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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 괜찮으세요?
물기를 뺀 가자미를 뒷마당에 널어 뒀다 다시 하룻밤 냉장고에 두었다. 적당히 꾸덕꾸덕하게 살이 굳은 모양이다. 생선을 말리면서 지난 장날 삼천 원 주고 산 덮개가 씌워진 체망을 더 큰 걸 사 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불을 쨍하게 올린 프라이팬에 생선을 굽는다. 옆에는 된장찌개 뚝배기가 더운 여름에 어울리지 않게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요란했다. 분주하게 가스 불을 오가던 수현이 아차 하며 허리에 질끈 묶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러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수현은 마당 한구석에서 울창하게 자란 방앗잎을 손으로 빠르게 훑어 냈다. 깻잎처럼 커다랗게 무성해진 방앗잎을 바라보다 솎아 내야 하나 중얼거렸다.
다시 집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딱 맞게 한 면이 익은 가자미를 뒤집었다. 사선으로 넣은 칼집이 가자미구이를 더 예쁘게 만들었다. 노릇하니 예쁜 색깔에 흐뭇하게 미소가 어렸다.
냉장고를 열고 김을 꺼내 가스 불에 살짝 구웠다. 서걱서걱. 김 자르는 가위질 소리가 그리 경쾌하지 않다. 여름날의 습도는 제 몫을 충실히 하고 있다. 수현은 얌전하게 잘린 김을 접시에 놓았다. 곁들일 간장을 꺼내다 귀찮아져 꺼낸 종지를 다시 그릇장에 넣었다.
프라이팬에서 생선을 꺼내 접시에 올리면서 가자미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얼려 둔 가자미 중에 두툼한 것은 생선 스테이크로 내놓아도 될지 레시피를 머리로 그렸다. 일부러 묽게 끓인 된장국에 슬쩍 방앗잎을 올렸다. 부추 향이 좋은 오이소박이를 꺼내 그릇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냉동실에 있던 밥 하나를 밥그릇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밀폐 용기에 있었던 밥은 덩그러니 네모난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해도 혼자 사는 사람의 밥상은 표시가 났다. 옻칠이 제대로 된 수저를 들고 밥 한 술을 뜨기 시작했다. 조금 전 혼자 사는 이의 밥상에 대한 서글픈 감상 따위는 언제였나는 듯 맛있게 그릇을 비워 냈다.
비록 전자레인지에 데운 밥이라도 고슬고슬하니 맛이 좋았다. 가자미는 간이 잘 맞았고, 김도 생각보다 습기를 먹지 않아 먹을 만했다. 잘 익은 된장은 맛이 들어 찌개가 짙고 깊었다. 오이소박이는 상큼하니 입 안을 기분 좋게 했다.
새벽부터 살짝 과식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맛있게 밥을 비웠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수현은 바로 식탁 의자에서 일어났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했다. 젖은 행주로 식탁을 닦고 다시 마른행주로 물기를 훔쳐 내는 몸짓은 가벼웠다.
이를 닦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수현은 작은 수첩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적었다. 잊은 게 없는지 잠깐 생각을 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둔 메모지를 가져와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거실 소파 테이블에 던져둔 작은 백팩에 생수병을 넣고 운동화를 신었다. 현관문을 닫다 말고 집 안으로 소리쳤다.
“같이 갈래?”
기척이 없는 집 안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걸음을 빨리했다. 수현은 마당을 벗어나다 눈에 거슬리는 무성한 잡초 더미를 대충 손으로 뽑았다. 구석에 나뒹구는 호미를 가져와 땅을 골랐다. 풀을 뜯다 보니 이게 부추인가 잡초인가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마당 한구석에 휙 던져 버렸다.
지저분해진 손을 수돗가에서 씻고 물기 묻은 손을 공중에 툭툭 털었다. 문득 시선이 멈춘 빨래 건조대에 걸린 수건 몇 장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널어 놓은 빨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 이 새벽에 다시 발견했다. 나무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주변을 돌아봤다.
아, 행주 천 하면서 메모에 빠진 게 이거다. 휴대전화 메모란에 톡톡거리며 남겨 두었다. 처음에는 천을 떼다 만들어 볼까 했는데 그런 노동까지는 감당하기 힘들 거 같아 사서 쓰기로 했다.
새벽밥까지 챙겨 먹고 나섰음에도 아직 밖의 빛깔은 짙다. 등에 야무지게 붙은 백팩이 곧은 자세를 더 돋보이게 했다. 팔을 쭉 펴서 손깍지를 끼고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는 자세가 하루 이틀 한 모습이 아니다. 대문 앞에서 잠깐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던 수현은 숨을 고르고 곧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가 한결 덜하다. 이제 여름도 한 고개 푹 꺾여 간다. 일기 예보의 비 소식이 맞을 모양인지 이 시간이면 해가 떠야 하지만 오늘은 흐리기만 했다. 수현은 뛰던 걸음을 멈췄다.
예전에는 기찻길이었던 지금 이 길은 기차 기적 소리 대신 사람들의 아침 조깅으로 분주했다. 수현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기차가 다니던 길이다. 어느새 나이를 먹고 이 고장을 다시 찾았을 때 기차는 떠나고 대신 멋들어진 산책 코스로 변해 있었다.
세월의 변화를 새삼 확 건너뛴 느낌에 고개를 쭉 빼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쯤에 이모 집이 있었다. 그때 집을 시세보다 싸게 팔았니 어쩌니 하던 이모는 그 돈으로 언니인 수현의 엄마에게 빚을 갚았다. 그날 이모가 휴 한숨을 쉬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했다.
그 시절 이 동네에는 낡은 집들이 여기저기 골목 속에 삐뚤빼뚤 숨어 있었다. 저 골목인가 싶어 들어갔다 찾는 집이 나오지 않아 초행길의 사람들을 늘 당황케 했던 그런 동네. 새벽에도 기차가 시끄럽게 달리던 동네는 이 지역에서 제일 낙후된 동네였다. 낡은 집만큼의 경제적 수준을 가진 이들이 고만고만하게 살던 곳이었다.
대대적인 도시 정비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모는 집을 팔았다. 그때 수현의 엄마는 이 동네에 헐값으로 나온 땅을 사들였다. 세월이 흘러 동네는 고급 주택가로 변했다. 이쯤에서 늘 사람들의 뒷북치는 소리로 이모는 집을 팔고 몇 년 후 오른 땅값에 가슴을 쳤다. 반면 수현의 엄마는 뒤에서 돈을 세며 자신의 부동산 운세에 함빡 웃음을 지었다.
이모가 살던 집을 팔고 이사 가던 그날의 기억. 그리고 수현이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삿짐을 바라보던 이모의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이모는 사는 형편이 점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언니인 수현의 엄마에게 어떤 감정이었을까?
수현은 긴 세월을 살아 낸 노인처럼 집들을 바라봤다. 지금은 수현이 이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고 있다. 이모네는 주변 동네로 밀려났다. 이십여 년 동안의 도시 발전 이면에 이모네와 수현의 가족사가 복잡하게 공존했다.
등 쪽에서 울리는 휴대전화의 진동에 수현은 과거에서 빠져나왔다. 전화를 꺼내 들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시간에 안 자고 무슨 전화야?”
― 지수현, 개업은 언제 할 거야?
언제나 단도직입적인 은정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따로 개업식 잡고 그런 건 안 하려고. 문 열어 보고 손님 오면 그날이 개업인 거지.”
― 그럼 오늘 문 열긴 여는 거야?
“응. 어제 재료 준비 다 했어. 밥이나 먹으러 오든가?”
― 팔자 참 편하게 장사 시작하는구나. 엄마! 수현이 개업식 안 할 거래.
휴대전화에 대고 이모를 부르는 소리가 크다. 수현은 그 기세에 깜짝 놀라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너는 괜찮아? 다리가 뭉쳤는지 뛰지는 못하겠어서 그냥 걷다가 뛰다가 그러고 있어.”
― 엄마가 아침 먹으러 집으로 오라고 하는데 올 거지? 우리 엄마는 자고 일어나자마자 너 찾아. 어제 수현이가 밭 잘 갈았다고 칭찬이 쏟아져. 너는 중간에 간 것도 모르나 봐. 아, 엄마가 불러. 대충 뛰고 와. 전화 끊을게.
밥은 이미 먹었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성격 급한 은정은 제 용무 다 봤다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수현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모는 벌써 올해 김장 배추 심을 생각에 밭고랑을 고른다고 했었다. 슬렁슬렁 소풍 삼아 따라갔던 밭 고르기는 수현이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땀이 밭고랑 사이로 굵은 소금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은정의 전화에 다리가 괜히 더 뻐근해져 걸음을 멈추었다.
쉽게 속력이 안 붙어 이렇게 저렇게 뛰어 보지만 다리는 여전히 무겁다. 새벽밥을 너무 먹었다고 후회했다. 저만큼이라도 뛰어 보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시동을 걸었다. 저쪽에서 주인도 없는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슬렁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공원 곳곳에 ‘애완견의 목줄을 착용합시다’, ‘배설물은 직접 치웁시다’ 하는 현수막이 지겹게 보였다.
큰 개가 어찌 목줄도 안 하고 돌아다니나? 유기견인가 싶어 쓱 쳐다보니 낯이 있다. 밝은 핑크색 옷을 입은 개는 수현을 알아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호두구나.”
몸을 숙인 수현의 어깨에 제 얼굴을 부빈다. 혹시나 싶어 목에 달랑이는 이름표를 확인하니 호두가 맞다. 이름과 연락처가 새겨진 체인줄만 목에 달랑 달려 있을 뿐 목줄도 가슴줄도 없는 호두가 의아했다.
아는 얼굴이라고 수현에게 덥석 안겨 오는 게 힘이 장사다. 덩치는 커도 이놈 이제 두어 살 된 녀석이라 장난기가 한가득이다. 입은 옷이 낯익다 했더니 얼마 전 수현이 만들어 준 옷이다. 하룻밤 정이 무섭다고 옷 만들어 입히고 재워 줬다고 얼굴을 잊지도 않았다.
수현의 다리에 온몸을 부딪치며 반갑다 한다. 은정이 근무하는 동물병원의 호두다. 은정의 말로는 늘 여자한테 들러붙어 변태 호두라고 했다. 동물병원 입구에 개조심이라고 경고문을 붙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말로 수현을 웃게 했다. 수현은 그 고민에 대한민국 동물병원 어디에도 개조심 같은 게 붙어 있는 곳은 없을 거라고 했다.
호두가 하룻밤 자고 가던 날. 안 입는 티셔츠에다 대충 재봉틀로 박아 만든 옷이 제값을 했다. 한층 더 예뻐 보인다.
수현은 호두의 앞발을 번쩍 들어 올려 옷 길이가 맞는지 확인했다. 부산스러운 호두 때문에 제대로 입혀 보지도 못했었다. 펄쩍펄쩍 뛰는 녀석을 달래다 한 번 빨아 입히라고 은정에게 옷을 건넸다. 한 벌 더 만들어 줄까 하며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대체 이 시간에 혼자서 이놈이 여기 왜 있나 싶어 주변을 살폈다. 저쪽에서 한 남자가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호두 주인이다. 아마도 잠깐 줄을 놓쳤지 싶은데 그래도 대형견을 키우면서 그런 주의도 안 한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견주한테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입술을 떼려는 찰나,
“죄송합니다. 잠깐 아는 분이랑 이야기하는데 냉큼 뛰어가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숙이는 모양에 되레 수현이 무안해져 말을 쑥 삼켰다. 한 손에는 가슴줄이 덜렁거렸다. 수현이 저 줄이 왜 호두의 가슴에 안 있고 그의 손에 들려 있나 쳐다봤다.
수현의 시선을 느낀 남자가 잠깐 가슴줄을 들고 “아!” 조금 절망적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현은 그 신음에 살짝 웃었다.
“오늘 처음 한 가슴줄이거든요. 주로 목에 채웠는데 홀랑 몸통이 빠져나가서. 제가 다른 분이랑 이야기 좀 하고 있었는데 가만있는 줄 알았더니. 죄송합니다. 세게 묶으면 갑갑해해서 좀 느슨하게 풀었어요. 죄송합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수의사 선생님이 대형견을 놓치시면 안 되죠. 호두가 제가 아는 아이라 멈춰서 다행이지 그냥 쌩 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예? 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수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길 가다 처음 보는 이에게 봉변이라도 당한 듯 난처해했다. 당연히 알아볼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서로가 처음 봤을 때는 순한 얼굴을 한 어린 나이였는데. 지금 그는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큰 키로 껑충거리며 뛰어왔다.
거기 병원에 근무하는 김은정이 제 사촌이에요. 그리고 선생님 우리 십몇 년 전에 몇 번 본 적도 있는데, 밥도 몇 번 같이 먹기도 했는데 모르시는구나, 이럴 수도 없고. 괜히 혼자 이 기억 저 기억 들추면서 우리 좀 아는 사이인데요, 하면서 제 쪽에서 먼저 호들갑 떨기는 민망하다.
먼저 알은척했다가 끝까지 그녀를 기억 못 한다면 그 어색함은 어찌 감당하나? 슬쩍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워졌다. 기억을 곱씹어 보니 저 남자가 오히려 수현을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혼자만의 선명한 기억은 이쯤에서 그만 접어 두기로 했다.
그는 곧장 호두에게 가슴줄을 채우고 단단히 틀어쥐었다. 호두는 뭐가 불만인지 자꾸 수현의 곁으로 오려 했다. 킁킁거리던 호두가 냉큼 수현의 곁으로 파고들며 등 뒤의 가방에 코를 박았다. 빙긋 웃으며 수현이 가방을 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마당에 열린 무화과 몇 개를 따서 가방에 넣어 두었다.
“호두, 무화과 먹을래?”
1. 괜찮으세요?
물기를 뺀 가자미를 뒷마당에 널어 뒀다 다시 하룻밤 냉장고에 두었다. 적당히 꾸덕꾸덕하게 살이 굳은 모양이다. 생선을 말리면서 지난 장날 삼천 원 주고 산 덮개가 씌워진 체망을 더 큰 걸 사 올 걸 하는 생각을 했다.
불을 쨍하게 올린 프라이팬에 생선을 굽는다. 옆에는 된장찌개 뚝배기가 더운 여름에 어울리지 않게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요란했다. 분주하게 가스 불을 오가던 수현이 아차 하며 허리에 질끈 묶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러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수현은 마당 한구석에서 울창하게 자란 방앗잎을 손으로 빠르게 훑어 냈다. 깻잎처럼 커다랗게 무성해진 방앗잎을 바라보다 솎아 내야 하나 중얼거렸다.
다시 집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딱 맞게 한 면이 익은 가자미를 뒤집었다. 사선으로 넣은 칼집이 가자미구이를 더 예쁘게 만들었다. 노릇하니 예쁜 색깔에 흐뭇하게 미소가 어렸다.
냉장고를 열고 김을 꺼내 가스 불에 살짝 구웠다. 서걱서걱. 김 자르는 가위질 소리가 그리 경쾌하지 않다. 여름날의 습도는 제 몫을 충실히 하고 있다. 수현은 얌전하게 잘린 김을 접시에 놓았다. 곁들일 간장을 꺼내다 귀찮아져 꺼낸 종지를 다시 그릇장에 넣었다.
프라이팬에서 생선을 꺼내 접시에 올리면서 가자미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얼려 둔 가자미 중에 두툼한 것은 생선 스테이크로 내놓아도 될지 레시피를 머리로 그렸다. 일부러 묽게 끓인 된장국에 슬쩍 방앗잎을 올렸다. 부추 향이 좋은 오이소박이를 꺼내 그릇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냉동실에 있던 밥 하나를 밥그릇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밀폐 용기에 있었던 밥은 덩그러니 네모난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해도 혼자 사는 사람의 밥상은 표시가 났다. 옻칠이 제대로 된 수저를 들고 밥 한 술을 뜨기 시작했다. 조금 전 혼자 사는 이의 밥상에 대한 서글픈 감상 따위는 언제였나는 듯 맛있게 그릇을 비워 냈다.
비록 전자레인지에 데운 밥이라도 고슬고슬하니 맛이 좋았다. 가자미는 간이 잘 맞았고, 김도 생각보다 습기를 먹지 않아 먹을 만했다. 잘 익은 된장은 맛이 들어 찌개가 짙고 깊었다. 오이소박이는 상큼하니 입 안을 기분 좋게 했다.
새벽부터 살짝 과식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맛있게 밥을 비웠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수현은 바로 식탁 의자에서 일어났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했다. 젖은 행주로 식탁을 닦고 다시 마른행주로 물기를 훔쳐 내는 몸짓은 가벼웠다.
이를 닦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수현은 작은 수첩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적었다. 잊은 게 없는지 잠깐 생각을 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둔 메모지를 가져와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거실 소파 테이블에 던져둔 작은 백팩에 생수병을 넣고 운동화를 신었다. 현관문을 닫다 말고 집 안으로 소리쳤다.
“같이 갈래?”
기척이 없는 집 안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걸음을 빨리했다. 수현은 마당을 벗어나다 눈에 거슬리는 무성한 잡초 더미를 대충 손으로 뽑았다. 구석에 나뒹구는 호미를 가져와 땅을 골랐다. 풀을 뜯다 보니 이게 부추인가 잡초인가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마당 한구석에 휙 던져 버렸다.
지저분해진 손을 수돗가에서 씻고 물기 묻은 손을 공중에 툭툭 털었다. 문득 시선이 멈춘 빨래 건조대에 걸린 수건 몇 장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널어 놓은 빨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 이 새벽에 다시 발견했다. 나무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주변을 돌아봤다.
아, 행주 천 하면서 메모에 빠진 게 이거다. 휴대전화 메모란에 톡톡거리며 남겨 두었다. 처음에는 천을 떼다 만들어 볼까 했는데 그런 노동까지는 감당하기 힘들 거 같아 사서 쓰기로 했다.
새벽밥까지 챙겨 먹고 나섰음에도 아직 밖의 빛깔은 짙다. 등에 야무지게 붙은 백팩이 곧은 자세를 더 돋보이게 했다. 팔을 쭉 펴서 손깍지를 끼고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는 자세가 하루 이틀 한 모습이 아니다. 대문 앞에서 잠깐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던 수현은 숨을 고르고 곧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가 한결 덜하다. 이제 여름도 한 고개 푹 꺾여 간다. 일기 예보의 비 소식이 맞을 모양인지 이 시간이면 해가 떠야 하지만 오늘은 흐리기만 했다. 수현은 뛰던 걸음을 멈췄다.
예전에는 기찻길이었던 지금 이 길은 기차 기적 소리 대신 사람들의 아침 조깅으로 분주했다. 수현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기차가 다니던 길이다. 어느새 나이를 먹고 이 고장을 다시 찾았을 때 기차는 떠나고 대신 멋들어진 산책 코스로 변해 있었다.
세월의 변화를 새삼 확 건너뛴 느낌에 고개를 쭉 빼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쯤에 이모 집이 있었다. 그때 집을 시세보다 싸게 팔았니 어쩌니 하던 이모는 그 돈으로 언니인 수현의 엄마에게 빚을 갚았다. 그날 이모가 휴 한숨을 쉬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했다.
그 시절 이 동네에는 낡은 집들이 여기저기 골목 속에 삐뚤빼뚤 숨어 있었다. 저 골목인가 싶어 들어갔다 찾는 집이 나오지 않아 초행길의 사람들을 늘 당황케 했던 그런 동네. 새벽에도 기차가 시끄럽게 달리던 동네는 이 지역에서 제일 낙후된 동네였다. 낡은 집만큼의 경제적 수준을 가진 이들이 고만고만하게 살던 곳이었다.
대대적인 도시 정비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모는 집을 팔았다. 그때 수현의 엄마는 이 동네에 헐값으로 나온 땅을 사들였다. 세월이 흘러 동네는 고급 주택가로 변했다. 이쯤에서 늘 사람들의 뒷북치는 소리로 이모는 집을 팔고 몇 년 후 오른 땅값에 가슴을 쳤다. 반면 수현의 엄마는 뒤에서 돈을 세며 자신의 부동산 운세에 함빡 웃음을 지었다.
이모가 살던 집을 팔고 이사 가던 그날의 기억. 그리고 수현이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삿짐을 바라보던 이모의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이모는 사는 형편이 점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언니인 수현의 엄마에게 어떤 감정이었을까?
수현은 긴 세월을 살아 낸 노인처럼 집들을 바라봤다. 지금은 수현이 이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고 있다. 이모네는 주변 동네로 밀려났다. 이십여 년 동안의 도시 발전 이면에 이모네와 수현의 가족사가 복잡하게 공존했다.
등 쪽에서 울리는 휴대전화의 진동에 수현은 과거에서 빠져나왔다. 전화를 꺼내 들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시간에 안 자고 무슨 전화야?”
― 지수현, 개업은 언제 할 거야?
언제나 단도직입적인 은정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따로 개업식 잡고 그런 건 안 하려고. 문 열어 보고 손님 오면 그날이 개업인 거지.”
― 그럼 오늘 문 열긴 여는 거야?
“응. 어제 재료 준비 다 했어. 밥이나 먹으러 오든가?”
― 팔자 참 편하게 장사 시작하는구나. 엄마! 수현이 개업식 안 할 거래.
휴대전화에 대고 이모를 부르는 소리가 크다. 수현은 그 기세에 깜짝 놀라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너는 괜찮아? 다리가 뭉쳤는지 뛰지는 못하겠어서 그냥 걷다가 뛰다가 그러고 있어.”
― 엄마가 아침 먹으러 집으로 오라고 하는데 올 거지? 우리 엄마는 자고 일어나자마자 너 찾아. 어제 수현이가 밭 잘 갈았다고 칭찬이 쏟아져. 너는 중간에 간 것도 모르나 봐. 아, 엄마가 불러. 대충 뛰고 와. 전화 끊을게.
밥은 이미 먹었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성격 급한 은정은 제 용무 다 봤다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수현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모는 벌써 올해 김장 배추 심을 생각에 밭고랑을 고른다고 했었다. 슬렁슬렁 소풍 삼아 따라갔던 밭 고르기는 수현이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땀이 밭고랑 사이로 굵은 소금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은정의 전화에 다리가 괜히 더 뻐근해져 걸음을 멈추었다.
쉽게 속력이 안 붙어 이렇게 저렇게 뛰어 보지만 다리는 여전히 무겁다. 새벽밥을 너무 먹었다고 후회했다. 저만큼이라도 뛰어 보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시동을 걸었다. 저쪽에서 주인도 없는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슬렁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공원 곳곳에 ‘애완견의 목줄을 착용합시다’, ‘배설물은 직접 치웁시다’ 하는 현수막이 지겹게 보였다.
큰 개가 어찌 목줄도 안 하고 돌아다니나? 유기견인가 싶어 쓱 쳐다보니 낯이 있다. 밝은 핑크색 옷을 입은 개는 수현을 알아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호두구나.”
몸을 숙인 수현의 어깨에 제 얼굴을 부빈다. 혹시나 싶어 목에 달랑이는 이름표를 확인하니 호두가 맞다. 이름과 연락처가 새겨진 체인줄만 목에 달랑 달려 있을 뿐 목줄도 가슴줄도 없는 호두가 의아했다.
아는 얼굴이라고 수현에게 덥석 안겨 오는 게 힘이 장사다. 덩치는 커도 이놈 이제 두어 살 된 녀석이라 장난기가 한가득이다. 입은 옷이 낯익다 했더니 얼마 전 수현이 만들어 준 옷이다. 하룻밤 정이 무섭다고 옷 만들어 입히고 재워 줬다고 얼굴을 잊지도 않았다.
수현의 다리에 온몸을 부딪치며 반갑다 한다. 은정이 근무하는 동물병원의 호두다. 은정의 말로는 늘 여자한테 들러붙어 변태 호두라고 했다. 동물병원 입구에 개조심이라고 경고문을 붙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말로 수현을 웃게 했다. 수현은 그 고민에 대한민국 동물병원 어디에도 개조심 같은 게 붙어 있는 곳은 없을 거라고 했다.
호두가 하룻밤 자고 가던 날. 안 입는 티셔츠에다 대충 재봉틀로 박아 만든 옷이 제값을 했다. 한층 더 예뻐 보인다.
수현은 호두의 앞발을 번쩍 들어 올려 옷 길이가 맞는지 확인했다. 부산스러운 호두 때문에 제대로 입혀 보지도 못했었다. 펄쩍펄쩍 뛰는 녀석을 달래다 한 번 빨아 입히라고 은정에게 옷을 건넸다. 한 벌 더 만들어 줄까 하며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대체 이 시간에 혼자서 이놈이 여기 왜 있나 싶어 주변을 살폈다. 저쪽에서 한 남자가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호두 주인이다. 아마도 잠깐 줄을 놓쳤지 싶은데 그래도 대형견을 키우면서 그런 주의도 안 한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견주한테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입술을 떼려는 찰나,
“죄송합니다. 잠깐 아는 분이랑 이야기하는데 냉큼 뛰어가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숙이는 모양에 되레 수현이 무안해져 말을 쑥 삼켰다. 한 손에는 가슴줄이 덜렁거렸다. 수현이 저 줄이 왜 호두의 가슴에 안 있고 그의 손에 들려 있나 쳐다봤다.
수현의 시선을 느낀 남자가 잠깐 가슴줄을 들고 “아!” 조금 절망적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수현은 그 신음에 살짝 웃었다.
“오늘 처음 한 가슴줄이거든요. 주로 목에 채웠는데 홀랑 몸통이 빠져나가서. 제가 다른 분이랑 이야기 좀 하고 있었는데 가만있는 줄 알았더니. 죄송합니다. 세게 묶으면 갑갑해해서 좀 느슨하게 풀었어요. 죄송합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수의사 선생님이 대형견을 놓치시면 안 되죠. 호두가 제가 아는 아이라 멈춰서 다행이지 그냥 쌩 갔으면 어쩔 뻔했어요?”
“예? 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수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길 가다 처음 보는 이에게 봉변이라도 당한 듯 난처해했다. 당연히 알아볼 거라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서로가 처음 봤을 때는 순한 얼굴을 한 어린 나이였는데. 지금 그는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큰 키로 껑충거리며 뛰어왔다.
거기 병원에 근무하는 김은정이 제 사촌이에요. 그리고 선생님 우리 십몇 년 전에 몇 번 본 적도 있는데, 밥도 몇 번 같이 먹기도 했는데 모르시는구나, 이럴 수도 없고. 괜히 혼자 이 기억 저 기억 들추면서 우리 좀 아는 사이인데요, 하면서 제 쪽에서 먼저 호들갑 떨기는 민망하다.
먼저 알은척했다가 끝까지 그녀를 기억 못 한다면 그 어색함은 어찌 감당하나? 슬쩍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워졌다. 기억을 곱씹어 보니 저 남자가 오히려 수현을 기억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혼자만의 선명한 기억은 이쯤에서 그만 접어 두기로 했다.
그는 곧장 호두에게 가슴줄을 채우고 단단히 틀어쥐었다. 호두는 뭐가 불만인지 자꾸 수현의 곁으로 오려 했다. 킁킁거리던 호두가 냉큼 수현의 곁으로 파고들며 등 뒤의 가방에 코를 박았다. 빙긋 웃으며 수현이 가방을 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마당에 열린 무화과 몇 개를 따서 가방에 넣어 두었다.
“호두, 무화과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