 곳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나도 엘프를 본 건 불과 3개월 전 산에서 노숙을 할 때 목욕하는 모습을 본 게 다고. 정령술과 마법에 능통…… 엘프의 외형은 인간과 거의 흡사하며 다른 점이라고 하면 귀가 뾰족하고 난쟁이 없이 모두 꺽다리들뿐이라는 거다.”
시박은 흥미롭게 빈센트의 얘기를 경청했다.
신선 나부랭이들도 딴에는 몰래 육식을 즐기는데 채식만 하는 것도 그렇고 설명만으로는 하는 짓이 선녀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나라에서 보호해 줘야 할 종족이네?”
“아득, 묘하게 엉뚱한데서 네놈이랑 통하는구나!”
시박은 피식 웃었다.
“정령술이란 건 대충 알겠는데 마법이란 건 또 뭐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꼬마야, 그럼 너 같으면 알고 묻겠냐?”
“고약한 놈! 네놈이 갖고 있는 것도 마법검이지 않느냐!”
“월영검이 마법검이라고?”
“딱 봐도 마나가 응집되어 있는 게 나 마법검이요 하고 난리치고 있네! 귀신은 속여도 이 빈센트는 못 속인다!”
“마법이 뭐냐!”
“넌 내가 반드시 이 굴욕…… 마법이란 간단하게 말해 대기에 퍼져 있는 마나를 이용해 다섯 가지 원소. 즉, 불, 바람, 물, 흙, 에테르를 실체화시킨 것을 말한다.”
“여기에도 술법 비슷한 게 존재하는군.”
“…….”
“계속.”
“……마법은 대체로 마법사란 족속들이 사용하는데 그 어원은 드래곤이란 커다란 도마뱀에게서 파생되었다 한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나도 복잡해서 몰라!”
시박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7화 적과의 동침(2)
피잉― 피잉―
누가 보면 자객과 대상이 뒤바뀐 것으로 착각할 광경이었다.
계속되는 돌팔매에 짜증이 났는지 자객 쪽에서도 돌멩이가 날아왔다.
피잉― 피잉―
시박이 여유 있게 돌멩이를 피하며 아미가 있는 집 쪽을 신경 썼다. 화롯불을 피워도 쉽게 보이지 않을 거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박은 돌멩이 차기를 그만뒀다.
그에 반응하듯 자객도 더 이상 돌멩이를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위는 매화 향으로 가득했다.
어젯밤 시박이 매화나무로 착각했던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네놈이 김시박이냐?”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음성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부른 것이 대견했다.
“어허. 버르장머리 없는 아해구나. 필시 어르신 대할 때는 모습부터 보여야 하거늘. 싹수가 있는 놈인 듯하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주마.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시박의 하대에 자객은 당황했다.
생긴 것과 달리 무슨 놈의 말투가 저리 노티 난단 말인가.
긴장감 없는 목소리는 산보를 하다 마주친 행인과 말하는 듯했다.
“하하. 그래, 그래. 젊은 게 좋긴 좋은 거야.”
수풀 속에서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발이의 관심을 피해 세간의 소문을 막으려는 빈센트였다.
“근데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아가야?”
빈센트의 나이 올해로 일흔이었다.
상대를 아가라 칭하기 충분한 인생이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시박은 자신을 아가라 부르는 빈센트를 흥미롭게 쳐다봤다.
“재미난 놈이군.”
시박의 눈길이 빈센트의 몸 구석구석에 닿았다.
능력이 변했다 한들 저승차사 특유의 안목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다.
‘반로환동은 아닌 것 같은데…… 육체가 영혼에 비해 너무나 젊다. 꼭 반로환동의 이득만 누리고 있는 형태야.’
빈센트의 육체를 살핀 시박이 가진 생각이었다.
‘흑발에 검은 눈동자라…… 확실히 평범한 놈은 아니다. 정령사라 들었는데 움직임은 어쌔신 이상이고.’
시박의 모습을 살핀 빈센트가 한 생각이었다.
‘그래, 세월이 빗겨 나갔다고 해야 말이 되겠어. 초절정 동안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시간에서 탈출한 도망자라 해야 하나.’
‘검까지 갖고 있는 거 보면 정령사라는 소문은 뜬소문이었어. 어쌔신이라…… 검 생김새도 희한하군. 언뜻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마주 보기를 계속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상대란 이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날 해하려는 연유가 뭐냐?”
시박의 말에 빈센트가 움찔거렸다.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너무 크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돈 몇 푼 쥐어 주며 타이르려 했는데…….’
빈센트가 시박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쭈, 한숨?”
“잠깐 진정하고 우선 내 말부터 들어…….”
“아주 그냥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이 김시박을 죽이려고 해?”
“…….”
시박이는 월영검에 손을 가져갔다.
마법검이라 생각한 빈센트가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허 참. 자객이란 놈이 뒷심이 있어야지 이거 원 발기불능 환자도 아니고.”
빈센트의 소심한 모습에 시박이 월영검에서 손을 뗐다.
빈센트가 얼굴이 붉어져 소리쳤다.
“이, 이놈! 누가 발기불능 환자야! 그리고 치사하게 마법검을 들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뒷심, 앞심을 따지고 지랄이야, 지랄이!”
“마법검?”
“어디서 시치미냐! 그리고 뭐 자객? 감히 누가 자객 같은 고귀한 똥통에 처박힐 직업이라는 거냐!”
시박이 다시 월영검에 손을 가져갔다.
빈센트는 정확히 아까보다 세 발짝 더 뒷걸음질 쳤다.
‘저런 배때기 쑤셔 창자로 목 졸라 죽일 놈을 봤나! 에잉, 도대체가 이 시골 촌구석에 아티팩트를 가진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빈센트는 처음 영지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숲 속이었다.
스프링필드를 코앞에 두고 길을 잃은 빈센트는 한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유난히 짙은 파란색 머리칼을 가진 아이였다.
워낙 서럽게 울고 있어 말이라도 걸어 볼 생각으로 다가갔다.
두어 번 머리를 쓰다듬고 따듯한 말 한 마디를 건넸다.
그렇게 아이의 울음이 멈출 때쯤 빈센트는 자신의 옆구리가 허전해지는 걸 느꼈다.
돈주머니가 사라졌다.
빈센트는 패닉에 빠져 버렸고 뒤늦게나마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고전적인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파란 머리 아이는 전력을 다해 줄행랑치고 있었다.
빈센트는 피식 웃으며 뜀박질했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히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돌멩이를 발로 걷어차 맞춰 봤지만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무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우습게도 파란 머리 아이는 그렇게 종적을 감췄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빈센트였다.
‘분명 무슨 술수를 부린 게 틀림없어. 신발에 걸린 헤이스트 마법도 그렇고. 잠깐, 그리고 보니 이놈들 혹시 같은 패거리 아니야?’
빈센트가 정신을 팔고 있자 시박이는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빈센트의 그림자에서 흙더미가 솟구쳤다.
노움이었다. 노움은 그대로 빈센트의 다리를 붙들며 넘어트렸다.
공청석유를 복용하기 전에는 없던 괴력이었다.
“어이쿠!”
시박이 때를 놓치지 않고 빈센트에게 달려들었다.
빈센트가 당황하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엎어진 상태로 할 수 있는 건 흙더미를 먹는 것뿐이었다.
퍼억.
“으헉!”
허리를 밟힌 빈센트가 단말마의 비명을 냈다.
시박은 만족스런 얼굴로 노움을 쳐다봤다.
가장 말썽이 많은 놈이긴 해도 어찌 된 게 자신과 가장 마음이 잘 맞았다.
“짜식, 방금 건 쓸 만했다.”
“호올!”
시박은 개구리 죽듯 널브러진 빈센트를 바라봤다.
“이제야 대화가 되겠군.”
“이이, 노인 공경에 대한 의식은 털끝만치도 없는 놈!”
빈센트의 발악에 시박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나이가 더 많다는 걸 백 번 설명해 줘도 믿어 줄 리 없는 상황이다. 굳이 설명할 생각도 없는 시박이었지만.
“목숨 노리러 온 놈한테 노인 공경하는 정신 나간 놈도 있냐?”
“아, 글쎄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니까!”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하지.”
노움이 시박에게 금동아줄을 받아 빈센트의 몸을 꽁꽁 묶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반항이 있었지만 크게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내 그동안 대륙 곳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토록 재수 옴 붙은 곳은 처음이다. 꼬맹이한테 소매치기를 당해 거지꼴이 되지를 않나 웬 깜장 보자기 같은 자식한테 농락을 당하질 않나!”
시박이 혀끝을 찼다.
“쯧쯧. 명색이 자객이란 놈이 얼라한테 소매치기나 당하고. 말로만 듣던 애송이란 게 바로 네놈이었구나.”
노움이 시박의 장단에 맞춰 빈센트의 뒤통수를 툭툭 건드렸다.
빈센트는 생전 처음 겪는 굴욕에 말을 잃었다.
‘이놈들이 말로 해서는 안 될 놈들이군. 행동으로 보아 세상에 득보다 실이 될 거야.’
빈센트는 은퇴 후 대륙을 여행하며 어중간한 사건, 사고에는 휘말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중에서는 폭언과 오해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누가 자신을 제압하고 뒤통수를 건드렸단 말인가.
한참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그런다 생각하니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후후.”
“응? 이게 갑자기 미쳤나. 왜 실실 아랫니를 보여?”
시박이는 태연스레 품속에서 떡갈비를 꺼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빈센트의 팔근육이 거짓말처럼 부풀어 올랐다. 금동아줄이 팽팽해지며 기이한 신음성을 냈다.
노움이 당황하며 발이 꼬여 넘어졌다.
“너희들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빈센트가 일어나 양팔을 펼쳤다. 아니, 정확히는 펼치려 했다.
밧줄이 끊어질 줄로만 알았는데 금동아줄은 빈센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멀쩡했다.
“이익! 이게 왜 안 끊어지는 거야!”
“……아주 용을 쓰는구만.”
“뭐, 인마? 너 잠깐만 기다려. 이거 끊어 놓고 아주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테니까! 이익! 이이익!”
빈센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웬만해서는 포기할 법도 한데 분노가 금동아줄로 향했는지 안간힘을 썼다.
“그거 안 끊어진다.”
“익익! 밧줄이 안 끊어진다고?!”
“그래.”
“엘프, 도끼로 나무 찍는 소리 하네!”
시박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동아줄을 힘으로 끊으려는 놈은 또 처음 보네.”
빈센트의 낑낑거림은 한동안 숲 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지났을까. 기운이 빠졌는지 빈센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노움이 시박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는지 빈센트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아, 그래! 이번 기회에 궁금증이나 풀어야겠다.”
시박은 나무 막대기를 주워 빈센트의 볼을 쿡쿡 찔렀다.
“내가 사실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됐다. 그래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으니 충실하게 답해 주길 바란다, 꼬마야.”
“…….”
기운이 빠져 꼬마라는 말에 대꾸도 않는 빈센트였다.
“먼저 엘프라는 게 뭐냐?”
“……지금 나 갖고 장난치는 거지?”
“아냐, 아냐.”
“차라리 말똥이 뭔지 물어봐라. 네 발 달린 말이 싸는 똥이 말똥인지 아니면 똥 냄새 풍기는 말을 하는 게 말똥인…….”
빈센트는 칠십 평생 나무 막대기가 흉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몸이 제압당한 상태에서 맞은 것이라 그런지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현재는 이곳 오엔트 제국에서만 볼 수 있으며 수도나 도시 같은 곳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나도 엘프를 본 건 불과 3개월 전 산에서 노숙을 할 때 목욕하는 모습을 본 게 다고. 정령술과 마법에 능통…… 엘프의 외형은 인간과 거의 흡사하며 다른 점이라고 하면 귀가 뾰족하고 난쟁이 없이 모두 꺽다리들뿐이라는 거다.”
시박은 흥미롭게 빈센트의 얘기를 경청했다.
신선 나부랭이들도 딴에는 몰래 육식을 즐기는데 채식만 하는 것도 그렇고 설명만으로는 하는 짓이 선녀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나라에서 보호해 줘야 할 종족이네?”
“아득, 묘하게 엉뚱한데서 네놈이랑 통하는구나!”
시박은 피식 웃었다.
“정령술이란 건 대충 알겠는데 마법이란 건 또 뭐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꼬마야, 그럼 너 같으면 알고 묻겠냐?”
“고약한 놈! 네놈이 갖고 있는 것도 마법검이지 않느냐!”
“월영검이 마법검이라고?”
“딱 봐도 마나가 응집되어 있는 게 나 마법검이요 하고 난리치고 있네! 귀신은 속여도 이 빈센트는 못 속인다!”
“마법이 뭐냐!”
“넌 내가 반드시 이 굴욕…… 마법이란 간단하게 말해 대기에 퍼져 있는 마나를 이용해 다섯 가지 원소. 즉, 불, 바람, 물, 흙, 에테르를 실체화시킨 것을 말한다.”
“여기에도 술법 비슷한 게 존재하는군.”
“…….”
“계속.”
“……마법은 대체로 마법사란 족속들이 사용하는데 그 어원은 드래곤이란 커다란 도마뱀에게서 파생되었다 한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나도 복잡해서 몰라!”
시박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