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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5화
第一章 주방의 황태자(5)
심사단이 정해지자 주동동과 요리사는 각자 소면을 담은 그릇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면 다 불어 터지겠네.’
요리사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만든 소면의 면발이 매우 얇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불어서 매우 불리한 입장이었다.
벌써 약간은 분 듯한 요리사의 소면.
후루루룩, 꿀꺽.
나누어 준 소면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심사단은 금방 먹어 치웠다.
천태성은 주동동의 소면을 들고 잠시 냄새를 맡아 보는 듯하더니 한 젓가락 들었다.
후룩.
“허!”
순간적으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어머!”
모두 젓가락을 입에 대고 굳어 버린 상태, 그들의 눈은 멍한 상태였다.
심사단 중의 한 명인 천태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면과 육수의 조화, 무엇보다 닭고기 기름과 돼지 기름이 겹치고 볶은 채소마저 기름을 머금고 있는데 전혀 느끼하지가 않구나. 국물은 투명하고 맛은 담백하고 채소는 볶았다는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아삭거리는구나!’
천태성은 주동동을 홱 하고 돌아보았다.
‘넌 내 거다!’
주동동은 그저 양손을 앞으로 모은 상태에서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요리사는 자기 모자를 확 끌어내리며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투표하고 자시고 심사단의 표정만 봐도 승부는 갈렸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주동동에게 다가갔다.
“내가 졌소! 소원이 무엇이오?”
“에에?”
눈치가 워낙 없는 주동동인지라 요리사가 갑자기 와서 졌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요리사의 솜씨가 없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아직 발표도 하기 전이라 몰랐던 것이다.
“소협이 이겼습니다.”
천태성이 주동동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좌중의 다른 시식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어린 나이인데 이 정도의 요리 솜씨라니. 누가 가르쳐 줬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무릇 음식이라는 것은 음과 양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그것도 아는 듯하다.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누구지? 누가 가르쳐 줬을까?’
천태성은 벌써 주동동이 자기 숙수라 확정지어 놓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소원은…….”
좌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동동은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그의 예쁜 입술은 소원을 말하였다.
“이 객잔을 주세요.”
“허!”
‘좋구나!’
천태성은 주동동이 말한 소원이 꼭 마음에 들었다.
第二章 북해제일고수 북궁설(1)
휘이이이잉.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린 마누라처럼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그리고 주위의 색은 온통 백색뿐인 이곳은 북해였다.
강풍과 더불어 휘날리는 눈발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의 인영이 어른거렸다.
구불거리는 곱슬머리,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턱선, 그리고 긴 속눈썹. 언뜻 보기에 남자는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듯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남자다움이 풍겨났다.
아주 슬픈 눈빛의 곱슬머리 사내는 길다란 장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척.
어느새 걸음을 멈춘 사내의 앞에는 여러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검은색 모피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속살을 파고 드는 한기(寒氣)는 더욱 차갑게만 느껴졌다.
곱슬머리 사내는 천천히 등에 있는 검을 검집째로 끌러 손에 쥐었다. 그러자 검은색 모피를 입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왔다.
머릿수는 검은색 모피 쪽이 많았으나 오히려 그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곱슬머리 사내의 입이 열렸다.
“너희들은 용서 받을 수 없다.”
지옥의 저승사자가 사형선고를 내렸다면 저러할까. 그 말을 들은 무리들은 죽음을 떠올렸다.
벼랑 끝에 몰리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법, 먼저 칼을 뽑은 쪽은 검은 모피를 입은 무리들이었다.
창.
“우아아아아아!”
그들이 달려오고 있었으나 곱슬머리의 사내는 전혀 흔들림 없이 시선을 아래로 깔고 있었다.
곱슬머리의 사내를 중앙에 둔 채 빙 둘러싼 형태로 동시에 찔러 들어가는 무리들, 좀 전에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칼에 사내가 찔려 죽는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곱슬머리의 사내가 쥐고 있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가는 동시에 세 번 휘둘러졌다.
차앙.
샤악, 샤악, 샤악.
칼끝에서 뻗어 나온 흰색빛을 띤 커다란 별 모양의 형태가 사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수아아아악.
곱슬머리 사내의 검이 집을 찾아 들어가고 검은 모피 사람들은 모두 동작 그만에 걸려 버렸다.
그리고 사내의 입을 통해 조용히 읊어지는 무공명(武功名).
“육망성…….”
무리들의 눈은 크게 부릅떠져 있었으며 목에는 붉은 선이 그어 졌다.
푸슉, 푸슉.
털썩, 털썩.
수급들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머리를 잃은 몸통들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혔다.
단 한 수로 열댓 명의 목을 모조리 벤 사내는 허공을 올려다 보며 어디론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휘이이이잉.
차가운 눈보라는 여러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마저 얼려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곱슬머리 사내는 어떤 무덤 앞에 꿇어앉아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술병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한쪽 팔을 들어 무덤 위에 술을 붙는 사내, 사방이 눈으로 덮혀 있지만 무덤만은 노란 잔디로 덮여 있었다.
주르르르르.
사내는 슬픈 눈으로 술을 무덤에 뿌리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등에 멘 검을 천천히 뽑았다.
검에는 붉은 핏방울이 묻어 있었는데 사내는 그 위에 술을 뿌렸다.
뚝뚝뚝.
검 끝은 무덤을 향하고 있었고 피가 섞인 술은 검을 타고 무덤 위로 뿌려졌다.
“편히 쉬거라.”
아무런 감정이 없던 사내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世事不堪說
세상 일 차마 말은 못하지만
心悲安可窮
슬픔이 어찌 끝이 있으랴.
冬風雙涕淚
겨울 바람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獨臥万山中
홀로 깊은 산속에 누워 있다네.
사내는 다시 무릎을 꿇더니 한동안 그 자세에 소리 없이 오열을 하였다.
그 옆에 꽂혀 있는 검은 슬픔에 찬 주인을 위로 하기라도 하듯 바람에 흔들거렸다.
* * *
“뭐라고?”
요리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객잔을 달라구요.”
“크흐!”
요리사에게 이 객잔은 자신의 삶, 전부였다. 그래서 쉽게 말은 못하고 인상만 무겁게 가라 앉혔다.
주동동은 요리사의 표정을 보고 뭔가 괜히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좀 심했나?’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이 객잔을 살 테니 아저씨는 싸게 넘기세요.”
요리사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좋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주동동이 많이 양보한 상태였는데 요리사가 조건을 달자 지켜보고 있던 천태성은 인상을 구겼다.
털썩.
그런데 갑자기 요리사가 주동동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옆에 있던 부하들도 더불어 영문도 모른 채 무릎을 꿇었다.
“나를 제자로 삼아다오!”
“에에?”
뜻밖의 말에 주동동은 적잖이 당황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누굴 가르쳐 본 적도 없지만 무엇보다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였다.
혹자는 말한다.
“재능 있는 놈은 노력하는 놈한테 지고 노력하는 놈은 즐기는 놈한테 진다.”
요리는 주동동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어쩐다.’
그런데 때마침 천태성이 그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소협,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거요. 이 큰 객잔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일꾼이 필요할 텐데 소협 혼자 모든 일을 맡아 할 수 있겠소?”
“오호.”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자기 자신은 그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뿐, 객잔을 관리한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주동동의 머릿속을 보기라도 하듯 천태성은 말을 술술 풀어냈다.
“객잔이라 함은 단순히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오. 잠자리도 제공함과 더불어 그 부수적으로 식수와 목욕물,손님이 타고 온 말관리, 마굿간 관리 그리고 여러 가지 잔심부름도 해야 하고 등등 아무튼 일일이 나열하면 한두 가지가 아닐 거요. 그런데 그것을 혼자 할 수 있겠소?”
주동동의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그것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천태성은 다 구워 삶은 고기에 양념을 뿌리듯 미소 지으며 검지를 들었다.
“제가 보기엔 소협, 여기 세 사람을 쓴다 치더라도 일손이 모자랄 거요.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들어 보시겠소?”
이제 막 황궁에서 도망 나온 놈이 뭘 알리오.
순순히 대답하는 주동동.
“말씀하세요.”
“저기 세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고용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동동이 생각하기에 천태성이 뭔가 뜸을 들이는 것을 보니 중요한 말 같았다.
“그리고요?”
“객잔의 모든 업무를 관리하는 총지배인이 필요할 거요.”
“지배인?”
처억.
천태성은 주동동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나와 동업합시다. 객잔 관리는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주방을 맡으시오, 어떻소? 아 그리고 객잔을 인수하는 데 있어서 비용 문제는 내가 해결할 테니 당신은 그저 요리에만 신경을 써주시오.”
주동동은 뭐 생각하고 자시고 없이 바로 승낙해 버렸다.
“좋아요!”
주동동과 천태성은 서로 손을 잡으며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천태성은 사악하게 웃는데.
씨익.
천태성, 그는 순간 자신의 손바닥 위에 노니는 주동동을 떠올렸다.
‘흐흐흐흐 이제 넌 내 거다.’
주동동 또한 바라 마지않는 제안이었는데 자신은 객잔 운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오로지 요리에만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천태성은 주동동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생각해 놓은 이름은 있소, 소협?”
“이름이요? 무슨?”
“객잔 이름 말이오.”
“아하, 없는데…….”
순간 봄바람에 흩날리는 매화꽃이 떠오른 주동동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낙화 객잔.”
“떨어지는 꽃이라…….”
한데 천태성이 생각하기 뭔가 어감이 좋지 않았다. 그 ‘낙화’라는 이름은 꼭 마음에 들었지만 뒤에 오는 객잔이라는 말이 왠지 낙화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수정에 들어간 천태성.
“낙화루는 어떻소? 뭐 들으면 기루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훨씬 듣기 좋지 않소?”
“와, 그렇고 보니 그렇네.”
주동동은 팔랑귀, 황제의 권좌에는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저 이제 맘껏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천진난만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천태성의 제안을 주동동이 수락하자, 일은 일사천리(一事千里)로 진행되었다.
객잔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 간판을 내리고 문을 닫았다.
그동안 주동동은 늙은 제자들(?)과 함께 여러 시장조사를 하였고 물 좋은 식재료를 구해 객잔의 요리 품목을 정하였다.
지배인을 맡은 천태성은 토목공들을 불러다가 객잔 내부 전면 개조에 들어갔다.
기존 와룡 객잔의 구조는 객실은 몇 개 없었고 식사를 주로 제공하는 방식이었으나, 이층을 객실과 집으로 쓰기로 하고 식당은 일층만 쓰기로 하였다. 또한 이층 중앙 바닥을 뜯어내어 일층에서도 이층이 보이게끔 해놓았다.
그렇게 객잔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몸살을 앓은 지 어언 한 달여, 드디어 내일이면 개업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第一章 주방의 황태자(5)
심사단이 정해지자 주동동과 요리사는 각자 소면을 담은 그릇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면 다 불어 터지겠네.’
요리사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만든 소면의 면발이 매우 얇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불어서 매우 불리한 입장이었다.
벌써 약간은 분 듯한 요리사의 소면.
후루루룩, 꿀꺽.
나누어 준 소면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심사단은 금방 먹어 치웠다.
천태성은 주동동의 소면을 들고 잠시 냄새를 맡아 보는 듯하더니 한 젓가락 들었다.
후룩.
“허!”
순간적으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어머!”
모두 젓가락을 입에 대고 굳어 버린 상태, 그들의 눈은 멍한 상태였다.
심사단 중의 한 명인 천태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면과 육수의 조화, 무엇보다 닭고기 기름과 돼지 기름이 겹치고 볶은 채소마저 기름을 머금고 있는데 전혀 느끼하지가 않구나. 국물은 투명하고 맛은 담백하고 채소는 볶았다는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아삭거리는구나!’
천태성은 주동동을 홱 하고 돌아보았다.
‘넌 내 거다!’
주동동은 그저 양손을 앞으로 모은 상태에서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요리사는 자기 모자를 확 끌어내리며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투표하고 자시고 심사단의 표정만 봐도 승부는 갈렸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주동동에게 다가갔다.
“내가 졌소! 소원이 무엇이오?”
“에에?”
눈치가 워낙 없는 주동동인지라 요리사가 갑자기 와서 졌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론 요리사의 솜씨가 없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아직 발표도 하기 전이라 몰랐던 것이다.
“소협이 이겼습니다.”
천태성이 주동동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좌중의 다른 시식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어린 나이인데 이 정도의 요리 솜씨라니. 누가 가르쳐 줬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무릇 음식이라는 것은 음과 양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그것도 아는 듯하다.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누구지? 누가 가르쳐 줬을까?’
천태성은 벌써 주동동이 자기 숙수라 확정지어 놓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 소원은…….”
좌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동동은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그의 예쁜 입술은 소원을 말하였다.
“이 객잔을 주세요.”
“허!”
‘좋구나!’
천태성은 주동동이 말한 소원이 꼭 마음에 들었다.
第二章 북해제일고수 북궁설(1)
휘이이이잉.
남편의 외도를 알아차린 마누라처럼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그리고 주위의 색은 온통 백색뿐인 이곳은 북해였다.
강풍과 더불어 휘날리는 눈발은 한 치 앞도 분간 못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의 인영이 어른거렸다.
구불거리는 곱슬머리,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턱선, 그리고 긴 속눈썹. 언뜻 보기에 남자는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듯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남자다움이 풍겨났다.
아주 슬픈 눈빛의 곱슬머리 사내는 길다란 장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척.
어느새 걸음을 멈춘 사내의 앞에는 여러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검은색 모피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속살을 파고 드는 한기(寒氣)는 더욱 차갑게만 느껴졌다.
곱슬머리 사내는 천천히 등에 있는 검을 검집째로 끌러 손에 쥐었다. 그러자 검은색 모피를 입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왔다.
머릿수는 검은색 모피 쪽이 많았으나 오히려 그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곱슬머리 사내의 입이 열렸다.
“너희들은 용서 받을 수 없다.”
지옥의 저승사자가 사형선고를 내렸다면 저러할까. 그 말을 들은 무리들은 죽음을 떠올렸다.
벼랑 끝에 몰리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법, 먼저 칼을 뽑은 쪽은 검은 모피를 입은 무리들이었다.
창.
“우아아아아아!”
그들이 달려오고 있었으나 곱슬머리의 사내는 전혀 흔들림 없이 시선을 아래로 깔고 있었다.
곱슬머리의 사내를 중앙에 둔 채 빙 둘러싼 형태로 동시에 찔러 들어가는 무리들, 좀 전에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칼에 사내가 찔려 죽는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곱슬머리의 사내가 쥐고 있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가는 동시에 세 번 휘둘러졌다.
차앙.
샤악, 샤악, 샤악.
칼끝에서 뻗어 나온 흰색빛을 띤 커다란 별 모양의 형태가 사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수아아아악.
곱슬머리 사내의 검이 집을 찾아 들어가고 검은 모피 사람들은 모두 동작 그만에 걸려 버렸다.
그리고 사내의 입을 통해 조용히 읊어지는 무공명(武功名).
“육망성…….”
무리들의 눈은 크게 부릅떠져 있었으며 목에는 붉은 선이 그어 졌다.
푸슉, 푸슉.
털썩, 털썩.
수급들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머리를 잃은 몸통들은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혔다.
단 한 수로 열댓 명의 목을 모조리 벤 사내는 허공을 올려다 보며 어디론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휘이이이잉.
차가운 눈보라는 여러 시체들에서 흘러나온 피마저 얼려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곱슬머리 사내는 어떤 무덤 앞에 꿇어앉아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술병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한쪽 팔을 들어 무덤 위에 술을 붙는 사내, 사방이 눈으로 덮혀 있지만 무덤만은 노란 잔디로 덮여 있었다.
주르르르르.
사내는 슬픈 눈으로 술을 무덤에 뿌리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등에 멘 검을 천천히 뽑았다.
검에는 붉은 핏방울이 묻어 있었는데 사내는 그 위에 술을 뿌렸다.
뚝뚝뚝.
검 끝은 무덤을 향하고 있었고 피가 섞인 술은 검을 타고 무덤 위로 뿌려졌다.
“편히 쉬거라.”
아무런 감정이 없던 사내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世事不堪說
세상 일 차마 말은 못하지만
心悲安可窮
슬픔이 어찌 끝이 있으랴.
冬風雙涕淚
겨울 바람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獨臥万山中
홀로 깊은 산속에 누워 있다네.
사내는 다시 무릎을 꿇더니 한동안 그 자세에 소리 없이 오열을 하였다.
그 옆에 꽂혀 있는 검은 슬픔에 찬 주인을 위로 하기라도 하듯 바람에 흔들거렸다.
* * *
“뭐라고?”
요리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객잔을 달라구요.”
“크흐!”
요리사에게 이 객잔은 자신의 삶, 전부였다. 그래서 쉽게 말은 못하고 인상만 무겁게 가라 앉혔다.
주동동은 요리사의 표정을 보고 뭔가 괜히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좀 심했나?’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이 객잔을 살 테니 아저씨는 싸게 넘기세요.”
요리사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좋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주동동이 많이 양보한 상태였는데 요리사가 조건을 달자 지켜보고 있던 천태성은 인상을 구겼다.
털썩.
그런데 갑자기 요리사가 주동동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옆에 있던 부하들도 더불어 영문도 모른 채 무릎을 꿇었다.
“나를 제자로 삼아다오!”
“에에?”
뜻밖의 말에 주동동은 적잖이 당황하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누굴 가르쳐 본 적도 없지만 무엇보다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였다.
혹자는 말한다.
“재능 있는 놈은 노력하는 놈한테 지고 노력하는 놈은 즐기는 놈한테 진다.”
요리는 주동동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어쩐다.’
그런데 때마침 천태성이 그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소협,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거요. 이 큰 객잔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일꾼이 필요할 텐데 소협 혼자 모든 일을 맡아 할 수 있겠소?”
“오호.”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자기 자신은 그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뿐, 객잔을 관리한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주동동의 머릿속을 보기라도 하듯 천태성은 말을 술술 풀어냈다.
“객잔이라 함은 단순히 음식만 먹는 곳이 아니오. 잠자리도 제공함과 더불어 그 부수적으로 식수와 목욕물,손님이 타고 온 말관리, 마굿간 관리 그리고 여러 가지 잔심부름도 해야 하고 등등 아무튼 일일이 나열하면 한두 가지가 아닐 거요. 그런데 그것을 혼자 할 수 있겠소?”
주동동의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그것까지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천태성은 다 구워 삶은 고기에 양념을 뿌리듯 미소 지으며 검지를 들었다.
“제가 보기엔 소협, 여기 세 사람을 쓴다 치더라도 일손이 모자랄 거요.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들어 보시겠소?”
이제 막 황궁에서 도망 나온 놈이 뭘 알리오.
순순히 대답하는 주동동.
“말씀하세요.”
“저기 세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고용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동동이 생각하기에 천태성이 뭔가 뜸을 들이는 것을 보니 중요한 말 같았다.
“그리고요?”
“객잔의 모든 업무를 관리하는 총지배인이 필요할 거요.”
“지배인?”
처억.
천태성은 주동동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나와 동업합시다. 객잔 관리는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주방을 맡으시오, 어떻소? 아 그리고 객잔을 인수하는 데 있어서 비용 문제는 내가 해결할 테니 당신은 그저 요리에만 신경을 써주시오.”
주동동은 뭐 생각하고 자시고 없이 바로 승낙해 버렸다.
“좋아요!”
주동동과 천태성은 서로 손을 잡으며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천태성은 사악하게 웃는데.
씨익.
천태성, 그는 순간 자신의 손바닥 위에 노니는 주동동을 떠올렸다.
‘흐흐흐흐 이제 넌 내 거다.’
주동동 또한 바라 마지않는 제안이었는데 자신은 객잔 운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오로지 요리에만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천태성은 주동동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생각해 놓은 이름은 있소, 소협?”
“이름이요? 무슨?”
“객잔 이름 말이오.”
“아하, 없는데…….”
순간 봄바람에 흩날리는 매화꽃이 떠오른 주동동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낙화 객잔.”
“떨어지는 꽃이라…….”
한데 천태성이 생각하기 뭔가 어감이 좋지 않았다. 그 ‘낙화’라는 이름은 꼭 마음에 들었지만 뒤에 오는 객잔이라는 말이 왠지 낙화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수정에 들어간 천태성.
“낙화루는 어떻소? 뭐 들으면 기루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훨씬 듣기 좋지 않소?”
“와, 그렇고 보니 그렇네.”
주동동은 팔랑귀, 황제의 권좌에는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저 이제 맘껏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천진난만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천태성의 제안을 주동동이 수락하자, 일은 일사천리(一事千里)로 진행되었다.
객잔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 간판을 내리고 문을 닫았다.
그동안 주동동은 늙은 제자들(?)과 함께 여러 시장조사를 하였고 물 좋은 식재료를 구해 객잔의 요리 품목을 정하였다.
지배인을 맡은 천태성은 토목공들을 불러다가 객잔 내부 전면 개조에 들어갔다.
기존 와룡 객잔의 구조는 객실은 몇 개 없었고 식사를 주로 제공하는 방식이었으나, 이층을 객실과 집으로 쓰기로 하고 식당은 일층만 쓰기로 하였다. 또한 이층 중앙 바닥을 뜯어내어 일층에서도 이층이 보이게끔 해놓았다.
그렇게 객잔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몸살을 앓은 지 어언 한 달여, 드디어 내일이면 개업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