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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스터는 사기꾼 1권 4화
BJ시리
씩씩거리며 개인 작업실로 돌아왔다.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깰룩?”
표정을 본 깰룩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뛰어왔다.
“뭐겠냐, 망할 드라비라 새끼 때문이지. 그놈의 아란탈, 아란탈! 아란탈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냐? 멍청하고 배만 나온 놈이.”
“깨, 깰룩.”
분을 참지 못하고 욕을 하자, 깰룩이가 한껏 몸을 움츠렸다. 아란탈인 깰룩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털썩 주저앉듯 의자에 몸을 뉘었다.
“후, 짜증 나.”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깰룩?”
깰룩이가 내 의자를 메인 디스플레이를 향하도록 돌렸다. 화면엔 어떤 유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그게, 플레이어들 튜토리얼을 모니터링하다가 저 유저를 발견했는데요. 저 유저가 하는 게 너무 웃겨서 우울할 때마다 보려고 따로 저장해 놨습니다, 깰룩.”
“그래?”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아, 저거 그 유저잖아.”
내 목구멍에 빵을 쑤셔 넣었던 또라이 유저였다.
그녀는 내가 말한 대로 커다란 나무 밑 구덩이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남이 개고생하는 거 구경하는 것만큼 꿀잼이 없지.
옆에서 내 표정을 본 깰룩이가 경직된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팝콘이랑 콜라가 없는 게 아쉽네.”
* * *
캄캄한 어둠 속.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확 불이 피어올랐다.
“어휴, 뭐가 이리 캄캄해. 횃불 가져오길 잘했네.”
광장에서 석익을 질식사시킬 뻔했던 또라이 유저, 맘이시리네가 횃불을 높이 치켜든 채 구덩이로 기어 들어왔다.
“아오, 좁아.”
구덩이는 그야말로 간신히 사람 하나가 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다. 한창 용을 쓰며 전진하던 그때.
쿠구구궁!
순간, 구덩이 전체가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 으아아, 뭐야!”
완전히 구멍에 끼여 꼼짝 못하게 된 맘이시리네가 비명을 질렀다.
“끼야악, 뭐야!”
구덩이는 마치 생물의 식도처럼 꿈틀거리며 그녀를 안쪽으로 집어삼켰다. 온몸에 꾸물거리는 구덩이가 느껴지는 게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이 변태 새끼가!”
맘이시리네는 구덩이 벽에 마구 발길질을 했다. 물론 공간이 없어 별 의미는 없었다.
한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마치 짤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반죽 덩어리처럼 구덩이에서 뚝 떨어져, 자작하게 고여 있는 물 위로 첨벙 떨어졌다.
“아이고, 다 젖었네…….”
맘이시리네는 울상을 지으며 일어섰다.
띵!
그때, ID카드가 허공에서 생겨나더니 어스레한 빛이 동굴 안을 밝혔다.
[히든 스테이지 ‘망자들의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탐험가’ 성향을 획득했습니다.]
[‘탐색’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탐험 키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성향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성향 습득 완료.
성향에 따라 친해질 수 있는 오더코르트인들이 달라지며, 당연히 퀘스트도 성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획득할 수 있는 성향의 개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현재 맘이Siri네 님은 오더코르트인들에게 탐험가 성향의 퀘스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에 따라 요구되는 친밀도가 다르며, 친밀도를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
신이 나서 홀로그램 창을 살펴보던 맘이시리네가 횃불을 들고 있던 손으로 창을 닫았다.
그러자 순간 전등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온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뭐지?”
어둠 속을 더듬어보니, 들고 있던 횃불은 부러져 달랑거리고 있었고, 불이 붙었던 부분이 웅덩이 같은 것에 잠겨 있었다.
“…….”
음산한 분위기의 동굴 안에는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다, 다른 횃불을 켜면 되지. 여러 개 사와서 다행이다. 무서워, 무서워.”
맘이시리네는 조심히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가방을 뒤적였다.
곧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동굴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감도는 선홍빛이었고, 혐오스럽게 꿈틀거리는 주름이 많았다. 마치 커다란 짐승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맘이시리네는 기분 나쁜 동굴이라며 투덜거렸다.
횃불의 손잡이 부분으로 동굴의 벽을 건드리자, 꿈틀거리듯 움츠러들었다.
“헐, 꼭 살아 있는 것 같아.”
맘이시리네는 다시 한 번 벽을 콕 쑤셨다.
꿈틀.
“오오.”
콕콕콕콕콕콕.
어쩐지 중독성이 있다. 더욱 세게 후벼 파고 있던 그때.
그어어억!
“힉, 뭐, 뭐야?”
횃불을 불쑥 앞쪽으로 내밀어 보았지만 어두컴컴할 뿐, 괴상한 소리가 들린 안쪽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씨, 그러지 마. 나 공포 게임에 약하단 말이야.”
‘그냥 포기할까?’
나약한 생각이 맘이시리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냐! 까, 까짓 거 계속 들어가 보지 뭐! 나와 봤자 몬스터밖에 더 나오겠어?”
배에 힘을 주고 빽 외쳤지만, 금세 다시 반쯤 울먹거리던 맘이시리네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횃불을 높이 쳐들고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별게 있으려고……. 아냐, 괜히 생각하지 말자. 없을 거야. 그래, 아무것도 없다고. 이 게임은 쓸데없이 분위기 조성을…….”
스스로를 세뇌하던 그때, 번쩍 들고 있는 횃불의 반경에 한눈에 보기에도 섬뜩한 것이 쑥 하고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부패하다 만 시체 같은 형상의 괴물이었다. 거적때기 같은 것을 옷이라고 걸치고 있고, 눈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데다 동공은 무언가 끼인 것처럼 허옇다.
“으아아아악!”
맘이시리네는 혼비백산하여 다시 왔던 길로 뛰었다. 뒤쪽으로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괴물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온 곳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맘이시리네는 다급하게 횃불을 번쩍 들었다.
“어, 없어! 나가는 길이 없어!”
분명 구멍을 통해 떨어졌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며 조급해지는 순간.
“어떡해! 어떡해! 아아아악!”
무언가 어깨를 콱 잡아끌어, 맘이시리네는 뒤로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테리코론 제 다비스 캬니!”
눈앞에는 끔찍하게 생긴 이빨을 드러낸 채 괴상한 언어로 무어라 지껄이고 있는 보라색 피부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 위에는 ‘구울’이라는 빨간색 글자가 떠 있었다.
“끼야아, 징그러! 저리 꺼져, 꺼져! 이 못생긴 새끼야!”
동굴 안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른 맘이시리네는 손에 들고 있던 횃불로 구울의 머리통을 마구 후려갈겼다. 그 마당에 불이 붙은 부분이 구울의 아가리에 푹 들어갔다.
그어어어억!
불붙은 나무 막대가 입 속을 파고들자, 구울은 미친 듯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맘이시리네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서, 왼쪽 팔뚝에 차고 있던 나무 방패로 구울을 벽으로 있는 힘껏 밀쳐 냈다.
“엄마아아아!”
그러고는 비명을 지르며 구울을 지나쳐 냅다 달렸다. 나무 방패는 고작 그 한 방을 갈겼다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렸다.
“카드! 카드!”
맘이시리네는 급히 외치며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소환된 ID카드를 움켜잡은 왼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헉, 헉! 미쳤나 봐! 미쳤어, 미쳤어!”
그어어어.
그르르르.
동굴 안이라 울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울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 켁!”
앞으로만 계속 뛰던 맘이시리네는 거대하고 딱딱한 무언가와 부딪히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 못하겠어! 진짜 못하겠어, 이거! 못하겠어!”
맘이시리네는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다급히 ID카드를 뒤적였다. 화면은 희미하긴 했지만 어두침침한 동굴에서는 제법 충분한 빛이었다.
[로그아웃을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손으로 ‘예’ 버튼을 눌렀다.
[로그아웃이 가능한 지역이 아닙니다. 안전한 마을에서 다시 시도해 주세요.]
“미친! 안 꺼져! 어떡해!”
구울의 울음소리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그 순간이었다.
[적외선 카메라로 변경]
떠오른 문구를 보자마자,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맘이시리네는 ID카드가 부서져라 그것을 눌렀다.
그러자 ID카드가 카메라 화면이 되어 떠올랐다. 카드 안 화면에는 초록색으로 물든 동굴의 모습이 보였다.
“오, 오, 됐어. 됐어! 이거면 어떻게든…….”
맘이시리네는 낭떠러지에서 동아줄을 부여잡은 것처럼 ID카드를 꼭 쥐고, 기타 설정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맘이시리네는 ID카드를 고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바로 앞에 카드가 떠 있어 마치 고글을 쓴 듯한 모습이었다. 카드는 움직이는 것에 맞춰 자동으로 돌아갔다.
맘이시리네는 정면에 있는 벽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세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앞에 있었다.
“뭐야, 여기 부딪힌 거였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밝은 초록빛의 무언가가 훅 하고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몸을 재빨리 틀었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팔뚝을 물어뜯었다. 그 충격에 맘이시리네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아악! 이게, 진짜!”
맘이시리네는 팔의 고통도 잊은 채, 온 힘을 다해 악을 쓰며 양다리와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더욱 많은 것들이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게임이기 때문에 팔이 잘려 나가도 힘껏 꼬집는 정도의 고통뿐이지만, 축축하고 징그러운 시체들의 이빨이 생살을 물어뜯고 있는 것은 고통 이전의 문제였다.
맘이시리네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뒤적였다. 손에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잡혔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언뜻 만져 봐도 날카롭고 긴 무언가가 잡혔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급한 대로 손에 움켜쥔 맘이시리네는 구울들을 향해 그것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리드미컬한 소리와 함께 찝찝한 액체들이 사방에 튀겼다.
* * *
“아오, 답답해! 야, 이 새끼들아! 목을 물라고! 목을!”
참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바퀴 달린 의자가 저만치 굴러갔다. 깰룩이가 허겁지겁 의자를 돌려 놓으러 뒤쪽으로 사라졌다.
“아니, 수가 저렇게 많은데 이제 튜토리얼 끝낸 유저 하나 못 죽여? 어? 말이 돼? 아오, 진짜. 아니, 거기가 아니라니까! 어딜 물고 있는 거야!”
확 발길질을 하자, 발끝에 맞은 깰룩이의 책상 옆쪽이 움푹 팼다.
“저 무능한 새끼들! 싹 다 해고시켜 버려! 필요 없어!”
기분 전환 좀 하려고 했더니만, 열불이 나서 더는 못 보겠다.
나는 씩씩거리며 깰룩이를 향해 물었다.
“야, 그래서 결국 쟤 어떻게 되는데? 죽어, 살아?”
“저는 절대 스포를 하지 않습니다, 깰룩.”
그 후에도 몇 번씩이나 졸라보았으나 깰룩이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지독한 놈.
결말이 궁금했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깰룩이를 흘겨보던 눈길을 거두고 다시 고개를 돌려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하아, 하아…….”
벽에 기댄 맘이시리네가 ID카드를 확인했다. 한구석에는 ‘플레이타임 00:56:43’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이 무덤인지 나발인지에 갇힌 지 벌써 거의 한 시간이야?’
맘이시리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ID카드로 로그아웃을 시도한 것만 50번도 더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로그아웃이 가능한 지역이 아닙니다. 안전한 마을에서 다시 시도해 주세요’라는 문구만 나왔다.
‘물약도 이제 하나뿐이고…….’
맘이시리네는 절망적인 얼굴로 배낭 안을 들여다보았다. HP도 HP지만, 스태미나를 회복시켜 주는 음식이나 물도 이제 간당간당했다. 뒤늦게 광장에서 NPC에게 준 빵이 아쉬웠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구울 공략법을 만든 것이다.
횃불은 켜면 안 된다. 주변의 몬스터를 몽땅 끌어 모은다. 시야는 ID카드의 적외선 카메라로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절대로 소리를 내선 안 된다. 구울은 소리와 빛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역시 보물이고 뭐고 그냥 지금이라도 당장 다 때려치우는 게 나을까? 이쯤에서 죽는 게 진짜 나을지도 몰라.’
어차피 물어봤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맘이시리네는 백 번도 더 쉬었을 한숨을 또 한 번 길게 내쉬고, 말뚝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 전, 구울에 둘러싸였을 때 기적적으로 꺼내 든 탐험 키트 안에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말뚝 20개 정도가 들어 있었다. 가방 속에 난잡하게 굴러다니던 것들이 전부 탐험 키트에 든 도구들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실은, 금속으로 만든 말뚝을 박으면 구울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말뚝도 이제 세 개가 전부였다.
‘원래 이런 데 쓰는 건 아니겠지만.’
같이 들어 있던 다른 도구들을 보니 아마 텐트나 천막을 칠 때 필요한 도구인 듯했다. 그 외에는 삽이나 낫 같은 것들이 간편한 휴대용 캡슐 형태로 들어 있었다.
‘이딴 걸 어디에 쓰라고! 무기를 줘야지, 무기를!’
삽으로 아무리 후려쳐도, 낫으로 아무리 베어도 구울들은 다시 일어났다.
‘잠깐, 삽이라고?’
순간, 맘이시리네에게 생각지도 못한 좋은 수가 반짝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ID카드에서 어떤 메시지가 떠올랐다.
띵!
[‘팔라딘’ 성향을 획득했습니다.]
[‘실드 어택’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아이언 실드’가 지급되었습니다.]
[성향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맘이시리네는 재빨리 배낭에 손을 집어넣었다.
배낭에서 나온 오른손에는 푸른 에너지로 휩싸여 번쩍번쩍 빛나는 은색 철 방패가 들려 있었다.
‘오오!’
맘이시리네는 소리 없이 환호했다.
[성향: 팔라딘(희귀)
* 특정한 조건을 만족해야만 얻을 수 있는 히든 클래스입니다.
성향 정보: 끈질긴 생명력과 높은 공격력으로 사냥을 유리하게 이끄는 강력한 기사가 될 수 있다.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방어력이 높아 몬스터의 관심을 끌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잘 잡기 위해서는 먼저 강인한 체력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습득 조건: 단독으로 필드에 입장하여 자신보다 3등급 위의 몬스터로부터 첫 공격을 받은 후, 1시간 이상 생존하였을 경우. 단,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해당 필드에서 이동해선 안 됨.]
“아이고, 또 무슨 일이래.”
한편, 작업실 복도를 지나던 체월 직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가 떠나가라 석익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죽으라고 보내놨더니, 희귀 성향을 얻어? 아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저걸!”
“마, 마르디노 님. 진정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굴탱이 새끼들 다 집합시켜! 이것들이 몬스터로 취직을 해놓고 생 초보 유저 한 명 못 잡아서 빌빌거린다 이거지! 처음부터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어!”
“깨, 깰룩.”
* * *
“올레! 여러분, 보이세요? 저 희귀 성향 얻었어요!”
구석에 몸을 숨긴 맘이시리네가 잔뜩 업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촬영 캠이 부지런히 돌아가며 ID카드가 표시한 성향 정보 창을 비췄다.
기쁜 마음에 맘이시리네는 소리를 죽여 손뼉까지 쳤다.
“완전 대박, 대박. 이게 보물이네, 팔라딘이 보물이었던 거지! 하, 여러분. 튜토리얼 끝나자마자 희귀 성향 획득하는 저, 보셨습니까? BJ시리 클라쓰?”
재빨리 아이언 실드를 왼쪽 팔뚝에 찼다.
“오케이, 저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어요. 이번엔 진짜예요. 지금부터 밖으로 나갈 테니까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마지막까지 속삭이듯 말한 맘이시리네는 방패를 앞세운 채 조심조심 구울을 피해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들어왔던 막다른 곳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가방에서 캡슐을 꺼내 삽을 불러내었다.
“구멍이 없음 파면 되지! 그쵸?”
푹, 푸욱!
소리를 내면 구울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또 천천히 팔 수밖에 없었다.
[근력이 상승하셨습니다.]
[힘이 상승하셨습니다.]
[체력이 상승하셨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몸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되었을 때, 맘이시리네는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더니 흙으로 입구를 다시 덮어 막았다.
그런 다음 입구에 아이언 실드를 거꾸로 뒤집어 틀어막고, 흙을 덮어 방패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오케이, 이제 맘 놓고 파도 구울들은 못 옵니다!”
완벽하게 동굴과 차단된 맘이시리네가 신나서 외쳤다.
카앙, 카앙!
굴을 파는 소음이 심해지자, 구울들이 입구를 파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구에 틀어막아 둔 방패가 구울들의 침입을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오예! 못 들어온다, 못 들어와! 하하하!”
맘이시리네는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땅굴을 팠다.
그로부터 약 두 시간 후.
“프리더어엄!”
마침내 밖으로 기어 나온 맘이시리네가 삽을 치켜들며 외쳤다.
[맘이Siri네 님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 ‘도굴꾼’을 획득했습니다.]
[획득 칭호 정보
‘도굴꾼’(레어)
비밀스러운 작업 시 자신이 내는 소리를 70% 감소시킨다. 눈이 안 좋은 언데드 계열 몬스터로부터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습득 조건: 무덤이나 유적에서 10m 이상 길이의 구덩이를 팠을 시 획득.]
[맘이Siri네 님이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맨땅에 헤딩’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획득한 ‘채광’ 스킬이 ‘기본’ 스킬로 등록됩니다.]
[‘망자들의 무덤’에서 무사히 탈출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오오, 보상 봐! 쩔어!”
맘이시리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러분, 이게 땅을 파면 팔수록 힘이 덜 들어가요.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나? 그니까 능력치가 상승되는 게 직접 몸으로 체감된다고 해야 하나? 하, 진심으로 제가 뻥 안 치고 말씀드릴게요. 이 게임 대박이에요. 해보셔야 알아요. 진짜 이건……. 어휴, 정말 좋은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냥 쩔어요, 진짜로. 말이 필요 없어.”
맘이시리네는 엄지를 치켜들며 거듭 강조했다.
“아까 보셨죠? 컨텐츠가 엄청 많은데 이거 초보자 컨텐츠만 해도 한참 걸릴 것 같아. 앞으로 제 채널에 체월만 줄기차게 올라갈지도 몰라요. 하는 나는 재밌는데 여러분은… 아냐, 물어볼 필요도 없지. 보는 사람도 이건 핵잼일 거야. 이거 첫 플레이 겸 소개 영상으로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공략 방송이 됐네요. 여러분,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될 것 같아요. 구울 보다가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어.”
그러고는 삽질하느라 팔도 빠질 것 같다며 짐짓 엄살처럼 어깨를 두드려 보였다.
“이거 현실감 진짜 장난 아니네. 지금 이거 보이세요? 팔 떨리는 거? 알 배긴 느낌까지 있어요. 접속기 별로 비싸지도 않던데 다들 지르세요. 아, 협찬은 아니고요. 진짜 너무 신세계라 나만 즐기기 아쉬워서 그래요.”
너스레를 떠는 와중에도 맘이시리네는 삽과 방패를 잊지 않고 챙겼다.
“광고에서는 게임 끄고 나면 오히려 상쾌하고 가뿐해진다고 했는데 어떠려나? 어디 진짜 그런지 내일 방송 때 얘기해 줄게요. 오늘 접속한 사람 중에 아마 내가 제일 피곤할 테니까 제일 리얼할 거예요. 그럼 내일 또 봬요, 여러분! BJ시리였습니다.”
ID카드를 조작해 녹화를 종료한 맘이시리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태 창을 보니 스태미나가 완전히 바닥이었다.
“아이고…….”
맘이시리네는 가방을 뒤적여 마지막 하나 남은 포션을 마신 뒤, 아예 자리에 드러누웠다.
‘마을까지는 또 언제 가. 업로드는… 아, 몰라.’
온통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BJ시리
씩씩거리며 개인 작업실로 돌아왔다.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깰룩?”
표정을 본 깰룩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뛰어왔다.
“뭐겠냐, 망할 드라비라 새끼 때문이지. 그놈의 아란탈, 아란탈! 아란탈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냐? 멍청하고 배만 나온 놈이.”
“깨, 깰룩.”
분을 참지 못하고 욕을 하자, 깰룩이가 한껏 몸을 움츠렸다. 아란탈인 깰룩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털썩 주저앉듯 의자에 몸을 뉘었다.
“후, 짜증 나.”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깰룩?”
깰룩이가 내 의자를 메인 디스플레이를 향하도록 돌렸다. 화면엔 어떤 유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그게, 플레이어들 튜토리얼을 모니터링하다가 저 유저를 발견했는데요. 저 유저가 하는 게 너무 웃겨서 우울할 때마다 보려고 따로 저장해 놨습니다, 깰룩.”
“그래?”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아, 저거 그 유저잖아.”
내 목구멍에 빵을 쑤셔 넣었던 또라이 유저였다.
그녀는 내가 말한 대로 커다란 나무 밑 구덩이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남이 개고생하는 거 구경하는 것만큼 꿀잼이 없지.
옆에서 내 표정을 본 깰룩이가 경직된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팝콘이랑 콜라가 없는 게 아쉽네.”
* * *
캄캄한 어둠 속.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확 불이 피어올랐다.
“어휴, 뭐가 이리 캄캄해. 횃불 가져오길 잘했네.”
광장에서 석익을 질식사시킬 뻔했던 또라이 유저, 맘이시리네가 횃불을 높이 치켜든 채 구덩이로 기어 들어왔다.
“아오, 좁아.”
구덩이는 그야말로 간신히 사람 하나가 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였다. 한창 용을 쓰며 전진하던 그때.
쿠구구궁!
순간, 구덩이 전체가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 으아아, 뭐야!”
완전히 구멍에 끼여 꼼짝 못하게 된 맘이시리네가 비명을 질렀다.
“끼야악, 뭐야!”
구덩이는 마치 생물의 식도처럼 꿈틀거리며 그녀를 안쪽으로 집어삼켰다. 온몸에 꾸물거리는 구덩이가 느껴지는 게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이 변태 새끼가!”
맘이시리네는 구덩이 벽에 마구 발길질을 했다. 물론 공간이 없어 별 의미는 없었다.
한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감촉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마치 짤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반죽 덩어리처럼 구덩이에서 뚝 떨어져, 자작하게 고여 있는 물 위로 첨벙 떨어졌다.
“아이고, 다 젖었네…….”
맘이시리네는 울상을 지으며 일어섰다.
띵!
그때, ID카드가 허공에서 생겨나더니 어스레한 빛이 동굴 안을 밝혔다.
[히든 스테이지 ‘망자들의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탐험가’ 성향을 획득했습니다.]
[‘탐색’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탐험 키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성향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성향 습득 완료.
성향에 따라 친해질 수 있는 오더코르트인들이 달라지며, 당연히 퀘스트도 성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획득할 수 있는 성향의 개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현재 맘이Siri네 님은 오더코르트인들에게 탐험가 성향의 퀘스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에 따라 요구되는 친밀도가 다르며, 친밀도를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
신이 나서 홀로그램 창을 살펴보던 맘이시리네가 횃불을 들고 있던 손으로 창을 닫았다.
그러자 순간 전등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온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뭐지?”
어둠 속을 더듬어보니, 들고 있던 횃불은 부러져 달랑거리고 있었고, 불이 붙었던 부분이 웅덩이 같은 것에 잠겨 있었다.
“…….”
음산한 분위기의 동굴 안에는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다, 다른 횃불을 켜면 되지. 여러 개 사와서 다행이다. 무서워, 무서워.”
맘이시리네는 조심히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가방을 뒤적였다.
곧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동굴은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감도는 선홍빛이었고, 혐오스럽게 꿈틀거리는 주름이 많았다. 마치 커다란 짐승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맘이시리네는 기분 나쁜 동굴이라며 투덜거렸다.
횃불의 손잡이 부분으로 동굴의 벽을 건드리자, 꿈틀거리듯 움츠러들었다.
“헐, 꼭 살아 있는 것 같아.”
맘이시리네는 다시 한 번 벽을 콕 쑤셨다.
꿈틀.
“오오.”
콕콕콕콕콕콕.
어쩐지 중독성이 있다. 더욱 세게 후벼 파고 있던 그때.
그어어억!
“힉, 뭐, 뭐야?”
횃불을 불쑥 앞쪽으로 내밀어 보았지만 어두컴컴할 뿐, 괴상한 소리가 들린 안쪽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씨, 그러지 마. 나 공포 게임에 약하단 말이야.”
‘그냥 포기할까?’
나약한 생각이 맘이시리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냐! 까, 까짓 거 계속 들어가 보지 뭐! 나와 봤자 몬스터밖에 더 나오겠어?”
배에 힘을 주고 빽 외쳤지만, 금세 다시 반쯤 울먹거리던 맘이시리네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횃불을 높이 쳐들고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별게 있으려고……. 아냐, 괜히 생각하지 말자. 없을 거야. 그래, 아무것도 없다고. 이 게임은 쓸데없이 분위기 조성을…….”
스스로를 세뇌하던 그때, 번쩍 들고 있는 횃불의 반경에 한눈에 보기에도 섬뜩한 것이 쑥 하고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부패하다 만 시체 같은 형상의 괴물이었다. 거적때기 같은 것을 옷이라고 걸치고 있고, 눈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데다 동공은 무언가 끼인 것처럼 허옇다.
“으아아아악!”
맘이시리네는 혼비백산하여 다시 왔던 길로 뛰었다. 뒤쪽으로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괴물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온 곳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맘이시리네는 다급하게 횃불을 번쩍 들었다.
“어, 없어! 나가는 길이 없어!”
분명 구멍을 통해 떨어졌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며 조급해지는 순간.
“어떡해! 어떡해! 아아아악!”
무언가 어깨를 콱 잡아끌어, 맘이시리네는 뒤로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테리코론 제 다비스 캬니!”
눈앞에는 끔찍하게 생긴 이빨을 드러낸 채 괴상한 언어로 무어라 지껄이고 있는 보라색 피부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 위에는 ‘구울’이라는 빨간색 글자가 떠 있었다.
“끼야아, 징그러! 저리 꺼져, 꺼져! 이 못생긴 새끼야!”
동굴 안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른 맘이시리네는 손에 들고 있던 횃불로 구울의 머리통을 마구 후려갈겼다. 그 마당에 불이 붙은 부분이 구울의 아가리에 푹 들어갔다.
그어어어억!
불붙은 나무 막대가 입 속을 파고들자, 구울은 미친 듯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맘이시리네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서, 왼쪽 팔뚝에 차고 있던 나무 방패로 구울을 벽으로 있는 힘껏 밀쳐 냈다.
“엄마아아아!”
그러고는 비명을 지르며 구울을 지나쳐 냅다 달렸다. 나무 방패는 고작 그 한 방을 갈겼다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렸다.
“카드! 카드!”
맘이시리네는 급히 외치며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소환된 ID카드를 움켜잡은 왼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헉, 헉! 미쳤나 봐! 미쳤어, 미쳤어!”
그어어어.
그르르르.
동굴 안이라 울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울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 켁!”
앞으로만 계속 뛰던 맘이시리네는 거대하고 딱딱한 무언가와 부딪히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 못하겠어! 진짜 못하겠어, 이거! 못하겠어!”
맘이시리네는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다급히 ID카드를 뒤적였다. 화면은 희미하긴 했지만 어두침침한 동굴에서는 제법 충분한 빛이었다.
[로그아웃을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손으로 ‘예’ 버튼을 눌렀다.
[로그아웃이 가능한 지역이 아닙니다. 안전한 마을에서 다시 시도해 주세요.]
“미친! 안 꺼져! 어떡해!”
구울의 울음소리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그 순간이었다.
[적외선 카메라로 변경]
떠오른 문구를 보자마자,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맘이시리네는 ID카드가 부서져라 그것을 눌렀다.
그러자 ID카드가 카메라 화면이 되어 떠올랐다. 카드 안 화면에는 초록색으로 물든 동굴의 모습이 보였다.
“오, 오, 됐어. 됐어! 이거면 어떻게든…….”
맘이시리네는 낭떠러지에서 동아줄을 부여잡은 것처럼 ID카드를 꼭 쥐고, 기타 설정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맘이시리네는 ID카드를 고정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바로 앞에 카드가 떠 있어 마치 고글을 쓴 듯한 모습이었다. 카드는 움직이는 것에 맞춰 자동으로 돌아갔다.
맘이시리네는 정면에 있는 벽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세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앞에 있었다.
“뭐야, 여기 부딪힌 거였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밝은 초록빛의 무언가가 훅 하고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몸을 재빨리 틀었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팔뚝을 물어뜯었다. 그 충격에 맘이시리네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아악! 이게, 진짜!”
맘이시리네는 팔의 고통도 잊은 채, 온 힘을 다해 악을 쓰며 양다리와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더욱 많은 것들이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게임이기 때문에 팔이 잘려 나가도 힘껏 꼬집는 정도의 고통뿐이지만, 축축하고 징그러운 시체들의 이빨이 생살을 물어뜯고 있는 것은 고통 이전의 문제였다.
맘이시리네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필사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뒤적였다. 손에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잡혔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언뜻 만져 봐도 날카롭고 긴 무언가가 잡혔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급한 대로 손에 움켜쥔 맘이시리네는 구울들을 향해 그것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리드미컬한 소리와 함께 찝찝한 액체들이 사방에 튀겼다.
* * *
“아오, 답답해! 야, 이 새끼들아! 목을 물라고! 목을!”
참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바퀴 달린 의자가 저만치 굴러갔다. 깰룩이가 허겁지겁 의자를 돌려 놓으러 뒤쪽으로 사라졌다.
“아니, 수가 저렇게 많은데 이제 튜토리얼 끝낸 유저 하나 못 죽여? 어? 말이 돼? 아오, 진짜. 아니, 거기가 아니라니까! 어딜 물고 있는 거야!”
확 발길질을 하자, 발끝에 맞은 깰룩이의 책상 옆쪽이 움푹 팼다.
“저 무능한 새끼들! 싹 다 해고시켜 버려! 필요 없어!”
기분 전환 좀 하려고 했더니만, 열불이 나서 더는 못 보겠다.
나는 씩씩거리며 깰룩이를 향해 물었다.
“야, 그래서 결국 쟤 어떻게 되는데? 죽어, 살아?”
“저는 절대 스포를 하지 않습니다, 깰룩.”
그 후에도 몇 번씩이나 졸라보았으나 깰룩이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지독한 놈.
결말이 궁금했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깰룩이를 흘겨보던 눈길을 거두고 다시 고개를 돌려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하아, 하아…….”
벽에 기댄 맘이시리네가 ID카드를 확인했다. 한구석에는 ‘플레이타임 00:56:43’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이 무덤인지 나발인지에 갇힌 지 벌써 거의 한 시간이야?’
맘이시리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ID카드로 로그아웃을 시도한 것만 50번도 더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로그아웃이 가능한 지역이 아닙니다. 안전한 마을에서 다시 시도해 주세요’라는 문구만 나왔다.
‘물약도 이제 하나뿐이고…….’
맘이시리네는 절망적인 얼굴로 배낭 안을 들여다보았다. HP도 HP지만, 스태미나를 회복시켜 주는 음식이나 물도 이제 간당간당했다. 뒤늦게 광장에서 NPC에게 준 빵이 아쉬웠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구울 공략법을 만든 것이다.
횃불은 켜면 안 된다. 주변의 몬스터를 몽땅 끌어 모은다. 시야는 ID카드의 적외선 카메라로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절대로 소리를 내선 안 된다. 구울은 소리와 빛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역시 보물이고 뭐고 그냥 지금이라도 당장 다 때려치우는 게 나을까? 이쯤에서 죽는 게 진짜 나을지도 몰라.’
어차피 물어봤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맘이시리네는 백 번도 더 쉬었을 한숨을 또 한 번 길게 내쉬고, 말뚝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 전, 구울에 둘러싸였을 때 기적적으로 꺼내 든 탐험 키트 안에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말뚝 20개 정도가 들어 있었다. 가방 속에 난잡하게 굴러다니던 것들이 전부 탐험 키트에 든 도구들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실은, 금속으로 만든 말뚝을 박으면 구울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갖고 있는 말뚝도 이제 세 개가 전부였다.
‘원래 이런 데 쓰는 건 아니겠지만.’
같이 들어 있던 다른 도구들을 보니 아마 텐트나 천막을 칠 때 필요한 도구인 듯했다. 그 외에는 삽이나 낫 같은 것들이 간편한 휴대용 캡슐 형태로 들어 있었다.
‘이딴 걸 어디에 쓰라고! 무기를 줘야지, 무기를!’
삽으로 아무리 후려쳐도, 낫으로 아무리 베어도 구울들은 다시 일어났다.
‘잠깐, 삽이라고?’
순간, 맘이시리네에게 생각지도 못한 좋은 수가 반짝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ID카드에서 어떤 메시지가 떠올랐다.
띵!
[‘팔라딘’ 성향을 획득했습니다.]
[‘실드 어택’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아이언 실드’가 지급되었습니다.]
[성향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맘이시리네는 재빨리 배낭에 손을 집어넣었다.
배낭에서 나온 오른손에는 푸른 에너지로 휩싸여 번쩍번쩍 빛나는 은색 철 방패가 들려 있었다.
‘오오!’
맘이시리네는 소리 없이 환호했다.
[성향: 팔라딘(희귀)
* 특정한 조건을 만족해야만 얻을 수 있는 히든 클래스입니다.
성향 정보: 끈질긴 생명력과 높은 공격력으로 사냥을 유리하게 이끄는 강력한 기사가 될 수 있다. 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방어력이 높아 몬스터의 관심을 끌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잘 잡기 위해서는 먼저 강인한 체력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습득 조건: 단독으로 필드에 입장하여 자신보다 3등급 위의 몬스터로부터 첫 공격을 받은 후, 1시간 이상 생존하였을 경우. 단,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해당 필드에서 이동해선 안 됨.]
“아이고, 또 무슨 일이래.”
한편, 작업실 복도를 지나던 체월 직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가 떠나가라 석익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죽으라고 보내놨더니, 희귀 성향을 얻어? 아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저걸!”
“마, 마르디노 님. 진정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굴탱이 새끼들 다 집합시켜! 이것들이 몬스터로 취직을 해놓고 생 초보 유저 한 명 못 잡아서 빌빌거린다 이거지! 처음부터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어!”
“깨, 깰룩.”
* * *
“올레! 여러분, 보이세요? 저 희귀 성향 얻었어요!”
구석에 몸을 숨긴 맘이시리네가 잔뜩 업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촬영 캠이 부지런히 돌아가며 ID카드가 표시한 성향 정보 창을 비췄다.
기쁜 마음에 맘이시리네는 소리를 죽여 손뼉까지 쳤다.
“완전 대박, 대박. 이게 보물이네, 팔라딘이 보물이었던 거지! 하, 여러분. 튜토리얼 끝나자마자 희귀 성향 획득하는 저, 보셨습니까? BJ시리 클라쓰?”
재빨리 아이언 실드를 왼쪽 팔뚝에 찼다.
“오케이, 저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어요. 이번엔 진짜예요. 지금부터 밖으로 나갈 테니까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마지막까지 속삭이듯 말한 맘이시리네는 방패를 앞세운 채 조심조심 구울을 피해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들어왔던 막다른 곳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가방에서 캡슐을 꺼내 삽을 불러내었다.
“구멍이 없음 파면 되지! 그쵸?”
푹, 푸욱!
소리를 내면 구울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또 천천히 팔 수밖에 없었다.
[근력이 상승하셨습니다.]
[힘이 상승하셨습니다.]
[체력이 상승하셨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몸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되었을 때, 맘이시리네는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더니 흙으로 입구를 다시 덮어 막았다.
그런 다음 입구에 아이언 실드를 거꾸로 뒤집어 틀어막고, 흙을 덮어 방패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오케이, 이제 맘 놓고 파도 구울들은 못 옵니다!”
완벽하게 동굴과 차단된 맘이시리네가 신나서 외쳤다.
카앙, 카앙!
굴을 파는 소음이 심해지자, 구울들이 입구를 파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구에 틀어막아 둔 방패가 구울들의 침입을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오예! 못 들어온다, 못 들어와! 하하하!”
맘이시리네는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땅굴을 팠다.
그로부터 약 두 시간 후.
“프리더어엄!”
마침내 밖으로 기어 나온 맘이시리네가 삽을 치켜들며 외쳤다.
[맘이Siri네 님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 ‘도굴꾼’을 획득했습니다.]
[획득 칭호 정보
‘도굴꾼’(레어)
비밀스러운 작업 시 자신이 내는 소리를 70% 감소시킨다. 눈이 안 좋은 언데드 계열 몬스터로부터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습득 조건: 무덤이나 유적에서 10m 이상 길이의 구덩이를 팠을 시 획득.]
[맘이Siri네 님이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맨땅에 헤딩’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획득한 ‘채광’ 스킬이 ‘기본’ 스킬로 등록됩니다.]
[‘망자들의 무덤’에서 무사히 탈출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오오, 보상 봐! 쩔어!”
맘이시리네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러분, 이게 땅을 파면 팔수록 힘이 덜 들어가요.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나? 그니까 능력치가 상승되는 게 직접 몸으로 체감된다고 해야 하나? 하, 진심으로 제가 뻥 안 치고 말씀드릴게요. 이 게임 대박이에요. 해보셔야 알아요. 진짜 이건……. 어휴, 정말 좋은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냥 쩔어요, 진짜로. 말이 필요 없어.”
맘이시리네는 엄지를 치켜들며 거듭 강조했다.
“아까 보셨죠? 컨텐츠가 엄청 많은데 이거 초보자 컨텐츠만 해도 한참 걸릴 것 같아. 앞으로 제 채널에 체월만 줄기차게 올라갈지도 몰라요. 하는 나는 재밌는데 여러분은… 아냐, 물어볼 필요도 없지. 보는 사람도 이건 핵잼일 거야. 이거 첫 플레이 겸 소개 영상으로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공략 방송이 됐네요. 여러분,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될 것 같아요. 구울 보다가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어.”
그러고는 삽질하느라 팔도 빠질 것 같다며 짐짓 엄살처럼 어깨를 두드려 보였다.
“이거 현실감 진짜 장난 아니네. 지금 이거 보이세요? 팔 떨리는 거? 알 배긴 느낌까지 있어요. 접속기 별로 비싸지도 않던데 다들 지르세요. 아, 협찬은 아니고요. 진짜 너무 신세계라 나만 즐기기 아쉬워서 그래요.”
너스레를 떠는 와중에도 맘이시리네는 삽과 방패를 잊지 않고 챙겼다.
“광고에서는 게임 끄고 나면 오히려 상쾌하고 가뿐해진다고 했는데 어떠려나? 어디 진짜 그런지 내일 방송 때 얘기해 줄게요. 오늘 접속한 사람 중에 아마 내가 제일 피곤할 테니까 제일 리얼할 거예요. 그럼 내일 또 봬요, 여러분! BJ시리였습니다.”
ID카드를 조작해 녹화를 종료한 맘이시리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태 창을 보니 스태미나가 완전히 바닥이었다.
“아이고…….”
맘이시리네는 가방을 뒤적여 마지막 하나 남은 포션을 마신 뒤, 아예 자리에 드러누웠다.
‘마을까지는 또 언제 가. 업로드는… 아, 몰라.’
온통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