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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떡을 향해 저절로 움직이는 손을 공중에 들고 있던 수현은 그저 웃고 만다. 여기로 내려올 때 따로 엄마에게 의논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이모에게 전해 들은 엄마는 수현에게 전화로 잔소리를 오랫동안 했다.

그렇게 한동안 엄마에게 시달리고 나니 이번에도 가게 오픈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말해 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게 뻔하다. 자리나 잡히면 말하자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

“네 엄마랑 나랑 어릴 때 지독하게 못살았잖아. 남의 집 잔칫날 구경 가면 이렇게 시루에 떡을 하는데 김 빠져나가지 말라고 옆에 밀가루를 두툼하게 붙이는 거라. 그때는 너희 외갓집이 그리 가난했어. 탄 검불 묻은 밀가루 뭉치가 무슨 맛이 있을 거라고 그거라도 얻어먹으려고 했어. 내가 구경 가면 그것도 얻어먹기가 힘든데, 네 엄마가 가면 어떻게 맞췄는지 옛다 하며 실한 떡을 뚝 떼어 주는 거라. 네 엄마가 그리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딜 가도 먹을 복이 있었어. 그러니 지금도 그리 잘사는 거지. 그 복잡한 콩나물시루에도 가로로 누워 자라는 편한 놈이 있다고 네 엄마 팔자가 그래. 하는 일마다 돈이 따르고. 그래서 너도 네 아버지도 편하게 사는 거잖아. 내가 우리 언니 팔자 반만 닮았으면. 우리 은정이도 여기 내려와서 고생 안 할 텐데. 그러니 이것아, 우리 언니 속 그만 썩이고 좀 잘해.”

이모는 편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 속에 지난 세월의 고생은 숨기지 못했다. 굽은 어깨에 요즘 들어 다리는 더 아프신지 무릎을 콩콩 두들기는 주름진 손과 손톱 밑은 노동으로 늘 까맣다.

그런데 이모가 모르는 것도 있다. 콩나물시루에서도 가로로 자라는 팔자라고 하는 엄마는 쉽게 살지 않았다. 엄마는 몇 해 전 아빠 쪽 친척분이 운영하시던 회사에 대표 이사로 들어갔다. 조건은 투자였다. 아버지와 수현은 아슬아슬한 회사를 그것도 생전 모르던 분야의 일을 떠안아서 뭐 하려고 하냐고 말렸지만 엄마는 회사를 인수했다.

담당 회계사한테 기업 재무제표 보는 법을 익히고 몇 년 치 입출금 전표를 다 살펴보면서 명목 없이 나가는 돈을 다 따졌다. 이전부터 갖고 있는 부동산 관련 세금 문제도 모든 걸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을 하시는 분이니 회사 일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지독하게 매달린 끝에 엄마는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재정 문제만큼은 그 누구도 엄마를 속일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기술 분야를 살펴보고 싶다며 얼마 전부터는 해외 박람회까지 다니신다.

이모는 수현의 엄마와 두어 살 차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언니인 수현의 엄마보다 십 년은 더 들어 보인다. 노동으로 인한 고생이 이모의 어깨를 짓눌렀다. 잠깐 씁쓸한 기분이 들어 수현은 털어 내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접시에 덜어 놓은 떡을 집어 먹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수현의 눈이 반짝였다.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던지 이모는 수현의 표정을 보고 뿌듯해했다. 포슬포슬하게 찐 팥시루떡은 요즘 파는 떡과는 달랐다. 설탕을 넣지 않아 단맛은 없다. 찹쌀이 아니고 멥쌀에 소금 간으로만 한 시루떡은 두툼했다.

떡을 자를 때 칼이 슥슥 잘 밀려갈 때 알아봤다. 찹쌀에 비해 식감이 오히려 푹신한 것이 먹기에도 편했다. 팥고물도 고슬고슬 잘 살았고, 간도 딱 맞다.

“수현아, 떡 다 나눠 주고 시루는 은정이 편에 보내든가 아니면 내가 장날 나왔다 갖고 가마.”

“이모, 나 떡 한번 해 볼래. 오랜만에 제대로 된 멥쌀 시루떡이 반갑네.”

“응. 그럼 한번 해 봐. 수현이 니 손재주로 하면 나보다 더 잘할 거야. 나도 누구라도 내 솜씨 알려 주면 좋지.”

“이모 정말이지? 그럼 나 가게 손에 좀 익으면 이거 들고 이모 집에 갈게. 찹쌀로 하면 이것보다 얇아서 별로야. 씹는 식감도 별로고. 손으로 들었을 때 두툼해야 시루떡이 이쁘지.”

“그래, 맛 괜찮지? 요즘 떡은 죄다 설탕만 넣고 떡이 다 찹쌀로만 해야 되는 줄 아는지 찍찍 늘어나는 게 무슨 맛이라고.”

수현은 투박한 시루를 손으로 만져 보다 아직 온기가 식지 않아 놀라 손을 거뒀다. 이런 시루를 이고 온 이모가 대단했다. 조금 빨개진 손을 물에 잠깐 담갔다 수현은 가스 불을 올렸다.

“이모 밥 먹고 가. 아직 우리 식당 메뉴 안 드셔 보셨잖아. 금방 돼.”

“됐어. 나는 그런 거 들쩍지근해서 싫다야. 나도 바빠. 저기 너희 외갓집 동네 큰굿 한다고 해서 구경 가기로 했어. 작두도 타고 오랜만에 큰굿이라 볼만해.”



“원장님, 호두 또 땅 파요.”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보호자를 보내고 진료실을 정리하던 준영이 후다닥 뒷마당으로 나갔다. 뛰는 걸음에 허벅지며 종아리가 심하게 당겼다. 잠깐 윽 하는 소리를 냈다.

오전에 소형견들 진료가 몇 건 있었고, 미용받으러 온 개들도 있었다. 그래서 덩치가 큰 호두를 뒷마당 견사로 보냈더니 또 이 야단이다. 실컷 땅을 파 놓고 기분이 좋아진 호두는 젖은 흙이 묻은 발로 매달리려 했다. 따라 나온 병원 간호사 나희는 재빠르게 준영을 비키게 하고 목줄을 가져와 채웠다.

“호두야, 여기 석유 나와? 왜 잊을 만하면 땅을 파고 지랄이야?”

처음에는 조용히 이야기하던 나희가 지랄이라는 단어에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라도 푸는지 사심을 잔뜩 실어 말했다. 괜히 그 소리가 자신한테 하는 거 같아 준영은 거북이처럼 목이 쑥 들어갔다.

목줄을 채우고 나희는 호두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제 머리가 더 아프다. 밖에서 한 대 맞고 온 자식을 둔 것처럼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나희가 구석의 수돗가로 가서 발을 씻겨 병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준영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삽을 가져와 땅을 다졌다. 뒹구는 물그릇과 사료 그릇을 마당 저쪽에서 찾아 자리를 잡아 주었다. 뒷마당에 오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따로 챙겨 둔 사료 그릇은 멀쩡했다. 준영은 그나마 이놈에게도 마지노선은 있나 싶어 화를 거둬 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개라고. 에너지가 넘치는 호두를 이해하기로 했다.

걸핏하면 마당을 갈아엎어 버리는 호두 때문에 시멘트로 확 다 발라 버리고 싶지만, 세를 들어 사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준영은 삽으로 땅을 평평하게 하고 발로 콩콩 밟아 탄탄하게 다졌다.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허리를 폈다.

새벽부터 의도하지 않은 달리기로 기운이 빠져 죽겠는데 거기다 호두는 그게 부족했다는 듯이 노동을 시킨다. 겨울이 오면 좀 나을란가? 그때쯤이면 땅이 얼어 파기 힘들어 저놈도 멈출까? 대체 겨울왕국은 어디쯤인지, 준영은 찾기라도 하는 듯 마당 너머를 쳐다봤다.

확 트인 풍경에 방금 울화통이 터진 마음이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준영의 병원 2층 건물 뒤로는 흙길 너머 논이다. 파릇파릇한 벼가 농부가 아님에도 마음이 가득 차게 했다. 그는 농부의 아들이다.

지금은 논농사보다 특성화 작물에 힘을 쏟고 계시지만, 그의 아버지는 벼를 심고 밭을 갈았다. 소를 키워 슬하에 남매들을 중·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대학을 보냈다. 지금쯤 그의 고향 집에도 저런 풍경이 보일 거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 전화라도 한번 해야겠다.

준영의 병원이 있는 이 지역은 독특했다. 얼마 전부터 트렌디하게 작은 커피숍이 생기고, 빵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이 지역은 뒤의 농경지에 묶여 큰 건물을 올릴 수가 없다고 했다. 준영이 지금 운영하는 병원 건물은 1층이 병원이고 2층은 그가 거주하는 집이다. 주변 건물들도 다 그렇게 2층이거나 단층이었다.

발전이 없다고 했던 동네가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기차가 달렸던 철길이 공원으로 바뀌었다. 그 길을 끼고 고급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덩달아 여기까지 조금씩 들썩거렸다.

그럼에도 아직 장날이 존재하는 재래시장이 근처에 있다. 읍 단위 시골 마을에서는 장날에 맞춰 나이 드신 분들이 오간다. 그날이 되면 나이 든 이와 예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뒤섞여 묘한 그림을 이루는 곳이다.

준영은 뒷문을 지나쳐 병원 앞으로 돌아와 정문을 열고 들어섰다. 호두는 그가 없을 때 야단이라도 맞았는지 풀이 많이 죽어 있었다. 준영을 보고 호두는 제 편이 왔다고 또 수선을 피우려고 했다. 그는 새벽 사건의 뒤끝이 남아 일부러 모른 척했다.

미용실 안쪽에서 그렁그렁하는 소리가 났다. 안을 보니 호두랑 똑같이 생긴 천둥이가 목욕 중이다. 준영은 눈짓으로 은정에게 들어왔다는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아 주고 나왔다. 호두는 병원 내 놀이터에 줄이 묶여 처량한 눈빛으로 준영의 눈치만 살폈다.

“아이고, 원장님. 그래도 배운 집 자식이라고 호두는 저리 얌전한데, 우리 천둥이는 매일 사고 치고, 질투도 많고, 언제쯤 철들까요?”

“배운 집 자식이라니? 아, 어머니. 제가 병원 생활 오래는 안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봐요.”

간호사 나희가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표현이 우습다며 천둥이 견주랑 말을 이어 갔다.

배운 집 자식? 있는 집 자식, 아빠가 의사니 병원비는 안 들겠다, 그런 소리는 자주 들었는데 배운 집 자식이란 표현에 그도 잠깐 웃었다.

“배운 집 자식 맞지. 아빠가 의사 선생님이니 엘리트죠. 그러니 호두는 점잖은 양반 같아요.”

천둥이 견주가 호두에게 손 하니 턱 주고 파이팅하자 하니 또 다 받아 준다. 호두도 천둥이 견주도 까르르 좋다고 서로들 난리 법석이다. 배운 집 자식 호두가 지금은 병원 영업을 한다. 내일 명함 한 장 파야겠다. ‘사랑동물병원 영업부장 강호두’ 그렇게 박아 줘야겠다.

호두보다 한 살 더 많은 천둥이도 장난기가 가득이다. 누구는 레트리버가 천사견이니 어쩌니 해도, 키워 보면 다르다. 탈도 많고 말도 많고 기운도 세고, 그럼에도 순진하고 천진난만해 대놓고 야단도 못 친다.

천둥이 견주는 말은 저리해도 볼 때마다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다. 오늘 아침에 은정이 대형견 목욕 스케줄이 있다고 하더니 그게 천둥이었나 보다. 준영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운 집 자식 호두를 한껏 주눅 들도록 쳐다보고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가 엄청 길다. 준영은 대단한 운동은 못 해도 늘 체력 관리에 신경 쓰고 있었다. 큰 병원에서 수술 보조 제안이 들어오는 일도 많았다. 매일 서서 힘이 좋은 동물들을 다루려면 허리 근력이 좋아야 했다. 그러니 꾸준한 운동은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오늘 아침은 그의 한계를 넘는 운동이었다. 물론 아무리 별나게 구는 호두라 해도 그의 통제를 벗어나게 두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그랬는데 새벽에 벌어진 일은 순식간이었다. 아직도 여기저기 쑤시는 게 아마도 자고 일어나면 더 힘들지 싶다.

대체 그 여자는 누구인가? 운동선수가 분명했다. 자신의 병원에 국가 대표 달리기 선수가 누가 있나 떠올려 보지만, 분명히 처음 보는 여자였다.

피곤했던지 그도 모르게 눈이 감기려는 순간,

“깡쭌영 원장님. 커피.”

어느새 진료실에 들어와 커피와 작은 접시에 담긴 무화과를 내려놓는 은정이다. 어, 무화과? 다시 새벽의 국가 대표 달리기 여자 선수가 생각났다.

“은정아, 우리 손님 중에 운동선수도 있냐?”

“오는 보호자들 직업을 다 묻는 것도 아니고 그걸 내가 어찌 알아? 태권도 관장님은 계시잖아.”

남자가 아니고 여자라고 새벽의 소동을 이야기하려다 부끄러워 입을 다물었다. 그런 준영을 보던 은정은 실없다는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갔다.

김은정과 강준영은 열아홉 살을 벗어난 어느 날 재수 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유독 의자가 불편해서 허리를 아프게 하던 대입 재수생반에서 만난 그들은 같은 대학을 들어가게 됐다.

흔하디흔한 스토리로 어린 날 아주 잠깐 준영이 은정에게 우정 그 이상의 감정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은정에게는 학원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가 우정 이상을 넘어서서, 지금까지 연인으로 묶여 있다.

은정이 학교를 졸업하고 그들은 더 이상 겹치는 일상이 없어졌다. 그렇게 준영이 수의대 6년을 다녀야 하는 과정을 지내면서 연락이 몇 번 뜸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들이 이어져 올 수 있던 것은 은정의 우정 그 이상의 남자가 준영에게도 꽤 깊은 친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또 다른 친구 정이환은 지금 해외 지사에 근무 중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24시간 운영되는 메디컬 센터에서 근무하던 준영이 은정의 안부 전화에 여기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근처에 우연찮게 학교 선배님이 운영하시는 병원에 들러 인사를 드렸더니 마침 거기가 은정이 애견 미용을 시작한 병원이었다.

선배는 딸이 있는 미국에 몇 년 가 있기로 했다며, 혹시 대신 운영해 볼 생각이 없냐는 말을 했다. 생각을 해 보겠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어느 날 뒤돌아보니 병원 원장으로 준영이 서 있고, 은정은 미용실 실장으로 오늘날까지 왔다.

결정하자마자 한순간이었다. 비어 있던 2층을 거주 공간으로 쓰고, 병원을 다시 정비하고, 은정은 깡쭌영 하는 대신 남들 앞에서는 원장님 하는 콧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렇게 친구 사이와는 다른 얼굴로 동물병원 원장 강준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여우라는 말을 그는 은정을 보면서 수긍했다.

골치 아픈 영업 사원들 문제나, 떼를 쓰고 무작정 깎아 달라는 보호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은정의 몫이었다. 때마다 오는 세금 문제도 척척 알아듣고 그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가 기존에 페이 닥터로 있을 때는 몰랐던 직접적인 돈 문제나 동물병원에 맡겨 놓고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유기 동물들 문제 역시 은정은 제 일처럼 나서서 처리했다. 아마도 이 병원의 지분을 따진다면 돈을 떠나 은정이 원장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늘 고마워하고 있다.

준영은 과거의 기억에서 머물다 새삼스레 은정이 고마워 커피라도 사야겠다 싶어 일어섰다. 늘 땅 파고 사고 치는 호두를 수습해 주는 나희에게는 아주 단 음료를 줘야겠다. 보슬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우산을 찾았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는데 병원 건너편이 좀 달라져 있었다.

바로 앞 은정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칼국숫집이 사정상 문을 닫았다. 거기까지가 자신이 아는 전부다. 그 자리에 뜬금없이 멋진 카페처럼 보이는 가게가 생겼다.

보리언덕아래? 보리밥집인가?

그동안 주로 뒷문으로 드나들고 차를 몰고 나가서 몰랐다.

“은정 씨? 저게 언제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