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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이 시간이라면, 하고 찾아간 부엌은 새벽인데도 분주했다. 놀랍게도 용궁의 전선 없는 빛나는 구슬은 야명주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에너지원 없이 계속 발광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부엌을 찾아가는 길에도 전혀 어두울 것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부엌에 들어서며 어제부터 동료가 된 사람, 아니, 물고기? 그러니까 용궁 백성들과 인사했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자 어제와 같이 친절한 반응을 보였다. 오늘부터는 나도 그들과 같이 수라간의 조리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조리복은 시녀들의 설명에 따르면 연꽃 실로 만든 것으로 더러운 것이 묻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나 개인으로는 그저 디자인이 지상의 일반적인 업장과 비슷한 셔츠와 바지에 깨끗한 연분홍색이라는 데서 안심했다가 재봉선이 없어 신기한 기분이 들어 놀랐었다.
“김연지 씨, 어서 오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내가 막내이니 따지자면 말도 안 되게 늦은 것이다. 나는 한껏 미안한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일찍 나오겠습니다.”
내게 ‘일찍 나왔다’고 한 문 대덕은 문어 혼혈이라서 민머리인 것이라고들 했는데 여자라서 내게는 그 머리 모양이 약간 낯설었다. 그녀는 동그랗고 예쁜 눈을 크게 떴다.
“왜요? 일찍 나오셨는데요.”
“제가 더 빨리 나와서 같이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첫날이라 잘 몰라서 늦었네요.”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문 대덕은 당황해 하며 손을 저었다. 그 손끝에는 작은 빨판이 하나씩 달려 있었는데 다행히도 손가락은 모두 열 개였다.
“아니어요. 김연지 씨는 수라간 관원이 아니라 용자님을 위해 와 주신 손님이시니 지금 오신 걸로도 충분해요. 어라하와 어륙, 그리고 용자님이 조반을 젓수실 시각은 아직 조금 남았답니다.”
계약직 말단 직원이 아니었어? 나는 이게 눈치 없는 막내를 비꼬아 혼내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고민하다가 내 사기꾼 면접관이 했던 말을 문득 떠올렸다.
‘사택에 요리해 주는 분이 많은데 김연지 씨는 그분들하고는 대우가 다를 거예요.’
그게 갑자기 나 혼자만 들어 있는 부서를 따로 개설했다는 의미였냐. 적어도 내가 대학 나왔고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는 이유는 이제 핑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택에서 하는 일이 오너의 스마트폰 중독 아들의 전속 영양사라고까지는 차마 치환하지 못했던 면접관이 대강 내 업무 내용을 얼버무리면서 그나마 내 일이 일반적인 업장 근무와는 다르다는 힌트만 날렸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뭐 더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다. 더 열받는 것은 물론 더한 낭비고. 나는 문 대덕에게 주방장의 소재를 물었고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부엌 뒷문 중 하나로 그가 들어왔다. 주방장은 나를 보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일찍 나왔네요, 연지 씨. 잘 쉬었어요? 어제는 많이 놀랐지요?”
그건 내가 용궁에 도착한 그 순간에 누가 물어 줬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빙긋 웃었다. 주방장은 어제저녁에 내게 좋은 예를 보이고 싶다면서 정말로 훌륭한 요리를 해 주었는데 그것이 줘도 안 먹을 음식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아주 침울해 있을 것도 각오했다. 그리고 그런 막말까지 나온 것은 내가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들 잘해 주셔서 잘 쉬었어요. 감사합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지요? 저는 뭘 할까요?”
주방장은 손뼉을 쳤다.
“자세가 좋아요. 용자님도 어제 그런 말씀까지 들으셨으니 오늘 조반은 조금이라도 젓수시겠지요. 어라하와 어륙이 젓수실 수라는 저희가 준비하니 걱정하지 마시고, 연지 씨는 그냥 용자님 드릴 것만 자유롭게 만들어 주면 돼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요. 어제 보니까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하던데요.”
“감사합니다.”
나는 팔짱을 끼었다. 주방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무슨 일이 있나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용궁의 음식은 주방장님께서 다 관리하신다니 주방장님께 드리는 게 맞는 것 같고요.”
“무슨 말인데요?”
주방장은 ‘다’ 부분에서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사람은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존심 센 요리인의 음식을 손도 대지 않다니, 다시 생각해도 열이 받는다.
나는 아마도 약간 무시무시해졌을 얼굴로 웃었다.
“용자님 식사 말인데요. 아침 점심 저녁에 어라하와 어륙이 드실 때 같이 드시는 끼니 말고는, 제가 따로 만들어 드리는 것 외엔 나가는 게 없었으면 해서요.”
주방장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러니까.”
나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왼손 팔꿈치를 딱딱 눌렀다.
“용자님이 세끼 식사를 제대로 안 하시는 건 간식을 드셔서 그런 것 같거든요. 그러니 용자님의 건강을 위해서도 간식은 일단 전부 금지하고, 세끼 식사에 충실하시도록 하고 싶어요.”
내 말에 주방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약간 사라졌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난처한 눈치를 보였다.
“간식을 안 드시면 배고프실 텐데.”
“식사를 안 하시니까 배고프신 거지요.”
다 큰 남자가 가장 유치한 종류의 편식을 하게 만든 장본인 중에는 이 사람, 아니, 이 남자? 아무튼 주방장도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내 속이 터지는 소리를 하더니 나의 반박에 잠깐 눈을 감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동의했다.
“……예. 용자님의 식사에 관해서는 최대한 연지 씨가 원하는 대로 해 드리라고 어라하와 어륙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리 따르지요.”
그런 일이 있었어? 설리번 선생님보다는 대우가 나은 것도 같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꼭 잘 부탁드릴게요. 식사도 한동안은 제가 드리는 것만 드시도록 해서 우선은 속을 달래 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주방장의 얼굴이 갑자기 나는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넘쳐났다. 나는 약간 찔끔했다. 설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들켰나?
이윽고 주방장은 제 입을 솥뚜껑 같은 두 손으로 가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제발.
“용자님께서…… 천원 용자님께서 제대로 식사를 젓수시게 하려고 정말로 안 해 본 일이 없답니다. 하지만 연지 씨처럼 단호하게 나선 분은 없었어요. 연지 씨처럼 지상 것을 많이 배운 분도 없었고요. 이제야 뭔가 좀 바뀔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너무 믿지도 말고. 효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이러다가 그냥 잘려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
“저희는 모두 용자님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뵈어 왔으니, 저렇게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하신 모습을 뵈면서 대단히 자랑스러운 생각도 드는가 하면 그저 안쓰러운 생각도 든답니다. 그래서 용자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저희 모두 조금 맹목적으로 약해지는 감도 있지요.”
용왕과 용궁부인만 혼낼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절대로 용자님께 아무것도 못 가져다드리게 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제가 책임을 질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굶기세요. 마르지도 않는다는데 뭐.
다른 경우였다면 나는 책임을 질 능력조차 없는 그냥 막내였겠지만 여기 분위기가 이 정도 책임은 주는 분위기다. 그것은 내 성격에 맞는 일이었다. 주방장은 순박하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네에, 네. 연지 씨가 생각하시는 게 있겠지요. 그리 명해 두겠습니다.”
“주방장님만 믿을게요.”
요리는 사랑이 담길수록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고려할수록 만족도가 높아질 확률은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저놈의 천원 용자가 식사를 잘하면 좋겠다고 걱정하며 주방장이 만든 요리는 모두 어려서부터 천원이 잘 먹었다는 재료로 된 것이었다. 그 편식쟁이는 주방장이 그 신선하고 자기를 위한 재료를 얼마나 공들여 손질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내 요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내가 꼭 원한을 품은 것은 아니다.
기술자가 한을 품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지. 나는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며 주방장에게 인사하고 곡물 창고 쪽으로 갔다. 가슴속이 어제처럼 울렁거렸다.
이 사기 계약.
내 쪽에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 줘야 할 모양이다.
제2장 오천 원짜리
남색 앞치마를 벗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앞치마 말이에요, 문 대덕님.”
백삼십년 전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야채 써는 일을 맡고 있다는 문 대덕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자리가 내 자리와 가까워, 요 며칠간 내 의문을 해결해 주는 일은 그녀가 많이 맡고 있었다.
“네, 연지 씨.”
“이 앞치마는 더러운 걸 닦으려고 입는 거잖아요?”
“네.”
용궁 사람들에게는 놀랍게도 얼마 전까지 세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입는 옷은 모두 연꽃 실로 만든 것인데 연꽃 실에는 더러움이 묻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방장인 골소마리 나솔은 획기적이게도 부엌 유니폼에 앞치마를 더했고 그 앞치마는 부엌일을 하다가 손에 묻은 더러운 것을 쉽게 닦아 내고 싶은 수라간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가져왔다. 그리고 용궁 일꾼들은 끼니 사이마다 수라간에서 나오는 수백 장의 앞치마를 빠는 일을 추가로 하게 되었다.
“그럼 더러운 게 묻는다는 거니까, 연꽃 실로 만든 게 아니잖아요?”
“그럼요.”
문 대덕은 역시 친절하게 말했다.
“어디서 들여오는 거예요?”
연꽃 실로 만든 이곳의 조리복은 오래 입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 입은 듯 가벼웠으며 대단히 매끄러웠는데 앞치마는 그냥 지상에서 쓰던 것과 재질이 비슷했다. 문 대덕이 빙긋 웃었다.
“지상에서 주문해 온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나는 그간 두려워하던 것을 확인했다.
“지상에서 주문하면 바다로 와요……?”
내 브로커―나는 내 면접관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의 손이 거기까지 뻗어 있는 건가? 아니면 설마 별 혼자서 그걸 다 나르는 건가? 이 넓은 용궁에서도 지상과 용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건 별밖에 없다면서.
문 대덕은 손뼉을 쳤다.
“그럼요. 아, 모르셨구나. 물건이 많을 때는 일단 주문해서 바닷가로 받은 다음에 홍수를 일으켜서 쓸어 와요.”
세상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홍수요?”
“육지 백성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서 하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문 대덕은 그러더니 참으로 예쁘게 호호 웃었다. 용궁 건물에 쓰인 수많은 목재의 운반 루트를 이제 알았다. 어민들에게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죄송할 이유는 없지만.
주방장이 다가왔다. 그도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다 됐어요, 연지 씨?”
“앗, 네, 주방장님.”
다른 사람들은 그를 나솔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용궁에서의 직위가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나 같은 외부 인사를 데려온 것이 이쪽도 처음인 모양이라 손님의 위치는 대단히 애매하면서도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갈까요.”
“네.”
나는 문 대덕에게 눈인사를 하고 내가 만든 요리를 쟁반에 올렸다. 월수궁의 잡다한 일 전반을 맡아 하는 시종들이 들어와 음식을 옮겼다. 그 시종들의 뒤를 따라가려 하자 주방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연지 씨. 오늘도 가 있게요……?”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였다.
“당연하죠. 제가 한 말이니 끝까지 확인해야 하잖아요.”
천원 용자는 아직 음식에게 절하지 않았다.
이 시간이라면, 하고 찾아간 부엌은 새벽인데도 분주했다. 놀랍게도 용궁의 전선 없는 빛나는 구슬은 야명주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에너지원 없이 계속 발광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부엌을 찾아가는 길에도 전혀 어두울 것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부엌에 들어서며 어제부터 동료가 된 사람, 아니, 물고기? 그러니까 용궁 백성들과 인사했다. 그들은 내가 나타나자 어제와 같이 친절한 반응을 보였다. 오늘부터는 나도 그들과 같이 수라간의 조리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조리복은 시녀들의 설명에 따르면 연꽃 실로 만든 것으로 더러운 것이 묻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나 개인으로는 그저 디자인이 지상의 일반적인 업장과 비슷한 셔츠와 바지에 깨끗한 연분홍색이라는 데서 안심했다가 재봉선이 없어 신기한 기분이 들어 놀랐었다.
“김연지 씨, 어서 오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내가 막내이니 따지자면 말도 안 되게 늦은 것이다. 나는 한껏 미안한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일찍 나오겠습니다.”
내게 ‘일찍 나왔다’고 한 문 대덕은 문어 혼혈이라서 민머리인 것이라고들 했는데 여자라서 내게는 그 머리 모양이 약간 낯설었다. 그녀는 동그랗고 예쁜 눈을 크게 떴다.
“왜요? 일찍 나오셨는데요.”
“제가 더 빨리 나와서 같이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첫날이라 잘 몰라서 늦었네요.”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문 대덕은 당황해 하며 손을 저었다. 그 손끝에는 작은 빨판이 하나씩 달려 있었는데 다행히도 손가락은 모두 열 개였다.
“아니어요. 김연지 씨는 수라간 관원이 아니라 용자님을 위해 와 주신 손님이시니 지금 오신 걸로도 충분해요. 어라하와 어륙, 그리고 용자님이 조반을 젓수실 시각은 아직 조금 남았답니다.”
계약직 말단 직원이 아니었어? 나는 이게 눈치 없는 막내를 비꼬아 혼내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고민하다가 내 사기꾼 면접관이 했던 말을 문득 떠올렸다.
‘사택에 요리해 주는 분이 많은데 김연지 씨는 그분들하고는 대우가 다를 거예요.’
그게 갑자기 나 혼자만 들어 있는 부서를 따로 개설했다는 의미였냐. 적어도 내가 대학 나왔고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는 이유는 이제 핑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택에서 하는 일이 오너의 스마트폰 중독 아들의 전속 영양사라고까지는 차마 치환하지 못했던 면접관이 대강 내 업무 내용을 얼버무리면서 그나마 내 일이 일반적인 업장 근무와는 다르다는 힌트만 날렸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뭐 더 생각하는 것도 시간 낭비다. 더 열받는 것은 물론 더한 낭비고. 나는 문 대덕에게 주방장의 소재를 물었고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부엌 뒷문 중 하나로 그가 들어왔다. 주방장은 나를 보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일찍 나왔네요, 연지 씨. 잘 쉬었어요? 어제는 많이 놀랐지요?”
그건 내가 용궁에 도착한 그 순간에 누가 물어 줬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빙긋 웃었다. 주방장은 어제저녁에 내게 좋은 예를 보이고 싶다면서 정말로 훌륭한 요리를 해 주었는데 그것이 줘도 안 먹을 음식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아주 침울해 있을 것도 각오했다. 그리고 그런 막말까지 나온 것은 내가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들 잘해 주셔서 잘 쉬었어요. 감사합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지요? 저는 뭘 할까요?”
주방장은 손뼉을 쳤다.
“자세가 좋아요. 용자님도 어제 그런 말씀까지 들으셨으니 오늘 조반은 조금이라도 젓수시겠지요. 어라하와 어륙이 젓수실 수라는 저희가 준비하니 걱정하지 마시고, 연지 씨는 그냥 용자님 드릴 것만 자유롭게 만들어 주면 돼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요. 어제 보니까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하던데요.”
“감사합니다.”
나는 팔짱을 끼었다. 주방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무슨 일이 있나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용궁의 음식은 주방장님께서 다 관리하신다니 주방장님께 드리는 게 맞는 것 같고요.”
“무슨 말인데요?”
주방장은 ‘다’ 부분에서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 사람은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존심 센 요리인의 음식을 손도 대지 않다니, 다시 생각해도 열이 받는다.
나는 아마도 약간 무시무시해졌을 얼굴로 웃었다.
“용자님 식사 말인데요. 아침 점심 저녁에 어라하와 어륙이 드실 때 같이 드시는 끼니 말고는, 제가 따로 만들어 드리는 것 외엔 나가는 게 없었으면 해서요.”
주방장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러니까.”
나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왼손 팔꿈치를 딱딱 눌렀다.
“용자님이 세끼 식사를 제대로 안 하시는 건 간식을 드셔서 그런 것 같거든요. 그러니 용자님의 건강을 위해서도 간식은 일단 전부 금지하고, 세끼 식사에 충실하시도록 하고 싶어요.”
내 말에 주방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약간 사라졌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난처한 눈치를 보였다.
“간식을 안 드시면 배고프실 텐데.”
“식사를 안 하시니까 배고프신 거지요.”
다 큰 남자가 가장 유치한 종류의 편식을 하게 만든 장본인 중에는 이 사람, 아니, 이 남자? 아무튼 주방장도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내 속이 터지는 소리를 하더니 나의 반박에 잠깐 눈을 감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동의했다.
“……예. 용자님의 식사에 관해서는 최대한 연지 씨가 원하는 대로 해 드리라고 어라하와 어륙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리 따르지요.”
그런 일이 있었어? 설리번 선생님보다는 대우가 나은 것도 같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꼭 잘 부탁드릴게요. 식사도 한동안은 제가 드리는 것만 드시도록 해서 우선은 속을 달래 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주방장의 얼굴이 갑자기 나는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넘쳐났다. 나는 약간 찔끔했다. 설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들켰나?
이윽고 주방장은 제 입을 솥뚜껑 같은 두 손으로 가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제발.
“용자님께서…… 천원 용자님께서 제대로 식사를 젓수시게 하려고 정말로 안 해 본 일이 없답니다. 하지만 연지 씨처럼 단호하게 나선 분은 없었어요. 연지 씨처럼 지상 것을 많이 배운 분도 없었고요. 이제야 뭔가 좀 바뀔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너무 믿지도 말고. 효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이러다가 그냥 잘려도 나는 모르는 일이다.
“저희는 모두 용자님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뵈어 왔으니, 저렇게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하신 모습을 뵈면서 대단히 자랑스러운 생각도 드는가 하면 그저 안쓰러운 생각도 든답니다. 그래서 용자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저희 모두 조금 맹목적으로 약해지는 감도 있지요.”
용왕과 용궁부인만 혼낼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절대로 용자님께 아무것도 못 가져다드리게 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제가 책임을 질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굶기세요. 마르지도 않는다는데 뭐.
다른 경우였다면 나는 책임을 질 능력조차 없는 그냥 막내였겠지만 여기 분위기가 이 정도 책임은 주는 분위기다. 그것은 내 성격에 맞는 일이었다. 주방장은 순박하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네에, 네. 연지 씨가 생각하시는 게 있겠지요. 그리 명해 두겠습니다.”
“주방장님만 믿을게요.”
요리는 사랑이 담길수록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고려할수록 만족도가 높아질 확률은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저놈의 천원 용자가 식사를 잘하면 좋겠다고 걱정하며 주방장이 만든 요리는 모두 어려서부터 천원이 잘 먹었다는 재료로 된 것이었다. 그 편식쟁이는 주방장이 그 신선하고 자기를 위한 재료를 얼마나 공들여 손질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내 요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내가 꼭 원한을 품은 것은 아니다.
기술자가 한을 품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지. 나는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하며 주방장에게 인사하고 곡물 창고 쪽으로 갔다. 가슴속이 어제처럼 울렁거렸다.
이 사기 계약.
내 쪽에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해 줘야 할 모양이다.
제2장 오천 원짜리
남색 앞치마를 벗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앞치마 말이에요, 문 대덕님.”
백삼십년 전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야채 써는 일을 맡고 있다는 문 대덕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자리가 내 자리와 가까워, 요 며칠간 내 의문을 해결해 주는 일은 그녀가 많이 맡고 있었다.
“네, 연지 씨.”
“이 앞치마는 더러운 걸 닦으려고 입는 거잖아요?”
“네.”
용궁 사람들에게는 놀랍게도 얼마 전까지 세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입는 옷은 모두 연꽃 실로 만든 것인데 연꽃 실에는 더러움이 묻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방장인 골소마리 나솔은 획기적이게도 부엌 유니폼에 앞치마를 더했고 그 앞치마는 부엌일을 하다가 손에 묻은 더러운 것을 쉽게 닦아 내고 싶은 수라간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가져왔다. 그리고 용궁 일꾼들은 끼니 사이마다 수라간에서 나오는 수백 장의 앞치마를 빠는 일을 추가로 하게 되었다.
“그럼 더러운 게 묻는다는 거니까, 연꽃 실로 만든 게 아니잖아요?”
“그럼요.”
문 대덕은 역시 친절하게 말했다.
“어디서 들여오는 거예요?”
연꽃 실로 만든 이곳의 조리복은 오래 입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 입은 듯 가벼웠으며 대단히 매끄러웠는데 앞치마는 그냥 지상에서 쓰던 것과 재질이 비슷했다. 문 대덕이 빙긋 웃었다.
“지상에서 주문해 온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나는 그간 두려워하던 것을 확인했다.
“지상에서 주문하면 바다로 와요……?”
내 브로커―나는 내 면접관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의 손이 거기까지 뻗어 있는 건가? 아니면 설마 별 혼자서 그걸 다 나르는 건가? 이 넓은 용궁에서도 지상과 용궁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건 별밖에 없다면서.
문 대덕은 손뼉을 쳤다.
“그럼요. 아, 모르셨구나. 물건이 많을 때는 일단 주문해서 바닷가로 받은 다음에 홍수를 일으켜서 쓸어 와요.”
세상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홍수요?”
“육지 백성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서 하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문 대덕은 그러더니 참으로 예쁘게 호호 웃었다. 용궁 건물에 쓰인 수많은 목재의 운반 루트를 이제 알았다. 어민들에게 죄송합니다. 아니, 내가 죄송할 이유는 없지만.
주방장이 다가왔다. 그도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다 됐어요, 연지 씨?”
“앗, 네, 주방장님.”
다른 사람들은 그를 나솔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용궁에서의 직위가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나 같은 외부 인사를 데려온 것이 이쪽도 처음인 모양이라 손님의 위치는 대단히 애매하면서도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갈까요.”
“네.”
나는 문 대덕에게 눈인사를 하고 내가 만든 요리를 쟁반에 올렸다. 월수궁의 잡다한 일 전반을 맡아 하는 시종들이 들어와 음식을 옮겼다. 그 시종들의 뒤를 따라가려 하자 주방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연지 씨. 오늘도 가 있게요……?”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였다.
“당연하죠. 제가 한 말이니 끝까지 확인해야 하잖아요.”
천원 용자는 아직 음식에게 절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