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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6화

第二章 북해제일고수 북궁설(2)





때는 야심한 시각, 모두 잘 시간이었지만 낙화루의 안은 들뜬 분위기와 함께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쪼르르르륵.

하얀 자기로 된 술잔에 갈색빛의 술이 따라지고 그것은 곧 불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 술잔을 잡고 있던 손이 높게 올려졌다.

처억.

그 밑을 따르는 네 개의 손.

“자아, 이제 내일이면 개업입니다.”

천태성을 제외한 주동동과 그 제자들은 모두 하얀색 옷으로 깔끔하게 갈아입고 있었다.

요리사의 이름은 장태봉, 그 아래로 노득출, 유장팔이었다.

주동동은 그들의 나이를 대우해 주려고 하였으나 제자 된 입장으로 어림없다며 부득불 우기자 장씨 아저씨, 노 형, 유 형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들 세 명은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하얀색 옷으로 맞춰 놓자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것은 주동동의 지시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낙화루를 위하여!”

“위하여!”

장씨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는데 처음 주동동과 대면했을 때의 노상강도 같은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편안한 옆집 아저씨의 분위기였다.

그는 기분이 좋은지 술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천태성에게 한잔 권하면서 큰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이 뜻깊은 자리에 주인(主人)께서 한 말씀하시지요!”

“장씨는 나를 주인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입에 쫙쫙 붙는 걸 어떻하누?”

“아무튼 시킨 대로 지배인이라고 부르십시오.”

“알았어, 알았으니까 한 마디 해봐.”

‘그게 그거지 뭐…….’

천태성은 천천히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순서대로 본 후 입을 떼었다.

“우리는 분명 서로를 잘 알지 못합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여기 오기 전에는 무엇을 하였는지 각자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 석 자밖에 모르지만 여기 낙화루를 위해 모였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려 합니다. 그러니 다함께 열심히 해봅시다.”

“우와! 우리 지배인 말이 청산유수구만!”

청산유수가 정답이지만 누구 하나 장씨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짝짝짝짝.

주동동을 포함해 나머지 세 명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박수 치기 바빴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도록 낙화루의 조촐한 개업식은 끝날 줄 몰랐다.

이튿날.

객잔의 간판이 없던 자리에 금빛 글자로 웅혼하게 양각된 간판이 올라갔다.



落花樓(낙화루)



낙화루는 공개적인 개업식을 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검은 장삼의 사내.

쭉 뻗은 검미(劍眉)에 광선을 발사할 듯한 부리부리한 눈매, 살짝 걸려 있는 미소, 그는 바로 천태성이었다.

시장이 가장 붐비는 시각인 해질 녘, 천태성은 객잔에 있지 아니 하고 왜 이곳에 있을까. 즉 해답은 그의 뒤에 있었다. 그의 뒤에는 일정 거리를 유지 한 채 줄줄 따르는 무리가 있으니 바로 처자들이었다.

힐끗힐끗 보는 처자, 고개를 쭉 빼고 혹시나 돌아보지나 않을까 살피며 따르는 처자, 심지어 어린 아들내미 손잡고 따라가는 아줌마도 보였다.

천태성은 뒤에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들어 갔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함께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곳의 간판은 당연히.



落花樓



천태성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벌써 곳곳에 선객(先客)들이 있었다.

와구와구.

버둥버둥.

닭고기 훈재 요리를 입에 정신없이 처넣고 있는 남자가 있는 반면 어떤 여자 손님들은 한 입 먹더니 온몸을 비틀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천태성이 들어와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뭔가 열중하는 분위기였다.

천태성은 슬며시 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돌아서며 말문을 열었다.

“이곳이 바로 낙화루입니다. 먹고 마시며 쉬어 가는 곳이라 생각하시고 편하게 쉬십시오”

그러면서 뒤따라온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런 후 이내 옆으로 몸을 돌려 자기의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데 어떤 특이한 손님 때문에 천태성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으적으적.

그 손님은 앵두 같은 입술로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고 있었으며 하얀 옥수(玉手)에는 큼지막한 닭다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탁자 옆에는 장검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그저 음식을 잘먹기 때문에 천태성이 걸음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이 손님은 아니, 이 여자 분은 선녀 같은 얼굴로 한 열흘 굶은 거지처럼 음식을 입 안에 쓸어 넣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낯익은 얼굴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녀는 목이 메이는지 닭다리를 내려고 대접에다 술을 콸콸 부었다. 그리고는 들이키는데.

벌컥벌컥.

‘허억!’

그녀가 그 독한 죽엽청을 단숨에 들이키자 천태성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다.

턱.

그녀는 대접을 내려놓더니 손등으로 입을 스윽 하고 닦았다.

“꺼억.”

그녀 옆에 쌓인 그릇을 보라, 족히 다섯 접시는 되어 보였다.

그녀는 배가 부른지 배를 툭툭 치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천태성에게 일침을 놓았다.

“뭘 봐아, 밥 먹는 거 첨 봐?”

‘식신(食神)!’

얼굴은 무림 삼봉(三鳳)과 비견될 정도로 절세 미인 인데 그 식성이란 보통 장정의 두 배는 되지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는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먹는 거 다 어디로 가는 거지? 불가사의다!’

그 상념을 단숨에 파고들어 찢어 버리는 그녀의 목소리.

“뭘 보냐구!”

그녀의 목소리는 듣기 싫은 목소리는 절대 아니었으나 성질 내는 듯한 목소리였기에 그닥 듣기에 좋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손님, 뭐 더 필요한 거 없으십니까?”

“없어.”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천태성은 예의 그 미소를 다시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와우, 성질 한 번 식성만큼이나 괄괄하네. 어디 여식일까…….’

천태성, 그는 처음 하는 장사 일이었지만 교(敎)에서 배운 대처법과 그 유들유들하고 능글맞은 천성 때문에 사람 상대를 잘하고 있었다.

독특한 여자 손님을 지나쳐 두어 걸음 때었을까? 천태성은 오싹한 기분에 또다시 걸음을 멈추고야 말았는데.

구불구불한 긴 곱슬머리, 백옥같이 흰 얼굴, 긴 속눈썹의 절세 미남자가 술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그의 옆에 올려진 장검으로 보건데 강호인인 듯싶었다.

‘뭐야 이 얼음 귀신은?’

이 남자의 얼굴은 잘생기긴 했는데 눈빛이 뭐랄까, 살아 있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탁.

좀 전에 식신을 보고 온지라 왠지 이 남자가 술을 먹는 모습이 엄청 얌전하고 분위기 있어 보였다.

그런데.

“흑, 흑.”

‘……!’

음식 한 점 먹더니 찔찔 짜는 게 아닌가? 시체 같던 회백색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이 남자.

‘허∼’

천태성은 또다시 허리를 휘청거렸다.

‘뭐지? 이 녀석은 도무지 추측이 가질 않는군. 골격으로 보건데 그닥 무공 수위는 높아 보이지 않는데 감정을 읽을 수가 없구나. 한데 갑작스런 변화를 보이며 울어? 미친놈인가?’

어디서 왔는지 오늘 갑자기 괴짜들을 두 명씩이나 본 천태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으윽.’



* * *



한편 주방에서는 주동동의 독무대였다.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국자를 육수의 맛을 보는 동시에 유려한 몸놀림으로 채소를 썬다. 가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있었다.



‘원한을 갚았지만 변한 건 없구나. 죽음을 죽음으로 갚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연아는 이 세상에 없는데. 그렇게 나는 삶의 목표를 잃고 바람이 떠미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돌다 이곳으로 왔지. 그런데 이 무슨 인연인지, 이 음식이 뭐길래.’

“흑흑.”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으며 눈물 흘리는 곱슬머리 사내, 그는 음식이 맛있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주동동이 만든 간단한 소채 볶음 요리, 이것은 사내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는데 차갑게 식어 있던 그의 마음에 돌을 던졌다.

첫 입에 조그마한 파랑이 일었는데 점점 커지더니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이 사내의 이름은 북궁설, 북해 작은 마을 태생으로 그에게는 어렸을 때 함께해 왔던 연인이 있었다. 이름은 조연아. 동갑내기로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마음씨 착한 여인이었다.

북해는 무공이 뛰어난 남자를 선별해 빙궁에서 초청장을 발부해 소속 무사로 전격 발탁했다.

북궁설이 약관이 되던 해에 빙궁의 초정장을 받게 되어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떠나기 며칠 전, 그의 연인인 조연아와 정혼을 하고 금방 돌아오겠노라며 빙궁으로 떠났다.

그러나 예정된 것보다 훨씬 오래 빙궁에 머물게 되었고 마을을 떠난 지 삼 년만에 돌아오게 되었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오자마자 그녀의 집을 찾았지만 그 부모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연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네.”

그 착하디착한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북궁설은 충격에서 벗어나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세도가 집안의 자제가 연아를 짝사랑했는데 한사코 거절하자 강제로 범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절을 잃은 연아는 그만 충격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북궁설은 분노했다. 그의 분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마음과 몸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장 달려가지 않고 서신을 통해 그 집안에 알렸다.



피의 원한을 받으러 가오.



―雪―



하루의 말미를 주고 북궁설은 그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칼을 뽑았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그의 마음도 조금의 인정은 있는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은 손대지 않았다.

북궁설은 그렇게 복수를 하고 정처 없이 떠돌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심코 한 점 먹은 이 소채, 그것은 그 옛날 연아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그 맛이었다.

북해는 채소류가 지역 특성상 육류보다 훨씬 귀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어떻게 구했는지 그녀는 종종 북궁설에게 소채 볶음을 해주었던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줬는데…….’

소채를 다 먹은 북궁설은 스르르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장팔은 음식을 나르다가 웬 사내가 주방으로 들어오자 막아서며 말을 하였다.

“손님 이곳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북궁설은 유장팔의 말을 무시한 채 지나치며 룰루랄라 요리하고 있는 주동동의 뒤에 가서 걸음을 멈추었다.

주동동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무심코 슥 돌아섰는데 웬 크고 잘생긴 사내가 울고 있었다.

주동동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엄지손가락으로 사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왜 우세요?”

북궁설은 저도 모르게 주동동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자신과 연아의 추억을 떠오르게 만들어준 이 손.

북궁설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주동동에게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에?”

저 멀리 주방 끝에는 한껏 인상을 찌푸린 천태성이 서 있었다.

‘뭐 하는 짓거리들인지…….’

특이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가기에 따라 들어왔던 천태성, 놀랍게도 주동동은 그놈의 눈물을 닦아 주기까지 했다.

진짜 도무지 둘 다 천태성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놈들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주동동은 이 사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그저 울길래 눈물을 닦아 준 것 뿐인데 자신의 손을 잡으며 저런 웃음을 짓다니, 하지만 이 잘생긴 사내가 웃으니 정말 보기 좋았다.

북궁설은 주동동의 손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저에게 요리를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북궁설은 그녀와 관계된 것은 무엇이든 배우고 싶었다.

“저는 괜찮지만…….”

갑자기 뒤쪽에서 천태성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반대다!”

북궁설의 표정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변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며 천태성을 쏘아보았다.

파직.

흠짓.

‘호오, 이 녀석 봐라!’

순간적으로 놀라는 천태성의 표정, 설마 했는데 이 얼음장 같은 녀석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내가 질 거 같냐.’

고오오오오.

삽시간에 주방은 두 사람이 내뿜는 투기로 들끓기 시작하는데, 유장팔이 빈 그릇을 들고 들어오다가 기겁했다.

“히엑!”

급기야 선반 위의 그릇이 흔들리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장장창.

북궁설의 표정이 시체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다면 천태성은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