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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7화 적과의 동침(3)


“드래곤? 도마뱀?”
빈센트는 이것이 하나의 고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적을 사로잡아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만이 고문이 아니다. 이렇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도 하나의 고문이라 할 수 있었다.
빈센트는 이판사판식으로 나갔다.
“수컷 도마뱀이 발정기에 접어들면 종족 번식을 위해 암컷 도마뱀을 찾는다. 그중 왕도마뱀이란 녀석이 있는데 대륙에서도 하나 있을까 말까다.”
“왕도마뱀?”
“왕도마뱀의 발정기는 평생 한 번 찾아오는데 그게 몇 대에 걸쳐 싸고 낳고를 반복하면 산덩이만 한 도마뱀이 태어난다. 그럼 보통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진 못하지만 대신 마법을 사용하며 피부는 쇠보다 단단하다. 트림을 하면 불을 토해 내기도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드래곤이라 부른다.”
빈센트는 말을 마치며 시박의 눈치를 살쳤다.
보나마나 자신을 죽이려 들게 뻔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무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호오. 드래곤이라는 놈은 필시 영물인 게 틀림없군.”
“…….”
“꼭 청룡, 아니 파랭이랑 비슷하잖아? 그 드래곤이란 거에 대해 상세히 좀 말해 봐라.”
“드래곤은 비늘 색에 따라 저마다 갖는 힘이 다르다.”
“오오, 골라먹는 재미가 있겠어!”
드래곤에게도 분명 영단이 있을 거라 생각한 시박이었다.
“비늘이 붉으면 불을 토해 내고, 검으면 독을 토해 낸다. 파란색은 얼음을…….”
“잠깐.”
시박이가 빈센트의 말을 끊었다.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 게 아니었다. 드래곤이 태어나는 과정은 그렇다 쳐도 몸집이며 비늘 색깔, 얼음을 토해 내는 것까지 예사롭지가 않았다.
“드래곤이란 게 용이더냐?”
“혹자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기후를 조정할 수도 있고?”
“마법으로 가능하다.”
“이 땅에 드래곤이란 게 총 몇 마리나 있지?”
“자세한 건 모르지만 바이온 왕국에서 거주하는 드래곤은 대략 다섯 마리 정도 되는 거로 알고 있다. 그중 두 마리는 수면기에 있고.”
“파랭이 이 자식…….”
시박이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차원이동.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것이었다. 설사 사지가 멀쩡한 채로 이동한다 해도 시대의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로 떨어질지 몰랐다.
‘파랭이 자식, 나보다 훨씬 과거로 떨어진 것인가. 아니, 설사 그렇다 쳐도 얼마나 싸질러 났으면 이 땅에 용대가리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청룡이 저지른 일을 처리하자니 머리가 아파 오는 시박이었다.
최대한 이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저승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이라는 것들을 한 번 만나 봐야겠어. 청룡의 자식들이니 청룡이 어디에 있는지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
시박은 청룡이 다섯 마리나 있는 것을 상상했다.
슬쩍 몸에 오한이 드는 것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모습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지.”
시박은 월영검을 내밀며 말했다.
“월영검이 마법검이라면 불이나 물을 토해 낼 수 있다는 거냐?”
빈센트가 코웃음을 쳤다.
“흥, 또 모르는 일이지.”
“…….”
“마법검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네놈이 말한 원소를 사용하는 것. 둘째로는 자아를 가진 에고(ego) 소드가 있는데, 이것이 성격이 워낙 지랄 맞아 주인의 정신을 제압하는 마검이 대다수다.”
시박은 저승의 오래된 야사를 듣는 것처럼 빈센트의 말을 경청했다.
빈센트가 다소 부담스러운 듯 시박의 눈길을 피했다.
“세 번째는 봉인이다.”
“봉인?!”
시박의 얼굴이 상기됐다.
“그래, 이 봉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기억을 봉인하는 것부터 영혼을 봉인하는 것까지 그 예가 다양하다. 뭐, 이런 고차원적인 것은 이미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월영검을 잡은 시박이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빈센트가 말하는 걸로만 봐서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방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기억의 봉인이라.”
시박이 말을 되새겼다.
이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월영검의 뭉뚝한 날을 매만졌다.
그 모습에 빈센트가 바짝 긴장했다.
‘이놈이 갑자기 창자가 꼬였나, 왜 이러는 거야?’
검에 대한 설명은 드래곤과 달리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설마 거짓을 말할 때는 좋아하고 진실은 싫어하는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빈센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네놈은 마법사냐?”
“…….”
“그 분야에 대해 해박한 걸 보면 필시 마법사겠군.”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어째서?”
“이봐, 꼭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마법검이란 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아. 예를 들어 마나를 느낄 수 있으면…….”
“기를 마나라고 하는 건가. 아무튼 네놈이 봤을 때 월영검에 무슨 봉인이 걸려 있는 것 같으냐.”
빈센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시박이 자신에게 하는 정신적 고문이 조금씩 통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 마법사란 것들은 어디에 있지?”
“마법사를 만나려고?”
시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검의 봉인을 풀려면 적어도 5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를 찾아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거다. 더불어 마법사란 것들이 나 여기 있소 하고 환영하는 종자들도 아니니.”
“당장 말해.”
“싫다면?”
시박이 잇몸을 드러내며 사악하게 웃었다.
“말하지 않는다면, 난 네놈을 나체로 만들어 한 인간에게 세상의 종말이란 어떤 건지를 보여 주겠다. 더불어 네놈이 말장난할 기회는 앞으로 두 번이다. 한 번에 불알 하나가 명을 다한다. 불알이 세 개라면 기회는 늘어나겠지.”
“기회는…….”
빈센트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했다.
“한 번뿐이겠군.”
시박은 빈센트로부터 상당히 깔끔하고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드래곤을 설명한 것처럼 허황된 얘기가 생선에 뿌리는 소금처럼 간을 맞췄다.
“수도, 한 나라의 수도라.”
“그래, 거기에는 왕실 마법사와 빛의 탑이 존재하니까.”
시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로 가면 모든 게 해결되겠군.”
“네놈의 마법검도 평범한 건 아닌 것 같으니 그 수밖에 없을 거다. 아마 만나는 것도 그렇지만 돈도 제법 들 테고. 수도에 가 볼 생각인가?”
“드래곤이 수도에 있으니까.”
빈센트의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비로소 김시박이란 정신적인 충격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행선지가 정해졌군. 슬슬 이 영지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수도로 가 봐야겠어.”
시박은 술병 뚜껑을 따고는 목을 축였다.
“크으. 술맛 한번 좋구나. 쩝쩝.”
반달도 두 개나 뜨니 달빛이 찬란했다.
술도 있겠다. 떡갈비도 넉넉하니 술 마실 분위기가 절로 났다.
빈센트를 결박하고 시박이는 한동안 술과 떡갈비를 먹어 치웠다.
문득 시박이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아무리 봐도 매화나무 같단 말이야.”
떨어지는 잎마저 매화나무와 닮았다.
고즈넉한 향이 너울지며 살짝 코끝을 자극하는 것까지.
“……만 아니었다면.”
“…….”
“……파란 머리 쌍놈의 꼬마만 아니었다면.”
“……입 좀 다물어라.”
“……이딴 더러운 꼴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시박은 떡갈비 한 덩이를 빈센트의 입속에 억지로 넣었다.
빈센트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 시박이의 손을 깨물려 했지만 씹히는 것은 떡갈비뿐이었다.
“이거 무슨 개도 아니고. 쩝, 개 하니까 황구 구이 생각나네.”
빈센트는 떡갈비를 게걸스럽게 씹어 댔다.
필시 주둥이로라도 시박이에게 반항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삐져나온 떡갈비 반쪽이 빈센트의 입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걸쭉한 침은 뒤늦게 떨어졌다.
“에비! 뭐 이런 게 다 있지, 진짜?”
시박의 면박에도 빈센트는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노움이 땅에 떨어진 떡갈비를 먹으려 허리를 숙였다.
빈센트가 기겁하며 그대로 박치기를 선사했다. 노움이 뒤통수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김시박 네 이놈!”
빈센트는 시박이를 잡아먹을 듯 소리쳤다.
그 기세가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시박이마저 당황시킬 정도였다.
“뭐, 뭐냐. 갑자기?”
“이게 대체 무슨 맛이냐!”
“…….”
시박이는 빈센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도대체 이놈이 정말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객이 맞단 말인가.
노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도 그렇고 말투며 행동 모든 것이 허술했다.
‘정신 나간 놈이 분명해.’
아직까지 침을 흘리고 있는 걸로 보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시박은 잠시 빈센트의 처리를 두고 고민했다.
특별히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위협을 느낄 만한 상대도 아닌 것 같았다.
‘풀어 주는 게 제일 속 편하겠지.’
함부로 살생을 하기에는 저승차사란 자신의 위치와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그렇다고 데리고 다니는 것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시박은 빈센트를 결박한 금동아줄을 풀어 줬다.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 준 답례였다.
“어쭈?”
빈센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놈이 제법 간덩이가 부었구나. 함부로 결박을 풀어 주다니!”
시박이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제발 눈앞에서 사라져라. 난 조용히 술 좀 마시고 싶으니까.”
“말해라.”
“아, 그놈 참 죽을 목숨을 살려 주니까!”
“내 입에 넣은 건 대체 무슨 음식이냐!”
“떡갈비라는 거다. 됐지? 이제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빈센트는 시박이 손에 남아 있는 두 덩이의 떡갈비를 탐욕스럽게 쳐다봤다. 돈이라도 있다면 거래를 했겠지만 파란 머리 꼬마 때문에 땡전 한 푼 없었다.
“아가야, 이 몸이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시박이 거칠게 귓구멍을 후벼 팠다.
“노움아, 손님 가신단다. 배웅해 드려라.”
말 끝나기 무섭게 노움이 빈센트에게 손을 뻗었다.
완벽하게 팔을 잡은 것처럼 보였는데 정작 노움의 손아귀에는 허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끌끌. 방심은 한 번으로 족하니라.”
노움이 당황한 듯 몇 차례 더 빈센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번번이 잡힐 듯 말 듯 하며 안 잡히는 모습에 시박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이놈의 실력을 종잡을 수가 없네. 허공에 잔상을 만들 정도면 고수는 분명한데. 금동아줄에 잡히기 전까지의 행동은 또 뭐야 그럼.’
시박의 생각에 상관없이 빈센트는 계속해서 자기 할 말을 다했다.
“넌 내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줬다. 그 죄가 당연 죽어야 마땅하지만…… 이놈의 노움이 그만하지 못해?! 아무튼! 그 떡, 떡갈빈가 하는 것을 넘기면 편안하게 죽여 주겠다!”
빈센트는 놀랍게도 보복 대신 떡갈비를 원하고 있었다.
말하는 사이에도 침이 자꾸만 흘러내리는 게 모든 감각이 미각에 집중된 듯했다.
시박은 눈알이 반쯤 뒤집힐 것 같은 빈센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세 살 꼬마 놀리듯 떡갈비 한 덩이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물론 빈센트의 얼굴도 똑같이 움직였다.
“이 떡갈비가 그리도 맛있었을까?”
“어,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지금 네 목숨을 연장시켜 주고 있다는 것만 알아라!”
시박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네놈 말은 떡갈비를 줘도 죽고 안 줘도 죽는단 말이냐?”
“머저리가 환생한 줄 알았는데 제법 말귀는 알아듣는구나!”
빈센트의 악담은 그가 흘리는 한 줄기 침으로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박은 노움에게 손짓을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면 굳이 이걸 네놈에게 줄 필요는 없겠군.”
“안 주면 네놈은 지금 죽…… 악!”
빈센트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시박이가 떡갈비를 그대로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 노움과 빈센트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우당탕!
빈센트가 맨땅에 머리를 부딪치며 고통에 몸을 두어 바퀴 뒹굴었다.
“크윽! 떡, 떡갈비는……!”
빈센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놀랍게도 떡갈비는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물속으로 잠수하듯 땅속에 숨어 버린 노움이 한쪽 손만 내놔 떡갈비를 잡고 있던 것이다.
노움이 빈센트를 약 올리듯 떡갈비를 흔들었다.
“저, 저런 발칙한 놈!”
빈센트가 노움의 도발에 이성을 잃었다.
노움은 두더지라도 된 마냥 떡갈비를 든 채 빠르게 도망갔고 빈센트 역시 죽어라 그 뒤를 쫓았다.
그 모습을 보던 시박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바보들만 있는 곳이야.”
문득 발레포르가 생각난 시박이었다.
시박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덧 아미와 같이 지낸 지 이레가 훌쩍 넘어갔다. 혼백을 놓친 저승차사는 이레 안에 다시 찾아온다.
시박이 취걸개를 잡으러 갔을 때도 이레 정도는 놓아줄 수 있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저승차사는 별반 다를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얼간이 자식. 늦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