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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스터는 사기꾼 1권 20화

고정 관념 비틀기 (2)





설마 비룡이를 타고 날 생각을 할 줄이야.

물론 그러지 말라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파쿠르 던전의 규칙은 공격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뿐. 그냥 몬스터에 올라타는 거야 안 될 리 없었다.

‘진짜 미친놈이네.’

허탈하게 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방어전 이벤트 때도 그랬지만 저 정도로 미친놈일 줄이야.

비오리우스를 타고 날아오른 필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냥 보낼 순 없지.’

봐주면서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뒤지지 않는 미친놈이란 걸 보여주마.

두 발에 마나를 휘감았다. 마나가 집약되는 순간, 공기가 터지는 소리를 내며 미사일처럼 위로 쏘아져 날아갔다.

플레이어들이라면 다 찬 게이지를 이용하여 슈퍼 점프 스킬을 썼겠지만, 내게 스킬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마나를 사용하여 점프력을 강화한 것뿐이었다.

“아드메 디금오이트 쎄타.”

[변경 시스템 가동.]

“디스플레이, 메시지.”

날아가면서 중얼거리자, 천장에 있는 플레이어 현황 판의 정보가 변경되었다. 메시지도 들려왔다.

[‘안방마’ 님이 ‘슈퍼 점프’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비룡이를 타고 올라가던 필이 보였다.

필은 천장에 부딪히기 직전, 비룡이를 박차고 옆으로 뛰어내렸다. 비룡이는 홀로 천장에 머리를 박곤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으잇차!”

뒤따르던 나는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떨어져 내리는 비룡이를 피했다.

“미안!”

그러고는 사뿐하게 비룡이를 밟고 다시 한 번 도약했다. 비룡이는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고층 스테이지에 도착하자,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통로에 기다랗게 펼쳐진 특이한 모양의 트랙이 나타났다.

진입부에는 스피드 런 포인트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고층 스테이지는 파쿠르 던전에서도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구간이었다.

트랙의 바닥은 마치 실로폰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발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발판과 발판 사이가 벌어져 있어 자칫하다간 아래로 추락하기 십상이었다. 거기다 곳곳에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트랙이나 장애물이 아니다.

필이 스타트 트랙의 붉은 포인트를 발로 밟자, 몸이 붉은 마나에 휘감기며 앞으로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저렇게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간…….

나는 뒤에다 대고 혀를 쯧쯧 찼다.

‘죽기 딱 좋지.’

스피드 런 포인트를 밟는 순간부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동 속도 증가 버프를 받는다. 스피드 런으로 달리는 동안은 공기의 저항이나 마찰도 받지 않는다.

동시에 점프할 수 없는 디버프를 받는다.

중간에 달리기를 멈출 수는 있지만,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딜레이 없이 곧바로 버프가 발동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게 된다.

결국 초인과 같은 반사 신경을 발휘해 장애물을 피하며 뛰거나, 장애물이 나올 때마다 멈춰 서서 피할 수밖에 없다.

장애물을 보고 멈춰 서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할 만하지만, 바닥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으니 발판이 없는 곳에서 잘못 멈췄다간 그대로 추락사다.

띠링.

[‘Phill’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3초 후 부활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스피드 런 포인트를 밟은 즉시 미친 듯한 속도로 멀어졌던 필이 빛과 함께 세이브 존에서 나타났다.

실제로 이것을 테스트하면서 나는 수없이 장애물에 부딪혀야 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가상의 육체가 아닌 진짜인 덕에 그때마다 어디 한 군데는 꼭 부러지기 일쑤였고.

“그럼 저 먼저 갑니다.”

필에게 인사를 건네며 지나쳤다.

붉게 빛나고 있는 스피드 런 포인트를 밟자, 피어오른 붉은 마나가 내 몸을 휘감았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몸이 대포알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순발력이라면 자신 있었다. 원래 난 게임 실력보다는 운동 신경이 더 좋다.

게다가 이곳에서 삼 년 동안 밥 먹고 한 짓이라곤 온갖 마법 수식들을 짜는 일과, 직접 몸을 굴리며 구축한 필드를 테스트하는 일뿐이니, 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친 듯한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장애물들을 손쉽게 피해냈다. 암만 패턴 없이 설치되어 있어도, 이미 출시 전에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해봤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스페셜 스킬 게이지가 가득 찼다.

[‘Phill’ 님이 사망하셨습니다. 3초 후 부활합니다.]

또 죽었네.

이제 필이 앞으로 한 번만 더 죽게 되면 자연스럽게 승자는 내가 된다.

저 멀리 결승점이 보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필은 보이지 않았다.

‘음, 역시 너무 어렵나?’

랭커가 이렇게 애를 먹을 정도라면 다른 플레이어들한테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난이도를 조금 낮춰야겠네.’

던전을 어떤 식으로 조정해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

갑자기 천장의 현황 판에 표시된 필의 스페셜 스킬 게이지가 줄어들었다.

[‘Phill’ 님이 ‘파워 부스터’를 사용하셨습니다.]

말도 안 돼! 여기서 부스터 스킬을 쓰면…….

쐐애애애액!

무엇인가 내 옆을 빠르게 지나쳐 갔다.

고개를 들어 눈을 흘기자, 옆 트랙의 천장을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필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저게 가능하다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달리는 게?

언젠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F1머신이 터널의 천장을 달리는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날개가 달린 자동차고, 저 미친놈은 사람이 아닌가!

순간, 어렸을 때 자주 하던 게임이 생각났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벽을 타기도 하고, 천장을 거꾸로 달리기도 하는…….

하지만 그건 게임 속 캐릭터 이야기다.

‘잠깐, 여기도 게임이잖아!’

나는 심각한 내적 갈등에 빠지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주문을 외웠다.

‘아드메 디금오이트 쎄타!’

[변경 시스템 가동.]

‘디스플레이, 메시지! 도미딜레트리!’

[‘안방마’ 님이 ‘파워 부스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도대체 저 녀석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건지.

중첩시켜 외운 이동 속도 증가 마법이 발동하자, 도저히 눈으로는 물체를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앞에 있는 게 벽인지 장애물인지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그저 몸 가는 대로 달릴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던전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는 것밖에는 모르겠다.

쿵!

무언가에 부딪친 이마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눈을 떠보니, 결승 지점에 엎어져 있었다.

옆에는 필이 무언가를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아오…….”

더럽게 아프네.

나는 어렵게 필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파쿠르 던전 플레이 결과

1위: 안방마 / 08:24:32 / 0회 사망 / 71,546점

2위: Phill / 08:24:32 / 2회 사망 / 61,546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파쿠르 던전(1:1 랜덤 매치) 플레이의 승자는 ‘안방마’ 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10,000코른을 보상으로 받으셨습니다. ID카드 계좌로 자동 입금됩니다.]

통과 시간을 보니 필과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한 것 같았다.

하지만 승자는 나였다.

[안방마 님이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파쿠르 던전에서 살아남기’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1,000,000코른을 획득했습니다.]

아무래도 한 번도 죽지 않고 던전을 클리어해서 추가 점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옆에 보이는 포탈을 이용하여 던전에서 퇴장하실 수 있습니다.]

오른쪽 구석에 있는 ‘EXIT’라고 적힌 포탈이 활성화되는 게 보였다.

“아오, 빡쳐. 쓸데없이 죽지만 않았어도 이길 수 있었는데.”

필이 중얼거렸다.

“입만 살아선.”

그러나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저 미친놈이 스피드 런 스테이지에서 쓸데없이 헤매지만 않았어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님,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대체 아까 그건 어떻게 한 겁니까?”

“뭘?”

“그 왜, 천장에 매달려서 달렸잖아요.”

“아, 그거? 안 알려줘. 설명하기 귀찮아.”

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던전에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그러나 곧바로 가로막고 선 나에 의해 무산되었다.

“저리 안 비켜?”

“설명해 주면 비켜드립니다.”

“말해봤자 못 알아들을 거잖아.”

“참나, 누굴 멍청이로 압니까? 다 알아듣거든요? 말할 때까지 귀찮게 굴 겁니다. 경고했어요.”

“귀찮네, 진짜.”

필은 결국 입을 열었다.

“공기 저항력이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건 알지?”

공기… 뭐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기저항계수는 사람이나 물체의 형상에 의해 정해지는 고윳값이고, 저항력은 그 계수와 속도와 관련돼 있어. 저항력엔 공기 저항 외에도 여러 가지 저항이 포함되어 있단 말이지. 그 모든 저항력이 플레이어가 낼 수 있는 최대 추력, 그니까 항력과 가속에 의한 관성력의 합과 동일해진다고 생각해 봐.”

뭐? 뭐라는 거야, 썅.

“두 번 죽으면서 스피드 런의 속도가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상태를 유지…….”

“님, 좀만 쉽게 말해줄 수 없어요?”

“…….”

필은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겁나 쉽게 말하자면, 마지막 스테이지처럼 플레이어가 충분한 저항력을 받고 있으면서 일정한 빠르기로 등속 운동이 가능하다 치고, 이때 가해지는 관성력이 중력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으면 천장이든 벽이든 떨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거야.”

“조금만 더 쉽게.”

“하아.”

필이 이마를 짚었다. 눈에서 분노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너무 인생을 곧이곧대로 살지 말란 소리야.”

아니, 갑자기 이게 뭔 개소리야? 여기서 인생 얘기가 왜 나오는 건데?

“내가 너 하는 거 쭉 지켜봤는데, 넌 좀 더 고정 관념을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어. 고지식해선 큰소리나 뻥뻥 칠 줄 알고, 실속은 없지. 안 그래, 관종?”

그러고는 날 뒤로하고 퇴장 포탈로 다가갔다.

“고정 관념?”

“이 게임 제작자가 대체 뭔 의도를 가지고 이 던전을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나였으면 이 던전 이렇게 안 만들었어.”

포탈에 들어선 필이 빛에 휩싸이며 덧붙였다.

“나여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

필이 사라진 뒤에도 난 포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허, 참나. 진짜 어이없네. 지가 뭔데 게임 제작자를 까? 게임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짜증 나지만 너무 신경 쓰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