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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안타깝게도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기엔 용왕 부처가 너무 위엄 있었다. 용궁부인은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그것이 약간 기다리던 말을 들은 사람처럼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한테는 딸이 하나,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아들이 있는 건 알겠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가족 관계 등록부부터 보여 주는 걸까. 나는 무뚝뚝한 청년을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따님께서는 그럼 지금…….”
“결혼해서 외국으로 나갔어요.”
글로벌하시구나. 용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인 줄은 몰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이나 했다.
“보고 싶으시겠어요.”
“네에, 정말 보고 싶지요!”
용궁부인은 아들을 약간 흘겨보았고 용왕은 부인이 하는 행동을 따라 했다. 용자는 인상을 쓰더니 소매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저 익숙한 사운드와 손가락 동작을 보니 아무래도 같은 색을 세 개 맞추면 사라지는 그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잠깐, 여기 스마트폰이 있다고?
“여기 스마트폰이 터지나요?”
그러고 보니 휴대폰이 젖지 않았다는 건 확인했지만 터지는지는 보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엄마한테 연락이 안 되면 나는 실종자가 될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아 용자에게 물었다. 용자는 불퉁하게 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외모만큼 내게 인상을 깊이 남겼지만 내용은 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와이파이는 안 돼.”
와이파이는 안 되는구나. 젠장.
용왕은 아들에게 준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먼 데서 오신 손님께 그게 무슨 말투냐, 천원아.”
잘생긴 청년의 이름은 천원으로 밝혀졌다. 한자에 따라 멋진 이름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돈의 단위로 더 익숙한 발음이었다. 나는 웃지 않기 위해 잠깐 노력했다. 청년은 툴툴거렸으며 나는 그 목소리로 그가 나보다 약간 어린 것 같다고 판단했다.
“고용한 사람이잖아.”
“그것이 네가 손님에게 무례한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용궁 백성이 아니니 네가 시종이나 시비를 대하는 것과는 달라야 하느니라.”
여기 시종과 시비도 있군요. 그런 것 같았어요. 아까 그 아가씨들과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청년이 그걸까.
천원은 자기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손놀림을 보니 인터넷 기사라도 보는 모양이었다. 설마 카톡을 하진 않을…… 가만, 혹시 다른 용궁의 왕자들이나 자기 누나와 만든 톡방이 있는 건 아닐까. 무시무시하다.
솔직히 혼을 낼 줄 알았는데 용왕과 용궁부인은 한숨만 함께 쉬었다. 나는 천원의 버릇없는 태도가 거슬렸지만 고용주의 아들을 가르칠 이유는 없어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용왕이 설명으로 돌아갔다.
“유일한 딸이 시집을 가서 쓸쓸하던 차에 이 녀석이 늦둥이로 태어나서 우리가 솔직히 너무 예뻐하며 키웠지요. 그래서인지 애가 부모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매일같이 저 조그만 수첩 같은 것에 빠져 살아서…….”
수첩 아닙니다. 따님을 해외에 시집 보내시는 용왕님은 그러나 스마트폰은 잘 모르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첩 소리가 나오는 걸로 보아 휴대폰이나 삐삐도 모르실 수도 있었다. 나는 본인이 있는 데서 너무 노골적으로 공감해 줄 수가 없어 애매하게 으음…… 하고 이해한 척을 했다. 용궁부인은 그걸로도 만족한 듯 말했다.
“우리가 잘못 키운 걸 누굴 탓하겠습니까만, 그렇다고 애를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말이에요. 천만 다행히 이 녀석이 지상의 문물에는 관심이 있으니…….”
“……내 얘기 좀 그만해.”
천원은 발끈했다. 나는 그 반항이 너무나도 사춘기 수준이라 약간 놀랐다. 심지어 저렇게 멋있는 어머니의 말을 끊다니 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얘가 이렇답니다.”
용궁부인은 우아하게 뺨을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용왕이 아내를 위로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여보.”
“그만하라니까! 아침 안 먹을 거면 나 갈 거야.”
천원은 그대로 일어나더니 식당을 나섰다. 나는 이쯤에서는 용왕이 아들의 머리에 그릇을 던져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며 우리 집이라면 아마 그랬겠지만 용왕 가족은 문명인이었다. 시종은 놀라지도 않고 문을 닫았으며 용왕과 용궁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애가 밥을 안 먹는 게 제일 걱정이랍니다. 가끔 먹는다고 해 봐야 먹기 편한 것만 조금 먹고 또 자기 방에서 저것만 잡고 있는데.”
한국이라면 저건 라면을 부숴 먹거나 피자를 시켜 먹는다는 얘긴데 용궁에도 그런 게 있나?
“그래도 부모니 애가 안 먹어서 아픈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서, 논의하다가 아들을 위한 요리를 따로 맡아 줄 분이 있었으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아, 예에.”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누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늦둥이 막내를 오냐오냐 기른 나머지 애가 자기 건강도 안 챙기고 스마트폰 중독에 빠졌으니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아들 전용 요리사를 모셔 왔다는. 그게 내 직무 내용이고, 그래서 영양가 있고 다채로운 어쩌고가 필요했구나.
차라리 토끼 간을 꺼내는 이야기가 인간적이었다. 그건 마지막에 신령님이 약을 줘서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았나. 나는 내가 죽어라 재료 사다가 해 먹지 않으면 굶는 게 당연했던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려 했지만 일단 또 참았다. 정말로 있는 집 자식을 정말로 있게 키우는 게 뭐 나쁜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집도 어려운 건 아니었고.
“헌데 용궁에서 먹는 거야 늘 비슷하고, 아들이 지상을 좋아해서 매일 지상에서 먹는 요리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지상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먹방 사진이 유행해서 본 거 아냐?
“우리 백성들은 별 주부 말고는 지상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이가 없으니 결국은 지상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 토끼가 나오는 망측한 이야기 때문인지 용궁 이야기가 나오면 오려는 이가 없으니 참 난처했답니다.”
아닙니다. 용궁에 오려는 이가 없는 건 그 망측한 이야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도 오늘 아침까지 계속 망설였는데 용궁 소리가 나왔다면 처음부터 계약도 안 했다.
용왕 부부는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다음 활짝 웃었다. 그들의 눈에는 명백하게 나를 향한 감사와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여기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먼데 고생 많이 했지요? 우리 부부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용궁 요리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들이 병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음식을 먹게 해 주면 좋겠어요.”
“원하는 재료는 모두 주문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건 다 해 봐요. 아이고, 손님에게 식사할 틈도 안 줘서 요리가 다 식었네. 미안해요. 어서 다시 데워 오게 하지요.”
“아닙니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역시 이건 내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 너무 많다. 내용이 이런 거면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설명을 했어야지. 애초부터 내 면접관은 사기를 칠 생각으로, 돈에 살랑살랑 걸려들어 설명도 잘 안 듣고 덤벼들 만한 초짜를 골랐던 거다. 그래서 다리에서 날 집어 던질 때까지 그렇게 치밀하게 모든 것을 숨겼던 것이다.
……역시 꿈이라면 지금쯤 꿈에서 깼으면 좋겠다. 나는 멍하니 차를 마시며 그 리얼한 감촉에 묵묵히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문득 용자의 눈이 떠올라 혼자 흠칫했다.
“여기가 수라간, 그러니까 지상에서 말하는 부엌이에요.”
일반적인 업장과는 다르게 용궁의 주방은 분위기가 좋았다. 물론 이쪽도 칼과 불이 오가기 때문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절도와 규칙은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고성이 오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놀라운 분위기였다.
용궁의 식사 전체를 담당한다는 주방장은 키가 크고 살이 찐 사람이었는데 아주 인상이 좋았으며 잘 웃었다. 그는 내게 친절하게 주방의 요모조모를 보여 주었다.
“어라하께 말씀 들었어요. 지상에서 손님이 오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저 말고도 지상에서 사람이 온 적이 있었어요?”
물론 이렇게 큰 곳의 식사를 맡으려면 아무튼 주방이 조용해도 될 때는 없다. 지금은 다들 저녁 식사를 위해 미리 밑간해 둘 것의 손질과 점심 식사의 이른 준비를 하느라고 큰 부대니 통 따위를 옮기는 중이었다. 이곳의 주방도 육지에서의 주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주방장은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어려서 여기서 심부름할 때쯤엔 많이들 오가셨지요. 그때는 선왕께서 위에 계셨지만요.”
주방장은 대충 마흔을 좀 넘은 것 같았으니 계산해 보면 30년 정도 전이라는 이야기일까.
“그래요? 그렇게 많이 오가는지 저는 몰랐어요. 다들 비밀로 하는 모양이네요.”
“그런가요? 다들 아실 줄 알았는데.”
내 말에 주방장은 의외로 약간 놀란 것 같았다.
“용궁에 온 손님들이 그럼 용궁이 있는 게 사실이었냐고 놀라시면서 보물도 많이 가지고 돌아가셨거든요. 숨길 이유도 없는데 왜 비밀로 하셨을까?”
그 행운아들은 누구야. 나도 지금 보물 받고 돌아가고 싶다. 주방장은 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하지만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연지 씨가 모를 수도 있겠네요.”
인간의 수명……?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실례지만 주방장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주방장은 벌쭉 웃었다. 그는 입술이 메기처럼 두꺼운 편이었다.
“칠백오십삼 세예요. 젊은데 나이 든 척해서 웃긴가요?”
“아니요.”
진심으로 안 웃겼다. 주방장이 어릴 때 오간 사람들은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에 용궁의 이미지를 만든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용왕과 용궁부인의 동안의 비밀도 풀린 것 같다. 주방장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이제 창고를 보여 드릴게요. 식재료는 최대한 신선하게 그때그때 들이려고 하지만 지상에서 사 오는 건 아무래도 시간차가 있지요. 정말 특별할 때는 별 주부에게 부탁해서 들여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바다에서 신선한 재료를 얻고 있어요.”
“바다가 바로 여긴데요, 뭐.”
“그렇지요? 하하하.”
아직 감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한 말이었는데 주방장은 착실하게도 웃어 주었다. 나는 주방장을 따라 넓은 지상을 가로질러 걸었다. 지금도 불이 있는 스토브가 몇 개 있었다.
“주방장님, 바다인데 어떻게 불이 있나요?”
혹시 그게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증거인가요? 조찬은 식었어도 맛있었고 내 볼은 몇 번을 몰래 꼬집어도 똑같이 아팠다. 나는 점점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도 아까 아침 식사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엄마에게 안심하라는 문자를 보내 두긴 했지만.
주방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불이 안 켜지면 할 수 있는 요리가 적잖아요?”
그렇지요. 나는 내친김에 더 물었다. 대답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아무거나 물어도 될 것 같았다.
“용궁인데 왜 생선구이가 요리로 나오나요?”
“맛있잖아요? 영양가도 많고.”
그렇겠지.
“휴대폰이 어떻게 안 젖네요?”
“휴대폰이 젖으면 못 쓰잖아요?”
그렇지.
“여기 백성들은 어떻게 사람처럼 둔갑하나요?”
“둔갑할 수 있는 백성도 있고 없는 백성도 있어요. 둔갑할 수 없는 백성은 용궁에 감히 못 들어오지만요.”
“왜요?”
“둔갑할 수 있는 백성은 기본적으로 용의 피가 섞여 있거든요. 둔갑을 못 하는 백성들도 물론 어라하와 어륙의 백성이지만 용궁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요.”
“왜 필요가 없어요?”
“말을 못 해요.”
그럼 필요가 없겠지. 나는 왠지 그의 단호한 논리에 설득당해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장은 내가 쉽게 이해하자 즐거워했다.
“지상에서 오셔서 모르는 게 많으실 텐데 뭐든지 물어보세요. 용궁 백성들이 신기하지요?”
“너무 신기해요.”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또 끄덕이고 아까의 이야기를 이었다.
“말을 못 하면 용궁에 못 들어오나요? 그럼 목을 다쳐서 말을 못 하게 되면…….”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말을 못 해서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니에요. 원래 용궁은 신성한 곳이라 용의 피가 섞여 있지 않으면 못 들어오는 거예요. 둔갑할 수 있어도 용궁에 평생 안 들어오고 사가에 사는 백성들도 많아요. 둔갑할 수 없는 백성들은 그런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알음알음으로 억울한 것에 대한 소를 제기하지요.”
“아, 용궁에는 소를 제기하러 와요?”
“그럼요. 용궁에서 일하는 게 아니면 그렇지요.”
용왕도 왕이니 그러고 보면 세금을 걷는다거나 토지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백성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하는 그런 조선 시대 왕 같은 일을 할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그 말을 듣고 보니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보다.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억울한지 아닌지 알려 줘요?”
“통역사 물고기들이 있잖아요.”
몰랐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당연히 ‘있잖아요’라고 하시면 놀랍니다.
“저기 정원이 있던데, 햇빛이 안 드는데도 식물이 자라나요?”
“원래는 안 자라는데 이제는 돼요. 기술의 발전이죠.”
무슨 기술인데.
안타깝게도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기엔 용왕 부처가 너무 위엄 있었다. 용궁부인은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그것이 약간 기다리던 말을 들은 사람처럼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한테는 딸이 하나,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아들이 있는 건 알겠다. 그런데 왜 갑자기 가족 관계 등록부부터 보여 주는 걸까. 나는 무뚝뚝한 청년을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따님께서는 그럼 지금…….”
“결혼해서 외국으로 나갔어요.”
글로벌하시구나. 용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인 줄은 몰랐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이나 했다.
“보고 싶으시겠어요.”
“네에, 정말 보고 싶지요!”
용궁부인은 아들을 약간 흘겨보았고 용왕은 부인이 하는 행동을 따라 했다. 용자는 인상을 쓰더니 소매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저 익숙한 사운드와 손가락 동작을 보니 아무래도 같은 색을 세 개 맞추면 사라지는 그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잠깐, 여기 스마트폰이 있다고?
“여기 스마트폰이 터지나요?”
그러고 보니 휴대폰이 젖지 않았다는 건 확인했지만 터지는지는 보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엄마한테 연락이 안 되면 나는 실종자가 될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아 용자에게 물었다. 용자는 불퉁하게 뱉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외모만큼 내게 인상을 깊이 남겼지만 내용은 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와이파이는 안 돼.”
와이파이는 안 되는구나. 젠장.
용왕은 아들에게 준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먼 데서 오신 손님께 그게 무슨 말투냐, 천원아.”
잘생긴 청년의 이름은 천원으로 밝혀졌다. 한자에 따라 멋진 이름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돈의 단위로 더 익숙한 발음이었다. 나는 웃지 않기 위해 잠깐 노력했다. 청년은 툴툴거렸으며 나는 그 목소리로 그가 나보다 약간 어린 것 같다고 판단했다.
“고용한 사람이잖아.”
“그것이 네가 손님에게 무례한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용궁 백성이 아니니 네가 시종이나 시비를 대하는 것과는 달라야 하느니라.”
여기 시종과 시비도 있군요. 그런 것 같았어요. 아까 그 아가씨들과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청년이 그걸까.
천원은 자기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손놀림을 보니 인터넷 기사라도 보는 모양이었다. 설마 카톡을 하진 않을…… 가만, 혹시 다른 용궁의 왕자들이나 자기 누나와 만든 톡방이 있는 건 아닐까. 무시무시하다.
솔직히 혼을 낼 줄 알았는데 용왕과 용궁부인은 한숨만 함께 쉬었다. 나는 천원의 버릇없는 태도가 거슬렸지만 고용주의 아들을 가르칠 이유는 없어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용왕이 설명으로 돌아갔다.
“유일한 딸이 시집을 가서 쓸쓸하던 차에 이 녀석이 늦둥이로 태어나서 우리가 솔직히 너무 예뻐하며 키웠지요. 그래서인지 애가 부모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매일같이 저 조그만 수첩 같은 것에 빠져 살아서…….”
수첩 아닙니다. 따님을 해외에 시집 보내시는 용왕님은 그러나 스마트폰은 잘 모르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첩 소리가 나오는 걸로 보아 휴대폰이나 삐삐도 모르실 수도 있었다. 나는 본인이 있는 데서 너무 노골적으로 공감해 줄 수가 없어 애매하게 으음…… 하고 이해한 척을 했다. 용궁부인은 그걸로도 만족한 듯 말했다.
“우리가 잘못 키운 걸 누굴 탓하겠습니까만, 그렇다고 애를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말이에요. 천만 다행히 이 녀석이 지상의 문물에는 관심이 있으니…….”
“……내 얘기 좀 그만해.”
천원은 발끈했다. 나는 그 반항이 너무나도 사춘기 수준이라 약간 놀랐다. 심지어 저렇게 멋있는 어머니의 말을 끊다니 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얘가 이렇답니다.”
용궁부인은 우아하게 뺨을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용왕이 아내를 위로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여보.”
“그만하라니까! 아침 안 먹을 거면 나 갈 거야.”
천원은 그대로 일어나더니 식당을 나섰다. 나는 이쯤에서는 용왕이 아들의 머리에 그릇을 던져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며 우리 집이라면 아마 그랬겠지만 용왕 가족은 문명인이었다. 시종은 놀라지도 않고 문을 닫았으며 용왕과 용궁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애가 밥을 안 먹는 게 제일 걱정이랍니다. 가끔 먹는다고 해 봐야 먹기 편한 것만 조금 먹고 또 자기 방에서 저것만 잡고 있는데.”
한국이라면 저건 라면을 부숴 먹거나 피자를 시켜 먹는다는 얘긴데 용궁에도 그런 게 있나?
“그래도 부모니 애가 안 먹어서 아픈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서, 논의하다가 아들을 위한 요리를 따로 맡아 줄 분이 있었으면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아, 예에.”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누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늦둥이 막내를 오냐오냐 기른 나머지 애가 자기 건강도 안 챙기고 스마트폰 중독에 빠졌으니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아들 전용 요리사를 모셔 왔다는. 그게 내 직무 내용이고, 그래서 영양가 있고 다채로운 어쩌고가 필요했구나.
차라리 토끼 간을 꺼내는 이야기가 인간적이었다. 그건 마지막에 신령님이 약을 줘서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았나. 나는 내가 죽어라 재료 사다가 해 먹지 않으면 굶는 게 당연했던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르려 했지만 일단 또 참았다. 정말로 있는 집 자식을 정말로 있게 키우는 게 뭐 나쁜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집도 어려운 건 아니었고.
“헌데 용궁에서 먹는 거야 늘 비슷하고, 아들이 지상을 좋아해서 매일 지상에서 먹는 요리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지상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먹방 사진이 유행해서 본 거 아냐?
“우리 백성들은 별 주부 말고는 지상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이가 없으니 결국은 지상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 토끼가 나오는 망측한 이야기 때문인지 용궁 이야기가 나오면 오려는 이가 없으니 참 난처했답니다.”
아닙니다. 용궁에 오려는 이가 없는 건 그 망측한 이야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도 오늘 아침까지 계속 망설였는데 용궁 소리가 나왔다면 처음부터 계약도 안 했다.
용왕 부부는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다음 활짝 웃었다. 그들의 눈에는 명백하게 나를 향한 감사와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여기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먼데 고생 많이 했지요? 우리 부부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용궁 요리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들이 병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음식을 먹게 해 주면 좋겠어요.”
“원하는 재료는 모두 주문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건 다 해 봐요. 아이고, 손님에게 식사할 틈도 안 줘서 요리가 다 식었네. 미안해요. 어서 다시 데워 오게 하지요.”
“아닙니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역시 이건 내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 너무 많다. 내용이 이런 거면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설명을 했어야지. 애초부터 내 면접관은 사기를 칠 생각으로, 돈에 살랑살랑 걸려들어 설명도 잘 안 듣고 덤벼들 만한 초짜를 골랐던 거다. 그래서 다리에서 날 집어 던질 때까지 그렇게 치밀하게 모든 것을 숨겼던 것이다.
……역시 꿈이라면 지금쯤 꿈에서 깼으면 좋겠다. 나는 멍하니 차를 마시며 그 리얼한 감촉에 묵묵히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문득 용자의 눈이 떠올라 혼자 흠칫했다.
“여기가 수라간, 그러니까 지상에서 말하는 부엌이에요.”
일반적인 업장과는 다르게 용궁의 주방은 분위기가 좋았다. 물론 이쪽도 칼과 불이 오가기 때문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절도와 규칙은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고성이 오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놀라운 분위기였다.
용궁의 식사 전체를 담당한다는 주방장은 키가 크고 살이 찐 사람이었는데 아주 인상이 좋았으며 잘 웃었다. 그는 내게 친절하게 주방의 요모조모를 보여 주었다.
“어라하께 말씀 들었어요. 지상에서 손님이 오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저 말고도 지상에서 사람이 온 적이 있었어요?”
물론 이렇게 큰 곳의 식사를 맡으려면 아무튼 주방이 조용해도 될 때는 없다. 지금은 다들 저녁 식사를 위해 미리 밑간해 둘 것의 손질과 점심 식사의 이른 준비를 하느라고 큰 부대니 통 따위를 옮기는 중이었다. 이곳의 주방도 육지에서의 주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주방장은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어려서 여기서 심부름할 때쯤엔 많이들 오가셨지요. 그때는 선왕께서 위에 계셨지만요.”
주방장은 대충 마흔을 좀 넘은 것 같았으니 계산해 보면 30년 정도 전이라는 이야기일까.
“그래요? 그렇게 많이 오가는지 저는 몰랐어요. 다들 비밀로 하는 모양이네요.”
“그런가요? 다들 아실 줄 알았는데.”
내 말에 주방장은 의외로 약간 놀란 것 같았다.
“용궁에 온 손님들이 그럼 용궁이 있는 게 사실이었냐고 놀라시면서 보물도 많이 가지고 돌아가셨거든요. 숨길 이유도 없는데 왜 비밀로 하셨을까?”
그 행운아들은 누구야. 나도 지금 보물 받고 돌아가고 싶다. 주방장은 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하지만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연지 씨가 모를 수도 있겠네요.”
인간의 수명……?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실례지만 주방장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주방장은 벌쭉 웃었다. 그는 입술이 메기처럼 두꺼운 편이었다.
“칠백오십삼 세예요. 젊은데 나이 든 척해서 웃긴가요?”
“아니요.”
진심으로 안 웃겼다. 주방장이 어릴 때 오간 사람들은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에 용궁의 이미지를 만든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용왕과 용궁부인의 동안의 비밀도 풀린 것 같다. 주방장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이제 창고를 보여 드릴게요. 식재료는 최대한 신선하게 그때그때 들이려고 하지만 지상에서 사 오는 건 아무래도 시간차가 있지요. 정말 특별할 때는 별 주부에게 부탁해서 들여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바다에서 신선한 재료를 얻고 있어요.”
“바다가 바로 여긴데요, 뭐.”
“그렇지요? 하하하.”
아직 감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한 말이었는데 주방장은 착실하게도 웃어 주었다. 나는 주방장을 따라 넓은 지상을 가로질러 걸었다. 지금도 불이 있는 스토브가 몇 개 있었다.
“주방장님, 바다인데 어떻게 불이 있나요?”
혹시 그게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증거인가요? 조찬은 식었어도 맛있었고 내 볼은 몇 번을 몰래 꼬집어도 똑같이 아팠다. 나는 점점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는 있었지만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도 아까 아침 식사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엄마에게 안심하라는 문자를 보내 두긴 했지만.
주방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불이 안 켜지면 할 수 있는 요리가 적잖아요?”
그렇지요. 나는 내친김에 더 물었다. 대답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면 아무거나 물어도 될 것 같았다.
“용궁인데 왜 생선구이가 요리로 나오나요?”
“맛있잖아요? 영양가도 많고.”
그렇겠지.
“휴대폰이 어떻게 안 젖네요?”
“휴대폰이 젖으면 못 쓰잖아요?”
그렇지.
“여기 백성들은 어떻게 사람처럼 둔갑하나요?”
“둔갑할 수 있는 백성도 있고 없는 백성도 있어요. 둔갑할 수 없는 백성은 용궁에 감히 못 들어오지만요.”
“왜요?”
“둔갑할 수 있는 백성은 기본적으로 용의 피가 섞여 있거든요. 둔갑을 못 하는 백성들도 물론 어라하와 어륙의 백성이지만 용궁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요.”
“왜 필요가 없어요?”
“말을 못 해요.”
그럼 필요가 없겠지. 나는 왠지 그의 단호한 논리에 설득당해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장은 내가 쉽게 이해하자 즐거워했다.
“지상에서 오셔서 모르는 게 많으실 텐데 뭐든지 물어보세요. 용궁 백성들이 신기하지요?”
“너무 신기해요.”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또 끄덕이고 아까의 이야기를 이었다.
“말을 못 하면 용궁에 못 들어오나요? 그럼 목을 다쳐서 말을 못 하게 되면…….”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말을 못 해서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니에요. 원래 용궁은 신성한 곳이라 용의 피가 섞여 있지 않으면 못 들어오는 거예요. 둔갑할 수 있어도 용궁에 평생 안 들어오고 사가에 사는 백성들도 많아요. 둔갑할 수 없는 백성들은 그런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알음알음으로 억울한 것에 대한 소를 제기하지요.”
“아, 용궁에는 소를 제기하러 와요?”
“그럼요. 용궁에서 일하는 게 아니면 그렇지요.”
용왕도 왕이니 그러고 보면 세금을 걷는다거나 토지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백성들 사이의 다툼을 해결하는 그런 조선 시대 왕 같은 일을 할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그 말을 듣고 보니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보다.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억울한지 아닌지 알려 줘요?”
“통역사 물고기들이 있잖아요.”
몰랐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당연히 ‘있잖아요’라고 하시면 놀랍니다.
“저기 정원이 있던데, 햇빛이 안 드는데도 식물이 자라나요?”
“원래는 안 자라는데 이제는 돼요. 기술의 발전이죠.”
무슨 기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