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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2. 생존을 위해서 인간은 진화한다
결혼의 존엄성이 처참하게 추락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절망을 겪었던 작년은 영우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날, 동네 슈퍼에서 일찍 근무를 마친 금비는 매장 안의 제과점에서 주저주저하다가 꼬마 케이크가 아닌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을 골랐다. 케이크가 남으면 다음 날 가족의 간식으로 먹으면 되니 무리한 지출은 아닐 듯싶었다.
평소 한밤중에 퇴근하는 그녀를 점주가 특별히 대낮에 보내 주었다. 영우의 생일을 직장에 광고한 덕분에 모처럼 세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있는 영우는 남편이 집으로 데려갔을 터였다.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패잔병이 된 남편은 오전에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오후에는 집에서 영우를 보살피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영우가 마음에 걸렸는데 더는 야간 보육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동안 아들에게 무심했다면서 이 기회에 함께하는 시간을 넉넉히 갖겠다는 남편이 고마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득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확실한 직장을 구한다는 게 남편의 구상이었다.
폭염으로 이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땀방울을 훔치면서 연립주택 계단을 밟았다. 더위 탓인지 남편은 문을 열어 놓았다. 순간 금비는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하자는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갈대발을 밀어 올리려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전혀 남편의 것 같지 않은 차가운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만 좀 있어, 새끼야!’
애정 없는 살벌한 목소리. 설마 영우한테 하는 말일까?
‘한창 중요할 때 지랄이네. 씨발! 못 샀잖아!’
남편은 작은방을 힐긋 노려보고는 다시금 낯선, 아니, 무서운 언어를 토했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가누고 조용히 들어섰다. 컴퓨터와 친하지 않던 남편은 거실의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또한 낯선 모습이어서 그녀는 집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이 사람이 와도 몰라볼 만큼 열중하게 만드는지 호기심이 동해 모니터를 주시했다. 화면 속엔 그래프와 숫자들이 가득했다.
‘뭐 해요?’
금비의 목소리에 그가 흠칫 놀라며 키보드를 더듬었다.
‘어! 왜 일찍 왔어?’
‘오늘 영우 생일이잖아요. 영우는요?’
순간 남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와중에 작은방을 의식하는 그의 눈길을 금비는 놓치지 않았다.
‘왜 잠겼죠?’
작은방의 문손잡이를 잡은 채 그녀가 소리쳤다. 남편은 대답 대신에 명멸하는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더듬거렸다.
‘응. 녀석이 왜…… 글쎄, 중요한 서류 좀 보느라고 방에 있으라고 했는데 문은 왜 잠갔지?’
불길한 예감이 활활 타올랐다. 열쇠를 찔러 넣고 방문을 열자 지린내가 왈칵 새 나왔다. 영우는 죄지은 아이처럼 옴츠린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자식한테 이럴 수 있죠?’
그녀는 숨이 턱턱 막혀서 한참 뒤에야 겨우 남편에게 따졌다.
‘자식을 가둬 넣고 오줌도 못 싸게 했다는 일을 도무지, 도무지 믿을 수 없어요!’
그렇잖아도 사람들 앞에서 노상 눈치를 보고 통 말을 익히지 못해서 안타까운 아들이었다. 금비는 변명하는 남편을 연방 몰아붙였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에게 상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금비는 컴퓨터를 붙들고 남편의 행적을 추론해 보았다. 아들을 방에 감금시킬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었다. 과연 오래전부터 사이버 주식 거래를 했던 듯싶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주식을 하냐고 물었고, 남편은 나중에 말해 주겠다고만 했다. 그리고 일자리 때문에 지방을 다녀온다고 무단가출을 정당화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어린이집 차량이 영우를 슈퍼로 데려다 주었다. 얌전히 있어 주어도 눈치가 보이고 힘겨운데 영우는 쉬이 울고 보챘다. 딱히 생계를 꾸릴 대책이 없음에도 슈퍼마켓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영우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다녔다. 찾다가 지쳤을 때,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보육 도우미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사실 저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요.’
‘보육 도우미 일이면 상관없어요. 잡다한 일을 하면서 보수가 적어도 괜찮다면…….’
그렇게 어린이집 보육 도우미(구 보조 교사)로 취직하고는 영우를 종일 돌볼 수 있었다. 더불어 원장 선생님의 권유로 3급 보육 교사 자격증을 위해 틈나는 대로 공부에 매달렸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취직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카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며칠 뒤에는 낯선 남자들이 찾아와 남편이 빚을 졌다고 말해 주었다. 모두 결혼 초부터 누적되어 온 빚이었다. 영우가 생겨서 서둘러 한 결혼. 그래서 겨우 3년 차다. 아니다. 3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돈을 사업에 말아먹었다는 말도 말짱 거짓이었다. 모두 도박이나 주식으로 탕진했다.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시댁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친정이 없었다.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이니! 그저 살만 대면 부부니? 에미야, 난 너도 답답해 죽겠다. 신랑이 어딜 기웃거리는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니!’
시어머니는 위로한다고 불러 놓고 힐책했다.
‘우리도 요즘 어렵다. 너도 알다시피 영우 아범 장가보낼 때 기둥 다 뽑아 줬잖니. 몇 년만 어찌해 봐라. 일단은 네가 어떻게 해결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동생에게 등록금을 미리 건네준 탓에 결혼 당시 금비의 통장은 비어 있었다. 남편은 몸뚱이만 와도 모든 식구가 환영이라고 말했다. 겪어 본 현실은 물론 아니었다. 과연 시어머니는 이번에도 그녀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만다.
‘네가 고생한 건 모르는 바 아니다. 어쩌겠니. 그렇다고 널 도와줄 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연립주택 전세금을 빼서 남편의 빚을 갚았다. 남편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진정성이 담기고 안 담기고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다시금 이런 고통을 주면, 그때는 단칼에 인연을 끊겠다고 남편에게 또박또박 선언했다.
그리고 반년 후에 재현된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녀는 은행 안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질 뿐이었다.
금비는 코끝에 닿는 에테르 냄새에 번쩍 눈을 떴다.
“어, 엄마!”
반색하는 영우의 얼굴이 보였고, 서진이도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그도 병실 안에 함께였다. 2인실이었고, 옆 침대는 비어 있었다. 팔뚝에는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환자복은 누가 입혔을까? 그를 보려고 머리를 들자 어지러움이 느껴져 도로 누웠다. 영우가 맑고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지켜보았다. 이상하게도 아이는 불안에 떨지 않고 차분하기만 했다.
“이쁜 아들, 왔어?”
말을 하자 안면 근육이 쓰라렸다. 검은 양복과 눈길이 마주치자 엉망인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려다 이내 체념하고 그를 보았다.
“아버님이 어쩐 일이세요?”
“얼굴이 따가울 겁니다. 애써 말하진 마십시오.”
환자에게 명령하는 의사 같은, 아니 타박하는 말투였다. 그런데도 왠지 그의 말이 따듯하게 와닿았다.
“아빠한텐 제가 전화했어요.”
서진이가 말했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영우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원장 선생님이 저한테 선생님이 병원에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영우를 계속 데리고 있었어요.”
“기특도 해라.”
“엄마가 아프면 아들이 병문안 와야 하는 게 맞죠?”
서진이의 맹랑한 말에 금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는데도 피부가 따가웠다. 얼굴이 엉망인 탓인지 엄마가 곁에 있으면 얼굴을 만지고 뺨을 비비기를 좋아하던 영우가 조심스럽게 목살만 건드렸다.
“흉하죠?”
줄곧 이쪽을 보고 있는 검은 양복에게 말했다. 그가 흉한 얼굴을 그만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말이었다.
“약을 발랐습니다.”
과연 얼굴에 손을 대니 끈적거렸다. 왜 얼굴이 망신창이가 되었는지 그는 별 관심이 없는 듯싶었다.
“연락할 가족이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금비는 자신의 품에 안긴 영우와 그의 품에 안긴 서진이를 찬찬히 바라본 뒤에 대답했다.
“남동생이 있어요.”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군대에 있어요.”
실없는 그녀의 말에 그는 휴대폰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지금 올라오세요, 하고 말했다.
곧 병실 문이 열리고 서진이의 고모가 들어왔다.
“영우는 서진이랑 같이 재우겠습니다.”
“아뇨, 고모님. 제가…….”
“애들이 잘 시간입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서진이가 영우의 손을 잡았다.
“영우야, 오늘만 누나랑 같이 잘래?”
영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낯을 지독히 가리는 녀석이 언제부터 서진이를 저리 따랐을까?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굴었던 것은 서진이 때문인 듯했다.
검은 양복은 고모님과 아이들을 택시에 태워 보낸 뒤 병실로 돌아왔다. 그때 금비는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가 티슈를 뽑아 건네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약 바른 게 지워집니다.”
무뚝뚝한 말인데도 뜨거워서 또 눈물이 나왔다. 이 나이에 믿고 기대어 맘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사람 하나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서러웠다. 엄마는 왜 병마와의 싸움에서 맥없이 무너졌을까? 아빠는 또 왜 의연하게 버텨 내질 못하고 술병으로 요절했을까. 자식을 사랑한다면 버텨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영우 아빠는 출장 갔어요.”
눈물을 훔친 뒤 그녀가 말했다. 건너편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던 그가 힐긋 보더니 말없이 창 너머로 시선을 날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창틀에 놓인 지갑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오천 원짜리 한 장, 그리고 천 원짜리 서너 장과 동전 몇 개가 담겨 있었다. 병원비가 걱정이다.
“아버님은 어서 가셔야죠?”
걸을 수 있으니 그를 보낸 뒤에 원무과에 들러 볼 터였다.
“기절했던 환자인데, 혼자 두기엔 좀 그렇군요.”
“단순히 영양 부족에 과로라잖아요.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때 되면 알아서 가겠습니다. 주무세요.”
건너편 침대의 벽으로 등을 기댄 검은 양복이 눈을 감았다.
“저기요,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그가 다시 눈을 뜨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남자라서 그럽니까, 영우 어머님?”
‘선생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영우 어머님’이라고 했다. ‘아줌마’인 금비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화나 보였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뚱하니 그를 마주 보고만 있자 그가 예고도 없이 전등을 꺼 버렸다.
“서진이가…… 영우와 황금비 선생님 덕분에 밝아졌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가 밖으로 나갔다. 금비는 망연히 문을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불이 켜지고 낯선 중년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간병인이에요.”
“안 불렀는데…….”
“친척이라는 신사분께서 부탁하셨네요. 돈은 미리 받았어요.”
더는 싫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병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간병인이 링거병을 들고 뒤따랐다.
“제발, 잠깐만 혼자 좀 다녀올게요.”
간병인을 제지하고 병실을 나온 뒤 허청허청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영우를 데리고 와 본 적이 있는 5층짜리 병원이었다. 야간 원무과는 1층에 있었다. 당장 퇴원을 하고 싶어도 병원비가 문제였다. 남편의 카드빚을 청산한 뒤론 카드는 일절 만들지 않았다.
원무과의 당직 직원은 의외의 말을 건넸다.
“이백만 원이 선입금돼 있습니다. 진단서 발급도 그렇고, 퇴원 정산은 치료 도중이라서 지금은 안 됩니다.”
2. 생존을 위해서 인간은 진화한다
결혼의 존엄성이 처참하게 추락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절망을 겪었던 작년은 영우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날, 동네 슈퍼에서 일찍 근무를 마친 금비는 매장 안의 제과점에서 주저주저하다가 꼬마 케이크가 아닌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을 골랐다. 케이크가 남으면 다음 날 가족의 간식으로 먹으면 되니 무리한 지출은 아닐 듯싶었다.
평소 한밤중에 퇴근하는 그녀를 점주가 특별히 대낮에 보내 주었다. 영우의 생일을 직장에 광고한 덕분에 모처럼 세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 있는 영우는 남편이 집으로 데려갔을 터였다.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패잔병이 된 남편은 오전에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오후에는 집에서 영우를 보살피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영우가 마음에 걸렸는데 더는 야간 보육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동안 아들에게 무심했다면서 이 기회에 함께하는 시간을 넉넉히 갖겠다는 남편이 고마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득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확실한 직장을 구한다는 게 남편의 구상이었다.
폭염으로 이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땀방울을 훔치면서 연립주택 계단을 밟았다. 더위 탓인지 남편은 문을 열어 놓았다. 순간 금비는 남편을 깜짝 놀라게 하자는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갈대발을 밀어 올리려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전혀 남편의 것 같지 않은 차가운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만 좀 있어, 새끼야!’
애정 없는 살벌한 목소리. 설마 영우한테 하는 말일까?
‘한창 중요할 때 지랄이네. 씨발! 못 샀잖아!’
남편은 작은방을 힐긋 노려보고는 다시금 낯선, 아니, 무서운 언어를 토했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가누고 조용히 들어섰다. 컴퓨터와 친하지 않던 남편은 거실의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또한 낯선 모습이어서 그녀는 집을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이 사람이 와도 몰라볼 만큼 열중하게 만드는지 호기심이 동해 모니터를 주시했다. 화면 속엔 그래프와 숫자들이 가득했다.
‘뭐 해요?’
금비의 목소리에 그가 흠칫 놀라며 키보드를 더듬었다.
‘어! 왜 일찍 왔어?’
‘오늘 영우 생일이잖아요. 영우는요?’
순간 남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와중에 작은방을 의식하는 그의 눈길을 금비는 놓치지 않았다.
‘왜 잠겼죠?’
작은방의 문손잡이를 잡은 채 그녀가 소리쳤다. 남편은 대답 대신에 명멸하는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더듬거렸다.
‘응. 녀석이 왜…… 글쎄, 중요한 서류 좀 보느라고 방에 있으라고 했는데 문은 왜 잠갔지?’
불길한 예감이 활활 타올랐다. 열쇠를 찔러 넣고 방문을 열자 지린내가 왈칵 새 나왔다. 영우는 죄지은 아이처럼 옴츠린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자식한테 이럴 수 있죠?’
그녀는 숨이 턱턱 막혀서 한참 뒤에야 겨우 남편에게 따졌다.
‘자식을 가둬 넣고 오줌도 못 싸게 했다는 일을 도무지, 도무지 믿을 수 없어요!’
그렇잖아도 사람들 앞에서 노상 눈치를 보고 통 말을 익히지 못해서 안타까운 아들이었다. 금비는 변명하는 남편을 연방 몰아붙였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에게 상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금비는 컴퓨터를 붙들고 남편의 행적을 추론해 보았다. 아들을 방에 감금시킬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었다. 과연 오래전부터 사이버 주식 거래를 했던 듯싶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주식을 하냐고 물었고, 남편은 나중에 말해 주겠다고만 했다. 그리고 일자리 때문에 지방을 다녀온다고 무단가출을 정당화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어린이집 차량이 영우를 슈퍼로 데려다 주었다. 얌전히 있어 주어도 눈치가 보이고 힘겨운데 영우는 쉬이 울고 보챘다. 딱히 생계를 꾸릴 대책이 없음에도 슈퍼마켓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영우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다녔다. 찾다가 지쳤을 때,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보육 도우미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사실 저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요.’
‘보육 도우미 일이면 상관없어요. 잡다한 일을 하면서 보수가 적어도 괜찮다면…….’
그렇게 어린이집 보육 도우미(구 보조 교사)로 취직하고는 영우를 종일 돌볼 수 있었다. 더불어 원장 선생님의 권유로 3급 보육 교사 자격증을 위해 틈나는 대로 공부에 매달렸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취직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카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며칠 뒤에는 낯선 남자들이 찾아와 남편이 빚을 졌다고 말해 주었다. 모두 결혼 초부터 누적되어 온 빚이었다. 영우가 생겨서 서둘러 한 결혼. 그래서 겨우 3년 차다. 아니다. 3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돈을 사업에 말아먹었다는 말도 말짱 거짓이었다. 모두 도박이나 주식으로 탕진했다.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시댁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친정이 없었다.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이니! 그저 살만 대면 부부니? 에미야, 난 너도 답답해 죽겠다. 신랑이 어딜 기웃거리는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니!’
시어머니는 위로한다고 불러 놓고 힐책했다.
‘우리도 요즘 어렵다. 너도 알다시피 영우 아범 장가보낼 때 기둥 다 뽑아 줬잖니. 몇 년만 어찌해 봐라. 일단은 네가 어떻게 해결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어.’
동생에게 등록금을 미리 건네준 탓에 결혼 당시 금비의 통장은 비어 있었다. 남편은 몸뚱이만 와도 모든 식구가 환영이라고 말했다. 겪어 본 현실은 물론 아니었다. 과연 시어머니는 이번에도 그녀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만다.
‘네가 고생한 건 모르는 바 아니다. 어쩌겠니. 그렇다고 널 도와줄 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연립주택 전세금을 빼서 남편의 빚을 갚았다. 남편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진정성이 담기고 안 담기고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다시금 이런 고통을 주면, 그때는 단칼에 인연을 끊겠다고 남편에게 또박또박 선언했다.
그리고 반년 후에 재현된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녀는 은행 안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질 뿐이었다.
금비는 코끝에 닿는 에테르 냄새에 번쩍 눈을 떴다.
“어, 엄마!”
반색하는 영우의 얼굴이 보였고, 서진이도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그도 병실 안에 함께였다. 2인실이었고, 옆 침대는 비어 있었다. 팔뚝에는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환자복은 누가 입혔을까? 그를 보려고 머리를 들자 어지러움이 느껴져 도로 누웠다. 영우가 맑고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지켜보았다. 이상하게도 아이는 불안에 떨지 않고 차분하기만 했다.
“이쁜 아들, 왔어?”
말을 하자 안면 근육이 쓰라렸다. 검은 양복과 눈길이 마주치자 엉망인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려다 이내 체념하고 그를 보았다.
“아버님이 어쩐 일이세요?”
“얼굴이 따가울 겁니다. 애써 말하진 마십시오.”
환자에게 명령하는 의사 같은, 아니 타박하는 말투였다. 그런데도 왠지 그의 말이 따듯하게 와닿았다.
“아빠한텐 제가 전화했어요.”
서진이가 말했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영우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원장 선생님이 저한테 선생님이 병원에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영우를 계속 데리고 있었어요.”
“기특도 해라.”
“엄마가 아프면 아들이 병문안 와야 하는 게 맞죠?”
서진이의 맹랑한 말에 금비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는데도 피부가 따가웠다. 얼굴이 엉망인 탓인지 엄마가 곁에 있으면 얼굴을 만지고 뺨을 비비기를 좋아하던 영우가 조심스럽게 목살만 건드렸다.
“흉하죠?”
줄곧 이쪽을 보고 있는 검은 양복에게 말했다. 그가 흉한 얼굴을 그만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말이었다.
“약을 발랐습니다.”
과연 얼굴에 손을 대니 끈적거렸다. 왜 얼굴이 망신창이가 되었는지 그는 별 관심이 없는 듯싶었다.
“연락할 가족이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금비는 자신의 품에 안긴 영우와 그의 품에 안긴 서진이를 찬찬히 바라본 뒤에 대답했다.
“남동생이 있어요.”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군대에 있어요.”
실없는 그녀의 말에 그는 휴대폰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더 묻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지금 올라오세요, 하고 말했다.
곧 병실 문이 열리고 서진이의 고모가 들어왔다.
“영우는 서진이랑 같이 재우겠습니다.”
“아뇨, 고모님. 제가…….”
“애들이 잘 시간입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서진이가 영우의 손을 잡았다.
“영우야, 오늘만 누나랑 같이 잘래?”
영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낯을 지독히 가리는 녀석이 언제부터 서진이를 저리 따랐을까?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굴었던 것은 서진이 때문인 듯했다.
검은 양복은 고모님과 아이들을 택시에 태워 보낸 뒤 병실로 돌아왔다. 그때 금비는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가 티슈를 뽑아 건네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약 바른 게 지워집니다.”
무뚝뚝한 말인데도 뜨거워서 또 눈물이 나왔다. 이 나이에 믿고 기대어 맘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사람 하나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서러웠다. 엄마는 왜 병마와의 싸움에서 맥없이 무너졌을까? 아빠는 또 왜 의연하게 버텨 내질 못하고 술병으로 요절했을까. 자식을 사랑한다면 버텨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영우 아빠는 출장 갔어요.”
눈물을 훔친 뒤 그녀가 말했다. 건너편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던 그가 힐긋 보더니 말없이 창 너머로 시선을 날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창틀에 놓인 지갑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오천 원짜리 한 장, 그리고 천 원짜리 서너 장과 동전 몇 개가 담겨 있었다. 병원비가 걱정이다.
“아버님은 어서 가셔야죠?”
걸을 수 있으니 그를 보낸 뒤에 원무과에 들러 볼 터였다.
“기절했던 환자인데, 혼자 두기엔 좀 그렇군요.”
“단순히 영양 부족에 과로라잖아요.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때 되면 알아서 가겠습니다. 주무세요.”
건너편 침대의 벽으로 등을 기댄 검은 양복이 눈을 감았다.
“저기요,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그가 다시 눈을 뜨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남자라서 그럽니까, 영우 어머님?”
‘선생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영우 어머님’이라고 했다. ‘아줌마’인 금비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화나 보였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뚱하니 그를 마주 보고만 있자 그가 예고도 없이 전등을 꺼 버렸다.
“서진이가…… 영우와 황금비 선생님 덕분에 밝아졌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가 밖으로 나갔다. 금비는 망연히 문을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불이 켜지고 낯선 중년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간병인이에요.”
“안 불렀는데…….”
“친척이라는 신사분께서 부탁하셨네요. 돈은 미리 받았어요.”
더는 싫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병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간병인이 링거병을 들고 뒤따랐다.
“제발, 잠깐만 혼자 좀 다녀올게요.”
간병인을 제지하고 병실을 나온 뒤 허청허청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영우를 데리고 와 본 적이 있는 5층짜리 병원이었다. 야간 원무과는 1층에 있었다. 당장 퇴원을 하고 싶어도 병원비가 문제였다. 남편의 카드빚을 청산한 뒤론 카드는 일절 만들지 않았다.
원무과의 당직 직원은 의외의 말을 건넸다.
“이백만 원이 선입금돼 있습니다. 진단서 발급도 그렇고, 퇴원 정산은 치료 도중이라서 지금은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