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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2화
第一章 주방의 황태자(2)
때는 유시 중반.
초저녁이라 궁궐 안의 유동 인구는 꽤나 많았다.
종종걸음을 바삐 놀리는 어린 환관들, 자기들끼리 뭔가 속닥이며 가는 궁녀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문관, 그리고 피곤한 듯 연신 하품을 해 대는 경비 병사 등등.
한데.
샤샤샤샥.
휙휙.
궁궐 안의 기둥을 방패 삼아 몸을 숨기며 이동하는 이가 있었으니, 수수한 복장에 눈 밑에 점이 하나 있는 절세 미남자, 오황자 주동동이었다. 그런데 웃긴 게 제 딴에는 자객처럼 이리저리 살피며 숨어서 이동한다고 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다보고 있었다.
지나가다 주동동을 발견한 궁녀들은 입을 가리고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웃고 싶은데 동동이 들을까 봐 참은 것이리라.
그렇게 주동동은 주위 사람들을 웃기며 하로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손을 뺨에 대고 조심스럽게 오숙수를 불렀다.
“오숙수, 오숙수.”
“오셨습니까?”
“히엑.”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오숙수가 얼굴을 갑자기 들이밀고 말하는 바람에 주동동은 크게 놀랐다.
오숙수는 산동 지방 출신으로 어렸을 때 하로관에 들어와 잡일꾼에서 하로관주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요리 실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중로관이나 상로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황자님.”
“응?”
“요리하는 것이 좋으십니까?”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음…… 뭐랄까 요리를 하고 있으면 즐거워. 나도 모르게 즐겁다고.”
“그게 다입니까?”
“응.”
“음…….”
오숙수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주동동도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황자님, 오늘 제가 가르쳐드릴 것은 요리법이 아닙니다.”
“그럼?”
“일단 요리부터 할까요?”
“엥? 요리법이 아니라면서 요리는 왜 해?”
“요리하기 싫으십니까?”
“아니, 하고 싶어!”
“자, 시작하지요.”
반 시진 (1시간) 후.
“후우, 다 됐다.”
주동동은 생글거리면서 접시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를 얹었다. 일명 경장육사라는 요리로 먹기 좋게 뼈를 발라 낸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춘장 양념에 볶은 요리다.
오숙수는 아무 말 없이 대나무 통으로 만든 상자에 경장육사를 담았다.
“자, 가실까요?”
“어딜?”
“따라오십시오.”
오숙수는 대나무 통을 들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주동동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가르쳐 주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앞치마를 바삐 벗은 주동동은 오숙수를 따라나섰다. 그 후 일이 각쯤 걸었을까, 그들은 북문 앞에 도착했다. 북문의 병사들이 주동동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오황자를 뵙습니다!”
“수고가 많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북문 수비 부장이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
“아니옵니다.”
북문 수비 부장 원종우는 주동동과 함께 온 오숙수를 돌아봤다.
“어쩐 일이냐?”
“너희 조 근무 언제 끝나냐?”
“이제 교대한다. 어, 저기 오는군.”
야간 경계조가 질서 정연하게 열을 맞춰 오고 있었다. 황궁의 각문에는 한 명의 수비 대장이 있고 그 아래 세 명의 부장이 있다.
원종우는 오숙수와 오래된 친구였다.
근무 교대를 마치자 오숙수는 원종우를 포함해서 병사들에게 주동동이 요리한 경장육사를 보여주었다.
“와! 웬 거냐? 맛있겠는데?”
“너네 병사들 몸보신 좀 시켜주려고 이 형님이 이렇게 가져온 거다.”
주동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오숙수의 눈 깜빡거림에 잠자코 있었다.
“흐음 네가 웬일로 안하던 짓을, 혹시 죽을때가 됐나?”
오숙수는 냉정한 표정으로 나무통의 뚜겅을 닫아 버리며 말했다.
“먹기 싫으냐?”
그러자 원종우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무통을 붙잡았다.
아니다! 잘 먹을게!
원종우는 부하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애들아, 오숙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경장육사를 가져오셨다.”
“와!”
다섯 명 남짓한 병사들이었지만 모두 손을 들고 좋아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오숙수는 준비한 나무 접시에 고기를 담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병사들은 받으면서 연신 굽신거렸다.
“우와, 이거 되게 맛있는데?”
원종우와 함께 먹는 병사들의 얼굴은 전부 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오숙수는 주동동을 보며 눈으로 말했다.
‘보이십니까?’
주동동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오숙수 외에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렇게 모두 좋아하며 먹는 모습을 보자 속에서 뭔가 설명 못할 기분이 꿈틀거렸다. 그러한 느낌 때문일까 주동동은 오숙수를 돌아봤다.
오숙수는 진작부터 주동동을 보고 있었다.
‘이걸 가르쳐 주려는 거였어?’
오숙수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주동동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먹으면서 즐거워하자 뭐랄까, 먹는 사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오숙수는 주동동에게 요리사가 왜 요리를 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
주동동은 입이 귀에 걸려서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육 개월 후.
태황후는 한 통의 서찰을 받고 몸져누워 버렸다.
친애하는 큰 할머님께.
소자 오황자, 궁을 떠나 세상을 보고 오겠습니다.
인사도 못 드리고 서신 한 장 달랑 남기는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돌아올 때까지 몸 건강히 계십시오.
주동동 上
오황자님이 가출하셨다!
황궁은 일시에 발칵 뒤집혔다. 왜냐하면 오황자 주동동이 편지 하나 남기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가출을 가장한 납치일 수도 있다며 금위위를 불러 조사캐 하는 둥 부산을 떨었다.
황제는 태황후를 진정시키고자 그녀의 거처를 한 번 들렀으나 되려 퇴짜를 맞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놈, 동동!”
자신의 서재로 돌아온 황제는 뒷짐을 지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착실하던 놈이 덜컥 일을 저질러 버렸다.
황자들 중에 단연 발군이었던 놈이고 태황후를 비롯해서 자신도 아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출이라니. 괜스레 약간의 배신감이 밀려오는 황제였다.
“비좌(秘座).”
슥.
황제가 허공에 대고 말을 하자 한 인영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 인영은 위에서 떨어진다던지 이런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째를 찾아라. 그리고 궁으로 데려오지 말고 그냥 지켜보거라. 또한 동동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절대 너의 정체를 드러내지 말아라.”
“명(命)!”
스스스스슥.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비좌의 신형은 허공에 녹아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흐음…….”
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 생각에 빠지는 황제.
* * *
한편 수많은 사람들의 근심을 뒤로한 채 주동동은 혼자 신이 나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허름한 무명옷에 봇짐을 메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런 차림으로 주동동은 북적거리는 시장 곳곳을 기웃거리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오오오.’
가끔 다른 형제들과 궁 밖에 나오곤 했지만 자기 혼자 나와 보니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의 주위에는 호위도 없었다. 여기저기를 마냥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는 모양새가 마치 막 상경한 촌놈이었다.
얼마쯤 돌아보았을까, 뱃속에서 밥때를 알리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꼬르르륵.
때마침 그의 눈앞에 객잔 하나가 보였다.
와룡객잔(臥龍客棧).
그럴듯한 이름이었으나 간판은 허름했다. 그러나 웬걸, 안으로 들어가니 꽤나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어서 오슈.”
입구에서 점소이 하나가 퉁명스럽게 주동동을 맞이 했다.
그런데 주동동의 허름한 복장 때문인지 꽤나 쌀쌀맞은 인사였고 자리로 안내하지도 않았다.
“자리 하나 있나요?”
“아무 데나 빈곳에 앉으슈.”
보통의 황족 같았으면 화가 날만도 한데 주동동은 점소이의 태도에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흐음…… 어디.’
일층에 빈자리가 없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주동동. 계단을 오르는데 팔 하나가 쑥 나타나 그를 가로막았다.
“손님 이층은 음식값이 좀 나가는데…….”
조금 전에 입구에서 불친절하게 인사했던 점소이였다. 그러자 주동동은 별생각 없이 소매에서 은원보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거면 되나요?”
은원보를 본 점소이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좀 전과 급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하하. 물론입죠, 충분합니다. 자 이리로 오십시오.”
이제는 안내까지 도맡아 하는 점소이, 흡사 주인이 밥 주기를 기다리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같이 보였다.
이층은 음식값이 조금 나가는지 일층보다는 한산했다.
“구운 닭고기와 소면.”
“술은 뭘로 드릴까요?”
“술?”
대놓고 마셔 본 적이 없던 술, 주동동은 술을 즐겨 하지 않았다.
“그냥 차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금방 내오겠습니다.”
점소이가 가자 주동동은 이층을 주욱 둘러보았다.
“으음?”
식당안은 이상한 분위기였는데 그것은 바로 이층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청년 하나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검은색 무복에 영웅건을 매고 있었으며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미남 청년.
남자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힐긋힐긋 보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아예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왜 저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일까.’
주동동은 사람들이 저 청년을 보고 있는 이유를 몰랐다.
마교 소교주 천태성.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냐 하면 여태껏 기루나 객잔 같은 곳은 수도 없이 가봤지만 막상 차릴려니 막막했기 때문이다.
‘일단 숙수를 구해야겠지. 그런데 괜찮은 숙수를 어디서 구한담. 맛있다고 소문난 집의 숙수들은 돈이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강제로 데려올 수도 없고, 거참.’
천하의 마교 소교주가 돈 걱정이라니, 천태성은 마교를 나올 때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사를 하겠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자금을 주겠다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으나 한사코 거절하고 나왔다.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고민하는 천태성, 그의 머릿속은 개업 구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점소이도 구해야 하는데…….’
第一章 주방의 황태자(2)
때는 유시 중반.
초저녁이라 궁궐 안의 유동 인구는 꽤나 많았다.
종종걸음을 바삐 놀리는 어린 환관들, 자기들끼리 뭔가 속닥이며 가는 궁녀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문관, 그리고 피곤한 듯 연신 하품을 해 대는 경비 병사 등등.
한데.
샤샤샤샥.
휙휙.
궁궐 안의 기둥을 방패 삼아 몸을 숨기며 이동하는 이가 있었으니, 수수한 복장에 눈 밑에 점이 하나 있는 절세 미남자, 오황자 주동동이었다. 그런데 웃긴 게 제 딴에는 자객처럼 이리저리 살피며 숨어서 이동한다고 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다보고 있었다.
지나가다 주동동을 발견한 궁녀들은 입을 가리고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들은 웃고 싶은데 동동이 들을까 봐 참은 것이리라.
그렇게 주동동은 주위 사람들을 웃기며 하로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손을 뺨에 대고 조심스럽게 오숙수를 불렀다.
“오숙수, 오숙수.”
“오셨습니까?”
“히엑.”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오숙수가 얼굴을 갑자기 들이밀고 말하는 바람에 주동동은 크게 놀랐다.
오숙수는 산동 지방 출신으로 어렸을 때 하로관에 들어와 잡일꾼에서 하로관주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요리 실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중로관이나 상로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황자님.”
“응?”
“요리하는 것이 좋으십니까?”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요.”
“음…… 뭐랄까 요리를 하고 있으면 즐거워. 나도 모르게 즐겁다고.”
“그게 다입니까?”
“응.”
“음…….”
오숙수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주동동도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황자님, 오늘 제가 가르쳐드릴 것은 요리법이 아닙니다.”
“그럼?”
“일단 요리부터 할까요?”
“엥? 요리법이 아니라면서 요리는 왜 해?”
“요리하기 싫으십니까?”
“아니, 하고 싶어!”
“자, 시작하지요.”
반 시진 (1시간) 후.
“후우, 다 됐다.”
주동동은 생글거리면서 접시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를 얹었다. 일명 경장육사라는 요리로 먹기 좋게 뼈를 발라 낸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춘장 양념에 볶은 요리다.
오숙수는 아무 말 없이 대나무 통으로 만든 상자에 경장육사를 담았다.
“자, 가실까요?”
“어딜?”
“따라오십시오.”
오숙수는 대나무 통을 들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주동동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가르쳐 주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앞치마를 바삐 벗은 주동동은 오숙수를 따라나섰다. 그 후 일이 각쯤 걸었을까, 그들은 북문 앞에 도착했다. 북문의 병사들이 주동동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오황자를 뵙습니다!”
“수고가 많다.”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북문 수비 부장이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
“아니옵니다.”
북문 수비 부장 원종우는 주동동과 함께 온 오숙수를 돌아봤다.
“어쩐 일이냐?”
“너희 조 근무 언제 끝나냐?”
“이제 교대한다. 어, 저기 오는군.”
야간 경계조가 질서 정연하게 열을 맞춰 오고 있었다. 황궁의 각문에는 한 명의 수비 대장이 있고 그 아래 세 명의 부장이 있다.
원종우는 오숙수와 오래된 친구였다.
근무 교대를 마치자 오숙수는 원종우를 포함해서 병사들에게 주동동이 요리한 경장육사를 보여주었다.
“와! 웬 거냐? 맛있겠는데?”
“너네 병사들 몸보신 좀 시켜주려고 이 형님이 이렇게 가져온 거다.”
주동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오숙수의 눈 깜빡거림에 잠자코 있었다.
“흐음 네가 웬일로 안하던 짓을, 혹시 죽을때가 됐나?”
오숙수는 냉정한 표정으로 나무통의 뚜겅을 닫아 버리며 말했다.
“먹기 싫으냐?”
그러자 원종우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무통을 붙잡았다.
아니다! 잘 먹을게!
원종우는 부하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애들아, 오숙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경장육사를 가져오셨다.”
“와!”
다섯 명 남짓한 병사들이었지만 모두 손을 들고 좋아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오숙수는 준비한 나무 접시에 고기를 담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병사들은 받으면서 연신 굽신거렸다.
“우와, 이거 되게 맛있는데?”
원종우와 함께 먹는 병사들의 얼굴은 전부 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오숙수는 주동동을 보며 눈으로 말했다.
‘보이십니까?’
주동동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오숙수 외에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렇게 모두 좋아하며 먹는 모습을 보자 속에서 뭔가 설명 못할 기분이 꿈틀거렸다. 그러한 느낌 때문일까 주동동은 오숙수를 돌아봤다.
오숙수는 진작부터 주동동을 보고 있었다.
‘이걸 가르쳐 주려는 거였어?’
오숙수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주동동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먹으면서 즐거워하자 뭐랄까, 먹는 사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오숙수는 주동동에게 요리사가 왜 요리를 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
주동동은 입이 귀에 걸려서 헤죽헤죽 웃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육 개월 후.
태황후는 한 통의 서찰을 받고 몸져누워 버렸다.
친애하는 큰 할머님께.
소자 오황자, 궁을 떠나 세상을 보고 오겠습니다.
인사도 못 드리고 서신 한 장 달랑 남기는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돌아올 때까지 몸 건강히 계십시오.
주동동 上
오황자님이 가출하셨다!
황궁은 일시에 발칵 뒤집혔다. 왜냐하면 오황자 주동동이 편지 하나 남기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가출을 가장한 납치일 수도 있다며 금위위를 불러 조사캐 하는 둥 부산을 떨었다.
황제는 태황후를 진정시키고자 그녀의 거처를 한 번 들렀으나 되려 퇴짜를 맞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놈, 동동!”
자신의 서재로 돌아온 황제는 뒷짐을 지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착실하던 놈이 덜컥 일을 저질러 버렸다.
황자들 중에 단연 발군이었던 놈이고 태황후를 비롯해서 자신도 아껴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출이라니. 괜스레 약간의 배신감이 밀려오는 황제였다.
“비좌(秘座).”
슥.
황제가 허공에 대고 말을 하자 한 인영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 인영은 위에서 떨어진다던지 이런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째를 찾아라. 그리고 궁으로 데려오지 말고 그냥 지켜보거라. 또한 동동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절대 너의 정체를 드러내지 말아라.”
“명(命)!”
스스스스슥.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비좌의 신형은 허공에 녹아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흐음…….”
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 생각에 빠지는 황제.
* * *
한편 수많은 사람들의 근심을 뒤로한 채 주동동은 혼자 신이 나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허름한 무명옷에 봇짐을 메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런 차림으로 주동동은 북적거리는 시장 곳곳을 기웃거리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오오오.’
가끔 다른 형제들과 궁 밖에 나오곤 했지만 자기 혼자 나와 보니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의 주위에는 호위도 없었다. 여기저기를 마냥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는 모양새가 마치 막 상경한 촌놈이었다.
얼마쯤 돌아보았을까, 뱃속에서 밥때를 알리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꼬르르륵.
때마침 그의 눈앞에 객잔 하나가 보였다.
와룡객잔(臥龍客棧).
그럴듯한 이름이었으나 간판은 허름했다. 그러나 웬걸, 안으로 들어가니 꽤나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어서 오슈.”
입구에서 점소이 하나가 퉁명스럽게 주동동을 맞이 했다.
그런데 주동동의 허름한 복장 때문인지 꽤나 쌀쌀맞은 인사였고 자리로 안내하지도 않았다.
“자리 하나 있나요?”
“아무 데나 빈곳에 앉으슈.”
보통의 황족 같았으면 화가 날만도 한데 주동동은 점소이의 태도에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흐음…… 어디.’
일층에 빈자리가 없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주동동. 계단을 오르는데 팔 하나가 쑥 나타나 그를 가로막았다.
“손님 이층은 음식값이 좀 나가는데…….”
조금 전에 입구에서 불친절하게 인사했던 점소이였다. 그러자 주동동은 별생각 없이 소매에서 은원보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거면 되나요?”
은원보를 본 점소이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좀 전과 급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하하. 물론입죠, 충분합니다. 자 이리로 오십시오.”
이제는 안내까지 도맡아 하는 점소이, 흡사 주인이 밥 주기를 기다리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같이 보였다.
이층은 음식값이 조금 나가는지 일층보다는 한산했다.
“구운 닭고기와 소면.”
“술은 뭘로 드릴까요?”
“술?”
대놓고 마셔 본 적이 없던 술, 주동동은 술을 즐겨 하지 않았다.
“그냥 차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금방 내오겠습니다.”
점소이가 가자 주동동은 이층을 주욱 둘러보았다.
“으음?”
식당안은 이상한 분위기였는데 그것은 바로 이층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청년 하나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검은색 무복에 영웅건을 매고 있었으며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미남 청년.
남자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힐긋힐긋 보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아예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왜 저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일까.’
주동동은 사람들이 저 청년을 보고 있는 이유를 몰랐다.
마교 소교주 천태성.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냐 하면 여태껏 기루나 객잔 같은 곳은 수도 없이 가봤지만 막상 차릴려니 막막했기 때문이다.
‘일단 숙수를 구해야겠지. 그런데 괜찮은 숙수를 어디서 구한담. 맛있다고 소문난 집의 숙수들은 돈이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강제로 데려올 수도 없고, 거참.’
천하의 마교 소교주가 돈 걱정이라니, 천태성은 마교를 나올 때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사를 하겠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자금을 주겠다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으나 한사코 거절하고 나왔다.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고민하는 천태성, 그의 머릿속은 개업 구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점소이도 구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