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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우리는 주방의 뒷문을 나서 그 뒤쪽에 자리한 창고를 방문했다. 창고는 이곳에 있는 것만도 방대했는데 이곳의 것은 월수궁 및 주변 전각에서 쓰일 음식을 만들 만큼만이고 사실 용궁 전체에 수라간과 창고가 여럿 흩어져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요리를 주방장님이 관리하시는 거예요?”
주방장은 아주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곡물 창고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 주면서 애써 겸손하게 말했다.
“제 아랫사람들이 보지요. 사실 저번 어라하가 계실 때만 해도 요리사는 최고 관품이 고덕이었는데 지금은 나솔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사람들이 주방장을 골소마리 나솔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저 어려워서 그 이름을 외우는 데 조금 걸릴 것 같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솔이란 것이 알고 보니 아주 자랑스러운 타이틀인 모양이었다.
“어라하와 어륙이 참 훌륭하고 좋은 분이시고 아랫사람들이 일하면 그걸 대우해 주세요. 물론 저번 어라하께서도 훌륭한 분이셨지만 이번 어라하가 보위에 오르시면서 다른 나라 백성들도 우리를 부러워하지요.”
나도 용왕 부부는 마음에 들었다. 주방장은 일본 이름이 붙은 모 고급 백미를 보여 주면서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저는 지금 어라하와 어륙을 모시는 것이 아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용자께서도 지금은 연소하시지만 윗분들을 본받아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하실 것이라고 믿어요.”
스마트폰 중독 왕자가?
나는 아침 식사 시간에 보았던 천원 용자의 태도가 떠올라 주방장의 말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 겨우 잠시 보았을 뿐인 나와 옛날부터 이 주방에서 생활해 온 주방장은 그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아주 다를 것이었다.
……약간 기뻐졌다. 나는 주방장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 점심은 준비하고 계시니까, 저녁에는 저도 뭔가 시험 삼아 만들어 용자님께 드려 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용궁의 주방에는 내가 모르는 재료가 많았고 처음부터 모험을 하는 것은 나와 주방장 모두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지상에서 나는 재료 및 내가 잘 아는 해산물만 넣어서 몇 가지를 만들었다. 간단하지만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레시피였고 맛을 본 부엌 식구들은 즐거워했다.
“지상 입맛하고 용궁 입맛이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은가 봐요.”
혹시 모두가 예의상 칭찬해 준 거면 난처하겠지만, 내가 아침과 점심으로 먹은 식사는 내 입맛에도 꼭 맞았었다. 몇 가지 내가 이해 못 하는 맛도 있긴 했지만 그거야 지상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주방장은 내 옆에서 벙글벙글 웃었다.
“용궁 사람들도 지상 음식을 많이 먹거든요.”
놀라울 정도로 많이 먹던데. 점심에 나온 요리는 아침과는 식감이 달랐지만 여전히 무척 맛있었다. 주방장의 솜씨도 과연 몇백 년이나 이 일을 해 온 사람답게 뛰어났는데 그는 지상 재료도 저 창고에 있는 것은 모두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 솜씨 자체보다는 특별한 식단을 짤 수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라고 납득도 할 수 있었다.
“용궁에서는 절대 안 먹는 재료나 조리법은 없나요?”
“지상에서 먹는 건 저희도 대부분 먹는데…… 비린 건 안 되지요.”
바닷속에 있는 시점에서 비리지 않나. 내 얼굴을 본 주방장이 부연했다.
“고기는 피가 안 나오게 다 익어야 돼요. 지상에서 먹는, 그, 회인가요? 그건 안 된답니다. 저희는 괜찮은데 어라하, 어륙, 용자님 세 분께 올리는 건 꼭이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핏기가 있어야 맛있는 재료는 셀 수도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고객의 취향이라면 하는 수 없다.
“용자님이 좋아하실지는 걱정되네요. 입이 원래 짧으세요?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나는 내가 만든 요리를 직접 옮기고 있었고 다행히 지금은 핏기 있는 음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제를 약간 바꿨다. 주방장은 멋진 바퀴가 달린 트레이를 밀며 설명해 주었다.
“더 연소하실 때는 아무거나 잘 드셨는데 사춘기가 오시면서부터 편식을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입이 많이 짧으세요. 많이 저수시는 게 없어요.”
편식을 무려 ‘하시더라고요’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게 되다니. 아무튼 이 착하고 천원 용자를 사랑하는 주방장이 하는 말이니 사실일 터였다. 나는 천원 용자의 취향이 뭘지 고민해 보았다. 우선 재료를 다양하게 써 보면서 파악하는 것부터일까.
음식을 두러 들어가 보니 용왕 가족 세 명은 벌써 와서 앉아 있었다. 천원은 우리에게 알은척도 안 했지만 용왕과 용궁부인은 즐겁게 인사했다.
“좋은 냄새가 나던데, 골소마리 나솔.”
“연지 씨가 저녁을 같이 만들었다면서요? 기대하고 있어요.”
“어라하, 어륙.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성은이 망극합니다.”
감동을 잘 받는 주방장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나는 내가 가져온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고 주방장의 트레이에 있는 음식도 주방장 및 이 자리의 시종들과 함께 세팅했다.
“어머나, 고와라. 정말 맛있겠네요.”
용궁부인이 내가 일부러 겉모습에 공을 많이 들인 스튜를 보고 감탄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하고 뒤에 섰다. 주방장의 말에 의하면 대덕이라는 관품에 속한다는 시종들이 내게 친절하게 말했다.
“세 분의 식사 시중은 저희가 드니 괜찮습니다.”
식사 시중을 들려고 선 것은 아니었다. 나는 빙긋 웃고 말했다.
“용자님께서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제가 아직 모르니 무엇을 많이 드시나 보려고요.”
시종들은 아, 하며 친절하게도 내게 천원 용자가 잘 보이는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식탁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천원 용자가 어떤 식으로 식사하는지 보았다.
용왕 부부는 예의 바르고 단정하게 식사하며 자주 음식의 맛을 칭찬했고 주방장은 아주 행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천원은 음식이 나왔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으며 젓가락은 가끔 특정한 몇 가지 반찬에만 갔다. 먹고 나서는 웃기는커녕 심지어 기분이 더 나빠진 것도 같았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점점 짜증이 났다. 그는 자기 앞에 아예 따로 놓인 부드러운 스튜를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처음에는 김이 났던 스튜는 점점 차게 식어 갔다.
결국 용왕이 아들에게 한 소리를 했다.
“천원아, 식사 시간에는 식사를 해야지. 그 수첩은 치우는 게 어떠냐.”
수첩은 아니지만 수첩보다 더 많은 내용이 들어 있긴 하다. 천원은 아버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휴대폰을 보다가 세 번째로 자기 이름이 불렸을 때에야 눈을 들었다. 그는 잠깐 눈치를 보듯 상을 둘러본 뒤 버섯을 하나 집어 천천히 입에서 씹더니 또다시 인상을 쓰며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울컥했다. 심장이 불쾌하게 울컥거리며 뛰고 피가 머리에 빠르게 돌았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아드님을 너무 아끼면서 키우셨어요.”
내가 왜 이 나이에 스무 살 과외 교사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내 친구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다. 정말 빨리 결혼해서 애가 있는 케이스도 있다. 내가 교육업에 종사하기로 마음 먹은 적이 없는 이상, 이 나이 먹어서 다른 집 부모에게 좀 더 자식에게 엄해져야 할 필요성을 논할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계약을 잘못 맺은 것이다.
“적어도 저렇게 식사하는 건 요리사 잘못은 아니지요.”
“……내버려 둬.”
이번에는 들렸는지 천원은 툴툴거렸다. 그나마 자기 부모님에게 한 소리 하는 것은 싫은 모양이었다.
열다섯 살, 아무래도 나는 요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짜로 나온 음식에 불평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 ‘학생’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겉모습만으로는 백 퍼센트 인간이니 똑같이 싫어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원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았다. 그는 잘생긴 얼굴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밥 안 먹을 거면 치울 거예요.”
“……안 먹어.”
이 요리를 한 장본인인 인상 좋은 주방장은 아주 우울한 얼굴을 뒤늦게 감췄다. 나는 주방장의 얼굴을 한 번 힐끔 본 뒤 천원에게 말했다.
“잘됐네요. 해 놓은 음식을 식을 때까지 두는 건 음식을 모욕하는 거고, 그런 사람한테는 밥을 줄 필요가 없어요. 음식에게 세 번 절하고 먹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굶으세요.”
편식하느라 굶어 죽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식사 시간에 식당에 오는 것까지는 아무튼 하는 모양이니 큰일이야 없을 것이다. 아마 혼이 안 나서 저러는 걸 테지.
나는 대충 그런 생각으로 한 일이었는데 저녁에 나에게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물어보러 온 시녀는 내가 대단히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감탄했다.
“해야 용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라하와 어륙은 도저히 꾸짖지를 못하셨어요. 역시 손님을 모셔 온 보람이 있다고 기뻐하셨대요.”
그럴 리가 있나?
“사용인이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고 싫어하신 게 아니고요?”
나는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프레임에 훌륭한 조각이 되어 있는 침대는 푹신했다. 시녀는 진심으로 천진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원래 천원 용자님은 한두 술만 뜨고 일어나실 때가 많아요. 어라하가 엄하게 말씀하셔도 듣는 척도 안 하시는데 오늘은 연지 아가씨 말씀에 눈을 휘둥그레지게 뜨셨다면서요.”
솔직히 그 잘생긴 얼굴에서 눈이 커지니까 볼거리이긴 했다. 나는 픽 웃었다.
“엄하게 혼나질 않아서 그렇죠. 그런데 매끼 한두 술만 뜨는데 어쩜 그렇게 건강해 보여요?”
영양실조로 쓰러져야 정상인데, 천원은 키도 충분히 크고 건장해 보였다. 시녀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여의주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밤에 가끔 수정과 같은 걸 드리기도 해요.”
“앞으로는 밤에도 주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 둬야겠어요.”
원인이 확실했네. 방에서 매일 끼니 사이에 과자를 먹고 있다고까지 가정하면 그림으로 그린 듯한 멍청이 한 세트가 완성이다. 나는 기분 나쁜 얼굴을 했다. 시녀는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내게 낮부터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여의주가 뭐예요?”
들은 기억은 난다. 용이 가지고 있는 구슬이라는 정도만 알지만. 그게 있는데 배가 고픈 것과 무슨 상관이지? 시녀가 아, 하고 설명했다.
“보주 중의 보주인데 모르셔요? 밤에는 빛을 내고 여의주를 가진 자는 배를 곯더라도 마르지 않는답니다.”
사기네. 그럼 정말로 내가 없어도 되는 것 아니었나? 나는 약간 인상을 썼다.
“그럼 특별히 식사를 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 아니에요?”
“그래도 곡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요. 몸도 약해지고요. 여의주만 가지고 버티면 성격이 나빠져요.”
왠지 천원의 나쁜 성격에 대한 설명을 약간 얻은 것 같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농담했다.
“가급적 그것도 뺏어야겠는데요.”
시녀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연지 아가씨는 멋있네요. 용자님은 아주 귀한 핏줄이시니 신에 가까우신데, 무섭지는 않으세요?”
신에 가깝다는 건 처음 들었다.
“제 눈에는 그냥 반찬 투정 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시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또 웃었다. 나는 갑자기 약간 찝찝해져 확인했다.
“혹시 제가 혼냈다고 천벌을 내리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요?”
“어머나, 아가씨도. 그럴 리가 있나요. 용자님은 그런 분 아니세요.”
할 수는 있다는 거야? 나는 한숨을 쉬며 베개를 끌어안았다. 내가 침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것을 보고 시녀는 눈을 또 반짝거렸다.
“연지 아가씨는 진짜 멋있으세요. 머리칼도 아름다워요.”
내 머리는 간신히 묶이기만 하는 숏커트이지만 머릿결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신체의 마음에 드는 구석 중 하나였다. 나는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용궁 사람들은 다들 머리가 길던데 혹시 자르는 걸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시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용궁에선 길고 윤기 있는 머리칼을 다들 좋아하니까 기르는데, 아가씨 같은 머리 모양도 예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난 또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하는 곳인 줄 알았다. 나는 예쁘다는 말을 또 듣자 약간 부끄러워져 킥킥 웃었다.
“감사합니다. 뭐 좀 여쭤봐도 되나요?”
“네, 궁금하신 건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릴게요.”
용궁 사람들은 다들 예의가 바르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여기 휴대폰 충전은 어떻게 하나요?”
“제가 해서 가져다드릴게요.”
시녀는 선뜻 일어났다.
우리는 주방의 뒷문을 나서 그 뒤쪽에 자리한 창고를 방문했다. 창고는 이곳에 있는 것만도 방대했는데 이곳의 것은 월수궁 및 주변 전각에서 쓰일 음식을 만들 만큼만이고 사실 용궁 전체에 수라간과 창고가 여럿 흩어져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요리를 주방장님이 관리하시는 거예요?”
주방장은 아주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곡물 창고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 주면서 애써 겸손하게 말했다.
“제 아랫사람들이 보지요. 사실 저번 어라하가 계실 때만 해도 요리사는 최고 관품이 고덕이었는데 지금은 나솔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사람들이 주방장을 골소마리 나솔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저 어려워서 그 이름을 외우는 데 조금 걸릴 것 같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솔이란 것이 알고 보니 아주 자랑스러운 타이틀인 모양이었다.
“어라하와 어륙이 참 훌륭하고 좋은 분이시고 아랫사람들이 일하면 그걸 대우해 주세요. 물론 저번 어라하께서도 훌륭한 분이셨지만 이번 어라하가 보위에 오르시면서 다른 나라 백성들도 우리를 부러워하지요.”
나도 용왕 부부는 마음에 들었다. 주방장은 일본 이름이 붙은 모 고급 백미를 보여 주면서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저는 지금 어라하와 어륙을 모시는 것이 아주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용자께서도 지금은 연소하시지만 윗분들을 본받아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하실 것이라고 믿어요.”
스마트폰 중독 왕자가?
나는 아침 식사 시간에 보았던 천원 용자의 태도가 떠올라 주방장의 말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아침 겨우 잠시 보았을 뿐인 나와 옛날부터 이 주방에서 생활해 온 주방장은 그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아주 다를 것이었다.
……약간 기뻐졌다. 나는 주방장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 점심은 준비하고 계시니까, 저녁에는 저도 뭔가 시험 삼아 만들어 용자님께 드려 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용궁의 주방에는 내가 모르는 재료가 많았고 처음부터 모험을 하는 것은 나와 주방장 모두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지상에서 나는 재료 및 내가 잘 아는 해산물만 넣어서 몇 가지를 만들었다. 간단하지만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레시피였고 맛을 본 부엌 식구들은 즐거워했다.
“지상 입맛하고 용궁 입맛이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은가 봐요.”
혹시 모두가 예의상 칭찬해 준 거면 난처하겠지만, 내가 아침과 점심으로 먹은 식사는 내 입맛에도 꼭 맞았었다. 몇 가지 내가 이해 못 하는 맛도 있긴 했지만 그거야 지상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주방장은 내 옆에서 벙글벙글 웃었다.
“용궁 사람들도 지상 음식을 많이 먹거든요.”
놀라울 정도로 많이 먹던데. 점심에 나온 요리는 아침과는 식감이 달랐지만 여전히 무척 맛있었다. 주방장의 솜씨도 과연 몇백 년이나 이 일을 해 온 사람답게 뛰어났는데 그는 지상 재료도 저 창고에 있는 것은 모두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 솜씨 자체보다는 특별한 식단을 짤 수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라고 납득도 할 수 있었다.
“용궁에서는 절대 안 먹는 재료나 조리법은 없나요?”
“지상에서 먹는 건 저희도 대부분 먹는데…… 비린 건 안 되지요.”
바닷속에 있는 시점에서 비리지 않나. 내 얼굴을 본 주방장이 부연했다.
“고기는 피가 안 나오게 다 익어야 돼요. 지상에서 먹는, 그, 회인가요? 그건 안 된답니다. 저희는 괜찮은데 어라하, 어륙, 용자님 세 분께 올리는 건 꼭이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핏기가 있어야 맛있는 재료는 셀 수도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고객의 취향이라면 하는 수 없다.
“용자님이 좋아하실지는 걱정되네요. 입이 원래 짧으세요?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나는 내가 만든 요리를 직접 옮기고 있었고 다행히 지금은 핏기 있는 음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제를 약간 바꿨다. 주방장은 멋진 바퀴가 달린 트레이를 밀며 설명해 주었다.
“더 연소하실 때는 아무거나 잘 드셨는데 사춘기가 오시면서부터 편식을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입이 많이 짧으세요. 많이 저수시는 게 없어요.”
편식을 무려 ‘하시더라고요’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게 되다니. 아무튼 이 착하고 천원 용자를 사랑하는 주방장이 하는 말이니 사실일 터였다. 나는 천원 용자의 취향이 뭘지 고민해 보았다. 우선 재료를 다양하게 써 보면서 파악하는 것부터일까.
음식을 두러 들어가 보니 용왕 가족 세 명은 벌써 와서 앉아 있었다. 천원은 우리에게 알은척도 안 했지만 용왕과 용궁부인은 즐겁게 인사했다.
“좋은 냄새가 나던데, 골소마리 나솔.”
“연지 씨가 저녁을 같이 만들었다면서요? 기대하고 있어요.”
“어라하, 어륙.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성은이 망극합니다.”
감동을 잘 받는 주방장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나는 내가 가져온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고 주방장의 트레이에 있는 음식도 주방장 및 이 자리의 시종들과 함께 세팅했다.
“어머나, 고와라. 정말 맛있겠네요.”
용궁부인이 내가 일부러 겉모습에 공을 많이 들인 스튜를 보고 감탄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하고 뒤에 섰다. 주방장의 말에 의하면 대덕이라는 관품에 속한다는 시종들이 내게 친절하게 말했다.
“세 분의 식사 시중은 저희가 드니 괜찮습니다.”
식사 시중을 들려고 선 것은 아니었다. 나는 빙긋 웃고 말했다.
“용자님께서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제가 아직 모르니 무엇을 많이 드시나 보려고요.”
시종들은 아, 하며 친절하게도 내게 천원 용자가 잘 보이는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식탁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천원 용자가 어떤 식으로 식사하는지 보았다.
용왕 부부는 예의 바르고 단정하게 식사하며 자주 음식의 맛을 칭찬했고 주방장은 아주 행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천원은 음식이 나왔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으며 젓가락은 가끔 특정한 몇 가지 반찬에만 갔다. 먹고 나서는 웃기는커녕 심지어 기분이 더 나빠진 것도 같았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점점 짜증이 났다. 그는 자기 앞에 아예 따로 놓인 부드러운 스튜를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처음에는 김이 났던 스튜는 점점 차게 식어 갔다.
결국 용왕이 아들에게 한 소리를 했다.
“천원아, 식사 시간에는 식사를 해야지. 그 수첩은 치우는 게 어떠냐.”
수첩은 아니지만 수첩보다 더 많은 내용이 들어 있긴 하다. 천원은 아버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휴대폰을 보다가 세 번째로 자기 이름이 불렸을 때에야 눈을 들었다. 그는 잠깐 눈치를 보듯 상을 둘러본 뒤 버섯을 하나 집어 천천히 입에서 씹더니 또다시 인상을 쓰며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울컥했다. 심장이 불쾌하게 울컥거리며 뛰고 피가 머리에 빠르게 돌았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아드님을 너무 아끼면서 키우셨어요.”
내가 왜 이 나이에 스무 살 과외 교사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내 친구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다. 정말 빨리 결혼해서 애가 있는 케이스도 있다. 내가 교육업에 종사하기로 마음 먹은 적이 없는 이상, 이 나이 먹어서 다른 집 부모에게 좀 더 자식에게 엄해져야 할 필요성을 논할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계약을 잘못 맺은 것이다.
“적어도 저렇게 식사하는 건 요리사 잘못은 아니지요.”
“……내버려 둬.”
이번에는 들렸는지 천원은 툴툴거렸다. 그나마 자기 부모님에게 한 소리 하는 것은 싫은 모양이었다.
열다섯 살, 아무래도 나는 요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짜로 나온 음식에 불평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 ‘학생’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겉모습만으로는 백 퍼센트 인간이니 똑같이 싫어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원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았다. 그는 잘생긴 얼굴로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밥 안 먹을 거면 치울 거예요.”
“……안 먹어.”
이 요리를 한 장본인인 인상 좋은 주방장은 아주 우울한 얼굴을 뒤늦게 감췄다. 나는 주방장의 얼굴을 한 번 힐끔 본 뒤 천원에게 말했다.
“잘됐네요. 해 놓은 음식을 식을 때까지 두는 건 음식을 모욕하는 거고, 그런 사람한테는 밥을 줄 필요가 없어요. 음식에게 세 번 절하고 먹고 싶은 기분이 들 때까지 굶으세요.”
편식하느라 굶어 죽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식사 시간에 식당에 오는 것까지는 아무튼 하는 모양이니 큰일이야 없을 것이다. 아마 혼이 안 나서 저러는 걸 테지.
나는 대충 그런 생각으로 한 일이었는데 저녁에 나에게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물어보러 온 시녀는 내가 대단히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감탄했다.
“해야 용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어라하와 어륙은 도저히 꾸짖지를 못하셨어요. 역시 손님을 모셔 온 보람이 있다고 기뻐하셨대요.”
그럴 리가 있나?
“사용인이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고 싫어하신 게 아니고요?”
나는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 프레임에 훌륭한 조각이 되어 있는 침대는 푹신했다. 시녀는 진심으로 천진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원래 천원 용자님은 한두 술만 뜨고 일어나실 때가 많아요. 어라하가 엄하게 말씀하셔도 듣는 척도 안 하시는데 오늘은 연지 아가씨 말씀에 눈을 휘둥그레지게 뜨셨다면서요.”
솔직히 그 잘생긴 얼굴에서 눈이 커지니까 볼거리이긴 했다. 나는 픽 웃었다.
“엄하게 혼나질 않아서 그렇죠. 그런데 매끼 한두 술만 뜨는데 어쩜 그렇게 건강해 보여요?”
영양실조로 쓰러져야 정상인데, 천원은 키도 충분히 크고 건장해 보였다. 시녀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여의주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밤에 가끔 수정과 같은 걸 드리기도 해요.”
“앞으로는 밤에도 주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 둬야겠어요.”
원인이 확실했네. 방에서 매일 끼니 사이에 과자를 먹고 있다고까지 가정하면 그림으로 그린 듯한 멍청이 한 세트가 완성이다. 나는 기분 나쁜 얼굴을 했다. 시녀는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내게 낮부터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여의주가 뭐예요?”
들은 기억은 난다. 용이 가지고 있는 구슬이라는 정도만 알지만. 그게 있는데 배가 고픈 것과 무슨 상관이지? 시녀가 아, 하고 설명했다.
“보주 중의 보주인데 모르셔요? 밤에는 빛을 내고 여의주를 가진 자는 배를 곯더라도 마르지 않는답니다.”
사기네. 그럼 정말로 내가 없어도 되는 것 아니었나? 나는 약간 인상을 썼다.
“그럼 특별히 식사를 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 아니에요?”
“그래도 곡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요. 몸도 약해지고요. 여의주만 가지고 버티면 성격이 나빠져요.”
왠지 천원의 나쁜 성격에 대한 설명을 약간 얻은 것 같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농담했다.
“가급적 그것도 뺏어야겠는데요.”
시녀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연지 아가씨는 멋있네요. 용자님은 아주 귀한 핏줄이시니 신에 가까우신데, 무섭지는 않으세요?”
신에 가깝다는 건 처음 들었다.
“제 눈에는 그냥 반찬 투정 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시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또 웃었다. 나는 갑자기 약간 찝찝해져 확인했다.
“혹시 제가 혼냈다고 천벌을 내리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요?”
“어머나, 아가씨도. 그럴 리가 있나요. 용자님은 그런 분 아니세요.”
할 수는 있다는 거야? 나는 한숨을 쉬며 베개를 끌어안았다. 내가 침대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것을 보고 시녀는 눈을 또 반짝거렸다.
“연지 아가씨는 진짜 멋있으세요. 머리칼도 아름다워요.”
내 머리는 간신히 묶이기만 하는 숏커트이지만 머릿결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신체의 마음에 드는 구석 중 하나였다. 나는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용궁 사람들은 다들 머리가 길던데 혹시 자르는 걸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시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용궁에선 길고 윤기 있는 머리칼을 다들 좋아하니까 기르는데, 아가씨 같은 머리 모양도 예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난 또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하는 곳인 줄 알았다. 나는 예쁘다는 말을 또 듣자 약간 부끄러워져 킥킥 웃었다.
“감사합니다. 뭐 좀 여쭤봐도 되나요?”
“네, 궁금하신 건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건 다 말씀드릴게요.”
용궁 사람들은 다들 예의가 바르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여기 휴대폰 충전은 어떻게 하나요?”
“제가 해서 가져다드릴게요.”
시녀는 선뜻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